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코', 어떻게 오디션 끝판왕 됐나

주말 내내 이어지는 오디션 프로그램을 계속 해서 보다보면 결국 나오는 이야기가 있다. "역시 오디션은 '보이스코리아'"라는 것. 뭐니 뭐니 해도 그 첫 번째 이유는 가창력이다. 여타의 오디션 프로그램들과 비교해 '보이스코리아'의 참가자들이 보여주는 무대는 확연히 다른 느낌을 준다. 탄탄한 기본기는 물론이고, 그 위에 독특한 보이스의 매력이 얹어지니 금상첨화다.

 

'보이스코리아'(사진출처:엠넷)

'보이스코리아'는 그 독특한 시스템 때문에 코치(그들은 심사위원이 아니다)들의 상찬과 과감한 리액션은 어쩔 수 없이 나올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러한 리액션조차 과도하다 여겨지지 않는 건 참가자들의 기량이 그런 상찬을 받을 만큼 충분하다 여겨지기 때문이다. 이것은 'K팝스타'에서 무려 100-100-99점을 받았던 박지민의 무대에 쏟아진 심사위원 3명의 리액션이 과도했다는 평가를 받는 것과는 사뭇 다른 결과다.

물론 현 단계에서 '보이스코리아'와 'K팝스타'를 비교하는 건 적절하게 여겨지지 않는다. 즉 아직 생방송에 돌입하지 않은 오디션과 현재 생방송을 하고 있는 오디션에는 확실히 질적인 편차가 있기 때문이다. 과거라면 생방송에서 오히려 시청률이 점점 상승곡선을 그렸지만 지금은 상황이 많이 바뀌었다. 너무 많은 오디션 프로그램들의 난립은 경연과 서바이벌이 주는 긴장감 그 자체에는 그다지 주목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이제 대중들은 서바이벌이라는 장치 위에 드러나기 마련인 음악 그 자체에만 주목한다. 그러니 생방송에서 떨어질 수밖에 없는 음악적인 면모에 오히려 실망할 수밖에.

그런 점에서 오디션 프로그램에 굳이 생방송이 필요한가에 대한 지적은 적절하다. 생방송의 의미는 마치 저 스포츠처럼 경쟁과 서바이벌에서 누가 이기느냐에 집중하게 될 때 효과를 가지는 것일 뿐, 지금처럼 톱10에 들어가면 누가 떨어지든 그다지 신경 쓰지 않게 되는 환경(그들은 이미 선택된 이들이라는 걸 우리는 다른 오디션 프로그램을 통해 학습했다)에서는 별 의미가 없다. 이제 오디션 프로그램이 주목해야 할 것은 경쟁 그 자체가 아니라 음악을 통해 주는 감동의 무대가 되었다.

이런 점에서 '보이스코리아'는 아직 생방송에 돌입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작금의 오디션 환경에 가장 적응하고 있는 오디션 프로그램으로 보인다. 즉 '보이스코리아'는 기존 서바이벌에 방점을 찍던 오디션들이 갖기 마련인 세 가지 요소를 일찌감치 없애버렸다. 그것은 독설, 과열경쟁, 합격 불합격으로 나오는 당락, 이 세 가지다. 심사위원이 아니라 코치들이 앉아있고, 그들은 독설이 아니라 자신을 선택해달라고 참가자들에게 심지어 세레나데를 부른다. 합격 불합격 같은 자극적인 말들은 좀체 들리지 않고, 참가자들 사이에서의 과열 경쟁 또한 좀체 보이지 않는다.

