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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 정덕현
정글은 왜 점점 슬퍼지는가 30년 전 한 사내가 뉴기니의 해변을 걷다가 얄리라는 남자를 만났다. 그는 이 사내에게 이렇게 물었다. “왜 백인들은 짐이 많은데 우리 뉴기니인들은 짐이 적은 걸까요?” 뉴기니에서 짐이라는 단어는 재산이라는 뜻이다. 이 뉴기니인 얄리의 질문은 지극히 단순해 보였고 쉽게 답할 수 있는 것이라 생각됐다. 하지만 이 사내는 그 질문에 쉽게 답하지 못했다. 그 질문은 사실 같은 지구에 살면서도 왜 누구는 부자로 살게 됐고 또 누구는 가난하게 살게 됐는가에 대한 근원적인 물음이 담겨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내는 그 답을 찾기 시작했다. 그렇게 30년이 흘렀고 그 해답은 라는 방대한 분량의 책으로 쓰여졌다. 이 사내의 이름은 재레드 다이아몬드였다. 그는 이 책으로 1998년 퓰리처상..
가난으로 모든 걸 다 잃고 팡틴이 부르는 이 노래. 아프고 힘겨운 삶을 얘기하지만 그 속에서도 아름다움이 느껴지는 노래. 그래서 위로가 되는 노래. 수잔 보일이 '브리튼스 갓 탤런트'에서 모두의 냉소적인 시선을 단박에 눌러버린 이 노래. 처절하지만 아름다운... 모두에게 위안이 되기를. I Dreamed A Dream I dreamed a dream in times gone by 난 흘러간 시간에 꿈을 꿨네 When hope was high 희망은 높았고 And life worth living 삶은 가치가 있었을 때 I dreamed that love would never die 난 사랑이 절대 안 죽을 거라 꿈꿨네 I dreamed that God would be forgiving 난 신이 용서할 거라..
어린 시절, 형은 가끔씩 수수께끼를 내고는 하루 종일 답을 알려주지 않곤 했다. 답이 뭘까 곰곰 생각하며 답답해하는 내 모습이 자못 재밌었던가 보다. 하루가 꼴딱 지나고도 답을 몰라 묻는 내게 형은 적선하듯 답을 알려주곤 했다. 그런 형이 미웠던 걸까. 언젠가부터는 형에게 묻지 않고 혼자 문제를 풀려고 하는 욕구가 강해졌다. 고등학교 수학 문제를 풀 때도 마찬가지였다. 정말 어려워 문제풀이를 결국 들여다봐야 할 때마다 형의 장난스런 얼굴이 떠올라 괜스레 약이 오르곤 했다. 어쨌든 세상사에 다 그럴 듯한 이유가 있고 또 모두 어떤 답이 분명히 있다고 착각하게 됐던 건 아마도 이 어린 시절 체화된 문제 풀이 경험 때문일 게다. 하지만 어디 사는 게 수학문제 같을까. 때론 답이 없는 게 삶이고, 어쩌면 그저 ..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 이렇게 시작하는 시인과 촌장의 '가시나무'를 들을 때마다 나는 호주에서 1년 간 지냈던 젊은 시절을 떠올린다. 지금 생각해도 '전혀 다른 나'였던 그 시절. 나는 통기타 하나 들고 캠퍼스 잔디에 앉아 노래 부르는 베짱이의 삶을 구가했었다. 어쩌면 그리도 걱정이 없었고, 어쩌면 그리도 자유로웠는지 지금 생각해도 의아할 지경이다. 해외여행을 나가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또 다른 자신을 만나는 경험을 해봤을 것이다. 아는 사람이 없는 낯선 공간에서 언어마저 다를 때 느끼는 그 당혹스런(?) 자유로움이란 때론 숨겨진 또 하나의 자신을 발견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그 때 나는 마치 연기자들처럼 그 자유로운 캐릭터에 빠져있었고 그 전혀 다른 내 모습이 주는 반전을 짜릿한 ..
혼자 그 누구도 만나지 않고 일주일만 살아본 적이 있다면, '인간은 반려(伴侶)의 동물'이라는데 누구나 고개를 끄덕일 게다. 뭣도 모르던 어린 시절에는 심지어 낭만적으로 읽혔던 '로빈슨 크루소' 이야기가 사실은 처절한 생존기였다는 것을 알 것이다. '캐스트 어웨이'라는 영화에서 톰 행크스가 폭풍에 떠내려간 윌슨씨(윌슨 배구공이다)를 그토록 애절하게 부르던 장면이 이해가 갈 것이다. 정말이지 모든 인연을 끊고 속세를 저버린 고승들이 얼마나 위대한 지를 깨닫게 될 것이다. 혼자 살아간다는 건 정말 힘든 일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끔찍한 반 지하 자취방에서 두문불출 소설만 쓰던 시절, 친구의 전화 한 통화는 삶의 빛과 같았다. 전화를 받으면 그 곳이 어디든 쪼르르 달려 나가던 나는 친구들과의 이 유난한 애착(?..
아이들이 타고난 연기자라는 건 아이를 키워본 부모라면 누구나 아는 일일 게다. 원하는 걸 안 해줘서 눈에서는 눈물 한 방울 나오지 않는데 정말 슬프게 우는 아이에게 "연기하지 마!"라고 말했다는 부모의 얘기는 실로 농담이 아니다. 아이들의 표정연기는 리얼 그 자체다. 심지어는 자기 자신까지도 속일 정도니까. 우는 연기를 하다가 진짜 울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물론 가짜로 웃다가 진짜 웃음이 멈추지 않아 배가 아플 정도로 웃는 건 예삿일이다. 이 정도의 몰입이면 우리가 흔히 말하는 '명품 연기(?)'를 해낼 수 있는 기초가 잡힌 셈이다. 물론 표현력에 한계가 있겠지만, 이것이 적어도 요즘 아역들에게서 쉽게 '발연기'를 발견하기 힘든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생활 속에서의 연기와 카메라 앞에서의 연기는 ..
일산 같은 신도시에 거주하는 나 같은 프리랜서라면 점심 챙겨먹기가 얼마나 고역인지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신도시는 아침이면 한바탕 대이동이 시작된다. 물론 여성 직장인들도 많지만 특히 남자들은 거의 아침에 신도시를 떠나 서울로 일을 하러 간다. 그러면 남아있는 여성들의 세상이 펼쳐진다. 극장에 가도 거의 90%가 여성이고, 백화점이나 마트에 가도 남자를 찾아보기는 어렵다. 그나마 도서관은 나은 편이지만 거기엔 주로 은퇴한 어르신들이 더 많다. 그러니 이건 길거리를 다녀도 남자가 눈에 띌 판이다. 이런 상황이니 점심시간이 고역일 수밖에 없다. 혼자 식당을 찾는 것도 어색한데, 온통 여성들이 가득한 곳에 남자 혼자 앉아있다고 생각해보라. 그래서 아예 점심시간이 시작되기 전 30분 정도 일찍 식당에 가거나 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