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라진 환경, 시청률 믿을만한가

‘주몽’, ‘외과의사 봉달희’, ‘하얀거탑’ 같은 굵직한 드라마들이 일제히 종영한 상황에서 새로운 드라마들을 들고 나온 방송 3사의 시청률 경쟁이 과열양상을 띄고 있다. 특히 수목극 경쟁은 시청률 차이의 격차가 별로 없는 상황에서 누가 실질적인 1등이냐를 두고 갑론을박하는 상황. 편법적인 편성시간 배정이 시청률 순위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의견들이 나왔다.

이렇게 방송사들이 시청률에 집착하는 이유는 당연하다. 그것은 광고수익이라는 실질적인 이득 때문이기도 하지만 더 큰 이유는 한 편의 시청률 높은 드라마가 방송사의 기업 이미지까지 높여주기 때문이다. 또한 한 편의 드라마는 여타의 프로그램에도 고스란히 영향을 미쳐 ‘주몽’같은 경우 월화의 뉴스 및 개그 프로그램의 시청률에도 그 후광을 주었다.

하지만 여기서 생각해볼 문제가 있다. 이렇게 숫자로 대변되는 시청률이 얼마나 믿을만한 것인가 하는 것이다. 이것은 지난해 시청률 조작사건논란이 터졌을 때 불거져 나왔던 공정성에 대한 의문이 아니다. 대신 이것은 최근 달라지고 있는 시청자들을 기존 시청률 집계가 얼마나 반영하고 있느냐의 문제다.

‘하얀거탑’과 같은 전문직 드라마가 나오기 전까지 이런 논의는 탁상공론처럼 보였다. 왜냐하면 새로운 시청자의 존재를 담아낼 만한 이렇다할 새로운 드라마가 없었기 때문. 하지만 ‘하얀거탑’이라는 본격적인 전문직 드라마의 등장은 그 수면 밑에 있던 새로운 시청자들이란 존재를 예측하게 만들었다.

50% 이상의 시청률을 자랑하던 ‘주몽’보다 더 열광적인 반응을 보인 ‘하얀거탑’의 평균시청률은 고작 16%(TNS 집계). 마지막회에만 23.2%로 20%를 넘겼을 뿐, 나머지는 모두 10%대의 시청률을 기록했다. 그렇다면 두 가지 예측이 가능해진다. 그 많은 댓글과 반응을 보인 ‘하얀거탑’의 시청자들은 드라마폐인으로 대변되는 매니아집단이거나, 혹은 TV보다는 인터넷을 통해 더 많이 본 사람들이라는 것.

하지만 어떤 면으로 보면 이 두 예측은 같은 줄기에서 나온 다른 얘기로 볼 수 있다. ‘하얀거탑’과 같은 전문직 드라마의 탄생에는 저 물밑에서 감지됐던 미드, 일드 매니아들의 존재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들은 시청률 집계의 사각지대에 놓인 인물들로 TV보다는 인터넷이 더 가까운 시청자들이다. 그들은 정해진 시간에 TV 앞에 앉아서 드라마를 보는 것보다 자기가 원하는 시간에 다운로드받은 드라마를 보는 것을 선호한다.

그런데 과연 이들 매니아집단을 일부 소수라고 치부할 수 있을까. 우리는 흔히 매니아라고 하면 마이너리티로 보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경향은 과거 인터넷이란 매체의 등장과 관련이 있는데, 초창기 이 세계를 바꿀만한 충격적인 매체의 등장에 대해 상대적으로 적응속도가 늦었던 기성세대들이 달라진 젊은 세대들의 생활패턴을 부정적으로 해석한데서 비롯된다.

하지만 누구나 인터넷을 사용하는 지금, 매니아의 의미를 소수의 의미로 받아들이는 것에는 무리가 있다. 인터넷이란 매체의 속성상 그걸 사용하고 있는 우리들은 이 매체 속에서 모두 매니아적인 성향을 갖고 있다. 즉 달라진 환경 속에서 매니아적 성향은 특정 소수집단의 행동이 아니고 대부분의 성향이라는 것이다. 이제 매니아라는 말은 소수가 아닌 좀더 집중력 있고 충성도 높은 일반인으로 읽혀져야 한다.

그런 의미의 매니아가 드라마에 있어서 더 열광적으로 반응하는 이유는 그 매체의 특성이 다르기 때문이다. TV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순간적으로 보고 지나가지만(물론 VTR로 녹화해서 반복해보는 사람도 있을지 모르지만) 인터넷은 그 자체가 저장성을 갖는다. 다운로드받는 순간 몇 번씩 반복해서 볼 수 있고 정지시켜 특정 장면을 분석할 수도 있다. 따라서 이들은 너무 단순하고 너무 쉬운 구조의 드라마들에 식상해버린다. 마치 대학생에게 초등학생 덧셈 뺄셈 문제를 풀라고 하는 식이다(실제로 TV는 초등학교를 졸업한 정도의 지적 수준으로 드라마를 90% 이상 이해할 수 있는 내용을 다룬다).

