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데렐라 없어도 더 쫄깃한 '응답1994'의 멜로

 

멜로는 신데렐라가 있어야 된다? 적어도 <응답하라 1994>에는 해당되지 않는 얘기다. <상속자들> 같은 드라마가 초거대 재벌가들 사이에 들어간 신데렐라 이야기로 너무 뻔하다는 비판을 받는 반면, <응답하라 1994>는 신데렐라 없고 심지어 촌스럽게까지 보이는 멜로만으로도 오히려 시청자들의 호평을 이끌어내고 있다.

 

'응답하라1994(사진출처:tvN)'

과거 <시크릿 가든>의 현빈과 하지원이 그랬고, <최고의 사랑>의 차승원과 공효진이 그랬듯이 잘된 멜로의 연기자들이 주목받는 건 당연한 일. <응답하라 1994>의 멜로는 정우라는 배우에 대한 신드롬을 만들고 있고 또한 늘 연기력 논란에 시달리던 고아라까지 매력적인 연기자로 재탄생시켰다. 놀라운 일이 아닌가. 이처럼 촌스런 멜로의 주인공들이 이토록 주목받게 된 것은.

 

<응답하라 1994>는 <응답하라 1997>이 그랬듯이 현재의 여주인공이 과거 1994년의 어떤 인물과 결혼을 했는가를 찾는 다소 단순한 멜로를 그린다. 그런데 이 단순해 보이는 멜로가 의외로 힘을 발휘한다. 누가 누구와 만났고 어떤 일이 있었으며 그로 인해 어떻게 관계가 발전됐는가 하는 점은 마치 첫사랑의 추억담처럼 우리를 아련하게 만드는 구석이 있다.

 

친오빠처럼 다가와 점점 가슴 뛰게 만드는 오빠로 느껴지게 되는 쓰레기 정우나, 그저 하숙집을 들락거리다 점점 가까워지게 되는 칠봉이 유연석은 그 설정 자체가 신데렐라 멜로와는 다른 <응답하라 1994>의 특별한 멜로를 보여준다. 하지만 이들은 연세대라는 괜찮은 학벌의 소유자에다 직업적으로도 향후 의사가 될 의대생이거나 프로야구의 에이스가 될 야구선수다.

 

이것은 나정이(고아라)네 하숙집에 들어와 그녀와 장차 결혼할 지도 모를 다른 후보군들도 마찬가지다. 해태(손호준)는 순천시 버스회사의 막내아들이고, 빙그래(바로)의 부모는 충북 최대 규모의 양계장을 운영하며, 삼천포(김성균)는 한번 나가면 기름 값 1500은 드는 배를 가진 집의 아들이다. 물론 이들은 초재벌도 아니고, 드라마는 오히려 이 ‘잘사는 촌놈들’이라는 설정을 신데렐라 이야기로 활용하려 들지도 않는다. 유머 코드라면 모를까.

 

이들 촌놈들이 상경해 벌이는 멜로는 특별할 것 없는 당대 대학생들의 그것이다. MT를 가고 미팅을 하고 자신이 좋아하는 팬클럽 활동을 하며 하숙방에서 술내기 게임을 하는 식이다. 그러면서 조금씩 마음이 움직이게 되는 그들이 보여주는 멜로란 오지 않는 삐삐를 밤새워 기다리거나 게임을 빙자해 뽀뽀를 하거나 혹은 아플 때 꼭 껴안아주는 정도가 대부분이다. 전형적인 신데렐라 스토리에 등장하는 그 흔한 결혼 반대하는 부모들도 보이지 않고 백화점을 통째로 쇼핑하듯 과시하는 남자의 모습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응답하라 1994>의 멜로가 그 어떤 신데렐라 스토리보다 쫄깃하게 다가오는 것은 그 멜로 속에 존재하는 평등한 시선과 특유의 공감대 덕분이다. 이 드라마에는 1994년의 공기가 그대로 느껴진다. 어딘지 촌스럽고 능숙하지 못한 인물들의 행동들이 오히려 멜로를 더 아련하게 만든다는 점이다. 나정이를 좋아하면서도 표현은 친오빠처럼 무뚝뚝하게 던지는 쓰레기가 그렇고, 또 약간의 거리를 유지하면서 애써 속내를 감추려는 칠봉이가 그렇다. 해태와 조윤진(도희)의 관계를 보라. 그들은 대부분 못 잡아먹어 안달인 것처럼 보이지만 그러면서 가까워진다.

