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그대>부터 <쓰리데이즈>까지달라진 드라마 속 시간

 

<별에서 온 그대>400년이라는 시간을 훌쩍 뛰어넘는다. 주인공 도민준(김수현)은 조선시대에 별에서 와 현대까지의 시간을 살아낸다. <신의 선물-14>은 유괴되어 살해된 딸을 구하기 위해 14일 전으로 되돌아간 김수현(이보영)의 고군분투를 다룬다. <쓰리데이즈>는 휴가 중인 대통령이 세 발의 총성과 함께 실종되면서 벌어지는 사건을 3일 씩 세 챕터로 나눠 총 9일간의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신의 선물-14일(사진출처:SBS)'

400, 14, 3. 최근 SBS드라마들은 그 시간 활용법이 달라졌다. 400년으로 늘리기도 하고 14일 전으로 되돌리기도 하며 3일 간으로 압축시키기도 한다. 여타의 드라마들이 으레 그렇듯 순차적인 흐름의 시간 속에 간간히 플래시백을 넣는 단순한 방식과는 사뭇 다른 시간 활용법이다. 왜 이런 변화를 준 것일까. 시간을 다루는 방식이 달라졌다는 건 무엇을 의미할까.

 

시간의 흐름이 달라지면 자연스럽게 드라마의 공간도 달라진다. 400년의 시간을 다룬 <별에서 온 그대>는 조선시대의 풍경에서 현재의 빌딩 숲으로 변화하는 장면을 오프닝으로 집어넣었다. 긴 시간 동안 달라진 공간 위에서 도민준은 그 시간의 두께만큼의 공력(, 경험, 지적능력)을 쌓게 된다.

 

이 드라마가 특이했던 것은 400년을 뛰어넘은 시간대를 살아가는 주인공이 순간 시간을 멈추는 능력도 갖고 있었다는 점이다. 시간의 멈춤은 보통 사람들의 눈에는 순간이동(공간의 이동)으로 보이게 마련이다. 시간의 변화는 공간도 바꾸고 주인공 캐릭터도 바꾸며 결국은 이야기도 바꾸는 효과를 가져온다.

 

<신의 선물-14>에서 시간은 14일 전으로 되돌려진다. 타임리프 설정이지만 딸을 잃은 김수현이 절망 끝에 강물에 뛰어든 후 일어나는 사건이라는 점에서 이건 그녀의 머리 속에서 벌어지는 찰나의 환상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어쨌든 딸이 유괴되어 살해되기 전 시간대로 돌아간다는 설정 하나는 이 여주인공에게 목숨을 걸고 해야 할 미션을 부과한다.

 

보통의 상황에서 평범한 주부가 연쇄살인범을 잡기 위해 현장에 뛰어든다는 것은 결코 쉽게 벌어지지 않는 일이다. 하지만 14일 후에서 되돌아온 김수현은 앞으로 벌어질 일들을 모두 알고 있기 때문에 그런 행동이 가능하다. 시간은 되돌렸지만 사건은 되돌리지 못했다. 따라서 14일을 되돌리는 설정 속에서 김수현은 마치 시간과 싸우는 듯한 긴박감 속에서 사건에 뛰어들게 된다.

 

<쓰리데이즈>는 제목 때문에 3일 간에 벌어진 일처럼 착각되지만 사실은 세 챕터로 꾸며진 각각 3일 간의 이야기를 다룬다. 따라서 총 9일 간의 기록이 되는 셈. 그런데 왜 각 챕터를 굳이 3일이라는 시간으로 한정했을까. 그것은 군더더기 없이 압축된 시간 속에서 보다 집약적인 이야기를 펼쳐 보이기 위함이다. 그림으로 치자면 정밀묘사 같은 것.

 

첫 챕터에서의 3일은 그래서 청수대에서 벌어진 대통령 저격 사건을 다룬다. EMP폭탄이 터지고 모든 전자기기가 꺼져버리자 들려오는 세 발의 총성. 그리고 사라진 대통령. 이 미스테리 안에 담겨진 진실을 추적하는 것. 한태경(박유천)은 이 사건이 자신의 아버지의 죽음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그 죽음을 목격한 서조분서 순경 윤보원(박하선)과 사건을 풀어나간다. <쓰리데이즈>의 각각의 3일은 그래서 선택적인 시공간을 보여준다. 2회의 3분의 2가 청수대라는 공간에서의 하룻밤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식이다.

