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회> 유아인, 순수함과 안타까움 사이

 

선생님께서는 내가 제일 힘들었을 때, 내 자신이 죽고 싶다고 했을 때 피아노를 다시 치라고 권하셨고 내 마음이 흔들리는 걸 읽어주셨어요.” <밀회>의 이선재(유아인)가 오혜원(김희애)에게 키스를 하게 됐던 이유에 대해 말하는 장면에서는 청춘의 순수함과 안타까움이 묻어난다. 그의 사랑은 단지 육체적인 이끌림도 아니고, 그저 남녀 간의 사랑 그 자체도 아니다. 거기에는 그 누구도 들여다보지 않았던 이 청춘의 아픔을 알아봐준 오혜원이란 존재에 대한 고마움이 들어 있다.

 

'밀회(사진출처:JTBC)'

얼마나 힘겨웠으면 그랬을까. 갖고 있는 재능을 그 누구도 알아봐주지 않는 세상에서 그저 하루하루를 살아낸다는 것. 피아노 건반을 두드려야 할 손이 퀵서비스 오토바이 핸들을 붙잡고 살아가야 한다는 것. 무엇보다 그런 그를 아무도 들여다보지 않는 세상의 무심함. 그리고 이 돈과 태생과 권력으로 구획되어 스펙 없는 이들은 절대로 들여보내주지 않는 그 현실의 벽 앞에서 느껴질 막막한 절망감.

 

<밀회>가 그리는 이선재라는 청춘은 그래서 한 개인이라기보다는 현재 우리 사회의 청춘들을 대변하는 듯하다. 공고하게 굳어져버린 저들만의 세상에 툭 던져져 출구도 입구도 없는 그 세상의 언저리에서 근근히 삶을 버텨내는 청춘. 그래서일까. 이선재를 자신의 집으로 데려오는 오혜원과 그의 남편 강준형(박혁권)은 그 청춘들을 현 기성세대들이 소비하는 두 가지 방식처럼 보이기도 한다.

 

오혜원에게 이선재는 자신의 지나가버린 청춘의 꿈을 되새겨주는 존재. 이것은 현재 중년들이 청춘들을 소비하는 방식과 다르지 않다. 흔히 청춘의 풋풋함을 가진 아이돌들 앞에서 열광하는 중년들은 거기서 자신들의 삶을 청춘으로 되돌리고픈 욕망을 갖기 마련이다. 오혜원에게 피아노는 자신의 잃어버린 청춘의 꿈이다. 그러니 이선재와 함께 피아노를 치는 오혜원은 그 순간 청춘과 소통하는 아찔한 경험을 하는 셈이다. 최근 복고라는 이름으로 떠오르는 수많은 문화현상들의 중심에는 바로 이 청춘에 대한 회귀와 갈망이 들어있다.

 

한편 강준형은 청춘을 하나의 발판으로 삼으려는 현 기성세대들을 표상하는 인물이다. 이선재는 그의 신분상승을 공고하게 해줄 존재다. 그래서 그는 이선재를 자신의 집에 가둬두고 자신만을 위해 키워내려 한다. 학교 재단의 입시 비리를 숨기기 위해 이선재를 방패막이로 사용하려는 것처럼 강준형 같은 이들은 진심으로 이선재의 성공을 바라는 것이 아니다. 그들의 관심은 오로지 자신들의 욕망뿐이다.

 

이 막막한 현실 앞에서 청춘들의 삶이란 비참하게까지 느껴진다. 자신을 알아봐주는(사실은 이것 또한 착각일 가능성이 높지만) 오혜원에 대한 이선재의 집착은 그 소통의 출구가 막혀버린 청춘을 점점 강하게 그려낸다. 청춘들은 어떻게든 이 기성사회의 한 귀퉁이를 붙잡아 살아가려 안간힘을 쓴다. 이선재가 그렇고, 그의 여자친구인 박다미(경수진)가 그러하며 그의 절친인 손장호(최태원)가 그렇다.

