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왜 ‘더 로맨틱’해지지 않을까

'더 로맨틱'(사진출처:tvN)

감미로운 음악, 이국적인 풍경, 달콤한 속삭임, 기적 같은 만남... 도대체 우리를 그토록 로맨틱하게 만드는 건 뭘까. 때론 이성적으로는 이해하기 힘든 행동들을 하고, 현실과는 유리된 사람처럼 실제적인 시공간의 차원을 잠시 떠나버리는 이 로맨틱한 상황들. 그리고 그 안에서 만나게 되는 사랑이라는 감정. 그 놀라운 화학작용은 어떻게 일어나는 걸까. 신개념 러브 리얼리티쇼 tvN의 ‘더 로맨틱’이 흥미로워지는 지점은 바로 이 비현실적으로 여겨지는 반짝반짝 빛나는 순간들이 카메라에 지극히 현실적인 장면으로 담겨질 때다.

터키. 동서양의 문명이 교차하는 곳. 그래서인지 그 오묘한 풍광처럼, 이질적인 두 존재가 만나서 어쩌면 가장 아름다운 합치점을 찾아내기엔 가장 적합한 장소처럼 여겨지는 그런 곳으로 열 명의 남녀가 여행을 떠나는 건 바로 그 우리에게 유일하게 허락된 ‘비현실적 경험’ 즉 로맨틱한 상황을 찾아내기 위함이다. 돈과 삶과 생존과 생계 속에서 마치 없는 것처럼 치부하며 살아왔던 그것. 그래서 때로는 바라보는 것마저 손발이 오그라드는 느낌을 가지게 되었던 바로 그것. ‘더 로맨틱(The Romantic)'을 찾아서.

영화나 드라마 속 로맨틱한 만남의 장면 중 하나를 선택(이른바 ‘취향셔플’로 불린다)하고 같은 선택을 한 이와 똑같은 설정으로 떨리는 첫 만남을 갖게 하는 건 일종의 오리엔테이션인 셈이다. 아마도 서울이라는 생계의 공간에서 살아오면서 그 남녀들은 비행기 안에서의 우연한 만남이나, 낯선 거리에서 서로를 발견하는 경험, 모두가 다른 생각 다른 감정으로 서 있는 곳에서 단 둘만이 온전히 같은 음악으로 연결되는 로맨틱한 체험, 거리에서 전화기 저편에 들려오는 상대방의 목소리를 들으며 그를 찾아 나섰던 그 설렘 같은 ‘비현실적’인 감정들은 잊고 살아왔을 테니 말이다. 이 비현실적으로 보이는 로맨틱한 세계로 들어가는 일종의 입구에 영화나 드라마 속 장면이 오리엔테이션처럼 자리한다는 것은 우리에게 로맨틱을 허용하는 거의 유일한 공간이 바로 이 영화와 드라마라는 반증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것은 과연 그저 비현실적인 것일까. 그래서 영화 속의 또는 드라마 속의 주인공들이 대리해주는 것을 통해 경험할 수밖에 없는 어떤 것일까. 그렇지 않다는 것이 ‘더 로맨틱’이라는 프로그램이 우리에게 전하는 메시지다. 누구나 그런 이국적인 공간과 이색적인 시간들 속에 던져지면 갖게 되는 지극히 현실적인 감정. 그것이 바로 ‘더 로맨틱’이다. 잠시 간의 눈 맞춤과 몇 마디의 대화, 그리고 슬쩍 스치는 손끝 하나만으로도 우리는 충분히 로맨틱해지는 그런 존재라는 것. 그러니 왜 당신은 ‘로맨틱’한 감정을 비현실적인 것이라 치부하며 살아가고 있느냐는 것. 한 땀 한 땀 로맨틱한 순간들로 직조된 영상들은 우리에게 그런 질문들을 던진다.

