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트콤, 굳이 심각해질 필요 있을까

 

<스탠바이>는 확실히 <하이킥, 짧은 다리의 역습>만큼 화제가 되고 있지는 않다. 시청률에 있어서도 5% 정도에 머물러 있다. 역시 시트콤에 있어서는 김병욱 PD가 갖는 존재감이 그만큼 크다는 반증이다. <하이킥> 시리즈가 시트콤들 중에서 가장 도드라진 지점을 차지하는 이유는 그것이 좀 더 현실을 반영한다는 점 때문일 것이다. <하이킥>은 그 자체가 낮은 자들이 높은 자들에게 날리는 것이니까.

 

 

'스탠바이'(사진출처:MBC)

그래서 <하이킥> 시리즈를 볼 때 우리는 조금 진지해진다. 캐릭터가 표상하는 현실 반영적인 지점을 찾아내려 하고, 그들 사이의 권력 관계와 그 변화를 예민하게 바라본다. 또 이야기 소재에 있어서도 그 스토리가 갖는 풍자적 의미 같은 것을 찾아내려 한다. 당연히 이런 지점들은 <하이킥>이라는 시트콤에 화제성을 높이는 요소다.

 

하지만 때로는 과도한 의미화가 시트콤이 갖는 발랄함을 자칫 무겁게 만들 수 있다. <하이킥, 짧은 다리의 역습>이 후반부로 가면서 동력을 잃었던 것은 그 무거움 때문이었다. 이것은 어찌 보면 현실을 반영한다는 점이 갖는 양날의 검이라고 할 수 있다. 코미디와 해피엔딩을 기대하는 시청자들에게 현실의 무게는 시트콤을 블랙코미디와 심지어 비극으로 몰아가기도 한다(그것이 나쁘다는 게 아니다. 다만 과도할 때 시트콤의 본질을 넘어설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스탠바이>가 가진 <하이킥>보다 나은 지점들이 보인다. <스탠바이>는 전형적인 시트콤에 충실한 작품이다. 긴 서사보다는 말 그대로의 상황(시추에이션)에 더 집중하고, 아이디어만큼 캐릭터에 신경을 쓰는 시트콤. 확실히 <스탠바이>의 최대 장점은 견고한 캐릭터들에 있다.

 

능력은 조금 떨어지지만 특유의 천사표 마음을 갖고 있는 류진행(류진)은 과도한 결벽증이라는 캐릭터로 우스운 상황을 만들어낸다. 사소한 흐트러짐조차 가만 두고 보지 못하는 그 성격은 특별한 사건이 개입되든 그렇지 않든 상관없이 습관적으로 반복되어 드러나면서 서서히 웃음의 강도를 높여간다. 류기우(이기우)와 고교시절 같은 학교 출신이었지만 그것을 숨기고 있는 하석진(하석진)은 극단적인 개인주의의 캐릭터이고, 류진행을 짝사랑하는 털털한 성격의 김수현(김수현)은 겨털 에피소드처럼 한없이 망가지면서도 귀여운 면모를 잃지 않는 매력의 소유자다.

 

갑자기 가족을 잃고 류진행에 의해 같이 살게된 시완(임시완)은 뭐든 잘 하는 캐릭터로, 뭐든 잘하는 게 없는 김경표(고경표)와 비교되는 캐릭터이고, 진행의 아버지인 류정우(최정우)는 특유의 가부장적인 아버지 캐릭터를 극단적으로 보여줌으로써 웃음을 준다. 이밖에도 방송사의 간판 아나운서인 박준금(박준금)이나 노총각 작가인 김연우(김연우), 또 류정우가 운영하는 스파게티 가게의 종업원인 쌈디(사이먼디), 그리고 정육점하는 아버지를 둔 덕(?)에 고기로 남자친구를 유혹하는 여고생 김예원(김예원)까지 소소한 캐릭터들조차 반짝반짝 빛나는 면모가 있다.

 

아무래도 캐릭터에 집중하고 있고, 그 반복적인 행동과 말투를 과장되게 보여주기 때문에 <스탠바이>는 캐릭터들의 유행어가 유독 많은 편이다. 박준금은 입만 열면 "○○가 장난이야?"를 반복하고, 김연우는 "저는 왜 그런 생각을 못했을까요"하는 말을 습관적으로 하면서 뭐든 다 튀어나는 그 요술 가방(?)에서 기상천외한 것들을 꺼내주는 것으로 캐릭터가 구축되어 있다. 하석진은 직장에서의 일로 화가 나면 차에 앉아서 "나랏말쌈이 뒹국에 달아..."를 연발하는 습관이 있고, 류진행은 특별히 반복하는 대사는 없지만 늘 억울한 얼굴로 굴욕을 당하는 것으로 캐릭터가 만들어지고 있다.

