‘60일, 지정생존자’에서 긴박감이 느껴지지 않는 건

 

사건 전개가 지나치게 느리다. tvN 월화드라마 <60일, 지정생존자>를 보다보면 어째서 이렇게 시간이 한정되어 있는 이야기에 긴박감이 느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즉 이 드라마는 미드 원작과 달리 우리네 헌법에 맞게 ‘60일’이라는 시간제한을 뒀다. 그래서 드라마의 연출에서도 시작과 함께 자막으로 ‘○○일’ 같은 시간의 흐름을 적시해 놓았다.

 

보통 이런 구조의 시간제한은 마치 시한폭탄 같은 장치를 만들어 드라마를 긴박하게 만들기 마련이다. 여기서 60일은 대통령 선거가 치러지게 되기까지의 시간이다. 졸지에 대통령 권한대행이 된 박무진(지진희)은 그 60일의 국정운영을 대신해야 한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는 게 아니다. 60일 후 대통령 선거에서 박무진이 대행이 아닌 진짜 대통령이 되는 그 과정까지 담아낼 것이니 말이다.

 

그런데 드라마는 그 시간제한이 갖는 긴박감을 살리지 못하고 자잘한 에피소드에 발목이 잡혀 있다. 지난회까지 시청자들의 관심이 한껏 증폭되어 있던 인물은 바로 오영석(이준혁) 의원이었다. 그가 사실상 국회의사당 폭탄 테러의 배후로 지목되고 있는 상황이고, 그 진실에 다가가려는 한나경(강한나)과 정한모(김주헌) 국정원 요원들이 오히려 누군가에 공격을 받고 위기에 몰려 있는 상황이었다.

 

당연히 시청자들로서는 오영석 의원의 실체가 드러나는 과정에 집중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드라마는 갑자기 ‘스캔들’이라는 부제로 박무진 권한대행과 아내 최강연(김규리)이 어떻게 만났고 친부로부터 버려진 박시완(남우현)을 박무진이 어떻게 친자식으로 끌어안았는가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었다. 드라마의 흐름을 꺾어버린 전개고, 어떤 면에서는 시간 끌기를 함으로써 맥을 풀리게 만드는 구성이라고 볼 수 있다.

 

게다가 박무진의 인간적인 모습을 담아내려는 이 에피소드가 그리 대단히 감동적으로 다가온 것도 아니었다. 어느 정도는 다 예상할 수 있는 전개 안에 머물고 있는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초반 박무진이 유부녀였던 최강연과 불륜을 통해 박시완을 갖게 됐다는 식의 제보가 등장하고, 차마 박시완을 친자식이 아니라고 말할 수 없는 박무진이 그 거짓 제보를 그대로 인정하는 대목에서 이미 시청자들은 그 사건의 전말을 어느 정도는 예상했을 게다.

 

나아가 이 이야기 자체도 허점이 적지 않다. 예를 들어 박시완이 친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숨기기 위해서라면, 아들에게 아빠가 불륜남이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건 괜찮은 걸까. 이런 논리적인 허점들이 있기 때문에 이 에피소드는 과도하게 박무진의 인간적 캐릭터를 짜내서 만들어낸 듯한 느낌을 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에피소드의 허점보다 더 큰 문제는 이런 지지부진한 전개가 만들어내는 피로감이다. 빠른 전개를 해도 시청자들이 채널을 유지할까 말까 한 상황이다. 정공법으로 이야기의 속도를 내지 않고 자잘한 에피소드로 변죽만 울리다 시청자들이 다 떠나버릴까 우려되는 지점이다.(사진:tvN)

‘지정생존자’, 정치드라마일까 또 다른 액션 스릴러일까

 

tvN 월화드라마 <60일, 지정생존자>는 과연 정치드라마일까 아니면 액션 스릴러일까. 국회의사당 폭탄 테러라는 국가 위기 상황을 상정하고 있으니 액션 스릴러적 장르의 색깔이 묻어나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그 국가 위기 상황에서 졸지에 대통령 권한대행이 된 박무진(지진희)의 국정 수행에 관한 이야기는 정치드라마적 색채를 띤다.