 

<응답하라 1994>가 신데렐라 이야기 없이도 더 아련한 멜로를 그려낼 수 있는 것은 1994년이라는 과거의 한 지점이 가진 힘 때문이다. 현재가 아닌 과거, 그것도 첫 사랑의 추억이 있는 그 청순의 한 기억이란 현실적인 것과 일정부분 거리가 만들어지게 마련이다. 첫 사랑의 설렘에 집안 형편이나 학벌 따위가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이것은 또한 어쩌면 1994년만 해도 지금처럼 극심한 양극화가 진행되지 않았다는 것을 말해주는 대목이기도 할 것이다. 초재벌이 남자 주인공으로 나와 거의 하녀처럼 살아가는 여자 주인공을 보호해주는 이야기는 그것이 판타지를 주기도 하지만 동시에 치졸한 느낌을 주는 것도 사실이다. 돈이 많으면 많았지 그것이 사랑도 넘을 수 없는 계급이 되는 현실, 얼마나 치졸하고 치사한가.

 

그래서 이러한 양극화로 인한 수직적인 계급구조가 잘 보이지 않는 나정이네 하숙집에서 벌어지는 수평적이고 평등한 멜로는 이 시대에는 오히려 더 큰 판타지로 다가온다. 돈이나 현실이나 집안이나 학벌과 상관없이 누군가에 대해 진정으로 가슴 설레며 하는 사랑. 어찌 보면 지극히 당연한 이 사랑은 그러나 심지어 치사한 신데렐라 스토리에마저 빠져들게 만드는 요즘 같은 세상에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사랑처럼 여겨질 때가 있다.

 

요즘 청춘들은 학비 마련하랴 취업 준비하랴 누군가를 만나 사랑에 빠지는 것조차 사치로 여겨지는 대학생활을 보내고 있다고 한다. 그러니 <응답하라 1994>가 보여주는 이 너무나 편안하고 때로는 낭만적으로 여겨지는 청춘과 사랑이 왜 판타지가 되지 않을까. 이것은 양극화를 더 첨예하게 드러내는 것으로 멜로의 극성을 만들어내는 신데렐라 스토리보다 <응답하라 1994>의 평범한 멜로가 더 강력한 이유다. 양극화 자체를 지워버린 완전한 평등의 멜로라니. 대단히 매력적이지 않은가.

'넝쿨', '뿌리', '최고' 작가의 공통점은?

 

'넝쿨째 굴러온 당신', '뿌리 깊은 나무', '최고의 사랑'. 이 세 작품을 쓴 작가들의 공통점이 뭘까. 바로 예능작가 출신이라는 점이다. '넝쿨째 굴러온 당신'을 쓴 박지은 작가는 KBS '사랑과 전쟁', '멋진 친구들', '이색극장- 두 남자이야기' 등 코미디와 시트콤을 쓴 경력이 있다. '뿌리 깊은 나무'의 김영현 작가는 '사랑의 스튜디오'와 '테마게임'을 거쳤던 예능작가 출신이다. 또 '파스타'를 쓴 서숙향 작가는 '주병진쇼'를 거쳤고, '환상의 커플', '미남이시네요', '최고의 사랑' 등 쓰기만 하면 히트를 치는 홍자매 역시 예능에서 잔뼈가 굵었던 작가들이다.

 

 

'최고의 사랑'(사진출처:MBC)

이들은 모두 예능 작가 출신이라는 공통점이 있지만, 그것 이외에도 비슷한 점들이 많다. 그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이들 작품에는 연기력 논란이 없다는 점이다. 아니 연기력 논란은커녕 오히려 작품을 거치면서 배우의 가치가 급상승한 경우가 더 많다. 한예슬이 지금껏 배우로서 활동할 수 있었던 것은 거의 홍자매가 쓴 '환상의 커플' 덕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만큼 그녀에게는 여전히 나상실 캐릭터에 대한 잔상이 강하게 남아있다. 윤제문, 송중기, 한석규, 장혁, 신세경 거의 모두가 미친 존재감이었던 '뿌리 깊은 나무'도 마찬가지고, 현재 '넝쿨째 굴러온 당신'에서 주목받는 김남주나 유준상도 마찬가지다.

