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동’, 한 발 뒤로 물러선 마동석이어서 더 좋았던 건

 

마동석은 마동석을 연기한다는 말이 있다. 또 마동석은 하나의 장르라는 얘기도 있다. 그만큼 마동석이 등장하는 작품에서 그의 존재감이 작품 전체를 장악한다는 뜻일 게다. 물론 그건 좋은 의미지만 마동석에게도 또 작품에도 반드시 좋을 수만은 없다. 결국 작품이란 여러 배우들이 골고루 보여야 그 울림이 커질 수 있고 마동석 자신도 자신이 아닌 다양한 캐릭터를 만나야 배우로서도 더 확장해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영화 <시동>은 마동석을 대단히 현명하게 활용하고 있다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보통 관객들이 ‘마동석 영화’라고 부르는 작품에는 늘 기대하는 것들이 있다. 손바닥 하나에 붕붕 날아가는 악당들의 모습이 그것이다. 물론 <시동>에도 그런 장면이 없는 건 아니다. 하지만 <시동>은 그런 요소들을 전면에 내세우진 않는다.

 

대신 이 작품에 등장하는 다른 캐릭터들, 이를테면 학교도 중퇴하고 공부보다는 돈을 벌겠다며 가출한 택일(박정민)이나 어쩌다 사채업 일에 빠져들게 된 그의 친구 상필(정해인), 만만찮은 복싱 실력으로 걸 크러시를 보여주는 경주(최성은) 또 주방장을 꿈꾸는 배달원 배구만(김경덕) 같은 인물들이 저마다의 이야기들을 입체적으로 들려준다.

 

물론 마동석이 연기하는 거석이라는 인물은 가출한 택일이 찾아가게 된 장풍반점의 주방장이지만 특별한 이야기를 하지 않아도 포스가 저절로 느껴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장풍반점을 두고 벌어지는 깡패들의 폭력 앞에 그는 전면에 좀체 나서질 않는다. 대신 거석이 초반 내내 보여주는 건 이 캐릭터가 주는 유쾌한 코미디적인 요소들이다.

 

<시동>은 그래서 이 만만찮은 포스를 숨기고 있는 거석이 언제 폭발할 것인가를 계속 기대하게 만들며 영화에 몰입시킨다. 그러면서 장풍반점에 오게 된 사람들과 그 반점을 운영하는 공사장(김종수) 그리고 택일의 친구인 상필과 택일의 엄마 정혜(염정아)가 처한 녹록찮은 현실들을 찬찬히 담아낸다.

 

코미디적 요소로 웃음을 계속 유발하지만 그 뒤에 남겨지는 짠한 현실들이 어떤 페이소스 같은 걸 그려낸다. 그것은 청춘들의 막막한 삶이고 또 가진 것 없는 서민들이 점점 더 밑바닥으로 빠져들 수밖에 없는 우리네 안타까운 현실이다. 그래서 웃음은 조금씩 짠한 연민과 공감으로 이어진다.

 

이른바 마동석 영화들이 이런 현실에 대한 통쾌한 주먹질로 사이다 판타지를 제공해왔다면, <시동>은 그보다는 현실적인 이야기를 선택한다. 결국 제목에 담긴 것처럼 영화는 어떻게 삶의 새로운 시동을 걸 수 있는가에 대한 단순하지만 묵직한 메시지를 전한다. 누군가가 주는 판타지를 기대하기보다는 “소중한 건 스스로의 힘으로 지켜야 한다”는 메시지.

 

마동석이 한 발 뒤로 물러나 있어서 <시동>은 훨씬 좋은 작품이 되었다. 뻔한 마동석 영화가 아니라 여러 인물들이 살아나 그 이야기를 통해 어떤 분명한 메시지를 전하는 영화가 됐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은 마동석이라는 배우에게도 새로운 시동을 걸 수 있는 계기로 작용했다고 보인다. 작품을 자신의 존재감으로 끌고 가기보다는 한 발 뒤로 물러나 작품을 살리는 배우 본연의 역할을 하게 된 것이니 말이다.(사진:영화'시동')

‘나의 나라’ 양세종, 피 흘리는 청춘의 초상 그 먹먹함

 

어째서 이 청춘들은 무언가를 얻기 위해 반드시 피를 흘려야 되는 걸까. JTBC 금토드라마 <나의 나라>를 보다 보면 피 흘리는 청춘의 초상이 눈에 밟힌다. 서휘(양세종)와 남선호(우도환)는 이 사극에서 항상 상처 가득한 모습으로 피와 눈물을 흘린다. 그 모습이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청춘들의 초상과 겹쳐져 더더욱 먹먹하게 다가온다.

