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미호와 인간 사이, 그 공통점과 차이점이 의미하는 것

"봐라. 저 등을 다 같은 한 사람이 달았다고 생각하느냐? 모르긴 몰라도 모두 다른 사람이 달았을 거다. 하지만 저 등에 담겨있는 마음은 다 같다. 아끼는 사람을 생각하는 마음이다. 세상 사람이 다 다른 것 같아도 사람마음은 다 똑같은 거다. 연이 너랑 나도 신분은 달라도 서로 아끼는 마음은 같지 않으냐? 그러니 우린 달라도 같다." - '구미호 여우누이뎐' 정규도령이 연이에게 마음을 고백하며

구미호는 우리와 완전히 다른 존재인가. 태생적으로는 그렇다. 구미호는 본래 여우니까. 하지만 구미호는 반 인간이기도 하다. 인간이 되기 위해 인고의 세월을 겪으면서 구미호의 심성은 웬만한 인간 이상이 되었다. 말 그대로 반인반수다. 그렇다면 구미호는 여우인가 인간인가. 사실 이런 질문은 질문 자체가 우스꽝스러워 보이지만 우리가 구미호라는 텍스트를 읽을 때 기본적으로 머릿 속에 그리는 그림이다. 사실 구미호가 여우인가 인간인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진짜 중요한 건 이런 구분이다. 구미호가 여우이건 인간이건 그게 도대체 어떻다는 건가.

왜 여우는 여우로서 살아가려 하지 않고 굳이 인간이 되려 하는가. 왜 인간은 굳이 인간이 되겠다는 여우를 용납하지 않는가. 나아가 인간과 여우가 서로를 인정하고 살아갈 순 없는 건가. 구미호라는 텍스트에는 기본적으로 이 다른 점으로 구분된 두 존재에 대한 차별적 시선이 들어가 있다. 이것은 물론 조선시대 같은 반상의 차이가 뚜렷한 사회의 체계를 공고하게 해주는 것들이다. 인간(양반)은 인간이 가야할 길이 있고(여우보다는 나은), 여우(상놈 혹은 짐승)는 여우가 가야할 길이 있다. 그러니 이 차이를 넘어서려 해서는 안된다.

이 차이는 시대가 변했어도 새로운 이름으로 여전히 남아있다. 가부장제 하에서 시어머니와 며느리 사이나 자본주의 사회 속에서 빈부의 격차가 만들어내는 상류층과 서민 사이의 장벽같은. 그런데 이 양자 간에는 과연 진짜 차이가 존재할까. 양반과 상놈, 상류층과 서민은 먹는 것도 다르고 싸는 것도 다를까.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지만 다르게 보는 시각이 존재할 뿐이다. 이것은 이 견고한 시스템의 작동방식이다. 인간과 인간으로서의 같은 점을 보는 것이 아니라 차이를 만들어 그 시스템을 운명으로 체화시키려는 것. 이렇게 보면 '구미호'라는 텍스트는 지극히 보수적인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것은 실제로도 그렇다.

하지만 그것만일까. 만일 그런 보수적인 시각으로 변하지 않는 시스템을 알게 모르게 대중들의 마음 속에 각인시키는 것이었다면 '구미호' 이야기는 이토록 오래도록 계속해서 새롭게 반복되지 않았을 것이다. '구미호' 이야기는 차이와 함께 동일성에 대한 희구가 들어가 있다. 즉 여우이지만 인간이 되고 싶어하는 구미호라는 존재 자체가 바로 그렇다. 구미호는 인간과 동일하게 대우받고 싶어한다. '구미호 여우누이뎐'은 이런 욕구가 더 강력하게 등장한다. 여기에는 딸을 둔 구미호와 윤두수(장현성)의 모성애와 부성애가 똑같은 무게로 그려진다. 인간만큼, 혹은 인간보다 더 인간다운 구미호의 모성애.

