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능 출연이 대선주자 이미지에 미치는 영향

집사부일체

정치인들에게 대중들이 카리스마가 아닌 친숙한 이미지를 요구하기 시작하면서, 대선주자들의 예능 출연은 이제 하나의 통과의례처럼 자리하고 있는 형국이다. 과연 이러한 흐름은 대선주자의 당락에 어느 정도의 영향을 미칠까.

 

‘집사부일체’가 연 대선주자들의 예능행

SBS <집사부일체>는 ‘대선주자 빅3 특집’을 마련해 윤석열 전 총장, 이재명 지사 그리고 이낙연 전 대표를 ‘사부’로 모셨다. 물론 최근 들어 뒷심을 발휘하고 있는 홍준표 의원이 빠졌지만(그는 그래서 TV조선 <와카남>에 출연했다) 현 대선 경쟁의 유력한 인물들을 섭외해 그들의 정치인으로서만이 아닌 일상적인 모습을 보여주겠다는 기획의도다. 시청자들로서는 관심이 갈 수밖에 없는 기획이 아닐 수 없다. 내년 치러질 대선 후보들이 어떤 사람인가를 조금이나마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로 보여서다. 이런 호기심과 기대감은 <집사부일체>의 급등한 시청률에 그대로 반영됐다. 3.6%(닐슨 코리아)였던 시청률은 7.4%(윤석열 편), 9%(이재명 편)로 훌쩍 뛰었다. 

 

워낙 네거티브 공방이 치열해지고 있는 현 시점이라 예능 프로그램이라 해도 어디까지 질문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이 있었을 듯싶다. <집사부일체>의 선택은 그 각각의 후보들에게 이익이 될 만한 옷을 입혀주는 것이었다. 윤석열 전 총장은 그간의 행적으로 인해 다소 날카롭고 권위적이라는 이미지가 강했는데, 그래서인지 <집사부일체>는 그의 친근한 이미지를 강조했다. 자택으로 초대해 김치찌개와 계란말이를 직접 요리해 나눠먹고, “그냥 형이라고 해”라고 했던 장면이 인상 깊게 남았다. 또 사법고시 9수를 했던 일화를 통해 낙천적인 성격을 강조했다. 물론 대선주자로서 유권자들에게 자신만의 정책이나 생각을 제대로 들려주는 시간은 상대적으로 적었지만, 윤석열 전 총장의 입장에서는 예능을 통해 얻어갈 수 있는 ‘친근한 이미지’를 최대한 드러냈던 건 사실이다. 

 

이재명 지사도 역시 친근한 이미지를 강조했지만 그가 <집사부일체>로 얻어가려는 건 유독 많았던 그와 관련된 구설과 이슈들을 오히려 풀어내보겠다는 거였다. 사이다 발언으로 정평이 난 이재명 지사는 그래서 친형 강제 입원, 형수 욕설 논란은 물론이고, 김부선 스캔들에 대한 해명에도 거침이 없었다. ‘욕설 논란’에 대해서는 형님이 자신을 진짜 간첩으로 믿고 있었고 어머니까지 협박하는 상황이라 욕을 했다고 선선히 인정하면서 이제는 화해하고 싶다는 뜻을 전했고, ‘김부선 스캔들’에 대해서는 “몸에 점이 없는 것이 부모님에게 물려받은 훌륭한 재산”이라는 말로 신체 특정부위에 점이 있다며 ‘내연관계’를 주장한 김부선의 주장을 부인했다. 이재명 지사는 예능이 허용하는 ‘유머’까지 잘 활용해 논란이라는 위기를 오히려 해명할 수 있는 기회로 삼았다. 

 

대선 홍보영상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정치인들의 예능행

대선에 미디어를 통해 비춰지는 이미지가 중요하게 작용하기 시작한 건 2000년대 초반부터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2002년 대선 홍보영상에서 고 노무현 후보가 ‘상록수’의 첫 구절을 통기타를 치며 부르는 장면이 아닐까 싶다. 대부분 정책 중심으로 만들어지던 홍보영상이 감성적인 이미지로 바뀌며 큰 반향을 일으켰던 사례다. 물론 이런 이미지 때문만은 아니었지만 당시 노무현 후보가 대쪽 이미지를 가졌던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와 박빙의 대결을 벌여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대선 후보의 미디어 이미지 전략은 중요하게 받아들여지기 시작했다. 