연애와 신혼의 로맨틱한 시간들이 지나고 나면 마치 유통기한 지난 통조림처럼 마음 한 구석에 처박아두었던 그 로맨틱한 감정들을 다시 끄집어내게 만드는 이 놀라운 프로그램의 도발은 그래서 그 자체로 도전적인 위치에 서게 된다. 도대체 누가 현실적인 것만을 강요했는가. 무엇을 위해서 우리는 스스로 그 강요를 몸에 각인시켰던가. 아니 그 누가 이것을 ‘비현실적’인 것이라 치부했던가. 한참을 바라보다보면 ‘나도 저런 경험을 하고 싶다’는 감정이 치솟아 오르고, 그래서 마음 한 구석에 처박아 두었던 그 감정의 상자를 다시 끄집어내 떨리는 마음으로 열게 만드는 그런 경험.

카메라가 우리의 일상 속으로 들어오면서 이전에는 포착될 수 없었던 인생의 찬란한 순간들도 이제는 영상 속에 담겨질 수 있게 되었다. 이 지극히 현실적이고 리얼한 영상이 그래서 가장 비현실적인 것으로 치부되던 ‘로맨틱한 순간들’을 발견하고 끄집어냈다는 것은 놀라운 아이러니다. 그래서 이 비현실적 시공간 속에 놓여진 남녀들의 화학작용이 지극히 현실적인(리얼한) 것이라 여겨질 때 그것은 마치 기적 같은 느낌을 준다. 사람들은 왜 더 로맨틱해질까. 이런 질문을 던지게 하는 것만으로도, 그래서 더 로맨틱한 삶의 가치를 느끼게 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의미를 전하는 프로그램, ‘더 로맨틱’이다.


'해품달', 왜 뒷얘기가 무성할까

'해를 품은 달'(사진출처:MBC)

아쉬움 때문일까. 아니면 드라마 시청률이 40%를 넘겼다는 도취감 때문일까. 물론 드라마가 끝나면 거기 참여한 제작진이나 연기자들의 인터뷰가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해를 품은 달(이하 해품달)'에서 유독 작가의 인터뷰가 눈에 거슬리는 건 왜일까. 또 40% 이상의 시청률을 낸 작품 치고 몇몇 주연들에게만 지나치게 쏠려 있는 스포트라이트도 이례적이다. 이 정도의 시청률이라면 거기 참여한 조연들에 대한 조명 역시 따라오는 게 당연할 것이다. 하지만 김수현과 한가인을 빼고 나머지 조연들에 대한 이야기는 별로 없다.

물론 그럴 리는 없겠지만 이런 상황은 마치 의도된 것처럼 비춰진다. '해품달'의 마지막회에 남는 아쉬움은 결국 남녀 주인공인 훤(김수현)과 연우(한가인)의 해피엔딩을 위해 주변인물들이 줄초상을 당하거나 들러리로 선 인상이 짙다는 것 때문일 게다. 그러니 작품이 끝나고 두 주인공과 작가의 인터뷰만 유독 눈에 띄는 건 어딘지 씁쓸함을 남긴다. 그래서였을 것이다. 극중 윤대형이란 인물을 연기해 작품에 확고한 극성을 만들어낸 김응수의 색다른(?) 인터뷰가 눈길을 끄는 것은.

김응수는 인터뷰를 통해 극중 딸 캐릭터인 윤보경(김민서)이 극 후반 연우가 등장하면서 이렇다 할 대응 한 번 하지 않고 스스로 무너져가는 반응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의견을 내놨다. 또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는 설정 또한 너무 과하지 않았나 하는 자신의 생각을 전했다. 작품이야 결국 작가가 쓰는 대로 굴러가기 마련이다. 따라서 우리네 드라마처럼 흘러가면서 스토리가 써지는 대본은 주연이 아닌 연기자라면 때로는 '살생부'처럼 여겨지기 마련이다. 언제 어느 순간 갑작스레 (작가에 의해) 죽음을 맞이할 지 모르는 운명이란 얘기다.

인터뷰 내용을 보면 김응수는 이 상황이 꽤 고질적이라는 걸 드러내고 있다. '해품달' 대본을 받고는 윤대형이란 인물이 끝까지 나오냐고 물었고, 나온다고 했지만 자신은 믿지 않았다는 것이다. 왜? 우리네 드라마 제작 현실이 거의 실시간으로 쓰여지고 상황에 따라 제멋대로 흘러가기도 하는 것이 다반사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김응수는 '샐러리맨 초한지'에서도 같은 상황을 겪었다. '초한지'의 초나라에 해당되는 장초그룹 회장으로 출연한 김응수는 그러나 몇 회가 지나고 아무런 이유도 설명되지 않은 채, 드라마에서 사라져버렸다. 아무리 조연이 작가의 글줄 몇 개로 존재 자체가 날아가는 파리 목숨이 됐다고 해도 이건 너무 무례한 처사가 아닌가.