이러한 구미호와 인간 사이의 동일성을 가장 극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바로 사랑이다. '구미호 여우누이뎐'에서 정규도령이 연이(김유정)에게 하는 "우린 달라도 같다"는 대사는 바로 이 사랑이, 서로 다른 두 존재 사이를 연결해줄 유일한 가능성이라는 걸 말해준다. 하지만 어떤가. 구미호가 인간의 얼굴에서 반인반수의 진면목을 드러냈을 때 보인 연인의 반응은? 사랑의 감정과 두려움의 감정이 뒤섞인 그 깊은 혼돈. '구미호 여우누이뎐'이 흥미로운 것은 이 작품이 단지 구미호의 변신에 대한 인간의 혼돈만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여기에는 인간(윤두수)의 변신(자신의 딸을 위해 연이를 죽이려는)에 대한 구미호의 혼돈도 들어가 있다. 숨겨진 존재들이 진면목을 드러냈을 때, 이들은 여전히 사랑할 수 있을까. 사랑이라는 동일성에 머물 수 있을까, 아니면 진면목이 가진 차이의 벽을 이겨내지 못할까.

우리처럼 단일민족이란 수사를 끊임없이 반복해온 민족에게 타인을 우리처럼 받아들이는 일은 실로 쉽지 않은 일일 것이다. '이클립스'의 뱀파이어와 늑대인간 사이에 서서 누구를 선택할 것인가 고민하는 벨라라는 인간의 이야기가 우리에게 낯설게 느껴지는 건 그 때문이다. 우리는 고작 구미호와 인간 사이의 차이에서 허덕이고 있지만, 저들은 둘도 아닌 세 종족이 함께 사는 법을 고민하고 있다니 놀라운 일이 아닌가. 이것은 바로 '트와일라잇'이라는 영화가 미국에서 그토록 초미의 관심을 끌고 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그다지 관심을 끌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저들의 사회가 우리보다 차별이 덜하다는 얘기가 아니다. 이것은 이민족들의 집합으로 이루어진 저들 나라에서 이종족이 함께 서로를 사랑하며 살아가는 이야기는 우리보다 더 큰 판타지임을 말해주는 것일 뿐이다. '구미호'라는 텍스트는 이민족은 아니지만 끊임없이 차이를 생산해내는 사회 시스템에 의해 양산되는 우리 식의 차별적 존재들이 서로의 차이를 넘어서려 하거나 좌절하는 이야기를 거기에 담고 있다. 사실 같은 두 존재를 놓고도 어떤 이들은 차이점을 보지만, 어떤 이들은 공통점을 찾기도 한다. '구미호 여우누이뎐'이 지금 이 시대에 던지는 메시지는 바로 이것이다. 당신은 구미호와 당신의 차이를 보고 있는가 아니면 공통점을 보고 있는가.

'이끼', 신구세대를 가로지르다

그저 지나쳤으면 지극히 평범해 보이는 그런 시골마을. 이제 개발의 손길이 조금씩 다가오고 있지만 도시인의 마음으로 보면 심지어 살고 싶을 정도로 한적한 그런 풍경. 그 풍경은 과연 아름답기만 한 걸까. 거기 덤불 아래, 세워진 집 아래에는 뭔가 숨겨진 시대의 생채기가 남아있지 않을까. '이끼'는 바로 이 질문에서부터 시작하는 영화다. 어느 날 그 동네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한 젊은 청년은 이곳으로 들어와 그 덤불을 들춰보고는 거기 무언가 이상한 것들이 있다는 것을 발견한다.

그 이상함은 전체주의적인 분위기다. 이장 천용덕(정재영)에게 절대적으로 복종하는 마을 사람들이나, 마치 파놉티콘을 연상시키는 이장의 집에 의해 감시되는 마을. 의절한 채 살아왔던 아버지의 부음으로 시골동네를 찾은 유해국(박해일)은 이질적인 존재로서 단박에 그 분위기를 감지해낸다. 아버지가 혹시 살해된 건 아닐까 하는 의심 속에서 마을을 조사하기 시작하는데, 몰랐던 동네의 숨겨진 비밀들이 양파껍질 벗겨지듯 드러나면서 해국은 점점 더 깊은 미궁 속으로 빠져든다.

윤태호의 웹툰을 영화화한 '이끼'는 상영 전부터 이미 화제가 된 작품. 웹툰이 게재될 때 이미 18건의 영화화 제의가 있었을 정도였다. 하지만 영화화 될 때 기대만큼 우려도 많은 작품이었다. 영화화된 웹툰이 거의 성공을 거둔 전례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미 150만 관객을 돌파한 '이끼'는 이제 웹툰의 첫 번째 성공사례로 꼽힐 것으로 보인다. 도대체 어떤 점이 '이끼'의 성공을 이끈 것일까. 그 해답은 신구세대를 가로지르는 독특한 이야기 구조에 있다.