 

게다가 60일 이후의 선거를 예고하고 있는 상황이다. 권한대행으로 왔지만 북한 관련 이슈가 터지면서 오히려 지지율이 반등한 박무진이 대통령 후보로 나설 것으로 보이는데다, 야권 주자인 윤찬경(배종옥)은 애초에 그 싹을 잘라버리려 갖가지 정치적 포석을 두고 있다. 여기에 여권의 유력 차기 대권주자로 꼽히는 서울시장 강상구(안내상)가 만만찮은 야심을 드러내니 정치드라마로서의 치열한 복마전이 벌어진다.

 

하지만 이런 정치드라마적 색깔보다 더 액션 스릴러에 가까운 색깔을 만드는 인물은 오영석(이준혁) 의원이다. 무너진 국회 건물 더미에서 유일한 생존자로 구조된 오영석 의원은 바로 그 사실 때문에 국민적인 영웅이 된다. 박무진은 정치적인 포석으로 오영석 의원을 끌어들여 국방부장관에까지 임명시키려 하지만, 그는 국정원 한나경(강한나) 요원에게 국회의사당 테러의 주범으로 의심받는 인물이다.

 

유일한 생존자라는 것에 의구심을 가진 한나경은 폭탄이 터질 당시 오영석 의원이 자리를 비웠다는 걸 알게 되고, 누군가의 제보에 의해 그가 국회 내에 은밀하게 만들어진 방공호에 들어갔다는 사실까지 증거로 확보하게 된다. 결국 국회의사당 테러는 오영석 의원이 정치적 승부수를 던지기 위해 자행한 사건이었다는 것. 하지만 그 증거를 갖고 오던 한나경은 교통사고로 위장된 사고를 당한다. 즉 오영석 의원을 의심하고 그 행적을 추적하는 이야기는 전형적인 액션 스릴러 장르로 <60일, 지정생존자>의 색깔을 만들어낸다.

 

여기에 테러범이라 주장하며 캄보디아에 숨어 지내는 북측의 명해준(이도국) 고위 장교를 검거해오기 위해 특수부대가 투입되는 장면 역시 정치드라마의 틀에서 훌쩍 벗어난 전쟁 액션 장르 같은 느낌을 더한다. 그렇게 잡혀와 국정원에서 심문을 받던 중 누군가에 의해 명해준이 살해되고, 한나경이 찾은 증거를 공유했던 정한모(김주헌) 국정원 대테러팀장이 갑자기 자신이 명해준을 살해했다고 자백하는 장면 역시 이 드라마가 흘러갈 스릴러적 장치들을 예감하게 한다.

 

이처럼 <60일, 지정생존자>는 정치드라마와 액션 스릴러의 중간 지점에서 애매한 줄타기를 하고 있다. 그런데 이런 애매함을 만드는 중요한 인물이 바로 오영석이다. 그의 정체가 전면에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정치드라마로서의 이야기보다 음모가 숨겨진 액션 스릴러적 이야기가 더 전면에 등장하는 것. 게다가 이 오영석 의원의 정체를 이제 시청자들은 어느 정도 알고 있는 상황이지만 드라마 속 인물들은 그걸 모르고 있는 지점은 드라마를 조금 답답하게 만드는 요인이다.

 

오영석 의원의 실체가 빨리 드러나야 <60일, 지정생존자>가 가진 정치드라마적 요소들이 좀 더 전면에 나올 수 있지 않을까. 결국 위기 상황에서 국정운영을 맡게 된 인물이 어떻게 그 현실 정치에서 살아남는가가 이 드라마가 가진 백미라고 볼 때, 지나치게 오영석 의원이 만들어내는 스릴러적이고 음모론적인 색채는 정치드라마가 가진 현실 공감을 흐리는 부분이 아닐까. 정치드라마든 액션 스릴러든 좀 더 분명한 색깔로 나갈 필요가 있어 보인다.(사진:tvN)

‘60일, 지정생존자’, 지진희가 보여주는 성장하는 강력한 리더십

 

어설픈 이상이 아니다. 뼈 때리는 현실감이다. 최근 정치를 다루는 드라마가 내세우는 리더십의 조건은 이렇게 바뀌었다. tvN 월화드라마 <60일, 지정생존자>에서 얼떨결에 대통령 권한대행이 된 박무진(지진희)에게 요구되는 리더십이 그렇다.

 

그는 환경부장관으로 있을 때도 자신을 ‘과학자’라고 불렀다. 문제해결을 하기 위해 데이터를 모으고 계산을 하는 인물이다. 물론 그러한 팩트가 중요하지 않은 건 아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정치는 결국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이고, 그런 권력을 기반으로 해야 비로소 이상도 추구될 수 있는 것이다.

