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타임리프라도 ‘명불허전’은 달랐던 까닭

마지막에 즈음해 드디어 tvN 주말드라마 <명불허전>이 왜 굳이 타임리프라는 장치를 사용했는가 하는 그 진심이 보인다. 조선 최고의 침구술 실력을 가진 허임(김남길)이 400년이라는 시간을 뛰어넘어 현재로 떨어지는 그 설정이 처음에는 어딘지 그 이질적 시간에 놓은 인물이 겪는 흥미를 위한 것이 아닐까 여겨졌던 게 사실이다. 조선의 의원이 현재에서 느끼는 황당함이 주는 코믹함이 있었고 침 하나로 위급한 생명을 살려내는 상황이 주는 재미도 있었기 때문이다. 

'명불허전(사진출처:tvN)'

하지만 만일 이 드라마가 이러한 타임리프의 재미만을 추구했다면 그 메시지는 앙상해졌을 지도 모른다. 물론 조선과 현재를 허임과 최연경(김아중)이 함께 오가며 겪는 파란만장한 상황들이 주는 흥미로움을 빼놓을 수 없고, 그러면서 두 사람이 차츰 가까워지고 서로 진가를 알아보며 사랑하게 되는 과정이 주는 재미도 빼놓을 수는 없다. 하지만 <명불허전>은 거기 머물지 않고 왜 이 드라마가 타임리프라는 장치를 활용했는가 하는 이유를 끝까지 놓치지 않았다. 

이 드라마에서 타임리프는 결국 각자 자신의 위치에 서서 소임을 다하는 것이 그 사람이 가장 빛나게 된다는 메시지를 드러내는 장치이기도 하다. 그저 마음대로 시간을 뛰어넘는 것이 아니라 허임이 죽어야 시간을 뛰어넘는다는 건 의미심장한 대목이다. 조선에 두고 온 아이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자신의 심장을 찌르는 의원이라는 설정은 자신의 소임을 다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심지어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는 인물을 그대로 표상한다. 

즉 이 드라마의 타임리프는 그저 재미를 위해 설정된 것이 아니라, 그 주제의식을 가장 잘 드러내기 위해 설정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또한 이 장치를 통해 조선이든 현재든 그리 다르지 않는 서민들의 현실을 보여주고, 그래서 의원이든 의사든 진정 자신의 소임을 다하기 위해서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가를 드러내주기도 했다. 

천출인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여 재물을 모으는 것으로 그 허탈함을 채워보려고도 했던 허임이지만, 그가 차츰 진정한 의원의 길이 무엇인가를 알게 되는 과정도 이 타임리프를 통해서였다. 시간을 뛰어넘는 과정에서 어느 곳에서든 자신을 필요로 하는 아픈 생명들이 있다는 걸 확인하게 되고, 그들을 위해 침을 들었을 때 결국 자신이 행복해질 수 있다는 걸 깨닫기 때문이다. 

마지막에 즈음해서 이 타임리프라는 장치는 그 소임이 사적인 사랑의 차원까지도 뛰어넘을 수 있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 활용된다. 결국 허임은 조선으로 돌아가 왜란으로 피 흘리는 민초들을 위해 침을 든다. 침술은 값비싼 약재를 쓰지 않고도 환자의 생명을 구하기도 하기 때문에 가난한 서민들을 위해 더더욱 좋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그는 그 많은 민초들을 끝내 외면할 수 없었다. 

어찌 보면 뻔할 수 있는 타임리프라는 장치를 이렇게도 쓸 수 있다는 건 작가가 이 장치를 그저 흥미로 접근한 것이 아니라 그 안에 담겨진 함의를 읽어내려 했다는 뜻이다. 시간대는 달라도 상황은 그리 다르지 않고, 그 각자의 시간대에서 우리는 저마다 자신의 소임에 최선을 다할 때 비로소 그 존재의 가치가 빛날 수 있다는 것. <명불허전>의 타임리프는 그 판타지 안에 꽤 진중한 메시지를 담아내는데 성공했다. 같은 장치라도 얼마나 더 깊게 궁구하느냐에 따라 다른 결과가 나올 수 있다는 걸 이 드라마는 확인시켜 줬다.

‘효리네 민박’, 어째서 보고만 있어도 위로가 될까

잠시 동생의 졸업식 때문에 미국에 간 이지은(아이유)의 빈자리는 크다. 이효리와 이상순이 설거지를 하면서도 청소를 하면서도 또 밥을 먹으면서도 입에 ‘지은이’를 올린다. “지금쯤 지은이는...”이라고 하고, “보고 싶다”는 말을 자꾸만 하게 된다. 그리고 그건 JTBC <효리네 민박>을 보고 있는 시청자들도 마찬가지다. 어딘지 쓸쓸하게도 보였던 그 뒷모습이나 허겁지겁 뛸 때 뒤뚱대던 모습, 그리고 누군가를 쳐다볼 때 동그랗게 떴던 눈과 우스워 죽겠다는 듯 박장대소했던 그 모습이 그 빈 공간에 어른거린다. 있을 땐 몰랐는데 없으니 그 사람의 존재가 더 빛이 난다. 

