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답하라1988’ 덕선에서 ‘빅토리’ 필선으로 돌아온 혜리

빅토리

2015년 ‘응답하라 1988’이 메가히트를 기록했을 때 필자는 몇몇 기자들에게 혜리의 매력이 도대체 무엇인가를 불어본 적이 있다. 그 때 돌아온 답변은 ‘순수하다’는 것이었다. 다소 막연하게 들리는 ‘순수하다’는 표현에 대해 좀더 자세히 물었다. 그러자 그건 마치 ‘아기 같은 백지상태의 순수함’이라고 했다. 그 말에 당시 거의 신드롬에 가깝게 생겨난 혜리에 대한 대중적인 인기가 단박에 공감이 됐던 적이 있다. 백지상태라는 건 다른 시각으로 보면 모든 게 가능성이라는 말도 되기 때문이었다. 물론 개인적인 노력이 전제되어야 하는 일이지만, 그래서 혜리는 그 백지상태의 가능성을 최고조로 끌어올린 어느 순간에 그 존재가 빛을 발하게 됐다. 

 

지금도 혜리를 이야기할 때 회자되고 있는 ‘진짜사나이’의 이른바 ‘앙탈애교’로 불리는 한 장면을 떠올려보라. 그 한 장면은 순식간에 군대라는 조금은 격식이 요구되는 곳에서 그걸 뚫고 나오는 마음의 한 부분을 드러내줌으로써 보는 이들의 기분을 활짝 피어나게 만들었다. 하지만 최근 유튜브 방송 ‘덱스의 냉터뷰’에 출연한 혜리가 말한 것처럼 그건 애교의 표현이 아니었다. 그간 훈련을 받으며 정이 들었던 터라 퇴소식에서는 좀더 유하게 그 친분을 드러내고 싶었지만 그러면 안된다고 빡빡하게 대하는 상사의 엄격함에 소심한 짜증을 드러낸 것이었다. 사실 그 누구도 그 상황에서 그런 리액션이 나올 거라는 걸 예측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 순간이 보여준 틈입의 카타르시스는 컸다. 엄격한 군율이 존재하는 곳이긴 하지만 결국 어디든 사람 사는 곳이라는 걸 혜리의 그 감정표현이 말해줬기 때문이었다. 이처럼 혜리는 그 순수한 백지상태여서 어느 순간 솔직하게 꺼내지는 감정이 특히 매력적인 인물이다.  

 

‘응답하라 1988’에서 혜리가 덕선이라는 캐릭터에 캐스팅된 것 역시 ‘진짜사나이’ 덕분이었다. 올해 초 채널 십오야에 출연한 신원호 감독은 ‘진짜사나이’에 나온 혜리를 보고 너무나 매력적이라고 느꼈고 그래서 애초부터 혜리를 덕선으로 점찍어 뒀다고 했다. 이런 선택에는 예능PD 출신이었던 신원호 감독과 또 역시 예능을 함께 해온 이우정 작가가 가진 독특한 드라마 작법과도 연관이 있다. 드라마를 예능 방식으로 제작하는 이들은, 매력적인 인물을 먼저 캐스팅하고 그 인물을 가장 매력적으로 보이는 캐릭터를 창출하는데 익숙하다. 그래서 그 자체로 순수한 매력을 갖고 있는데다, 배우라는 영역에 있어서 거의 백지상태의 가능성을 가진 혜리는 너무나 좋은 선택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혜리를 캐스팅한 신원호 감독과 이우정 작가는 그에게 딱 어울리는 덕선이라는 캐릭터를 만들어냈고, 그건 예상한대로 엄청난 시너지로 시청자들을 매료시켰다. 이로써 걸스데이로 데뷔했지만 ‘진짜사나이’로 예능에서 일약 스타덤에 올랐고, 또 ‘응답하라 1988’로 배우로서도 큰 성공을 거두게 된 혜리는 멀티 엔터테이너로서 자리매김하게 됐다. 

