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아름다워’, 왜 제주도 펜션일까

김수현 작가의 ‘인생은 아름다워’의 공간은 제주도의 펜션이다. 물론 제주도의 아름다운 풍광은 매력적이지만, 제작을 염두에 두고 보면 제주도라는 공간은 난점이 더 많다. 일단 거리가 너무 멀다. 제작진과 출연진이 촬영을 위해 제주도에 모이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고, 모여서 촬영을 하는 것은 더더욱 쉽지 않다. 바람이 많이 불고 기상도 수시로 변해 촬영이 지연되기 일쑤다. 혹 뜻밖의 상황을 맞이해 비행기라도 뜨지 않게 되면 편집이 늦어져 방송에 차질이 빚어질 수도 있다. 그런데 왜 하필 제주도의 펜션일까.

물론 추정이지만, 아마도 제주도라는 공간이 갖는 의미가 ‘인생은 아름다워’라는 작품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 드라마는 결코 쉽지 않은 가족 간의 갈등을 담아내고 있지만, 제목처럼 그 갈등조차 ‘아름답게’ 바라보려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눈이 즐거워지는 제주도라는 공간의 아름다움은 배경으로서 중요할 수 있다. 그 속에 어떤 갈등이 있어도 결국 아름답게 안아주는 자연(제주도)은, 힘겨워도 아름답게 보이는 삶을, 미워도 사랑하는 일원으로 품어지는 가족의 모습을, 공간만으로도 충분히 보여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굳이 제주도인 이유 중 가장 중요한 것은 펜션이라는 공간 때문이다. 펜션이라는 공간을 가장 극적으로 그려내는 장소로 제주도만한 장소가 없다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질문은 이제 펜션으로 바뀐다. 왜 하필 펜션일까. 펜션이라는 공간은 김수현 드라마로서는 집의 변형이다. 집이 펜션으로 진화한 데는 의미심장한 구석이 있다. 집은 회사를 상정하면서, 사적인 공간과 공적인 공간을 분리시킨다. 가족들은 낮에 회사로 나갔다가 저녁에 집으로 돌아온다. 하지만 ‘인생은 아름다워’의 불란지 펜션은 다르다. 이 펜션은 일의 공간이면서 동시에 집이기도 하다. 사적 공간과 공적공간은 겹쳐진다.

일과 가정사가 겹쳐지는 이 공간에서 살림은 그 의미를 달리한다. 과거 집과 회사가 분리되었던 시절에, 살림은 엄마의 몫이었지만, 이 펜션이란 공간에서 살림은 그 역할이 구분되어 있다. 아버지, 양병태(김영철)는 펜션 구석구석의 허드렛일을 처리하고, 아들 호섭(이상윤)은 손님들의 식사를 준비하거나, 스쿠버다이빙 같은 여행의 가이드 역할도 하고, 한편으로는 어머니 김민재(김해숙)의 식사를 돕거나 식후 설거지를 한다. 삼촌 양병걸(윤다훈)은 양병태를 도와 집안일에 참견하는데, 농장일이 주업이다. 한편 김민재는 부엌에서 가족들의 밥을 짓지만, 또한 자신의 일인 요리방송을 준비하기도 한다. 따라서 김민재의 부엌은 살림의 공간이면서 사회적인 일의 공간이기도 하다.

이 펜션이라는 공간을 중심에 두고 그 안으로 들어와 있는 아버지와, 그 펜션의 부엌이라는 공간에서 밖으로 확장되어가는 어머니의 모습은 극명하게 대비된다. 그만큼 사라져가는 아버지의 권위와 사회적으로 활동을 넓혀가는 어머니의 모습이 그 속에는 담겨있다. 집안 모든 대소사에 끼어들어 말참견을 하는 삼촌 양병걸은 전형적인 아줌마의 모습이다. 집안에 들어와 있는 남자들이 많아서인지, 한참 드라마를 보다보면 '남자들의 수다'가 도드라져 있는 느낌마저 받게 된다. 그만큼 이 드라마의 심정은 어머니인 김민재보다는 아버지인 양병태에 더 집중되어 있다. '엄마가 뿔났다'의 아버지 버전 같은 느낌. 그 아버지가 뿔을 낼지는 모르는 일이지만.

