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효리씨 ‘여가수 유랑단’도 부탁해(‘서울체크인’)

서울체크인

어째서 이효리와 함께 하면 주변사람들까지도 빛이 날까. 티빙 오리지널 파일럿 예능 <서울체크인>이 담은 이효리의 서울나들이가 특별하게 느껴진 건 바로 이런 점들이다. 서울나들이에서 이효리가 마치 제집처럼 편안하게 찾아간 엄정화는 물론이고, 즉흥적으로 만나고 싶다는 마음에 마련된 브런치 모임에 나온 화사, 김완선, 보아까지 <서울체크인>에서는 남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이런 마법 같은 일은 어째서 가능한 걸까.

 

Mnet <MAMA>의 호스트로 서울에 온 이효리. <서울체크인>은 그가 서울에서 보내는 2박3일 간을 담았다. 가장 먼저 눈에 띤 건 무대 위 카리스마 넘치는 이효리와 무대 아래에서 정반대로 털털하기 이를 데 없는 이효리의 ‘온 앤 오프’가 전하는 상반된 매력과 그것이 전하는 기분 좋은 호감이다. <MAMA>무대를 위해 <스트릿 우먼 파이터>의 댄서들과 함께 리허설을 하는 모습에서 보여준 멋짐과, 리허설이 끝나고 대기실에서 ‘팔팔한’ 그들과 자신을 서슴없이 비교해가며 농담을 던지는 털털함이 그것이다. 

 

가비, 허니제이를 콕 집어 “엉덩이 들이대지 말라”고 하라며 농담을 던지고, 아이키가 “왜 저는 의식하지 않으시냐”고 하자, “너 정도까지는 내가...카바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가비는 다리미로 엉덩이 좀 눌러서 오라고 해.”라는 말로 빵빵 터지게 만드는 이효리. 그는 그렇게 함께 후배들과 화기애애한 이야기를 나누며 “너희들이 있어 너무 좋다”고 말했다. 

 

하지만 <스트릿 우먼 파이터> 후배들 앞에서는 대선배의 모습이었던 이효리는 엄정화 앞에서는 후배로서의 또 다른 모습을 드러낸다. 모두가 다 바뀌었는데 나만 그대로인 것 같았다는 리허설을 하며 느낀 소회를 전하는 이효리에 “내가 그 기분 모를 것 같애”라며 혼잣말하듯 툭 던지는 그 말은 가슴을 쿡 찌른다. 그 날 이효리가 느낀 그 소회를 이미 엄정화는 일찍이 39살에 ‘유고걸’을 들고 나온 이효리를 통해 느꼈었다고 했다. 

 

술과 안주는 물론이고 뭐든 던지는 대화를 척척 받아주고 들어주며 넌 아직 괜찮다고 얘기해주는 엄정화 앞에서 이효리는 금세 너무나 살가운 동생 같아진다. “아유 좋다 언니 있으니까”라며 문득 엄정화에게 “언니는 언니 없이 어떻게 버텼어요?”라고 묻는 이효리는 갑자기 눈이 촉촉해진다. 그 시간들을 오롯이 홀로 버텨왔을 언니의 마음을 고스란히 느끼는 이효리다. 순간 엄정화라는 레전드 가수의 면면이 새롭게 느껴진다. 이효리가 느꼈을 엄정화의 시간들에 대한 뭉클함이 전해진다. 

 

그 날 술 한 잔 걸치고 기분이 좋아진 이효리는 김완선, 보아, 화사와 함께 ‘댄스 가수들 모임’ 한 번 하자고 제안한다. 이튿날 <MAMA>에서 <스트릿 우먼 파이터> 후배 댄서들과의 화려한 무대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하고, 다시 엄정화의 집에서 자축하듯 샴페인을 마시며 즐거운 시간을 보낸 이효리는 다음날 진짜로 엄정화, 김완선, 보아, 화사와 함께 브런치 모임을 갖는다. 

