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글들/책으로 세상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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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미와 베짱이'에서 '프레드릭'으로옛글들/책으로 세상보기 2011. 4. 25. 10:21
어린 시절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었던 이야기, '개미와 베짱이'. 개미들이 월동준비를 할 때 음악이나 연주하고 있던 베짱이가 겨울에 개미들에게 손을 벌리는 이야기는 우리에게 개발시대의 가치를 심어놓았다. 새마을 운동으로 대변되는 그 때의 구호들은 근면, 자조, 협동이었다. 흙먼지 나던 마을에 시멘트 향기가 퍼지기 시작하면서 세상은 바뀌기 시작했다. 그 세상 속에서 우리는 개미의 가치를 몸소 실천하며 살아왔다. 베짱이는 나태함과 게으름의 상징이었다. 그렇게 30여 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 세월은 그러나 어마어마한 변화를 가져왔다. 가장 큰 변화는 그토록 외쳐왔던 개발의 가치가 고개를 숙이고 대신 분배의 가치가 중요해졌다는 것이다. 그만큼 급속도로 달려온 개발의 속도에 우리는 피로감을 느끼고 있었다. 게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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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당신의 눈은 제대로 시장을 읽고 있는가옛글들/책으로 세상보기 2010. 3. 8. 15:10
경제를 보는 두 개의 눈_한상완 지음 경제는 어렵다. 어려운 데다 어딘가 학문적인 뉘앙스까지 풍긴다. 경영이나 마케팅이라면 모를까. 그래서 경제서라고 하면 선뜻 손이 안간다. 무엇보다 경제서가 하는 말은 나와는 상관없는 먼 나라이야기 같은 경우가 많다. 이유는? 경제서가 대부분 국제경제나 국가경제, 기업경제 같은 거대담론에만 지면을 할애할 뿐, 가계경제에는 무관심하기 때문이다. 하루 벌어먹고 살기 힘들어 죽겠는 서민들이 나라경제가 어떠니 하는 경제서가 눈에 들어올 리 만무다. '공자님 얘기는 개나 물어가라지'하는 냉소적인 시선까지 더하고 나면 경제서를 대중들이 손에 쥐는 것은 참 어려운 이야기처럼만 들린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경제서는 무조건 다 어렵고, 또 나와는 상관없는 공염불만 외는 그런 종류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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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칼레의 시민이 되기 위해 필요한 것은?옛글들/책으로 세상보기 2009. 12. 11. 09:25
이계안의 '누가 칼레의 시민이 될 것인가?' 14세기 영국과 프랑스 사이에서 벌어진 백년전쟁에서 프랑스 칼레를 점령한 영국 왕 에드워드 3세는 1년 동안 끈질기게 저항한 칼레 시민들을 몰살하고 싶었다. 하지만 측근들의 만류와 칼레시의 탄원으로 한 발 물러선 에드워드 3세는 실로 잔인한 조건을 내건다. 모든 시민들의 안전을 보장하는 대신, 시민들 중 처형될 6명을 뽑아오라고 한 것이다. 칼레 시민들이 고민에 빠졌을 때, 나선 인물이 당시 최대의 거부였던 생 피에르였다. 그는 스스로 희생양을 자처했고, 이어 칼레시의 부호, 귀족, 법률가 등이 손을 들었다. 결국 생 피에르의 자결과 칼레시 부호와 귀족들이 보여준 희생정신에 감복한 에드워드 3세는 사형을 포기하고 관용을 베풀었고, 이 이야기는 '고귀한 자일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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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본다옛글들/책으로 세상보기 2006. 11. 21. 11:37
이왕주의 '쾌락의 옹호' 2> “플라톤의 이데아는 전혀 난해한 개념이 아니다. 증거는 그 말의 족보에 있는데 그것은 원래 ‘바라본다’라는 뜻을 가진 고대 그리스어의 일상어였다. 이 말에는 싸움에 이기기 위한 병법적 의미는 전혀 깃들여 있지 않다. 대신 무엇이 진짜이고 무엇이 가짜인지를 판정하는 눈을 위한 풍부한 암시가 스며 있다.”=> TV가 하나의 대상이 된 요즘, TV를 바라보는 행위는 TV를 보고 있는 나와 그런 나를 바라보는 또 다른 나의 존재를 필요로 한다. 이 TV를 보고 있는 나를 보는 또 다른 나의 존재는 저 플라톤이 말하는 진짜와 가짜를 판정할 수 있는 발판이 되어 준다. 우리는 TV를 보는 동안, 도마 위에 올라 저 칼날이 내 몸을 파고 들어와 회를 뜨는 장면을 보고 그 상태를 느끼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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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이 되기도 전에 흙처럼 살지 마라옛글들/책으로 세상보기 2006. 11. 20. 21:53