 

어언 데뷔 14년 차가 됐지만 최근 영화 ‘빅토리’로 돌아온 혜리는 여전히 해맑은 소녀의 풋풋함과 건강함을 보여줬다. 이번 작품에 그가 맡은 배역의 이름이 ‘필선’이라는 건 우연처럼 보이지 않는다. ‘응답하라 1988’의 덕선이 이번에는 필선으로 돌아온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이처럼 ‘빅토리’ 역시 혜리가 가진 그 순수한 매력이 찰떡같은 캐릭터를 만나 힘을 발휘한다. 서태지와 아이들의 ‘하여가’에 맞춰 오락실 DDR 게임기 위해서 춤을 추는 첫 등장부터 관객들의 시선은 이 매력적인 인물에 여지없이 포획된다. 그건 걸그룹을 해온 데서 나오는 춤선의 내공과, 또 여러 작품을 통해 쌓여진 연기의 내공이, 그와 딱 어울리는 캐릭터와 만나면서 생겨나는 시너지다. ‘빅토리’ 역시 혜리라는 인물이 가진 매력들이 가장 잘 보여질 수 있는 작품이라는 걸 영화 시작 몇 분만에 관객들을 감지하게 된다. 

 

그런데 이런 딱 맞는 캐릭터와 만나는 일들이 계속 벌어지는 건 과연 우연일까. 그렇지 않다. 혜리 역시 그 필모를 들여다보면 만만찮은 실패와 좌절로 인한 상처를 겪은 바 있다. 예를 들어 ‘하이드 지킬, 나’에서는 그다지 주목받지 못하는 캐릭터를 연기했고, ‘딴따라’는 시청률이 저조해 잊혀진 작품이 됐다. 영화 ‘물괴’에서는 작품의 완성도도 떨어져 흥행에 실패하면서 연기력 논란까지 겪었다. 그런 일련의 과정을 거쳐 ‘투깝스’의 기자 역할에서는 괜찮은 평가가 나왔고, ‘간 떨어지는 동거’, ‘꽃피면 달 생각하고’, ‘일당백집사’에서도 안정적인 연기를 선보였다. 즉 실패의 경험 속에서도 꿋꿋이 힘을 잃지 않고 달려온 결과 ‘빅토리’의 필선 같은 그의 에너지가 200% 발휘될 수 있는 배역을 만나게 됐다는 것이다. 

 

‘빅토리’가 1999년 거제상고의 치어리딩 동아리를 소재로 하고 있다는 사실은 그래서 혜리라는 인물과 묘하게 어우러지는 느낌을 준다. 그건 ‘응원’이라는 키워드 때문이다. 이 작품 속 필선이 이끄는 치어리딩 팀은 만년 꼴찌팀인 거제상고 축구부를 응원하기 위해 만들어지지만, 그 응원은 거기에만 머물지 않는다. 필선의 아버지처럼 조선업을 근간으로 생계를 이어가는 거제 사람들 모두에게 그 응원의 메시지가 전달된다. 또한 댄서의 꿈을 안고 무작정 서울로 상경했던 필선이 걸그룹으로 데뷔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앞두고 다시 거제로 돌아와 못다한 치어리딩을 친구들과 함께 하는 모습은 어떤 가능성에도 열려 있는 이 인물의 건강한 에너지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혜리라는 인물과도 잘 어울린다. 그간 제대로 해준 게 없다는 얘기를 꺼내 놓는 아버지에게 “고만 해라-”를 반복하며 결국 눈물을 쏟아내는 모습에서는 심지어 저 ‘진짜사나이’에서 살짝 짜증을 내면서도 거기에 따뜻한 마음이 얹어지는 혜리의 모습이 떠오른다. 혜리라는 인물이 응원과 가능성의 아이콘처럼 여겨지는 이유다. 

 

“응원한다. 내를 그리고 느그를.” 영화에서 필선이라는 캐릭터로 혜리가 던지는 그 대사는 그래서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그건 쉽지 않은 상황에서도 자신을 스스로 응원하고 또 다른 사람들을 응원하는 것이 자신의 가능성은 물론이고 누군가의 가능성을 열게 해주는 일이 될 수 있다는 걸 말해주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건 또한 14년의 시간 동안 어려움 속에서도 스스로를 응원하며 늘 새로운 가능성 앞에 세웠던 혜리 자신의 이야기이기도 할 것이다.(글:국방일보, 사진:영화'빅토리')

'강철부대', 훈련 대신 자존심 팀 대결로 돌아온 군대 리얼리티의 찐 맛

 

채널A <강철부대>에 대한 반응이 심상찮다. 대한민국 최고의 부대 6팀이 여러 미션으로 대결을 벌이는 군대 리얼리티 <강철부대>는 첫 회에 2.9%(닐슨 코리아) 시청률로 시작해 3.4%, 4.3%로 매주 최고시청률을 갈아치우며 급부상하고 있는 중이다. 이 흐름대로라면 채널A의 새로운 기록에도 도전할 수 있는 무서운 상승세다.