 

그 다음 대선이었던 2007년에도 한나라당의 이명박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는데 있어 이른바 ‘욕쟁이 할머니 국밥집’ 홍보영상은 큰 힘을 발휘했다. 훗날 그 할머니는 사실 연기자였다는 게 밝혀졌지만 이 국밥집 홍보영상은 이명박 후보에게 친 서민 이미지와 더불어 경제대통령이라는 슬로건을 국민들에게 각인시켰다. 하지만 후에 <MB의 추억> 같은 다큐멘터리 영화가 상영되면서 거짓 이미지 논란이 생겼고, 이미지 정치가 갖는 문제들이 부각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2012년 대선에는 당시 유력 대선주자였던 박근혜, 문재인 후보가 차례로 <힐링캠프>에 출연했다. 박근혜 후보는 국밥집 토크부터 썰렁 개그에 폭탄주 제조법까지 이야기하며 친근함을 드러냈고, 문재인 후보는 아내와 동반 출연해 부부애를 과시하는가 하면 특전사 시절의 식스팩 사진 공개는 물론이고 격파 실력까지 선보이며 인간미를 과시했다. 물론 이 때는 이미 예능 출연을 통한 소탈한 이미지를 강조하는 것이 정치인들에게는 일상적인 일이 되고 있을 때였다. 2013년부터 방영됐던 JTBC <썰전>은 일찌감치 시사, 정치가 예능과 어떻게 경계를 넘나들 수 있는가를 보여줬고, 2017년 대선에서는 당시 유력주자였던 유승민, 문재인, 안철수, 안희정 등이 출연했다. 그만큼 이제 정치와 예능은 일상적으로 섞이기 시작했고 이 흐름은 정치인들의 유튜브 개인방송 러시로도 이어졌다. 

 

정치인의 친근한 이미지? 부캐일 뿐

그렇다면 현재 정치인들이 방송이나 홍보 영상을 통해 부각시키려는 친근한 이미지들에 대해 대중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이번 <집사부일체>에 나오는 반응들을 보면 과거만큼 정치인들의 예능 이미지를 무게감 있게 받아들이지는 않는 것으로 보인다. 그것이 포장된 ‘거짓 이미지’라고 생각하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그 이미지가 그들의 정치인으로서의 행보와 밀접한 연관관계를 갖는다고도 생각하지 않는 것. 즉 예능의 이미지와 정치인으로서의 행보를 분리해서 바라보는 시선들이 생기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 변화는 정치가 예능 같은 방송과 그간 지속적으로 밀월관계를 해옴으로써 지금은 거기서 보이는 서민적인 이미지의 효용이 과거만큼 크지 않기 때문이다. 여러 차례 대선을 겪으며 그 때마다 나왔던 ‘친서민적 이미지’가 실제 정치에서의 모습과는 사뭇 달랐다는 걸 경험하면서 갖게 된 ‘무덤덤함’이다. 

 

여기에는 또한 최근 본캐와 부캐를 나누어 보는 대중들의 달라진 시선도 작용하고 있다. 일상에서의 친근한 부캐가 정치인으로서의 본캐와는 다를 수 있다는 것. 그래서 예능에 출연한 대선주자들의 면면을 그저 저들의 부캐를 발견하는 재미 정도로 볼뿐, 본캐와 혼동하지는 않게 됐다. 결국 이러한 시선의 변화 속에서 대선주자들은 정책과 정치철학으로서 대중들의 선택받아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됐다. 예능 출연은 일종의 대선주자들이 선 넘는 네거티브전으로 지친 국민들에게 보상하는 일종의 ‘서비스’라고나 할까. 적어도 한번쯤 웃을 수 있게 해준다는 것만으로도.(글:시사저널, 사진:SBS)

이승기, 예능·연기·MC 만능 연예인으로 새 전성기 맞아

 

최근 들어 이승기의 활약이 여러 분야에서 주목받고 있다. 가장 도드라지는 건 역시 tvN 수목드라마 <마우스>에서의 활약이다. 바른 청년이자 약자들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순경이었지만, 사이코패스의 뇌가 이식되면서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 정바름이라는 인물 역할이다. <마우스>는 궁극적으로 사이코패스는 탄생하는가 아니면 만들어지는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작품으로 결국 이 정바름의 어떤 선택이 작품의 메시지를 드러내는 중요한 열쇠가 된다.

