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작은 프로그램에서도 이런 일이 벌어진다면...

 

KBS1TV <TV쇼 진품명품>은 그래도 7% 정도의 시청률을 내는 프로그램이지만 그렇다고 대단히 핫(hot)한 프로그램은 아니다. 그래서인지 <진품명품>에 최근 벌어진 사태에 대해 대중들은 심지어 의아하게까지 여긴다. 무슨 정치적으로 민감한 시사문제를 다루던 프로그램도 아니고, 그렇다고 대중적으로 뜨거운 프로그램도 아닌, 어찌 보면 KBS에 가장 어울리는 스테디셀러형 프로그램에 왜 이런 무리수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는지 이해하기가 어려워진다. 그래서 이렇게 생각하게 된다. 이런 작은 프로그램에도 이런 정도의 일이 벌어진다면 다른 민감할 수 있는 프로그램들은 오죽할까 하고 말이다.

 

'TV쇼 진품명품(사진출처:KBS)'

문제는 사안 자체보다 그 사안이 진행되는 과정의 파행에서 발생하고 있다. 즉 이번 <진품명품> 사태는 멀쩡하게 잘 하고 있는 MC인 윤인구 아나운서를 김동우 아나운서로 교체하는 과정에서 벌어졌다. MC 교체야 개편에 즈음해 늘 있을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제작진들은 이 MC 교체가 사측의 일방적인 통보였을 뿐이라며 윤인구 아나운서를 MC로 방송을 강행하려 했다. 이 과정에서 이를 저지하려는 사측과 제작진 사이에 고성이 오가는 등 마찰이 있었고, 결국 예정된 녹화는 파행되기에 이르렀다.

 

즉 사전에 충분히 사측과 제작진이 협의를 통해 MC 교체를 논의했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었을 사안이다. 하지만 사측의 일방적인 통보와 낙하산식 인사는 결국 제작진의 반발을 불러 올 수밖에 없었다. “방송에는 차질이 없을 것”이라던 사측의 이야기와는 달리, 실제 방송은 ‘감정위원이 선정한 최고의 명품’이란 특집 명목으로 급조된 편집본에 불과했다. 파행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제작진 전원을 타부서로 발령내는 이해할 수 없는 인사권 남용으로 전국언론노조 KBS본부의 집단 반발을 일으켰다. 방송은 결국 어떠한 협의도 없이 김동우 아나운서를 MC로 세우는 것으로 결정됐다.

 

과정이 납득될만한 것이었다면 충분히 그냥 넘어갔을 수도 있는 일이 이제는 사안이 너무 커져버렸다. 사측과 제작진 사이에 벌어진 충돌로 청원경찰이 출동하는 사상초유의 사태가 벌어졌고, 심지어 제작진 전원을 타부서로 발령내는 역시 사상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사태는 이제 제작진들 전체의 문제로 비화되었다. 사측에 의해 제작 자율성이 좌지우지되는 상황은 제작진들에게는 결국 생존의 문제가 되기 때문이다. 숨만 쉰다고 사는 건가. 누군가의 꼭두각시가 되는 건 제작진에게는 죽음이나 마찬가지다.

 

특히 인사권의 남용은 KBS 같은 공영방송이 국민들을 위한 방송이 되기 위해서도 반드시 막아져야 될 대목이다. 만일 경영진에 의해 마구 인사권이 휘둘려진다면 제작의 자율성은 보장받기 어려워진다. 결국 경영진 몇 명에 의해 국민을 위한 방송은 정부를 위한 방송으로 바뀔 수도 있다. 이것은 시청료를 납부하고 있는 국민들을 소외시키는 일이다. 결국 피해는 국민들에게 고스란히 전가된다는 점이다.

 

어쩌면 KBS측은 뭐 이게 그리 큰일이냐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진정 그렇게 말한다면 이 사태는 더 위중한 문제일 수 있다. 이런 일이 대수롭지 않게 자행되고 있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니 말이다. <진품명품> 사태는 작아보여도 결코 작은 것이 아니다. KBS측은 “차질 없는 방송”을 계속 말하고 있지만 이렇게 나가게 되는 방송이 어찌 차질이 없다 말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 이것은 <진품명품>의 문제이면서 KBS의 문제이면서 동시에 국민 전체의 문제이기도 하다. 자칫 잘못하면 이 사태로 KBS의 진품성을 묻게 될 지도 모르겠다.