 

<강철부대>가 가져온 군대 리얼리티는 강력한 흡인력을 가진 것만은 분명하지만, 그간 많은 논란의 요소들을 갖고 있었던 게 사실이다. 최근 가학 논란으로 유튜브 방영을 중단했던 <가짜사나이> 논란은 대표적이다. <가짜사나이>는 군사 훈련의 가학성이 지나치게 강조되면서 일부 교관의 부적절한 멘트들은 논란에 불을 지폈고 그렇게 강력한 자극과 화제성에도 불구하고 좋은 결과를 만들어내지는 못했다.

 

<강철부대>는 일단 군사훈련이라는 군대 리얼리티의 틀에 박힌 소재를 지워버렸다. 이미 준비된 6팀이 각자 자신들이 몸담았던 부대의 명예를 걸고 출연해, 갖가지 미션들을 통해 대결하는 방식은, 상명하복 같은 위계가 아니라 팀 단합과 명예를 위한 대결로 프로그램의 색깔을 바꿔놓았다. 가학성이 사라진 자리에는 저것이 인간의 능력인가 싶을 정도의 극한의 체력과 정신력 나아가 동료의 협동심을 보여주는 자리로 채워졌다.

 

프로그램에 출연한 특전사, 707 대테러 특수임무단, 해병대, UDT(해군특수전전단), SDT(군사경찰특임대), SSU(해군해난구조전대) 6팀이 각각 4명씩 팀을 이뤄 총 24명의 예비역들이 벌이는 팀전은 다 같이 모인 첫 만남에서부터 불꽃 튀기는 신경전이 벌어졌다. 아마도 악역을 맡게 된 것처럼 보이는 707팀이 군경력 대선배인 박준우(박군)에게 춤을 춰달라고 하거나, 뒤늦게 들어온 다른 팀에게 절을 하라며 몰래카메라를 유도하는 등의 도발행위(?)를 했지만, 맨 마지막에 들어온 UDT팀의 살벌한 무대응으로 오히려 신경전에서 밀리는 광경은 그 자체로도 흥미진진했다.

 

팀 구성부터가 자존심 대결을 예고할 수밖에 없는 구성이다. 예를 들어 특전사와 707은 같은 육군특수전 사령부 소속으로, 특전사에서도 별도로 차출되어 대테러와 특수임무를 맡는 조직이 707이라는 사실 때문에 서로가 팽팽한 기싸움을 벌일 수밖에 없다. 또 UDT나 해병대 그리고 SSU는 모두 해상 작전에 최적화된 팀이라는 점에서 자신들이 최고라는 걸 입증하려 애쓴다. 이 군대 리얼리티의 강력한 서바이벌은 애초 라이벌 의식을 갖는 팀 구성에서부터 이미 장착된 결과라는 것이다.

 

간단하게(?) 스튜디오에서 치러진 턱걸이 대결은 팀의 자존심이 걸린 문제가 되면서 출전한 팀원들을 죽기 살기로 만들었고, 그건 이제 본격적으로 야전에서 시작될 미션들이 얼마나 살풍경할 것인가를 예감케 해줬다. 칼바람이 부는 한 겨울 바닷가에서 시작된 첫 날의 대결은 참호격투, 각개전투, 해상구조를 쉬지 않고 해낸다는 것만으로도 시청자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차가운 진흙탕 속에서 한바탕 '악어 같은' 대결을 펼치고는, 달리기와 포복, 40킬로 타이어 들고 뛰기 그리고 10미터 외줄 타기를 연달아하는 각개전투를 한 후, 어두워진 밤바다로 뛰어들어 더미를 구조해오는 미션을 치른다. 과연 체력적으로 이게 가능한가 싶지만 이들은 포기한다는 걸 더 큰 치욕으로 여기며 승패를 떠나 끝까지 하는 자세로 시청자들을 놀라게 만들었다.