할머니(김용림)의 공간이 펜션 한 편에 따로 지어져 있는 것 역시 독특하다. 게다가 이 할머니는 독립된 텃밭을 일구며 혼자 식사를 챙겨먹는다. 물론 감기라도 걸리면 온 집안 식구들이 총출동될 정도로 가족들의 신경이 집중되어 있지만, 아마도 할머니는 저 스스로 독립적인 삶을 원하시는 것 같다. 이것이 따로 떨어져 옛 전통가옥으로 지어진 할머니의 공간으로 표징되어 있다. 할아버지(최정훈)는 집 없이(?) 밖으로 떠돌다가 그 공간 속으로 들어 오려한다. 할머니의 방에서 가구들이 밖으로 내어지고 그 방 가운데 차양막이 쳐진 채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동거가 시작되는 설정도 의미심장하다. 그 방이라는 공간은 할머니의 조금씩 열려지는 마음(애정이라기보다는 인간애로서)을 그려낸다.

김수현 작가의 작품에는 늘 그렇지만 부엌이란 공간은 이 드라마에서도 가족 간의 소통의 공간이다. 그 속에서 김민재는 책에 들어갈 사진을 위해 요리를 하고(반드시 가족들을 거둬 먹이기 위해 하는 일은 아니다), 그 요리를 가족들과 함께 먹는다. 제주도, 그 제주도의 아름다운 펜션, 그리고 그 펜션의 열려진 공간으로서의 부엌. 그 곳에 아직 함께 하지 않는 할아버지와 할머니, 함께 하지만 불청객 소리를 듣는 딸 양지혜(우희진)의 가족, 자신의 비밀(동성애) 때문에 그 자리가 껄끄러운 양태섭(송창의), 밖에선 잘 나가는 것 같아도 그 나이에 가족이 없는 양병준(김상중), 그 곳에서 늘 구박떼기처럼 당하면서도 특유의 재재거림으로 집안 대소사의 끈끈한 아교풀 역할을 하는 양병걸이 왁자한 삶을 그려간다.

가까이 다가가면 비극적인 면모도 있지만, 멀리서 바라보면 그 아름다운 제주도 펜션(펜션 같은 집은 누구나의 로망이 아닌가!) 속에서 그 삶은 진정 아름답게 보인다. '인생은 아름다워'는 원경에서 잡혀진 불란지 펜션의 아름다운 모습에서 출발해, 그 속의 근경 속에 잡혀진 왁자하고 때론 비극적인 삶들을 그려내다가, 다시 그 아름다운 펜션의 원경으로 돌아간다. 그러고 보면 이 공간은 어쩌면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고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는 찰리 채플린의 말을 직접 그려낸 것만 같다.

'청춘불패'에 찾아온 봄, 유치리를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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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홍천군 남면 유치리. '청춘불패' 아이돌촌은 지극히 평범하다. 무심코 가다보면 지나치기 쉬운 그런 동네. 그 마을이 사람들로 북적인다. '청춘불패' 촬영하는 날이다. 아이돌촌으로 들어가는 입구에서 멀찌감치 서서 그 신기한 일(?)을 구경하는 점잖은 시골 아저씨들은 때 아닌 북적임이 그다지 싫지 않다는 얼굴이다. 예쁘장하게 생긴 젊은 것들(?)이 몸빼 바지에 장화 신고 농사일이라고 서툰 짓을 하는 게 마냥 예쁘다는 표정이다.

아이돌촌 주변으로는 출연진과 촬영팀과 스텝들로 정신이 없다. 시골 마을에 어울리지 않게 바닥에 이리저리 뻗어나간 전선줄들이 촬영을 실감케 한다. 집 바깥에서 뭔가를 심으려는 듯 곰태우와 효민은 푯말을 들고 노촌장과 뭐라 한참 신나는 대화를 나누고, 트랙터로 밭을 순식간에 갈아버린 구하라는 멋지게 거기에서 뛰어내린다. 몸빼를 입어도 아이돌은 아이돌이라는 말이 실감난다. 어쩜 저리도 빛이 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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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르샤는 성인돌 답게 농익은 몸 개그를 선보이고, 써니는 주부애(주먹을 부르는 애교)를, 선화는 특유의 백지 순수 캐릭터를 돋보인다. 청순한 듯 섹시한 자태로 서 있는 유리와 노란 머릿결을 휘날리며 막내 티를 내는 현아는 또 어떻고. 선글라스를 낀 효민은 장난스럽게 써니 뒤에 서서 '병풍 개그'를 한다. 김신영이 쉴 새 없이 포복절도의 입담을 과시하면 훤칠한 키의 곰태우(김태우)는 느물느물하게 개그를 잘도 받아친다. 노촌장(노주현)은 연세에 걸맞게 점잔을 빼다가도 소녀들의 "'수상한 삼형제'에서 하는 애교 좀 보여주세요."하는 요청에 나이도 잊고 주부애를 선보인다.