 

남전(안내상)을 함정에 빠뜨리기 위해 서휘가 큰 그림을 그리고 이방원(장혁)이 가세한 거사(?)에서 서휘가 맡은 역할은 자칫 죽을 수도 있는 위험한 일이었다. 이방원을 제거하는 것처럼 꾸민 서휘는 남전이 동생 서연(조이현)을 위해 자결하라 던져 준 칼을 기꺼이 자신의 가슴에 박았다. 물론 급소를 피해 자결한 것처럼 꾸미려던 일이었지만, 서휘가 무언가를 얻기 위해 목숨을 걸어야 하는 그 상황은 짠하기 그지없었다.

 

서휘는 남전에게 칼을 받는 그 순간 알게 되었다. 자신의 아버지도 자식들을 위해 기꺼이 남전이 던진 칼을 받았다는 것을 말이다. 가진 것 없는 이들은 그래서 남전처럼 더 많은 걸 가지려는 이들에 의해 제 한 몸을 던져야 하는 삶이다.

 

피투성이의 서휘를 간호하며 눈물을 뚝뚝 흘리는 한희재(김설현)의 마음이 절절하게 느껴지게 되는 건 그 처절한 청춘의 삶을 그의 시선으로 들여다보게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서휘의 그런 온 몸을 던지는 거사가 쉽게 이뤄질 리가 없다. 죽을 위기에 몰렸던 남전은 그렇게 다시 살아 돌아온다. 그리고 서휘는 제 몸을 던져 구해내려 했던 서연이 눈앞에서 살해당하는 걸 보게 된다.

 

남선호라는 청춘 또한 기구하기 이를 데 없다. 서자라는 이유로 아버지 남전에게 인정받지 못하는 그는 심지어 서휘를 전쟁터로 보내는 모진 선택을 하면서까지 입신을 하려 한다. 정작 비정한 아버지 남전은 자신의 앞길을 막는다면 아들인 남선호까지 사지로 내모는 인물이다. 남선호는 서휘를 배신했지만, 그와 그의 여동생이 위험에 처할 때마다 구해내려 제 몸을 던진다. 아버지로부터 인정받아야 자신의 존재를 드러낼 수 있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의 소중한 것들도 버려야 하는 처지에 놓인 남선호. 그에게서도 가진 것 없는 청춘의 절망감이 느껴진다.

 

서휘와 남선호의 앞길을 전면에서 막고 있는 건 다름 아닌 남전이라는 욕망에 의해 비뚤어진 어른의 초상이다. 그는 자신이 원하는 걸 갖기 위해 누구든 이용하는 인물이다. 그는 서휘의 아버지를 이용하고는 죽게 했고, 그 아들인 서휘마저 그 길에 들어서게 했으며 결국 서휘의 여동생까지 죽게 만든다. 게다가 서자라고 해도 자신의 자식인 남선호까지 언제든 제 욕망을 위해 이용하는 인물이다.

 

<나의 나라>는 조선 초기 권력을 두고 벌어지는 피 튀기는 역사를 밑그림으로 가져왔지만 거기에 피 흘리는 청춘의 초상들을 이야기로 채워 넣었다. 그들은 남전 같은 엇나간 욕망에 휘둘리는 어른에 의해 피 흘린다. 어째서 이런 구도를 사극의 이야기 속에 상상력으로 채워넣은 걸까. 그건 어쩌면 이 사극이 담아내려는 것이 저 조선 초기의 역사가 아니라, 그 혼돈의 시기를 온몸으로 겪는 청춘들의 이야기를 통해 지금 현재의 청춘들이 겪는 절망감을 담아내려 함이 아니었을까. 서휘의 얼굴만 봐도 짠해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사진:JTBC)

‘유퀴즈’, 유재석도 한 수 배운 춘천의 재밌고 먹먹한 입담꾼들

 

사랑에 대해 제대로 한 수 배웠다. tvN 예능 <유 퀴즈 온 더 블럭>이 찾아간 춘천에서 유재석과 조세호가 우연히 만난 부부는 무려 21년 간을 함께 세차를 해왔다고 했다. 매일 같이 얼굴을 보고 있으니 어찌 다툼이 없을까. 웃으며 맨날 싸운다고 털어놓는 아내의 말에 남편은 “부부는 아침에 헤어졌다 저녁에 봐야 제일 좋아요”라고 덧붙인다. 하지만 그렇게 말해도 “아침에도 싸웠다”는 남편의 말에 “금방 풀려요”라고 말하는 아내의 말에 따뜻함이 느껴진다.

