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과 함께', 차태현과 함께 저승으로 이승을 위로하는 법만일 차태현이 아니었다면 이런 ‘바른 이야기’가 감동까지 줄 수 있었을까. <신과 함께-죄와 벌>은 실로 차태현이라는 배우가 가진 장점을 처음부터 끝까지 보여주는 영화다. 안티가 거의 없을 정도로 착하고 바른 이미지를 갖고 있고, 어딘가 짠한 역할에도 잘 어울리지만 동시에 코미디적인 웃음까지 줄 줄 아는 배우 차태현. <신과 함께>는 그래서 ‘차태현과 함께’여서 그 영화적 효과가 배가 된 작품이라고 말할 수 있다.

<신과 함께>는 물론 주호민 작가의 웹툰과는 사뭇 다른 이야기를 담고 있다. 하지만 이 작품에서 가장 중요한 건 이야기 그 자체보다 이승과 저승을 오가는 이 작품의 세계관이다. 영화는 시작과 함께 고층건물에서 아이를 안고 떨어져 내리는 김자홍(차태현)의 죽음으로부터 시작한다. 소방관으로서 각종 사고들로부터 인명을 구해내는 걸 업으로 살아온 그의 죽음은 그래서 저승에서는 ‘귀인’의 등장으로 축하받는다. 죽음은 비극일 수밖에 없지만 저승이라는 세계의 존재는 그 비극을 한 걸음 멀리 떨어뜨려 바라보게 한다. <신과 함께>가 저승을 여행하는 모험담을 그릴 수 있는 이유다.

그 누구도 보지 못한 세계, 저승을 여행한다는 콘셉트는 그 자체로 볼거리가 아닐 수 없다. 살인, 나태, 거짓, 불의, 배신, 폭력, 천륜이라는 7번의 재판을 거치기 위해 김자홍과 그를 수행하는 차사들이 겪는 모험담은 완전한 상상의 세계로 구축된 것이라는 점에서 흥미롭다. 외국의 판타지물에서나 봐왔던 기괴한 괴물들의 공격이나, 칼처럼 자라나 지나는 이들을 찌르는 나무 숲, 중력을 무시하는 듯 둥둥 떠다니는 바위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추락과 상승의 아찔한 경험 같은 것들이 시각특수효과에 의해 실감나게 그려진다.

어찌 보면 아이들의 상상력 같은 유치한 세계처럼 보이지만 그걸 조금 진중하게 만들어내는 건 저승에서 재판을 거칠 때마다 등장하는 김자홍의 삶이 주는 무게감이다. 저승의 세계는 끔찍한 면도 있지만 어딘지 가볍게 느껴지는 반면, 이승의 세계는 현실의 그 무거움이 김자홍이라는 ‘정의로운 망자’의 삶 속에서 고스란히 느껴진다. 

너무나 가난하고 불행해 더 이상 사는 것이 의미가 없어졌던 그 시절의 아픈 기억으로 인해 한 평생을 가족을 위해 희생하고 또 누군가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제 몸을 던지며 살아온 김자홍의 삶의 진면목이 하나하나 드러날 때마다 저승의 다소 희극적인 세계는 이승의 비극과 균형을 맞추며 영화를 유치하지 않게 만든다. 

결국 김자홍의 삶은 한 마디로 말해 비극이었다. 아픈 노모와 동생을 부양하기 위해 자신은 결코 행복한 삶을 살지 못했다. 이런 모습은 다소 개발시대 가장들의 면면들을 떠올리게 만든다. 영화의 마지막에 이르러 드러나는 진실 앞에서 관객들이 어쩔 수 없이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던 건 김자홍이라는 인물의 비극 속에서 남 이야기 같지 않은 구석을 발견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영화는 그 비극적인 삶이 결코 의미 없는 삶이 아니었고 나아가 염라대왕의 마음까지 돌려놓을 수 있는 가치를 지녔다고 말한다. 저승이라는 세계를 가져와 이승의 현실적 어려움들을 위로하는 이 영화의 방식이다. 지금이 어려워도 그것이 끝이 아니며 지금 노력하며 착하게 살아온 그 삶들은 반드시 보상받는다는 걸 영화는 말해준다.