 

화사야 이미 MBC <놀면 뭐하니?> ‘환불원정대’ 활동으로 익숙하지만, 김완선과 보아는 이효리와 함께 방송을 통해 전해지는 모습이 낯설다. 이효리는 김완선과는 사석에서 만나본 일이 없다고 했고 보아와는 결혼 전에 마지막으로 봐서 너무 오래도록 본 적이 없다고 했다. 그래서 어색할 듯싶지만 의외로 이들은 금세 언니 동생 하는 친한 사이가 된다. 여기에도 이효리의 남다른 존재감이 돋보인다. 

 

김완선이 대선배라 그 앞에서 조신한 모습을 보이는 이효리가 너무나 웃긴 화사가 “선배님”하며 웃자 두 사람은 눈을 마주치며 웃는다. 무대 위에서 화려한 모습과는 정반대로 털털한 이효리의 친근함이 힘일 발휘한다. 손톱을 마구 붙였다 떼어 망가진 모습을 보여주자 “왜 이렇게 손톱이...”라며 말문을 못잇는 김완선에게 “더럽죠?”라고 말하고 “시골에 살아가지고”라고 스스럼없이 말하는 이효리다. 그래서였는지 김완선은 금세 본연의 호쾌한 캐릭터를 드러낸다. 

 

최근에 2년 만에 앨범준비를 했다며 집에서만 있다가 ‘몸을 움직이니까’ 너무 살 것 같았다는 김완선의 이야기에 공감하고, 주변 시선 불편하지 않냐는 질문에 “시선이 없어. 이제는”이라고 말하는 김완선은 어느새 이효리 같은 ‘내려놓는 편안함’의 면모를 드러낸다. “내가 뭘 하든 관심 없으니까 내가 마음대로 한다”며 음악을 취미처럼 한다는 김완선의 말에 “좋은 포인트”라고 인생선배에 대한 배움의 자세를 보여주는 이효리. 또 이와는 반대로 ‘좋은 본보기’로 계속 되어야 한다는 압박감을 느낀다며 어릴 때 ‘무대 공포증’ 경험을 털어놓는 보아에게는 “그랬을 것 같애”라며 선배로서 공감해주는 이효리. 이것이 그가 자신은 물론이고 함께 하는 주변인들까지 빛나게 만드는 그만의 존재감이었다. 

 

기분 좋은 브런치 만남에서 이효리는 전날 엄정화와 술을 마시다 아이디어 차원에서 불쑥 떠올렸던 ‘여가수 유랑단’ 이야기를 꺼낸다. “여자 댄스 가수들이 모여가지고 전국 투어 콘서트를 하자. 여가수 유랑단 해가지고. 버스에 외국 록스타들처럼 사진을, 얼굴을 쫙 붙여. 그 다음에 대전, 대구, 부산 돌아다니는 거야.” 그 말에 김완선은 “하자”며 “자기야 천재 아니야”라며 반색한다. 남자 게스트로 지드래곤, 방탄소년단을 이야기하는 이들의 얼굴은 벌써부터 설렘으로 가득 채워져 있다. 이 아이디어 역시 실제로 구현될 수 있을까. <서울체크인>을 파일럿으로 연 김태호 PD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는 대목이다. 이효리의 한 마디로 실현된 ‘환불원정대’처럼 ‘여가수 유랑단’ 프로젝트도 이어질 수 있기를.(사진:티빙)

‘악의 마음’, 김남길만큼 중요한 진선규의 존재감

악의 마음을 읽는 자들

“프로파일러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아요? 빌딩이 높아질수록 그림자가 길어진다고 했습니다. 잘 들으세요. 머지않아 우리도 미국처럼 인정사정없는 놈들 나타납니다. 얘네들은 동기가 없어요. 그럼 어떻게 해야 돼 우리도 그런 놈들 미리미리 대비를 해야 될 거 아닙니까?”