 

이렇다 보니 이들 작가들과 작업하려는 배우들이 줄을 서고 있다는 후문이다. 심지어 조금 연기력이 약하다 싶은 배우들조차 그들 작품을 하고 나면 특유의 존재감을 갖게 되니 안 그럴 수가 없을 게다. 이것은 예능 출신 작가들 특유의 캐릭터에 대한 예민한 감각에서 비롯된다. 물론 드라마 작가들 역시 캐릭터에 집중하기는 마찬가지지만, 예능 출신 작가들은 캐릭터 발굴이 하나의 일상처럼 되어 있다. 누구든 카메라에 들어오면 그들의 특징에서 하나의 캐릭터를 뽑아내는 것이 그만큼 훈련이 되어 있다는 얘기다.

 

이것은 기존 드라마 제작에서 작가와 배우가 하는 방식과는 사뭇 다르다. 즉 기성 드라마 작가들은 물론 배우와 캐릭터에 대한 고민을 하는 것은 마찬가지지만 배우에게 요구하는 면이 더 많다. 작품의 캐릭터를 제대로 표현하기 위해 배우의 손동작 하나 대사 토씨 하나까지 마음대로 고치지 못하게 하는 경우도 있다. 우리는 김수현 작가와 작업한 배우들의 진술을 통해 그 작업이 얼마나 어렵고 힘겨운 것인가를 익히 알고 있다.

 

하지만 예능 출신 작가들은 이와는 정반대의 작업을 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고 한다. 즉 배우가 캐스팅되면(본래 의도와 달리 다른 배우가 캐스팅되는 경우도 있다) 그 배우의 특성을 파악하고 그것을 오히려 캐릭터화 한다는 점이다. 이것은 다분히 예능의 방식이다. 특히 리얼 버라이어티쇼 같은 경우 출연자의 캐릭터화는 임의로 만들어서 주어지는 게 아니라, 본래 출연자에 내재된 개성을 끄집어내는 작업이다. 여러 모로 예능 출신 작가들의 작품에서 왜 연기력 논란이 적고, 캐릭터가 유독 눈에 띄는가를 이해할 수 있는 대목이다.

 

작가가 먼저 캐릭터를 창조하고 그것을 배우를 통해 보여주는 방식과, 배우가 가진 장점이나 개성을 작가가 자신이 만든 캐릭터와 잘 조화되게 하는 방식. 물론 어느 것이 더 좋고 어느 것이 더 효과적이라고 단언할 수는 없다. 다만 분명한 것은 이 캐릭터에 대한 새로운 접근 방식은 이들 예능에서 잔뼈가 굵어 드라마로 넘어온 작가들에게 배우들이 몰리는 분명한 이유가 되고 있다는 점이다.

 

배우가 아닌 타 분야의 연예인들의 연기 분야 진출이 가속화되고 있어서인지, 최근 들어 드라마계에서 (캐릭터를 잘 살려주는) 예능작가들에게 부쩍 러브콜을 던지고 있다고 한다. 또한 작금의 드라마들은 점점 예능적인 코미디와 상황극을 필요로 하고 있는 상황이다(진지한 드라마의 대중성은 그만큼 낮은 게 현실이다). 예능작가들은 본인이 하는 일에 비해서 대우는 낮은 편이다. 그래서 시트콤 하나만 써도 예능과는 다른 대접을 받는다고 한다. 이런 다양한 제반 상황들을 고려해본다면 앞으로 예능 출신 작가들의 드라마 작가 진출이 빈번해질 것은 쉽게 예측할 수 있는 일이 아닐까. 실제로 그 움직임은 지금도 가시화되고 있다.


사랑타령을 넘어서 세상과의 대결을 유쾌하게 그려내다

'최고의 사랑'(사진출처:MBC)

"독고진이 구애정을 정말 열심히 사랑했다는 게 욕먹고 오해받을 일이 되지 않도록 제발 지켜주십시오. 부탁드립니다." 이른바 독고진(차승원) 동영상에는 감동적이지만 씁쓸한 반전이 담겨져 있다. 대중과 언론들이 기대했던 것은 뭔가 음성적인 동영상이었겠지만, 그 속에는 죽을 것을 대비해 남겨놓은 독고진의 뜨거운 진심이 담겨 있었다. 이 장면은 '최고의 사랑'이라는 로맨틱 코미디가 그려낸 세계의 특별함이 드러나는 지점이다.