 

야당 대표 윤찬경(배종옥)이 박무진 권한대행이 대통령이 사망하기 전 해임됐었다는 사실을 약점으로 잡아 언론 인터뷰에서 기습적으로 그 질문을 던지게 만들었을 때, 그는 정치적 선택이 아닌 ‘진실’을 이야기하는 쪽을 선택했다. 사실 그대로 그런 일이 있었다고 말했던 것. 결국 그 한 마디는 박무진 대행에 대한 국민적인 불신을 만든다.

 

이전에도 박무진 권한대행은 대통령의 역할이 어울리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곤 했다. 초유의 국회의사당 폭탄테러의 배후에 북한이 있다는 강경론자들의 주장과 마침 사라진 북한 잠수함으로 인해 데프콘 2호를 발령하라는 목소리들이 높았지만, 그는 데이터 분석으로 그것이 북한 잠수함의 침투가 아닌 표류라는 걸 밝혀냄으로써 위기를 넘긴 바 있다. 하지만 그것은 자칫 더 심각한 국가적 위기 상황을 만들 수도 있는 선택이었다.

 

탈북자들에 대한 보복성 폭력사태가 벌어지고 이를 통해 차기 대선주자로서의 입지를 확실히 하려는 강상구(안내상) 서울시장이 ‘특별감찰구역 선포’를 했을 때도 권한대행으로서 정치적 선택들을 해야 하는 박무진은 여전히 60일을 지키다 돌아가려는 ‘국민의 한 사람’으로 자신을 규정하며 소극적인 자세를 보였다. 결국 박무진은 한주승(허준호) 비서실장을 해임하면서까지 대통령령을 발령함으로써 자신이 권력 행사를 해야 하는 위치에 있다는 걸 깨닫는다.

 

북한의 전직 고위급 인사가 스스로를 테러범이라 주장하는 동영상으로 이관묵(최재성) 합참의장이 박무진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작전을 수행하려 하자, 박무진은 그를 해임시키는 명령을 내렸다. 지금껏 수동적이 위치에만 서 있던 그가 이런 선택을 했다는 건, 그 역시 이제 점점 대통령 권한대행으로서 어떤 리더십을 보여야 하는가를 깨닫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차영진(손석구) 선임 행정관이 국가 기밀에 해당되던 북한 전직 고위급 인사의 동영상을 공개함으로써 잃었던 신뢰를 회복하게 되자, 박무진이 차영진을 해임이 아닌 비서실장에 앉히는 대목은 박무진 권한대행의 변화를 잘 보여준다. 항상 이상적인 바른 길만을 고집하던 그가 이제는 좀 더 현실적인 선택을 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60일, 지정생존자>의 박무진 대통령 권한대행을 통해 요구하는 리더십은 지금의 대중들의 정서가 반영되어 있다. 한때 정치 드라마에서도 종종 보였던 이상적인 인물들에 대한 공감보다 이제는 좀 더 현실적이고 실제적인 리더십을 보이는 인물에 대한 공감이 더 크다는 것이다. 대의명분이나 소신은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대중들은 말하고 있다. 국가적 위기 상황에서 소신은 분명히 있어야 하지만 그렇다고 순진해서는 안 되는.(사진:tvN)

'지정생존자', 정치인의 권력의지와 유권자의 권리

 

“권력이라고 하셨습니까? 저하곤 관계없는 이야기인데요. 전 그저 이 자리에서 시민의 책무를 다하고 60일 뒤엔 학교로 돌아갈 생각입니다. 예전처럼.” tvN 월화드라마 <60일, 지정생존자>에서 대통령 권한대행 박무진(지진희)은 비서실장 한주승(허준호)에게 그렇게 말했다. 초유의 국회의사당 폭탄 테러 사건으로 졸지에 대통령 권한대행을 수행하게 된 박무진. 하지만 국민들도 청와대 수석보좌관들 같은 실무진들도 그를 믿지 못했다. 불신과 불안감이 커지고 있는 상황에 한주승은 박무진에게 “대한민국은 여전히 건재하다는 걸 보여줌으로써 청와대 스텝의 신뢰와 국민들의 지지를 얻으라”고 조언했다.

