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만 펄펄 나는데, 이수근은 왜?

 

김병만과 이수근은 절친 중의 절친이다. <개그콘서트>를 통해 데뷔하던 시절, 두 사람은 같이 힘겨운 나날들을 버텨냈다. 그러다 먼저 두각을 나타낸 건 이수근이었다. ‘고음불가’, ‘키컸으면’ 같은 코너가 그를 주목받게 했고 <1박2일>에 투입되면서 그의 주가는 점점 올라갔다. 물론 1년 가까이 리얼 버라이어티라는 새로운 공간에 대한 적응기간이 필요했지만 그는 차츰 캐릭터를 만들어가더니 결국 ‘앞잡이’로 우뚝 섰다. 그 후 이수근은 <1박2일>에서 마치 물 만난 물고기처럼 애드립과 상황극으로 절정의 개그감을 선보였다.

 

'정글의 법칙2'(사진출처:SBS)

<승승장구>, <청춘불패2>는 물론이고 케이블 채널과 종편에까지 꽤 많은 프로그램에서 활약하던 이수근은 그러나 최근 들어 주춤하는 기색이다. 그 발원지는 그를 정상에 세워주었던 <1박2일>이다. 시즌2로 넘어오면서 <1박2일>은 주말 최강자라는 자리를 <런닝맨>에게 내주었다. 이렇게 된 것은 시즌2로 대거 멤버들이 교체되면서 아직까지 제대로 캐릭터들이 새롭게 정착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물론 이수근은 확실한 자기만의 캐릭터가 있었지만, 이 새로운 관계 속에서는 또 다른 역할을 부여받을 수밖에 없었다.

 

이수근이 가장 큰 빛을 보았던 시기는 강호동과 함께 “코미디언 아이가?”를 외칠 때였다. 이수근은 <개그콘서트> 같은 콩트 코미디에서 커왔기 때문에 혼자 치고 나가는 개그보다는 누군가와의 합을 이룰 때 더 힘을 발휘한다. 그 든든한 밑바탕이 되어주었던 강호동이 빠져나가고 그것도 모자라 새로운 멤버들로 교체되면서 이수근은 경험자로서 <1박2일>의 고참이 되었다. 프로그램을 전면에서 이끌어야 하는 그 역할이 이수근에게는 부담이 될 수밖에 없었다. 옆에서 치고 나와야 의외의 웃음의 효과가 크기 마련인 그의 개그가 약화된 건 어쩔 수 없는 결과였다.

 

반면 김병만은 이수근보다는 조금 늦게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김병만은 이수근과 달리 말로 웃음을 주는 그런 개그 스타일이 아니기 때문에 사실상 <개그콘서트>에서도 자신만의 스타일을 만들어낼 수밖에 없었다. 몸으로 웃기는 방식. 슬랩스틱이 기본이지만 거기에 머무르지 않는 어떤 것. 김병만은 그렇게 <달인>을 만들었고 엄청난 노력으로 진짜 달인의 면모를 보이기 시작하면서 주목받기 시작했다.

 

그는 <개그콘서트>의 <달인>을 끝냈지만 여전히 달인이었다. <키스 앤 크라이>에서는 피겨 스케이팅의 달인이 되었고 또 <정글의 법칙>에서는 정글의 달인이 되었다. 김병만은 결국 달인이라는 캐릭터를 통해 자신만의 프로그램을 만들었다고 말할 수 있다. 만일 이처럼 김병만에게 최적화된 프로그램이 없었다면 그는 어쩌면 기존 예능 프로그램들 속에서 적응하지 못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워낙 강한 독보적인 캐릭터를 갖고 있었기 때문에 이것이 가능했고, 그는 결국 이 도전들을 성공적으로 치르게 되었다.

 

이수근과 김병만. 두 사람은 여전히 자신만의 독특한 지점을 가진 예능의 떠오르는 신예들이지만, 최근의 희비쌍곡선은 그 서로 다른 행보에서 비롯되었다. 이수근은 기존 프로그램 형식에 자신을 적응시킨 것이지만(<1박2일>이나 <승승장구> 같은), 김병만은 자신만의 독보적인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결국 이수근은 그 기존 프로그램에서 누군가의 2인자로서 자신의 캐릭터를 극대화할 수 있었지만, 김병만은 자신만의 종족(병만족)을 만드는 위치에 서게 되었다.

