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한 우리식 재해석, 리메이크라면 ‘라온마’처럼

진짜 OCN 주말드라마 <라이프 온 마스>는 리메이크 드라마가 맞을까? 이젠 형제복지원 사건까지 등장했다. ‘1975년부터 1987년까지 부랑인을 선도한다는 명목으로 무고한 사람들을 부산 형제복지원에 감금하고 가혹행위를 한 인권유린 사건’으로 12년 간 무려 513명이 숨졌지만 그 원인이 밝혀지지 않은 ‘한국판 홀로코스트’라고도 부른다. 

<라이프 온 마스>는 사고를 당한 경찰이 깨어나 보니 과거라는 영국 드라마 원작의 설정을 가져오면서 1988년도를 소환했다. 88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있는 그 사회적 분위기를 드라마 속에 담아놓은 것. 형제복지원 사건이 이야기 속에 담겨지게 된 건 그래서 너무나 적절한 선택이라고 여겨진다. 형제복지원 사건은 결국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벌어진 ‘사회정화’가 그 목적이었기 때문이다. 

<라이프 온 마스>는 김민석의 친형인 김현석(곽정욱)이 저지른 일련의 살인들의 이유로 형제복지원 사건을 소환해왔다. 실적을 올리기 위해 마구잡이로 때려잡아 복지원에 집어넣은 경찰과 3년 간 그 곳에서 지옥 같은 시간을 보내며 자신과 환자들을 학대했던 간호사, 그리고 그 형제복지원의 원장까지 김현석이 살해했고 살해하려던 이들은 모두 그 시대가 만들어낸 악마 같은 인물들이었다. 결국 악마는 김현석이 아니라 살해당한 그들이었다는 것. 

<라이프 온 마스>는 1988년에 맞는 ‘쌍팔년도식’ 수사방식을 담아 넣는 방식으로도 이러한 우리식의 재해석을 시도한 바 있다. 강동철(박성웅) 형사의 다소 강압적이고 주먹구구식의 수사방식은 한태주(정경호)와 부딪치면서도 묘하게 시너지를 만들어낸다. 그런데 그러한 수사방식은 원작에서는 볼 수 없는 우리네 정서를 이끌어낸다. 이미 <살인의 추억> 같은 작품에서 봤었던 그 시대의 공기 같은 것이 거기에서는 묻어난다. 

과거로 간 한태주가 TV에서 계속 <수사반장>을 보고 거기 주인공이었던 최불암이 그에게 말을 걸어오는 장면도 독특하다. 그건 원작이 가진 장치를 가져오면서도 우리들에게 친숙한 <수사반장>의 최불암을 오마주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점들은 <라이프 온 마스>의 버터 냄새를 우리 식의 된장 냄새로 바꿔주는 효과를 만들어내고 있다. 

이러한 재해석들이 들어가 원작과는 완전히 다른 작품처럼 느껴지기 때문일까. 원작을 이미 본 시청자들도 이제 후반부로 접어들며 도대체 한태주가 지금 겪고 있는 일이 무엇인가에 대한 궁금증이 커지고 있다. 어디선가 계속 걸려오는 전화와 그 목소리의 정체가 누구인지 관심이 집중된 가운데, 한태주가 겨우 붙잡은 김현석이 그의 정체를 알고 있는 듯한 이야기는 시청자들을 더 궁금하게 만들었다. 또 원작에 대한 재해석이 결말도 바꾸지 않을까 하는 예측을 하게 만든다.

원작이 있는 리메이크작품의 가장 큰 한계가 ‘정서적 차이’를 극복하지 못하는 것에 있다면, <라이프 온 마스>는 그것을 극복하는 차원을 훌쩍 넘어서 완전한 다른 작품 같은 재해석을 해내고 있다. 리메이크도 하나의 새로운 작품이 될 수 있다는 걸 <라이프 온 마스>는 보여주고 있다.(사진:OCN)

‘라이프 온 마스’에서 ‘수사반장’ 감성이 느껴진다는 건

OCN 토일드라마 <라이프 온 마스>에 최불암이 등장했다. 그것도 과거 <수사반장>의 한 장면 속에서 TV 바깥으로 빠져나오는 장면이다. 물론 그건 사고 이후 1988년으로 가게 된 한태주(정경호) 형사가 보는 환영 속에서다. 흑백화면의 <수사반장>에서 튀어나온 최불암은 한태주를 다독이며 “자넬 도와주러 왔네”라고 말했다. 