 

신뢰와 지지 그것이 바로 권력이라는 한주승의 조언을 그러나 박무진은 받아들이지 못했다. 권력이라는 것과 자신은 아무 관계도 없다 여겼던 것. 그는 어쩌다 등 떠밀려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게 되었지만 그건 자신의 의지가 아니라 생각했다. 그러니 권력을 행사한다는 건 자신과는 먼 일이라고 여길 밖에.

 

하지만 대통령 권한대행이라는 자리에서 권력을 행사하지 않는다는 의미는 ‘국정 공백’을 의미했다. 그건 즉각적인 폭력사태로까지 이어졌다. 불안과 공포 속에서 탈북민들이 이 테러를 주도했다는 가짜 뉴스가 급속도로 퍼져나갔고 급기야 극우단체들이 탈북민들이 장사하는 시장에 난입해 폭력을 저지르는 사건이 터졌다.

 

‘국정공백’을 기회로 삼으려는 정치인도 등장했다. 여권의 강력한 차기 대권주자로 꼽히는 강상구(안내상) 서울시장은 폭력사태가 벌어진 보길 모현 지구를 특별감찰구역으로 선포하고 특별사법경찰을 투입해 불법을 저질렀다는 혐의로 몇몇 탈북민들을 입건했다. 권력의 빈 자리를 차고 들어와 자신의 존재감을 알리려는 정치적 행보였다.

 

그렇게 입건된 탈북민 중에는 아내 최강연(김규리) 변호사의 의뢰인도 있었다. 지병을 앓고 있어 주사를 맞지 않으면 위험한 상황인 걸 알고 있는 최강연은 남편 박무진에게 힘을 써달라고 부탁했다. 하지만 강상구를 불러 보길 모현 지구 특별감찰구역을 해제해달라고 요청했지만 그는 코웃음을 치며 거절했다. 결국 박무진은 권력행사를 하지 않으면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한주승의 이야기를 실감하게 됐다.

 

박무진은 입건된 탈북민이 결국 사망했다는 소식을 듣고, ‘대통령령 발령’을 결심한다. 하지만 여기에도 난관이 있었다. 권한대행의 권한은 기존질서, 현상유지에 준해야 한다는 헌법조항이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 헌법 조항의 해석을 달리한다 하더라도 그의 이런 선택은 그의 ‘정치적 행보’를 의미했다. 국민의 책무를 다하고 돌아가겠다며 권력은 자신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 여겼던 그가 이 선택 하나로 이제는 권력의지를 드러낼 수밖에 없다는 것.

 

하지만 이번에는 한주승이 대통령령을 발령하면 자신을 해임해야 할 것이라며 반대하고 나섰다. 그런데 그건 어쩌면 권력의지가 없다고 얘기한 박무진에게 ‘권력 행사’를 하는 경험을 제대로 해주기 위한 것일 수 있었다. 잠시 주춤했지만 박무진은 한주승을 해임했고 한주승은 기다렸다는 듯이 이렇게 말했다. “권력은 이렇게 쓰는 겁니다. 아직도 권력의지가 없다고 생각합니까?”

 

<60일, 지정생존자>가 박무진이라는 대통령 권한대행의 첫 번째 행보에서 ‘권력의지’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놓은 건 무얼 의미할까. 그것은 정치라는 것이 권력의지의 소산이라는 걸 명확히 하기 위함일 게다. 우리는 흔히 정치에 있어서 권력이라고 하면 부정적인 인상을 갖는다. 그것은 아마도 독재 시절을 거쳐 오며 정치권력의 부정적인 면들을 많이 겪어서일 게다. 그래서 심지어 권력행사에 해당하는 정치 자체를 혐오하고 무관심하게 대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하지만 그 무관심은 더 나쁜 정국을 야기한다. 그 빈자리를 차고 들어와 엉뚱한 권력을 행사하려는 이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건 대통령 권한대행 같은 정치인들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일까. 그저 어쩔 수 없는 책무로서 발만 담그려 했던 박무진이 그로 인해 야기되는 혼란을 막기 위해 권력을 행사하는 과정은, 우리네 보통 사람들에게도 똑같이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유권자들인 국민들 역시 보다 나은 세상을 위해서는 저마다의 위치에서 권리와 권력을 행사해야 한다는 것. <60일, 지정생존자>에서 권력의지를 깨운 박무진이라는 인물이 우리네 보통 사람들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큰 이유다.(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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