 

두 사람은 물론 지금도 JTBC <상류사회>에서 함께 프로그램을 하고 있다. <정글의 법칙>에서 툰드라에 다녀온 김병만은 이수근에게 툰드라 의상을 택배로 보내 이수근을 감동시키기도 했다. 김병만이 펄펄 날고 있고 이수근이 주춤하게 된 것은 그들이 의도했다기보다는 최근 달라져버린 예능환경 때문이다. 강호동이 잠정은퇴한 것도 <1박2일>이 시즌2로 넘어오면서 출연자들이 바뀌어버린 것도 이수근에게는 악재가 되었다.

 

반면 자신의 독보적인 캐릭터를 극대화할 수 있게 해준 <정글의 법칙>을 하게 된 건 김병만에게는 큰 행운이다. 그는 <개그콘서트>에서 무대에 갇혀 있던 달인이라는 캐릭터를 이제 세상 밖으로 갖고 나올 수 있게 되었다. <정글의 법칙>의 성공은 김병만에게 또 다른 분야에서의 달인 캐릭터를 기대하게 만든다. 아마도 절친으로서 이수근이 악재를 딛고 다시 제 궤도에 오르는 모습을 김병만도 바라고 있을 것이다. 그것이 친구이자 라이벌로서 서로를 상생시키는 동력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1박>에서 <나가수>까지, 시즌2 무엇이 문제일까

 

<1박2일>은 주말예능의 최강자로 군림해오다 시즌2를 시작하면서 어려움을 겪기 시작했다. 한때 가요계 전체를 뒤흔들 정도의 파장을 일으켰던 <나는 가수다>도 시즌2에서는 점점 잊혀져가는 예능이 되어가고 있다. <청춘불패>는 시즌1에서 농촌과 아이돌을 엮어 재미와 의미 두 마리 토끼를 잡았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시즌2에서는 그다지 존재감 없는 예능이 되었다. <탑밴드> 역시 시즌1에서는 시청률은 낮았지만 호평을 받는 프로그램이었다. 하지만 시즌2는 시청률도 더 떨어졌고 평가도 좋지 않은 프로그램이 되어버렸다. 도대체 무엇이 시즌2를 선언한 예능 프로그램들을 어렵게 만드는 것일까.

 

'1박2일'(사진출처:KBS)

본래 시즌2는 시즌1보다 어려울 수밖에 없다. 시즌2가 기획된다는 것은 그만큼 시즌1에서 만들어진 기대감이 크다는 반증이다. 따라서 시즌2는 보통 신생예능보다 훨씬 더 높은 기대치로 바라보게 된다. 하지만 막상 그다지 별로 다르지 않은 시즌2를 접하게 되면 기대감은 실망감으로 바뀌게 된다. 또 그렇다고 너무 색다른 시즌2를 했다가는 시즌1과의 아무런 연관성이 없는 전혀 다른 프로그램이 되어버린다. 한 마디로 시즌2는 그 변화의 균형을 맞추기가 어렵다.

 

<1박2일> 시즌2의 경우 시즌1과 그다지 차별성이 없는 형식을 반복하면서 고개를 숙였다. 반면 <나는 가수다>는 시즌2에서 생방송 경연이라는 파격적인 변화를 시도했지만 오히려 시즌1이 갖고 있던 음악의 질까지 생방송이 떨어뜨리는 결과로 이어지면서 어려워졌다. 결국 <나는 가수다>는 생방송을 접고 시즌1으로 회귀하는 중이다. 하지만 시즌1과 차별화되지 않는 현재 방식의 회귀는 대중들의 관심 자체를 떨어뜨리는 결과로 이어지고 있다. <청춘불패>는 변하지 않아야 할 것이 변하고, 변해야 할 것이 변하지 않은 시즌2로 인해 추락을 경험했다. 즉 프로그램의 의미인 시골이라는 공간을 게임의 장으로 변질시킨 것이 패인이 되었다. <탑밴드>는 시청률을 올리겠다며 ‘악마의 편집’을 선언하기도 했지만, 결과적으로는 밴드 음악을 제대로 조명하지 못하면서 난항을 겪고 있다.