 

춘천에서 세차장을 운영하는 윤연기(59), 이순자(58) 부부. 보통 여름에 더 세차가 많을 것 같지만 오히려 겨울에 세차가 제일 많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날이 추우면 셀프세차 하시는 분들도 스스로 세차하기가 어려울 수밖에 없다. “추우니까 손 발 시린 게 제일 힘들다”는 부부의 말에 성수기인 겨울을 맞는 반가움과 힘겨움이 동시에 묻어난다.

 

하루 종일 함께 있어 매일 다툰다는 부부에게 “혼자 하고 싶을 때가 있지 않냐”고 묻는 유재석의 질문에 아내는 냉큼 그럴 때가 있다고 답한다. 하지만 남편의 얼굴은 사뭇 다르다. 그는 진지하게 “전 혼자 하고 싶을 때는 없어요. 매일 옆에 달고 있고 싶어요.”라고 말한다. 그 사랑이 묻어나는 말에 유재석의 광대는 승천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이 부부의 사랑이야기는 의외였다. 연애조차 제대로 하지 않고 단 세 번 만나 결혼했다는 것. 남편은 “꼭 사랑만 해야 사는 거 아니다”라고 말했고 아내 역시 그 말에 동조했다. 그건 아마도 사랑이 아니라는 뜻이 아니라 시쳇말로 젊은 날 청춘들이 뜨겁게 사랑하다 결혼하는 그런 사랑의 의미는 아니라는 뜻일 게다. “총각 때 삶의 회의를 많이 느꼈다”며 아내를 그 삶에서 건져준 사람이라는 남편과 “진실하고 열심히 사니까. 착하고 오로지 아이와 가정을 위해 사니까”라고 말하는 아내의 목소리에는 이미 사랑이 가득했다.

 

그런데 “다시 태어나도 결혼하겠냐”는 통상적인 유재석의 질문에 의외로 이 부부가 살아왔던 결코 쉽지 않았던 삶과 애틋한 두 사람의 사랑이 전해진다. 단박에 “안한다”고 말하는 아내와 “저는 합니다”라고 단호하게 말하는 남편. 왜 안한다고 했냐 묻는 질문에 아내는 “다시는 태어나고 싶지 않아서”라고 말했다. 대신 아내는 꽃으로 태어나고 싶다고 했다. 잠시 잠깐이라도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는 꽃으로.

 

남편에게 재차 다시 태어나고 싶냐고 묻자, 남편 역시 다시 태어나고 싶지 않다며 이렇게 말한다. “이 세상에 오고 싶지 않아요. 너무 힘들어요.” 부부가 살아왔던 삶이 얼마나 힘겨웠을까가 그 얘기에 묻어났다. 아내는 조심스럽게 남편이 어렸을 때 겪은 아픈 기억을 꺼냈다. 어머니가 재가를 하셔서 일찍 헤어졌다는 것. 그래서 요맘때 시월만 되면 우울하다고.

 

“초등학교 1학낸 땐가 2학년 절 보러 오셨었어요, 고향으로. 그 때 가시면서 거기 계시는 주소를 알려주고 가셨어요. 그 주소를 잊어버리지 않고 머리에 기억을 했다가 나중에 그 주소를 찾아갔었어요. 어머니가 재가를 하셔서 거기서 다시 살고 계시니까, 같이 융화를 못해요. 남편 분께서 아무래도 어머니하고 계속 트러블 있고 그래 가지고 제가 그냥 두 분이 나 때문에 싸우시지 말고 내가 가면은 두 분 행복하게 사시라고 울면서 떠나왔어요 강릉에서. 밤에 눈물을 흘리고 찾아가서 눈물을 흘리고 나온 데가 강릉이에요.”