 

흔히들 드라마의 시간은 그저 흘러가는 것이라 생각한다. 물론 가끔씩 회상이 들어가지만 그것은 전체적인 흐름과 그 이야기의 속도에 그다지 큰 영향을 주지 못한다. 하지만 SBS 드라마가 시도하는 시간의 재구성은 지금껏 봐왔던 통상적인 이야기 흐름을 바꾸어놓는다. 드라마가 새롭다고 여겨지는 건 그래서 이 시간을 다루는 방식의 변화를 통해서 라고도 말할 수 있다.

 

이것은 또한 드라마를 보는 대중들의 시간도 바꾸어 놓는다. 그저 킬링타임용으로 틀어놓고 언제 들여다봐도 이해될 수 있는 느슨한 이야기가 아니라, 한번 쳐다보면 깊게 빠져드는 몰입감을 선사하는 이야기. 그래서 이들 드라마들을 보다보면 어 언제 시간이 이렇게 흘렀지하는 느낌을 갖게 된다.

 

드라마 속 시간의 재구성은 대중들의 시간에 대한 달라진 개념을 바탕으로 한다. 시간은 물론 과거에서 현재를 거쳐 미래로 흘러가는 것이지만, 단지 그런 양적인 흐름이 아니라 질적인 흐름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과거 찬란했던 청춘의 순간에 멈춰서기도 하고, 어느 결정적인 사건의 시간에 멈춰버리기도 한다. 또 앞으로 나갈 수 없어 뒤로 되돌리고픈 시간도 있다. 이 새로운 시간 경험을 대리해준다는 것. 이들 달라진 시간 활용을 보여주는 드라마가 주는 또 다른 재미가 아닐 수 없다.

<신의 선물> 시청률의 여왕 이보영 이번엔 작품이다

 

시청률의 여왕 이보영, 이번엔 작품을 선택했다? <신의 선물-14(이하 신의 선물)>은 마치 미드나 스릴러 영화를 보는 듯한 새로움이다. 유괴된 딸 앞에서 망연자실해 하는 김수현(이보영)과 어딘지 허술하고 껄렁해 보이는 전직 형사 현직 흥신소 사장 기동찬(조승우)의 조합은 벌써부터 앞으로 벌어질 치열한 두뇌게임에 기대감을 자아내게 만든다. 여기에 과거 김수현과 연인사이였던 강력반 팀장 현우진(정겨운)의 존재는 이 스릴러에 멜로적인 변수가 있음을 느끼게 해준다.

 

'신의 선물-14일(사진출처:SBS)'

이미 복선으로 김수현의 딸 한샛별(김유빈)에게 불길한 일이 벌어질 것임을 예고했고 또 딸을 구하기 위해 김수현의 희생이 필요할 거라는 걸 잔혹동화를 통해 보여주었다. 또 어떤 일로 인해 감옥에 가게 됐는지 알 수 없는 기동호(정은표)와 그의 지적장애 아들 기영규(바로)가 이 사건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 궁금증을 자아내게 만들었고, 기동찬의 집을 자꾸 찾아오는 추병우(신구)라는 인물도 그 정체가 궁금한 인물이다.

 

게다가 이 드라마는 이 스릴러적인 장르 속에 타임워프라는 설정이 들어갈 전망이다. 딸을 구하기 위해 2주 전으로 시간을 되돌리는 것. 드라마의 첫 시작을 딸을 구하기 위해 탐스러운 머리칼을 잘라주고, 가시덤불을 껴안고, 눈알까지 빼서 호수에 던져주는 엄마의 잔혹동화로 시작했다는 것은 이 드라마의 성격을 보여주는 셈이다. <신의 선물>은 타임워프라는 가상의 설정을 통해 모성애를 보여주는 어른들을 위한 잔혹동화가 될 거라는 점이다.

