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배우 송혜교가 거머쥔 대상의 의미

 

여배우가 되는 길은 얼마나 멀고 험난한 것일까. 사실 스타가 되는 건 어렵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배우가 된다는 건 다른 얘기다. 특히 외적인 이미지로 먼저 대중들에게 자리매김하기 마련인 여자 연예인들에게는 더더욱 그렇다. 스타가 되어 CF 등을 찍으며 유명해지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이렇게 하나의 고정된 스타 이미지로 굳어져버리기 시작하면 연기의 길은 요원해지기 마련이다.

 

'에이판 스타 어워즈에서 대상을 탄 송혜교(사진출처:UAA)'

그런 의미에서 지난 16일 열린 대전 ‘2013 에이판 스타 어워즈(APAN STAR AWARDS)’에서 쟁쟁한 후보들 중 대상을 차지한 송혜교는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한다. 오로지 연기력을 중심으로 시상하는 이 시상식에서, 또 올해처럼 유독 여성 연기자들의 활약이 두드러졌던 해에 그 누구도 아닌 송혜교의 대상 수상은 그녀가 오래 전부터 스타의 길이 아닌 여배우의 길을 힘겹게 걸어온 것에 대한 결실이자 보상이었다.

 

<직장의 신>의 김혜수, <여왕의 교실>의 고현정, 특히 <내 딸 서영이>와 <너의 목소리가 들려>로 맹활약한 이보영은 <그 겨울, 바람이 분다>의 송혜교와 마지막까지 심사위원들 간의 팽팽한 의견이 오갔던 후보였다. 하지만 심사위원들은 마지막에 대상으로 송혜교를 결정하는데 있어서 이견이 없었다. 화제성이나 드라마의 인기 등을 염두에 둔다면 달랐겠지만, 에이판 스타 어워즈가 오로지 연기력을 중심으로 보는 시상식이기 때문이었다.

 

그만큼 <그 겨울, 바람이 분다>에서 송혜교가 소화해낸 오영이라는 시각 장애인 역할이 쉽지 않은 연기라는 걸 모두가 인정했고, 그녀의 연기가 확실히 과거에 비해 한 단계 업그레이드되었다는 것에 심사위원들은 공감했다. 그녀의 존재감을 처음 보여주었던 <가을동화>나 <풀하우스>가 그녀 연기의 가능성이었다면, <그들이 사는 세상>부터 <그 겨울 바람이 분다> 그리고 영화 <오늘>과 <일대종사> 같은 작품은 그녀의 본격적인 연기도전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겨울, 바람이 분다>는 특히 섬세한 내면연기를 보여줘야 하는 드라마였다. 특별한 스펙터클이나 다이내믹한 서사보다는, 극단적 클로즈업으로 인물의 작은 표정과 동작 하나하나가 전해주는 감정변화를 보여주는 것이 이 드라마의 관건이었다. 앞을 못 보는 오영(송혜교)과 거짓으로 다가온 오수(조인성)는 모두 겉과 다른 감정의 변화를 미세한 연기를 통해 연기해내야 했다. 어찌 보면 연기자들의 연기가 없었다면 불가능한 드라마였다는 것.

 

연기력을 통한 대상 수상으로 완전한 여배우로서 자리매김한 송혜교는 스타에 머무르지 않고 여배우가 되려는 많은 이들에게 하나의 좋은 사례가 되었다. 송혜교는 먼저 좋은 작가, 감독과 함께 작품을 하려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그들이 사는 세상>의 노희경 작가는 그래서 그저 귀엽고 순수하게만 보였던 송혜교에게서 때론 날카로운 커리어우먼의 모습을 끄집어내주었고, 영화 <오늘>의 이정향 감독은 그녀에게서 딜레마에 빠진 여자로서의 섬세한 내면연기를 발굴해냈다. <일대종사>의 왕가위 감독에 이어 <태평륜>의 오우삼 감독까지 그녀의 여배우로서의 좋은 작품에 대한 욕심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여배우의 길. 스타라는 쉬운 길을 놔두고 배우라는 어려운 길을 선택하고 걸어간다는 것이 어찌 쉬운 일이겠는가. 하지만 그 배우의 길은 또한 여자 연예인이 반짝 스타로 젊음의 한 때를 구가하다 사라지는 것보다, 더 오래도록 대중들과 함께 남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송혜교의 선택과 일련의 과정들은 배우를 꿈꾸는 많은 여자 연예인들에게 하나의 특별한 의미가 될 것이다.