 

SBS 금토드라마 <악의 마음을 읽는 자들>에서 국영수(진선규)는 아직 프로파일러도 또 과학수사의 개념도 잘 모르던 시절 형사들에게 그렇게 외친다. 세기말에서 2000년대로 넘어오던 시절, 국영수의 이 외침은 왜 프로파일러가 필요해졌는가를 잘 말해준다. 실제로 당시에는 영웅파니 지존파니 막가파니 하는 강력사건들이 등장해 ‘엽기적인’이라 표현되었던 잔혹한 범죄들이 고개를 들던 시기였다. 

 

국내 1호 프로파일러인 권일용 교수의 실제 이야기를 소재로 한 원작 논픽션을 드라마화한 이 작품에는 그를 모델로 그려낸 송하영(김남길)이라는 인물이 주인공이다. 하지만 당대에 실제 범죄행동분석팀을 만든 건 그가 아니라 그에게 이 새로운 길을 제안한 윤외출 경무관이다. 그를 모티브로 창조된 인물이 국영수다. 

 

송하영이 하고 있는 일들, 이를테면 이미 범인이 특정되어 심지어 유죄 판결까지 난 사건에도 미심쩍은 부분들을 끝까지 파고 들어 증거를 통한 진실을 찾아내려는 그의 행동들이 프로파일러라는 길로 꽃을 피울 수 있게 해준 인물. 국영수는 모두가 반대하는 범죄행동분석팀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주장하고, 그래서 송하영을 적임자로 발견해낸다. 

 

“야 너 그 프로파일러라고 들어봤어? 우리 식으로는 범죄행동분석관인데 프로파일러한테 필요한 자질이 다 있다 너한테는. 일단은 지금처럼 포기하지 않는 것. 거기에 열린 마음. 직관, 상식, 논리적 분석력. 사적 감정 분리까지 두루 필요한데 그런 건 둘째 치고 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감수성이거든. 에.. 뭐 타인에 대한 감수성이라고 이해하면 될라나? 사람의 마음을 분석하는 일이니까.”

 

그렇게 프로파일러의 길을 제안하며 국영수는 송하영에게 초콜릿 두 봉지와 존 더글라스가 쓴 <마음의 사냥꾼>이라는 책을 선물한다. 이 책은 25년 간 FBI에서 저자가 범죄수사 분석방법과 프로파일링을 개발해 살인사건을 해결하는 행동분석 수사기법을 다룬 책이다. 존 더글라스는 우리에게는 넷플릭스 시리즈 <크리미널 마인드>로 잘 알려진 인물이다. 

 

<악의 마음을 읽는 자들>은 그래서 우리 식의 <크리미널 마인드> 같은 소재적 뉘앙스를 담고 있다. 프로파일링의 선구자로 불리는 존 더글라스의 이야기가 <크리미널 마인드>라면 국내 1호 프로파일러인 권일용 교수와 이 부문의 또 한 명의 선구자인 윤외출 경무관의 이야기가 <악의 마음을 읽는 자들>인 셈. <마음의 사냥꾼>이라는 책은 그 접점을 만들어 준다. 

 

여기서 드라마적으로 중요한 인물은 당연히 주인공인 송하영이다. 악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이유에 대한 그의 진심이 이 인물을 통해 제대로 구현되어야 시청자들이 공감하고 몰입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송하영은 좀체 웃지 않는다. 표정변화도 거의 없다. 시종일관 진지하고 오로지 범인이 왜 그런 일들을 벌였는가를 애써 들여다보려 하는데 집중한다. 이 진지함이야말로 이 드라마가 그저 흔한 자극적인 범죄수사물을 훌쩍 넘어서는 가장 큰 미덕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드라마 수용자들인 시청자 입장에서 보면 송하영의 시종일관 진지한 모습은 자칫 무겁게 느껴질 수 있다. 그 진지함은 당연하지만 그걸 보는 것이 힘겹게 느껴질 수 있는 것. 그런 점에서 송하영에게 이 길을 열어주고 팀을 꾸려 나가는 국영수의 존재감이 얼마나 중요한가가 느껴진다. 그는 사건 앞에 진지하지만 또한 술에 취하기도 하고 적당히 농담도 건네는 인간적인 면모도 갖추고 있다. 그래서 송하영과 함께 서 있으면 그 진지함의 무거움을 국영수라는 인물이 조금은 편안하게 풀어준다. 