만일 어쩔 수 없이 드라마 방향이 이렇게 흐를 수밖에 없었다면 최소한 작가는 후에라도 상황이 이렇게 된 것에 대한 해명이나 적어도 미안함을 표하는 것이 예의일 것이다. 하지만 진수완 작가가 한 일련의 인터뷰들은 어딘지 불편함이 느껴진다. 진수완 작가는 각종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본래 하고자 했던 대본에 대한 아쉬움을 늘어놓았다. 20부작이 아니라 24부작이었다면 달랐을 결말의 디테일들에 대한 이야기나, 유난히 많았던 연기력 논란에 대한 안타까움, 또 작품의 메시지에 대한 부연 설명까지. 얼마나 아쉬웠으면 이렇게 인터뷰를 통해서라도 이런 얘기를 할까 싶지만, 다른 시각으로 보면 작품 내에서 결국 하지 못한 것에 대한 변명처럼 들리는 것도 사실이다. 결국 작가는 작품으로 얘기해야 하지 않을까.

인물들이 작품 내에서 저 스스로 살아 움직이도록 하는 것이 작가의 소임일 것이다. 하지만 그럴 듯한 설득력이 없이 작가가 나서서 인물들을 인형처럼 이리 움직이고 저리 움직이게 하다가 결국에는 주인공들의 해피엔딩을 위해 줄초상을 내는 것처럼 느껴지는 '해품달'을 두고 작품 밖에서 애써 부연 설명하려는 모습은 그다지 좋게 보이진 않는다. 그래서일까. 김응수의 토로가 마치 작가에 의해 인형처럼 마구 휘둘리는, 그래서 대본을 살생부처럼 여기게 되는 조연들의 진중한 질책으로 여겨지는 것은.

심지어 개그 프로그램을 보고 웃다가 죽음을 맞이하는 조연이 나오는 우리네 드라마판이 아닌가. 조연들은 주연을 위해 이리저리 굴리다 갑작스럽게 팽 당하는 그런 존재들이 아니다. 이것은 마치 드라마판만이 아니라 우리네 사회의 축소판을 보는 것만 같아 씁쓸하기 그지없다.


대중을 잡아끄는 하지원만의 특별함

'더킹투하츠'(사진출처:MBC)

역시 하지원이다. 단지 연기력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녀에게서는 무언가 대중들을 잡아끄는 특별함이 있다. 아마도 치열하게 벌어진 방송3사의 수목극 대전에서 '더킹 투하츠'가 기선제압을 할 수 있었던 힘은 다름 아닌 바로 이 하지원만이 가진 특별함 때문이었을 것이다. '다모'에서부터 '발리에서 생긴 일', '황진이', '시크릿 가든'에 이르기까지 드라마에서의 성공 보증수표가 된 하지원만의 그 특별함, 그것은 도대체 무얼까.

그 첫 번째는 우리가 여배우하면 흔히 떠올리는 그런 이미지를 가차 없이 깨고 들어오는 하지원의 특별한 연기투혼에 있다. 물론 최근 들어 몸을 사리지 않는 연기투혼을 발휘하는 여배우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지만, 그래도 여전히 여주인공이라면 전형적으로 떠오르는 이미지는 말로만 씩씩한 캔디형 신데렐라다. 하지원 역시 '시크릿 가든' 같은 작품에서 캔디형 신데렐라 캐릭터인 길라임을 연기했지만, 그녀가 달랐던 점은 대사만이 아닌 행동으로 그것을 보여줬다는 점이다.

이 몸으로 보여주는(?) 진정성은 '다모'에서부터 '황진이', '시크릿 가든'까지 계속 이어지는 하지원만의 차별점을 만들어냈다. '시크릿 가든'에서 스턴트우먼으로서의 멋진 액션 연기를 통해 그녀만의 매력을 드러냈던 것처럼, '더킹 투하츠'에서도 북한특수부대 여자1호 교관 김항아라는 인물을 연기하는 그녀는 강렬한 액션으로 시선을 끌어 모았다. 바로 이 여배우로서 몇 안 되는 액션 연기가 자연스럽다는 점은 하지원만의 온몸을 던지는 연기를 가능하게 하고, 그것은 그녀의 연기에 진정성을 더해준다.