'효리네 민박(사진출처:JTBC)'

이런 빈자리가 주는 떠난 사람의 온기는 <효리네 민박>을 찾았던 많은 손님들에게서도 똑같이 느껴진다. 잠시 머물다 돌아간 분들이지만 그 잔상은 그 공간 곳곳에 스며있다. 누군가는 깔깔 웃었고 누군가는 자못 심각하게 속내를 털어 놓았으며 누군가는 울컥 쏟아지는 눈물을 참지 못했다. 그들은 모두 밝은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저마다 쉽지 않은 현실을 마주하고 있었다.

예고 동창생인 태윤씨와 조은씨는 햇살이 내리쬐는 민박집 한 켠에 앉아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 눈물이 쏟아졌다. 무려 5수를 해서 대학에 들어간 조은씨가 눈물을 흘리자 이효리가 다가가 그녀를 다독였다. “학교만 가면 행복해질 줄 알았다”고 했다. 하지만 자존감이 한참 낮아져 생활하는 게 쉽지 않다는 것. 이효리는 조은씨에게 “내가 예쁘지 않으면 날 예쁘게 안 봐줄 거라고 생각했다. 근데 그건 내가 나를 예쁘게 보지 않아서 그런 거다. 사람들이 날 예쁘게 안 봐서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건 조은씨에게 하는 이야기지만, 이효리가 자신에게 하는 이야기이기도 했을 것이다. 

늘 밝아 보이기만 했던 영업사원팀들에도 자신들만의 고충은 있었다. 경문씨는 늘 웃는 얼굴로 대해야 하는 부담감을 이야기했다. 요가를 하며 유독 뻣뻣했던 경문씨에게 호흡에 대해 이효리가 이야기하자, 그는 직업 때문에 사실 한숨도 제대로 내쉬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것이 보는 이들이 기분 나쁘게 생각할 수도 있기 때문이란다. 하지만 이효리는 그에게 한숨의 사전적 의미를 되새겨줬다. ‘근심 설움 또는 긴장이 풀려 안도할 때 쉬는 숨’이 한숨이니 꼭 나쁜 건 아니라는 것. 

조은씨의 눈물을 슬쩍 봤던 이상순이 이효리에게 그 이유를 물었다. 그러자 “대학만 가면 모든 게 행복할 줄 알았대”하고 이효리가 말했다. 그러면서 두 사람은 새삼 행복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갔다. 결혼만 하면, 제대만 하면 그리고 가수로 성공만 하면 행복할 줄 알았다고 했다. 문득 이효리는 “행복해야 된다는 생각을 버리면 행복한데...”라고 했고 이상순은 살짝 한숨을 내쉬며 “그냥 사는 거지..”라고 했다.

많은 이들이 이 민박집에 찾아왔고 또 떠나갔다. 그들은 너무나 다 다른 사람들이었지만 공통된 한 가지는 행복 하고 싶어 한다는 것이었다. 그 행복을 위해 꿈을 꾸고 무언가가 되고 싶어 하고 잠시 힘겨운 도시생활을 벗어나 저들끼리의 한가로운 시간을 만끽한다. 맛있는 음식을 먹고 쇼핑을 하고 낯선 곳을 여행한다. 그들은 이 곳에서 어쩐지 행복해 보였다. 무엇을 하기만 하면 행복한 것이 아니라, 그냥 그 곳에서 사람들과 부대끼고 함께 웃고 때론 아픔도 나누는 그 자체가 행복해 보였다. 

이제 마지막 손님을 받는 <효리네 민박>. 하지만 그 꽤 긴 시간들 속에 이 공간에는 많은 사람들의 온기들이 행복한 잔상으로 남겨져 있다. 멀리 떠나 있어 더 그리워지고, 그래서 그 사람이 남겨 놓은 빈자리의 흔적이 더 소중해지는 것처럼 지나칠 땐 몰랐던 것들이 지나고 나서는 행복이었다는 것을 우리는 뒤늦게 깨닫곤 한다. 아마도 <효리네 민박>을 보는 것만으로도 어떤 위로가 되는 건 바로 그런 삶의 비의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어서가 아닐까. 생각해보면 우리가 일상에서 소소하게 겪은 많은 행복한 순간들이 있었다는 것.