 

<하이킥 짧은 다리의 역습>이 늘 불안하게 여겨졌던 것은 전작이었던 <지붕 뚫고 하이킥>의 새드 엔딩의 잔상이 강하게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후반부로 갈수록 과연 누가 비극적인 엔딩을 맞이할 것인가에 대한 불안감도 높아졌었다(물론 이건 기우에 불과했지만). 그런 점에서 전형적인 시트콤의 발랄함을 유지함으로써 심적 부담감을 주지 않는다는 점은 <스탠바이>의 가장 큰 장점일 것이다. 무엇보다 이렇게 스탠바이 된 캐릭터들은 차츰 시트콤이 진행되면서 점점 힘을 발할 가능성이 높다.

 

<스탠바이>는 물론 그 <하이킥>시리즈가 가졌던 블랙코미디적인 요소 즉 현실을 떠올리게 하는 소재들이 많지 않다. 그래서 화제성이 조금 떨어지는 게 있고 시청률도 낮은 게 사실이다. 하지만 긍정적으로 바라보면 <스탠바이>는 그 부담 없는 시트콤이라는 점이 가장 큰 매력이 될 수도 있다. 다만 <스탠바이>는 이제 이미 충분히 날린 잔 펀치들만이 아니라, 묵직한 한 방이 필요한 시점이다. 그 한 방이 있다면 이 준비된 시트콤은 어쩌면 좀 더 대중들의 편안한 저녁의 부담 없는 웃음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정글2>, 무엇이 그토록 끈끈한 가족애를 만들었나

 

<정글의 법칙2>에서 리키 김은 앞뒤 재지 않고 옷을 벗고는 차가운 바닷물로 뛰어들었다. 이어 김병만과 추성훈도 그 뒤를 따랐다. 조금 과장되게 표현하면 그 장면은 마치 <어벤저스>의 슈퍼히어로들이 출동하는 장면을 연상시켰다. 모든 걸 완벽하게 계산했고 준비했지만 갑작스럽게 변화하는 자연 앞에서는 인간은 무력할 수밖에 없었다. 이지원 PD를 포함한 스텝들은 갑자기 덮친 파도에 배가 전복되었고 조류에 휩쓸리는 위험한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정글의 법칙2'(사진출처:SBS)

그 때 상황에 대해 이지원 PD는 "정말 놀랐다"고 말했다. 파도에 휩쓸렸다는 그 사실 때문이 아니라 연기자들이 일제히 자신들을 구하겠다고 바닷물로 뛰어들었다는 그 사실이 두고 두고 그들의 가슴을 뜨겁게 만들었다는 것. "사실 직업적으로 보면 일만 열심히 하면 되는 거잖아요. 화면 안에서. 그런데 연기자들이 제 가족이 당한 것처럼 물속으로 뛰어드는 걸 보고는 뭉클해지지 않을 수 없었죠." 실제로 리키 김은 그 상황을 이렇게 표현했다. "딱 그 순간에 친한 형, 친한 누나, 친한 사람들... 내 가족들 배 가라앉았는데 그냥 본능적으로 들어갔어요. 저도 모르게 제 몸이 먼저 갔어요."

 

무사히 배 위로 구조된 이지원 PD는 또한 먼저 연기자들과 스텝부터 챙기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배가 전복되면서 배와 바닥의 산호 사이에 깔려 오른쪽 팔이 쓸리면서 피가 흐르고 있었지만 그것조차 당시에는 의식하지 못하고 있었다고 했다. 노우진이 그 피가 흐르는 팔을 가리키며 어떻게 하냐고 하자, 이지원 PD는 "지금 그런 게 중요한 게 아냐" 하고 말했다. 가족 같은 연기자들과 스텝들의 안전이 우선이었던 것.

 

제작진과 연기자라는 직업적인 경계를 뛰어넘어 끈끈한 가족애를 보여줬던 장면들은 이미 활화산 야수르를 등정하면서도 드러난 적이 있다. 날이 점점 어두워지면서 제작진들과 연기자들이 흩어지게 되었을 때, 리키 김은 거꾸로 제작진을 찾아 나섰다. 결국 후발대 제작진과 연기자들이 만나게 되고 함께 정상의 선발대를 향해 갈 수 있게 되었던 것. 사소한 일처럼 보이지만, 이 <정글의 법칙2>라는 프로그램 속에서 연기자들과 제작진들 사이에 놓여진 끈끈한 관계를 실감케 해주는 장면이었다.