 

어쩌면 이 새로움은 기성 우리네 드라마에 익숙한 시청자들에게는 낯설음으로 다가왔을 지도 모른다. 스릴러나 형사물 같은 장르가 영화로는 괜찮을지 몰라도 드라마로서는 그다지 대중적인 장르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것은 지금껏 이 장르로 성공했던 드라마가 극히 드물었다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는 일이다. 우리 드라마에서 스릴러로 성공한 작품이라면 김은희 작가의 <싸인>이 거의 유일하다. 여기에 타임워프라는 설정은 드라마를 더 낯설게 느껴지게 만들 수 있다.

 

<신의 선물>은 그 독특한 이야기와 완성도 높은 대본에도 불구하고 시청률에서는 그다지 유리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이보영과 조승우 같은 톱 연기자들이 들어간 작품치고 첫 회 시청률이 6.9%에 머물렀다는 것은 이런 불리한 상황을 잘 말해준다. 우리네 시청률 추산 시스템 안에서 시청률을 얻기 위해서라면 멜로를 바탕으로 하고 복잡한 이야기는 훨씬 단순하게 처리하는 편이 낫다. 판타지? 그것도 멜로를 보강하는 차원에서만이 시청률에 도움을 줄 수 있는 게 우리 드라마 현실이다.

 

그렇다면 궁금해진다. ‘시청률의 여왕이라고 불리는 이보영은 왜 굳이 이렇게 불리한 드라마를 선택했을까. “지난해 연기대상 받은 거에 대한 부담은 없어요. 상대 드라마가 이미 자리 잡았기 때문에 시청률의 기대도 없고요. 우리가 즐겁게 촬영하는 만큼 장르 드라마를 열광적으로 좋아해 주는 분들이 있으면 그걸로 만족할 것 같아요.” 제작발표회에서 이보영이 던진 이 이야기는 그녀의 선택기준이 시청률이 아니라 작품이었다는 것을 말해준다.

 

작년 50% 시청률에 육박한 <내 딸 서영이>25% 시청률을 냈던 <너의 목소리가 들려>를 통해 이미 시청률로 얻을 것은 거의 얻은 이보영이다. 그러니 시청률 때문에 익숙한 드라마를 하느니 좀 더 실험적이지만 의미가 있는 드라마를 하고 싶었을 게다. 그녀는 장르물에 대한 갈증을 느끼고 있었던 것 같다. “우리끼리 재미있고 즐겁게 미드를 찍는다는 심정으로 촬영 중이라는 그녀의 말 속에는 새로움에 도전하고픈 그녀의 의지가 엿보인다.

 

시청률? 사실 <신의 선물> 같은 드라마는 그 시도 자체가 박수 받을 만하다. 시청률에 경도되어 심지어 막장으로까지 치닫는 우리네 드라마 현실 속에서 이런 완성도 높은 장르물이 시도된다는 것은 얼마나 가치 있는 일인가. 그래서 시청률의 여왕이라는 부담스런 칭호를 과감히 벗어던진 이보영의 선택 역시 박수 받을 만하다. 그녀는 시청률이 아닌 작품을 선택했다. 그리고 이런 진심은 어쩌면 꽤 괜찮은 시청률로 보상받을 지도 모르겠다.

역사를 바라보는 두 시선, <무신> vs <닥터 진>

 

사극의 시간은 어디로 흐르는 걸까. MBC 주말극으로 나란히 방영되고 있는 <무신>과 <닥터 진>은 같은 사극이라도 역사를 바라보는 완전히 다른 시각을 갖고 있다. <무신>은 고려 무신 정권 속에서 노예로 전락했다가 후에는 최고의 위치에까지 오르는 김준이라는 역사 속 실존인물을 다루고 있다. 초반의 격구 에피소드에서는 '글래디에이터'류의 스토리가 들어가면서 퓨전사극적인 요소를 보이지만 이 사극은 지극히 정통 사극의 궤를 따라가고 있다.

 

 

'닥터 진'(사진출처:MBC)

실제 역사의 인물인데다 중간 중간에는 역사적 상황을 설명하는 내레이션까지. 그래서 정통사극의 대가 이환경 작가는 "퓨전사극과는 전혀 다른 감동"을 약속하기도 했다. 그만큼 역사적 고증에 철저하고 또한 역사적 사실에 기대는 바가 크다는 얘기다. <무신>은 이미 퓨전화 되어버린 사극의 흐름을 어쩌면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고 있는 셈이다. 역사로의 회귀.