 

송혜교는 대상을 받는 자리에서 “지난 해 막 추워질 무렵 <그 겨울> 첫 촬영에 들어갔다. 지금 이 자리에 서니 그 때 그 시간이 정말 소중하게 느껴지고 촬영장이 그립다”고 말했다. 그리고 “한국시각장애인복지관 여러분께 감사드린다. 연기를 하는데 정말 많은 도움을 받았다”고 감사의 뜻을 전하기도 했다. 지난 겨울을 따뜻하게 해주었던 <그 겨울, 바람이 분다>. 올 겨울의 초입에 송혜교의 대상 소식은 그 때 불었던 따뜻한 바람의 감회를 다시 느끼게 한다. 송혜교라는 여배우의 앞길에 언제나 훈풍이 불어주기를.

<무도>와 유재석의 낮은 눈높이에 대한 의지 

 

이토록 다양한 아이템들과 기획의도가 어떻게 하나로 묶여질 수 있었을까. <무한도전> ‘관상 특집’은 이제는 하나의 역사가 되어가는 <무한도전>의 자신감과 위상을 보여주는 것이면서 동시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으로도 늘 대중의 눈높이 아래에 자신들을 세우겠다는 의지를 보여준 특집이기도 하다. 이 한 편에는 지금껏 <무한도전>이 걸어온 역사가 자연스럽게 묻어있고 그 역사가 어떻게 유지되고 있는가에 대한 비법 또한 들어가 있다.

 

'무한도전(사진출처:MBC)'

‘관상 특집’은 이 놀라운 시도를 통해 <무한도전>이 지금 현재 어떻게 진화하고 있는가를 정확히 보여주었다. 이 세계에는 지금껏 <무한도전>이 해왔던 무수한 아이템들이 한꺼번에 들어와 있다. 관상 전문가를 데려다 놓고 조선시대였다면 누가 양반이고 누가 상놈이며 누가 왕이고 누가 상놈 중의 상놈인 망나니인가를 가려내는 장면은 지금껏 <무한도전>의 확실한 성공아이템으로 자리했던 외모 대결의 진화된 형태다.

 

하지만 ‘관상특집’의 스토리는 여기서 머물지 않는다. 조선시대라는 상황극 속으로 뛰어들더니 지금껏 <무한도전>이 상황극을 통해 현실을 비틀기도 했던 그 풍자정신을 녹여낸다. 왕은 신하의 말을 듣지 않고 향락에만 빠진 폭군이며, 고언을 하는 충신을 말 한 마디로 망나니 신분으로 떨어뜨린다. 떡을 입에서 입으로 옮겨 받는 식의 무모한 도전 시절부터 시도되던 원초적인 게임들이 오가고 게임 결과에 의해 신분이 뒤바뀌면서 권력구도가 재편된다.

 

굳이 <무한도전>이 엄청난 화제와 함께 무수한 말들까지 쏟아냈던 자유로 가요제 이후, 갑자기 ‘관상특집’을 통해 권력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든 것이 우연인지 아니면 의도인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그것이 무엇이든 대단히 시의적절하고 의미심장한 것만은 분명하다. 자유로 가요제가 보여준 <무한도전>의 위상은 누구나 주지하듯 실로 어마어마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생겨난 높아진 위상은 <무한도전>에게는 부담이 되기도 한다. 그러니 ‘관상특집’이 다루는 잘못된 권력의 문제나 권력의 무상함에 대한 이야기는 대중들에게 건네는 <무한도전> 방식의 대답이 되기도 한다.

 

상황극이 타임슬립 설정으로 갑자기 현대로 넘어오는 건 <무한도전>의 이제는 어디로 튀어도 이야기가 가능한 자신감을 드러내는 부분이다. 상황극은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었고 과거와 현재를 하나로 묶어냈다. 이 과정에서 권력의 무상함이 자연스럽게 보여진다. 조선시대 폭군이었던 정형돈은 현재에는 지나는 행인과 똑같은 한 사람으로 그저 이상한 사람으로 보여질 뿐이다. 또 조선시대 망나니로 신분이 하락한 유재석은 한 착한 아줌마에게 계란을 얻어먹고 누군가 먹다 남은 잔반으로 배를 채우며 복수를 꿈꾸지만(신분의 복귀) 그건 현대에는 사실 의미 없는 일이다.