이것은 이들이 미드와 일드에 열광하는 이유이자 우리에게 전문직 드라마의 출현을 요구하는 이유가 된다. 이들의 질문은 “왜 우리는 없는가? 왜 우리는 안 되는가?”에서부터 비롯된다. 기존 트렌디 드라마에 대한 비판들이 쏟아져 나온 것은 바로 이렇게 달라진 환경 속에서 우리네 식상한 드라마가 쉽게 눈에 띄었기 때문이다.

앞으로 이런 경향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그것은 하나의 대세이고 우리네 드라마가 가야할 방향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제 글로벌한 환경 속에서 우리 드라마의 시장은 국내가 아닌 세계로 넓혀져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작은 우물 속에서 성장하지 못해 결국은 죽게되는 상황에 직면할 지도 모른다. 다양한 시도가 이루어져야 하고 투자도 글로벌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달라져야할 것이 있다. 그중 가장 시급한 것이 달라진 환경에 맞는 새로운 시청률 기준이다. 공중파와 시청률 집계 조사기관들이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식의 구태의연한 시청률 분석을 고수하고 있는 한, 드라마 발전은 저해될 수밖에 없다. 드라마를 너무 시청률로만 보는 건 좋지 않지만, 기왕 시청률로 본다면 제대로나 해야되지 않을까.

유사가족, 팀(team)이 보여주는 ‘히트’

“대외홍보용인가요?” 히트(H.I.T. : 강력특별수사팀)의 팀장이 된 차수경 경위(고현정)의 질문에 경찰청장(조경환)의 답변은 정치적이다. “자네가 성과를 낸다면 그건 우리 경찰의 승리고 자네가 실패를 한다면 그건 여성의 실패가 될 테지.” 그리고 이어지는 차경위의 요청. “팀원들 바꿔주세요.” 하지만 완고한 경찰청장의 발언. “그 사람들을 데리고 임무를 완수해!” 이 짤막한 대사들 속에는 이 드라마가 앞으로 보여줄 이야기의 전조들이 모두 숨겨져 있다.

그것은 경찰사회라는 완고한 남성중심적인 사회 속에서 그것도 마이너리티로 치부되는 인물들을 데리고 임무를 완수해야 하는 여성 강력반 팀장의 이야기다. 드라마는 연달아 벌어지는 연쇄살인사건과 그것을 풀어가는 퍼즐 같은 재미를 줄 것이 분명하지만 그보다 더 기대감이 커지는 것은 바로 캐릭터다. 마치 이현세의 ‘공포의 외인구단’처럼 진한 사연 한 가지씩 가졌을만한 인물들. 그래서 경찰 외부에 따로 지어진 히트 사무실에서 지내는 것이 특권이라기보다는 소외로 느껴지는 인물들. 게다가 총칼이 난무하는 살벌한 현실 속에서 심지어는 유사가족의 형태를 띄게 될 팀의 캐릭터들이니 기대감이 커질 밖에.

차수경, 그녀 속에 남자 있다
무엇이 가녀린 그녀를 연쇄살인범에 집착하게 했을까. 그것은 바로 그녀의 애인이었던 한상민(정호빈)이 연쇄살인범에게 살해당했기 때문이다. 그 후 죽은 한상민은 한 여자이기만 했던 차수경 속으로 들어와 자리한다. 한상민과 접신한 그녀는 그래서 사는 게 사는 게 아니다. 한상민과 차수경이 만나는 지점, 즉 오로지 연쇄살인범을 쫓는 상황에서야 이 분열된 자아는 비로소 하나가 된다.

여성으로서의 형사는 이 드라마에서처럼 ‘대외홍보용’이 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여성 특유의 섬세함’이란 장점이 되기도 한다. 이것은 이 드라마가 남성을 내세운 여타의 형사물들과 차별점을 이루는 부분이다. 따라서 이 드라마는 현장에서 강인하고 털털해 보이는 그녀가 집으로 돌아온 시간에서야 제대로 차별된 이야기를 하기 시작한다. 여성으로서의 차수경이 보이는 것. 그러나 그 시간에 그녀를 기다리는 건 아픈 기억뿐이다. 한 남자의 여자로서 사랑 받으며 살고 싶었던 기억. 하지만 부서진 기억.

김재윤, 그녀가 자꾸 눈에 밟힌다
그 기억 속으로 들어오는 남자, 김재윤(하정우)이다. 우연히 가게된 그녀의 집에서 그가 발견하는 것은 곰 인형과 하이힐로 대변되는 그녀의 본모습(여성성)이다. 무엇하나 부족할 것 없고 복잡하게 사는 걸 싫어하는 김재윤에게 그녀의 이중적인 모습은 호기심 이상의 그 무엇으로 다가간다. 안전한 삶을 희구하던 김재윤에게 부서질 것 같은 차수경의 모습은 자꾸만 변화를 요구한다. 그녀 밖의 남자였던 김재윤은 차수경 속에 있는 남자(한상민)를 밀어내고픈 욕구를 갖게될 것이 분명하다.