 

그 어린 마음이 얼마나 찢어졌을까 절절히 느껴지는 대목이었지만 남편분의 말에 담긴 존칭에서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지금도 여전하고 그것이 미움보다 더 크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그는 그 아픔보다 ‘어머니의 밥’을 기억했다.

 

“열여섯 살 때. 한 6개월 정도 어머니의 밥을 먹어봤어요. 밥이 참 맛있어요. 진짜. 맛있어요. 눈물을 흘리면서도 먹는 밥이 되게 맛있더라고요. 처음 해주시는 밥이. 아마 평생 잊지 못할 거 같아요. 먹을 수도 없고... 느낄 수도 없고. 혹시라도 기회가 된다면 다시 어머니의 자식을 태어나서 진짜 부모 자식의 정다운 정을 느끼면서 살아보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어리광도 피워보고 효도도 해보고 싶고 여러 가지 해보고 싶은 게 많았는데 솔직히 지금도 될 수만 있다면...”

 

그 말을 들으며 옆에서 눈물을 흘리는 아내를 보니 이 부부가 얼마나 서로를 위하고 있는지가 느껴졌다. 사랑해야 사는 게 아니라고 했지만 이들은 그 어떤 것보다 큰 사랑을 하고 있었다. 어머니에게 해보지 못한 어리광을 아내에게 한다는 남편과 그것 때문에 싸우기도 한다며 웃는 아내. 사랑을 못 느껴봐서 아이들에게 어떻게 사랑을 줘야 하는지 몰라 힘들었다는 남편이지만 “우리 가족은 모두 행복하다”는 아내에게서 그 사랑이 얼마나 큰가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었다.

 

춘천에 유독 사랑꾼들이 많은 것인지 <유퀴즈 온 더 블럭>이 찾은 어느 빵집에서의 사연 역시 사랑의 위대함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서울에서 수공예 일을 하다 건물주의 일방적인 통보로 쫓겨나 춘천으로 오게 됐다는 권성기씨와 그 아내 권진미씨의 이야기가 그것이다. 시종일관 웃으며 밝은 모습을 보여준 권성기씨지만 그 사연 속에서 어찌 힘겨운 시간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인터뷰 도중 외곽에서 카페 한다는 아내에게서 걸려온 전화. 마침 퀴즈 맞혀 100만원 받으면 어떻게 할거냐고 유재석이 묻자, “결혼 10주년인데 아내에게 주고 싶다”고 남편이 말했던 참이었다. 그 말을 유재석이 아내에게 전하자 갑자기 말을 잊지 못하고 눈물 흘리는 아내. “너무 고마워서”라고 말하지만 거기에는 단지 그 10주년과 100만원에 대한 고마움만이 담긴 게 아니었다.

 

“일이 많이 힘들었는데 남편이 옆에서 다 도와주고 이해해주고 그래서 여기까지 버티고 올 수 있었던 거 같아요. 그런데 자기 거는 하나도 안하고 저한테만 다 주기만 하니까. 그게 너무 고맙고 미안하고 그러네요.” 옆에서 그 이야기를 듣던 유재석의 눈이 촉촉해졌다. 아마도 시청자들도 마찬가지였을 게다.

 

낙엽이 익어가는 가을에 춘천을 찾은 <유 퀴즈 온 더 블럭>은 청춘(靑春)이라는 부제를 달았다. 아마도 춘천이란 지명에서 청춘이 떠올랐기 때문이었을 게다. 하지만 이번 편이 보여준 건 ‘사랑’이었다. 그런데 그 사랑이 남달랐던 건 그 열렬하고 달달한 사랑이 아니라 이제 겨울을 앞둔 스산한 그 힘겨움들 앞에서 오히려 더 빛나는 사랑이었다. 스산한 가을에 찾아갔지만 거기서 느껴진 따뜻한 봄의 풍경들. 오늘도 사랑에 대해 한 수 배웠다.(사진:tvN)

‘나의 나라’, 조선건국 이야기에 청춘들의 절망이 담긴 건

 

JTBC 새 금토드라마 <나의 나라>는 조선 건국의 역사가 소재다. 이미 이 역사를 소재로 한 사극들은 넘치고 넘쳤다. KBS <용의 눈물>, <정도전>, SBS <대풍수>, <육룡이 나르샤> 등등 많은 사극들이 조선 건국의 이야기를 소재로 다뤘다.