 

여전히 계급 제도의 권력의 틀에 묶여 있는 이들이 그래서 대중들 속으로 들어와 거리를 활보하는 건 <무한도전>이 과거 ‘지못미’ 특집 등으로 선보였던 벌칙 미션의 새로운 형태이면서 동시에 신분과 계급 그리고 권력이 가진 우스꽝스러움을 보여주는 놀라운 연출을 보여주었다. 흥미로운 건 한 지나는 직장인에게 신분을 묻자 그가 ‘노비’라고 하면서 ‘주인님’한테 돌아가야 한다고 말했다는 점이다. 갑자기 상황극과 현실이 또 조선시대와 현재가 하나로 묶여지는 이 장면은 계급제도는 없지만 자본이 만들어내는 신분과 권력의 문제가 여전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어지는 건 신분을 바꾸기 위한 추격전이다. 조선시대에 궁궐에서 벌어졌던 원초적인 게임들이 과거 <무한도전> 초창기의 게임 형태였다면 현대로 들어온 인물들이 도심에서 벌이는 추격전은 현재 <무한도전>의 진화된 형태의 게임인 셈이다. 그러니 <무한도전> ‘관상특집’은 외모순위 특집이나 상황극, 시민들과 함께 하는 지못미 벌칙에 이어 과거와 현재를 관통하는 게임의 진화까지 끌어들이게 되었다. 이 많은 성공 아이템들이 무수히 배치되면서도 전혀 어색함이 느껴지지 않았다는 것은 이미 우리가 우리도 모르는 사이 <무한도전> 월드 깊숙이 들어와 있다는 반증이다.

 

여기서 <무한도전>의 위치를 대변하는 듯 주목되는 인물은 역시 유재석이다. 그는 양반의 위치에서 졸지에 망나니가 되어 현재의 거리로 내던져진다. 이른바 유재석이 가진 막강한 힘은 이미 모두가 주지하는 바이지만, 그의 의지는 대중들보다 항상 낮은 눈높이에 서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는 길바닥에 누군가 버리고 간 이쑤시개를 아무렇게나 쓰고, 심지어 누군가 남긴 잔반을 먹으며 대중들에게 웃음을 주려 노력한다.

 

대중들을 위해 가장 낮은 곳으로 기꺼이 내려와 진심으로 뒹굴 수 있는 의지. 어쩌면 유재석과 <무한도전>이 가장 높은 곳에서 그 위치를 지킬 수 있는 힘은 바로 여기서 나오는 것일 게다. 그리고 이것은 단지 <무한도전>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지금 현재 권력을 가진 이들이 그 권력이 어디서부터 온 것이며 그것이 지켜지기 위해서는 그 힘이 누구를 위해 사용되어야 하는가를 말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비밀>, 집착을 버릴 때 더 커지는 것

 

가지려는 것보다 놓아주는 것이 더 큰 사랑이다. <비밀>의 엔딩은 그 사랑의 진정한 비밀을 알려주면서 마무리 되었다. 죽은 줄만 알았던 아들이 살아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강유정(황정음)은 행복을 위해 아들을 놓아주었고, 그토록 조민혁(지성)을 갖기 위해 심지어 자신을 망가뜨리기까지 한 신세연(이다희)은 그를 놓아주었다. 조민혁은 사장직을 버렸고 안도훈(배수빈)도 신세연과 성공에 대한 비뚤어진 욕망을 내려놓고 자신의 과오를 모두 인정했다.

 

'비밀(사진출처:KBS)'

결국 이 모든 사건들은 ‘집착’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조민혁에 대한 신세연의 집착이 그렇고, 안도훈의 성공에 대한 집착이 그러했으며, 박계옥(양희경)의 아들에 대한 집착 또한 문제를 더 복잡하게 만들었다. 결국 강유정이라는 캐릭터는 이 집착의 소용돌이 속에서 고통받은 인물이면서, 동시에 이 집착의 고리들을 끊어내는 인물이기도 하다. 그녀는 조민혁에게 진정한 사랑을 깨닫게 했고, 안도훈에게 정의를 알게 했으며, 박계옥에게는 진정한 모성애를 보여주었다.

 

“세상에 죄를 짓지 않고 사는 사람은 없다. 다만 어떻게 갚으며 살 것인가가 중요하다”는 메시지는 이 드라마가 갖고 있는 주제의식의 깊이를 가늠하게 해준다. 누구나 죄를 지으며 살아가지만 거기에 대해 어떻게 용서를 구하고 인간답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졌던 것. 강유정이 왜 그토록 “죄송하다”는 말을 입에 달고 다녔는가를 깨닫게 하는 대목이다. 죄 없는, 아니 그 죄를 비밀로 갖고 있지 않은 인간이 어디 있겠는가. 다만 그 비밀을 드러내고 용서를 구했을 때만이 구원이 있다는 것.