액션 연기가 더해진 하지원이라는 존재는 그래서 단지 예쁜 여배우가 아니라 멋있는 여배우로 자리매김한다. 이 점은 하지원이 남성들뿐만 아니라 여성 팬층까지 폭넓게 확보할 수 있는 유리한 지점이 된다. 하지원만의 두 번째 특별함, 즉 중성적인 매력은 바로 여기서 비롯된다. '더킹 투하츠'에서 데이트를 나간 하지원이 남자와 키스를 하려다 못하게 되는 장면은 그녀의 이 중성적 매력을 잘 드러낸다. 다가오는 남자를 기다리는 하지원의 얼굴은 소녀 같은 설렘을 던져주지만, 한 순간 무의식적으로 남자의 턱을 잡아채는 그녀의 동작에서는 소년 같은 털털함이 묻어난다. 이 여배우가 뿜어내는 중성적 매력은 여성 시청자들이 주도권을 쥐게 마련인 드라마 시청에 있어서 중요한 유인 포인트가 된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때론 이 과격하게까지 느껴지는 털털함이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게 되면 한없이 여성스럽게 변한다는 점이다. 바로 이 외강내유형 캐릭터는 하지원의 멜로 연기가 특별해지는 세 번째 이유가 된다. 겉이 단단할수록 속의 부드러움이 더 빛나는 법. 피를 철철 흘리면서도 입을 앙다물고 투혼을 드러내던 그녀가, 사랑하는 남자의 말 한 마디에 눈물을 뚝뚝 떨어뜨릴 때 그 감정이 전하는 강도는 더 커지기 마련이다.

바로 이 하지원의 멜로가 갖는 힘은 그녀와 연기한 남자 연기자들이 모두 주목받게 만든 이유이기도 하다. 이런 흐름은 '다모'의 이서진, '발리에서 생긴 일'의 조인성, '시크릿 가든'의 현빈에 이어서 '더킹 투하츠'의 이승기로도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이승기와 그가 연기하는 이재하라는 인물과의 궁합도 잘 맞는데다가, 하지원의 리드가 돋보이기 때문이다.

온 몸을 던지는 연기투혼, 남녀 모두의 시선을 잡아끄는 중성적인 매력, 게다가 상대 배우마저 빛나게 해주는 연기의 조합. 이것이 하지원이라는 배우만이 가진 특별함이다. 여기에 이미 '다모'를 통해 호흡을 맞췄던 이재규 감독과 '베토벤 바이러스'를 쓴 홍진아 작가의 탄탄한 대본까지 가세했으니 그녀의 캐릭터가 빛나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 '더킹 투하츠'가 기대되는 건 어쩌면 이 하지원이라는 특별한 배우가 거기 있기 때문이 아닐까.


'힐링'의 진면목을 보여준 가슴 차인표 선생

'힐링캠프'(사진출처:SBS)

소셜테이너, 기부천사, 개념연예인 등등. 사회적인 기여나 참여를 하는 연예인들을 지칭하는 용어들은 넘쳐난다. 하지만 너무 과하기 때문일까. 이 용어들은 애초의 순수함을 점점 잃어가고 있는 형국이다. 정치적 성향과는 아무런 관계없는 소셜테이너가 정치적으로 포장되는 경우도 많고, 기부천사라는 상찬 속에는 너무 드러내놓고 보여주려는 불편함도 존재하며, 개념연예인이라는 호칭 속에 인기에 대한 집착이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물론 그렇지 않은 연예인들이 대부분일 것이지만, 누군가의 호명으로 이런 지칭이 붙여질 때 그것은 자칫 본질을 흐릴 수 있다.