 

국영수가 송하영에게 이 길을 제안하면서 <마음의 사냥꾼>이라는 책과 더불어 초콜릿 두 봉지를 건네는 장면은 그래서 의미심장하다. 국영수는 송하영의 프로파일러로서의 남다른 면모를 높이 치지만 동시에 이 일이 얼마나 힘든 일인가도 이해하고 있다. 그래서 초콜릿 두 봉지에 그 마음을 담아 전할 정도로 따뜻한 인물이다. 

 

진선규라는 배우의 진가가 주인공 역할인 김남길만큼 돋보이는 건, 누군가의 삶과 죽음 앞에 서게 되는 이 국영수라는 인물이 가진 진정성과 더불어 또한 인간적인 면모까지 더해내는 진실성까지 연기해내고 있어서다. 그가 있어 <악의 마음을 읽는 자들>이라는 무거울 수밖에 없는 이야기에 숨통이 트인다. 또한 진짜 선구자의 길이라는 것이 대단한 영웅서사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어찌 보면 자기 위치에서 제대로 일을 하려는 평범해 보이는 인물들에 의해 만들어진다는 걸 이 배우는 연기로 보여주고 있다. (사진:SBS)

아이돌이 나이 들어서도 계속 음악을 할 수 있다는 건

엄마는 아이돌

“선예가 어린 나이에 결혼한다고 했을 때 사실 걱정도 많이 됐죠. 너무 어린 나이에 그것도 국민 그룹의 리더를 하다가 갑자기 가정생활, 그것도 타지에 가서 한다니까, 사실 당연히 응원해주고 하지만 걱정은 너무 많이 됐는데 사실 쉽지 않았겠죠. 저한테 말 못한 것도 많이 있었겠고. 선예는 책임감이 진짜 강해요. 그래서 자기가 내린 그 선택을 옳은 선택으로 만들고 싶었을 거예요. 삶의 모든 선택은 선택하고 나서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그 선택이 좋았던 선택인지 안 좋았던 선택인지 결정이 되잖아요. 자기가 선택을 해놓고 그 선택을 좋은 선택으로 만들고 싶었을 거란 말이죠. 그러니까 얘 성격에 얼마나 악착같이 그걸 잘 살아냈을까 그런 게 다 합쳐지니까...”

 

tvN <엄마는 아이돌>에서 절친 콘서트에 선예의 절친으로 깜짝 등장한 박진영이 같이 밥 먹다 울컥했던 이유를 설명하는 대목에서 그 이야기를 듣던 이들은 마음이 따뜻해졌다. 별은 선예의 그 마음을 이해해주는 그 말에서 자신이 위로받는 것만 같았다고 했고, 그 자리에 함께 선 선미도 선예도 눈가가 촉촉해졌다. 

 

선예가 새로운 걸 그룹에 도전한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 무슨 얘기를 했냐는 이찬원의 질문에 박진영은 사실상 이 프로그램의 진짜 기획의도에 딱 맞는 답변을 내놨다. “전 그 때 딱 한 마디 했어요. 지금 이 걸 보는 수많은 엄마들 혹은 자기 삶이 여기까지구나 라고 체념하셨던 많은 분들에게 다시 한 번 용기를 줄 수 있을 것 같으니까 열심히 해라 그렇게 바로 얘기했죠.” 그러면서도 그는 관중들에게 사연이 아닌 실력으로 이 새로운 도전이 다가갔으면 하는 마음도 전했다. 그게 반칙이 아닌 정당한 노력에 의한 성취일 수 있어서다. 그리고 모두가 실감했듯이 박진영은 선예가 “생각했던 것보다 잘해서 깜짝 놀랐다”는 소회를 전했다.

