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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철의 동네 한 바퀴’와 최불암의 ‘한국인의 밥상’

“이거 궁예 아니신가?” 길거리에서 만난 아저씨는 김영철을 보며 그렇게 말했다. 아마도 KBS 대하 사극 <태조 왕건>에서 김영철이 연기했던 그 궁예 역할이 지금까지도 강렬하게 남은 탓일 게다. 이른바 ‘관심법’이라는 유행어까지 만들 정도로 세간의 화제가 됐던 캐릭터가 아니었던가. 그 궁예가 사람 좋은 웃음을 지으며 살갑게 동네사람들에게 다가와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눈다. KBS <김영철의 동네 한 바퀴>가 그려내는 풍경이다.

늘상 지나던 동네이니 특별할 게 없어 보이지만, 그 안을 들여다보면 또 새롭다. 세월의 더께가 앉은 노포들과 그 곳을 지키며 살아가고 있는 분들에게서는 그 세월만큼의 이야기들이 묻어난다. 콩나물 비빔밥 집에서의 점심 한 끼는 어머니처럼 푸짐하게 챙겨주는 아주머니와의 대화가 새롭고, 60년 째 가업을 이어 이용원을 하고 계시다는 아저씨와의 대화 속에서는 젊은 날의 방황을 거쳐 돌아와 이제는 자부심까지 갖는 그 마음이 느껴진다. 염천교 수제화 거리에서 만난 수제화 장인에게서는 그 손을 거쳐 얼마나 많은 분들이 불편함을 덜어냈을 지가 엿보이고, 외국인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동네 구멍가게 아주머니에게서는 외국인들이 돌아가서도 그 아주머니를 통해 느꼈을 ‘한국의 정’이 느껴진다. 

이 프로그램은 제목에 들어가 있듯, 김영철이라는 배우가 아니면 담아내기 힘든 느낌 같은 것들도 들어있다. 1973년 극단에 입단하며 시작된 배우의 길은 현재까지 일일이 다 열거하기도 힘들 정도의 작품들로 이어져왔다. <태조 왕건>의 궁예, <야인시대>의 김두한, <아이리스>의 백산, 영화 <달콤한 인생>의 강사장 역할처럼 강렬한 카리스마를 보여줘 왔지만, <아버지가 이상해> 같은 드라마의 변한수 역할 같은 따뜻하고 헌신적인 역할도 보여줬다. 그러니 이 많은 역할을 해온 배우가 연기라는 세계 바깥으로 나와 동네를 걷는 그 장면 자체가 이체롭게 다가온다. 무엇보다 많은 인물들을 연기해온 그가 바로 그 실제 인물들을 만나는 순간들이 그렇다. 

그런데 이 프로그램은 제작발표회에서도 나왔던 이야기지만, 그 구도가 떠올리게 하는 또 다른 프로그램이 있다. 그건 바로 2011년부터 지금까지 무려 370여회가 넘게 전국 각지를 찾아다니며 그 곳의 밥상을 소개했던 최불암의 <한국인의 밥상>이다. <한국인의 밥상>같은 장수 프로그램을 만들겠다며 ‘동네 천 바퀴’를 돌고 싶다 포부를 밝혔던 데서도 드러나듯, 두 프로그램은 닮은 구석이 많다. 

먹방이 한창 유행하던 시절, <한국인의 밥상>은 다소 진지한 접근으로 전국 각지에서 철마다 나오는 식재료들과 그것들을 특유의 방법으로 해먹은 요리법을 소개해왔다. 처음에는 너무 진지한 다큐 같은 느낌이 강했지만 보면 볼수록 그 깊이에 빠져들게 되는 프로그램. 마치 전국 각지에 존재하는 우리네 밥상을 마치 백과사전처럼 온전히 정리해내겠다는 그 포부도 좋지만, 그걸 현지에서 살아가는 분들의 소박한 삶과 이야기로 전하는 대목도 빼놓을 수 없는 묘미다. <한국인의 밥상>이라고 해서 ‘밥상’만 보일 줄 알았더니 ‘한국인’이 보이는 것.

이걸 가능하게 하는 인물은 역시 프로그램을 지금껏 이끌어온 최불암이다. 우리에게는 <수사반장>의 캐릭터가 더 강렬하게 남아 있지만, 어쩌면 이 프로그램과 더 어울리는 모습은 <전원일기>의 김회장이 아닐까. 1980년부터 2002년까지 무려 1088회를 방영했던 진짜 ‘국민드라마’라는 호칭이 어색하지 않은 이 드라마를 통해 김회장은 우리 시대의 ‘아버지’로 자리 잡은 바 있다. 그러니 그가 지방을 찾아다니며 쉽지 않은 노동에 두툼해진 아주머니의 손을 잡는 장면은 그 자체로 뭉클한 면이 있다. 맛깔나게 담아주는 내레이션 또한 빼놓을 수 없지만.