 

박다미는 오혜원을 비롯한 상류층 자제들이 오는 샵에서 수모를 당하면서도 그들의 머리를 만져주는 아르바이트로 근근이 살아간다. 그녀가 버틸 수 있는 유일한 힘은 이선재라는 남자친구 하나지만 그가 점점 오혜원의 집을 드나드는 것만으로도 그녀는 불안해진다. 자신의 세계에서 점점 그가 멀어지는 것만 같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혜원의 집에서 지내는 이선재에 대한 박다미의 과도한 반응 속에는 그녀의 전부가 사라져가는 듯한 극도의 불안감이 묻어난다.

 

손장호는 서한그룹 회장의 딸이자 서한예술재단 산하 아트센터 대표, 그리고 오혜원의 직장상사이자 친구인 서영우가 들락거리는 호스트바에서 일한다. 공허한 삶을 위로받고자 돈을 주고 청춘을 사는 서영우 같은 부류에게 돈을 받고 팔려지는 가진 건 몸뚱어리 하나밖에 없는 청춘. 돈의 논리로 철저히 구축된 시스템 속에서 청춘의 몸은 가진 자의 쾌락과 위안을 위해 소비된다.

 

<밀회>의 이선재라는 청춘은 그래서 아프고 안타깝다. 이 시대의 청춘들이 기성사회에 소비되는 방식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이선재를 연기하는 유아인이 새롭게 보이는 것은 그간 엇나간 청춘의 욕망을 주로 연기해오던 그가 <밀회>에서는 대책 없는 사랑을 연기하기 때문이다. <패션왕>에서 가진 자들과 전쟁하듯 살아가던 강영걸이라는 청춘을 연기한 유아인은, 이제 <밀회>의 이선재를 통해 청춘의 순수함을 그려내고 있다. 그리고 그 순수함은 그 어떤 기성세대에 대한 반항보다 더 강렬하게 다가온다. 순수해서 더 절망적으로 느껴지는 피아노 건반 하나하나의 선율처럼.

격정 멜로 <밀회>, 이 불륜이 보여주려는 것

 

피아노에 천재적인 재능을 가졌지만 현실은 퀵서비스를 하며 살아가는 청춘 이선재(유아인). 한 때 피아노의 꿈을 포기한 후 결혼해 그럭저럭 꿈 언저리에서 살아가는 중년 오혜원(김희애). 두 사람은 어떻게 사랑에 빠지게 될까.

 

'밀회(사진출처:JTBC)'

격정 멜로라고 불리는 <밀회>지만 첫 방송의 느낌은 격하다기보다는 격조 있는 멜로의 인상이 짙다. 물론 금기된 사랑이 짙어지면 격조도 격정이 될 가능성이 높지만. 이 청춘과 중년을 엮어주는 것이 피아노 선율이라는 것은 이 드라마가 단순히 불륜을 자극으로만 다루지 않는다는 증표다.

 

잠깐 예고편으로 등장한 것처럼 이선재와 오혜원이 나란히 앉아 피아노를 연주하는 장면은 이들의 사랑을 에둘러 표현해준다. 피아노를 치는 오혜원의 표정은 사랑하는 여인처럼 희열에 가득 차 있다. 오혜원에게 피아노란 자신의 식어버린 사랑 같은 존재다. 한 때는 불타올랐으나 이제는 그저 수동적으로 듣기만 하는.

 

재능은 있어도 스펙이 없어 피아노가 아닌 오토바이를 운전하는 청춘 이선재가 처한 상황은, 숨겨둔 꿈과 열정은 있으나 성공을 위해 자신을 지운 채 친구의 가족회사 서한예술재단에서 마치 그 집안의 비서처럼 살아가는 오혜원과 그다지 다르지 않다. 이선재가 사회라는 거대한 괴물의 아가리에서 신음하는 것처럼 오혜원은 서한예술재단이라는 사회의 축소판 속에서 자신의 열정을 지워간다.