 

당연하게도 연기자들과 제작진들마저 그 경계를 허물고 하나의 가족 같은 관계를 형성하는 이유는 그 곳이 생존의 환경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 역할은 구분되어 있지만, 급박한 상황이 되면 그 역할 구분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 이지원 PD는 이 '가족적인 관계'를 이렇게 표현했다. "스텝들은 뭐라 하지 않아도 모두 한 몸처럼 제 할 일을 알고 있고, 연기자들 역시 뭘 해야 하는지 스스로 잘 알고 있어서 말 그대로 척하면 착하는 그런 관계죠."

 

이 가족적인 분위기는 실제로 <정글의 법칙2>만의 독특한 지점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아무 것도 없는 오지의 환경 속에서 서로가 서로를 생각하는 가족애는 더 깊어진다. 시즌1에서 리키 김과 김병만이 초기에는 의견 충돌을 일으키다가 끝에는 마치 생사고락을 함께 한 형제 같은 관계가 된 것은 대표적인 사례다. 이것은 시즌2에서 김병만과 추성훈 사이에 초반 살짝 보였던 팽팽한 긴장감이 차츰 가족적인 분위기로 바뀌는 것에서도 감지할 수 있다.

 

"<정글의 법칙>은 감히 도전이라는 말을 쓰지 않습니다. 자연 앞에서 도전이란 자칫 무모한 일이 될 수 있죠. 자연과 대결을 벌이는 그런 짓은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연에 순응하고 적응하는 것이 <정글의 법칙>이죠." 결국 이런 환경 속에서 가족애는 더 중요할 수 있다. 정글이라는 상황에서 여성 출연자인 박시은의 존재는 그런 점에서 중요하다. 여성성이 갖는 힘은 우리가 가족 내에서 늘 느끼듯이 그 어떤 물리적인 힘보다 더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정글에 간다고 힘쓰는 마초들만 간다면 과연 적응할 수 있을까요?" 이지원 PD는 이렇게 되물었다.

 

<정글의 법칙2>는 그래서 정글이라는 오지를 향해 달려가지만, 그 안에서 가족을 찾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아마도 극한의 상황에서라면 우리가 늘 편해서 의식하지 못했던 가족의 소중함을 더더욱 느끼는 계기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이지원 PD는 "그 곳에 있으면 이 곳의 모든 것들이 감사하고 소중하게 여겨지더라구요" 하고 말하며 웃었다. 그의 왼팔에는 가족 같은 팀원들의 따뜻함을 증명이라도 하듯 산호에 긁힌 상처가 훈장처럼 남아 있었다.

<나가수2>, 일주일동안 무슨 일이

 

일주일 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나는 가수다2(이하 나가수2)>의 두 번째 생방송은 첫 번째 그것과는 너무나 달라져 있었다. 첫 번째 생방송이 너무나 어수선하고 생방송이라는 부담감이 지나치게 프로그램을 짓눌렀었다면, 두 번째 생방송은 어느 정도 여유를 찾은 느낌이었다. 전체적인 프로그램의 진행은 매끄러웠고, 출연자들은 훨씬 담담해졌다. 당연히 무대도 안정감이 있었다. 과도한 부담감이 음악 자체를 질식시킨 듯했던 첫 번째 생방송과는 달리, 두 번째 생방송은 그래서 음악이 들리기 시작했다. <나가수>가 가진 본 모습을 비로소 찾은 느낌.

 

 

'나는 가수다2'(사진출처:MBC)

파격적으로 인피니트의 '내꺼 하자'를 선곡한 박상민은 특유의 걸쭉한 창법으로 아이돌과는 또 다른 흥겨운 무대를 선보였고, 조덕배의 '꿈에'를 부른 정엽은 섬세하고 부드러운 가성 창법으로 노래가 담은 감성을 제대로 전해주었다. 박완규는 박인수의 '봄비'를 절규하듯 토해내 그 울부짖는 듯한 목소리가 전하는 진한 울림을 느끼게 해주었고, 발라드의 신 김연우는 이문세의 '가로수 그늘 아래 서면'을 담담하지만 단단하고 감미로운 목소리로 들려주었다. 고 유재하의 '내 마음에 비친 내 모습'을 부른 김건모는 특유의 편안함으로 노래 자체가 주는 감동을 잘 전달해주었고, '우리의 밤은 당신의 낮보다 아름답다'를 부른 정인 역시 호소력 있는 목소리로 개성 있는 무대를 연출해주었다.