궁예의 김영철과 수사반장 최불암. 이들이 연기가 아닌 실제 현실 속 길을 걷게 된 건, 그들이 거기서 만나는 사람들 때문이다. 이름 모를 서민들에게 다가가 말을 걸고, 스스럼없이 어우러지며, 만만찮은 삶의 경험을 공감대로 그들과 나눌 수 있는 인물로 이들 만한 배우들이 있을까. 두 프로그램이 모두 그들의 필모그래피처럼 장수하는 프로그램이 되길.(사진:KBS)

Posted by 더키앙

‘1박2일’, 잠깐 출연해 따뜻함 남긴 최불암과 김주혁

잠깐 출연했지만 남은 잔향은 그 어느 때보다 짙다. 그저 보기만 해도 훈훈해지는 그런 반가운 얼굴들. 설 명절을 맞아 KBS 예능 프로그램 <1박2일>에서 보게 된 최불암과 김주혁이 그들이다. 

'1박2일(사진출처:KBS)'

설빔이라고 기상천외한 옷들과 분장을 한 채 런웨이를 끝내고 명절에 걸 맞는 ‘세배 미션’이 복불복으로 주어졌을 때 마침 <한국인의 밥상> 내레이션 녹화를 위해 KBS에 들어가고 계신 최불암 선생님을 본 <1박2일> 멤버들. 그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쪼르르 달려가 반갑게 선생님을 맞았다. 

<제빵왕 김탁구>에 나온 동구에게 “너 빵 아니냐”고 던지는 말 한 마디에 빵 터지면서도 어떤 따뜻함을 느끼게 해준 최불암은 곧바로 김종민에게 대상 탄 것에 대한 축하의 말을 건넸다. 잠깐 함께 해달라는 PD의 요청을 기꺼이 수락하고 김종민의 대상에 대해 재차 의미 있는 말 한 마디를 덧붙인다. 

머리를 써서 받는 상이 아니라 성실함을 인정해주는 이런 상이 진짜 대상이라는 것. 그러자 짓궂게도 그런 김종민을 바보로 몰아세우자 최불암은 그가 머리를 안 쓰는 건 “겸손” 때문이라고 재차 강조했다. 무엇보다 그 ‘성실함’이란 현재 <한국인의 밥상>을 꾸준히 해온 최불암 본인이 해온 삶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깊었다. 출연자들의 농담은 이처럼 최불암의 말 한 마디 한 마디와 섞여 정겨워졌다. 

아마도 전국을 돌며 그 곳의 그 때 나는 먹을거리와 요리들 그리고 그 고장의 독특한 문화까지 소개해주는 <한국인의 밥상>은 여러모로 <1박2일>과 닮은 면이 많을 것이다. <한국인의 밥상>이 여타의 음식 프로그램들과 사뭇 달랐던 건 몸소 현장을 직접 뛰어다닌 그 성실함과 그래서 프로그램에 제대로 얹어진 최불암 특유의 구수함과 훈훈함이다. 

물론 <1박2일>은 더 오랜 세월 방영되고 있지만 지금의 멤버들은 오히려 최불암의 이런 모습에서 배울 점들이 많을 것이라 생각된다. <1박2일>이 남달랐던 것 역시 그저 가벼운 웃음이 아니라 어떤 따뜻함을 주는 웃음이었다는 걸 새삼 환기시켜주기 때문이다. “파-”하는 그 웃음이 사실은 <전원일기>를 찍을 때 옆방에 계신 노모를 생각해 소리를 가리려는 배려에서 나온 것처럼.

한편 두 번째로 만나게 된 영원한 구탱이형 김주혁 역시 그가 <1박2일>을 통해 부여한 온기가 최불암과 다르지 않다는 걸 확인시켜줬다. 늘 동생들을 생각하며 한 번도 빼놓지 않고 <1박2일>을 챙겨봤다는 김주혁. 영화 <공조> 인터뷰를 하면서 <1박2일> 홍보만 잔뜩 했다는 역시 어딘가 허당기가 있어보여도 정이 느껴지는 그런 인물이다. 

늘 이기기보다는 지는 쪽을 보여준 ‘꽝 손’이었지만 그래서 <1박2일>에 인간적인 느낌을 부여했던 그가 아닌가. 다시 한 번 출연해달라는 말에 “마음이 반반”이라고 솔직히 밝히면서 그는 “(영화) 홍보가 아니라 진짜”로 한 번 출연하겠다는 말을 덧붙였다. 그가 <1박2일>을 어떻게 생각하는가를 잘 보여준 대목이다. 

짧은 출연이었지만 최불암과 김주혁은 <1박2일>이 추구해야할 웃음의 성격을 잘 보여줬다. 그간 <1박2일>의 원동력이었던 그 웃음은 다름 아닌 ‘인간미’가 묻어나는 따뜻한 정이 있는 웃음이었다. 시간이 지나고 트렌드가 바뀌어도 바뀌지 않는 것이 바로 그것이니.