 

반면 <닥터 진>은 <무신>과는 전혀 다른 역사에 대한 시각을 갖고 있다. 사실 사극이라고 말하기도 애매한 이 작품은 타임리프라는 시간의 벽을 뛰어넘는 이야기 설정이 들어가 있다. 현대를 살아가던 천재적인 신경외과의 진혁(송승헌)이 어느 날 갑자기 영문도 모른 채 조선시대로 떨어지게 된다. 조악한 조선시대의 의료환경 속에서 죽어가는 민초들을 살려내기 위해 동분서주하면서 진혁은 진정한 인술의 길을 가게 된다는 얘기다.

 

흥미로운 건 <닥터 진>에 실제 역사적 인물인 흥선대원군 이하응(이범수)이 등장한다는 사실이다. 진혁은 이하응에 의해 목숨을 빚지기도 하는데, 마침 이하응의 아들이 괴질에 걸려 쓰러지게 되자 진혁은 그를 구하려고 애쓴다. 그런데 그 아들이 바로 훗날 즉위한 고종이다. 즉 이 작품은 현재의 주인공이 역사 바깥에서 그것을 그저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역사 속으로 뛰어들어 적극적으로 역사를 만들어가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어찌 보면 허구가 역사를 재구성하고 있다는 것.

 

<무신>과 <닥터 진>이 역사를 바라보는 시각은 이처럼 그 거리가 멀다. <무신>이 여전히 역사라는 시간과 공간의 굴레에 붙잡혀 있다면, <닥터 진>은 그 벽을 뛰어넘으려고 한다. 즉 타임리프가 적용된 <닥터 진> 같은 사극은 과거를 운명적으로 따르기보다는 현재적 시각으로 과거를 바꿔보려는 과감한 시도를 하고 있다. 즉 현재로 넘어온 주인공이 과거의 문제를 현재를 통해 해결하려는 시도를 보이거나(<옥탑방 왕세자>가 그렇다), 과거로 간 주인공이 거기서 겪는 일들을 통해 현재를 다시 보는 관점을 갖는 것이다.

 

역사란 알다시피 민족주의와 국가주의 시대에 가장 중요한 학문으로 다뤄졌다. 그 나라의 역사는 그 민족이 가진 저력과 정체성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하지만 이제 점점 민족주의나 국가주의 시대는 저물어가고 있다. 이제 우리가 대하고 있는 위기는 국가나 민족 간의 문제보다 더 크다. 전 지구적인 차원에서 고민해야 하는 문제들이란 얘기다. 이러한 글로벌한 문제의식은 로컬한 역사주의가 가진 한계를 드러낼 수밖에 없다.

 

<무신>을 보면서 몽골에 대항한 우리 민족의 끈질긴 모습에 자긍심을 느끼다가도 자칫 민족주의에 너무 매몰되는 것 같은 그 느낌이 퇴행적인 인상을 남기는 것은 그 때문일 것이다. <닥터 진> 같은 사극은 그런 점에서 역사주의라는 특수성을 따르기보다는 인간을 바라보는 보편성에 맞닿아 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역사를 어떻게 바라보느냐는 것은 각자 판단할 일이다.

 

하지만 <무신> 같은 실제 역사의 한 부분을 극화한 작품에서조차 역사 그 자체보다 보편성을 가진 이야기에 대한 욕구가 묻어나는 건 현재 역사가 서 있는 위치를 잘 말해준다. 어쨌든 본래 역사를 다루던 사극이라는 장르가 역사주의를 넘어서 이젠 보편성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는 것은 흥미로운 변화다. <닥터 진>은 그 변화의 가장 앞에 서 있는 사극이고 <무신>은 어쩌면 그 변화의 끝단에서 여전히 변화하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고 있는 듯한 사극이다. 여러분은 어떤가. 어떤 사극이 더 당신의 마음을 끄는가. 이 질문을 스스로 던져보면 자신이 역사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