이런 점은 '보이스코리아'만의 독특한 배틀 라운드 시스템을 통해 드러난다. 두 사람 중 한 사람은 탈락되는 배틀 라운드가 한 무대 위에서의 하모니를 통해 이뤄진다는 점은 이 오디션이 경연 그 자체보다 최고의 무대에 방점이 찍혀 있다는 걸 말해준다. 이 무대 위에서 경쟁자들은 자신의 기량을 혼자 뽐내기보다는 상대방과 맞춰나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무대를 망치게 되고 그것은 결국 자신의 탈락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협력해야 경쟁에서 이길 수 있다는 이 아이러니한 구조의 배틀 라운드 시스템은 그래서 여타의 오디션 프로그램의 무대들과는 사뭇 다른 느낌을 준다. 기본적으로 하모니를 이뤄야 감동을 줄 수 있는 음악의 본질에 더 가까워지는 것이다.

경쟁보다 하모니에 맞춰진 시스템은 그래서 경연이 끝나고 나서도 지극히 쿨한 태도를 유지할 수 있게 해준다. 떨어진 참가자가 붙은 참가자를 진심으로 축하해주고, 붙은 참가자가 떨어진 참가자를 진심으로 껴안아줄 수 있게 되는 것. 이러한 음악 그 자체에 맞춰진 오디션 시스템과 그래서 갖게 되는 한바탕 음악적인 어우러짐처럼 여겨지는 경연 무대는 '보이스코리아'가 오디션의 끝판왕으로 불리는 이유다. 이제 경쟁은 지겹다. 음악을 허하라. '보이스코리아'는 마치 그렇게 얘기하는 듯하다.

이경규, 이제는 자신에게 맞는 옷 입어야

이경규는 1960년생, 만으로 51세다. 한때 함께 '일밤'을 이끌었던 주병진(1959년생)과는 한 살 차이다. 둘 다 토크쇼를 하나씩 하고 있지만 느낌은 사뭇 다르다. 주병진은 어딘지 옛날에 머물러 있는 느낌이지만, 이경규는 현역의 냄새가 난다. 당연할 것이다. 이경규는 물론 중간에 휴식기가 있긴 했지만 계속 방송의 끈을 놓지 않았다. 리얼 버라이어티 같은 새로운 장르가 예능의 트렌드로 등장했을 때도 이경규는 옛 것에 머물러 있기 보다는 그 새로운 트렌드를 도전했다. 이것이 이경규와 주병진을 가르는 지점이다.

그래도 나이를 무시할 수는 없다. 51세라는 나이는 예능에서는 적은 나이가 아니다. 사실 물리적인 나이가 예능 프로그램을 하는데 장애가 되지는 않는다. 이경규는 실제로 '남자의 자격(이하 남격)'에서 식스 팩을 만드는 몸짱 프로젝트를 수행하면서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걸 보여주었다. 물론 체력적인 한계가 없는 것은 아니다. 하프 마라톤이나 지리산 종주 같은 미션을 이경규는 잘 수행해냈지만 역시 힘겨움이 느껴지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하려면 못할 것이 뭐가 있겠냐마는 그렇게 해내는 것이 보는 이들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가는 생각해봐야 할 일이다. 예능 프로그램(특히 '남격' 같은 도전이 미션인)에서 미션은 한계를 뛰어넘을 때 감동을 주기 마련이지만, 그것이 과도하게 힘겹게 여겨지거나 안쓰럽게 받아들여지는 상황이라면 보는 이들도 불편해질 수 있다. 이것은 마치 슬랩스틱에서 누군가 머리를 딱 때렸을 때 맞은 사람이 웃을 수 있어야 관객도 웃게 되는 이치와 같다. 만일 맞은 사람의 머리에서 피가 흘러내린다면 과연 누가 웃을 수 있을 것인가.

물론 '남격'의 미션이 그렇게 과하다는 얘기는 아니다. 하지만 이경규라는 예능의 한 획을 그은 인물이, 그래서 확고한 자기만의 영역과 경륜을 갖춘 인물이 '남격'처럼 몸으로 부딪치는 예능을 하는 것이 과연 효과적인가 하는 의문이다. 이런 의문의 답처럼 제시되는 프로그램이 '힐링캠프'다. 사실상 이경규가 메인으로 진행한다고 봐도 될 '힐링캠프'에서 그는 확실한 자기 존재감을 드러낸다. 아무리 어려운 게스트가 나와도 자신의 캐릭터(귀찮아하고 톡톡 쏘는)를 유지하고 어려운 질문도 피해가지 않는다.