'최고의 사랑'은 기존 신데렐라 스토리를 연예계로 가져왔다. 국민배우 독고진과 비호감 연예인 구애정(공효진) 사이는 저 왕자와 신데렐라만큼의 거리가 놓여져 있다. "살아서도 고백하고 죽어서도 고백하고 독고진씨는 나를 도대체 얼마나 좋아하는 거예요?" 왕자 독고진이 신데렐라 구애정에게 살아서도 죽어서도(?) 고백하는 이야기. 이만큼 익숙하고 달달한 로맨틱 코미디가 있을까.

하지만 이 전형적인 스토리가 극단적인 호감, 비호감으로 나눠지는 연예계로 들어오면서 이 달달한 스토리는 사회성을 띄게 된다. 즉 전통적인 멜로 구도에서는 사랑하는 남녀 사이에 방해자(시어머니 같은)가 끼어들기 마련. 하지만 '최고의 사랑'의 독고진과 구애정 사이에 끼어 있는 건 대중들이다. 즉 그들이 사랑에 이르는 과정보다 더 어려운 건 그들의 사랑이 대중들의 인정을 받는 것이다. 여기에는 전통적인 멜로 구도가 갖는 사적인 사랑을 그 연예인이라는 직업적인 특성 때문에 공적인 간섭을 받는 불편한 상황이 들어가 있다.

독고진이 말끝마다 자신을 '특별한 독고진'이라고 수식하는 데는 그래서 이중적인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국민적인 사랑을 받고 있기 때문에 특별하지만, 그 특별함 때문에 사적인 사랑이 불편해지는 것. 그래서 이 로맨틱 코미디의 남녀가 먼저 '극복'해야 했던 것은 공적인 사랑에 익숙해진 그들이 사적인 사랑에 눈뜨는 과정 그 자체다. 자신은 특별하다는 이유에서 또 자신은 비호감으로 낙인찍혔다는 이유에서 보통의 사랑을 하지 못하는 지친 이 두 영혼은 차츰 서로의 '충전'이 되어주며 사랑을 이뤄간다.

이 사이에 완벽남 윤필주(윤계상)가 삼각관계를 이룬다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다. 평범한 이들이라면 당연히 선택할 이 완벽남이 TV의 짝짓기 프로그램에 나와서 프로그램 의도와 달리 자신의 진심을 드러내는 장면은 사적인 선택과 공적인(?) 선택의 충돌처럼 여겨진다. 윤필주는 사적인 진심을 드러내지만 공적인 위치에 있는 구애정은 그것을 실제로는(방송으로만 받아들인다) 받아들이지 못한다.

즉 국민배우든 비호감이든 연예인이라는 사적인 공간과 공적인 공간 사이에 위치해 있는 이들의 사랑은 (이중적인 의미로) 특별하다. 그래서 공적인 신분을 벗어나 사적으로 사랑하게 되고, 그것을 또한 공적으로도 인정받는 이 사랑은 '최고의 사랑'인 셈이다. 하지만 현실은 어떨까. 우리는 과연 '최고의 사랑'의 독고진과 구애정을 응원하는 마음으로 현실의 연예인이라는 존재들을 바라보고 있을까.

거의 '개그콘서트'를 연상시킬 정도로 발랄하고 경쾌하기 그지없는 이 로맨틱 코미디는 그래서 그 달달한 사랑과 유쾌한 유머 밑에 진중한 질문을 던지고 있는 셈이다. 우리가 웃으며 바라봤던 일반 대중들의 아무렇지도 않은 말과 글이 어떻게 한 사람을 힘겹게 만드는가를 우리 자신에게 다시 되돌리고 있으니 말이다. '최고의 사랑', 이 사랑이 특별했던 것은 오글거리는 사랑타령만이 아니라 그 바깥에 놓여진 세상과의 대결을 머리가 아닌 가슴 두근거리는 사랑을 통해 전해주었기 때문이다.