다소 교과서적인 이야기인데다, 감동의 원천 그 밑바닥을 보면 ‘효’라는 다소 전통적인 가치(물론 그 가치는 지금 더더욱 요구되는 것이지만)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어 이를 인물로서 보여주는 김자홍이라는 캐릭터는 영화 전체의 구심점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보면 차태현이라는 배우가 얼마나 이 캐릭터와 잘 맞아 떨어지는가를 새삼 확인할 수 있다. 차태현이 주는 인간적인 호감이 아니었다면 이 영화의 다소 오글거리는 교과서적인 주제가 설득되기 어려웠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그가 있어 영화는 시종일관 흥미롭고, 우습기도 하며 나아가 먹먹해지는 경험들이 가능할 수 있었다.(사진출처:영화 '신과 함께')


망하거나 멘붕이거나, ‘강식당’의 기묘한 관전 포인트

내놓고 <윤식당>을 패러디했다고 밝혔고 <신서유기>로부터 탄생해 외전을 내세웠지만 tvN<강식당>은 ‘자기복제’가 아니냐는 시선이 존재했다. 하지만 3회가 방영된 지금 <강식당>은 <윤식당>의 그림자를 지웠다. <윤식당>과 비교되기보다는 <강식당>만의 색깔이 뚜렷하다는 게 증명되고 있어서다. <윤식당>이 윤여정이 가진 푸근한 느낌을 주는 힐링 예능에 가깝다면, <강식당>은 강호동이 가진 다소 거칠지만 웃음만은 빵빵한 리얼리티 예능에 가깝다.

실로 <강식당>이 <윤식당>을 이겨내는 방식은 기발했다고 보인다. 그것은 아예 처음부터 성공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망하지 않는 것을 목적으로 했고(물론 그것도 쉽지 않지만), 처음 경험하는 식당 개업에서의 어떤 성과에 집중하기보다는(이를 테면 손님들의 반응 같은) 물밀 듯이 밀려드는 손님들과 다양한 주문 때문에 멘붕에 빠져버리는 출연자들의 모습이 주는 리얼한 웃음에 집중했기 때문이다. 

“화내지 말아요. 우린 행복한 강식당이니까요.” 이 말이 이토록 웃긴 멘트인지 새삼 놀라게 되는 건 강호동이 그간 갖고 있는 자신만의 캐릭터 덕분이다. <1박2일> 시절부터 버럭대기 일쑤고 심지어 주먹질(?) 앞서는 모습으로 ‘시베리아 야생 호랑이’ 캐릭터를 세우고, 바로 그 캐릭터가 주는 두려움을 다른 출연자들과의 케미를 통해 웃음으로 만들어오는데 익숙한 그다. 굉장히 세보이지만 은지원 같은 어린이 캐릭터(?)에 쉽게 무너지고, 이수근 같은 은근히 놀려먹는 여우 같은 캐릭터에 당하는 모습이 주는 웃음. 강호동은 자신이 어떻게 소비될 때 빵빵 터지는 지 정확히 알고 있다.

그래서 <강식당>에 처음 등장한 강호동은 “내가 무슨 요리냐”며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황당해하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도전하는 게 중요한 가치라는 걸 내세우며 백종원 스승에게 돈가스와 오므라이스 특별 레시피를 전수받고 제주도에 강식당을 열게 된다. 첫 날 식당 운용이 만만찮다는 걸 경험하고 둘째 날 준비되지 않았던 포장 손님에 수프가 다 떨어지는 사태를 맞으며 혼이 나가버리는 출연자들이 서서히 감정이 피어오르는 모습으로 분위기를 만들더니, 그 순간부터 강호동은 ‘화를 다스리려는’ 모습으로 포복절도의 웃음을 꺼내놓는다.

끝없이 ‘침착’을 외치고 ‘행복’을 주장하지만 실상은 속에서 강호동은 부글부글 끓는 모습을 드러내고, 그 포인트를 정확히 알고 있는 이수근은 대놓고 강호동이 하는 말 하나하나에 토를 달며 그의 부아를 끌어올려놓는다. 결국 마음의 안정을 위한 ‘화면 조정 시간’이라며 제주도의 풍광 속에 묘한이가 놓여 있는 장면이 흘러나올 때 우리는 그 가려진 장면 뒤에 벌어졌을 강호동의 이수근 응징(?)을 상상하며 웃을 수밖에 없다.

물론 이것은 그간 이들이 해온 관계를 통한 캐릭터쇼 속에서 자연스럽게 나오는 것이지만, 그렇다고 인위적으로 설정한 것은 아니다. 어쨌든 그들은 제주도에서 강식당을 연 것이고, 그 곳을 찾은 분들은 실제 손님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실제 리얼리티 카메라 속에서 그들은 식당 영업이 갖는 ‘어려움’을 보여줄 뿐이다. 물론 워낙 예능감이 좋은 이들이라 그 어려움을 드러내는 방식에서 웃음의 포인트를 알고 있을 뿐. 여기서 이들의 캐릭터쇼와 리얼리티 카메라는 절묘한 조합을 만들어낸다.