남 일 상관하기 싫어하는 귀차니스트 김재윤이 검사라는 직업을 갖고 있다는 점은 아이러니다. 민초들의 억울함을 풀어줘야 할 그가 그럭저럭 버티다 나중에는 편안하게 변호사나 하겠다는 마음을 먹고 있다는 건 이 드라마에서 김재윤과 차수경의 갈등과 사랑이 어떻게 연결될 것인가를 예감하게 한다. 차츰 차수경의 안간힘에 눈이 밟히는 김재윤은 지금까지 ‘남 일’이었던 사건들이 차츰 ‘내 일’이 되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장용하-김일주, 전형적 형사물의 구도
형사물을 보면 전형적으로 등장하는 형사. 베테랑에 경험도 많지만 현실적으로는 아무 것도 갖지 못한 폐인에 가까운 형사가 장용하(최일화)다. 승진보다는 범인 잡는 데 삶을 바친 이 같은 전형적 형사 캐릭터의 존재이유는 형사사회의 변화와 밀접한 관련을 갖는다. 잠복수사같은 현장중심의 수사방식에서 과학수사로 넘어오면서 차츰 공룡이 되어버린 존재들이다. 하지만 어디 수사가 과학만으로 되나. 무엇보다 중요한 건 실전 경험이다.

그런 그에게 도전하는 인물. 과학수사를 내세우는 원칙주의자 김일주(정동진)다. 장용하가 임의동행을 하려는 것을 피의자가 거부할 수 있다는 점을 들어 막는 김일주는 과거식의 수사방식을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 그러니 그 대표격인 장용하와 부딪칠 수밖에. 실력으로만 인정받고픈 그에게 무능함의 대명사로 보이는 장용하는 그가 좋아할 수 없는 인물이다. 그러나 그에게 부족한 점은 역시 경험과 열정. 그러니 이 둘의 만남은 묘한 균형감각을 갖게 된다. 이것이 현실적인 판단이 부족한 장용하와 경험이 부족한 김일주가 파트너가 된 이유다.

남성식-심종금, 투캅스의 부활
영화 ‘투캅스’의 재미는 서로 다른 캐릭터의 부조화에 있다. 닳고닳은 타락한 고참형사와 세상물정 모르고 정의만 부르짖는 신참형사의 만남. 그러나 차츰 닮아가고 나중에는 심지어 청출어람(?)을 보이는 신참의 모습에 오히려 고참이 훈계(?)하는 형국으로의 전환은 묘한 카타르시스를 준다. 드라마 ‘히트’의 남성식(마동석)과 심종금(김정태)은 바로 그런 인물들이다.

생각은 좀 모자란 듯 하지만 완력과 정의감으로 똘똘 뭉친 남성식은 이름에서도 느껴지지만 여성 강력팀장인 차수경의 빈 구석을 꽉 채워주는 인물이다. 그녀의 완벽한 수족이 될 그는 그러나 여성적인 내면(?)까지도 갖추고 있다. 머리가 나쁘다는 콤플렉스와 외모가 조폭인 그의 섬세한 면모들은 한편으로 그럴듯한 외모에 머리만 굴리며 살아가는 세태를 꼬집는 묘미가 있다. 그와의 대척점에서 심종금의 면모가 교활하게만 느껴지는 것은 그 때문이다. 하지만 ‘투캅스’에서 안성기가 타락한 형사가 된 것은 사실 사회의 부조리함을 뒤집어 말하기 위함이다. 그러니 심종금이 그렇게 살아가는 이유가 밝혀질 즈음, 보여질 그의 진면목에서 우리는 동정심과 애정을 예감하게 된다.

전문직, 멜로, 가족드라마의 경계에 서다
이 밖에도 이 드라마에는 전직형사이자 선술집 주인인 김영두(김정민), 수사본부의 부지휘자로 윗사람과 아랫사람 사이에서 그 넉넉한 허리가 되어주는 조규원(손현주), 과학수사의 진면목을 보여줄 정인희(윤지민) 같은 매력적인 캐릭터들이 꿈틀거린다. 이들 캐릭터들은 처음에는 외인부대처럼 버려지거나 외면될 위기에 처한 상태로 서로를 만나게 된다. 그리고 결국 보여주려는 것은 그들이 살인사건을 해결해가며 팀이 되어 가는 과정이다.

여러모로 미국 드라마 ‘CSI’를 연상케 하는 전문직 드라마지만 ‘히트’의 전개양상은 이러한 캐릭터 설정으로 인해 저네들의 드라마와는 다른 방향으로 흘러갈 것이 분명하다. 스타일은 따왔으되 하려는 이야기는 저네들의 쿨한 관계보다는 좀더 끈끈한 팀 간의 이야기를 기대하게 만든다. 정두홍이라는 걸출한 무술감독으로 인해 깨지고 부서지는 우리 식의 액션이 선보여지고 있는 것처럼, ‘히트’가 서는 지점은 형사물로 대변되는 전문직드라마와 전형적인 멜로드라마, 그리고 팀으로 대변되는 가족드라마의 경계에 서게 되지 않을까. 따라서 이 드라마의 성패는 바로 그 적절한 배합과 균형에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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