 

'최고의 사랑'(사진출처:MBC)

"세상 사람들이 정말 무서워요. 어쩌면 그렇게 나쁜 말들을 만들어가지고..." '휴먼다큐 사랑'에서 고 최진실씨의 어머니 정옥숙씨는 그렇게 말하며 진저리를 쳤다. 그 때 생각만 하면 지금도 고통을 참을 수 없다는 그녀는, 어느 날 갑자기 사채업자로 몰려버린 자신의 딸에게 끊임없이 쏟아지던 비수 같은 '나쁜 말들'을 떠올렸다. 그리고 그녀는 "연예인도 사람"이라고 말하면서 뒤에 "대중들의 사랑을 먹고 사는", 이라는 단서를 붙였다. 결국 하지 않아야 할 선택을 한 딸과 그로인해 충격을 받고 결국 그 딸을 따라간 아들(고 최진영) 앞에 망연자실한 엄마는 너무 많이 흘려 한 방울 나오지 않을 것 같은 눈물을 여전히 흘리고 있었다.

'나는 가수다'의 첫 무대에 오른 옥주현. 그 첫 무대가 방영되기 전부터 그녀는 끝없는 자질논란을 일으켰다. 그녀는 '나는 가수다'라는 무대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는 비판에, 과거 몇몇 행적들이 일으킨 비호감 이미지가 덧붙여졌다. 끝없이 쏟아지는 비난의 글들이 이어지면서 어디선가 전혀 근거 없는 루머까지 생겨났다. 그녀가 '나는 가수다'의 다른 가수들과 심한 마찰이 있었다는 것. 그러자 진위도 가려지지 않은 루머에 악플이 또 달라붙었다. 결국 무대에 오른 옥주현은 '천일 동안'을 불렀다. 그 노래는 마치 '천일 동안' 힘겨웠던 자신을 토로하는 것만 같았다. 결국 눈물을 쏟아낸 그녀는 그 날 투표에서 1위를 차지했다. 하지만 그 감동의 무대로 모든 논란이 덮어진 것은 아니었다. 이제는 제작진이 옥주현을 띄워주기 위해 의도적인 편집을 했고, 의도적인 룰을 만들었다는 억측이 이어졌다. 그녀는 말 그대로 비호감 연예인이었다.

드라마 '최고의 사랑'에서 구애정(공효진)은 과거 국보소녀라는 아이돌 걸 그룹 출신이지만 지금은 인기 없는 비호감 연예인이 되어 있다. 방송에 출연하기 위해 롤러코스터에서 자장면 먹기 같은 이미지 관리와는 전혀 동떨어진 미션들을 수행하는 그녀는, 뭘 하든 비난의 화살이 날아오는 비호감 덩어리다. 신발 경매에서 그녀를 좋아하는 독고진(차승원)과 윤필주(윤계상) 사이에 경쟁이 붙어 엄청난 고가로 신발이 낙찰되자, 대중들은 갑자기 그녀가 자신을 띄우려고 스스로 경매가를 높였다는 루머를 퍼뜨린다. 그러자 그녀는 다시 언론의 집중화살을 맞고 최고의 비호감 연예인으로 몰린다. 물론 드라마는 드라마다. 이렇게 궁지에 몰린 구애정을 신발을 산 독고진이 나타나 구해주니 말이다. 하지만 현실이라면 어땠을까. 구애정이라는 이름에 가까이는 옥주현이 겹쳐지고, 멀게는 최진실이 그려지는 건 왜일까. 최진실의 어머니가 말했듯 연예인은 '대중들의 사랑을 먹고 사는' 존재다. 한 때 사랑을 한껏 받으며 연예인이 되었던 그들은 어쩌다 사랑받지 못하는 비호감의 굴레에 빠졌을까.

과거의 비호감 연예인이라면 주로 드라마의 악역을 뜻했다. 그 때만 해도 드라마 속 캐릭터와 연기자는 동일인물처럼 보였으니까. 하지만 지금 악역은 잘만 소화해내면 주연 못지않은 인기를 끌 수 있는 역할이 되었다. 대중들은 이처럼 캐릭터와 연기자를 분리해냈다. 그만큼 영상 콘텐츠의 실제 이면을 들여다보고 그 실체를 알게 된 결과다. 그래서 작금의 비호감 연예인은 연예인들의 공식적인 활동, 즉 드라마라든지, CF라든지, 영화, 공연 등을 통해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비공식적이고 사적인 행적들(이라고 추정되는 이미지들)에서 비롯된다. 즉 이제는 사적인 행적들이 감춰지지 않는 시대다. 어디서든 연예인들은 대중들에 의해 포착될 수 있고, 진짜 대중들이 마음만 먹으면 그 신상이 털릴 수 있으며, 또 그렇게 털린 신상에 대해 뭐라 항변하기 어려운 상황에 놓여있다. 그러니 최진실의 어머니가 말했듯, 그저 방구석에 칩거한 채 끼니도 먹는 둥 마는 둥 하며 가끔 인터넷을 들여다보고 한숨을 쉬는 시간들을 혼자 버텨내야 한다. 이 상황이 되면 과거 한 때 "대중들의 사랑을 먹고 사는" 연예인이었다는 사실은 거꾸로 비수가 되어 날아든다. 그저 사랑받지 못하고 살아온 자가 가질 실연의 고통보다 더 큰 것은, 그 이상의 사랑을 받던 자의 실연이다.