그들의 행동 하나하나 말 한 마디에 연출팀을 비롯해 모든 스텝들이 까르르 웃으면 아이돌촌은 그 평소의 무게를 잊은 듯 허공으로 잠깐 들어 올려졌다가 내려진다. 도대체 저들 속의 어떤 에너지가 시골동네에 오래도록 무겁게 내려졌던 침묵을 순식간에 날려버린 걸까. 그것은 아마도 청춘의 힘일 것이다. 그 날도 소 푸름이 훈련시키랴, 밭 갈랴, 아이돌촌 찾는 분들을 위해 특별히 만든 이정표 세우랴, 결코 쉽지 않은 일들을 수행하고 있었지만, 그 가녀린 손이 곡괭이와 삽을 들어도 힘겨운 내색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피곤한 얼굴로 쉬고 있다가도 촬영 들어가면 펄펄 나는 그들이 신기하기만 했다.

'청춘불패'가 낳은 유치리의 명사, 로드리와 전 이장님은 촬영 현장을 이리저리 다니며 아이돌들의 서툰 농사일을 도와준다. 그네들의 G7과의 서슴없는 모습이 이제 유치리라는 동네와 아이돌이라는 이질적인 존재가 하나의 가족이 되었다는 실감을 갖게 만든다. 사람 손이 많이 탔는지 누구에게나 꼬리를 흔드는 왕유치(아이돌촌의 개)는 물론이고, 축사에 말없이 순하디 순한 눈을 껌벅이는 푸름이(아이돌촌의 소), 그리고 닭장에 자리한 청춘이와 불패까지. 그들 하나하나의 존재는 이 농촌과 도시를 이어주는 존재들 마냥 반갑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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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청춘불패'의 아이돌들이 이곳을 찾았던 스산한 늦가을에는 그저 덩그마니 낡은 집 한 채가 서 있었을 뿐이었다. 그로부터 6개월, 유치리는 많은 것이 달라졌다. '경인년 새해 늘푸름 홍천한우가 청춘불패 대박을 기원합니다'라는 플래카드가 붙은 길을 따라 아이돌촌 우측으로 넓은 밭에는 그네들이 심은 작물들이 자라고 있고, 처음에는 없던 화장실이며 축사며 울타리가 지어진 가옥은 벽면 가득 채워진 구준엽이 그려준 그래피티가 아이돌촌의 랜드마크가 되어있다. 어디 변화가 아이돌촌의 일만이랴. 곰태우가 먹었다고 해서 아예 곰태우 짬뽕으로 유명해진 부흥반점과 G7이 찾았던 수정닭갈비와 학생사 역시 이 마을의 명물이 되었다. 주말이면 이제 유치리는 일부러 외지에서 찾아온 관광객들로 북적인다.

스산한 늦가을에 들어와 낯설지만 예쁜 만남을 가졌던 아이돌과 유치리는, 몹시도 추웠던 겨울을 누구보다도 따뜻하게 보내고, 드디어 따뜻한 봄을 맞이하고 있다. 유치리 아이돌촌에는 6개월 간의 일들이 맥 플라이의 'all about you'에 맞춰 흐르던 멈춰버린 사진 속의 추억처럼 떠다니고 있었다. 어찌 이 봄이 그저 겨울이 지나서 찾아온 것일까. 그 날 유치리에는 청춘의 봄이 완연했다.

짧아도 강한 인상을 남긴 그의 진정성

"누야(누나) 너랑 같이 살았다." 많은 대사가 필요하지 않았다. '신데렐라 언니'의 한정우(택연)가 그간 어떻게 살아왔는가를 알려주는 걸로 그 한 마디면 충분했다. 고주망태의 아버지 밑에서 일찍이 도망친 그는 죽 홀로 살아왔지만, 오랜만에 드디어 만난 그 누나, 은조(문근영)와 늘 함께 살아왔다. 아마도 그것은 그를 버티게 해준 유일한 힘이었을 테니까.