 

그녀가 이선재의 재능을 아끼고 키워주려는 마음은 그래서 친구에게 뺨을 맞으면서도 수긍하며 살아오면서 잃어버린 자기애와도 닿아있다. 그녀의 사랑은 그래서 이선재라는 청춘을 탐하는 것이 아니라 피아노로 표상되는 자신의 잃어버린 청춘에 대한 회한과 위무에 가깝다. 이 점은 이 사랑이 격조에서 격정으로 나가는 기폭제가 된다.

 

따라서 <밀회>가 다루는 불륜은 단지 엇나간 사랑에 머물지 않는다. 그 속에는 청춘이든 꿈이든 사랑이든 예술이든 현실이라는 이름으로 삼켜버리는 우리 사회의 밑바닥이 담겨져 있다. 서한예술재단은 그 밑바닥을 보여주는 곳이다. 수면 위에서는 클래식 음악 연주회 같은 예술을 즐기고 사교모임으로 마작을 즐기는 귀족적인 삶이 그려지지만 그 뒤편에서는 심지어 주먹질이 오가는 살풍경한 욕망들이 꿈틀댄다.

 

이 살풍경 속에서 가녀린 청춘과 허탈한 중년이 불꽃처럼 타오르는 모습은 그래서 그 지독한 현실에 대한 저항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들의 사랑은 또 어떤 현실의 장벽을 만나 파국으로 달려갈 것인가. 결국 <밀회>가 보여주는 불륜이란 태생적으로 비극을 예고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 비극은 단지 개인적인 비극이 아니라 사회적인 비극으로 다뤄진다. 청춘, , 사랑, 예술 같은 것조차 돈과 현실의 이름으로 포획해버리는 세상의 파국.

 

마치 유려한 영화를 보는 듯한 안판석 감독의 섬세한 연출과 멜로에 사회를 담아내는 정성주 작가의 예사롭지 않은 필력, 그리고 청춘의 갑갑함과 설렘 사이의 어느 지점을 연기해 보여주는 유아인과 무엇보다 우아함을 유지하면서도 그 안에 숨겨진 열정을 꾹꾹 눌러 보여주는 꽃누나 김희애의 연기는 <밀회>라는 격이 다른 멜로의 탄생을 예감하게 만든다. 오랜만에 보는 격하면서도 격조 있는 멜로, 그것이 바로 <밀회>라는 작품의 진면목이다.

김순옥표 드라마의 한계, 비약과 과장

 

<아내의 유혹>과 <천사의 유혹>의 김순옥 작가에게 늘 막장 논란이 끊이질 않았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다섯손가락>의 초반부는 분명 어딘지 기존 막장드라마들과는 다른 구석이 있었다. 그것은 아마도 피아노라는 감성적인 소재가 주는 느낌이 일조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다섯손가락>의 피아노라는 소재는 김순옥 작가가 그리던 거친 세상과는 대조적인 감성을 보여주었다. 그래서였을까. <다섯손가락>은 11.2%(8월18일 agb닐슨)로 시작해 일찌감치 14.1%(8월25일)로 정점을 찍었다.

 

'다섯손가락'(사진출처:SBS)

여기에 아역들이 가진 힘이 있었다. 아이들은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자극적인 상황들에 노출되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이기 때문에 막장이라기보다는 동정의 시선으로 바라보게 만들었다. 이런 분위기는 김순옥 작가의 진화라는 평가까지 만들었다. 하지만 초반 선전을 이끌었던 아역들이 빠지면서 11.8%(9월2일)로 뚝 떨어지더니, 10.8%(9월8일), 10.5%(9월9일)로 끊임없는 하락세를 걷게 되었다. 경쟁작인 <메이퀸>이 아역 분량을 지금껏 이어오면서 꾸준히 시청률을 끌어올린 것과는 대조적이다(<메이퀸> 역시 아역이 빠지면 어떤 결과가 올지 알 수 없지만.).

 

하지만 성인역으로 교체되면서 김순옥표 드라마의 고질적인 한계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그것은 지나친 논리의 비약과 우연의 연속, 캐릭터가 스스로 살아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마치 작가에 의해 인형처럼 조종되고 있다는 인위적인 느낌, 게다가 어디서 많이 봤던 상황들의 연속까지... 문제들이 쏟아져 나왔다. 피아노라는 감성적인 소재와 아이라는 동정적 시선의 대상이 사라지면서 본색이 드러난 셈이다.