 

이 미션들을 수행해가며 자연스럽게 다양한 캐릭터들이 매력적인 모습을 드러냈다. 트로트가수로 유명해졌지만 오랜 군 경력을 가진 박준우는 왜소한 체구에도 불구하고 '짬에서 나오는' 전략적인 접근과 남다른 체력으로 각개전투에서 놀라운 수행력을 보여줬고, UDT 출신 육준서는 첫 등장부터 잘 생긴 외모지만 강인한 체력과 정신력으로 시청자들을 사로잡았다. 그는 방송 이후 화가이자 유튜버라는 독특한 이력으로 팬덤이 생길 조짐을 보이고 있다. 또 겉모습만으로도 위압감을 주는 현역 크로스핏 선수 황충원은 미션마다 괴력을 보여줘 '황장군'이라는 별칭을 얻게 되었고, 이밖에도 해병대 수색대팀의 오종혁이나 첫 번째 미션의 우승자로 우뚝 선 SSU의 정해철 등등 출연자들의 다양한 개성과 매력들이 미션마다 드러나고 있다.

 

어찌 보면 <강철부대>는 해외의 서바이벌 프로그램을 우리네 군대라는 특수한 상황과 접목시켜 시너지를 만든 프로그램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MBC <진짜사나이>와 유튜브 <가짜사나이>가 모두 보여줬던 일반인 참여 군 체험이라는 틀을 과감히 벗어버림으로써, 군대 리얼리티가 그간 가졌던 가학성이나 군사문화 미화 논란 같은 불편한 지점들을 지워버렸다. 대신 마치 자존심이 걸린 스포츠 대결 같은 양상으로 미션대결을 펼침으로서 최강자가 누가 될 것인가에 초점을 맞췄다.

 

물론 그들끼리는 자존심 대결이라 누가 최강자가 되는가는 중요한 일일 테지만, 시청자들에게 그건 그리 중요한 일은 아니다. 대신 그 과정에서 보이는 이들의 강인한 정신력과 의지를 느끼고, 한편으로는 든든한 마음으로 그 매력에 빠져드는 것만으로도 충분할 테니 말이다. 군대 리얼리티의 끝판왕을 보여주는 <강철부대>. 어딘가 심상찮은 신드롬의 조짐이 보인다.(사진:채널A)

'가짜사나이'는 유튜브 콘텐츠의 새로운 영역을 열고 있다

 

"이 XX 뭐야? 너 인성 문제 있어?" 지금 이 말은 SNS에서 회자되는 하나의 유행어가 되었다. 그런데 그 유행어의 출처는 지상파도 케이블도 그렇다고 종편도 아니다. 유튜브다. 지난 6월부터 7월까지 모두 7개의 영상으로 올라온 '가짜사나이'가 그 유행어의 진원지다. MBC 예능 '진짜사나이'를 패러디한 '가짜사나이'는 총 4천만 회가 넘는 초대박으로 유튜브 방송의 새로운 영역을 열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있다.

 

'진짜사나이'를 기억하는 분들이라면 단박에 '가짜사나이'라는 제목만으로도 그것이 어떤 콘텐츠인가를 짐작할 수 있을 게다. 유튜버, 스트리머 같은 방송을 하는 일반인들이 고강도의 UDT 훈련을 4박5일간 받는 과정을 가감 없이 담았다. 물론 훈련 장면과 중간중간 인터뷰로 삽입되는 이야기를 더하는 그런 편집방식은 '진짜사나이'를 패러디한 것이지만, 내용만 보면 '진짜사나이'가 울고 갈 정도의 리얼함이 담겨있다.

 

너무 힘겨워 훈련도중 토하는 모습도 등장하고, 손바닥이 다 까진 채로 붕대를 퉁퉁 감고 훈련을 하는 모습도 들어있다. 머리에 보트를 이고 이동하거나 심지어 그 상태에서 한 명씩 빠져나와 배식을 받아 밥을 먹는 훈련을 받는 장면은 보는 이들마저 힘이 들 정도다. 땅을 파고 은폐하는 비트를 구축하기위해 새벽까지 삽질을 하고, 부상자 이송 훈련은 물론이고 갑자기 물에 빠뜨린 후 생존 수영을 시키기도 한다.

 

군대 훈련에서 항상 존재하는 것이지만, 강도 높은 훈련 속 스트레스를 이겨내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이들에게 슬쩍 감정을 더해 눈물을 흘리게 하는 장면들도 있다. 훈련에 참가한 이들이 유튜버들이라는 점에 맞춰 유튜버로서 살면서 힘들었던 걸 말해보라는 대목에서는 의외의 진한 감정들이 쏟아져 나온다.