아이들 기피대상 1호 성동일, 꼴찌아빠 아니다

 

아이들은 왜 성동일을 기피대상 1호로 꼽았을까. <아빠 어디가>에서 하룻밤 아빠 바꿔 지내기 미션에서 아이들은 저마다 성동일이 일일아빠 되는 것을 꺼려했다. 그간 방송에 나온 것을 통해 보면 이런 결과는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일 수 있다. 성동일은 그간 아이들을 골려먹기도 하고 늘 풀어주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어느 정도 아빠로서의 권위 아래서 아이가 긴장하게도 만드는 모습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아빠 어디가(사진출처:MBC)'

그런데 준이가 늘 바르고 곧은 모습을 보이는 ‘성선비’로 불리게 된 것은 어쩌면 아빠 성동일의 이런 남다른 교육관 덕분일 수 있다. 누구보다도 부지런하고 타인을 배려하거나 산만하지 않고 침착하며 때론 용기 있는 행동을 보여주는 준이의 모습은 성동일이라는 때로는 넘어야할 산처럼 여겨지게 만드는 아빠가 있기 때문이다. 모든 걸 받아주는 아빠가 아니라 세상에는 타인과 살아가기 위해 어떤 규칙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아빠다.

 

하지만 세상에는 아빠들도 많고 또 그 아빠들의 교육관도 그 수만큼 많을 수밖에 없다. 송종국은 성동일과는 정반대의 교육관을 갖고 있는 아빠다. 그가 지아를 대하는 태도는 말 그대로의 ‘딸 바보’다. 뭐든 아이가 원하는 것은 챙겨주고 아이의 의견을 존중해주는 아빠. 그러니 송종국과 하룻밤을 지내게 된 준이는 이 너무 다른 교육관 사이에서 ‘문화적 충격’을 경험했을 수 있다.

 

마치 하소연하듯 맨날 공부만 해서 놀 시간이 없다고 털어놓는 준이에게 송종국은 아빠가 원한 구연동화를 읽어주기보다는 같이 놀아주었다. 송종국은 아이가 책을 읽고 싶어하는 게 아니라 놀고 싶어 한다고 말했고 함께 나와 축구로 몸을 풀고는 준이가 하고 싶다는 줄넘기 천 번에 도전했다. 그렇게 줄넘기 도전을 성공한 후 받은 송종국의 사인을 다음 날 준이는 아빠에게 자랑하고 싶어했지만 아빠는 여전히 무뚝뚝했다.

 

모든 걸 받아주는 아빠 송종국과 조금은 근엄하고 무뚝뚝한 아빠 성동일은 이 서로 다른 교육관은 그러나 틀린 것이 아니라 다른 것일 뿐이다. 어느 것이 옳고 그른 것이 아니라 저마다 각자의 아이를 키우는 방식이라는 점이다. 당장의 아이의 입장에서 보면 성동일의 교육방식이 너무 옛날식인 것처럼 보일 수 있고 그래서 마치 잘못된 것처럼 여겨질 수 있지만 이러한 엄한 교육방식이 가진 좋은 점도 있기 마련이다.

 

흥미로운 건 하룻밤 아빠 바꾸기 미션에서 아이들이 일순위로 꼽은 아빠가 김성주라는 점이다. 김성주는 방송 초반만 해도 아이와 함께 지내는 것이 익숙하지 않은 모습을 보였던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때로는 아이에게 화를 내기도 하는 모습이 보여지기도 했다. 하지만 김성주가 아이들의 일 순위가 된 데는 그가 가진 아이들을 말로 밀고 당기는 재주가 한 몫을 했다. 이것은 그가 타고난 방송인이기 때문일 수도 있고 아니면 아나운서라는 특성상 언변이 좋기 때문일 수도 있다. 어쨌든 이 소통을 통한 교감은 김성주가 가진 남다른 교육방식일 게다.

 

아빠를 바꿔 하룻밤을 지내는 미션은 여러 차례의 교감을 가진 <아빠 어디가>이기 때문에 가능한 미션이다. 그만큼 친밀하지 않다면 어찌 타인의 아이를 거기에 맞춰 챙겨주는 모습이 가능할 것이고, 또 타인에게 자신의 아이를 맡길 수 있겠는가. 중요한 것은 이 과정에서 아빠들도 자신들과 아이의 모습을 한 번쯤은 되돌아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는 점이다. 아이만 배우는 게 아니고 아빠들도 배운다.