이 영화의 대결구도는 천용덕으로 대변되는 개발시대의 잔재와 유해국으로 대변되는 신세대적 감성의 부딪침으로 그려진다. 즉 유해국의 아버지인 유목형은 월남전의 트라우마를 갖고 있던 인물이고, 천용덕은 이 폭력의 시대에 폭력으로 무장하곤 돈과 권력을 탐하는 형사였으며, 마을 주민들은 저마다 개발시대의 욕망 한 자락을 쥐고 죄를 지은 인물들이었다. 즉 현 시대의 젊은이인 유해국은 아버지의 부름을 받고(죽음을 통한) 이 이상한 마을로 들어와 천용덕이 세워놓은 왕국의 밑바닥을 들여다보는 것. 장르는 스릴러지만 그 아래에는 현재의 풍요 속에 감춰진 시대적 아픔을 들춰낸다는 점에서 사회극의 요소를 갖고 있다.

웹툰이 그 매체적 성격상 젊은 세대를 주 타깃으로 하고 있다는 점은, 웹상에서의 폭발적인 인기가 영화로 이어지지 않는 가장 큰 이유가 될 것이다. 하지만 '이끼'는 신구 세대의 문제를 모두 아우르고 있다는 점에서 웹툰이면서도 그 타깃의 폭이 넓다. 영화로서 성공하려면 좀 더 넓은 타깃을 가져야 한다. 특히 중장년층의 호응은 절대적이다. '이끼'는 바로 그 점을 만족시켜주는 스토리 구조를 갖고 있다. 공간으로서의 도시와 농촌이, 존재로서의 인간과 신이 교차하는 이 작품 속에는 70년대 개발시대의 정서에서부터 2010년도 현재의 정서까지가 공존하고 있다. 그래서 이 이야기는 과거의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의 이야기이고, 어느 한 시골동네에 한정된 이야기가 아니라 이 땅 전체의 이야기가 되기도 한다.

웹툰에서 금세 튀어나온 듯한 싱크로율 100%의 박해일과, 인상적인 연기를 보여준 정재영의 연기대결도 볼만하다. 무엇보다 유해진이라는 배우는 이 자칫 끝없는 긴장으로 피곤해질 관객들에게 간간이 시원한 소나기 같은 웃음을 선사한다. 2시간 40분이라는 런닝타임은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니다. 하지만 윤태호 작가가 구축해놓은 팽팽한 스토리와 백전노장 강우석 감독의 좀더 대중적으로 호흡할 수 있는 영화적 해석은 이 긴 시간을 거의 느끼지 못할 정도로 영화에 속도감을 제공한다. 그러고 보면 이 영화는 톡톡 튀는 신세대 작가와 여전히 저력을 갖고 있는 기성세대 강우석 감독의 만남이기도 하다.

'제빵왕 김탁구'의 탁구, '자이언트'의 강모

"난 네가 기뻐하는 일이라면 뭐든지 할 수 있어." 80년대를 풍미한 이현세 만화 '공포의 외인구단'에 등장하는 까치의 이 대사는 당대의 대중들에게 큰 반향을 일으켰다. 사회의 소외된 인물들이 지옥훈련을 통해 강자로 재탄생하지만, 결국 엄지에 대한 절대적 사랑 앞에 승리마저 포기하는 까치. 그 사랑에는 당대 사회분위기가 잘 녹아있다. 사회적인 문제와 직접적으로 부딪치기보다는 개인적인 차원으로 회귀하는 깊은 감상주의가 바탕에 깔려있지만, 거기에는 사랑을 위해서는 뭐든 해내는 강한 남성에 대한 열망이 담겨져 있다.

