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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 정덕현
자신은 정작 배우지도 못하고, 소처럼 일만 해온 가난한 엄마. 딸만은 다른 삶을 살게 해주려고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해준 엄마. 냉수로 굶주린 배를 채우며 거짓 트림을 하면서 딸에게 밥을 덜어주고, 심지어 욕을 해대는 딸에게도 “나 아니면 누구에게 하소연 하겠냐”며 오히려 감싸주었던 엄마. 엄마는 딸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내 새끼, 보고 싶은 내 새끼. 너한테는 참말 미안허지만 나는 니가 내 딸로 태어나줘서 고맙다. 니가 허락만 한다믄 나는 계속 계속 너를 내 딸로 낳고 싶다. 아가, 내 새끼야. 그거 아냐? 내가 이 세상에 와서 제일 보람된 것은 너를 낳은 것이다.” 그 엄마에게 딸이 찾아온다. 암에 걸려 남은 마지막 시간을 부여잡고. 떠나기 전 딸은 그때야 엄마라는 존재를 알아채고 이..
우리에게 스타란 무엇일까. 젊은 시절 멀리서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을 설레게 만들었던 연인이자, 언제나 피곤한 몸을 기댈 수 있는 넉넉한 어깨를 가진 친구 같은 존재일까. 우리와는 다른 별세계에 있으면서 가끔 우리에게 그 빛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만으로 화려한 삶을 살아가는 꿈의 존재일까. 아니면 도무지 우리가 범접할 수 없는 우리와는 다른 신적인 아우라를 가진 존재일까. 그저 냉정하게 바라봐 자본주의의 엔터테인먼트 산업이 만들어낸 신을 대체하는 인간상품의 하나일까. 스타를 바라보는 시각은 이처럼 극에서 극으로 달린다. 한없이 찬사의 대상이 되다가도, 어느 순간에는 끝없는 지탄의 대상이 되기도 하고, 한없이 동경의 대상이 되다가도, 어느 순간 동정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화려한 스포트라이트가 비춰지는 ..
그 때 우리는 동해안의 어느 바닷가에 있었다. 도시의 폭염을 피해, 도시의 돈 냄새를 피해, 달아난 우리를 비웃기라도 하듯, 하늘은 잔뜩 찡그린 채 빗줄기를 쏟아내고 있었다. 텅 빈 백사장 위에 설치된 천막 옆에서 우리는 비에 젖은 생쥐마냥 떨면서 빗물을 안주삼아 소주를 마셨다. 집으로부터 3백 킬로미터는 떨어진 외딴 곳에 잘 곳도 없는 우리들에게, 주머니에 마지막으로 남겨진 돈을 톡톡 털어서 마시는 소주 맛이란, 막막함과 설렘이 뒤섞인 기막힌 맛이었다. 그 대책 없는 상황은 오히려 즐거움이었다. 천막 안에서 흘러나오는 쿵쿵 대는 음악에 맞춰 우리는 천막 바깥에서 춤을 추었다. 소주에 취해 빗물과 바닷물에 취해. 자연 속에 적당히 자신을 방치해버린 듯한 그 기분. 그것은 어디로 가야할 지 몰라 눈을 깜박..
우리에게 엄마란 어떤 존재일까. 그 실체를 한 손으로 잡을 수는 없지만 우리는 수많은 엄마의 이미지들을 떠올릴 수 있다. 우리에게 엄마란 한 때 가부장적 사회 속에서 자식 빼앗기고 길바닥에 버려지기도 했던 그 분이고, 갖은 시어머니의 구박 속에서도 부엌 한 켠에 서서 행주로 눈물을 훔치는 것으로 핍박을 참고 살아오셨던 그 분이기도 하다. 자식을 위해서라면 먹을 것 안 먹고, 입을 것 안 입으며 기꺼이 희생을 감수하셨던 "자장면이 싫다"고 하신 그 분이기도 하며, 남편을 위해 제 머리카락을 팔아 손님 대접을 하더라도 내색 한 번 하지 않으시던 바로 그 분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것이 엄마라는 존재를 떠올릴 때 우리가 갖게 되는 이미지의 전부일까. 그렇지 않다. 우리에게 엄마란 너무나 자식을 사랑한 나머지 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