 

선곡에 있어서 록에서 발라드까지 장르도 다양했고, 그것이 단지 고음 지르기 같은 천편일률적인 방식으로 표현되지 않은 점도 좋았다. 다소 잔잔하게 부른 김건모가 상위권에 들어간 것은 <나가수2>의 무대가 좀 더 다양한 음악에 집중할 수 있는 여지를 보여준 것이나 다름없다. 사실 <나가수>에서 가장 불편한 지점은 바로 '가창력 뽐내기'식의 경연으로 치닫는 상황일 것이다. 노래를 잘 한다고 뽐내는 식으로 흘러가게 되면, 자칫 노래를 들어주는 관객이 소외될 때가 생긴다. 관객들과 노래를 통해 소통하고 소소하지만 그 작은 소통이 주는 감동을 전할 때 <나가수>는 비로소 제목에 걸맞게 가수라는 정체성을 찾을 수 있는 셈이다.

 

다행스러운 일이지만, <나가수2>의 두 번째 생방송은 첫 번째 생방송이 보여준 불안감을 상당부분 떨쳐 내주는 무대를 보여주었다. 이것은 결국 경연이라는 서바이벌의 지점을 상당 부분 지워낸 데서 온 결과이다. 역시 경연은 MC들의 진행에 따라 분위기가 좌우될 수 있다. 이은미는 그런 점에서 <나가수2>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해내고 있다고 생각된다. 진행은 첫 생방송보다 더 안정적이었고, 가수들의 노래 한 곡 한 곡에 저마다의 의미를 더해주는 여유까지 보여주었다.

 

또 노홍철도 특유의 긍정적인 분위기로 프로그램에 활력을 더해주었다. 다만 박명수의 조금은 과도해 보이는 질문들은 무대를 준비하는(오르기 전부터 감정몰입을 하는) 가수들과는 조금 어색한 지점이 있다. 특히 "긴장했냐?"고 자꾸 부추기는 듯한 질문은 가수들을 진짜 긴장하게 만들 가능성도 있다. <나가수2>는 결국 좋은 음악을 들려주는 것이 중심이라는 점에서 MC들의 역할도 그것을 어떻게 하면 최대치로 만들어줄 수 있을까를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시청률은 첫 번째 생방송보다 조금 떨어졌지만, 그것이 두 번째 생방송이 첫 번째 것보다 못했다는 것을 의미하는 건 아니다. 오히려 두 번째 생방송은 <나가수2>의 가능성을 보게 해준 무대였다. 결국 이 프로그램이 내세우는 가수의 정체성이란 다양한 노래들이 갖고 있는 감동적인 요소들을 대중들에게 최대치로 전해주는 것이 아닐까. 경연과 생방송의 부담감이 그것을 해주지 못한다면, 이런 장치들은 본래 목적과는 달리 음악 자체를 질식하게 하는 요인이 된다. 가수의 정체성은 그저 '노래 잘 한다'는 것이 아니라(그래서 1등을 했다는 둥), 듣는 이들과 음악적인 소통을 제대로 해낸다는 것에 있을 것이다. 결국은 음악이다. <나가수2> 두 번째 생방송이 보여준 가능성은 그것을 다시 확인해주는 것이었다.

도전과 성장, <정글2>의 진면목

 

<정글의 법칙>에서 김병만과 그 동료들은 정글 한 가운데서 최소한의 생존 장비만 주어진 채 살아남아야 한다. 특정한 상황 속에 출연진들이 놓여지고 그 안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을 가감 없이 포착해내는 이런 형식은 물론 낯선 것이 아니다. 이미 우리는 <무한도전>에서 무인도에 던져진 출연진들이 생존하기 위해 몸에 상처를 입으면서까지 야자수를 따는 장면을 기억한다. 또 알래스카에 김상덕씨를 찾기 위해 갔다가 그 혹한의 얼음 밭 위에서 말도 안되는 간이 올림픽 경기를 상처를 입어가며(?) 했던 장면들을 기억한다.

