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톱밴드' 24, 이미 전설의 일부다

'톱밴드'(사진출처:KBS)

얼마 만에 느껴보는 가슴 설렘인가. 고교밴드라고는 믿어지지 않는 엑시즈의 신나는 속주와 보컬의 목소리만으로도 듣는 이를 매료시키는 리카밴드, 꽃미남 2인조지만 개성적이면서도 파워있는 음악을 들려주는 톡식, 마치 야수가 울부짖는 듯한 보컬과 절제되어 있으면서도 어떤 소울이 전해지는 기타 연주가 압권인 게이트 플라워즈, 몽환적인 분위기의 POE, 파워가 느껴지는 브로큰 발렌타인, 록이 얼마나 유쾌한 것인가를 독특한 무대매너로 보여주는 아이씨 사이다...

예선 경쟁을 통해 최종 압축된 ‘톱밴드’의 24팀은 모두 저마다의 색깔이 확실한 밴드들이다. 신대철이 게이트 플라워즈를 “겉으로만 록커가 아니라 뼛속까지 록커”라고 표현한 것처럼, 이들의 음악에는 어떤 정신이 느껴진다. 그것은 아마도 음악을 대하는 이들의 절절한 진정성에서 나오는 것일 게다. 상업적인 틀 바깥에 놓여져 있어 오히려 오롯이 음악만이 그 중심에 세워져 있는 느낌. 한때 음악을 좀 들었다는 사람치고, 이 진짜 음악을 들을 수 있는 기회에 가슴 설레지 않을 이가 있을까.

80년대 중반 들국화가 ‘그것만이 내 세상’으로 그들의 세상을 만들었을 때, 하지만 방송에서 그들을 만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치렁치렁한 장발에 머리를 흔들며 기타를 치고, 음악 자체에만 몰두하는 들국화의 연주는 그래서 한밤중에 몇 번 TV 화면을 탔을 뿐이었다. 그것도 클로즈 샷 없이 롱샷으로 전체의 스케치만을 하는 카메라는 당대의 록에 대한 방송의 태도를 그대로 보여주었다.

90년대 들어 기획사 중심의 아이돌 그룹들이 방송을 장악하면서 많은 싱어 송 라이터들이 다운타운으로 내려갔다고 하지만, 이 시절 사실 더 어려운 위치에 있던 이들은 다름 아닌 밴드들이었다. 특히 록이나 헤비메탈을 하는 밴드들이라면 더더욱. 자유를 부르짖고 기성체계에 반항적일 수밖에 없는 이들 음악은 그래서 TV에서 사라졌다. 따라서 MTV 등장을 상징하는 ‘Video killed the radio star’라는 노래는 우리나라에서는 새로운 의미로 다가올 것이다. 아이돌 같은 비주얼 기획형 가수들은 어딘지 거칠고 자유분방한 밴드들을 밀어낸 셈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들의 명맥이 사라졌을까. 그들은 힘겨워도 기타를 놓지 않았고 기성 가요계의 시스템 바깥에서 스스로의 대안을 찾으며 실력을 쌓아왔다. 그 과정을 거친 그들이 2011년 현재 지상파 방송에 당당히 서 있는 것이다. 등을 돌리고 음악을 듣다가 그 음악이 마음에 들면 의자를 돌려 코칭 의사를 밝히는 코치 선정 과정이 대단히 신선하고 의미 있는 퍼포먼스처럼 여겨지는 건 그 때문이다. 이건 누가 누굴 선정하는 것이 아니라 등 돌리고 있던 그들을 다시 돌아본다는 의미다. 오롯이 음악을 통해.

그래서 게이트 플라워즈의 연주에 남궁연이 의자를 돌리고, “감히 코치를 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이런 음악에 등 돌리고 있다는 것이 예의가 아니다”라고 말한 것은 짠한 감동을 준다. 드디어 밴드 음악이 소통되고 있다는 느낌을 거기서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들어 시나위나 부활 같은 ‘록의 전설’이 귀환하고 있지만 이것이 과거형이 아닌 현재 진행형이 되기 위해서는 지금의 젊은 밴드들을 주목해야 한다. ‘톱밴드’는 바로 그 취지가 진정성으로 느껴지는 프로그램이다. 이로써 그간 조명되지 않았던 밴드 음악이 다시 부활할 수 있을까. 만일 그렇다면 오디션 형식을 취하고는 있지만 여기 올라온 24팀의 톱밴드는 이미 그 전설의 한 부분이 된 셈이다.