Posted by 더키앙


'한국인의 밥상', 최불암 목소리에 침이 고이는 이유

'한국인의 밥상'(사진출처:KBS)

도대체 최불암의 목소리에는 고소한 참기름이라도 들어있는 것일까. 정말 신기한 일이다. 단지 내레이션만 들었을 뿐인데도, 입 안 가득 침이 고인다. 만일 내레이션에도 어떤 급이 있다면 최불암은 단연 최고 등급의 공력을 갖고 있는 게 분명하다. '한국인의 밥상'이라는 마치 밥처럼 담담하기 그지없는 프로그램에 때론 고소한 참기름 향내를 더해주고, 때론 훈훈한 밥의 온기를 전해주는 최불암의 목소리는 그 자체로 이 프로그램을 진수성찬으로 만들기 때문이다.

'한국인의 밥상'에 깔리는 최불암의 내레이션은 잘 들어보면 이미 입 안 가득 침이 고인 듯 찰기가 흐른다. 그래서 그걸 듣는 사람 역시 똑같이 입 안에 침이 고이게 만드는 것일 게다. 전국에서 찾아낸 우리네 밥상 앞에서 마치 입맛을 다시는 것 같은 그 목소리는 그래서 내레이션이라는 기능적인 장치 그 이상의 효과를 만들어낸다. 밥상을 소개하면서 그걸 보고 듣는 이들의 식욕을 당기게 하는 것만큼 가장 큰 효과가 있을까.

하지만 그 식욕을 만들어낼 정도의 찰기 있는 목소리는 지나치지 않아 자극적이지 않고, 심지어 담백하게 느껴진다. 이것은 찰기 있는 목소리를 바탕으로 하되, 또박 또박 한 마디 한 마디 마치 대사의 맛을 살리듯 읽어내는 최불암의 단단한 발성에서 비롯된다. 식욕이 느껴지되 자극적이지 않고 담백함을 주는 목소리는 '한국인의 밥상'이라는 프로그램의 정체성을 그대로 살려내기도 한다. 이 프로그램은 전국의 대표적인 음식을 소개하면서도 기성의 시끌벅적한 음식 프로그램과는 궤를 달리한다.

최근 '트루맛쇼'라는 다큐멘터리가 들춰낸 음식 프로그램들의 치부는 우리가 음식을 대하는 방식이 얼마나 천박한 자극에 머물러 있는가를 고스란히 드러내주었다. 그런 점에서 '한국인의 밥상'은 이 상품으로 전락한 음식을 하나의 문화로 가치로 복원하는 역할을 해주고 있다. '결정 맛 대 맛'이나 '찾아라! 맛있는 TV' 같은 음식 버라이어티쇼나, 저녁 방송에 어김없이 등장하는 'VJ특공대'식의 음식소개 코너들이, 음식 자체를 제대로 소개하기보다는 음식에 대한 자극적인 욕망에 더 초점을 맞추는 것과는 달리, '한국인의 밥상'은 지극히 담담하게 음식 그 자체의 의미에 더 집중한다. 마치 음식으로 치면 패스트푸드의 맛이 아닌 슬로우푸드의 맛처럼 이 프로그램이 담담하면서도 질리지 않는 맛을 유지하는 것은 이 조금은 완고한 프로그램의 성격 때문이다.

하지만 이 완고함과 진지함 속에서도 여유로움을 만들어내는 건 역시 최불암이라는 존재다. 내레이션 중간에 갑자기 화면 속으로 쑥 들어와 버린 것처럼 거기 서 있는 최불암은 목소리에 연기까지 덧붙인다. 어느 시골길에서 혹은 어느 어촌 바닷가에서 혹은 어느 산사에서 마치 전국의 음식을 진지하게 연구하려 돌아다니다 멈춰선 듯한 최불암은 설명 중간 중간에 특유의 표정과 제스처를 집어넣는다. 때론 허허로운 웃음을 내레이션에 넣음으로써 자칫 딱딱해질 수 있는 꽉 찬 정보전달에 여백을 만들기도 한다.

물론 이 신들린 듯한 내레이션을 더더욱 맛나게 만들어주는 건 대사다. 마음으로 먹는다는 사찰음식과 스님들의 수행을 "억지로 물을 내지 않아도 익어가며 물을 내는 열무김치처럼" 같은 적절한 표현으로 쓰여진 대사는 최불암의 목소리와 착착 맞아 떨어지며 감칠맛을 더하게 해준다. 그래서 '한국인의 밥상'이라는 맛좋은 상차림은 단지 음식이라는 소재에 카메라를 들이미는 것에서 나오지 않는다. 제대로 된 소재와, 그걸 차근차근 정보적으로 담아낸 영상들과, 때론 정겹기까지 한 어느 마을 사람들의 목소리들은 물론 잘 준비된 재료들이다. 하지만 그것보다 중요한 건 그 준비된 재료에 맛좋은 표현으로 손맛을 내는 최불암이라는 '한국인의 밥상'만이 가진 비기(?)다. 최불암. '한국인의 밥상'에서 그는 정말 맛있다.

Posted by 더키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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