결국 <강식당>이 <윤식당>의 그림자를 벗어날 수 있었던 힘은 ‘식당 개업의 어려움’이라는 새로운 관전 포인트를 <신서유기>를 통해 단단히 다져진 캐릭터들과 관계 속에서 보여줬기 때문이다. 망할 걸 뻔히 알면서도 불나방처럼 그걸 실행하는 모습이나 정신없는 영업의 리얼한 현장 속에서 감정조차 추스르지 못하는 모습은 그 자체로 웃음을 주면서 동시에 <윤식당>과는 다른 관점에서 시청자들의 마음을 잡아끈다. 

아마도 식당 개업이라는 현실은 <윤식당>이 보여주는 것처럼 말랑말랑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그것은 백종원이 <푸드트럭>을 통해 보여주는 것처럼 더 살벌한 세계이고 망해서는 절대 안 되는 그런 간절함과 절실함이 존재하는 곳이니 말이다. 하지만 <강식당>은 그런 성공의 강박과는 상관없는 ‘망하지 않으면 다행’이라는 낮은 기대치로 시작한다. 성공보다는 손님과 직원의 ‘행복’을 주장한다. 세상에 이런 식당이 있을까. 그 곳의 현실은 멘붕의 연속이지만 이상하게도 웃음을 주는 그 곳이 마음에 끌린다. 

찰리 채플린은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고 했던가. <강식당>은 그 희비극을 리얼하게 담아낸다. 누가 봐도 괴로운 멘붕 상황이지만 그것을 슬쩍 틀어 우스운 상황으로 보여준다. 이런 희비극을 틀어 보여주는데 있어서 그 누구보다 확실히 주목되는 건 강호동과 이수근의 존재감이다. 역시 오래도록 해온 코미디 공력이 그냥 얻어진 것이 아니라는 걸 이들은 <강식당>을 통해 확실히 보여주고 있다.(사진:tvN)

각자 서야 가족도 행복, ‘황금빛’의 새로운 가족 제안

“난 이 집 가장 졸업하겠다.” KBS 주말드라마 <황금빛 내 인생>에서 서태수(천호진)는 아들 서지태(이태성)에게 그렇게 말했다. 과거 노모의 병환 때문에 아들에게 진 빚을 집 보증금을 빼서 갚겠다고도 했다. 집 나가서 어떻게 혼자 살 거냐는 아들의 말에 아버지는 코웃음을 쳤다. 혼자서였다면 더 행복하게 잘 살았을 거라고. 가족을 부양해야하는 가장이었기 때문에 희생하며 살아왔다고.

서태수의 ‘가장 졸업’ 선언은 그간 겪은 일들로 인해 자신의 삶을 되돌아본 결과였다. 사업을 망하기 전까지 그토록 노력해왔던 그의 삶들은 까마득히 잊어버린 채, 망한 후 힘들었던 일들만 가장의 책임으로 치부하는 가족들에게 그는 실망했다. “사업 망해서 지금까지 10년 동안 양미정 당신 나 한 번이라도 위로해준 적 있냐. 지태 지안이 지수 네들이 나 한 번이라도 안아준 적 있어?...그래. 나 못난 애비다. 무능한 아버지야. 서태수 너 인생 실패했다.”

서태수는 그래서 하나하나 정리해나가고 있었다. 지수(서은수)를 찾아가 그는 25년 전 그를 데려와 자식으로 키운 걸 사과했다. 부모의 사과. 그것은 더 이상 부모 자식 간의 관계를 이어가지 않겠다는 의미다. “네가 믿든 안 믿든 넌 항상 내 딸이었고 사랑했다. 하지만 훔친 딸이니까 내 딸이 아닌 거다.” 

가족을 위해 살아왔던 그는 그것이 허망했다는 걸 깨닫는 중이다. 나이 들면 시골로 내려가 조촐하게 농사나 지으며 살아가겠다던 소박한 가장의 꿈은, 대학을 나와도 여전히 자식들을 부양해야 하는 현실 앞에서 무너졌고, 부모가 금수저냐 흙수저냐에 따라 자식의 미래도 결정되는 현실 앞에서 흙수저 부모이기 때문에 부정당하는 절망감을 느끼게 했다. 그의 가장 졸업 선언이 공감 가는 이유다.

