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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 정덕현
왜 패러디를 패러디로 못볼까 ‘전통적인 사상이나 관념, 특정 작가의 문체를 모방하여 익살스럽게 변형하거나 개작하는 수법.’ 다소 문학적인 틀에 갇혀 있던 이러한 패러디의 고전적 의미는 현대에 들어서는 다양한 영상물에서 일상적으로 사용되는 표현기법 중의 하나가 되었다. 표절과 헷갈리는 부분이 있지만 가장 큰 차이는 원본이 전면에 드러나느냐 아니냐다. 알다시피 패러디는 원본이 있다는 것을 수용자가 인지해야 가능한 기법이다. 을 같은 서체로 이라고 쓰고 그 형식을 가져오면 누구나 그것에서 이라는 원본을 떠올릴 수 있다. 따라서 패러디에서 원본은 늘 전면에 내세워진다. 반면 표절은 늘 원본을 숨긴다. 그저 가져다 도용하는 것이기 때문에 원본이 드러나지 않기 위해 교묘하게 위장술을 펴는 것. 그것이 바로 표절이다..
패러디의 힘을 가장 잘 활용한 '나도 가수다' 패러디는 낮은 자의 전술이다. 즉 아무 것도 없는 자들은 권위 있는 어떤 것을 끌어와 패러디를 함으로써 시선을 집중시키고 동시에 자신들의 이야기를 한다. '나도 가수다'는 이제 누구나 알고 있는 '나는 가수다'라는 무대를 패러디한다. 신정수 PD가 '신들의 공연'이라고 추켜세웠던 그 무대. '는'이라는 조사를 '도'로 바꾼 것뿐이지만 그 뉘앙스가 주는 절절함은 이 사골 같은 개그의 밑바탕이 된다. '나도 가수다'에서 이소라를 패러디한 이소다(김세아)는 무대에 올라 이렇게 말한다. "공연장에 와주신 관객여러분 그리고 청중평가단 여러분... 어디 계십니까?" 그렇다. 그들이 선 무대에는 관객도 청중평가단도 없다. 물론 이 프로그램을 보는 시청자도 많지 않다. '..
‘무한도전’, 패러디의 역사를 쓰다 “아버님은 일본 분이시잖아요?” ‘무한도전’에서 정형돈이 정준하에게 여자친구의 아버님에 대해 이렇게 물었을 때, 인터뷰 모양새로 이것저것 물어보던 분위기는 싸해졌다. 그 아버님은 돌아가셨기 때문이다. 그 때 마침 이런 자막이 나와 상황을 정리한다. ‘형돈의 말 한마디에 분위기 올킬.’ 만일 이 자막에 웃음을 터뜨린 분들이라면 아마도 여기 등장한 ‘올킬’이라는 단어에서 저 ‘야심만만2’에서 새롭게 시도하다 사라진 올킬 시스템을 떠올렸을 것이다. ‘무한도전’은 이처럼 이제 타 방송사의 프로그램이든, 이미 사라져버린 포맷 형식이든 상관없이 거의 무제한적으로 패러디의 소재로 받아들인다. 박명수가 ‘거성쇼’의 오프닝을 보여줄 때, 유재석이 “형 이건 자니 윤 선생님이 하던 거 ..
패러디와 표절의 차이 MBC ‘가요대제전’의 오프닝 무대에 대한 표절 논란이 거세다. 아기로 등장한 무한도전 여섯 멤버들이 밀림에 떨어진 후 동물에 쫓겨 도망 다니다가 어른으로 변한 후 공연장을 뛰어들어오는 오프닝 컨셉트 자체가, 일본의 인기그룹 스마프의 ‘018 팝-업 스마프’투어의 오프닝과 유사하다는 것. 논란이 거세지자 MBC측은 공식 입장을 표명했다. 표절이 아니라 패러디라는 것이다. 사실 연예계에서 표절 논란이 일어날 때마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등장하는 카드가 패러디다. ‘무한도전’이 한 네티즌의 인터넷 글을 통해 일본 후지TV의 ‘스마스마’, TBS의 ‘링컨’, 일본TV의 ‘가끼노츠까이’ 등에 등장한 장면과 일치하거나 흡사하다는 주장이 나왔을 때도 MBC 최영근 예능국장은 표절 논란은 있을 ..
해체된 가족이 보여준 새로운 가족의 희망 오랜만에 실컷 웃어보았고 오랜만에 실컷 감동을 받았다. 8개월 간 시청자들을 웃기고 울린 ‘거침없이 하이킥’에 쏟아지는 찬사들이다. 그 방영시간대가 좀체 채널을 돌리지 못하게 만드는 일일드라마들이 떡 버티고 있는 시간이라는 점에서, 그 드라마들과 거침없는 대결을 벌인 이 시트콤은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일일 가족드라마가 가진 관성적인 시청과는 차별화 된 ‘거침없이 하이킥’. 거침없는 그들이 하이킥한 것은 무엇일까. 캐릭터, 세대 간의 벽을 하이킥하다 이 시트콤의 주 시청층은 30대 이하의 젊은 층. 특히 10대 시청층은 50%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일일드라마가 가진 40대 이상의 시청층과는 사뭇 다른 구조인 셈이다. 일일드라마와 똑같이 가족을 다루고 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