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면 뭐하니'의 메시지, 먼저 나를 세우고 연대하라

 

MBC 예능 <놀면 뭐하니?>라는 프로그램의 제목은 "놀면 뭐하니?"하고 툭 던진 말에서 시작한 것일 지도 모른다. 하지만 갈수록 이 제목에 담긴 '논다'는 의미는 우리의 가슴을 툭툭 건드리며 묵직한 울림이 더해지고 있다. 똑같은 단어 하나도 어떤 말과 행동이 이어지고 겹쳐지면서 그 의미가 깊어지는 그런 이유 때문이다. 이런 변화는 유재석과 김태호 PD가 던진 작은 '놀이'에서 시작됐다.

 

카메라 하나 툭 던져놓고 '놀아보라' 했던 김태호 PD의 제안이 엉뚱하게도 유재석의 '부캐 놀이'로 이어졌고, 유고스타(드럼), 유산슬(트로트), 라섹(라면집), 유르페우스(하프), 유DJ뽕디스파뤼(라디오DJ), 닭터유(치킨집)를 거치며 성장, 확장됐다. 다양한 부캐 놀이가 가능하다는 건 그간 유재석이라는 하나의 아이덴티티 안에 머물던 더 많은 가능성들이 껍질을 깨고 밖으로 나오게 됐다는 뜻이다. 그것은 '나의 확장'이었고, 그 확장은 지금껏 '일 중심 사회'에서 하나의 명함으로만 존재가 증명되길 강요받던 시대에 틈입을 만들었다. '놀이'는 그 틈을 찢고 더 많은 나를 꺼내놓는 새로운 시대의 방식이었다.

 

그리고 '나의 확장'은 이제 비슷한 뜻을 가진 이들과의 연대를 통한 다른 이들의 확장으로도 이어졌다. '싹쓰리 프로젝트'가 그것이었다. 여름 시장을 겨냥한 1990년대 혼성그룹에 대한 꿈은 유두래곤과 더불어 린다G(이효리) 그리고 비룡(비)을 이 세계관 속으로 끌어들였다. 일 바깥의 놀이를 통한 유재석의 확장으로 이제 워라밸을 꿈꾸게 된 수많은 대중들의 마음을 위로하고 지지해주었던 그 힘은 이제 같은 꿈을 가진 이들과의 연대로 나가게 됐다.

 

싹쓰리 프로젝트에서 제주도 소길댁으로 불리던 이효리가 린다G라는 새로운 캐릭터로 자신을 확장시켜 많은 '경력이 단절된' 여성들의 로망을 대리충족시켰고, 그는 또 그 자리에서 '센 언니'들을 모아 걸 그룹 활동을 하겠다는 이른바 '환불원정대'의 욕망을 잉태시켰다. 엄정화, 제시 그리고 화사가 더해진 '환불원정대'는 '센 언니'라는 일관된 캐릭터들의 집합으로 시작됐지만 그 이면에 담긴 건 여성과 나이에 대한 현실의 고정관념과 편견을 깨는 이야기로 그려지고 있다.

 

그 중심에 서 있는 건 엄정화다. 이효리의 부름에 선뜻 참여한 엄정화는 이효리 스스로도 말했듯 모든 여성 아티스트들의 롤 모델 같은 인물이 아닐 수 없었다. 나이 들어서도 여전히 왕성히 활동하고 그것도 과거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현재를 호흡하려 늘 도전하는 모습이 그 이유다. 이효리는 엄정화를 보면서 그가 간 길을 따라가려 했다고 했고, 아마도 이런 선배들의 길 뒤로 제시가 그리고 화사가 걸어갈 것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환불원정대'는 그 자체로 나이에 의해 특히 배척받던 여성 아티스트들이 나이와 상관없이 함께 활동하는 모습으로 이 편견과 차별의 틀을 깨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게다.