 

사실 <마우스>로서는 정바름 역할에 이승기를 캐스팅한 것 자체가 신의 한수라고 볼 수 있다. 늘 바른 청년의 이미지를 가진 이승기가 아닌가. 그래서 <마우스>에서는 이 티 없이 순수해 보이는 인물이 순간순간 변화하는 모습을 통해 극의 긴장감을 끌어올리고 있다. 뇌수술을 받고 깨어난 정바름이 병실 한 편에 놓여진 새장 속에서 새를 꺼내 목을 꺾어 창밖으로 던지는 반전 장면은 그래서 시청자들을 소름 돋게 만든 바 있다.

 

항상 선한 역할만을 주로 해왔던 이승기가 돌변했을 때 오히려 더 큰 반전을 줄 수 있다는 걸 먼저 보여준 건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범인은 바로 너>였다. 시즌2에서 '꽃의 살인마'로 등장하면서 그 반전 매력이 가능하다는 걸 확인시켜 줬기 때문이다. 물론 그건 예능 버전이었지만, <마우스>는 그것이 드라마에서도 효과를 낸다는 걸 보여줬다. 이제 선한 역할만이 아닌 악역까지 연기의 스펙트럼을 넓혀가는 이승기의 배우로서의 가능성을 기대하게 만드는 대목이다.

 

과거 이승기는 가수로 데뷔해 '내 여자라니까'로 주목받았고, KBS <1박2일>과 SBS <찬란한 유산>까지 큰 성공을 거두며 이른바 '트리플 크라운(가수, 배우, 예능)'으로 불린 바 있다. 물론 그 후에도 꾸준히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을 이어왔지만, 그 이상의 어떤 성취들이 눈에 띄지는 못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이승기의 존재감이 새롭게 다양한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마우스>에서 보여준 연기 영역의 확장은 물론이고, JTBC <싱어게인> 같은 오디션 프로그램에서도 MC로서 확실한 존재감을 보여준 바 있다.

 

<싱어게인>에서 이승기가 중요한 역할을 한 건, 이 프로그램의 정체성과도 관련이 있다. 이 프로그램은 오디션 형식을 가져왔지만 대결과 경쟁보다는 서로가 서로를 지지하며 응원함으로써 저마다 최고의 무대를 만들어내는 것에 초점을 맞췄다. 이승기는 출연자들의 긴장을 풀어주기 위해 규현과 함께 농담을 주고받기도 하고, 출연자들의 노래에 맞춰 춤을 추기도 하며 백스테이지에서는 그들에게 다가가 진심어린 상찬을 해주기도 했다. 많은 출연자들이 이승기의 이런 진정성에 감동했다는 이야기를 내놓은 건 그가 얼마나 진심으로 이 프로그램에 임했는가를 말해주는 대목이다.

 

이미 <1박2일> 시절부터 예능에 남다른 재능을 보였지만 이승기는 SBS <집사부일체>, tvN <서울촌놈>, 넷플릭스 오리지널 <범인은 바로 너>, <투게더> 같은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여전한 예능감을 선보여 왔다. 그는 특유의 편안하고 기분 좋게 해주는 캐릭터이면서, 이제는 좀 더 주도적으로 상황을 만들어내고 풀어가는 베테랑적인 면모까지 갖추게 됐다. 과거 <1박2일> 시절과 비교해보면 확실히 성숙된 모습이 두드러진다.

 

<마우스>를 통한 연기자로서의 성장과, <싱어게인>으로 오디션 MC로서도 충분히 보여준 가능성 그리고 다양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보여주는 성숙해진 면모. 이것이 지금 현재 이승기의 새로운 전성기를 만들고 있는 이유가 아닐까. 과거의 트리플 크라운과 비교해보면 지금의 이승기는 확실히 성숙된 성장의 면모를 보이고 있다.(사진:tvN)

자리만 채운 주말 드라마와 예능, 방법이 없는 걸까

한 때 일요일 밤 예능 프로그램들은 시청자들을 여지없이 TV앞으로 끌어들였다. KBS <1박2일>이 잘 나가던 시절에는 무려 40%가 넘는 시청률을 기록하기도 했다. SBS <패밀리가 떴다>도 30%에 근접하는 시청률을 냈고, MBC <나는 가수다>도 20%가 넘는 시청률을 냈다. KBS <개그콘서트>는 30%가 넘는 시청률을 내며 일요일 밤 아쉬운 주말을 보내는 시청자들을 웃음 폭탄으로 달래주곤 했었다.