차인표가 나왔을 때, 첫 질문부터 독하게 "연기자로서 주목받기 보다는 나눔의 아이콘으로 더 주목받는 것이 아니냐"고 묻기도 하고, "라면 만드는 사람도 있는데요"라는 차인표의 응수에 되려 당하는 모습도 보여준다. 차인표가 행한 많은 일들에 대해 나이와 상관없이 존경의 시선을 던지고 있는 이경규의 모습을 보다보면 그는 '힐링캠프'의 MC라는 기능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이 프로그램을 말 그대로 빠져서 스스로 즐기고 있다는 인상을 가지게 된다.

김정운 교수를 찾아가서도 처음부터 "사짜 느낌"을 거론하고 그쪽으로 몰아갈 수 있는 건 역시 이경규만한 경륜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김정운 교수의 자화자찬하는(?) 특징을 콕 집어내 자신도 그런 캐릭터임을 드러내고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자신들의 상황을 공감하는 장면도 너무나 자연스럽게 다가온다. '힐링캠프'가 때로는 19금 토크를 하고, 때로는 정치인을 게스트로 데려와도 그 소재들을 넉넉히 받아줄 수 있는 이유 역시, 이경규라는 경륜의 소유자가 거기 있다는 사실이 주는 편안함을 빼놓을 수 없을 것 같다.

또한 주목되는 건 '힐링캠프'에서 한혜진 같은 보물(남 이야기를 잘 들어주고 적재적소에 할 이야기를 에두르지 않고 직접 물어보는)이 발굴될 수 있었다는 사실이다. 많은 이들이 알다시피 이경규와 함께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두각을 나타내기는 정말 어려운 일이다. 물론 한혜진의 그 착하고 순수한 심성이 한 몫을 한 것이지만, '힐링캠프'의 최영인CP는 한편으로 그것을 잘 받아준 이경규의 역할을 무시할 수 없다고 말한다.

이경규가 '남격'에서 보여주는 모습과 '힐링캠프'에서 보여주는 모습이 사뭇 다르게 다가오는 것은 그 안에서 느껴지는 진정성의 강도가 다르기 때문이다. '남격'은 어딘지 힘들어도 억지로 하는 듯한 인상이 짙지만, '힐링캠프'는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진심으로 하는 듯한 느낌을 전해준다. 나이 오십 줄을 넘겨 젊은이들도 힘겨워하는 미션을 수행하는 것은 물론 그 도전 자체에 의미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이경규 정도의 한 시대를 풍미한 개그맨이 그 경험을 잘 녹일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나는 건 더 중요한 일이 아닐까. '힐링캠프'는 이경규의 그 '잘 맞는 옷'이 되어주고 있다.

우리가 김구라쇼를 기대하는 이유

 '박중훈쇼'의 실패, '주병진 토크콘서트'의 난항. 우리에게 1인 토크쇼는 이제 어려운 일이 된 걸까. 아니 이것은 단지 1인 토크쇼에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최근 토크쇼들의 성적표를 보면 게스트에 따른 시청률 편차가 너무 들쭉날쭉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것은 토크쇼 자체의 힘이 아니라 게스트 의존도가 너무 높다는 것을 말해준다. 하지만 이 와중에서도 여전히 힘을 발휘하고 있는 토크쇼는 단연 '라디오스타'다. 게스트와 상관없이 일정한 재미를 뽑아내주고, 심지어 타 토크쇼에서는 그저 지나쳤던 게스트마저 재발견하게 만드는 토크쇼. 그 '라디오스타'의 중추는 자타공인 김구라다. 최근 들어 토크쇼에 있어서 가장 핫(hot)한 인물인 김구라. 왜 김구라쇼는 기획되지 않는 걸까. 김구라에게 김구라쇼에 대해 물었다.