 

엄정화에 대한 '리스펙트'를 가지면서도 그렇다고 박제된 신화로서가 아니라 살아있는 현업 아티스트로서 그를 대하는 '환불원정대' 멤버들의 모습은 그래서 시청자들에게도 기분 좋은 위로를 전해준다. 리더가 된 이효리와 티격태격하고, 또 엄정화의 옛 영상 때문에 피식 웃게 된 제시에게 "제시 지금 웃은 거야?"라고 묻자 "네"라고 당당히 말하는 그런 관계, 그리고 그 와중에도 전혀 긴장한 티 없이 습관성 하품을 해서 웃음을 주는 화사의 모습 등등은 그래서 예사롭지 않은 느낌으로 다가온다. 그런 관계 속에서 환하게 웃음 짓는 엄정화에게서는 나이 들어 대접 받기보다는 나이와 상관없이 같은 웃고 떠들고 호흡하고픈 욕망을 건드리는 면이 있어서다.

 

<놀면 뭐하니?>는 누군가의 작은 변화 하나가 얼마나 큰 변화로도 이어질 수 있는가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점점 흥미로워지고 있다. 유재석 개인의 확장을 통해 그 누구나 갇혀진 하나의 정체성을 깨고 또 다른 가능성의 나를 찾을 수 있다는 용기를 얻게 했다면, 이제 그는 비슷한 꿈과 뜻을 가진 이들과 연대하고, 거기서 탄생한 또 다른 인물이 꿈꾸는 또 다른 연대로 끊임없이 펼쳐져 가고 있다. 그리고 이 과정들은 시청자들 역시 그 변화의 물결에 동참하게 만드는 힘을 발휘한다. 보고 위로받은 만큼 지지해주는 것만으로도.(사진:MBC)

'놀면 뭐하니', 유재석이 끄집어낸 환불원정대의 4인4색 케미

 

MBC 예능 <놀면 뭐하니?>에 싹쓰리가 가고 환불원정대가 왔다. 유재석은 멤버가 아닌 제작자 지미유라는 새로운 부캐로 환불원정대 멤버들의 성향을 파악하기 시작했다. 1차 회동을 통해 드러난 건 엄정화, 이효리, 제시, 화사가 '환불원정대'라는 이름과는 사뭇 달리 환불을 잘 하지 못하는 인물들이라는 사실이다. 엄정화는 환불 요구는커녕 부족한 반찬도 더 달라고 하지 못해 그냥 안 먹는 스타일이었고, 화사는 사이즈가 안 맞거나 하면 환불하기보다는 한숨 한 번 쉬고 포기하는 마는 스타일이었고 제시는 귀찮아서 환불을 하지 않는 스타일이었다.

 

물론 '환불원정대'라는 이름이 꼭 환불 때문에 붙은 건 아니다. 그만큼 세 보인다는 뜻으로 붙여진 이름. 하지만 이들은 겉보기에는 강하게 보이지만 사실은 여리다고 말하고 있었다. 보이는 이미지와 실제는 다를 수 있겠지만, '환불원정대'를 소환시킨 이효리의 싹쓰리에서와는 다른 모습은 그들이 만만찮은 기운(?)의 인물들이라는 사실을 드러냈다. 유재석이 모니터를 통해 그 첫 회동을 보면서 말했듯, 이효리는 꽤 고분고분하고 크게 마음껏 웃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아직 무엇 하나 정해진 게 없는 상황이지만 그 첫 회동에서 이미 이들의 캐릭터들은 분명해보였다. 엄정화는 맏언니로서 든든하게 서 있는 팀의 상징적인 인물이면서 "이게 내 마지막 무대일 지도 모른다"는 식으로 짠함을 더하는 캐릭터였고, 제시는 이효리마저 당황하게 만드는 어디로 튈지 알 수 없는 시한폭탄 같은 존재였다. 화사는 그 센 언니들 속에서도 혼자 '먹방'을 할 정도로 담대한 막내였고, 이효리는 어쩌다 환불원정대의 분위기를 조율하고 맞춰야 하는 인물로 싹쓰리 린다G와는 사뭇 다른 캐릭터를 보여줬다.