그리고 차인표가 있었다. '컴패션'이라는 국제어린이양육기구에서 활동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그래도 '사랑을 그대 품안에'의 오토바이와 색소폰으로 기억되는 남자, '분노시리즈'로 더 많이 회자되던 연기보다는 열정의 배우로 기억되는 남자. 그런 그가 '힐링캠프'에 나와 들려주고 보여준 두 시간은 그에 대한 모든 선입견을 날려버리기에 충분했다. 차인표의 진솔함과 소박함에 깃든 따뜻한 가슴은 소셜테이너나 기부천사, 개념연예인이라는 포장 따위 자체가 오히려 부끄럽게까지 여겨지게 만들었다. 차인표는 그런 호칭 하나로 설명할 수 없는 단순하면서도 명쾌한 그만의 철학을 갖고 있었다. 그것은 '작은 실천'이다.

'힐링캠프'의 서두에 끄집어 낸 '가슴'에 대한 그의 일화는 대단히 흥미롭고도 의미심장한 것이었다. 미국에서 생활할 때 뭐 하나 잘 하는 게 없어 의기소침했던 그가 어느 날 탄탄한 가슴 근육의 남자에게 매료되어 "어떻게 하면 그렇게 몸을 만들 수 있냐"고 물었던 것이 지금의 자신을 만들었다는 어쩌면 조금은 황당한 이야기는 그러나 그 안에 단순한 진실을 담고 있었다. 그렇게 매일 팔굽혀펴기를 하면서 가슴 근육이 도드라지기 시작했고, 그러자 그만큼 자신감도 생겼으며 친구들도 생기기 시작했다는 것. 그 탄탄한 가슴은 또한 무명의 자신이 배우가 될 수 있었던 차별점이 되기도 했다는 것. 물론 이 이야기가 전하는 진짜 핵심은 다른 것이다. 작은 행동 하나가 그 사람의 삶을 바꿀 수 있다는 이야기.

"(턱걸이를) 한 번 할 수 있는 사람은 50번을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한 번을 하지 못하면 하나도 하지 못하게 되죠." 턱걸이를 예로 들어 한 이 이야기의 울림이 큰 것은 우리가 흔히 거창하게 말하는 나눔이나 기적 같은 것에 대한 편견을 깨기 때문이다. 무언가 거대한 것으로 생각해왔던 그런 것들이 결국은 작은 실천 하나로부터 시작된다는 것. 딸을 입양한 후, 사회적으로 칭찬을 받고 상금까지 받게 된 차인표가 그 상금 전액을 온전히 다시 더 많은 힘겨운 아이들을 위해 사용했다는 일화는 이 비유가 그저 듣기 좋은 비유가 아니라 실제라는 것을 말해준다. 그렇게 작은 손길이 기적으로 돌아오게 해준 딸에 대한 차인표의 가슴은 얼마나 벅차올랐을 것인가.

중요한 것은 차인표가 이런 사회적으로 귀감이 되는 행동들을 실천하면서도, 스스로는 '특별한 사람'이라는 자의식을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는 유흥업소에 가지 않는 이유로 자신이 그런데서 쓰는 돈이면 한 아이의 삶이 달라질 수 있다고 말하면서도, 그렇다고 자신처럼 행동하지 않는 이들을 비난하거나 이해하지 못하는 자세를 보여주지는 않았다. 그것은 그의 활동이 우월한 존재로서 거창한 사회적인 일을 하고 있다는 자의식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그저 한 작은 인간으로서의 작은 실천일 뿐이라는 몸에 밴 겸손 때문일 게다.

내세울 것이라고는 빵빵한 가슴뿐이었다고 천연덕스럽게 말하고, 그 가슴을 실룩거리며 노래하는 모습을 보여주던 그가 결국 대중들에게 감동을 준 것은 그 우스꽝스럽게까지 보이는 행동 속에 담겨진 따뜻한 가슴을 우리가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힐링캠프'는 비로소 차인표를 통해 진정한 '힐링'의 진면목을 보여준 셈이 되었다. '힐링'이란 단지 물리적이고 이성적인 것만을 포괄하는 개념이 아니다. 거기에는 인간으로서 다른 인간을 생각하는 영적인 부분도 들어가 있다. 차인표는 '나를 위한 것'은 진정한 힐링이 아니며, '타인을 생각하는 힐링'이야말로 진정 자신을 힐링할 수 있다는 것을 몸소 보여주었다. 거창한 지칭이 아닌 실천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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