아주 짧은 장면이지만 <수사반장> 속 최불암이 이런 방식으로 <라이프 온 마스>에 들어왔다는 건 실로 의미심장한 까메오이자 오마주가 아닐 수 없다. <라이프 온 마스>는 현재에서 과거로 가게 된 인물이 겪는 현실과 꿈, 의식과 무의식 사이의 혼돈을 담고 있지만, 동시에 1988년의 복고적 감성을 담고 있는 수사물이기도 하다. 그런데 그 수사물은 과연 지금의 수사물과 무엇이 다르고 또 달라야 하는 걸까. 

지금의 수사물은 MBC <검법남녀>가 보여주듯, CSI류의 과학수사가 만들어낸 새로운 풍경들이 담겨지는 게 당연하지만, 1988년을 시대적 배경으로 담는 수사물이라면 사건도 또 그 사건의 수사과정도 달라지는 게 당연하다. 그래서 <라이프 온 마스>가 가져온 정서는 바로 최불암으로 대변되는 <수사반장>의 감성이다. <라이프 온 마스>의 사건은 마치 <수사반장>의 시그널이 흘러나올 것 같은 우리 식의 정서가 깔려 있다. 

어느 조그마한 마을 갈대밭에서 청산가리가 들어간 막걸리를 마시고 죽은 이장의 살인자를 추격하는 사건이 그렇다. 정신이 온전치 못한 유순희(이봉련)가 용의자로 지목되었고, 그 스스로도 자신이 이장을 죽였다고 증언해 사건은 그것으로 마무리되는 것처럼 보였지만 이를 뒤집는 한태주의 끈질긴 수사과정. 어딘가 이상함을 느낀 한태주는 순희의 딸 영주(오아린)가 이장에게 지속적인 추행을 당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밝혀냈고, 그 청산가리가 든 막걸리를 이장에게 갖다 준 건 영주지만 그걸 시킨 건 이장의 딸이라는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됐다. 

이장의 딸은 남편마저 락스를 지속적으로 먹여 죽음에 이르게 만들었고, 심지어 운신이 불편한 엄마까지도 음식에 락스를 타 먹이고 있었다. 보험금을 타내기 위한 비정하고 치밀한 존속 살인사건이었다는 것. 그런데 여기서 흥미로운 건 비정한 사건 속에서도 <수사반장>식의 따뜻한 감성을 더했다는 점이다. 정신이 온전치 못했지만 순희는 딸이 잘못될까봐 거짓진술을 했고, 딸은 엄마가 잘못될까봐 침묵하고 있었다는 모녀 사이의 서로를 생각하는 마음을 확인하게 되는 지점이 그렇다. 

이런 식의 수사는 과거 <수사반장>의 중요한 특징이었다. 그저 엽기적인 사건만을 해결해가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인간’에 대한 따뜻함과 안타까움이 교차하는 시선이 담겨져 있었다는 것. 최불암이 구축한 캐릭터는 그래서 그 비정한 현실 앞에서 잔뜩 인상을 쓰고 있지만 그 안에 인간에 대한 연민이 담겨진 그 시선을 보여주곤 했다. <수사반장>이 단순한 수사물이 아니라 휴먼드라마 같은 느낌을 줬던 건 그래서다. 

이번 최불암과 <수사반장>에 대한 오마주는 <라이프 온 마스>가 그저 1988년으로 되돌아가 사건을 해결해가는 그 독특한 장르적 재미만을 추구하고 있지 않다는 걸 보여주었다. 사건에 있어서도 또 그 사건을 해결해가는 과정에 있어서도 사건만이 아닌 사람이 보이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는 것이다. 이 지점은 <라이프 온 마스>가 영국 드라마의 리메이크지만 완전히 우리네 드라마처럼 해석되고 있다는 중요한 증거가 아닐 수 없다. 최불암이 <수사반장>에서 막 튀어나온 듯한 드라마라니.(사진:OCN)

‘1박2일’, 잠깐 출연해 따뜻함 남긴 최불암과 김주혁

잠깐 출연했지만 남은 잔향은 그 어느 때보다 짙다. 그저 보기만 해도 훈훈해지는 그런 반가운 얼굴들. 설 명절을 맞아 KBS 예능 프로그램 <1박2일>에서 보게 된 최불암과 김주혁이 그들이다. 

