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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그란 세상

‘슬기로운 의사생활2’, 자극 콘텐츠 시대, 편안한 힐링드라마의 참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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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기로운 의사생활2’, 한국형 시즌제 드라마의 이정표 세울까

 

tvN <슬기로운 의사생활>이 시즌2로 돌아왔다. 사실 시즌1과 크게 달라진 건 없다. 여전히 병원을 둘러싼 따뜻한 사람들의 이야기. 하지만 이 변함없음이 이 시즌제 드라마의 최대 강점으로 부각됐다. 무엇이 이런 결과로 이어진 걸까. 

슬기로운 의사생활

시즌1 그대로... 그래서 더 빠져드는

작년 3월 시작했던 tvN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은 그 첫 회를 6.3%(닐슨 코리아)의 시청률로 시작했다. 그리고 그 후로 꾸준히 상승세를 이어가 12회 14.1%의 최고시청률로 시즌1을 마무리 지었다. 엄청난 상승곡선을 그린 건 아니지만, 아주 천천히 하지만 조금씩 시청자들을 끌어들이며 마음을 사로잡았던 <슬기로운 의사생활>은 요즘 보기 드물 정도로 훈훈하고 잔잔한 감동과 설렘들로 촘촘히 채워져 있던 드라마였다. 특히 피가 흐르고 사람의 생사가 오가는 병원이라는 공간이 주는 자극적 상황들을 그리곤 하던 의학드라마의 흐름과는 사뭇 다른 행보를 그렸다. 그래서 이 드라마는 의학드라마라기보다는(그렇다고 전문성이 없다는 뜻은 아니다) 휴먼드라마이자 멜로드라마처럼 시청자들에게 다가온 면이 있었다. 

 

매주 2회가 아닌 1회 방송을 한 점과, 보통의 미니시리즈가 16부작으로 구성되는 데 반해 12회로 마무리 지은 점도 남달랐다. 매주 2회의 16부작 미니시리즈는 그 편성의 특성만으로도 벌써 공격적이다. 전쟁을 치르듯 시간에 쫓기는 촬영을 해야 하고, 무엇보다 2회 연속이 갖는 스피드와 자극으로 시청률을 끌어올리는 목적에 부합해야 한다. 하지만 <슬기로운 의사생활>의 신원호 PD와 이우정 작가는 이런 기존의 관행을 거부했다. 대신 한 회 한 회 따뜻한 에피소드들을 정성껏 채워 넣었고, 사랑스런 캐릭터들의 매력을 자극 대신 시청자들에게 어필했다. 결과는 고무적일 정도로 대성공이다. 아예 처음부터 시즌제를 겨냥하고 만들었고, 그래서 시즌1에 모든 걸 쏟아 붓는 것이 아니라, 천천히 가도 황소걸음으로 가는 방식을 택했다. 시청자들은 시즌1이 끝나자 바로 시즌2를 기다렸다. 

 

본래는 연말에 시즌2가 계획되었지만 코로나19의 확산세가 거세지면서 촬영과 방영이 연기되었다. 그리고 드디어 올해 6월 시즌2 첫 회를 내놨다. 기다림이 만든 효과일까. 첫 회 시청률이 10%로 시즌1의 첫 회부터 훌쩍 뛰었고, 시청자들의 여지없는 호평이 이어졌다. 그런데 그 호평의 이유가 흥미롭다. 보통 시즌제 드라마라고 하면 시즌이 거듭되면서 색다른 반전이 이어지거나 혹은 자극이 더해지는 방식을 취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슬기로운 의사생활2>는 시즌1과 하나도 달라지지 않았다. 여전히 따뜻한 의사들과 환자들의 감동적인 이야기가 담겼고, 코믹한 상황들이 주는 웃음과 더불어 한 회마다 병원 동기 5인방이 모여 노래를 연주하고 부르는 틀도 달라진 게 없었다. 게다가 시즌1에서 만들어진 멜로 라인은 더욱 깊어져 시청자들을 애틋하게 만들었다. 달라진 게 없어서 더 빠져든다는 이례적인 반응이 쏟아졌다. 

 

자극 콘텐츠 시대, <슬기로운 의사생활2>는 뭐가 달랐나

최근 들어 시즌제 드라마는 이제 우리에게도 그리 낯설지는 않게 됐다. 최근에 시즌제로 돌아온 드라마들만 봐도 이런 변화는 쉽게 읽혀진다. 시즌3로 돌아온 SBS <펜트하우스>는 물론이고 시즌2로 돌아온 TV조선 <결혼작사 이혼작곡> 그리고 무려 시즌4로 돌아온 tvN <보이스>가 그 사례들이다. 그런데 이들 시즌제 드라마들을 보면 시즌을 거듭하면서 얼마나 자극의 강도가 높아져 있는가를 확인할 수 있다. 

