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거 사고 맞죠?” 이요섭 ‘설계자’
김은희 작가가 쓴 드라마 ‘지리산’은 산을 배경으로 벌어지는 사고들이 알고 보니 누군가 저지른 살인사건이었다는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사고인 줄 알았더니 사건이었더라는 서사를 굳이 김은희 작가가 쓴 건, 그것이 주는 울림이 있어서다. 멀리는 삼풍백화점 붕괴부터 가깝게는 이태원 참사에 이르기까지 꽤 많은 대형참사들이 그저 사고가 아니라 누군가의 방만함이 불러온 사건이었다는 대중적 공감이 그 울림의 정체다. 이요섭 감독의 ‘설계자’ 역시 바로 이 사고와 사건이라는 다른 관점이 만들어내는 갖가지 음모와 음모론을 영화적 소재로 끌어온다.
영일(강동원)은 사고로 위장해 살인청부를 대행하는 일을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주영선(정은채)이 아버지인 검찰총장 후보자 주성직(김홍파)을 죽여달라는 의뢰를 하고, 그걸 수행하는 과정에서 동료들이 죽게 되면서 영일의 의심은 점점 커져간다. 자신들 뒤에 이 모든 걸 설계한 또 다른 인물이 있을 거라고 확신하고 급기야 동료들까지 의심하기 시작한다. 하나하나 의심가는 인물들을 추적해나가고, 그들이 설계자라는 걸 확신하면서 보복을 가하려한다. 결국 ‘설계자’는 설계하던 인물이 설계를 당하게 되면서 그 누구도 믿을 수 없게 되는 혼돈의 상황을 그리고 있다.
갑작스레 달려든 버스에 치여 영일의 눈앞에서 죽어가던 팀 막내가 끝까지 믿을 수 없다며 “이거 사고 맞죠?”라고 묻는 장면은 의미심장하다. 사고로 위장해 사건을 벌여온 이들이 결국 그렇게 마지막 순간까지 모든 걸 의심하게 되는 처지에 놓인다는 걸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들 스스로 만든 세상에 갇힌 꼴이랄까. 최근 들어 음모론들이 많아진 이유 역시 크게 다르진 않을 게다. 이젠 진짜 사고도 사건이라 여겨질 정도로 신뢰를 주지 못하는 사회가 온갖 음모론들의 원인일 테니.(글:동아일보, 사진:영화'설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