 

시즌2를 하면서 대거 바뀌게 되는 출연자들은 시청자들이 이탈하는 또 다른 이유다. 한 명 정도가 바뀌는 것은 어떤 면에서는 프로그램의 활력소로 작용할 수 있지만, 한꺼번에 여러 명이 바뀌면 지금껏 만들어져 온 출연자들 사이의 관계가 전부 바뀌게 된다. 캐릭터가 관계에 의지한다고 볼 때, 완전히 달라진 관계는 기존 자리 잡았던 캐릭터마저 흔들리게 되는 결과로 이어진다.

 

<1박2일>의 이수근과 김종민은 대표적인 사례다. 강호동도 없고 이승기도 없는 상황에서 그래도 경험이 많은 이수근은 <1박2일>을 전면에서 끌고 가야 하는 부담까지 안게 되었다. 하지만 이수근의 본래 역할은 프로그램의 빈 자리를 채우면서 의외의 웃음을 주는 것이지 진행 자체는 아니다. 이것은 김종민도 마찬가지다. 김종민은 누군가와의 관계로 섰을 때 큰 웃음을 주지만, 단독으로 섰을 때는 그저 불안한 캐릭터가 된다. 김종민이 ‘김선배’라는 캐릭터로 자리하는 <1박2일>은 그래서 때론 안정감이 없게 여겨질 때가 많다.

 

한편 <나는 가수다>나 <톱밴드> 같은 오디션 프로그램은 형식보다 더 중요한 게 사실상 출연자들이다. 누가 출연하느냐에 따라 시즌2로서의 차별성이 그 자체로 만들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가수다2>는 시즌1과의 연계를 위해서 기존 가수들 중 6명을 시즌2에 합류시켰고 여기에 새 가수들 6명을 더해 12명이 경연을 벌였다. 결과적으로 보면 캐스팅이 시즌2만의 새로운 면모를 보이는데 실패했던 것으로 보인다. 국카스텐의 등장과 반향은 거꾸로 이 시즌2의 초기 캐스팅의 문제를 드러낸다. 대중들은 좀 더 파격적인 가수들의 등장을 기대했던 것으로 보인다.

 

한편 <탑밴드>는 출연 밴드들만 보면 이게 오디션이 맞나 싶을 정도로 기대감을 만들어내는 라인업이 이뤄진 게 사실이다. 하지만 너무 많은 유명 밴드들의 출연은 효과적이지 못한 방송으로 인해 오히려 주목도를 떨어뜨리는 결과로 이어졌다. 그 많은 유명 밴드들 중에서 그나마 인지도가 확실히 생긴 밴드는 장미여관 정도. 피아나 내 귀에 도청장치, 데이브레이크, 몽니, 트랜스픽션... 그 어떤 밴드 하나라도 거의 한 회분의 분량을 만들만큼의 스토리와 음악을 가진 밴드들이지만 결국 오디션이라는 한 무대에 변별력 없이 서게 됨으로써 안타깝게도 하향 평준화된 인상을 만들었다.

 

물론 시즌2가 전부 실패한 것만은 아니다. 알다시피 <불후의 명곡2>나 <정글의 법칙2>, 그리고 최근 19금 예능으로 각광을 받고 있는 <SNL코리아2> 같은 경우는 시즌2의 성공사례다. 하지만 여기서 <정글의 법칙2>나 <불후의 명곡2>는 예외적인 경우다. <정글의 법칙2>는 형식상 시즌제를 해야만 가능한 프로그램이기 때문에 여타의 시즌 선택 프로그램과는 성격이 다르다. 또 <불후의 명곡2> 역시 본래 계획에 없던 것이 오디션 열풍으로 생겨난 것으로서 시즌2라 얘기하기가 어렵다. 게다가 시즌1과의 연관성도 그다지 많지 않은 거의 신생 예능의 인상이 짙다.

