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사나이>의 가치, 군대와 일반인의 소통에 있다

 

지극히 당연하게도 <진짜사나이>는 진짜가 아니다. 그리고 이것은 대중들도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들은 이미 군대를 다녀왔거나 아직 군대에 가보지 않았던 사나이들이고(심지어 외국인도 있다) 군부대에서 일반사병들과 실제로 일주일씩 머물며 병영을 체험한다. 방송은 그 체험을 포착해 예능적으로 보여주는 것이지 진짜 날 것의 군대를 가감 없이 보여주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가능하지도 않고, 가능해서도 안 된다. 군 기밀이라도 유출된다면 큰 일이지 않은가.

 

'진짜사나이(사진출처:MBC)'

<진짜사나이>의 내무반은 그래서 특별히 방송을 위해 마련된 것이다. 김수로와 샘 해밍턴, 류수영, 서경석, 손진영, 그리고 장혁과 박형식이 일반사병들과 함께 일주일 간 함께 지내기 위해서는 그렇게 특별한 내무반이 필요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거기서 함께 일주일을 지내는 일반사병들도 선별된 병사들일 수밖에 없다. 이렇게 특별하게 마련되고 통제되지 않는다면, 방송은 그 자체로 언제 터질 지 모르는 사고를 미연에 예방하기가 어려워진다.

 

하지만 출연자들이 진짜 군인이 아니고, 내무반이 실제 내무반이 아니며, 일반사병들도 선별된 병사라고 해서 이것이 전부 가짜라고 말할 수는 없다. 그들이 함께 유격훈련을 뛰면서 헬기 레펠을 하고 화생방 훈련을 하거나 행군을 하면서 흘린 땀과 눈물을 어찌 가짜라 말할 수 있겠는가. 다만 진짜 군인들과는 다소 다른 체험일 수 있다는 것일 뿐, 일반인들에게 그것은 짧게나마 군대를 느낄 수 있는 소중한 진짜 체험일 것이다. 군 소재 예능을 하기 위해 연예인이 실제로 군대를 갈 수는 없는 노릇이 아닌가.

 

이것은 <진짜사나이>가 예능 프로그램으로서 할 수 있는 최대치다. 그 이상을 넘어가면 그것은 예능이 아니라 다큐가 되어버린다. 그리고 그 다큐는(실제로는 르뽀에 가깝겠지만) 아마도 비방용이 더 많을 수밖에 없을 게다. 군 기밀에 가까운 장면들도 많을 테고, 때로는 군대의 내밀한 사병들 간의 마찰과 충돌도 적지 않을 게다. 그것을 방송으로 다 내보내다보면 그것은 리얼리티를 빙자한 막장 방송이 될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진짜사나이>가 보여주려는 것은 도대체 뭘까. <진짜사나이>는 예능이라는 본분에 맞게 적절한 선까지의 ‘군대 체험’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 체험에 들어간 연예인들의 소임은 자신이 진짜 군인임을 가장하는 것이 아니라, 군인처럼 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겨운 일이며 때로는 그 와중에도 어떤 보람과 가슴 뭉클함을 느끼게 하는 일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들은 애초부터 진짜 군인일 수는 없다. 일반인으로서 군대 체험을 하는 것일 뿐.

 

<진짜사나이>의 방송 프로그램적인 가치는 바로 이 일반인과 사병들이 한 막사에 들어가 일주일을 함께 생활하며 소통하는 과정에서 생긴다. 군인과 일반인들을 한 곳에 넣고 벌어지는 화학작용을 관찰하는 과정에서 우리가 발견하는 것은 너무 다른 존재처럼 여기며 심지어 군바리라고 비아냥대던 그들이 사실은 우리의 동생들이고 아들들이며 오빠들이라는 사실이다. <진짜사나이>를 통해서 군대는 그래서 좀 더 우리에게 가까운 곳이 된다.

 

군대가 비리나 사건사고가 비일비재하게 터지는 곳으로 인식되는 이유는 그것이 너무 폐쇄적인 집단으로서만 유지되어 왔기 때문이다. 모두가 가기 싫은 곳이지만 의무이기 때문에 억지로 가야하는 곳. 그래서 간 사람은 마치 다른 세계로 간 듯이 치부하며 그 속에서 암암리에 벌어지는 일들도 다른 세계이기 때문에 그저 수긍하던 그런 곳이 군대가 아니었던가. 물론 군 당국이 개입하기 때문에 좋은 면만을 끄집어내고 그것이 전부인 양 호도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믿어줄 만큼 대중들은 바보가 아니다.