 

<아빠 어디가>는 결국 아빠와 아이가 등장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교육에 대한 이야기가 담길 수밖에 없다. 바로 시골에 가서 직접 밥을 해먹거나 떡을 만들어보거나 밤을 따고 개울에서 뛰어노는 그 몸으로 부딪치는 아날로그적인 체험들은 그 자체로 커다란 교육적 효과를 드러낸다. 지금껏 보여진 아이들의 변화를 떠올려 보라. <아빠 어디가>는 분명 지금의 교육현실에 대한 비판적인 정서가 바탕에 깔려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아빠들이 보이는 저마다의 교육관에 정답이 있는 것은 아니다. 아이들의 기피대상 1호가 된 성동일이 꼴찌 아빠가 아니고, 성동일과는 정반대의 교육관을 가진 송종국이나 아이들의 1순위가 된 김성주가 일등 아빠는 아니라는 점이다. 각자가 생각하는 교육관이 있을 뿐이다. 어떤 교육관이 맞느냐를 비교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아빠 바꾸기 미션이 보여준 것처럼 아빠들이 타인의 교육관을 인정하는 태도다.

갈수록 폭발력 커지는 <무도> 가요제의 비밀

 

어쩌면 이렇게 늘 새로운 느낌을 줄 수 있을까. <무한도전> 가요제는 강변북로 가요제(2007)부터 시작해 올림픽대로 가요제(2009), 그리고 서해안 고속도로 가요제(2011)를 거쳐 이번 자유로 가요제(2013)가 무려 네 번째다. 그런데 이처럼 회를 거듭하면서도 그 폭발력은 점점 더 커지는 것 같다.

 

'무한도전(사진출처:MBC)'

자유로 가요제는 일단 그 규모가 훨씬 커졌다. 3만5천여 명이 운집한 공연장은 웬만한 록 페스티벌을 연상시킬 정도였다. 단 하루 게릴라식으로 치러지는 가요제의 규모가 이 정도라면 <무한도전>이라는 이름을 걸고 음악과 다양한 이벤트가 벌어지는 어엿한 페스티벌을 만들어도 충분할 듯하다. 의미와 가치만 있다면 불가능한 일도 아닐 듯 싶다.

 

무엇보다 과거와 달라진 음악들이 주목된다. 유재석이 댄스곡을 고집한다거나 박명수가 일렉트로닉 하우스 장르를 반복했다면 식상해질 수도 있는 가요제였다. 하지만 유재석이 부르는 R&B는 괜찮은 느낌을 주었고, 프라이머리의 색깔이 묻어나는 레트로 힙합을 박명수가 부르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특히 첫 무대에 올랐던 김C와 정준하의 실험적인 무대는 실로 압권이었다. 정제되면서도 세련되고 또 다채로운 볼거리와 들을 거리를 펼쳐 놓음으로써 좋은 시작을 알렸다. 퍼포먼스가 좋았던 정형돈과 지드래곤의 무대, 노홍철과 장미여관 그리고 하하와 장기하와 얼굴들이 선보인 파워 넘치는 록 스피릿, 그리고 보아와 길이 보여준 춤의 경연도 물론 빼놓을 수 없다.

 

<무한도전> 멤버와 아티스트들의 조합, 그리고 그 관계에서 나오는 스토리텔링도 갈수록 세련되어지고 있다. 아마도 여러 차례의 노하우가 축적되면서 생겨난 일일 것이다. <무한도전> 가요제에 함께 나간다는 것만으로도 반색할 가수들의 풀이 넓어진 것은 음악적인 다양성을 담보할 수 있으면서도, 동시에 다양한 스토리텔링을 할 수 있는 자원이 된다. 메인 게스트가 아니라 도움을 주는 게스트에만도 이소라, 다이나믹 듀오, 김조한 같은 아티스트들이 참여할 정도가 아닌가.

 

자유로 가요제에는 지드래곤이나 보아처럼 국내 대형 기획사의 화려한 가수들이 참여하는 것은 물론이고 장미여관 같은 이제 막 대중들에게 인지되는 인디밴드가 참여하기도 한다. 그러니 장미여관의 육중완의 옥탑방에서 노홍철이 YG 사옥을 가리키며 게찜을 먹는 이야기가 나올 수 있게 된다. 하하와 장기하와 얼굴들이 정형돈과 지드래곤이 점심을 먹는 YG 식당을 급습하는 장면도 말이다.

 

여기에 유희열이나 김C 같은 이미 예능을 통해 믿고 보는 캐릭터들의 가세는 자유로 가요제의 예능을 남다르게 만들었다. 특히 감성변태 유희열과 유재석이 곡 선정을 하면서 서로 댄스와 R&B를 고집하다가 <100분토론>(?)까지 하는 이야기나, 제주도를 여행하며 김C의 독특한 음악 세계에 점점 빠져 들어가는 정준하의 이야기, 그리고 정형돈과 지드래곤이 퀴어코드를 활용해 마치 연인처럼 밀당을 하는 이야기는 큰 웃음은 물론이고 발표될 음악에 대한 기대감을 만들기에 충분했다.