 

그런 점에서 보면 <SNL코리아2>의 성공은 시즌제의 모범답안처럼 보인다. 시즌1이 보여줬던 신랄한 시사 정치 풍자 코미디에 시즌2는 19금이라는 새로운 동력을 얹었다. 시사 정치 풍자의 강도도 시즌1보다 훨씬 더 강해져 시즌2에 대한 기대감을 충분히 채워주고 있는 상태. 무엇보다 <SNL>이 본래 정치와 섹스코드를 전면에 내세우는 프로그램이라는 점에서 시즌2는 <SNL코리아>의 진정한 완성이라고 볼 수도 있게 되었다. 이런 시즌1과의 연계성과 시즌2만의 확실한 차별성이 <SNL코리아2>의 성공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보인다.

 

하지만 <SNL코리아2>의 성공은 케이블 채널이라는 특정 성향을 감안해보면 일반적인 시즌2의 성공사례라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결과적으로 보면 시즌2는 <1박2일>이나 <나는 가수다> 같은 주말예능의 강자들조차 먹히지 않는다는 얘기다. 이유는 여러 가지다. 아직까지 시즌제에 대한 인식이 시청자들이나 제작진들 모두에게 낯설다는 것도 한 이유고, 시즌2 선언이 자발적이라기보다는 프로그램이 어려워지는 시기에 어쩔 수 없이 이뤄지는 것도 한 이유가 될 것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큰 건 시즌1과의 연계성과 시즌2만의 차별성 사이에 균형을 맞춘다는 것이 쉽지 않다는 점일 것이다.

 

시즌2는 그래도 계속 생겨난다. <남자의 자격>이 사실상 시즌2 성격의 변화를 준비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프로그램의 힘이 빠지자 새로운 멤버를 넣어 새로운 동력을 찾아보려는 것이지만, 이런 식의 시즌2 기획은 안타깝게도 성공가능성이 희박하다. 수많은 시즌2에 무릎 꿇은 예능 프로그램이 그 많은 이유를 말해주고 있다.

<1박2일>의 배우들, KBS 드라마 견인

 

<각시탈>의 주원은 <적도의 남자>로 확고한 입지를 다진 엄태웅의 뒤를 이을 수 있을까. 엄태웅은 <1박2일>에 출연하면서 새롭게 주목되었다. 어딘지 무거웠던 이미지를 벗고 순둥이 이미지에 서글서글한 면모가 부가되었고, 최근에는 이른바 '나노 개그'로 주목받고 있는 중이다.

 

 

'각시탈'(사진출처:KBS)

그런 그가 <적도의 남자>에서는 또 완전히 다른 카리스마 연기를 보여주면서 연기자로서의 입지도 확고히 다질 수 있었다. 예능을 통해 발견하게 된 본래의 선한 이미지가 있었기 때문에, <적도의 남자>에서의 강한 인상은 본래 이미지가 아니라 고스란히 그의 연기력으로 대중들에게 각인될 수 있었다. 시각장애라는 연기는 그 연기력을 더 극대화해 보여주었다.

 

그리고 이제는 <1박2일>의 막내로 자리하고 있는 주원의 차례. 그는 과연 엄태웅이 보여준 예능과 드라마 동시 출연의 시너지를 만들어낼 수 있을까. <각시탈> 첫 회에서의 주원의 모습은 그 가능성을 발견하게 한다. <1박2일>에서 착하고 뭐든 열심히 솔선수범하는 막내의 이미지를 보여주었던 주원은 <각시탈>에서는 이와는 상반된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아직 밝혀진 것은 아니지만 원작으로 유추해보면 주원이 연기하는 이강토 역할은 극에서 극으로 바뀌는 반전 인물이다. 독립운동으로 가족을 돌보지 못했던 아버지, 오로지 가족의 희망으로 믿고 뒷바라지 해왔지만 모진 고문 끝에 바보가 되어 돌아온 형 이강산(신현준). 그들 때문에 절망적으로 친일에 앞장서게 된 이강토는 그러나 각시탈이 형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후 스스로 각시탈이 되는 인물이다.