'1박2일(사진출처:KBS)'

설빔이라고 기상천외한 옷들과 분장을 한 채 런웨이를 끝내고 명절에 걸 맞는 ‘세배 미션’이 복불복으로 주어졌을 때 마침 <한국인의 밥상> 내레이션 녹화를 위해 KBS에 들어가고 계신 최불암 선생님을 본 <1박2일> 멤버들. 그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쪼르르 달려가 반갑게 선생님을 맞았다. 

<제빵왕 김탁구>에 나온 동구에게 “너 빵 아니냐”고 던지는 말 한 마디에 빵 터지면서도 어떤 따뜻함을 느끼게 해준 최불암은 곧바로 김종민에게 대상 탄 것에 대한 축하의 말을 건넸다. 잠깐 함께 해달라는 PD의 요청을 기꺼이 수락하고 김종민의 대상에 대해 재차 의미 있는 말 한 마디를 덧붙인다. 

머리를 써서 받는 상이 아니라 성실함을 인정해주는 이런 상이 진짜 대상이라는 것. 그러자 짓궂게도 그런 김종민을 바보로 몰아세우자 최불암은 그가 머리를 안 쓰는 건 “겸손” 때문이라고 재차 강조했다. 무엇보다 그 ‘성실함’이란 현재 <한국인의 밥상>을 꾸준히 해온 최불암 본인이 해온 삶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깊었다. 출연자들의 농담은 이처럼 최불암의 말 한 마디 한 마디와 섞여 정겨워졌다. 

아마도 전국을 돌며 그 곳의 그 때 나는 먹을거리와 요리들 그리고 그 고장의 독특한 문화까지 소개해주는 <한국인의 밥상>은 여러모로 <1박2일>과 닮은 면이 많을 것이다. <한국인의 밥상>이 여타의 음식 프로그램들과 사뭇 달랐던 건 몸소 현장을 직접 뛰어다닌 그 성실함과 그래서 프로그램에 제대로 얹어진 최불암 특유의 구수함과 훈훈함이다. 

물론 <1박2일>은 더 오랜 세월 방영되고 있지만 지금의 멤버들은 오히려 최불암의 이런 모습에서 배울 점들이 많을 것이라 생각된다. <1박2일>이 남달랐던 것 역시 그저 가벼운 웃음이 아니라 어떤 따뜻함을 주는 웃음이었다는 걸 새삼 환기시켜주기 때문이다. “파-”하는 그 웃음이 사실은 <전원일기>를 찍을 때 옆방에 계신 노모를 생각해 소리를 가리려는 배려에서 나온 것처럼.

한편 두 번째로 만나게 된 영원한 구탱이형 김주혁 역시 그가 <1박2일>을 통해 부여한 온기가 최불암과 다르지 않다는 걸 확인시켜줬다. 늘 동생들을 생각하며 한 번도 빼놓지 않고 <1박2일>을 챙겨봤다는 김주혁. 영화 <공조> 인터뷰를 하면서 <1박2일> 홍보만 잔뜩 했다는 역시 어딘가 허당기가 있어보여도 정이 느껴지는 그런 인물이다. 

늘 이기기보다는 지는 쪽을 보여준 ‘꽝 손’이었지만 그래서 <1박2일>에 인간적인 느낌을 부여했던 그가 아닌가. 다시 한 번 출연해달라는 말에 “마음이 반반”이라고 솔직히 밝히면서 그는 “(영화) 홍보가 아니라 진짜”로 한 번 출연하겠다는 말을 덧붙였다. 그가 <1박2일>을 어떻게 생각하는가를 잘 보여준 대목이다. 

짧은 출연이었지만 최불암과 김주혁은 <1박2일>이 추구해야할 웃음의 성격을 잘 보여줬다. 그간 <1박2일>의 원동력이었던 그 웃음은 다름 아닌 ‘인간미’가 묻어나는 따뜻한 정이 있는 웃음이었다. 시간이 지나고 트렌드가 바뀌어도 바뀌지 않는 것이 바로 그것이니.


'한국인의 밥상', 최불암 목소리에 침이 고이는 이유

'한국인의 밥상'(사진출처:KBS)

도대체 최불암의 목소리에는 고소한 참기름이라도 들어있는 것일까. 정말 신기한 일이다. 단지 내레이션만 들었을 뿐인데도, 입 안 가득 침이 고인다. 만일 내레이션에도 어떤 급이 있다면 최불암은 단연 최고 등급의 공력을 갖고 있는 게 분명하다. '한국인의 밥상'이라는 마치 밥처럼 담담하기 그지없는 프로그램에 때론 고소한 참기름 향내를 더해주고, 때론 훈훈한 밥의 온기를 전해주는 최불암의 목소리는 그 자체로 이 프로그램을 진수성찬으로 만들기 때문이다.