 

이 정도의 강도의 훈련을 하면서 굳이 '가짜' 사나이라고 이름 붙인 건 그래서 보면 볼수록 '진짜사나이'에 대한 풍자처럼 느껴진다. 사실 '진짜사나이'는 방영될 때마다 조작 논란도 많았고, 때론 너무 코믹한 상황을 연출해낸다는 이야기로 비판을 받기도 했었다. 물론 '가짜사나이'는 이런 제목이 "진짜가 되고픈 가짜사나이들의 이야기"에서 따온 것이라는 점을 명시했다.

 

'가짜사나이'의 인기는 여기 참여한 교관들에 대한 인기로 이어지기도 했다. 특유의 말투가 유행어처럼 회자되게 만든 이근 교관은 물론이고 에이전트 H, 야전삽, 로건이 모두 유명인사가 됐다. 이근은 MBC '두니아-처음 만난 세계'에 출연하기도 했던 인물로 '가짜사나이'를 통해 확실한 입지를 갖게 됐고 JTBC '장르만 코미디' 같은 프로그램에 출연할 정도로 방송의 러브콜을 받고 있다. 유튜브에는 그가 예전 영구 서바이벌 프로그램에 출연했던 영상이 올라와 화제가 되고 있다.

 

'가짜사나이'가 이런 인기를 누리게 된 건 우리네 군대문화를 들여다본다는 측면은 물론이고, 일종의 서바이벌이 주는 강력한 이야기들이 익숙한 유튜버들의 훈련을 통해 보여진다는 점이 주효했던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구독자들 반응 중에는 별로 관심이 없을 것 같은 여성들도 괜찮은 반응들을 내놓고 있을 정도다.

 

하지만 '가짜사나이'가 특별히 의미가 있다 생각되는 건 이 시도가 유튜브 콘텐츠의 새로운 영역을 열고 있다 여겨지기 때문이다. 사실 유튜브라고 하면 1인 미디어를 먼저 떠올리기 마련이다. 하지만 '가짜사나이'는 1인 미디어가 하는 콘텐츠가 아니다. 드론이 띄워지고 다수의 VJ들이 카메라를 들고 따라다니며 찍는데다, 출연자들도 교관과 훈련생들까지 합해 여럿이다.

 

물론 이 프로젝트가 시도된 건 피지컬 갤러리를 운영하는 김계란이라는 1인 미디어의 아이디어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자세교정이나 운동법 등을 알려주는 채널인 피지컬 갤러리의 김계란이 공혁준의 살을 빼주는 운동을 하게 되면서 그 게으름을 지적하며 UDT 훈련을 받아야 한다고 했던 말에서 비롯됐다. 하지만 UDT 출신인 김계란도 참여한 이 프로젝트에는 유튜브 제작비로는 블록버스터급인 5,000만 원이 투자됐다. 그리고 9월에 2기로 돌아오는 '가짜사나이'에는 8,000만 원의 제작비를 투입한다고 한다.

 

'가짜사나이'는 1인 미디어들의 콘텐츠라고만 생각했던 유튜브 콘텐츠가 이제 합종연횡을 통해 블록버스터 프로젝트가 가능하다는 걸 보여주는 사례다. 게다가 이렇게 인기를 끈 콘텐츠나 그 출연자들은 거꾸로 지상파나 케이블, 종편 같은 기존 방송의 러브콜을 받는 역전현상을 만들어내고 있다. '가짜'라고 이름 붙였지만 사실은 '진짜'가 되고 있는 유튜브 콘텐츠의 진화를 '가짜사나이'는 보여주고 있다.(사진:유튜브)

진짜사나이 특집이 보여준 ‘무도’의 현주소와 가야할 길

박명수 없이 이 특집이 가능했을까. MBC 예능 프로그램 <무한도전>이 바캉스라고 속여 군대체험을 한 ‘진짜사나이 특집’은 온전히 ‘박명수 특집’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였다. 사실 이 특집이 기획된 가장 큰 이유는 종영한 <일밤-진짜사나이>의 제작진들이 과거 자선경매 당시 박명수를 꼭 출연시키고 싶다는 뜻을 전했던 데서 비롯된 것일 게다. 결국 <진짜사나이>가 종영함으로써 실현되지 못했던 박명수의 군대체험은 <무한도전>의 ‘밀리터리 바캉스(?)’로 이어지게 된 것. 