 

드라마는 강유정이 법정에 선 장면으로 시작해서 안도훈이 법정에 서는 장면으로 끝난다. 억울한 강유정이 차츰 현실을 깨달아가고 그래서 결국에는 정의가 실현되는 과정을 구조적으로도 염두에 뒀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그만큼 애초에 완결된 이야기 구조를 갖고 시작했다는 얘기다. 첫 회에 벌어진 사건에 깔린 숨겨진 이야기들이 마지막 회에 드러날 수 있는 건 이 완결된 이야기 구조 덕분이다.

 

<비밀>은 드라마가 참신해질 수 있는 비밀을 알려준 드라마이기도 하다. 어찌 보면 통속극에 가까운 평범한 멜로와 복수극이 될 수도 있었던 소재였지만, 그 안에 시청자가 궁금해 할 수 있는 비밀 코드를 담아냄으로써 이야기를 팽팽하게 만들었고, 그 비밀 속에 사회와 정의에 대한 문제의식을 집어넣음으로써 이야기가 통속 치정극으로 흘러가게 하지 않았다. 결국 참신한 드라마란 전혀 새로운 소재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것을 어떻게 치밀하게 다루고 다양한 스펙트럼의 이야기로 변주하느냐가 관건이라는 걸 <비밀>은 보여주었다.

 

또한 <비밀>은 드라마의 성패가 단순히 작가의 시청률로 만들어진 지명도나 원고료 액수에 달려있는 것이 아니라는 걸 확인시켜주기도 했다. 시청률에 올인하면서 자기복제나 심지어 막장도 서슴지 않는 중견작가들의 세상 속에서, 신인작가의 과감한 발굴이 얼마나 드라마를 참신하게 만들어주는가를 <비밀>의 작가들을 통쾌하게도 알려주었다. 이로써 입증된 단막극의 가치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비밀>은 그래서 주제의식이 그러하듯이 가지려 애쓰지 않았기 때문에 완성도를 가져갈 수 있었다. 이 드라마는 시청률만을 가지려 하지도 않았고, 그 시청률만을 위해 이름 있는 작가들을 가지려 하지도 않았으며, 연기가 아닌 스타성만을 앞세운 연기자를 세우려 하지도 않았다. 오로지 <비밀>이 가지려 했던 것은 작품의 완결성이고 그걸 통해 추구하는 대중들과의 공감대였다. 그것은 결국 <비밀>이 시청률에서도, 무명작가의 이름을 알리는 데도, 또 그동안 평가절하 되었던 연기자를 재발견하는데도 성공한 이유가 되었다.

 

이제 <비밀>은 종영했지만 적어도 이 드라마가 우리네 드라마들에게 던진 질문은 끝난 것이 아니다. 언제까지 스타작가와 스타배우에 힘입어 그저 시청률만 나오면 다라는 식의 드라마 제작 패턴에 머물러 있을 것인가. 언제까지 시청률을 위해서 자극적인 코드를 계속 복제해 사용하는 퇴행적인 드라마를 반복할 것인가. 몇몇 스타작가와 스타배우들에게 과도하게 집착함으로써 생겨나는 드라마 제작의 양극화를 언제까지 방치할 것인가. <비밀>은 이 많은 질문들에 이미 스스로 답을 보여주었다. 집착이 오히려 비뚤어진 결과만을 가져오듯 놓아야 산다. 이 반복되는 드라마 패턴에 대한 집착을.

탁재훈도 있고 붐도 있는데 왜 이수근에만...

 

이상한 일이다. 불법도박 파문에 줄줄이 예능 MC들이 연루되어 있지만 희한하게도 이수근에만 유독 논란이 집중되는 양상이다. 지금까지 거론된 이름들을 보면 탁재훈, 붐, 토니안, 앤디, 양세형 등이다. 물론 지금도 조사가 진행되고 있고 이들이 다가 아니라는 이야기는 이미 업계에서는 공공연하게 나오고 있다. 그런데 유독 이 모든 일들이 마치 이수근 혼자 저지른 것처럼 포장되고 언론에 보도되고 있는 건 이상한 현상이다. 양세형 같은 이름은 거의 논란에서 거론되지도 않고 있다. 심지어 이수근이라는 이름이 다른 이름들을 덮어주고 있는 형국이다.