 

지금껏 누누이 지적되어 왔던 김순옥표 드라마의 가장 큰 맹점은 개연성 부족과 속도 조절 실패에서 비롯된다. 그것이 작가의 성정 때문인지 모르지만, 김순옥 작가의 드라마는 너무 서두른다는 인상이 강하다. 물론 속도감이 나쁜 것은 아니지만, 여기에 논리와 개연성이 충분히 녹아나지 않게 되면 시청자들은 저 뒤에 있는데 작가 혼자 저 앞으로 달려 나가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성인이 된 유지호(주지훈)와 홍다미(진세연)가 자전거를 타다 부딪쳐 우연히 다시 만나게 되는 장면은 김순옥표 드라마의 논리와 개연성 결여를 고스란히 드러낸다. 제 아무리 비슷하다고 해도(그렇게 비슷한 자전거를 타고 있다는 것도 지나친 우연이다) 자전거가 바뀌는 일이 얼마나 가능할까. 하지만 이 자전거가 바뀌는 사건은 유지호가 스승인 하윤모(전국환)에게 의심을 받게 되는 큰 사건으로 이어진다. 스승의 악보를 유지호가 소홀히 관리했다는 것. 게다가 하윤모가 그 악보가 유출됐다는 것을 알게 되는 장면도 홍다미가 우연히 아르바이트로 피아노 연주를 하게 된 카페에 그가 우연하게도 거기 있으면서 생긴 일이다.

 

사건이 개연성이 전혀 없고 우연을 반복되는 것이 김순옥표 드라마들의 공통적인 특징이라면 <다섯손가락>도 거기서 자유롭지 못하다. 하윤모는 결국 이것이 자신의 오해라는 것을 알고 다시 유지호를 제자로 받아들이지만, 그는 또 유지호가 자신의 악보를 훔쳤다는 오해를 갖게 되고(이것은 모두 채영랑(채시라)의 음모지만) 다시 그를 내친다. 이 과정에서 하윤모라는 캐릭터는 마치 감정조절이 안되는 인물처럼 그려진다. 그토록 신뢰가 돈독하던 사제지간에 사건이 벌어지자마자 제자를 두둔하기보다는 그를 의심하는 섣부른 감정은 캐릭터를 매력 없게 만들어버린다. 이것은 작가의 스토리 전개를 위한 억지스럽고 인위적인 캐릭터 조종 때문에 생겨나는 일이다.

 

김순옥 작가의 드라마가 가진 지나친 비약과 과장은, 그녀의 작품이 속도에 집착하는 것조차 시청자들에게 속도의 쾌감을 주려하는 것이 아니라 이 빈약한 논리를 가리려는 것처럼 보이게 만든다. 빨리 움직임으로써 우연의 반복과 개연성의 부족을 감추려는 안간힘. 과거의 시청자라면 ‘드라마는 원래 그래’하며 넘어갔을 수도 있을 게다. 하지만 지금이 어떤 시대인가. 시청자의 드라마를 보는 눈은 그 어느 때보다 벼려져 있다. 작은 개연성 부족 하나도 놓치지 않는 게 작금의 대중들이 아닌가.

 

<다섯손가락>이 개연성과 논리를 버리고 속도에 집착하면서 생겨나는 한 가지 맹점이 있다. 그것은 애초에 이 거친 드라마조차 감성적으로 만들어주던 피아노라는 소재가 점점 하나의 소품으로 전락하고 있다는 점이다. 지금 <다섯손가락>은 피아노라는 음악의 이야기는 사라지고 피아노 회사의 경영권을 차지하기 위한 암투와 욕망의 이야기로 바뀌어가고 있다. 이 정도면 소재가 아깝고 호연을 펼치고 있는 연기자들이 아까운 상황이다. 시청률의 추락은 당연하면서도 고무적인 일이다. 언제까지 시청률이 나온다는 이유로 완성도가 떨어지는 드라마를 계속 방치할 것인가. 시청자들의 눈은 정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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