JTBC 드라마의 신기원 ‘품위녀’, 무엇이 그리 특별했을까

욕심쟁이 드라마다. <품위 있는 그녀>는 결국 많은 이들이 예상한 대로 마지막 회 12% 시청률(닐슨 코리아)을 기록하며 JTBC 미니시리즈 사상 신기록을 세웠다. 이로써 백미경 작가는 전작인 <힘쎈여자 도봉순>에 이어 이번 작품까지 성공시키며 JTBC 드라마의 한 획을 그었다. 

'품위 있는 그녀(사진출처:JTBC)'

하지만 이 작품이 얻은 건 단지 시청률만이 아니었다. 스릴러 장르에서부터 사회 풍자극, 치정극 같은 다양한 장르적 색채들을 한 드라마 안에 녹여놓은 완성도 높은 대본이 있었고, 김희선과 김선아를 중심으로 빈틈없는 연기의 향연이 있었다. 보통 시청률과 화제성을 가져가고, 대본과 연출과 연기가 삼박자를 이룰 때 가장 이상적인 드라마라고 할 때, <품위 있는 그녀>는 그 기준에 모두 부합한 드라마였다. 

<품위 있는 그녀>가 시청자들의 시선을 잡아 끈 건 무엇보다 강남 부호들의 위선적인 삶을 들여다본다는 쾌감이었다. 겉보기엔 화려해보이지만 그 안을 들여다보면 불륜과 치정과 돈 관계로 얼룩진 구질구질함이 이 드라마가 폭로해낸 것이었다. 욕망으로 얼룩진 그 삶이 실체와는 너무나 멀리 떨어진 허망한 것이라는 걸 백미경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통찰해냈다.

단지 폭로의 쾌감만 있었다면 <품위 있는 그녀>가 가슴까지 어떤 울림을 주는 드라마가 되어주지 못했을 것이다. 박복자(김선아)라는 인물이 이 세계에 들어와 파란을 일으키는 이야기지만, 드라마는 후반으로 갈수록 이 인물에 대한 동정적인 시선을 담아냈다. 그토록 꿈꾸던 진정한 품위와 우아함의 세계에 도달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다 결국 파국을 맞는 그 삶을 통해 우리네 서민들이 갖는 욕망과 그 욕망의 끝을 동시에 보여줬다. 

그러면서 어떤 길이 진정한 행복에 이르는 길인가를 그 세계로부터 탈주해 나와 스스로의 삶을 개척해나가는 우아진(김희선)이라는 인물을 통해 그려냈다. 진정한 삶의 행복과 가치는 돈으로 얻어질 수 없는 것이고, 자신이 어떤 행동을 평상시에 하는가에 달려 있다는 걸 ‘품위 있는 그녀’의 캐릭터를 통해 드러냈다. 그것이 진정한 ‘품위’에 이르는 길이라는 것.

이처럼 자못 무게감이 있는 메시지를 백미경 작가는 지극히 대중적인 작법들을 통해 끝까지 긴장을 놓치지 않는 이야기로 그려냈다. 이미 첫 회부터 예고된 것이지만 박복자의 죽음을 둘러싼 미스터리는 마지막 회까지 그대로 이어졌고, 작가가 공언한 것처럼 드라마가 끝나기 10분 전에서야 그 진범이 밝혀지는 것으로 시청자들의 눈을 사로잡았다. 

그 진범이 누구인가가 사실 그리 중요한 문제는 아니지만 그런 장치가 있어서 시청자들은 끝까지 궁금증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누가 범인인가를 추측하게 만드는 그 장치를 통해 여러 용의자들(?)의 실체에 더 접근할 수 있는 기회가 제공되기도 했다. 마지막 회의 또 다른 떡밥으로서의 풍숙정 김치의 정체는 그 실체가 조미료였다는 게 밝혀짐으로써 어떤 통쾌함을 안겨주면서도 이 드라마가 하려는 메시지를 전했다. 맛도 모르면서 비싸게 산다고 진짜 맛이 아니라는 것. 품위가 그러하듯이.

<품위 있는 그녀>는 지금껏 JTBC 드라마가 추구해온 완성도 높은 드라마에 대중성까지 확보해낸 작품으로 시청자들에게 남았다. 메시지를 담은 캐릭터, 그리고 그 캐릭터들이 만들어가는 흥미로운 이야기, 그 이야기를 살아있는 인물로 만들어내는 연기와 연출... 좋은 작품의 교과서 같은 면을 보여준 작품이다.

