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파당’, 졸지에 왕이 됐지만 개똥이를 그리워한다는 건

 

사실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한 로맨스 사극은 이제 익숙해졌다. <성균관 스캔들>에서부터 <해를 품은 달>, <구르미 그린 달빛> 게다가 최근에는 <신입사관 구해령>까지. 이들 사극들은 구체적인 역사적 사료를 바탕으로 하지 않고 다만 조선이라는 배경만을 활용한다. 그 위에서 벌어지는 로맨스는 그래서 다분히 현대적인 관점을 담아내기 마련이다.

 

그 현대적인 관점이란 현재의 청춘들이 겪고 있는 현실과 무관하지 않다. 무언가 열심히 노력하려 해도 바뀌지 않고 공고한 어른들의 세상은 그래서 이들 조선시대 배경의 로맨스 사극이 사랑이야기를 통해 담아내려는 주요 메시지이기도 하다. 이들은 사랑하려 한다. 하지만 조선이라는 배경은 사적인 사랑의 선택을 좀체 용납하지 않는다. 신분이 다르고 정파와 얽혀 있다면 더더욱 그렇다.

 

JTBC에서 새로 시작한 월화드라마 <조선혼담공작소 꽃파당(이하 꽃파당)>도 그 궤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평범하게 살아가다 자신이 사랑하던 여인 개똥(공승연)과의 혼삿날에 궁으로 끌려와 졸지에 용상에 앉게 되는 이수(서지훈)와, 사라진 그가 혹여나 잘못되진 않았나 걱정하며 찾아다니는 개똥이. 그리고 이들의 혼사를 맡았던 조선 최고의 중매쟁이 마훈(김민재), 고영수(박지훈), 도준(변우석)의 혼담공작소 꽃파당.

 

결국 이야기는 서로의 운명이 달라 헤어지게 된 개똥이와 이수가 그 신분의 차이를 넘어서 다시 만나게 되는 것일 게다. 거기에 꽃파당이 개입하면서 생기는 사건들이 있을 테고. 아마도 이수와 개똥이 사이에 끼어들게 된 마훈과의 삼각관계가 갖는 긴장감 또한 펼쳐지지 않을까 싶다.

 

이야기는 흔한 로맨스 사극의 틀을 가져왔지만 여기 등장하는 인물들이 보여주는 면면들은 흥미로운 지점들이 있다. 이를 테면 왕이 됐지만 그 왕노릇보다 개똥이를 잊지 못해 그리워하는 이수라는 인물이 그렇다. 그가 그 자리에 오게 된 건 자신의 뜻이 아니라 왕과 세자가 죽고 비어버린 왕좌에 허수하비처럼 그를 앉혀 놓고 국정을 농단하려는 마봉덕(박호산) 같은 야심가 때문이다. 그래서 이수의 행동은 마치 신물 나는 정치보다는 개인적인 행복(사랑 같은)이 더 중요하다 여기는 지금의 청춘들의 정서를 담고 있다.

 

이것은 마봉덕을 아버지로 두고 있지만 어쩐 일인지 그 집을 뛰쳐나와 남자 매파라는 일을 하고 있는 마훈에게서도 똑같이 보이는 면면이다. 정치가 백성들을 행복하게 해주지 못하는 헬조선에서 마훈은 마치 개개인들의 사랑을 이어주는 것으로 그나마 손에 잡히는 행복이 더 중요하다 여기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가장 사적인 것이 또한 정치적이라고 했던가. 이들의 사적인 행복 추구는 그걸 가로막는 어른들의 정치적 행보 속에서 그 자체가 정치적인 행위가 되어버린다. 이수가 왕의 위치에 머문다는 건 마봉덕의 허수아비로 살아가는 걸 거부하고 저잣거리에서 만나 사랑에 빠졌던 개똥이를 찾아가는 이야기는 그래서 정치적인 선택이 될 수 있다.

 

물론 <꽃파당>이 전면에 내세우고 있는 건 로맨스 사극이 갖는 그 달달함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 달달함을 가로막는 조선 사회의 억압들이 신분제 사회가 갖는 무게감으로 드라마가 하려는 메시지를 그려낼 것으로 보인다. 현실에 치여 사랑을 하는 일조차 버거워진 지금의 청춘들이, 그 이유가 정치 같은 어른들이 해온 일련의 잘못된 선택들 때문이었다는 걸 깨닫게 되는 것. 그 각성은 그래서 지극히 사적인 사랑이야기를 정치적인 이야기로 바꿀 수도 있지 않을까.(사진:JTBC)

‘엑시트’, 한국형 블록버스터는 눈물과 웃음의 롤러코스터가 있다

 

이 영화 심상찮다. 재난과 코미디는 어딘지 어울리지 않을 듯싶지만, 의외로 웃음과 눈물의 공존이 가능하다는 걸 보여주는 영화가 바로 <엑시트>다. 그 중심에는 역시 울면서 웃기는데 이보다 잘 할 수 없는 조정석이라는 배우가 있다. 그는 영화 내내 뛰어다니고 억울해하고 두려워 떨고 심지어 울지만, 그걸 보는 관객들에게는 시종일관 웃음을 안긴다. 바로 이 눈물과 웃음이 자연스럽게 교차되는 지점이 바로 <엑시트>가 가진 가장 큰 묘미라는 걸 생각해보면 이 영화에서 조정석이 얼마나 큰 위치를 차지하는가를 실감할 수 있다.