30년이 지났지만 지금 안방극장에는 이 까치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가진 것 없는 이들은 모든 것을 가진 이 시대의 마동탁들과 대결을 벌이며 그 지독한 사랑을 보여주고 있다. '제빵왕 김탁구'의 김탁구(윤시윤)와 구마준(주원)의 유경(유진)을 사이에 둔 대결구도가 그렇다. 안기부에 끌려간 유경을 구하기 위해 "2년 간 유경을 만나지 않는다"는 마준의 제안을 수락하는 탁구의 이야기는 '공포의 외인구단'에서 지옥훈련을 떠나는 까치의 에피소드를 떠올리게 한다. 그 떠나있는 시간동안 마준은 마치 마동탁처럼 끊임없이 유경을 흔들어놓을 것이다.

뭐든 원하는 것은 돈으로 얻을 수 있는 마준이 유경의 사랑은 얻을 수 없는 상황이나, 아무 것도 없지만 남다른 재능으로 최고의 제빵왕으로 거듭나는 탁구의 이야기, 또 그 탁구 주변인물로서의 진구(박성웅)나 인목(박상면) 그리고 갑수(이한위) 같은 인물이 '공포의 외인구단'의 까치 주변인물들처럼 보여지는 것도 그렇다. 아마도 우연의 일치겠지만, 김탁구와 구마준이라는 이름에서도 옛 만화 속의 인물들이 떠오른다. 독고탁과 마동탁.

당대의 사랑은 늘 빈부의 격차 속에서 사랑이 현실을 이길 수 있는가의 질문을 던진다. 남성 캐릭터는 가난한 자신의 현실을 이겨내고 강한 남자로 다시 자신의 사랑 앞에 서려하고, 여성 캐릭터는 끊임없는 현실의 유혹 앞에 흔들린다. 아마도 이런 구도의 부활은 꽉 막힌 사회적인 억압 속에서 자꾸만 움츠러드는 남성들의 강한 남자에 대한 판타지 때문일 것이다. 어딘지 촌스러워 보이지만 그래도 여전히 우리의 감성을 자극하는.

한편 '자이언트'의 강모(이범수) 역시 또 다른 까치의 부활이다. 사랑하는 여자 정연(박진희)을 늘 옆에서 바라보기만 하고 자신의 처지를 알기에 다가서려는 그녀를 속에도 없는 말로 밀어내고는 절규하는 그 모습은 까치의 옛사랑 그대로다. 물론 대사로 "널 위해 뭐든 할 수 있다"는 말은 안하지만, 그의 행동이 그 대사를 대신한다. 그 사랑을 방해하는 존재로 조민우(주상욱)는 마동탁의 역할이다. 뭐든 다 가졌지만 정연의 사랑만은 가질 수 없는 존재.

쿨한 사랑의 시대에 촌스럽게 느껴지는 까치식의 사랑이 21세기에 부활한 것은 왜일까. 물론 그것은 이 두 작품이 모두 7,80년대를 다루는 시대극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 바탕에 깔려있는 감성이 현재와 만나는 지점이 분명 있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그것은 강한 남성에 대한 희구, 그 시절에 대한 향수다. 물론 이 두 작품에는 까치식의 이야기와는 확연히 다른 점이 존재한다. 그것은 바로 희생적 사랑에만 매몰되는 것이 아니라 개인적 성장과 행복에도 주목한다는 점이다. 바로 이 지점, 향수를 자극하는 옛사랑과 현재적인 관점에서의 행복을 추구하는 모습이 교차하는 세대의 접합점은, 이들 드라마가 왜 과거를 다루면서도 현재의 인기를 끄는 지를 잘 말해준다.

최근 드라마에서 아역들이 각광받는 이유

정말 저게 아역의 연기일까? 달라진 눈빛을 보면 영락없는 역할에 빙의된 성인연기자의 그것. 최근 들어 드라마를 볼 때마다 드는 놀라움이다. '구미호 여우누이뎐'의 김유정. 사실 그녀가 맡은 역할은 쉬운 게 아니다. 반인반수인데다, 사람을 사랑하는 상황은 복잡한 감정을 표현해내야 한다. 성인들도 힘들다는 구미호 역할과 지금 그녀가 하고 있는 연이라는 캐릭터의 역할은 다를 게 하나도 없다. 오히려 '구미호 여우누이뎐'에서는 구미호보다도 연이라는 캐릭터가 중심이 되는 느낌마저 든다.