‘하백의 신부’가 전하려는 진심, 과연 통할 수 있을까

“잘 들어. 물의 신, 하늘의 신, 땅의 신. 우리들은 자연이다. 곧 나는 자연이다.” 하백(남주혁)의 이 대사는 낯설다. 현실적인 느낌이 없기 때문이다. 그건 이 주인공이 하백이라는 신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런 낯선 말을 하는 인물 앞에 선 소아(신세경)의 황당과 당황은 마치 시청자들이 느끼는 것과 다르지 않을 게다. 그래서 그녀는 자기가 듣고 싶은 대로 그 말을 듣고는 이렇게 반문한다. “나는 자연인이라고요?”

'하백의 신부(사진출처:tvN)'

우리에게는 <나는 자연인이다>라는 프로그램의 제목이 “나는 자연이다”라는 대사보다 훨씬 더 익숙하다. 진지하기 그지없는 얼굴로 “나는 하백이다”를 반복해서 말하는 인물을 주인공으로 세우는 드라마는 바로 그 비현실성 때문에 초반 몰입이 어려울 수밖에 없다. tvN <하백의 신부>라는 드라마는 그래서 이를 위해 병맛 코미디를 그 장르로 차용해 이 어려운 몰입을 유머로 넘어서려 한다. 

<하백의 신부>의 첫 방에 나오는 비판적 목소리들은 사실 예견된 것들이다. 이 작품은 원작 만화가 가진 ‘신계의 이야기’라는 난점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계로 내려온 신의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나 그 신을 연기한다는 건 사실 시청자들을 몰입시키기가 몇 배로 어려울 수밖에 없다. 그래서 우리는 저 소아의 입장이 된다. “나는 자연이라고” 이렇게 말하는 하백에게 자꾸만 “나는 자연인이라고요?”라고 묻게 된다. 

이런 병맛 코미디 설정을 몰입을 위한 전략적 장치로 세우고 있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부분은 왜 이런 하백이라는 신의 이야기를 지금 하고 있는가 하는 그 의도일 게다. 사실 비현실적인 설정과 이를 넘어서려는 병맛 코미디라는 설정의 겉면 때문에 가려져 있지만, <하백의 신부>는 첫 회에 상당 부분 그 의도를 대사 속에 드러내고는 있다. 그것은 ‘진정한 행복’에 대한 질문이다. 

“이봐 종. 넌 정말 가장 필요한 게 도오온이야? 인간에게 왜 그렇게 도오온이 필요한거지?” 하백이 묻자 소아는 말한다. “도오온이 있으면 행복해질테니까요.” 그러자 하백은 그녀의 말을 뒤집어 그 의미를 되새긴다. “이봐 종. 넌 가장 필요한 게 도오온인데 도오온을 가지면 행복해지니까. 가장 필요한 건 행복이군.”

물질적인 풍요가 행복을 가져다 줄 것이라고 믿는 소아에게 하백은 거꾸로 그녀가 진짜 원하는 건 돈이 아니라 ‘행복’이라는 사실을 일깨운다. 하지만 그 단순한 사실을 그녀는 머리로는 이해할지 몰라도 가슴으로 받아들이지는 못한다. 당장 대출을 연장하지 않으면 파산할 위기에 처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가진 자들은 너무나 쉽게 아주 낮은 금리에 돈을 빌릴 수 있지만, 없는 이들은 어렵게 그것도 아주 높은 금리에 울며 겨자먹기로 돈을 빌려야 겨우 살아갈 수 있는 현실 앞에 그녀는 서 있다. 

“당신 말이 맞아요.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건 행복일지 모르죠. 정말 지쳤거든요. 그러니 이제 그만 가주세요.” 그녀는 말한다. 자신이 지쳤다고. 그리고 그렇게 된 원인을 그녀는 돈이 없어서라고 생각한다. 자신에게 남은 것이라곤 산 속에 있어 아무 짝에도 쓸모없고 팔리지도 않는 땅이 전부이니. 

그 산 속에서 하백과 그녀가 마주하는 상황은 그래서 그 병맛 코미디 너머를 바라보면 자못 의미심장하다. 아무 것도 없는 그녀가 마주한 건 하백 스스로 얘기했듯, ‘자연’이니 말이다. 그 자연 속에서 네비게이션에 기대 길을 가던 그녀는 길을 잃는다. 그런데 그건 길을 잃은 것일까 아니면 자연 속에서 새로운 길을 찾게 된 것일까. 

지친 현실 속에서 돈이 구원이 될 것처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때론 아무 것도 없는 듯 보이지만 우리를 넉넉히 껴안아주는 자연이 주는 행복을 느낀 적이 있을 것이다. <하백의 신부>가 병맛 코미디 속에 숨겨 말하려는 진심은 어쩌면 이런 것이 아닐까. 누구나 다 가질 수 있지만 찾지 않으면 가질 수 없는 자연처럼 행복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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