 

유재석은 지미유라는 제작자 부캐로 한 사람 한 사람을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그런데 이 대화 속에서 유재석 특유의 캐릭터 살리기는 돋보인다. 먼저 지미유라는 제작자 부캐 자체가 그렇다. 싹쓰리의 유두래곤과는 사뭇 달라진 조금은 강단 있고 고집 있는(?) 캐릭터의 면모를 끄집어낸 지미유는 여러모로 '환불원정대'라는 다소 센 조합을 살리기 위한 캐릭터 설정이 아닐 수 없다. 일방적으로 당하기보다는 밀리더라도 팽팽하게 대결해보는(?) 캐릭터여야 환불원정대의 센 면모들이 매력으로 드러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미유라는 새로운 캐릭터를 갖고 온 유재석의 진가는 환불원정대 멤버를 만나는 과정에서 그들의 매력적인 캐릭터를 끄집어내줬다는 점에서 충분히 드러났다. 화사에게 둥굴레차 한 잔을 대접하면서 그걸 계속 마시는 모습에서조차 웃음의 포인트를 만들었고, 250만원으로 뮤직비디오를 찍을 수 있다는 제안을 던졌을 때는 "아끼다 똥 된다"는 화사의 거침없는 멘트를 이끌어냈다. 환불원정대의 막내지만 결코 주눅 들지 않고 할 말은 하는 이 캐릭터는 나이 서열을 훌쩍 뛰어넘는 색다른 막내를 기대하게 만들었다.

 

제시와 만난 지미유는 "컴온-"을 연발하며 영어와 우리말을 오가는 토크를 주도해냈고, 그러자 제시 특유의 어색한 우리말 구사가 주는 의외의 재미 포인트들이 쏟아져 나왔다. 또 계약서에 요구조건을 쓰는 과정에서 마치 학습지 선생처럼 도와주는 모습으로 거침없는 제시의 모습과는 사뭇 다른 어린이 같은 순수한 면들을 끄집어냈다.

 

엄정화를 만난 지미유는 레전드로서의 그가 해왔던 활동들을 되짚으며 함께 잠깐 그 때의 노래와 안무를 보여주기도 했다. 유재석에게 이게 마지막이 될 지도 모른다고 했지만, 엄정화에게서는 나이와 상관없이 여전히 지금도 할 수 있다는 열정이 엿보였다. 맏언니지만 의외로 귀여운 소녀감성을 보여주는 엄정화가 다른 멤버들을 따라잡기 위해서는 충분한 연습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대목에서는 노력하겠다는 그 의지도 묻어났다.

 

하지만 역시 유재석의 캐릭터를 끄집어내는 그 능력이 돋보인 건 싹쓰리 린다G에서 아직까지는 이름이 없어 '아무개'라 스스로를 밝힌 이효리와의 면담이었다. 지미유와 아무개로서 마주한 두 사람은 같이 활동했었던 걸 애써 숨기며 대화를 나누는 것 자체가 큰 웃음을 줬다. 여기서 이효리는 앞으로 환불원정대 속 자신의 부캐가 미혼이며 남자친구와 제주도에서 산다는 설정을 꺼내놓았고, 갑자기 지미유에게 작업(?)을 거는 모습으로 웃음을 줬다.

 

아직 환불원정대가 어떤 노래를 갖고 올 지는 알 수 없지만, 먼저 유재석이 지미유라는 부캐로 이들을 만나 면담을 나누는 과정은 사실상 그들의 부캐를 끄집어내는 과정이기도 했다. 그 부캐들이 향후 <놀면 뭐하니?>가 보여줄 환불원정대의 이야기를 만들어갈 것이고, 그것은 또한 이들이 발표한 노래의 스토리로도 이어지지 않을까. 어딘지 거침없고 파격적인 환불원정대의 조합은 그 자체만으로도 기대를 갖게 만들지만, 여기 투입된 지미유는 그 캐릭터를 보다 확실하게 드러내는 촉매제 역할을 해주고 있다.(사진:MBC)

'놀면 뭐하니'가 싹쓰리 프로젝트를 통해 확장해놓은 것들

 

MBC 예능 '놀면 뭐하니?'의 싹쓰리 프로젝트가 일단락됐다. 워낙 뜨거운 화제를 불러일으켰기 때문에 이별의 아쉬움이 없을 수 없다. 그래서 비룡(비)은 유두래곤(유재석), 린다G(이효리)를 위해 직접 맛있는 한 끼를 대접하는 '요리왕 비룡'으로 변신하기도(?) 했다.

