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러디와 표절의 차이

MBC ‘가요대제전’의 오프닝 무대에 대한 표절 논란이 거세다. 아기로 등장한 무한도전 여섯 멤버들이 밀림에 떨어진 후 동물에 쫓겨 도망 다니다가 어른으로 변한 후 공연장을 뛰어들어오는 오프닝 컨셉트 자체가, 일본의 인기그룹 스마프의 ‘018 팝-업 스마프’투어의 오프닝과 유사하다는 것. 논란이 거세지자 MBC측은 공식 입장을 표명했다. 표절이 아니라 패러디라는 것이다.

사실 연예계에서 표절 논란이 일어날 때마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등장하는 카드가 패러디다. ‘무한도전’이 한 네티즌의 인터넷 글을 통해 일본 후지TV의 ‘스마스마’, TBS의 ‘링컨’, 일본TV의 ‘가끼노츠까이’ 등에 등장한 장면과 일치하거나 흡사하다는 주장이 나왔을 때도 MBC 최영근 예능국장은 표절 논란은 있을 수 없다고 말하면서 네티즌이 지적한 유사한 장면은 “여느 오락프로그램에서나 유행에 따른 패러디 정도의 수준으로 허용되는 것”이라고 해명하기도 했다.

또한 가수 아이비의 ‘유혹의 소나타’ 뮤직비디오가 일본 게임 ‘파이널 판타지7’을 표절했다는 의혹이 일었을 때 소속사가 꺼낸 카드도 패러디였다. 하지만 정작 ‘파이널 판타지’의 저작권자 측에서는 이 뮤직비디오에 상영금지 가처분 소송을 걸었고 결국은 법원이 아이비 뮤직비디오를 표절로 판정하기도 했다. 도대체 표절과 패러디는 어떤 차이가 있길래 같은 사안에 대해 한쪽은 표절이다 다른 한쪽은 패러디라 주장하는 것일까.

패러디는 본래 문학작품의 한 형식으로서 사용되던 용어였으나 최근에는 음악, 광고, 영화, 코미디, 드라마, 뮤직비디오 등등 거의 대부분의 대중문화매체에서 활용되는 문화 코드가 되었다. 표절이 사전동의 없이 무단으로 몰래 베끼는 것이라면, 패러디는 기존에 나와 있는 유명한 컨텐츠를 풍자적으로 재해석하는 것이다. 똑같은 내용이 들어간다 해도 전체 맥락 속에서 다른 의미를 내포할 때 그것은 패러디라 불릴 수 있게 된다는 점에서 표절과는 다르다.

이렇게 정의로만 두고 보면 사실상 표절과 패러디를 구분하는 것이 어렵게 된다. 하지만 구분할 수 있는 좀더 쉬운 방법은 존재한다. 먼저 그 패러디한 대상에 풍자와 웃음이 있느냐는 점이다. 이 점을 두고 보면 ‘가요대제전’의 오프닝은 확실히 패러디의 성격을 갖고 있다 할 수 있다. 스마프 멤버들의 진지한 영상을 ‘가요대제전’의 무한도전 멤버들은 비틀어 가벼운 웃음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중요한 문제는 패러디로서 원본의 내용을 짐작 가능한 형태로 표현했는가 하는 점이다. 물론 스마프의 팬들이나 그쪽 관계자라면 ‘가요대제전’의 오프닝 동영상을 보면서 누구나 스마프의 오프닝을 떠올릴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일반인들도 그랬을까. 국내의 공중파 같은 유력한 매체를 통해서 보여진 적이 없는 스마프의 오프닝을 일반인들이 잘 알고 있었을까. 사실상 논란이 불거져 나오지 않았다면 ‘가요대제전’의 오프닝은 패러디가 아닌 순수 창작으로 오인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패러디가 패러디로서 기능하려면 사전에 패러디의 원전이 되는 내용을 시청자들이 알고 있어야 가능하다는 말이다. 그러니 ‘가요대제전’의 오프닝 패러디는 대단히 이상한 패러디가 아닐 수 없다. 원전을 잘 모르는 시청자들을 대상으로 원전을 풍자하는 것을 노린 패러디가 되는 셈이기 때문이다.

물론 국내 예능 프로그램들이 지금까지 해왔던 상황들을 보면 ‘가요대제전’의 표절논란이 이해가 안가는 건 아니다. 과거에는 주로 해외의 프로그램들을 베끼는 수준의 오락 프로그램들이 양산되다가, 최근 들어 인터넷 등을 통해 그 표절 논란이 가속되자 아예 판권을 사는 경우가 늘고 있는데, 그렇다고 하더라고 방송사가 굳이 그 포맷이 해외 프로그램의 것임을 공지하지 않는 것도 그 연장선상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결국 해외 프로그램과 같다는 표절 논란이 나왔을 때야 비로소 슬그머니 그 포맷을 샀다고 공식 표명하는 경우가 다반사이기 때문이다.