 

보통 시즌제를 하는 가요제나 오디션 프로그램이 빠지는 늪이 바로 이 반복과 패턴화로 인해 생겨나는 피로감일 것이다. 제 아무리 파괴력을 보여준 소재라도 반복하면 힘이 빠지는 것이 당연지사. 과거 <남자의 자격>이 했던 하모니편은 단적인 사례이고, 최근에는 오디션 프로그램들이 시즌을 거듭하면서 예전 같지 못하다는 지적을 받는 것이 현실이다. 그런데 어떻게 <무한도전> 가요제는 회를 거듭할수록 오히려 더 승승장구할 수 있었을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무한도전> 가요제 특유의 기대감을 빼는(?) 방식에서 기인한다. 보통 시즌제 프로그램이 작게는 몇 달마다 길게는 1년 정도를 두고 반복되지만 <무한도전> 가요제는 휴지기가 2년이다. 그만큼 이전의 열기가 충분히 가라앉은 상황에서 시작할 수 있다는 점이다. 시즌제에서 휴지기가 중요한 것은 준비기간이 필요해서이기도 하지만 한껏 올라가 있는 기대감을 상대적으로 누그러뜨리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그래야 다시 처음부터 시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무한도전> 가요제의 기대감을 빼는 방식에서 더 중요한 것은 독특한 스토리텔링 속에도 들어있다. 보통의 가요제라면 기대감을 높이는 방식으로 프로그램을 연출하기 마련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나는 가수다>다. <나는 가수다>는 출연자들이 방송국을 찾아오는 순간부터 대기실에서 기다리는 장면, 리허설 등을 순차적으로 보여주며 가수에 대한 기대감을 높인다. 하지만 <무한도전>은 거꾸로다. 멤버들은 가수들을 만나는 장면에서부터 한없이 기대감을 뺀다. “과연 저렇게 해서 노래는 나올 수 있을까”하는 이야기로 시작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번 자유로 가요제에서 보듯이, 막상 무대에서 발표된 곡들은 기대 이상의 결과물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스토리텔링은 예능적으로 접근하고(기대감을 낮추고) 무대는 최고의 아티스트들이 자신만의 스타일로 만들어낸 최고의 결과물을 뽑아내는 방식. 여기에 <무한도전> 멤버들과의 이야기까지 가사로 녹여진다면 웃음과 즐거움을 넘어 감동까지 주는 무대가 완성되는 셈이다.

 

방송에 있어서 비슷한 소재를 갖고 회를 거듭하면서 승승장구할 수 있다는 것은 어찌 보면 불가능해 보이는 일이다. 하지만 <무한도전> 가요제는 그 독특한 스토리텔링 방식을 통해 이 불가능한 일을 가능하게 만들고 있다. 결국 <무한도전> 가요제는 가요제 형식의 <무한도전>이라고도 볼 수 있을 게다. 이것은 또한 무수한 시즌제를 추구하는 방송 프로그램들에게도 분명 충분히 생각해볼만한 형식 도전이 아닐 수 없다.

<슈스케5>, 어쩌다 이들은 무표정이 되었을까

 

<슈퍼스타K5>의 탑3는 송희진, 박재정, 박시환에게 돌아갔다. 김민지는 결국 탑4에서 하차하게 됐다. <슈퍼스타K5>의 출연자들 역량이 예전만 못하다고 하지만 송희진과 김민지가 함께 부른 브르노 마스의 ‘원 모어 나잇(One more night)’은 실로 압권이었다. 음정이 불안하다는 평을 자주 듣고 또 발라드에만 장르적으로 머물러 있던 박시환의 록커 변신은 무난하게 여겨졌고, 복고적이면서도 늘 세련된 느낌을 주는 박재정의 무대도 나쁘지 않았다.

 

'슈퍼스타K5(사진출처:mnet)'

실로 심사위원들의 혹평이 유독 많았던 <슈퍼스타K5>였던 게 사실이다. 특히 이하늘의 심사는 대부분이 혹평에 가까웠고 점수도 90점 이상이 거의 없었다. 그러니 시청자들 입장에서는 출연자들의 역량 부족은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다. 게다가 이렇게 혹평을 받은 출연자들의 의기소침은 무대에서의 실수로 이어지기도 했다. 탑4 무대 정도가 된다면 출연자들의 얼굴에 자신감이 넘쳐야 하지만 어찌 된 일인지 그렇질 못했다.