 

일본 순사가 되어 항일운동을 하는 애국지사들을 가차 없이 잡아들이면서 얻은 명성으로 밤이면 경성 최고의 사교계 황태자로 행세하는 이강토라는 캐릭터는 그 안에 또한 깊은 아픔과 정(형제애)을 숨기고 있는 인물. <적도의 남자>에서 엄태웅이 시각장애라는 연기를 통해 연기자로서의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면, <각시탈>에서 주원은 이 얄미울 정도로 친일에 앞장서는 모습을 보여주면서도 속으로는 아픔을 숨기고 있는 이중적 캐릭터로 강한 인상을 남길 가능성이 크다.

 

이 주원이 보여주는 이중적 캐릭터는 <각시탈>이 상징하는 탈의 이미지이기도 하다. 송골매의 노래가사에도 나오듯, 탈이란 '얼굴을 가리고 마음을 숨기는' 오브제가 아닌가. 한바탕 덩실덩실 춤을 춘다는 그 의미는 아마도 일본의 압제 속에서 억눌렸던 분노를 행동(춤)으로 풀어낸다는 뜻으로 읽힐 수도 있을 게다.

 

예능과 드라마를 동시에 소화해낸다는 것은 과거만 해도 상상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 때는 드라마 캐릭터와 실제 연기자를 혼동하던 시대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 대중들은 캐릭터와 연기자를 혼동하지 않는다. 그만큼 연기에 대한 인식이 과거와는 달라졌다. 따라서 예능에서 보여주던 실제 모습과 드라마에서의 상반된 연기는 오히려 연기자에게는 상호 시너지를 만들어주기도 한다. '적도의 남자'를 보며 우리가 '이 엄태웅이 저 순둥이가 맞아' 하고 놀라워했던 것처럼.

 

<1박2일>에 출연하고 있는 배우들이 나란히 KBS 드라마의 견인차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은 주목할 만한 지점이다. 이것은 어찌 보면 한 방송사에서의 예능과 드라마의 새로운 시너지를 보여주는 것처럼 보인다. 예능에서의 활약이 빛날수록, 드라마에서의 캐릭터 변신도 그만큼 주목되는 상황이다. 엄태웅과 주원의 드라마와 예능에서의 활약은 이 새로운 변화의 지점을 제대로 보여주고 있다.

밝은 이승기, 어둠까지 품는다면

 

이승기에게 <더킹 투하츠>는 그가 연기에 도전했던 이전 작품들과는 다르게 다가올 것이다. 물론 첫 연기 경험이었던 <소문난 칠공주>의 황태자 역이나, 그에게 트리플 크라운의 영광을 안겨준 <찬란한 유산>의 선우환 역, 그리고 코믹 연기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던 <내 여자친구는 구미호>에서의 차대웅 역에서 모두 이승기는 무난한 연기를 보여주었다.

 

 

'더킹 투하츠'(사진출처:MBC)

아니 무난하다기보다는 호평이었다. 거기에는 당시 이승기가 갖고 있는 독특한 위치가 한 몫을 차지했다. 즉 이승기는 본격적인(?) 배우는 아니었다. 가수가 본업이었고 <1박2일>을 통해 가수 이외에 예능인으로서의 새로운 매력을 드러내는 중이었으며, 여기에 배우라는 새로운 도전을 성공적으로 치르고 있다는 것이 호평으로 이어졌을 뿐이었다. 하지만 <더킹 투하츠>의 이재하 역할을 연기하는 이승기는 상황이 이때와는 다르다.

 

이승기는 사실상 그의 가치를 세워주었던 예능을 모두 접었다. <1박2일> 시즌2에 잔류하지 않았고, <강심장> MC도 내려놓았다. 가수로서의 활동도 전무하다. 오로지 <더킹 투하츠>라는 드라마 하나에 전력 질주하는 모습이다. 즉 이승기는 가수와 예능인을 잠시 접어두고 제대로 배우라는 영역에 도전하고 있는 셈이다.