점점 다양화되고 글로벌화 되는 사회 속에서 원전이 가진 가치는 크다 할 것이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나라와 나라를 넘어서 소개되지 않은 새로운 포맷을 자유롭게 사오거나 그것을 패러디해 자국민에게 재미를 제공한다는 것 역시 가치 있는 일이다. 다만 이제는 좀더 당당해지는게 좋지 않을까. 남이 알았을 때서야 비로소 슬그머니 사실을 밝히거나 혹은 구차한 변명을 늘어놓는 것은 이 시대의 넌센스가 아닐 수 없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기 어렵듯 손바닥으로 네티즌들의 눈을 가리기는 더더욱 어려운 시대다.

해체된 가족이 보여준 새로운 가족의 희망

오랜만에 실컷 웃어보았고 오랜만에 실컷 감동을 받았다. 8개월 간 시청자들을 웃기고 울린 ‘거침없이 하이킥’에 쏟아지는 찬사들이다. 그 방영시간대가 좀체 채널을 돌리지 못하게 만드는 일일드라마들이 떡 버티고 있는 시간이라는 점에서, 그 드라마들과 거침없는 대결을 벌인 이 시트콤은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일일 가족드라마가 가진 관성적인 시청과는 차별화 된 ‘거침없이 하이킥’. 거침없는 그들이 하이킥한 것은 무엇일까.

캐릭터, 세대 간의 벽을 하이킥하다
이 시트콤의 주 시청층은 30대 이하의 젊은 층. 특히 10대 시청층은 50%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일일드라마가 가진 40대 이상의 시청층과는 사뭇 다른 구조인 셈이다. 일일드라마와 똑같이 가족을 다루고 있지만 이렇게 젊은 시청층을 TV앞에 끌어 모을 수 있었던 힘은 여러 요소가 있겠지만 가장 큰 것은 이 시트콤에 등장하는 캐릭터다. 이 시트콤이 처음부터 하이킥한 대상은 일일드라마 하면 떠올리는 전형적인 캐릭터들이다.

가부장적인 모습을 보여주던 집안의 최고 어르신의 이미지는 이 시트콤으로 들어와 ‘야동’, ‘굴욕’, ‘악플’, ‘애교’ 같은 젊은 세대의 기호들과 만나면서 여지없이 무너진다. 야동순재와 애교문희 같은 4자 캐릭터가 탄생하면서 어르신은 고압적인 모습에서 벗어나 무언가 좀더 젊은 세대에게 가깝게 다가가는 캐릭터로 변신했다. 그 분들의 거침없는 무너짐을 보며 폭소를 터뜨리는 순간, 그 폭소의 반향이 다음날 인터넷을 통해 회자되는 순간, 두터워만 보였던 세대 간의 벽은 쉽게 허물어져 내렸다.

이것은 가부장적인 옛 가족의 형태가 무너지고 점점 수평적으로 파편화되어가는 현재의 가족상을 반영한다. 캐릭터들은 과거의 수직적 관계들을 모두 해체해 재구성해 놓는다. 고개 숙인 가장 식신준하(정준하), 거침없이 OK를 할 줄 아는 당당한 커리어우먼 OK해미(박해미)는 부부관계의 역전을, 동생이지만 형 같은 완소윤호(정일우)와 형이지만 동생 같은 카리스마 민호(김혜성)는 형제관계의 역전을, OK해미의 눈치를 보며 살아가는 애교문희의 모습은 고부관계의 역전을 그려낸다. 이 역전을 통해 드라마는 거침없이 그간의 권력적이고 수직적인 가족관계를 해체한다.

거칠 것 없는 패러디, 탈 장르
달라진 가족관계를 좀더 효과적으로 그려내기 위해 시트콤은 패러디와 탈 장르 같은 연출기법들을 사용했다. 패러디는 시트콤의 주요한 웃음의 요소가 되기도 하지만 ‘거침없이 하이킥’이 사용하는 패러디의 소재나 대상은 거의 전방위적이라 할 만큼 광범위하다. ‘거침없이 하이킥’은 기존 드라마, 영화는 물론이고 광고, 심지어는 뉴스 속에 관습적이라 할 만큼 일상적으로 등장하는 관습적 장면들을 거침없이 패러디한다.