‘TOP밴드’, 경합보다는 스토리를 따라가는 이유

'톱밴드'(사진출처:KBS)

이 소름끼치는 실력의 소유자들은 프로일까, 아마추어일까. 적어도 ‘TOP밴드’라는 오디션에서는 이것이 그다지 중요하지 않고 또 중요해서도 안된다. 이 프로그램을 기획한 김광필EP의 말대로 우리사회가, 아니 정확히 말하면 방송을 포함한 가요계가 밴드를 프로로 대접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즉 여기서 프로라면 밴드 활동을 통해 적어도 생계를 꾸릴 수 있는 이들을 의미한다. 이 놀라운 실력자들은 과연 그만큼의 평가를 받고 있을까. 아니 평가는 둘째 치고 일단 음악활동에만 전념하며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이 제공되어 있을까.

사실 게이트 플라워즈나 액시즈, 브로큰 발렌타인, TOXIC 같은 밴드는 전문가들도 놀랄만한 실력을 갖추고 있다. “한국의 음반제작자들이 왜 저런 천재들의 음반을 내지 않고 있었는지” 의아 하다는 김종진의 조금은 격앙된 말이나, “감히 평가할 상황은 아닌 것 같다”는 그룹 딜라이트 DK의 발언, “한국에 이런 분들이 있다는 것을 알려야 한다고 생각”한다는 남궁연의 상찬은 과장이 아니다. 실제로 브로큰 발렌타인은 아시아 최대 규모의 밴드 페스티벌인 ‘아시안 비트’에서 대상과 최우수 작곡상을 수상한 바 있고, 게이트 플라워즈는 제8회 한국대중음악상에서 신인상과 최우수 록 부문 2관왕을 했던 실력파다.

하지만 이들이 그 유명한 상을 받았다고 해서 대중적인 인지도를 대폭 넓히고 그로 인해 생계문제에서 벗어났다고 보기는 어렵다. 따라서 브로큰 발렌타인의 보컬인 김경민은 여전히 회사를 다니면서 밴드를 하고 있고 이들의 작업실은 여전히 리더의 집인 게 현실이다. 이 밴드의 변성환, 변지환 형제의 어머니가 하는 말은 그래서 아프다. “제가 정신적으로 가장 깊게 갈등을 했던 게 아시안 비트 그랜드 파이널에서 우승하고 난 다음이에요. 우승했을 때 우리 아이들이 음악으로 살아가는 길이 열리겠다고 생각했었는데 그냥 상 타온 걸로 끝나고 그 다음 길이 안보이니까. 그 때 정말 음악을 하게 한 것이 잘못인가...” 이것이 바로 작금의 밴드들의 현실이다.

따라서 준 프로에 가까운(어쩌면 프로의 실력을 넘어서는) 이들을 참여시킨 ‘TOP밴드’의 선택은 공감 가는 부분이 많다. 이 오디션 프로그램의 목적이 잘 알려지지 않은 숨은 인재들을 좀 더 대중들 앞에 알리는 것에 있다면, 획일적인 기획사 중심의 음악들로 점철되어 그간 생계를 걱정하며 생업과 음악을 병행해온 이들에게 무대를 내주는 것은 어쩌면 밴드 서바이벌을 내세운 ‘TOP밴드’가 진정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된다.

이것은 ‘TOP밴드’라는 오디션 프로그램이 서 있는 독특한 지점이다. 이 프로그램은 물론 형식적으로 최후의 ‘TOP밴드’를 향한 경합을 다루고 있지만 그것보다 더 주목되는 것은 그간 가려져 있던 숨은 고수들을 방송을 통해 재발견한다는 점이다. 이것은 경합이라는 대결구도를 통해 시청률을 끄집어내는 오디션 형식에서는 불리한 점이 될 수 있다. 하지만 딱히 그런 것만도 아니다. 경쟁 이외에도 오디션 형식의 또 다른 강점이라고 할 수 있는 스토리가 부각될 수 있기 때문이다.

‘TOP밴드’의 특징 중 두드러지는 점으로, 세세하게 참가한 이들의 면면을 따라가는 다큐적인(?) 카메라는 이 오디션 프로그램의 스토리성을 잘 말해준다. 이것은 예능 PD가 아니라 교양 PD가 기획하고 만들어가는 ‘TOP밴드’의 장점이기도 하다. 그 누가 밴드 음악에 순위를 매길 수 있으랴. 다만 저마다의 사연들을 갖고 그 사연들로 저마다의 음악을 만들어내는 다양한 밴드들의 풍성한 이야기가 있을 뿐이다. 그래서 경쟁보다는 그 각각의 밴드들의 스토리를 따라가는 이 독특한 지점을 점하고 있는 ‘TOP밴드’가 끝이 났을 때, 우리는 어쩌면 그 최후의 밴드만이 아니라, 이 과정을 지나오며 발견한 수많은 밴드들을 기억하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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