 

유독가스로 뒤덮인 도시를 탈출한다는 그 상황은 전형적인 재난영화의 틀을 갖고 오지만, 그 속의 인물들과 그들이 만들어가는 이야기가 지극히 우리식의 공감대를 한껏 머금고 있다는 건 한편의 가족드라마 혹은 멜로드라마 같은 느낌을 준다. 게다가 영화는 재난영화가 갖고 있는 그 무거움만큼 이 상황을 살짝 비틀어 만들어내는 웃음의 지점들을 정확히 알고 있다. 그래서 관객들은 너무나 공감 가는 용남(조정석)네 가족 구성원이 쏟아내는 대사 하나에도, 이들이 칠순잔치를 하며 보이는 풍경 하나에도 웃음이 터진다.

 

하지만 그 웃음은 청년 백수로 구박받으며 살아온 용남이 재난 상황 속에서 보여주는 용기와 인간애 앞에 뭉클한 감동으로 바뀐다. 게다가 그와 함께 하는 대학동아리 후배 의주(임윤아)는 용남이 짝사랑했던 여인으로 그가 두려워 눈물까지 흘리면서도 바른 선택을 하게 만든다. 산악동아리를 하며 몸에 익은 클라이밍 기술은 유독가스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위로 오르고 또 올라야 하는 용남과 의주의 유일한 생존방법이 된다. 건물과 건물 사이를 아슬아슬한 밧줄 하나로 넘어가고, 마치 절벽을 오르듯 건물을 맨 손으로 오르는 과정은 관객들의 손에 땀을 쥐게 만든다.

 

또한 용남이라는 청춘이 보여주는 짠내와 웃음은 그가 보여주는 용기 있는 행동들로 반전을 보이며 아무 것도 하지 않아 잉여로 취급받는 이 청춘이 사실은 얼마나 많은 가능성의 존재인가를 드러내준다. 도시를 가득 채운 유독가스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위로 오르고 또 오르기 위해 상처투성이가 되는 그의 손은 그래서 마치 지금의 청춘들의 단상을 담아내는 듯한 카타르시스를 선사한다.

 

물론 <엑시트>는 저 드웨인 존슨이 출연했던 <스카이스크래퍼>식의 스펙터클과 폼나는 액션을 보여주지는 않는다. 하지만 이 친숙한 공간과 인물들과 상황들이 너무나 우리 식으로 맞춰져 있어서인지 <스카이스크래퍼>보다 더 실감나게 다가온다. <스카이스크래퍼>가 가짜 이야기 같다면 <엑시트>는 바로 우리 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듯한 현실감을 준다는 것이다. 그래서 건물 하나 넘어가는 일이나, 한 층 위로 올라가는 일 하나만으로도 <엑시트>는 <스카이스크래퍼>가 주지 못하는 흥미진진함을 만들어낸다.

 

게다가 이 긴박하고 아슬아슬한 순간들은 마치 남사당패 줄타기가 그러하듯이 그 긴박한 상황을 슬쩍슬쩍 무너뜨림으로써 웃음을 터트리게 만든다. 물론 조정석과 임윤아는 내내 이 긴박한 상황 속에서의 진지한 연기를 선보이지만, 그것이 웃음으로 전화된다는 점에서 기막힌 희비극의 묘미를 선사한다.

 

임윤아는 이 작품을 통해 확실한 연기 변신을 선보인다. 지금껏 가녀린 선을 통한 멜로 연기 등을 주로 보여 왔던 임윤아는 <엑시트>를 통해 액션 또한 가능하고 나아가 코미디 연기도 조정석 못지않게 해낼 수 있다는 걸 확인시켜준다. 조정석이야 이미 <질투의 화신> 같은 작품을 통해서 울면서 웃기는 연기의 정점을 보여준 바 있다. 하지만 임윤아에게는 <엑시트>가 자신의 연기 스펙트럼을 비약적으로 넓혀준 작품으로 기억될 듯하다.