이처럼 대중들에게 연예인은 그저 호불호(好不好)의 대상일 뿐이다. 어느 날 그렇게 연예인은 대중들에 의해 발견되고 일방적으로 사랑을 받다가 어느 일순간 그 사랑이 급격히 식어버리고 때로는 미움으로 돌변한 모습에 큰 상처를 받는 존재다. 물론 일부 팬덤은 연인 관계 이상으로 스타를 추종하기도 하지만, 그들 역시 자신들의 삶은 따로 있다. 이것은 마치 상품과 같은 것이다. 좋아서 사가는 것이지만, 그것이 싫어져 버려진다고 해도 그다지 항변하기는 어려운 존재. 스타란 연예시장 속에서 보면 비정하게도 '상품화되어 전시되어 있는 인간'인 셈이다. 하지만 문제는 최진실의 어머니가 말한 것처럼 "연예인도 역시 사람"이라는데 있다. 대중들은 호불호로 좋고 나쁘다고 쉽게 표현하지만, 그걸 당하는 연예인들에게는 자신의 존재가 통째로 지워지는 충격적인 경험이 될 수도 있다.

문제는 호불호와 루머의 관계이다. 전혀 실제 사실과 상관없는 루머에 의해 비호감이 된 연예인은 아무리 그 루머를 바로 잡으려 해도 또 다른 루머에 휘말리기 쉽다는 것이다. '나는 가수다'의 옥주현 출연이 문제가 되자, 여기에 대한 해명 발언을 하면서 제작진이 꺼낸 얘기는 "제 2의 타블로"를 원치 않는다는 거였다. 학력위조 루머에 휘말려 다양한 증거자료를 내밀었지만, 그 증거자료들 역시 조작된 것이라는 또 다른 루머가 끝없이 만들어졌던 타블로. 그래서 결국은 자신이 나왔던 대학교에 직접 찾아가 확인하는 해프닝까지 벌여야 했던 타블로. 그렇게 모든 증거들이 명명백백하게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도 여전히 의혹이 제기되는 상황에 놓인 그. 이것이 비호감의 잔인한 굴레다. 사랑받지 못하는 비호감 연예인은 그래서 어쩌면 비난받기 위해 존재하는 대상으로 전락한 것처럼 보이다.

'최고의 사랑'이라는 드라마의 제목이 왜 굳이 '최고의 사랑'이며, 그 비운의 비호감 연예인인 여주인공의 이름이 왜 '구애정'이며, 상대 남자 주인공이 왜 '독고진'인지 이런 시각에 바라보면 흥미롭다. 즉 '최고의 사랑'이라고 하지만, 이 연예계에 몸담고 있는 구애정이나 독고진은 사랑하는 방법을 잘 모른다. 대중들의 눈을 의식하면서 일방적인 사랑을 받거나 미움을 받아왔던 존재들이기 때문에, 자신이 갑자기 겪게 되는 가슴 떨림조차 사랑이 맞는 지 의심스러워한다. 그래서 비호감 연예인인 구애정은 '애정을 구하는'이라는 의미로 들리고, 최고의 스타인 독고진은 '진짜 고독한 사람'이라는 의미로 읽힌다. 그게 어느 쪽이든 사랑이 쉽지 않은 존재들이다. 그래서 '최고의 사랑'이라는 제목은 역설적으로도 들린다. 최고 스타들의 사랑이지만, 마치 초심자들의 그것처럼 익숙지 않은. 그리고 이것은 어쩌면 대중들의 호불호에 자신들은 생과 사가 오가는 위치에 서게 된 작금의 연예인들의 상황을 말해주는 것처럼 보인다. '최고의 사랑'을 받거나, 혹은 어느 순간 비호감이 되어버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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