"(자신의 쇼를 하고 싶다는 건) 모든 MC들의 꿈일 겁니다. 제가 잘 할 수 있는 건 바로 토크쇼이기 때문에 토크쇼 MC로서 특화되고 싶은 마음이 있죠.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너무 양적으로 일이 많아서요(그는 현재 방송만 8개를 하고 있다고 한다). 상황 자체가 들어오는 일을 거절할 수 없게 됐죠. 제가 뭐 완전 톱스타도 아니니까요. 하지만 어느 정도 위치가 올라가고 여건도 괜찮아지면 제가 주도적으로 할 수 있는 토크쇼를 해보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게스트들이 저의 캐릭터를 믿고 편안하게 하면서도 속에 있는 얘기를 공격적으로 물어보는 그런 토크쇼 말이죠. 사실 꽤 오래도록 토크쇼를 해와서인지 이제 노하우가 어느 정도 생겼고, 또 이 분야에서는 유리한 위치에 있다고도 생각합니다."

김구라의 화법은 초기에는 '독설'이 부각되면서 불편하게 여겨지기도 했다. 하지만 이 독설은 언젠가부터 '직설'로 받아들여지기 시작했고, 배려한답시고 빙빙 돌려 얘기하는 기존의 토크 방식을 '진정성 없는 것'으로 여겨지게 만들었다. 독설이 직설로 여겨지게 된 건, 물론 김구라만이 갖는 '공감을 바탕으로 하는' 과감한 토크 방식 때문이다. 작금의 토크쇼들의 침체가 전반적으로 게스트를 지나치게 배려하는 토크 방식에서 비롯되고 있다고 볼 때, 김구라식의 화법은 어쩌면 여기에 대한 대안이 될 지도 모른다. 그의 직설은 어디서부터 비롯되는 것일까.

"성향이 그렇습니다. 제 성격 중 하나인데, 저는 사람을 만나서 혈액형을 물어본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주로 어디 살아요? 이런 현실적인 것에 더 관심이 가죠. 그래서 토크쇼도 현실적인 궁금증에서 출발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다보니 직설적인 이야기들이 나오는 거겠죠. 또 제가 사람에 대한 호기심이 굉장히 많습니다. 그래서 어떤 이야기를 들으면 그 이야기가 진짜인지 아닌지 빈틈(?)을 찾기도 하죠. 또 기본적으로 관심이 없는 건 별로 호응을 안 해주는 성격입니다. 처가댁 같은 데 가서도 식구들하고 얘기를 별로 안 해요. 관심이 없는 걸 얘기하니까. 또 예의를 딱딱 차리는 그런 성격도 아니라... 이런 면들이 토크쇼에서 나오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런 과감한 독설(?)이 그저 아무렇게나 툭툭 던진다고 먹히는 것은 아닌 모양이다. 사실 우리처럼 '예의'에 민감한 민족도 없으니까. 따라서 어떤 맥락과 상황에 어떤 정도의 수위와 강약 조절을 하느냐는 정말 중요한 지점이 아닐 수 없다.

"독설은 작정하고 하면 안 됩니다. 특히 젊은 친구들은 의욕이 과잉돼서 뭔가 확실한 걸 보여주려고 아무 맥락 없이 강하게 멘트를 날리기도 하는데요, 그럴 경우에는 잘못하면 분위기만 썰렁해질 수 있죠. 연기에서 합이 중요한 것처럼 독설도 그 맥락과 감정 선이 중요합니다. 게스트와의 토크 속에서 감정 선이 쌓여가다가 어느 순간에 터져야 독설은 효과가 있죠. 마치 배우들이 연기할 때 감정 선을 찾는 것과 같습니다. 때로는 '처음부터 세게 해주세요.' 막 그러시는데 어떻게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독설을 던집니까. 뜬금없이 던지는 건 무리수죠. 또 연예인이 나왔을 때랑 일반인이 나왔을 때랑 상황도 다릅니다. 일반인들 같은 경우에는 아무래도 이야기를 더 많이 들어주고 공감해주는 측면이 많아지죠. '화성인 바이러스' 같은 걸 하면서 이 부분을 많이 배웠어요. 특이하신 일반인분들이 나오시면 거기다 대고 독설만 던질 수는 없더라구요. 오히려 더 많이 듣고 배려하게 되더군요."