<황금빛 내 인생>은 금수저 흙수저로 나뉘는 수저 계급의 사회 속에서 가족이, 핏줄이 족쇄가 되어 개개인의 삶을 불행하게 하는 현실을 그려내고 있다. 아버지 서태수가 느끼고 있는 절망감처럼, 재벌가의 딸인 줄 알고 들어갔다가 사실은 엄마의 거짓말이었다는 걸 알고는 그 집에서 쫓겨나고 자신의 가족으로도 돌아가지 못하는 서지안(신혜선)도 같은 절망감을 느낀다. 그래서 죽을 결심까지 하지만 친구 덕분에 돌아와 조금씩 일상을 되찾아가던 중 그는 새삼 부모 탓을 하며 희생을 감수했던 자신이 얼마나 어리석었던가를 깨닫는다. 

“자기 삶은 자기가 사는 것”이라는 하우스 메이트의 말 한 마디에 서지안은 문득 그간 자신이 어떻게 살아왔는가를 떠올린다. 부모의 지원을 마치 당연히 해줘야 할 것처럼 여겼고 그래서 그것이 현실적으로 되지 않자 스스로 꿈을 접고 희생하는 삶을 선택했다. 하지만 그건 부모의 탓이 아니라, 자신의 선택이었을 뿐이었다. 그래서 심지어 재벌가 딸 이야기가 나왔을 때 바로 그 집으로 들어가겠다 했던 자신의 모습이 얼마나 어리석었던가를 그는 새삼 깨닫는 중이다.

가족이 따뜻한 둥지가 아니라 족쇄가 되는 사정은 서지수가 들어간 재벌가 최도경(박시후)의 집도 마찬가지다. 재벌가의 위신을 지키기 위해 서지안처럼 위장해 공식석상에 서야 하는 걸 거부한 서지수는 할아버지 노양호(김병기)의 냉혹한 진짜 얼굴을 마주하게 된다. “네까짓 게” 자신의 얼굴에 똥칠을 했다는 사실에 분노하는 노양호는 “황금 물고 태어나면” 해야 할 것들이 있다며 서지수를 집밖에 내보내지 말라고 한다. 서지수는 이 재벌가의 핏줄에 황금빛 족쇄가 채워져 버린 셈이다. 

최도경(박시후) 역시 재벌가의 이미 정해진 삶으로서 결혼할 가문과 상대가 있었지만 서지안에 대한 자신의 마음을 깨닫고 그걸 거부한다. 그 역시 이 재벌가의 핏줄 족쇄에서 벗어나기 위해 모든 걸 포기하려 한다. 그것이 자신이 원하는 삶이 아니라는 걸 깨닫고는 온전히 자신의 선택으로 결정하는 삶을 통해 행복을 찾겠다는 것. 

<황금빛 내 인생>은 그래서 지금의 가족드라마들이 내세웠던 것과는 다른 가족상을 내세운다. 그것은 서로 핏줄로 얽혀 끈끈한 가족상이 아니라 각자 자신의 삶을 찾아가는 가족상이다. 부모든 자식이든 그리고 서민이든 재벌가든 가족이 핏줄이라는 이유로 족쇄가 되는 삶이 아니라 각자 스스로 서서 비로소 행복해질 때야말로 가족이 행복해질 수 있다는 걸 제시한다. 

김수현 작가의 2008년 드라마 <엄마가 뿔났다>는 엄마의 휴업 선언을 다룬 바 있다. 그리고 10년 가까이가 지난 지금 <황금빛 내 인생>은 아빠의 가장 졸업 선언을 그리고 있다. 가족이기 때문에 자신의 삶을 희생하는 부모와, 그것을 당연시 여기며 자신의 삶이 부모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라 받아들이는 자식이라면 그 가족은 따뜻한 둥지가 아닌 서로를 옭아매는 족쇄가 아닐까. 각자 삶은 각자 개척해야 비로소 모두가 행복해질 수 있다는 것. <황금빛 내 인생>이 제안하는 새로운 가족상이다.(사진:KBS)

신원호 PD의 마법, ‘감빵생활’이 주는 판타지라니

도대체 이 따뜻함의 정체는 뭘까. tvN 수목드라마 <슬기로운 감빵생활>을 보다보면 감방도 결국은 사람 사는 곳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교도소는 구치소와는 공기 자체가 다르다는 엄포에도 불구하고 제혁(박해수)이 지내게 된 감방 안 사람들은 의외로 따뜻하고 인간적이다. 

감방에 처음 들어가게 된 제혁이 보게 되는 첫 번째 에피소드로 라면을 끓여먹는 이야기는 이들의 반전 매력을 드러낸다. 마치 탈옥이라도 할 것처럼 쉬쉬하며 무언가를 공모하던 이 감방사람들은 그러나 그것이 뜨끈한 물에 라면을 끓여먹으려는 ‘작전’이었다는 걸 보여주며 이들이 꿈꾸는 것들이 이런 소소한 것이 주는 행복이라는 걸 알려준다. 