아무리 드라마라도 지나친 게 아니냐는 논란이 있었지만, 연이와 정규(이민호) 도령이 사랑에 빠지는 과정들은 구미호(한은정)와 윤두수(장현성)의 멜로와 거의 병렬적인 힘을 만들어냈다. 초파일 연등을 내려다보며 그 등을 단 사람들은 다 달라도, 등에 담겨진 마음은 같다며, 연이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정규 도령, 하지만 연꽃을 따주려다 물에 빠지자 그를 구하기 위해 반인반수의 모습을 드러내는 연이의 그 아픈 내면은 김유정이라는 어린 연기자를 통해 잘 표현되었다.

'구미호 여우누이뎐'은 모성애와 부성애가 부딪친다는 점에서 그 대상이 되는 아이들의 역할 또한 중요해질 수밖에 없다. 연이와 대척점에 서 있는 초옥을 연기하는 서신애는 '지붕뚫고 하이킥'에서의 선한 웃음을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패악스런 연기로 시청자들을 놀라게 하고 있다. 연이를 우물에 빠지게 해놓고, 달려온 연이의 엄마에게 천연덕스럽게 웃으며 "이미 늦었다"고 말하는 초옥은 보는 이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다. 연이가 어린 구미호의 역할이라면, 초옥은 그 구미호를 파멸에 이르게 만드는 인간이란 존재의 어린이 버전이라 할만하다.

최근 아역이 과거와 달라진 점은 과거처럼 성인 연기자들을 보조해주거나, 그들의 어린 시절을 잠깐 보여주던 것에서, 이제는 드라마 자체를 이끌어가는 독립적인 존재로 서고 있다는 점이다. 과거 1,2회에 불과했던 아역의 분량이 점점 늘고 있는 것은 그 때문이다. 이것은 단지 '구미호 여우누이뎐'처럼 아역이 특히 중요한 드라마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자이언트'에서도 아역들의 연기는 성인 못잖은 몰입을 만들어내며 꽤 오랫동안 선보여졌다. 어린 강모 역할의 여진구나 어린 정연 역할의 남지현은 대표적이다.

한편 '제빵왕 김탁구'에서 어린 탁구 역할을 연기한 오재무는 천연덕스런 사투리까지 써가며 인상 깊은 연기를 보여주었다. 지금은 성인 역할로 바뀌어 윤시윤이 그 연기의 바톤을 이어열연하고 있지만, 아직도 오재무가 남긴 어린 탁구의 아우라는 여전히 남아있다.

아역들이 이처럼 드라마의 부수적인 존재에서 중심 역할로 변모하게 된 이유는 두 가지다. 그 첫째는 아역들이 이제 이런 역할을 소화해낼 만큼 연기력이 좋아졌다는 것이다. 영상에 익숙한 이들 세대들은 카메라 앞에서 성인들보다 저 자연스런 연기를 보여주고 있다. 둘째는 드라마의 극성을 끌어올리는데 아역이 가진 힘이 크다는 점이다. '구미호 여우누이뎐'에서 연이가 당하는 상황은 그것이 아이이기 때문에 더 강도가 커지는 특징이 있다. 이것은 아이들이 가족을 잃고 길거리에서 뿔뿔이 흩어져 생존해가는 '자이언트'의 이야기나, 거의 막장에 가까운 현실 속에 내팽개쳐지는 '제빵왕 김탁구'의 이야기에서도 마찬가지다.

물론 이렇게 달라진 환경이 만들어내는 문제도 있다. 그것은 이 아역들이 선전하는 무대가 청소년 드라마가 아니라 성인들의 드라마라는 점이다. 따라서 아역들은 성인 못잖은 폭력적인 상황에 내몰리는 역할을 수행하게 되기도 한다. 이것은 아역 당사자들뿐만 아니라, 이런 드라마에 노출되기 쉬운 어린 시청자들에게도 그다지 좋은 영향을 주지 못한다.

아역 전성시대는 이제 아이들도 연기의 영역에서 당당한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는 반증으로서 반가운 일이지만, 또한 거기에는 분명한 어떤 수위가 필요한 것이 사실이다. 성인 못잖은 놀라운 아역들의 연기를 좀 더 편안하게 즐길 수 있는 제작진들의 배려가 어느 때보다 중요해진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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