'라디오스타'에서 김구라는 '라스의 서병기(대표적인 대중문화 전문기자)'로 불린다. 박명수가 게스트로 출연했을 때, 김구라에게 "당신이 서병기야? 임진모야?" 했던 것에서 비롯된 별칭이다. 이렇게 불리게 된 것은 김구라만의 분석적이고 냉철한 이미지 때문이다. 실제로 어떤 점에서 보면 이런 태도는 기자와 비슷한 점이 있다. 토크쇼를 하나의 인터뷰로 볼 때, 김구라는 확실히 무언가를 캐내려는 호기심 많은 기자를 닮았다.

"(웃음) 그렇게 불러주시니 너무 좋죠. 분석적인 토크 방식이라고 하시는데 그것보다는 아무래도 비유 같은 걸 많이 쓰고 그래서 붙여진 별칭인 것 같습니다. 제가 비유를 좀 많이 쓰는데요, 예전에 딴지일보 그런 거 할 때 우리가 뭐 정치를 아나요? 만날 룸싸롱 같은 것에 비유하고 그랬죠. 그러다 보니 좀 현실적인 비유들을 하는 게 습관처럼 배인 것 같습니다."

김구라가 실명을 거론하는 것이나 게스트를 직접적으로 몰아세우는 그 바탕에는 그 당사자와 게스트에 대한 진정한 배려가 깔려 있다. 이것은 토크쇼가 어떤 방식으로 게스트를 배려해야 하는가에 대한 답이기도 하다. 게스트 좋은 대로 편안하게 두는 그런 배려는 결국 대중들과의 소통을 가로막는 결과로 나타나게 된다. 따라서 토크쇼의 MC가 해줄 수 있는 최고의 배려는 게스트와 시청자를 만나게 해주는 것이다. 그것을 연결시키기 위해 과감할 때는 과감해질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실명 토크를 많이 하는데, 사실 인터넷 방송 할 때는 전부가 실명이었거든요. 뭐 죄진 사람도 아닌데 실명 거론하는 게 그다지 잘못된 것 같진 않아요. 그런데도 왜 실명을 얘기 하냐 뭐라 하시기도 하죠. 하지만 실명 얘기 안하면 재미가 없어요. 또 M본부, S본부 이렇게 얘기하는 것도 좀 우스워요. 굳이 그럴 필요 있나요? 물론 조금 강하게 실명으로 누군가를 언급하거나, 또 게스트에게 강한 질문을 던지는 건 제 나름의 게스트 배려 방식입니다. 그렇게 주목되게 만드는 거죠. 뭐 신인들은 그런 걸 좋아하지만, 이미 탑에 있는 친구들은 안 좋아하는 경우도 있어요. 굳이 그럴 필요가 없으니까. 그런 입장 이해해요. 그래서 그런 거 싫어한다는 얘기가 나오면 저도 굳이 그런 얘길 안하게 되죠."

게스트를 배려하는 토크쇼들의 또 한 가지 특징은 '감동'을 전면에 내세운다는 점이다. 그래서 때로는 웃음보다는 눈물이 더 많은 상황이 연출되기도 하는데, 김구라는 지금껏 한 번도 그런 모습을 보여준 일이 없다. 심지어 눈물 짜는 게스트에게 "가지가지 한다"는 독한 멘트를 날려 좌중을 웃음바다로 만들기도 했으니까(여기에는 그만한 당시 상황의 이유가 있었다).