 

이번 여름 블록버스터 시장에서 <엑시트>는 분명 일을 낼 것으로 보인다. 그것은 웃을 일 없는 지금의 현실에 잠시 시원하게 웃을 수 있고, 그러면서도 어딘가 따뜻하고 훈훈한 기분을 가질 수 있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해외의 그 어떤 화려한 블록버스터보다 확실히 <엑시트>는 우리의 마음을 요동치게 한다. 거기에는 눈물과 웃음의 롤러코스터가 있으니.(사진:영화'엑시트')

‘열여덟의 순간’, 청춘의 미숙함이 풋풋함으로 다가오는 이유

 

미숙한 청춘의 아픔과 풋풋함이 느껴진다. 아마도 이건 JTBC 월화드라마 <열여덟의 순간>이 포착한 이 드라마만의 매력일 게다. 아무런 잘못도 저지르지 않았지만 자꾸만 오해를 받는 최준우(옹성우). 이전 학교에서 폭행과 절도로 강제전학을 당했다는 사실은 전학 온 학교에서도 단 하루 만에 도둑질을 했다는 누명을 쓰게 만든다.

 

실제로는 반장으로 학교 선생님들은 물론이고 학생들에게까지 완벽한 신뢰를 얻고 있는 마휘영(신승호)의 짓이라는 사실을 최준우는 알고 있지만 모른 척 한다. 하지만 최준우는 마휘영이 앞에서는 그를 도와주는 척하면서 사실은 그를 도둑으로 몰아가고 있다는 걸 알고는 그 앞에 나선다. 그러자 마휘영이 드디어 그 숨겨진 얼굴을 드러낸다. “알면 어쩔건데? 이 쓰레기 새끼야.” 그러자 최준우도 그토록 드러내지 않던 속내를 꺼내놓는다. “쓰레기는 너 아냐?”

 

<열여덟의 순간>의 이 엔딩 장면은 최준우라는 무존재감의 청춘이 자기 존재를 드디어 드러내는 순간이다. 드라마는 마휘영이라는 인물을 그저 악역으로만 세우려 하지 않았다. 그가 겪는 스트레스 또한 보여주었다. 학원에서는 공부 천재 조상훈(김도완)과 비교되고, 집에서는 모든 것에서 잘 난 형과 비교된다. 완벽하고 싶은 마휘영은 그 스트레스 때문에 아토피로 쉴 새 없이 손을 긁어댄다.

 

그런 그가 보복하듯 학원 선생의 시계를 슬쩍 쓰레기봉투에 버린 것이고, 마침 아르바이트생으로 거길 왔다가 그걸 수거해간 최준우가 범인으로 몰렸던 것이다. 마휘영이 최준우에게 “쓰레기 새끼야”라고 말한 건 그래서 어쩌면 스스로에게 말한 것인지도 모른다. 완벽하고 싶고 그래서 그런 척하지만 사실은 가식으로 가득 채워져 있는 자신에게.

 

<열여덟의 순간> 첫 회는 이렇게 미숙해서 아픈 청춘들을 전면에 끄집어낸다. 최준우는 유수빈(김향기)이 안타까워했던 것처럼 ‘무존재감’으로 살아가는 청춘이다. 그 ‘무존재감’을 잘 표상하는 건 그의 이름표다. 그는 최준우라는 이름을 갖고 있지만 전학 와 마휘영의 부탁으로 얻게 된 중고 교복의 이태호라는 이름을 달고 다닌다.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으로 일하면서 붙은 박영배라는 이름으로도 불린다. 그러면서도 그는 자신의 이름이 최준우라고 애써 알리려 하지 않는다.

 

무엇이 그를 이렇게 만들었을까? 그런 그에게 유수빈이 다가와 이태호라는 이름표를 떼내 주며 말한다. “전학생. 너 귀신? 무슨 애가 색깔이 없어. 분하지 않아? 존재감 없이 사는 거.” 대신 종이를 붙여 최준우라는 이름을 써준 후 돌아서며 유수빈은 한 마디를 콕 집어낸다. “잘 가라 전학생. 잘 살아. 계속 그렇게 존재감 없이.”

 

한편 마휘영은 최준우와는 정반대로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려 안간힘을 쓴다. 그래서 자신을 가장하기도 한다. 아마도 마휘영이 최준우를 “쓰레기”라고 부른 건 그런 가장된 모습을 알아차렸다는 사실 때문일 게다. 둘은 그래서 부딪치고 갈등하며 상처를 줄 것이지만 어쩌면 서로의 부족한 면들을 채워줄 수 있는 그런 존재들이 될 수도 있다.