그 감방의 방장격인 장기수(최무성)는 겉보기에 무시무시한 포스를 풍기지만 장발장(강승윤)이 아버지라 부를 만큼 방 사람들을 챙기는 인물이다. 장발장은 닉네임처럼 빵을 훔치다 감방에 들어온 인물이고, 고박사(정민성)는 기업사기 전과로 들어왔지만 고발 고소 전문이다. 카이스트(박호산)는 도박으로 들어왔지만 뭐든 뚝딱 뚝딱 만들어내는 만물박사. 풍기는 포스와 달리 혀 짧은 소리로 ‘신라면’인지 ‘진라면’인지 알 수 없는 말이 웃음을 주는 캐릭터다. 그리고 이 방에 들어오게 된 몽롱한 정신으로 할 이야기는 다 하는 나름 귀여운 캐릭터 뽕쟁이(이규형)도 있다.

<슬기로운 감빵생활>이 주는 따뜻함의 원천은 이런 정이 가는 캐릭터들이 보여주는 소박한 욕망들이다. 마침 방영하는 <영웅본색>을 보는 것이 소원이라는 장기수를 위해 카이스트가 한 채널 밖에 나오지 않는 감방의 TV를 어떻게든 건드려 다른 채널로 돌리려 안간힘을 쓰는 장면은 우스꽝스러우면서도 훈훈함을 준다. 결국은 장발장이 슬쩍 해온 리모콘으로 쉽게 채널을 돌려버리지만. 

모가지 밖에 나오지 않는 닭볶음이나 일주일에 한 번밖에 허락되지 않는 온수 샤워를 위해 끝없이 민원을 넣어 상황을 호전시키는 고박사 역시 마찬가지다. 이들은 그렇게 해서 제대로 된 닭요리가 나오고 매일 온수 샤워를 할 수 있게 되는 그 상황만으로도 커다란 행복감을 느낀다. 

물론 그렇다고 이 교도소에 위기상황이 없는 건 아니다. 가구를 만드는 작업실의 반장(주석태)은 제혁에게 처음에는 호의를 베풀지만 제 맘대로 되지 않자 그 어두운 진짜 얼굴을 드러낸다. 제혁을 성추행하려 하지만 그 때 마침 이 교도소로 오게 된 교도관 준호(정경호)에 의해 불상사를 피하게 된다. 제혁의 오랜 친구인 준호가 애써 힘을 써 이 교도소로 오게 된 건 오로지 친구를 보호하기 위해서다. 그런 점에서 보면 이 교도소가 제혁에게 주는 위기상황과 또 그를 보호해주려는 인물 사이의 적절한 균형과 긴장감이 이 드라마에는 존재한다고 볼 수 있다.

‘결국 그 곳도 사람 사는 곳’이라는 그 느낌이 주는 소박함과 훈훈함은, 사회와는 유리되어 있고 살벌하기 이를 데 없지만 그 곳에서도 ‘슬기로운’ 방식으로 인간적인 삶을 희구하는 인물들의 따뜻함에서 비롯된다. 그래서 우리는 이들의 감방생활을 보고 있는 것이지만 또한 이들을 통해 우리 자신을 다시금 보게 되는 것. 

하는 일이 잘 안되고, 아무리 노력해도 자꾸만 좌절되는 현실을 살아내고 있는 분들이라면 이 감방생활에서 라면 하나를 끓여먹기 위해서, 제대로 된 닭요리를 먹기 위해서, TV의 채널을 돌려 보고 싶은 프로그램을 보기 위해서, 또 온수 샤워를 위해 모든 노력을 아끼지 않고 그래서 그것이 관철됐을 때 굉장히 행복해하는 모습에서 어떤 위로를 얻을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가 상상도 못하고 가는 건 엄두도 못내는 해외의 유명 리조트 같은 곳을 날아가야 판타지를 줄 수 있는 게 아니다. 오히려 감방 같은 뭐 하나 하는 것이 쉽지 않은 공간에서 아주 소소한 것들을 여럿이 힘을 합쳐 해결해내는 그 장면은 그 어떤 판타지보다도 크게 다가오니 말이다. 역시 신원호 PD답게 감방이라는 차가운 공간조차 사람 사는 따뜻함이 느껴지는 공간으로 바뀌고 있다. 왜 신원호의 마법이라 부르는 지 알 것 같다.(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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