"그 때 강원래씨 나왔을 때 했던 "가지가지 하네"라는 멘트가 무슨 '기념비적인 장면'이라고까지 얘기되기도 했는데요, 사실 그 때 상황은 눈물 흘리는 사람한테 독설을 날린 그런 게 아니었어요. 강원래씨가 갑자기 울지 않아야할 분위기에서 눈물을 흘리게 된 거죠. 그러자 구준엽도 그렇고 전부가 어색해진 거예요. 그래서 제가 그렇게 멘트를 던졌더니 강원래씨도 같이 웃고 넘어갈 수 있었죠. 뭐 저보고 방송에서 눈물을 보이지 않는다고 하시는데, 일부러 그러는 게 아니라 본래가 눈물이 별로 없어요. 그래도 요즘은 나이 사십을 넘기면서 조금씩 살짝 올라오는 게 있기도 하더군요."

김구라는 유재석에 대해서 "정말 야외에서는 타의추종을 불허하는 예능인"이라고 했다. 자신이 아무리 야외에서 열심히 해도 유재석을 넘기는 어렵다는 얘기다. 하지만 적어도 스튜디오 안에서만큼은 자신도 어느 정도 자신만의 영역을 세우고 있다고 자부했다. 그것은 실제로도 맞는 이야기이고 우리가 김구라쇼를 기대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마지막으로 요즘 토크쇼에 대한 그의 생각이 궁금했다.

"요즘 토크쇼가 (시청률이) 많이 빠졌죠. 그만큼 대중 분들의 기대치가 높아져 있다고 생각합니다. 나올 질문들이 딱 보이는 상황에서 재미있는 답변이 나오기는 어렵겠죠. 해외의 토크쇼들은 좀 더 직접적이고 흥미진진한 얘기를 해야 되는 그런 분위기가 있어요. 우리도 그런 쪽으로 점점 흐름이 가는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김구라는 생각했던 것과 달리 부드러운 이미지와 날카롭고 이지적인 이미지를 동시에 갖고 있었다. 적어도 이런 캐릭터가 하는 토크쇼라면 팽팽한 긴장감을 유지하면서도 또 한 편으로는 진정한 게스트와 시청자들 사이의 가교 역할을 해줄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이 갔다. 이제 달라진 예능 환경과 대중들의 화법에 대한 욕망은 김구라라는 캐릭터를 점점 무르익게 만들고 있다. 이것이 아마도 많은 대중들이 김구라쇼를 기대하는 이유가 될 것이다.

'사랑비', 행복과 슬픔의 변주곡

'사랑비'는 초록의 담쟁이 잎사귀들에 떨어지는 빛에서 시작한다. '청춘(靑春)'이다. 그 길에서 윤희(윤아)를 마주친 인하(장근석)는 단 3초 만에 사랑에 빠진다. 청춘의 첫사랑이다. 70년대의 대학 교정, 윤형주의 '언제라도 난 안 잊을 테요-'하는 그 감미로운 목소리가 매력적인 '우리들의 이야기'가 울려퍼지고, '러브스토리', '어린 왕자', 일기장 같은 70년대를 살았던 세대들의 아련한 기억 속에 남아있는 저마다의 첫사랑을 툭툭 건드리는 것으로 '사랑비'의 모티브는 시작한다.