하지만 지금의 일요일 밤 프로그램들을 들여다보면 그저 틀어놓곤 있지만 그만한 즐거움을 주고 있는지는 미지수다. 이미 많은 시청층이 본방사수를 하지 않는다고 해도 10% 미만으로 시청률이 떨어졌고, 게다가 그만한 화제도 나오지 않는다는 건 프로그램들이 전반적으로 하향평준화되었다는 걸 말해준다.

KBS의 경우, 그래도 상대적으로 본방 시청층이 많이 남아있는 채널이지만, 그 채널을 채우는 프로그램들은 너무 오래되어 새로운 즐거움을 주기에는 힘에 벅찬 느낌이다. <1박2일>은 이제 찾아보는 프로그램이라기보다는 그나마 주말 밤에 틀어놓기에 편안해서 보는 프로그램이 되었다. 무엇보다 심각한 건 <개그콘서트>다. 5%대까지 뚝 떨어진 이 프로그램은 맨 앞부분에 ‘봉숭아학당’을 먼저 선보이는 변화(?)를 보여줬지만, 웃음의 포인트를 찾아내기 어려워 그저 향수와 추억에 더 기대는 것 같은 인상마저 주고 있다. 개그 프로그램이 웃음을 주지 못한다는 건 그 존재 자체가 의심된다는 이야기다.

SBS <런닝맨>이나 MBC <복면가왕> 역시 어느 정도의 시청층을 확보하고는 있지만 새로운 이슈를 만들어내지는 못해 전성기가 지나간 프로그램이 되어버렸다. 새로 채워진 SBS <집사부일체>는 그래도 우리 시대의 사부를 찾아간다는 콘셉트가 참신한 편이지만, MBC <궁민남편>은 갈수록 시청자들의 관심에서 멀어지고 있다.

일요일 밤에 예능으로 출사표를 던진 tvN의 경우도 크게 다르지 않다. <주말사용설명서>는 한가락씩 한다는 김숙, 라미란, 장윤주, 이세영 등이 출연해 “어머 이건 해야 해”라는 슬로건처럼 하고픈 무언가를 시도하는 걸 보여준다고 했지만 그다지 ‘해야 할 것 같지 않은’ 너무 흔하고 익숙한 이야기들만 보여주었다. 한 때 유행했던 캐릭터쇼를 반복하는 느낌이다. 시청률은 1%대로 떨어진 지 오래다.

그런가 하면 최근에는 주말드라마도 이렇다 할 도드라진 작품을 발견하기가 어려워졌다. tvN <미스터 션샤인>이 끝난 후 방영되고 있는 <나인룸>은 tvN 드라마라기보다는 자극적인 사건들을 연달아 배치해 보여주는 전형적인 MBC나 SBS 주말드라마 같은 느낌을 준다. 빠른 사건 전개와 극단적인 상황을 연결해 시청자들의 시선을 잡아끌려고 안간힘을 쓰긴 하지만, 어딘지 자극에만 집중한 듯 정신없어 보이는 면이 있다.

주말드라마의 마지막 보루라고 얘기하는 KBS 주말드라마도 최근 방영되고 있는 <하나뿐인 내편>을 보다보면 시간이 퇴행하고 있는 듯한 드라마의 이야기에 실망하게 된다. 전형적인 신파 구조에 ‘출생의 비밀’을 더해 놓은 이 드라마는 그래서 이제 KBS 주말드라마가 본격적으로 주 시청층인 장년 세대들의 향수를 채우는 쪽으로 방향을 튼 것 같은 아쉬움을 갖게 만든다.

한때는 주말이 가장 볼거리가 많았던 방송 시간대였지만 어쩌다 보니 지금의 주말 프로그램들은 너무나 뻔해지고 식상해졌다. 어떤 면으로 보면 앞으로 나가는 게 아니라 과거 잘 나갔던 시절을 애써 붙들고 회고하는 듯 보인다. 워낙 TV 본방 시청층이 점점 줄어들다 보니, 남아있는 시청층들만을 겨냥하게 되고, 그러다 보니 프로그램의 콘셉트도 옛 방식으로 퇴행하고 있다. 물론 모든 프로그램들이 그런 건 아니지만, 전반적으로 주말에 오히려 볼 게 없어졌다는 시청자들의 볼멘소리가 공감 가는 대목이다.(사진: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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