 

장난기 많은 형과 누나인 유두래곤과 린다G는 다소 감성적으로 마지막이라는 사실에 빠져들어가는 비룡을 가만 놔두지 않았다. 일부러 쿨한 이별을 하려는 모습이 역력했고 그래서 비룡이 준비한 편지나 선물 그리고 요리에 '타임캡슐'까지 일부러 진저리를 치는 모습을 보여줘 큰 웃음을 줬다.

 

하지만 갑자기 끝난 것 같은 이별에 대해 이들은 그것이 다시 만나는 날을 기다리게 하는 '여지'가 될 것이라고 했다. 린다G의 말대로 모든 걸 다 쏟아 부었다면 굳이 다음을 기약할 일이 없을 수도 있었다는 것. 그래서 이들은 헤어지는 와중에도 겨울에 다시 만날 건강한 모습으로 만날 날을 기약했다.

 

제작진이 마련한 마지막 선물은 팬들이 보내 준 응원의 메시지들을 하나하나 적어 방 한 가득 붙여 이들에게 보여준 것이었다. 쿨하게 아무렇지도 않은 듯 이별을 하려 했던 이들이지만, 그 방에 들어가서는 울컥하는 감정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유재석은 무언가 한 가지 허전함이 느껴진 이유를 거기서 발견했다. 그 팬분들과 직접 만났어야 했는데 코로나 때문에 그러지 못한 게 그 허전함의 이유였다.

 

싹쓰리 열풍은 방송은 물론이고 가요계 그리고 연예계 전반에 영향을 미칠 정도로 큰 성공을 거뒀지만 무엇보다 '놀면 뭐하니?'의 새로운 문 하나를 열었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깊다. 지금까지 유재석이 홀로 도전하는 다양한 '부캐'들로 채워졌던 프로젝트가 비룡과 린다G 같은 참여자 이상의 캐릭터들과 함께 진행됐다는 점이 그렇다.

 

그래서 이제 '놀면 뭐하니?'의 공식적인 출연자에 유재석 이외에 비룡과 린다G가 오르게 됐다. 비룡이 팬분들이 올린 '어벤져스'를 패러디한 유두언맨, 비토르용, 린다위도우를 이야기하며 또 다른 캐릭터들을 물음표로 해놓은 부분을 콕 집어 얘기한 부분은 '무한도전' 시절부터 김태호 PD가 꿈꾸던 '유니버스'를 떠올리게 하는 면이 있다. 마블 유니버스처럼 자신이 기획하는 프로그램이 하나의 유니버스로 확장되게 하고픈 욕망이 그것이었다.

 

린다G와 비룡이 싹쓰리 프로젝트를 통해 그 유니버스에 들어오고, 이제 린다G가 거론함으로써 성사된 엄정화, 제시, 화사와 함께 하는 '환불원정대'도 그 유니버스(Yooniverse)의 한 부분을 차지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결국 이번 프로젝트로 인해 유재석 홀로 서 있던 '놀면 뭐하니?'의 유니버스는 다른 멤버들이 프로젝트별로 합류해 새로운 세계를 보여주는 방식으로 확장되게 됐다.

 

물론 유재석은 이 세계의 중심축 역할을 할 것이고, 향후에도 다양한 부캐의 확장을 보여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가 하는 새로운 부캐 도전에 더 다양한 인물들이 부캐로서 유니버스에 합류할 거라는 건 '놀면 뭐하니?'에 대한 기대감을 더욱 높여 놓는다. 과연 어떤 인물들이 유재석과 함께 색다른 부캐를 갖고 시청자들을 찾아와 줄까. 올 여름을 꽉 채워준 싹쓰리와의 이별은 아쉽지만 향후 프로젝트들에 대한 기대가 더 커지는 이유다.(사진: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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