 

사실이었다. 선예는 <엄마는 아이돌>에서 아이돌이 나이 들어 엄마가 되어도 여전히 음악을 계속 할 수 있고, 나아가 그 나이가 갖는 경험 등에서 묻어나는 감정 표현 같은 것들이 더 깊어질 수 있다는 걸 여러 미션을 통해 보여준 바 있다. 춤은 물론이고 특히 노래는 선미가 말한 대로 예나 지금이나 레전드였다. 홀로 솔로가수를 해도 충분할 만큼. 

 

절친 콘서트로 마련된 이 무대에 선예가 과거 원더걸스로 함께 했지만 지금은 솔로로 자리를 잡은 선미와 같이 무대에 서서 ‘가시나’를 부르고, 또 과거 소속사 대표였던 박진영이 깜짝 등장해 선예와 ‘대낮에 한 이별’을 함께 부르며 이 모습을 이제 한창 활동 중인 아이돌들이 보는 광경은 그 자체로 주는 의미가 남다를 수밖에 없다. 

 

아이돌은 그 지칭에 담겨 있는 것처럼 ‘나이’가 장벽이 된다. 어느 정도의 나이가 지나면 더 이상 아이돌을 할 수 없다는 강박이 실제로 현재 활동 중인 아이돌들에게도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늘 자리하게 되는 것. 또 아무리 그룹으로 잘 활동하고 있다가도 결국은 어느 순간에는 각자가 헤어져야 하는 상황이 생겨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이후에는 안타깝게도 잊혀지기도 한다. 

 

그런데 <엄마는 아이돌>이 마련한 절친 콘서트에 선예와 선미 그리고 박진영이 함께 서면서 보여준 건, 시간이 흘러도 여전히 계속 저마다의 삶과 활동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선미는 솔로가수로 자리를 잡았고, 선예 역시 엄마로서의 자기 선택에 최선을 다하면서도 또 새로운 음악활동까지 할 수 있는 가수라는 걸 이 프로그램을 통해 입증해보였다. 무엇보다 이런 각자의 길들을 존중해주고 지지해준 박진영이라는 남다른 어른의 모습 또한 이 무대에서는 발견할 수 있었다. 

 

아마도 이 무대는 그걸 직관한 아이돌들에게 레전드로 다가오지 않을까. 그것은 압도적인 퍼포먼스와 노래의 무대라서가 아니라, 아이돌이 나이가 들어서도 여전히 음악을 할 수 있고 저마다의 활동을 하며 삶을 영위할 수 있다는 걸 그 무대가 보여줬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건 박진영이 말했듯 아이돌들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니라 이 땅의 모든 엄마들 혹은 내 삶이 여기까지구나 라고 체념했던 모든 이들에게도 남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삶의 가장 밝은 순간은 과거의 한 때가 아니라 사실 우리가 매일 매일 마주하는 현재라는 걸 이 무대가 말해주고 있어서다.(사진:tvN)

오랜만에 느끼는 ‘유퀴즈’의 맛, 가슴이 따듯해졌다

유 퀴즈 온 더 블럭

“밤 10시에 한번 분만이 있어서 교수님께 전화를 드리고 애기 받고 집에 가셨는데, 한 1시쯤 또 분만이 있어서 또 전화를 드렸어요. 다시 집에 가셨는데 새벽 4시에 불러야 되는 상황이 온 거예요. 저는 그 때 너무 피곤하실 것 같고 너무 힘 드실 것 같았는데 그 때 분만장에 들어오시면서 콧노래를 부르면서 오시는 거예요. 그런 면이 되게 멋있고 환자를 진짜 엄청 사랑하시는 분이세요.” 