'기다리다 지친다'는 우스갯소리처럼 '신데렐라 언니'에 택연의 등장은 더뎠다. 도대체 어떤 모습일까. 아이돌 가수의 연기는 어떨까. 그것도 짐승돌의 대표격인 그 거친 남성미의 택연이라면. 기대도 컸고 기대가 큰 만큼 섣부른 예단도 많았다. 그래서 야구방망이 하나 들쳐 메고 그가 대성도가에 발을 디뎠을 때, 우리는 그의 입에 주목했다.

하지만 은조 앞에 선 그는 말이 없었다. 은조가 스스로 자신을 알아보길 원했기 때문에 그는 가만히 그녀의 신발을 가지런히 돌려놓고 맑게 웃었다. 비틀거리는 그녀를 가만히 따라가면서 먼 발치에서 바라보는 것이 그가 한 전부였다. 그러다 결심한 듯 다가와 은조 옆에 앉았을 때, 은조는 일어서며 물었다. "혹시 내가 무슨 말을 못 듣던가요? 나한테 뭐라 했냐구요."

그는 부인했지만, 아마도 수없이 말을 건네고 있었을 것이다. 이 한동안 지속된, 대사 없이 바라보는 행위는 연기자 택연에 대한 선입견을 지워냈다. 대신 마음속으로 늘 은조와 함께 살아온 한정우라는 캐릭터를 그 자리에 세워두었다. 술도가 창고에 쓰러진 은조를 업고 "누야.. 니 뭐가 그리 힘드노?"하고 물을 때, 그녀 앞에서만 튀어나오는 사투리 속에 그의 진심이 보였다. 쓰러진 신을 가지런히 세워두는 그에게 그 신은 은조 자신처럼 보였을 것이다.

이 복잡다단한 대성도가의 사람들 속에서, 늘 맑게 웃고 단순 명쾌해 보이는 한정우라는 캐릭터는 가만있어도 도드라져 보였다. 어쩌면 이 정우가, 새 아빠가 "뜯어먹을 게 있어 좋다"고 말하는 속물인 엄마와, 그런 엄마를 알면서도 받아들이는 새 아빠, 그리고 이제 '자기 것은 자기가 챙겨야 함을 알게된' 동생 효선(서우) 사이에 짓눌려 있는 은조를 구원해줄 인물처럼 보이는 건 그들과 상반된 그만의 단순 명쾌함 때문이다.

그래서 내내 웃음을 보인 적 없고, 늘 독을 품은 듯한 눈빛으로 잡아먹을 듯 사람을 대하던 은조가, 그가 그 어린 시절의 정우임을 깨닫고 처음으로 웃는 장면은 가슴이 서늘하다. 은조에게 웃음을 되돌려주는 존재로, 한정우라는 캐릭터는 그렇게 서게 되었고 그런 만큼 택연이라는 연기자는 뒤로 숨었다.

연기자가 사라지고 캐릭터가 남는 경험은 아마도 택연이라는 초보 아이돌 연기자에게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행운일 것이다. 그것이 바로 진짜 연기의 시작이기 때문이다.

‘검사 프린세스’가 일과 사랑을 다루는 방식

"나처럼 예쁘고 젊고 날씬한 여자가 좋다는데 왜 그렇게 튕겨요. 기분 나쁘게. 아니. 진짜로 진짜로 나에게 아무런 관심이 없어요?" 마혜리(김소연)는 순수하지만 개념이 조금 없다. 자식 딸린 홀아비인 윤세준(한정수)이 자신을 밀어내는 것을 이해할 수 없어한다. 거기에 대고 윤세준이 한 마디 쏘아댄다. "한번 자고 싶단 생각은 들어. 그런 생각 들라고 이러고 다니는 거 아냐?" 늘 공주처럼 차려입고 다니는 마혜리를 에프엠 검사 윤세준이 이해할리 만무다. 거기에 대해 마혜리는 말한다. "나는 소중하니까요. 내 몸이, 내 자신이 얼마나 소중한 건지 아니까요. 남이 뭐라든 남이 어떻게 보든 그따위 거 개나 물어가라고 그래요."