 

국가 안보와 밀접한 군 기밀이 아니라면 이제는 군대도 좀 더 개방적일 필요가 있다. 그것을 위한 첫 발은 군대를 좀 더 일반인들에게 친숙한 곳으로 인식시키는 일이다. 이것이 <진짜사나이>가 가진 목적이며 의도이고 가치다. 따라서 <진짜사나이>는 실제 현실을 보여주는 것은 아니지만, 본래 바람직한 진짜 군인의 위상과 이미지를 찾아주는 프로그램인 것만은 분명하다. 만일 이 프로그램이 대중들에게 군대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를 바꿔주고, 그래서 대중들이 좀 더 군대에 관심을 갖게 되며 그로 인해 군대 문화에도 어떤 긍정적인 변화가 생길 수 있다면 그만큼 의미 있는 일이 있을까.

<정법> 논란의 최대 피해자는 김병만이다

 

공든 탑도 무너진다. 심지어 땀으로 차곡 차곡 쌓아놓은 탑이라고 할지라도. <정글의 법칙>의 계속되는 논란과 그로 인해 눈물 흘리고 있는 김병만을 보며 드는 생각이다. 김병만은 과연 무슨 죄를 저질렀던 것일까. 우리에게 진짜 ‘달인’으로서 개그를 훌쩍 뛰어 넘는 그 땀과 노력에 박수를 치게 만들었던 그였다.

 

'정글의 법칙'(사진출처:SBS)

또 정글에서 나무를 타고 올라가 바나나를 따 먹고, 나무를 해서 잠자리를 마련하거나 배를 띄우고, 통발로 잡은 물고기로 라면 스프 넣은 어죽을 해서 멤버들과 나눠 먹었던 그였다. 콩가 개미에 물려 온 몸에 두드러기가 나면서도 촬영을 강행하려 했던 그가 아니었던가. 그런데 그렇게 하나 하나 땀으로 세워놓은 자기만의 세계가 한 순간에 거짓으로 매도당하게 되는 데는 그다지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김병만에게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졌던 것일까.

 

한 매체가 무슨 대단한 일이나 되는 양 폭로한 것처럼, <정글의 법칙>에 등장했던 많은 장소들은 관광 상품으로도 존재한다. 사실 그 어느 오지라고 하더라도 관광 상품이 존재하지 않는 곳은 없다. 히말라야도 그렇고 사하라 사막도 그러하며 툰드라 지대라고 그렇다. 이것은 전 지구적인 상황이다. 자본이 지배하는 세상에 상품 아닌 것이 없는 것처럼.

 

다만 관광 상품으로 가는 것과 제대로 체험하기 위해 낯선 길을 가는 것이 다를 뿐이다. 실제로 관광 상품이 있는 루트라고 하더라도 그 길을 처음 가는 이들이 스스로 겪게 한다면 그것은 또 다를 수 있다. 사전에 그 길이 어떤 것이든 가보지 않은 김병만으로서는 그 낯설고 뭐든 개척해가야 할 길이 진짜 힘겨운 길이었을 게다.

 

‘관광 상품’이라는 표현은 그래서 너무 포괄적이며 자극적이다. 마치 <정글의 법칙>이 지금껏 지나온 길들이 그저 돈 내면 누구나 할 수 있는(그것도 관광이니 즐길 수 있다는 뉘앙스가 있다) 것처럼 치부되기 때문이다. 오지를 체험하는 여행과 도시 여행은 다르고, 군대 체험과 시골 체험도 다를 수밖에 없다.

 

또 그 여행을 어떤 목적으로 어떻게 꾸리고 계획하느냐에 따라서도 다 다를 수밖에 없다. 이것을 그저 ‘관광 상품’이라는 표현 하나로 묶어버리는 것은 그래서 너무나 의도적이고 자극적인 행위다. 특히 김병만이 영상에서 보여줬던 때로는 피가 나고 때로는 목숨에 위협을 느끼는 위험천만했던 상황들이 모두 조작이며 ‘관광 상품’ 체험이라고 치부하는 것은 너무 과한 일이다.

 

김병만은 주어진 상황 속에서 열심히 한 죄밖에는 없다. 죄가 있다면 프로그램의 제작진들이 100% 리얼을 강조했다는 것일 게다. 아무리 수사적인 의미라고 하더라도 김병만이 말한 것처럼 카메라가 돌아가는 데서 100% 리얼이란 있을 수 없다.