 

tvN <유퀴즈 온 더 블럭>이 ‘명의’편에서 소개한 산부인과 전종관 교수님에 대해 제자이자 지난 ‘슬기로운 의사생활’편에 출연하기도 했던 남궁혜륜 교수는 그렇게 말했다. 애초 ‘명의’라는 부제를 대놓고 달고 나왔을 때 약간의 선입견이 생겼던 게 사실이다. 그건 최근 워낙 여러 매체와 프로그램들을 통해 의사들이 등장하고(이른바 쇼닥터라는 말까지 생겼을 정도다) 그들에게 ‘명의’라는 칭호를 함부로 붙여 생긴 선입견이다. 

 

하지만 <유퀴즈 온 더 블럭>이 첫 출연자로 소개한 전종관 교수를 보자 그런 선입견은 눈녹듯 사라졌다. 오히려 이 프로그램은 진정한 ‘명의’란 무엇인가에 대한 진지한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 그 질문에 대해 전종관 교수가 보여준 건 한없는 환자에 대한 애정이다. 새벽에 계속 불러내도 콧노래를 부르며 기꺼이 분만실을 찾아갈 정도의 마음을 가진 의사. 

 

기억에 남는 환자를 묻는 질문에도 그의 답은 남달랐다. 그는 산모를 잃고 절망했던 사연을 들려줬다. 그런 일은 겪어보지 않으면 얼마나 괴로운지 모른다고 했고 그것 때문에 심지어 분만을 접는 의사도 많다고 했다. 전종관 교수는 “빚을 갚자는 생각”으로 “한 명이라도 더 살릴 수 있으면 살려야 되겠다”며 다시 시작했다고 한다. 그 산모가 결코 잊혀지지 않고 죽을 때까지 기억을 안고 가겠다며. 

 

산모에 대한 전종관 교수의 따뜻한 마음이 가장 크게 느껴진 건, 과학적 근거가 없는 속설로 얘기되곤 하는 산모가 안정을 취해야 한다거나, 혹은 태교를 해야 한다거나 하는 이야기를 강하게 거부하는 모습에서였다. 전종관 교수는 실제로 임신 12주까지 아기가 잘못 되는 경우가 많긴 하지만 그것이 안정을 취하지 않아서가 결코 아니라고 했고, 또 태교 역시 근거가 없는 일이라 권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런데 거기에 담긴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일하는 여성들이나 태교를 할 시간이 없는 여성들이 이 때문에 죄책감을 갖고 또 아이가 이상이 생겼을 때 태교를 하지 않아서 그런 일을 겪는 게 아니냐는 생각까지 하게 만들어서라고 했다. 전종관 교수는 그런 죄책감을 가질 필요가 없다는 것이었고 “엄마는 자기 일을 잘하면 그걸로 충분하다”고 했다.  

 

남다른 의술을 갖고 있어서보다는 남다른 환자에 대한 마음을 갖는 일. 그것이 명의라는 걸 실천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전종관 교수처럼 두 번째 출연자인 간담췌외과 강창무 교수 역시 “가족처럼 진료”하는 걸 자신의 모토로 삼고 있는 의사였다. 그런데 거기에는 남다른 사연이 있었다. 의과대 2년차 시절 어머니가 직장암 수술이 재발되어 마지막 한 달 간을 고생하다 돌아가신 경험을 한 것이었다. 

 

만일 “신의 손”이 있다면 무얼 하고 싶냐는 질문에 “정말 엄마를 살려주고 싶어요”라며 아이 같이 울먹이는 강창무 교수는 말기암 환자의 가족이었던 그 경험 때문에 환자와 그 가족들에 대한 남다른 마음을 갖고 있었다. 어머니가 책에 없는 가르침을 주고 떠나셨다고 생각하며 그 아픔을 이겨냈다는 그는 암이 생명을 끊을 수는 있겠지만 그렇다고 죽은 사람처럼 두려운 존재가 아니게 할 수는 있다고 말했다. 