1백 킬로에 육박하는 몸으로 세상 사람들에게 손가락질 당하고, 자신이 사랑했던 남자가 사실은 자신의 가장 친한 친구와 연인 관계였다는 것을 알게 됐을 때의 그 참혹함을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그래서 피나는 노력으로 살을 뺀 자신의 몸이, 또 자신이 얼마나 소중한 지를. 그래서였을까. 검사라는 직업을 얻게 된 마혜리에게 여전히 소중한 것은 조직도 아니고, 억울한 누명을 쓰고 온 피해자도 아니다. 오직 자기 자신이다.

미니스커트 차림의 첫 출근에 진정선(최송현) 검사가 시정을 요구하자, "시정했어요. 어제 입었던 치마보다 1센티 길어요."하고 답하고, 6시면 칼퇴근 하는 마혜리를 윤세준 검사가 나무라자, "제가 왜 야근을 해야 돼요? 저 공무원이구요. 공무원 법정근무 시간 있구, 야근한다고 월급 더 나오는 것도 아닌데요?"하고 당당히 무개념의 말을 할 수 있는 건 그 때문이다. 그러니 적어도 그녀에게 있어서 자신은 '또라이'도 아니고 '능력 없는 사람'도 아닌 셈이다.

그녀는 검사라는 직업을 얻었지만 여전히 공주이고 싶어 한다. 그리고 윤세준의 말대로 그것이 그렇게 비난받을 만한 일도 아니다. 여성으로서 자신을 예쁘게 가꾸겠다는 것이 왜 나쁜가. 물론 그녀의 과한 자기애는 타인에게 피해를 끼치지만, 나쁜 의도가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런 조직생활이 처음이고 상황자체를 모르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들이다. 하지만 그녀는 윤세준 검사의 말처럼 "한 사람의 인생이 내 손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는 자신의 행동이 조심스러워진다. 공주로서의 삶과 검사로서의 삶은 부딪치기 시작하고, 그녀는 공주로서의 즐거움만큼 검사로서의 보람도 크다는 것을 알게 된다.

'검사 프린세스'는 공주가 검사가 되는 성장 과정을 다루는 드라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공주를 포기하는 것은 아니다. 그녀는 여전히 윤세준 검사가 따라주는 와인을 함께 마시는 달콤한 꿈을 꾼다. 하지만 윤세준 검사는 3년 전 상처(喪妻)한 후로 거기서 벗어나지 못해 사랑에 담을 쌓고 있는 인물이다. 그러니 그는 어쩌면 마혜리와는 정반대에 위치해 있는 지도 모른다. 그가 과거의 뚱뚱했던 마혜리가 겪었던 일과 그 아픔을 이겨내기 위해 피를 깎는 다이어트를 했던 이야기를 들었을 때, 그는 아마도 '자신을 아끼고 노력하고 이뤄내는' 마혜리를 진정으로 "멋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과거를 놔줘야 그 자리에 미래가 오는 거야." 윤세준 검사는 이렇게 말하지만, 정작 자기 스스로 "윤세준 니가 그런 말할 자격이 있냐?"고 되묻는 사람이다. 그는 여전히 과거 속에 있기 때문이다. '검사 프린세스'는 따라서 마혜리가 공주에서 검사가 되는 그 성장과정만을 다루는 드라마가 아니다. 이 드라마는 또한 과거의 고통 때문에 검사로서 만의 삶을 살아가는 윤세준이 다시 사랑을 해나가는 성장드라마이기도 하다. 그러니 마혜리의 성장드라마와 윤세준의 성장드라마가 겹쳐지는 지점은, 이 드라마가 꿈꾸는 세상이 검사와 공주 어느 한 쪽을 택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말해준다.

검사와 공주. 이 두 존재는 여성의 입장으로 보면 일과 사랑의 또 다른 표현이다. 사회생활을 하는 여성들은 이 두 가치가 사실은 상충되는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상충되는 것처럼 느끼는 경우가 많다. 일을 위해 사랑을 희생시키고, 사랑 때문에 일을 할 수 없는 사회의 보이지 않는 강요는, 마치 직장 내에서는 공기처럼 당연한 것처럼 떠다닌다. 또한 당당한 여성성으로서의 승부라기보다는 남성들이 만들어놓은 틀에서 승리하기 위해 남성화되어버리는 여성이 바람직한 것이 아닐 것이다. 물론 판타지로서 과장된 면이 있지만, 검사와 공주 둘 다를 희구하는 마혜리의 고군분투가 의미 있어 보이는 건 그래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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