'한국인의 밥상'에 깔리는 최불암의 내레이션은 잘 들어보면 이미 입 안 가득 침이 고인 듯 찰기가 흐른다. 그래서 그걸 듣는 사람 역시 똑같이 입 안에 침이 고이게 만드는 것일 게다. 전국에서 찾아낸 우리네 밥상 앞에서 마치 입맛을 다시는 것 같은 그 목소리는 그래서 내레이션이라는 기능적인 장치 그 이상의 효과를 만들어낸다. 밥상을 소개하면서 그걸 보고 듣는 이들의 식욕을 당기게 하는 것만큼 가장 큰 효과가 있을까.

하지만 그 식욕을 만들어낼 정도의 찰기 있는 목소리는 지나치지 않아 자극적이지 않고, 심지어 담백하게 느껴진다. 이것은 찰기 있는 목소리를 바탕으로 하되, 또박 또박 한 마디 한 마디 마치 대사의 맛을 살리듯 읽어내는 최불암의 단단한 발성에서 비롯된다. 식욕이 느껴지되 자극적이지 않고 담백함을 주는 목소리는 '한국인의 밥상'이라는 프로그램의 정체성을 그대로 살려내기도 한다. 이 프로그램은 전국의 대표적인 음식을 소개하면서도 기성의 시끌벅적한 음식 프로그램과는 궤를 달리한다.

최근 '트루맛쇼'라는 다큐멘터리가 들춰낸 음식 프로그램들의 치부는 우리가 음식을 대하는 방식이 얼마나 천박한 자극에 머물러 있는가를 고스란히 드러내주었다. 그런 점에서 '한국인의 밥상'은 이 상품으로 전락한 음식을 하나의 문화로 가치로 복원하는 역할을 해주고 있다. '결정 맛 대 맛'이나 '찾아라! 맛있는 TV' 같은 음식 버라이어티쇼나, 저녁 방송에 어김없이 등장하는 'VJ특공대'식의 음식소개 코너들이, 음식 자체를 제대로 소개하기보다는 음식에 대한 자극적인 욕망에 더 초점을 맞추는 것과는 달리, '한국인의 밥상'은 지극히 담담하게 음식 그 자체의 의미에 더 집중한다. 마치 음식으로 치면 패스트푸드의 맛이 아닌 슬로우푸드의 맛처럼 이 프로그램이 담담하면서도 질리지 않는 맛을 유지하는 것은 이 조금은 완고한 프로그램의 성격 때문이다.

하지만 이 완고함과 진지함 속에서도 여유로움을 만들어내는 건 역시 최불암이라는 존재다. 내레이션 중간에 갑자기 화면 속으로 쑥 들어와 버린 것처럼 거기 서 있는 최불암은 목소리에 연기까지 덧붙인다. 어느 시골길에서 혹은 어느 어촌 바닷가에서 혹은 어느 산사에서 마치 전국의 음식을 진지하게 연구하려 돌아다니다 멈춰선 듯한 최불암은 설명 중간 중간에 특유의 표정과 제스처를 집어넣는다. 때론 허허로운 웃음을 내레이션에 넣음으로써 자칫 딱딱해질 수 있는 꽉 찬 정보전달에 여백을 만들기도 한다.

물론 이 신들린 듯한 내레이션을 더더욱 맛나게 만들어주는 건 대사다. 마음으로 먹는다는 사찰음식과 스님들의 수행을 "억지로 물을 내지 않아도 익어가며 물을 내는 열무김치처럼" 같은 적절한 표현으로 쓰여진 대사는 최불암의 목소리와 착착 맞아 떨어지며 감칠맛을 더하게 해준다. 그래서 '한국인의 밥상'이라는 맛좋은 상차림은 단지 음식이라는 소재에 카메라를 들이미는 것에서 나오지 않는다. 제대로 된 소재와, 그걸 차근차근 정보적으로 담아낸 영상들과, 때론 정겹기까지 한 어느 마을 사람들의 목소리들은 물론 잘 준비된 재료들이다. 하지만 그것보다 중요한 건 그 준비된 재료에 맛좋은 표현으로 손맛을 내는 최불암이라는 '한국인의 밥상'만이 가진 비기(?)다. 최불암. '한국인의 밥상'에서 그는 정말 맛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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