 

'우리동네 예체능(사진출처:KBS)'

당연하게도 이것은 이수근이 최근 다른 이들보다 더 대중들에게 노출되어 있었기 때문에 생겨난 현상일 것이다. 이수근은 KBS의 간판 예능인 <1박2일>에 시즌2까지 계속 출연해왔고, 최근에는 KBS에서 어느 정도 자리 잡은 <우리동네 예체능>에도 확고한 자기 존재감을 만들었다. 물론 탁재훈이 한때 KBS 연예대상을 탔던 인물이고 케이블에서 <비틀즈코드 시즌2> 같은 몇몇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고 있다고 해도 최근의 존재감은 확실히 이수근에 미치지 못한다. 붐 또한 마찬가지다. <스타킹>과 <출발 드림팀 시즌2>에 고정출연했지만 이수근 만큼 주목되지는 못했다.

 

게다가 이수근은 최근 토크쇼 등을 통해 자신의 어려운 상황들을 토로했다는 것이 오히려 거센 후폭풍으로 이어지고 있다. 심지어 눈물을 흘리며 어려운 가족사를 드러냈던 그였기에 그가 불법도박에 손을 댔다는 사실은 대중들에게는 더 큰 충격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요즘 예능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른바 ‘진정성’이 이 사건 하나로 훼손된 것이다.

 

불법도박 사건이 터지고 결국 모든 프로그램에서 하차하게 됨으로써 생겨나는 빈 자리도 화제가 되는 프로그램일수록 더 크게 느껴지기 마련이다. 사건이 터지기 전에 찍었던 <우리동네 예체능>은 시청률은 많이 나오지 않아도 화제성만큼은 높은 프로그램이었다. 이 프로그램에서 이수근은 말 그대로 통편집되었다. 농구는 잘 못해도 빠른 발로 이른바 셰퍼트처럼 밀착해서 수비하는 모습으로 새로운 캐릭터가 만들어져 가던 차였다.

 

불법도박 사건이 이처럼 이수근에게로 집중되는 현상은 또한 난데없이 강호동 위기론으로까지 번져나가고 있다. 물론 이 위기론에는 <스타킹> 등에서 강호동과 호흡을 맞추던 붐 또한 이 사건으로 하차하게 된 것이 포함되어 있지만, 확실히 이수근 만큼의 영향은 아닐 것이다. <우리동네 예체능>에서 강호동과 이수근은 마치 톰과 제리처럼 아옹다옹대며 스포츠에 가까운 프로그램에 예능적인 숨통을 틔워주는 역할을 해왔다. 그러니 이수근의 부재는 강호동에게 버거운 숙제를 안긴 셈이다.

 

물론 불법도박을 한 이수근에 대한 여론의 비판은 당연하고 또 지당하다. 하지만 이 비판의 초점이 맞대기 도박이라 불리는 신종 불법도박을 운영해 연예인들을 꿰어 넣은 이들에게 맞춰지지 않고 여기에 연루된 연예인들에게만 선정적으로 맞춰지는 건 이 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 한동안 이들 연예인들에 대한 질타가 이어지다가 가라앉게 되면 또다시 이런 일이 발생하는 건 시간문제다. 즉 여론몰이 하듯이 그저 한때 시선을 잡아끄는 방식의 선정적인 시선은 항간에 떠도는 음모론처럼 실제로 더 큰 문제를 가리기 위한 이벤트 정도로 사안이 이용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흥미로운 건 지금 대중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는 이 이른바 맞대기 도박이라 불리는 신종 도박이 최근에 갑자기 등장한 게 아니라는 점이다. 이수근의 경우를 예로 들면 그가 <상상플러스>에 참여하던(공교롭게도 <상상플러스>에 출연했던 MC들, 신정환을 비롯해 탁재훈, 이수근은 모두 불법 도박으로 방송에서 하차하게 되었다) 2008년에 이 도박을 처음 접했고 그 후 몇 년을 하지 않다가 2010년부터 11년까지 이 도박에 손을 댔다고 한다. 그러니 현재를 시점으로 보면 2년 전에 벌어진 일이다. 그런데 왜 하필 지금 이 시점에 이 문제가 끄집어내졌을까.

 

이수근이 전면에 내세워져 다른 불법 도박에 연루된 이들이 가려지는 현상은, 그래서 이 문제로 더 큰 정치적 사안들이 가려지고 있는 현 상황을 환기시킨다. 이것은 혹시 정치가 연예인을 활용하는 방식은 아닐지. 더 유명하고 존재감이 있는 연예인일수록 더 효과적이라는 것. 불법 도박 파문이 이수근에게만 쏠리는 현상은 그래서 마치 프랙탈처럼 정치적 사안이 연예인 사건사고로 덮여지곤 하는, 때만 되면 반복되는 일들을 떠올리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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