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의생2’, 이들의 행복은 돈, 명예가 아닌 커피 한 잔, 케이크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 적어도 tvN <슬기로운 의사생활2>의 이른바 99즈(99학번 의대동기 5인방)에게 ‘소확행’은 그런 뜻이 아니다. ‘소박해서 오히려 확실한 행복’이다. 율제병원을 사실상 이끄는 에이스들이고, 그래서 환자들과 병원 사람들의 존경은 물론이고 마음만 먹으면 돈도 명예도 모두 거머쥘 수 있지만, 이들은 그런 데는 관심이 없다.
대신 이들이 관심을 갖고 행복을 느끼는 건, 힘든 수술 후 맛보는 달콤한 케이크 한 조각이나, 퇴근길에 마시는 커피 한 잔, 다 함께 모여 간식으로 즐기는 라면 같은 것들이다. 그건 이들이 하는 일에 비해 너무 소박한 보상(?)처럼 느껴지는 게 사실이다. 율제병원에서 이들은 누군가의 생사가 달린 수술을 해야 하고, 때론 최선을 다해도 안 되는 일 앞에 절망하기도 한다. 이 정도로 힘겨운 일이라면 그 이상의 보상을 원할 만도 한다. 하지만 이들은 돈이나 명예, 권력 같은 보상이 자신들을 행복하게 해주지는 않는다는 걸 알고 있다.
VIP 환자를 받는 일에 채송화(전미도)가 열심인 이유는 거기서 나오는 수익이 이른바 키다리 아저씨를 통해 환우 돕기 기부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유명인이거나 병원의 VIP 환자를 수술하는 일은 그만큼 부담될 수밖에 없고, 때론 다소 무례한 일들도 겪기 마련이다. 하지만 채송화는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의 어려운 뇌수술을 성공시킨 한국 최고의 신경외과 의사라는 타이틀로 독일방송국에서 요청한 취재를 거부한다. 이유는 함께 수술했던 후배 의사들이 시간이 나지 않아서다. 그는 그 수술을 자기 혼자 한 게 아니기 때문에 혼자 하는 인터뷰를 거절한 것.
유명해질 수 있고 또 자신의 실력을 인정받을 수 있는 기회일 수 있지만 채송화는 거기에 집착하지 않는다. 대신 그 어려운 수술을 끝내고 나서 그가 받은 보상은 함께 수술에 들어갔던 허선빈(하윤경) 레지던트가 갖다 준 케이크 한 조각의 달콤함이다. 그 달콤함 행복이 어찌 케이크의 맛뿐이겠나. 무엇보다 자신을 진심으로 챙겨주는 후배들의 소박하지만 따뜻한 마음이 주는 행복감일 테다.
어렵게 아이를 갖게 됐지만 정상적인 분만이 어려운 산모를 끝까지 도우려 했던 양석형(김대명)은 끝내 아이를 잃게 된 산모에게 위로의 문자를 보냈다. ‘산과교과서의 첫 장에 이런 글이 있네요. 때때로 불행한 일이 좋은 사람들에게 생길 수 있다.’라는 문자 메시지에 산모는 꽃다발과 함께 편지를 보냈다. 그 편지에는 양석형에 대해 산모가 전하는 감사의 마음이 담겨 있었다. “교수님 미안해하지 마세요. 교수님 덕분에 아기 심장소리도 듣고 태동도 처음 느껴봤습니다.” 의사로서 쉽지 않은 선택을 해야 하고, 그것이 때론 원치 않는 결과로 돌아와 힘겹게 만들지만, 그걸 풀어주는 건 대단한 보상이 아니라 환자와의 편지 한 통이라는 걸 이 에피소드는 보여준다.
수술 후 남은 실밥을 빼는 걸 두려워해 계속 울고 보채는 아이를 끝까지 웃으며 기다려주는 ‘생불’ 안정원(유연석)이나, 간 이식 수술을 두 딸의 간 기증으로 했지만 여전히 술을 마시는 환자에게 “자식이 간 기증 해주는 것 당연한 일 아니다”라며 그건 “목숨을 거는 일‘이라 강변하는 이익준(조정석) 그리고 어려운 수술을 혹여나 실패할까 노심초사하며 결국은 성공해내는 김준완(정경호)도 그 힘겨운 상황들을 보상해주는 건 대단한 게 아니다. 오랜 친구들과의 장난이나 농담, 사랑하는 사람과의 한 끼 식사나 전화 한 통, 그리고 다 함께 모여 노래를 부르는 그런 소박한 일들이 이들을 행복하게 해주는 보상이다.
많은 의학드라마들이 생명을 위해 싸우는 의사의 영웅담을 담거나, 혹은 엇나간 권력에의 의지 때문에 벌어지는 조직 내 암투를 담기도 하지만, 결국 의사라는 직업의 본질은 환자의 생명을 돌보는 일이다. 그래서 많은 의사들은 그 생명을 들여다보며 그보다 귀한 것이 없다는 걸 알고 있지 않을까. 그러니 <슬기로운 의사생활2>에서 99즈가 행복을 느끼는 소박한 보상들은 돈이나 권력과는 다른 따뜻한 인간을 통해 얻어지는 것이라는 걸 확인하게 된다. 이것이 우리에게 잔잔한 위로를 주는 ‘슬기로운 삶’이다. 의사들만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닌.(사진:tvN)
'동그란 세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전원일기’와 최불암, 이것이 연기이고 우리네 인생이다 (0) | 2021.07.16 |
---|---|
왜 지금 다시 ‘전원일기’인가 (0) | 2021.07.10 |
‘멸망’, 적어도 뻔한 현대판 왕자보다는 낫다 (0) | 2021.07.03 |
‘슬기로운 의사생활2’, 자극 콘텐츠 시대, 편안한 힐링드라마의 참맛 (0) | 2021.06.27 |
‘멸망’, ‘간동거’, 초현실적 존재와의 로맨틱 코미디 (0) | 2021.06.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