 

이렇게 된 건 새로운 나라를 세우는 역사적 사실 자체가 드라마틱하고, 무엇보다 그 과정에 현재의 정서들이 투영되기 쉽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선을 전후로 해서 조선 건국 같은 과정을 담은 사극들이 편성되면 자연스럽게 현재의 대중들이 원하는 ‘새로운 나라’에 대한 열망을 담아낼 수 있었다.

 

<나의 나라> 역시 이 흐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또 역사적 인물로서의 이성계(김영철)와 이방원(장혁)이 등장한다. 하지만 <나의 나라>의 주인공은 이성계가 아니라 당대를 살았던 서휘(양세종), 남선호(우도환) 그리고 한희재(김설현)다. 어째서 이 청춘들이 조선 건국이라는 역사적 소용돌이 속에서 주인공으로 내세워진 걸까.

 

그것은 이들의 캐릭터 안에 그 의도가 담겨져 있다. 서휘는 고려제일검으로 불리던 서검의 아들로 남다른 무인의 자질을 갖춘 인물이지만, 팽형을 당한 아버지의 핏줄이라는 사실 때문에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위치에 처해 있다. 간질병을 가진 누이 연(조이현)을 지키기 위해 생계를 꾸리려 애쓰는 삶이 그의 일상이 되었다.

 

남선호는 이성계의 옆에서 조선을 세우는 일을 도모하는 남전(안내상)의 아들이지만 서얼출신이라는 이유로 앞길이 막혀있다. 적자인 이복 형이 사망한 후 남씨 집안의 아들 취급을 받고 있지만 가슴 가득 아버지에 대한 한을 품고 있는 인물. 무과 장원만이 그에게 유일한 기회지만 그 동아줄이 자신의 올가미가 될 거라는 걸 그는 뒤늦게 깨닫는다.

 

한희재는 기생 한씨의 딸로 이화루의 행수인 서설(장영남) 밑에서 살아간다. 기생집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정보를 모아 파는 것으로 권력행사를 하고 있는 이화루. 한희재는 기생을 거부하고 썩어빠진 고려의 적폐를 벽서에 담아 고발한다.

 

즉 서휘, 남선호, 한희재는 망해가는 여말선초의 역사적 소용돌이 속에서 새로운 나라를 희구한다. 그런데 그것은 이성계나 이방원이 꿈꾸는 그런 나라와는 다르다. 남선호가 새로운 나라를 꿈꾸는 건 지긋지긋한 서얼 팔자를 송두리째 뒤집어버리기 위함이다. 그는 “팔자의 반은 부모”지만 “나머지 반은 우리가 뒤집을 수 있다”고 말한다. 그는 곧 고려가 뒤집어질 거라고 예상하며 그 뒤집어진 고려의 중심에 설 거라는 야심을 드러낸다.

 

고려의 무능을 벽서로 써 붙이고 다니는 한희재 역시 남선호와 그리 다르지 않다. 그 역시 썩어빠진 고려를 칼로 도려내는 것이 새로운 나라를 꿈꾸는 이유다. 하지만 당장 먹고 살기 급급한 서휘는 “밥이 나라”라고 말한다. “쌀이 뒷간에서 나면 뒷간이 내 나라”라는 것. 그에게 나라에 대한 야심 따위는 없다. 다만 누이동생과 쌀 걱정 없이 살 수 있으면 나라가 누구의 손에 들어갔든 상관없다는 것이다.

 

조금씩 방향과 속내는 다르지만 이들에게는 태생적으로 앞길이 막혀 있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노력해도 출신 먼저 따지고 적자니 서얼이니 따지며 심지어 아버지가 팽형으로 자식들까지 누를 끼칠까 자결을 했지만 여전히 그 낙인을 찍고 살아야 하는 세상에서 그들이 날개를 펼 수 있는 곳은 없다. 그래서 저마다의 새로운 나라를 꿈꾼다.

 

조선 건국을 소재로 한 사극들은 많지만, <나의 나라>가 새로운 지점은 바로 이 지점이다. 세 명의 앞길이 막혀 버린 청춘들을 등장시켜 그들의 관점으로 조선 건국의 이야기를 그려가는 것. 그것은 건국이라는 거창한 서사 따위보다 당장 나의 문제가 눈앞에 더 절실해져버린 지금의 청춘들의 현실을 담아낸다. 다 아는 뻔한 역사지만 이들의 행보가 몰입감을 주는 이유다.(사진:JTBC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