 

그래서일 것이다. <더킹 투하츠>에서의 이승기의 연기가 이전의 연기와는 다르게 느껴지는 것은. 이 드라마에서 이승기는 꽤 준비된 연기를 보여주었다. 드라마 초반에 그는 어딘지 왕제와는 어울리지 않는 바람둥이의 모습을 얄미울 정도로 잘 연기해냈다. 김항아(하지원)에게 "넌 여자가 아냐"라고 하는 대사에서는 보는 이마저 화가 나게 할 정도였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갑자기 한 나라의 왕제로서의 모습을 보여주었을 때(예를 들면 미국의 간섭에 대해 속 시원한 한 방을 날렸을 때 같은)는 그 가벼운 겉모습 밑에 숨겨진 믿음직한 구석을 느끼게 해주었다. 자유를 구가하려던 왕제가 형의 죽음 이후 곧바로 왕위를 물려받으면서 겪게 되는 그 변화를 연기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게다가 이건 왕이 아닌가. 왕이라는 위치에서는 상당 부분 겉모습(왕으로서의 위엄을 갖추어야 하는)과 실제 내면(한 인간으로서의)이 다를 경우가 많을 수밖에 없다. 이재하는 그 양자를 오가면서 김봉구(윤제문)라는 희대의 악당과 때로는 대면해야 하고 그 고통 속에서도 웃으며 상대방을 제압해야 한다. 게다가 이제 결혼할 사이인 김항아와의 멜로도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 배우로 서려는 이승기로서는 제대로 된 역할을 만난 셈이다.

 

이승기는 잘 알려진 대로 그 특유의 노력과 근성으로 이 복잡한 연기를 잘 해내고 있다. 김봉구가 형인 이재강(이성민)을 죽였다고 제 입으로 말할 때도, 이승기는 그 분노를 억누르며 김봉구에게 맞서는 재하의 왕으로서의 면모를 드러내주었고, 믿었던 비서실장 은규태(이순재)의 배신 사실을 알고는 분노를 터트리면서도 그 마음 한 구석에 남아있는 믿음과 정을 놓지 않는 재하의 인간적인 면모도 보여주었다. 왕으로서의 얼굴과 한 인간으로서의 얼굴, 이 둘을 한꺼번에 보여준다는 것. 이승기는 확실히 이 작품을 통해 배우로서도 한 단계 더 내디딘 셈이다.

 

이처럼 배우로서도 이제 어엿한 면모를 보여주는 이승기에게 그러나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 연기는 물론 노력과 연습이 중요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채워질 수 없는 부분이 있다는 것. 연기자에게서 굳이 연기하지 않아도 뿜어져 나오는 그 특유의 느낌은 대본과 캐릭터를 연구하는 것으로 얻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삶의 경험치에서 나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승기의 장점으로 여겨지는 늘 밝은 모습, 선한 심성 같은 이미지는 배우로서는 한편으로 단점이 되기도 한다.

 

아픔을 연기할 때 진짜 아프게 다가오는 건 그걸 표정으로 연기해내기 때문이 아니다. 그 연기자의 안에 있는 진짜 아픔을 끄집어냈을 때 그것이 비로소 전달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왜 이승기가 이처럼 연기 호연을 펼치고 있으면서도 오히려 조정석의 눈물 한 방울에 더 가슴이 와 닿는가를 이해할 수 있다. 조정석은 밝은 이미지가 있지만 동시에 어두운 구석도 갖고 있는 배우다. 그것이 보는 이들에게는 그 자체로 마음 시리게 다가온다.

 

아마도 이것은 노력하는 이승기가 배우로서 서기 위해 마지막으로 넘어야할 한 가지가 아닐까 싶다. 인간적인 매력에는 밝은 면만 있는 게 아니다. 누군가는 그것을 '폐허'라고 표현했고 누군가는 그것을 '우수(憂愁)'라고 표현한다. 밝은 껍질 아래 무언가 아프고 무너질 것 같은 면면. 그것이 배우가 연기 연습을 통해 얻어내는 기술적인 성취만큼 중요할 수 있다. 그것은 능력이 아니라 매력의 영역이다.

이승기는 예능에서의 다분한 끼와 순발력, 가수로서의 감성 또 배우로서 갖추어야 할 성실성을 다 갖추었지만, 단 한 가지 그 자체로 뿜어져 나오는 (보는 이들로 하여금 한없이 보듬어주고픈 마음을 갖게 하는) 아픈 매력이 부족하다. 물론 지금도 충분한 다른 매력이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바로 이 '우수' 깃든 매력이 덧붙여진다면 이승기는 독특한 자신만의 아우라를 갖는 배우로서 설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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