 

아마도 시즌5를 지나오면서 점점 높아진 기대감이 주는 착시현상도 있을 게다. 노래실력이 아직 아마추어에 머물고 있다고 평을 받지만 탑4까지 온 출연자들은 충분한 매력이 있다 여겨진다. 프로로서의 실력과 끼를 보여준다면 그것은 어쩌면 오디션 프로그램이 갖는 순수한 맛을 상쇄시킬 수도 있지 않을까. 송희진이 가진 시원시원한 고음과 박재정이 가진 안정적이고 세련된 느낌, 박시환의 듣는 이를 슬프게 만드는 음색이나 김민지의 어쿠스틱하고 아티스트적인 면모는 저마다 괜찮은 가능성으로 보인다.

 

그런데 한 가지 이들을 아마추어적인 느낌이 들게 만드는 점이 있다. 그것은 흔히들 끼 혹은 스타성이라고 말하는 자신을 표현하는 능력이 잘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SM엔터테인먼트를 찾아간 박시환과 박재정이 샤이니를 만나 선보인 춤을 보라. 생방송 무대에서도 ‘매너 부족’ 혹평을 들을 만큼 이들의 몸으로 표현하는 부분은 실로 부족한 게 사실이다. 이것은 송희진도 마찬가지고 김민지도 마찬가지다. 물론 그녀들은 각각 파워보컬과 포크라는 특색을 갖고 있어서 그럴 수 있다. 하지만 그래도 무대에서의 액션이 약한 것만은 분명하다.

 

이것은 단지 액션만이 아니고 그들의 표정에서도 묻어난다. 노래 역시 감정을 실어 관객에게 마음을 전하는 것이라면, 노래 그 자체만큼 중요한 게 얼굴의 감정연기가 될 것이다. 그런데 약간의 허세 섞인 표정의 매력을 가진 박재정을 제외하고는, 나머지 세 사람의 표정은 사실상 데드 마스크에 가깝다. 박시환은 늘 똑같은 표정이고 심지어 웃을 때조차 어색한 느낌이다. 송희진은 감정을 밖으로 드러내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는 사람처럼 노래하고, 김민지는 그나마 나은 편이지만 그래도 표정이 자연스럽지 못한 건 마찬가지다.

 

가창력이 가진 힘이 100%라면 여기에 얹어진 표정과 감정은 노래를 200%로 만들어줄 것이다. 결국 제 아무리 고음을 잘 지르고, 슬픈 목소리를 낸다고 해도 그것이 상대방에게 전달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이니 말이다. 과거 출연자였던 허각이나 존박, 울랄라세션의 임윤택이나 버스커버스커의 장범준, 그리고 로이킴, 정준영 같은 인물들을 떠올려 보라. 그들은 얼마나 자신의 끼와 스타성을 마음껏 보여주었던가.

 

어째서 이번 출연자들은 무표정한 느낌을 주게 되었을까. 여기에는 심사위원이나 제작진들이 이들 출연자들을 충분히 북돋워주지 못한 결과이기도 하고, 그 감정과 표현을 제대로 포착해내지 못한 결과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보면 출연자들 스스로 자신의 무표정으로 일관해온 틀을 벗어던지지 못한 원인이 가장 크다. 그렇다면 도대체 무엇이 이들을 이토록 무표정하게 만들었을까.

 

이번 출연자들은 특히 어려움을 많이 겪은 흔적이 역력하다. 가난한 집안형편으로 중장비 이동 정비사를 하며 노래방에서 노래의 꿈을 키워왔다는 박시환이나, 가정형편이 안 좋아 아빠랑 떨어져 그룹 홈에서 지낸다는 송희진은 대표적이다. 이들의 무표정은 어쩌면 상처받은 이들이 더 이상 상처받지 않기 위해 자신의 감정을 숨기는 것이 거의 습관화되면서 생겨난 것일 수 있다. 그것은 이제 겨우 스물여섯의 나이에 일자리를 전전하고, 열아홉에 집이 없어 그룹 홈에 지내는 청춘이 취할 수 있는 자기 보호 본능 같은 것일 게다.

 

이들에게 오디션이라는 현실의 또 다른 재연은 누구보다 혹독하게 느껴질 수 있지 않을까. 따라서 이번 오디션에서 무엇보다 바라게 되는 것은 누가 우승하고 누가 떨어지는가가 아니다. 이들이 오래도록 숨겨왔던 자신들의 속내를 털어내고 웃는 모습. 더 이상 부자연스럽게 여겨지지 않는 그동안 유예되어왔던 그 나이의 밝은 표정을 갖게 되는 것. 어쩌면 이것은 우리 시대의 한 어두운 구석에서 잉여라 치부되며 힘겨운 현실을 무표정으로 버텨내고 있는 청춘들에 대해서도 어떤 희망이 될 수 있을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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