'무한도전(사진출처:MBC)'

그런데 왜 다른 인물도 아니고 하필 박명수였을까. 이번 ‘진짜사나이 특집’은 어째서 당시 <진짜사나이> 제작진들이 그를 콕 집어 출연하기를 원했는지 그 이유를 명확히 보여주었다. 평상시 호통치고 짜증을 부리는 동시에 소심함을 보이는 그 캐릭터는 군대에서는 돋보일 수밖에(?) 없었다. 눈에 보이는 구멍병사로서의 웃음과 동시에 ‘아버지’의 이미지가 덧씌워진 짠함이 모두 그에게서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하필이면 분대장을 시켜 입소신고에서부터 버벅대게 만들고, 체력훈련을 할 때 홀로 속옷을 챙겨 입지 않아 맨살을 드러내며 구보를 하고, 저녁 점호 시간에 심지어 교관의 헛웃음이 나오게 만드는 실수를 연발하는 박명수의 존재는 ‘진짜사나이 특집’에서 거의 유일한 웃음의 진원지였다. 

물론 실제 군대에서 이렇게 잘 적응을 해내지 못하는 모습은 본인은 물론이고 동료들까지 힘겹게 만드는 일일 수 있다. 하지만 적어도 예능 프로그램에서는 잘 해내는 인물보다 이렇게 잘 못하는 인물이 더 주목될 수밖에 없다. 너무 힘들어 무언가를 할 때마다 “더 이상은 무리”라고 토로하면서도 번번이 상황이 되면 끝까지 그걸 해내는 과정 속에서 조금씩 분대장으로서의 자질(?)을 슬쩍 보이는 면들은 이번 특집의 주인공으로서 박명수가 설 수밖에 없는 이유였다. 

상대적으로 늘 어떤 특집에서든 중심 역할을 자처했던 유재석은 이번 ‘진짜사나이’ 특집에서는 별다른 주목을 이끌어내지 못했다. 그저 FM병사로서 뭐든 척척 잘 해내는 모습을 보여줬지만 그것이 예능 프로그램으로서는 그다지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주지는 못했다. 그나마 자신도 힘들면서 타인을 도와주는 그 캐릭터는 양세형이 가져갔다. ‘팅커벨’이 되어 “걱정마세요. 제가 다 도와드릴께요.”라고 말하고 어려운 일들을 척척 도와주는 양세형은 그래서 이번 특집에서 박명수 그 다음으로 주목되는 캐릭터가 되었다. 

어쨌든 그렇게 ‘진짜사나이 특집’은 잘 마무리되었지만, 이로써 <무한도전>은 한번쯤 생각할거리가 생겼다. 박명수가 어째서 군대 체험이라는 미션 속에 유재석보다 더 주목 되었던가 하는 점이 애초에 <무한도전> 초창기 시절 시청자들이 어째서 이 ‘대한민국 평균 이하’ 캐릭터에 매료되었는가를 그대로 환기시키기 때문이다. 

조금 부족하고 어떤 미션 앞에서도 잘 적응하지 못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준 당대의 <무한도전> 출연자들에게 시청자들이 기꺼이 박수를 치고 주목해주었던 건 아마도 이번 ‘진짜사나이 특집’에서 유독 박명수에게 시청자들이 주목한 이유와 그리 다르지 않을 것이다. 

무려 11년의 세월을 거치며 <무한도전>의 출연자들은 이제 웬만한 미션들은 그리 당황하지 않고 척척 해내는 ‘평균 이상’의 존재들이 되었다. 그건 어쩔 수 없는 과정의 결과이지만 그만큼 프로그램은 더 힘겨워졌다. 그렇다고 점점 더 강한 미션 속으로 이들을 투입시킬 수도 없는 일이다. 

하지만 이들이 익숙하지 않은 낯선 미션들을 찾아내는 노력은 가끔씩 이어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 그것이 ‘평균 이상’의 이 존재들을 다시 ‘평균 이하’의 위치로 데려다 줄 것이고, 그로인해 다시금 주목될 수 있게 될 것이니 말이다. 이번 ‘진짜사나이 특집’에서 박명수가 돋보였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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