 

 

'정글의 법칙2'(사진출처:SBS)

우리네 리얼 예능의 계보에서 <무한도전>이 차지하는 비중은 이토록 크다. <무한도전>은 이미 그 야생의 낯선 지대로 뛰어 들어가 생존하기 위해 갖은 날것의 도전을 하는 그 예능의 형식적 틀을 이미 실험해 보여주었다. 물론 이것은 또한 서구의 리얼리티쇼들이 이미 선취했던 것들이기도 하다. 다만 <무한도전>이 의미 있는 것은 이러한 서구의 리얼리티쇼들의 형식을 지극히 한국적인 방식으로 해석하고 풀어냈다는 점일 게다.

 

어쨌든 <정글의 법칙>에는 그 근간에 도전이라는 코드가 들어가 있다. 그들은 정글 깊숙이 들어가 문명과 다른 삶을 살아가는 원주민들을 만나고 그들의 생존법칙을 하나하나 체득해간다. <무한도전>의 초창기가 그러했듯이, <정글의 법칙>의 초반부는 역시 이 정글에 놓여진다는 사실 그 자체만으로도 도전이 되었다. 사실상 첫 번째 미션 장소였던 아프리카 나미비아의 악어 섬은 지금 생각해보면 아늑할 정도로 야생 가운데 안전이 어느 정도 확보된 공간이었다고 여겨진다.

 

하지만 파푸아에서 진행된 두 번째 정글 미션은 말 그대로 진짜 정글이었다. 이광규는 벌레들의 습격(?)에 알레르기를 일으키고 결국은 중도에 귀국했고, 코로와이족을 찾아가는 길은 극도의 한계를 시험하는 진정한 정글로드로서 출연자들을 기진맥진하게 만들었다. 마지막에는 정글을 탈출하다 제작진이 실종되는 사건이 벌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그들의 이 진짜 정글 경험은 또 다른 도전의 자양분이 되었다.

 

남태평양 바누아투에서 찍은 <정글의 법칙2>는 그런 점에서 또 한 번의 업그레이드된 도전이다. 이번엔 그들을 위협하는 물이 있고 화산이 있고 정글이 있다. 이렇게 보면 <정글의 법칙2>는 <무한도전>이 그런 것처럼 정글의 무한 도전이 되는 셈이다. 계속해서 새로운 도전 목표를 세우고 그 안에 인물들이 투입된다. 그리고 도전을 겪어가면서 인물들의 생존능력 또한 성장한다. 이 프로그램이 계속 방영된다면 아마도 몇 년 후의 김병만과 그 동료들은 지금과는 달라져 있을 지도 모른다. 어쩌면 타잔 비슷하게 되어 있을지도.

 

진짜 리얼 프로그램의 특징은 그 안의 캐릭터들이 점점 실체가 되어간다는 점이다. <무한도전>의 유재석과 그 멤버들은 초창기에는 '대한민국 평균 이하'라는 캐릭터로 시작했지만, 차츰 도전과 성장을 거듭하면서 지금의 최고 위치에 오르게 되었다. 이렇게 실제로 성장한 출연진들 때문에 미션과 프로그램의 방향조차 바꿔야 했을 정도. 특히 유재석은 도전의 아이콘이 되었다. 방송가의 이야기에 따르면 그는 그저 방송을 위해 보여주는 도전의 제스처가 아니라 실제로 대단한 도전정신의 소유자가 되었다고 한다. 프로그램이 출연자와 만나 허구가 현실이 되어버린 것이다. 김병만 역시 그런 야생과 정글의 달인이 되지 않을까.

 

흥미로운 건 <무한도전>이 저 해외의 리얼리티쇼를 한국화해서 이른바 '리얼 버라이어티쇼라는 형식을 만들었듯이, <정글의 법칙> 또한 해외의 서바이벌 리얼리티쇼를 상당 부분 한국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날 것의 정글이라는 상황 속에서도 팀원들이 하나의 유사가족을 형성하는 점이 그렇다. 자칫 힘겨운 자극에만 매몰될 수 있는 정글의 경험이 때론 웃음이 피어나고 때론 감동적인 눈물이 연출되는 건 바로 이 지극히 한국적인 가족이라는 틀이 있기 때문이다.

 

<정글의 법칙>은 시즌을 거듭하면서 과연 <무한도전> 같은 성장을 이룰 수 있을까. 김병만의 무뚝뚝해 보이면서도 어딘지 장난기 가득하며 때론 놀라운 달인의 면모를 보여주는 캐릭터가 앞에서 끌어주는 한, 이러한 성취가 꿈만은 아닐 것이다. 김병만의 성실과 도전정신을 보며, 정글판 <무한도전>처럼 보이는 <정글의 법칙>에서 제2의 유재석을 예감하는 건 섣부른 일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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