예를 들어 ‘악플순재’로 유명해진 에피소드에서 악플 때문에 순재 대신 경찰서에 출두했다 나온 윤호를 맞는 장면에서, 마치 영화 ‘대부’에서 비롯되어 조폭 영화에서 흔히 관습적으로 나오는 장면을 패러디하는 것 같은 것이다. 검은 세단과 순재의 ‘수고했다’ 같은 대사는 심각한 영화 속 이미지를 떠올리게 하지만 눈앞에 펼쳐지는 우스꽝스런 순재와 윤호, 준하의 모습에 웃음이 터질 수밖에 없다. 준하와 해미의 결혼기념일 에피소드에서 육교에서 노래를 부르고 과장된 몸짓으로 육교 위로 달려가 서로 안는 장면에서 마침 터져 오르는 축포 같은 것도 마찬가지 맥락이다. 또한 민호의 카리스마 에피소드에서는 코를 찡긋거리면서 하는 영화 ‘홀리데이’의 최민수의 연기를 고스란히 패러디해서 웃음을 불러일으킨다.

이 같은 심각하지만 관습적으로 처리되는 장면들의 패러디를 통해 터져 나오는 웃음의 원천에는 반드시 과장된 몸짓을 보이는 인물들과 그 인물을 보는 시선이 존재한다. 준하와 해미의 결혼기념일 과장된 사랑행위는 범이에게 목격된다. 범이의 어처구니없는 얼굴은 친절하게 시청자들로 하여금, 그 장면의 희극성을 상기하게 만든다. 민호가 코를 찡긋거리면서 이것이 효과가 있다고 착각할 때, 그 모습을 흉내내는 가족들의 모습을 객관적 입장에서 보는 범이의 얼굴이 삽입되는 것도 마찬가지 이유다.

이 시트콤이 패러디를 넘어 거침없이 탈 장르에까지 이른 것은 크나큰 성과라 할만하다. 슬랙스틱 코미디에 멜로 드라마적 구도와 스릴러적인 요소, 심지어는 SF까지(최초 우주에서부터 시작되는 이유는 이 장르를 염두에 둔 것이 분명하다) 넘나들었다는 건, 이 시트콤이 얼마나 거침없이 패러디를 활용했는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서민정과 최민용이 출연한 광고들이 모두 패러디 광고(“깎아주세요”를 “먹여주세요”로 바꾼 비빔면 광고나 드림걸즈를 연상케 하는 카드광고 등)라는 점은 이 힘이 고스란히 광고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걸 말해준다.

해체된 가족에서 희망을 보다
하지만 패러디를 통해 파편화되고 해체된 가족의 모습을 그려내면서도 그 웃음이 그저 냉소에 머무르지 않은 점은 작가와 PD가 이들 가족 구성원들에게 따뜻한 애정을 버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시트콤에서 웃다가 갑자기 가슴 먹먹한 사연이 교차되는 것은 바로 그런 애정이 수면 위로 올라왔을 때이다.

고압적으로만 보이던 순재가 문희에게 사랑의 마음을 골세레머니를 통해 전하기 위해 죽어라 운동장을 뛰어다니는 모습은, 달라진 가족 관계 속에서 어떤 희망 같은 것을 끌어내 준다. 잘 나가는 아내와 모든 게 잘 풀리지 않는 남편인 해미와 준하의 관계가 그저 달라진 권력관계가 아니라 거의 닭살에 가까운 애정관계로 유지된다는 점도 그렇다. 이것은 툭탁대면서도 서로를 도와주고 존중하는 민호, 윤호 형제도 마찬가지며, 민민, 신민, 윤민 커플이 보여준 새로운 애정관계에서도 나타난다.

이렇게 하여 ‘거침없이 하이킥’은 여타의 일일드라마가 하듯 과거적 가치로 되돌아가는 가족의 모습보다는, 현재 파편화되고 있는 가족 그 자체의 모습에 방점을 찍는다. 그리고 그것이 또한 새로운 희망을 예기하게 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가족들은 각자 타인의 삶을 살아가는 것처럼 보이면서도 가족이란 틀 안에서의 정의 끈을 놓치지 않는다. ‘거침없이 하이킥’이 거침없이 하이킥 한 것은 달라진 가족관계 속에서 과거의 가족관계만을 보여주는(심지어는 강요처럼 보이기도 한다) 관습적 일일 가족드라마이다. 그 거침없는 하이킥은 그러나 비판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그 해체된 가족도 소중한 가치가 있다는 고마운 전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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