 

<펜트하우스3>는 시즌2에 감옥에 갔던 헤라팰리스 사람들이 감옥에서 겪는 갖가지 폭력과 기행들로 시작하고, 심지어 감옥에 수감 중이던 주단태(엄기준)가 감옥 밖으로 나와 로건 리(박은석)를 폭탄으로 살해한다. 그런데 갑자기 로건 리의 형이라고 하는 알렉스(박은석)가 또 등장한다. 이미 시즌2에서도 시즌1에 죽었다고 끝을 맺었던 심수련(이지아)이 사실은 쌍둥이 나애교였다는 식으로 처리된 바 있어, 로건 리 역시 알렉스라는 인물로 다시 부활하는 이 대목에서 시청자들은 반전의 쾌감이 아닌 실소를 터트렸다. 그런데 이런 무리수가 나오게 된 건 다름 아닌 시즌제에서 더 강한 이야기를 그려나가야 한다는 자극의 강박 때문이다. 

 

<결혼작사 이혼작곡2>는 시즌1이 그렸던 ‘내로남불’ 이야기를 계속 이어가고 있다. 그런데 이 드라마 역시 어딘가 좀 더 센 이야기에 대한 강박이 엿보인다. 그 단적인 사례가 시즌1에서 사망한 신기림(노주현) 원장이 귀신이 되어 자신의 집에 출몰하는 장면이다. 물론 임성한 작가가 워낙 좋아하는 무속 이야기이긴 하지만, 지금껏 로맨스와 불륜 사이를 오가던 이야기에 갑작스런 귀신의 등장은 어딘가 ‘자극을 위한 자극’처럼 보이는 면이 있다. 

 

<보이스>는 본래 OCN 시리즈로 나왔을 때부터 거의 ‘공포’ 수준에 가까운 스릴러를 무기로 내세운 장르물이었다. 사이코패스가 무고한 이들을 뒤쫓아 살해하는 장면들은 그래서 마치 공포영화 속 괴물에게 쫓기는 상황들을 연상케 하곤 했다. 시즌4는 서커스맨이라 불리는 일당이 등장해 일가족을 무참히 살해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언제부터인가 우리네 드라마들은 이제 19금이 익숙해졌다. 피가 튀고 사람이 죽어나가고 심지어 다시 부활해 복수를 하는 자극이 드라마 속에서 꿈틀대기 시작했다. 그게 잘못된 건 아니지만, 이런 드라마들의 범람은 당연히 반대급부를 불러온다. <슬기로운 의사생활2>나 SBS <라켓소년단> 같은 드라마들이 최근 시청자들의 눈을 사로잡은 건 그래서다. 자극과는 정반대로 따뜻한 힐링과 인간애가 느껴지는 드라마에 마음이 가게 된 것이다. 

 

애초 기획대로 시즌제 드라마의 이정표 세울까

본래 <슬기로운 의사생활>은 해외의 <프렌즈> 같은 시즌제 드라마를 목표로 기획된 작품이다. 신원호 PD는 지난해 시즌1의 제작발표회에서 <슬기로운 의사생활>이 “한국판 <프렌즈>가 되길 원한다”고 말한 바 있다. 당시 그는 “애초에 캐스팅을 하면서 배우들에게 시즌3까지는 가지 않을까 하고 얘기했었다”고 했다. 그리고 시즌2의 시작을 보니 이 말이 그냥 내놓은 허언이 아니었다는 걸 실감하게 된다. 이미 시즌1에 매력을 전했던 인물들은 더 선명해졌고, 관계들은 깊어지면서 변주의 조짐을 보이기 시작했다. 게다가 의학드라마로서 빼놓을 수 없는 환자들과 의사의 감동적인 이야기도 여전했다. 매력적인 캐릭터들이 화수분처럼 피어나 서로 관계를 맺어가고, 매 회 병원에서 벌어지는 소박해 보이지만 결코 약하지 않은 에피소드들이 촘촘히 구성되는 방식은 시즌3가 아니라 더 오래 지속돼도 충분히 사랑받을 수 있는 구조다.

 

게다가 매주 1회 방영되는 12부작 시즌제라는 새로운 드라마 편성의 틀은 어쩌면 향후 우리네 시즌제 드라마의 좋은 이정표가 되지 않을까 싶다. 그것은 보다 완성도를 높이는 방식인데다 모든 스태프와 배우들에게 보다 행복한 노동환경을 제공할 수 있는 시스템이기 때문이다. 이런 기대를 갖게 되는 건 신원호 PD가 <응답하라> 시리즈로 우리네 드라마 제작방식에 일대 전환을 불러 일으켰던 전적이 있어서다. 우리네 드라마 제작이라고 하면 대부분 작가를 맨 꼭대기로 세우고 그 밑으로 PD와 배우, 스텝들이 서는 수직적 위계구조로 이뤄져 왔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예능 방식으로 집단 창작을 시도하면서 신원호 PD는 훨씬 수평적 협업을 통한 드라마 제작이라는 대안적인 시스템을 내놨다. 지금은 이러한 협업 방식이 드라마 제작의 새로운 시스템으로 자리하고 있다. 이제 신원호 PD는 <슬기로운 의사생활>로 드라마 편성 방식의 새로운 길을 열어가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인간적인 제작방식의 고민은 고스란히 따뜻한 인간 냄새가 나는 드라마의 탄생으로 이어지는 이유가 아닐까 싶다. (글:매일신문, 사진:tv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