 

사실 이것은 수많은 리얼을 표방한 프로그램들이 리얼리티 논란을 겪는 이유이기도 하다. 논란은 그것이 100% 리얼이 아니라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굳이 100% 리얼이라고 강조하는데서 생기는 것이다. 제작진들은 리얼을 강조함으로써 영상의 실감과 자극을 높이려는 목적이지만 이것은 때론 부메랑처럼 돌아와 리얼리티 논란으로 불거지곤 한다.

 

리얼리티 서바이벌 프로그램의 대명사처럼 불리는 베어 그릴스의 <인간과 자연의 대결>도 리얼리티 논란을 겪은 적이 있고 실제로 일부 장면에서는 재연을 하기도 한다. 이것은 프로그램이 방송되기 전에 이미 ‘생존기술을 보여주기 위해 재연된 장면도 일부 있습니다’ 같은 자막으로 설명되어 있다.

 

당연한 일이다. 만일 이런 어느 정도의 연출이 없이 모든 걸 말 그대로의 리얼로 찍는다면 그것은 안전성의 문제를 넘어서 인간을 시청률을 위해 사지로 몰아넣는다는 윤리적인 문제를 낳을 수 있다. 게다가 그것은 방송을 보는 시청자들에게도 그 실감 그대로를 전달하기가 어렵다. 효과적인 스토리텔링에서도 떨어진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흔히들 이렇게 묻는다. 100% 리얼이 아닌데 왜 정글에 가는 걸까. 이 질문은 그 질문 자체가 잘못 되었다. 이 프로그램의 목적은 리얼 자체가 아니라 다른 데 있기 때문이다. <인간과 자연의 대결>은 사전 자막 고지에 들어 있는 것처럼 시청자들에게 생존기술을 알려주는 것이 목적이다. 따라서 그 목적에 부합하고 효과적이라면 재연도 가능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대중들은 이 목적을 보지 않고 리얼이 주는 자극을 먼저 추구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다 보니 본말이 전도되는 상황이 연출되곤 한다.

 

<정글의 법칙>의 목적도 리얼 그 자체가 아니다. <정글의 법칙>은 도시를 벗어나 정글이라는 상황 속에서 생존을 넘어선 공존의 의미를 찾아보는 목적을 갖고 있다. 원주민과의 만남은 그들이 문명과 이미 접촉한(대부분이 그럴 것이지만) 이들이라고 해도 그대로 남아있는 풍습들을 통해 한 인간으로서 어떤 공감하고 공존할 수 있는 부분을 찾아내는 것에 더 의미가 있었을 게다. 이 의미를 보지 못하면 결국 자극만 남게 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리얼 공방 속에는 자극에 대한 제작진과 시청자 사이에 놓여있는 모종의 약속이 깨진 것에 대한 허탈감이 들어있기 마련이다.

 

<정글의 법칙>의 가장 큰 잘못은 연출이 가능하고 때로는 필요할 수 있다는 것을 프로그램을 통해 사전 고지하지 않았던 것이다. 예능 프로그램이 제 아무리 다큐와의 접목을 추구했다고 해도 결국은 예능 프로그램의 틀을 벗어날 수 없고, 예능은 어떤 식으로든 특유의 스토리텔링을 추구할 수밖에 없다. 자막은 상황을 좀 더 극대화시키고 편집은 아무런 의미 없어 보였던 행위들을 의미 있게 만들어낼 수 있다. 이것은 예능이 아니라 다큐에서도 마찬가지다. 하물며 재미를 추구하는 예능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매번 리얼리티 논란이 나올 때마다 먼저 드는 느낌은 달을 보지 않고 그걸 가리키는 손가락을 보고 있다는 안타까움이다. 리얼리티냐 아니냐는 자극의 틀은, 결국 제작진으로 하여금 100% 리얼처럼 보이려는 비뚤어진 욕망을 만들어내고, 시청자로 하여금 그 욕망만을 소비하게 만든다. 리얼리티 논란 속에서 <정글의 법칙>이 가졌던 본래의 좋은 기획 의도는 점점 잊혀지고 있다.

 

무엇보다 이번 논란으로 의도치 않은 피해를 보게 된 건 바로 김병만이라는 사실이다. 제작진이 사전에 준비해놓은 정글 속이라고 해도 김병만이 그 속에서 그 누구보다 열심히 뛰었던 것만은 사실이다. 이것은 제아무리 편집되고 연출된 영상이라고 해도 이미 대중들이 방송을 통해 무수히 봐왔던 것들이다. 결국 그렇게 찍은 영상을 요리하는데 있어서 생겨난 문제라면 그것은 제작진이 져야 할 책임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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