우리네 모든 첫사랑의 기억(이것은 아름답게 채색되기 쉬운 것이다)이란 것이 그렇지만, 그 이야기는 전형적일 수밖에 없다. 첫눈에 사랑에 빠지게 되고, 전하지 못하는 마음에 열병을 앓는 그런 기억, 엇갈림, 우정과 사랑 사이에서의 갈등, 안타까움 같은 것이 우리가 첫사랑으로 저마다 채색해놓은 한 때의 기억일 것이다. 윤희를 사랑하지만 그녀를 사랑하는 친구 때문에 마음을 고백하지 못하는 인하의 열병은 그래서 지극히 단순하면서도 강하게 다가온다. 이 드라마는 누구나 갖고 있는 그 첫 기억을 꺼내놓고 그 3초 만에 빠져버린 사랑이 어떻게 온 삶을 뒤흔드는가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영화 '러브스토리'의 그 "사랑은 미안하다는 말을 하지 않는다"는 전형적인 대사는 윤희의 일기장에서 인하의 독백에서 또 엇갈리게 되는 동욱(김시후)의 작업 멘트에서 계속 반복된다. 왜 첫 사랑에 "미안하다"는 말에 대한 이야기가 계속 등장하는 걸까. 윤석호 PD의 '겨울연가'가 그러했듯이 이 청춘의 첫사랑은 자신의 마음과는 달리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가지만, 그래서 서로에게 슬픔과 상처를 주지만 그렇다고 "미안하다" 말할 필요는 없다고 말한다. 인하의 해석처럼 "사랑은 진심이니까, 서로의 진심을 아니까" 미안하다는 말이 필요 없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사랑비'라는 제목은 이 첫사랑이 주는 슬픔과 행복을 잘 표현해주는 조어다. 도서관 앞에서 만난 인하와 윤희가 고장 난 노란 우산을 함께 쓰고 첫 장면에 3초 만의 사랑을 예감케 했던 그 초록 담장 앞을 걸어가는 장면은 이 드라마의 전체 정조를 감각적인 영상으로 잡아낸다. "비 좋아하세요?"라는 윤희의 질문에 "좋아해요. 슬프기도 하고 행복하기도 하고."라고 인하가 답하고, 윤희는 '어린왕자'이야기를 들려준다. '사랑은 행복과 슬픔이라는 두 얼굴을 하고 있다'는. 그렇게 사랑과 비는 닮아있다. 그녀에게 우산을 받쳐주느라 온몸이 젖어버린 인하의 행복한 얼굴처럼.

'사랑비'는 이 첫사랑의 기억이 다시 현재 시점으로 되돌려지는 드라마다. 나이든 인하와 윤희가 다시 만나고, 그들의 자식들인 서준(장근석)과 하나(윤아)가 만난다. 몇 십 년이 흘렀지만 어찌 보면 이미 나이 들어버린 그들이 청춘의 시간과 함께 공존하는 신비로운 장면이 그 속에는 들어 있다. 청춘과 첫사랑에 대한 현재적 관점으로의 추억.

자극적인 스토리와 팽팽 돌아가는 속도에 익숙해진 시청자라면 '사랑비'는 어딘지 너무 느리게 여겨질 수도 있을 것이다. 뭐든 마음에 있는 것을 드러내고 직접적으로 얘기하는데 익숙한 시청자들이라면 인하와 윤희의 말 못하는 열병이 못내 갑갑하게 여겨질 것이다. 하지만 '사랑비'는 바로 그 느리고 아날로그적인 사랑을 원석처럼 꺼내놓는 드라마다. 따라서 빠른 속도의 자극적인 영상을 즐기기보다는 그 느리게 돌아가는 그림 같은 영상이 주는 섬세하고 감성적인 촉촉함을 느끼는 것이 감상 포인트다.

윤석호PD는 역시 색채의 마술사답게 이 첫사랑의 만남과 열병을 완벽한 색의 대비로 보여주었다. 청춘을 상징하는 초록 잎들의 배경 위로 촉촉한 비가 내리고 가녀린 노란 우산을 들고 운명이 어떻게 굴러갈 지 전혀 알지 못한 채 알 수 없는 슬픔과 행복을 느끼며 남녀가 걸어간다. "사랑은 진심이니까." 같은 진부하고 상투적인 대사마저 떨림으로 바꿀 수 있기를 이 드라마는 간절히 바라고 있는 것만 같다. 과연 '사랑비'가 진부한 것인가, 아니면 우리가 너무 자극에 익숙해진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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