 

환자의 마음에 대한 남다른 공감. 어쩌면 이것이 진짜 명의라는 걸 생식 내분비학 의사인 김미란 교수의 사례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본인이 유방암 투병을 했다는 그는 투병 와중에도 찾아오는 환자들을 봤다고 했다. 한 환자가 남긴 글에는 그가 얼마나 환자들의 마음을 생각하는지가 묻어난다. ‘내가 울먹이며 “잘 부탁드려요” 하니 웃으시며 발치에 있는 로봇기계를 가리키며 “저게 35억이야. 우리 00씨는 그것보다 가치 있는 사람이야.“하며 긴장을 풀어주셨다.’ 그는 이것이 자신이 환자로서 경험을 하면서 배운 것이라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출연한 산간마을 슈바이처 양창모 선생님은 소양강댐 수몰지 주민을 위한 지원서비스의 일환으로 왕진을 해온 의사로 ‘의사로서의 일’이 단지 병을 고쳐드리는 것만이 아니라는 걸 들려줬다. 일일이 집집을 찾아다니며 진료만 보는 것이 아니라 계단을 만들어주기도 하고 난간을 만들기도 하며 때론 반찬 서비스도 해드리는 ‘돌봄’이 그가 해온 일들이었다. 관절염인데 좌식생활을 하는 어르신들을 위해 마을회관에 입식 테이블을 놔드리고, 미끄러워 자칫 넘어질 수 있는 화장실 바닥에 미끄럼 방지 패드를 붙여주는 일까지가 그가 하는 의사로서의 일이었다. “일어나볼 게요” 할 때 그제서야 커피를 내놓을 정도로 외로움을 느끼시는 산간마을의 어르신들을 이야기하며, 그는 명의가 “환자의 삶 가까이 있는 의사”라고 말했다. 

 

흥미로운 건 이번 ‘명의’ 편이 마치 <유퀴즈 온 더 블럭>이 애초부터 추구했고 또 앞으로도 가야할 길에 대한 초심을 담아낸 면이 있다는 점이다. 프로그램 말미에 방송을 정리하며 “명의란?”이란 자막을 넣은 <유퀴즈 온 더 블럭>은 그 답으로 ‘경이로운 탄생의 순간마다 언제든 준비가 돼 있는 의사(전종관)’, ‘의사이기 전에 환자의 보호자로 겪었던 애환 그 경험을 통해 마음을 어루만지는 의사(강창무)’, ‘타인의 아픔을 보듬기 위해 내 아픔을 누르고 진료에 나선 의사(김미란)’, ‘환자를 직접 찾아다니며 삶의 맥락 속에 고통을 짚어주는 의사(양창모)’를 제시했다. 

 

그러면서 ‘환자들에게 제 이름을 널리 알리기보다 환자들 이름 하나하나를 기억하려는 사람. 증상을 바라보는 것을 넘어 그것을 둘러싼 삶을 보는 사람. 명예를 좇기보다는 공감을 좇는 사람. 그럼으로 수많은 환자의 환부에 새살을 돋우는 사람. 굳이 저명하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타인의 삶에 따듯한 기억으로 남는 그 위대함의 또 다른 단어가 명의가 아닐까.’라는 답을 적어 넣었다. 

 

이 답은 <유퀴즈 온 더 블럭>이라는 위대한 서민들을 담아온 특별한 프로그램에게도 남다른 의미의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대단한 성공을 거둬 유명한 사람들보다는 제 자리에서 남다른 따듯한 마음으로 주변사람들에게 결코 작지 않은 희망을 전하는 사람들을 찾아내고 조명하는 것. 그래서 시청률 같은 수치가 아니라도 시청자들에게 따듯한 기억을 남는 그런 프로그램이 되는 것. 적어도 ‘명의’편이 보여준 그 위대한 초심을 앞으로도 계속 보고 싶다.(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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