 

무엇보다 무존재감으로 어딘가 아픔을 갖고 있는 듯한 최준우라는 인물이 주는 몰입감이 적지 않다. 그 모습은 어딘지 매일 입시와 경쟁 사회 속에서 버텨내고 있는 청춘들의 ‘침묵’을 보는 듯해서다. 소소한 청춘드라마처럼 보이지만, 섬세한 감정들이 교차하는 <열여덟의 순간>에서 젊은 날의 미숙했지만 풋풋했던 시절을 떠올려보게 되는 건 그 무존재감에 대한 안타까움과 공감이 함께 하기 때문일 게다.(사진:JTBC)

“네 인생이 애틋했으면”...‘눈이 부시게’가 노년과 청춘을 담는 방식

저 스스로 목숨을 저버린 샤넬 할머니(정영숙)는 절망적이었을 그 때 기다리고 있는 준하(남주혁)를 보고는 애써 환하게 웃음 지었다. 그리고 거짓말을 했다. 손주가 많이 컸고 그래서 자기 이름을 스스로 얘기했다며 대견해했고, 집까지 팔아 미국에 갔던 아들이 사업 실패에 돌아와 한국에서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는 걸 죄송해하고 있다고 했다. 늘 무표정이었던 샤넬 할머니가 그토록 웃으며 준하 앞에서 거짓말을 했던 건 왜였을까. 


JTBC 월화드라마 <눈이 부시게>가 담아낸 샤넬 할머니의 마지막 순간은 제목처럼 ‘눈이 부셨다’. 할머니는 끝까지 자신을 버린 것이나 다름없는 아들과 손자를 챙겼고, 무엇보다 그 빈자리를 채워줬던 준하를 아들처럼 아꼈다. 그래서 여행을 떠난다는 준하를 굳이 공항까지 배웅해주겠다고 했던 것. 어쩌면 샤넬 할머니와 준하는 그렇게 아무도 지지할 데 없어 절망적으로 서로를 끌어안았을 지도 모를 일이었다.

미국에 있다고 여긴 아들에게 편지를 부쳐달라고 부탁했던 샤넬 할머니의 그 마음을 준하는 아들 대신 답장을 써주는 것으로 채워주려 했다. 아무도 없이 버려진다는 그 막막함을 누구보다 잘 아는 준하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유일하게 의지하고 있던 두 사람인데, 샤넬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그 말은 준하에게는 얼마나 큰 상실감으로 다가왔을까. 마지막 순간에 환하게 웃고 밝게 얘기했던 할머니의 모습이 아프게도 그의 눈을 찌르는 이유다. 

보험수령인이 준하로 되어 있었다는 건 샤넬 할머니가 그를 진짜 아들처럼 여겼다는 걸 잘 말해주는 대목이다. 그러니 그 마지막 순간 아프지 말라며 공항에서 손을 흔들어주던 모습은 어머니가 아들을 마지막으로 보내는 모습이나 다름없었다. 이런 두 사람의 관계를 전혀 알 수 없는 이들이 보험수령인이 된 준하를 오히려 용의자로 몰았지만 그것까지도 배려해 편지를 남긴 샤넬 할머니에 준하는 더 멍해질 수밖에 없었다. ‘우리가 또 만난다면 그때는 내가 꼭 이준하씨 엄마로 태어날게요.’

<눈이 부시게>는 어쩌면 뉴스의 한 대목으로 사라져버릴 어느 한 어르신의 안타까운 마지막을 온전한 한 회로 채워 넣으며 거기 담겨진 삶의 쓸쓸함을 얘기했다. 샤넬 할머니를 통해 “칠십 해가 넘게 살면서 온갖 일을 다 겪었을 텐데 결국 사진으로만 남았어”고 말하는 혜자(김혜자)는 삶의 ‘애틋함’을 깨달았다. 

“난 말야 내가 애틋해. 남들은 다 늙은 몸뚱아리 뭐 기대할 것도 후회도 의미 없는 인생이다 뭐가 안쓰럽냐 하겠지만은, 난 내가 안쓰러워 미치겠어. 너도 네가 네 인생이 애틋했으면 좋겠다.” 혜자가 자신을 빗대 위로하는 그 말에 준하는 오열하며 무너져 내린다. 너무 힘겨운 현실에 부닥쳐 갑자기 100년은 늙어버린 듯 아무런 희망도 꿈도 의욕도 없이 살아가는 준하에게 스스로를 애틋하게 여겼으면 좋겠다는 위로를 해준 것이니 말이다. 

혜자에 대해 준하는 “내 인생을 끌어안고 울어준 사람은 처음”이었다고 말했다. 자신을 괴롭게 했던 건 바로 자기 자신이었는데, 그런 자신을 끌어안고 함께 울어주었다는 것. 이것은 <눈이 부시게>가 이 애틋한 노년과 청춘을 담는 방식이다. 그 인생들을 끌어안고 함께 울어주는 것. 오랜만에 가슴 뜨거워지는 드라마를 만났다.(사진: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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