이왕주의 '쾌락의 옹호' 1> “흙으로 되기도 전에 벌써 흙처럼 살아서는 안 된다. 살아 있는 동안은 ‘살 가치 있는 삶’을 살아야 한다. 성경은 “너의 젊은 날을 기뻐하라”고 한다. 소크라테스는 더 나아가서 “살아있는 모든 날을 기뻐하라”고 충고한다.”=> 욕망 없는 담담한 삶을 살라하지만 그것은 벌어지지도 않은 미래를 현재로 끌어들여 결국은 현재의 욕망을 무화시키는 일이기도 하다. 실재하지 않는 욕망이 삶의 에너지라면 이것은 어찌 보면 삶을 포기하게 만드는 일이다. TV 속에 넘쳐나는 욕망은 그 자체가 의미 없는 것이 아니다. 의미 없는 욕망이 의미 없는 것이며, 그 욕망을 포식하기만 할 뿐 음미하지는 않기에 의미가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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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가 만들어낸 불가사리, 북핵과 양극화옛글들/책으로 세상보기 2006. 10. 25. 10:44
북핵과 양극화가 불가사리 이야기로 읽히는 이유 괴물이 나오는 이야기들은 그 탄생과정 속에 분명한 목적의식을 드러낸다. 봉준호 감독의 ‘괴물’의 탄생이 미군부대에 포름알데히드를 무단 방류한 사건에서 비롯된 것은 이 영화의 목적의식이 바로 미국과, 미국의 이런 행동을 방치하고 자기 이권만 밝히는 정부에 대한 비판에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여기서 괴물은 에둘러 말하기 위한 장치인 셈인데, 괴물담의 파급력은 ‘에둘러 말한다’는 그 장점에서 비롯한다. 이런 괴물담 중에 우리네 민담으로 오랜 전통을 갖고 있는 것이 ‘불가사리’란 괴물 이야기다. 쇠를 먹고, 먹으면 먹을수록 몸집이 커지는 이 괴물이야기는 어린 시절 누구나 한번쯤은 들어봤을 정도로 대중적인 이야기다. 그런데 이 입에서 입으로 흘러온 ‘불가사리’란 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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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시멜로, 괴물, 주몽 논란이 남긴 것옛글들/책으로 세상보기 2006. 10. 21. 18:22
숫자숭배에 지배당한 위험한 우리 사회 정지영 아나운서의 퇴진까지 가져온 밀리언셀러, ‘마시멜로 이야기’는 숫자 놀음에 경도된 우리 사회의 일단을 보여주는 것만 같다. 그것은 출판계에서는 ‘판매부수’로 불리며, 영화에서는 ‘관객수’로, 그리고 TV 드라마에서는 ‘시청률’로 불린다. 그것들은 이름만 다를 뿐 그 역할은 비슷하다. 작품에 권력을 부여하는 것이 숫자들이 맡은 역할이다. 숫자들의 권력은 점점 커져서 언제부턴가 우리네 문화계는 콘텐츠 자체의 질에 승부하기보다는 이 숫자를 얻기 위한 무한경쟁에 들어서 있는 느낌이다. 스테디셀러보다는 베스트셀러를, 두고두고 꺼내보는 명작으로 남기보다는 최단기간에 최대의 관객을 끌어 모은 영화를, 그리고 시청자들과 호흡하는 완성도 높은 드라마보다는 욕을 먹더라도 시청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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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소외, 얼굴마담들만 판친다옛글들/책으로 세상보기 2006. 10. 14. 16:04
‘마시멜로 이야기’사건으로 본 출판계의 문제 아나운서 정지영씨의 ‘마시멜로 이야기’ 번역을 둘러싼 일련의 발표들을 보다 보면 마치 ‘범죄의 재구성’을 보는 듯한 착각에 빠진다. 거기에는 밀리언셀러라는 돈 냄새가 물씬 풍기고, 속고 속이는 관계들이 난무한다. 출판사는 이중번역을 했다고 하고, 원 작가는 대리번역이라고 한다. 출판사는 정지영씨가 그 사실을 몰랐다며 죄송하다는 제스처를 취하고, 정지영씨는 정말 몰랐으나 그래도 물의를 빚은 데 대해 죄송하다는 입장을 보인다. 그런 대로 그림조각이 맞는 것처럼 보이지만 여기에도 맹점이 있다. 만일 출판사가 정지영씨 모르게 이중번역을 하고 통보조차 하지 않았다면 그건 정지영씨가 출판사에 의해 이용당했다는 말이 된다. 그런데 정작 정지영씨는 이 사태에 대해 출판사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