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삼시세끼’에 원하는 건 완벽한 요리가 아니다

만일 요리 프로그램이라고 하면 이만한 프로그램도 없을 듯싶다. 늘 사먹기나 했던 베트남 쌀국수를 직접 닭 국물을 우려내고 거기에 갖가지 듣도 보도 못한 향신료로 동남아 특유의 향을 내서 만들어 먹고, 직접 화덕에 구워낸 빵을 뚜껑을 잘라내고 안을 파 만들어 둔 크림소스스파게티로 안을 채워 넣어 빠네를 만들어먹는다. 요리 프로그램에서 한 요리사가 선보였던 배국수를 직접 배를 갈아 불고기를 얹어 먹는다. 음식들이 너무나 화려하다. tvN 예능 프로그램 <삼시세끼>의 달라진 풍경이다. 

'삼시세끼(사진출처:tvN)'

유해진과 차승원이 나왔던 <삼시세끼> 어촌편에서는 그토록 잡기 힘들었던 물고기도 이번 ‘바다목장편’에서는 잘도 잡힌다. 감성돔을 세 마리씩이나 잡아 이서진은 이제 “돔 지겹다”는 농담을 할 정도다. 회를 쳐서 먹어봤던 터라 감성돔씩이나 갖고 튀겨 먹는단다. 하지만 그렇게 만들어 내놓은 생선튀김 요리도 예사롭지 않다. 살을 발라낸 생선을 튀겨 플레이팅을 만들고 그 위에 살만 튀겨내 얹어 완성된 요리. 그렇게 만들어진 요리를 먹는 리액션은 이미 나오기 전부터 예상한 그대로다. “맛있어” 하며 놀라는 얼굴.

요리는 잘해도 느릿느릿해서 새벽이 다돼서야 저녁을 먹게 만들었던 에릭, 일을 하면서도 시종일관 투덜투덜대던 이서진, 어딘지 시골의 삶이 어색해 어리버리하게 여겨졌던 윤균상. 하지만 이번 시즌을 보면 모두가 이런 부족한 면들을 채워 넣은 느낌이다. 연습을 많이 한 티가 역력한 에릭은 손놀림이 재게도 빨라졌고, 이서진은 투덜대기는커녕 시키지 않은 일도 알아서 척척 해내며 제빵왕의 면모까지 갖췄다. 윤균상도 마찬가지다. 불을 피우거나 재료 준비를 하거나 바다목장을 돌보고 산양유를 짜내 마을 어르신들의 정자에 갖다 놓는 일이 척척이다. 

그런데 이상하다. 이렇게 모든 게 완벽하게 굴러가는데 어딘지 아쉽다. 이건 <삼시세끼>가 아닌 듯싶다. 일단 <삼시세끼>가 갖가지 음식을 해먹는 요리 프로그램은 아니지 않았나. 그것도 득량도라는 지역이 가진 특산물이나 그곳에서 나는 식재료들을 그대로 사용하는 것도 아니고, 뭍에서 가져온 재료들로 요리를 하는 건 <삼시세끼>라는 취지에는 전혀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

이번 시즌에 특히 게스트들로 꽉 채워진 부분도 그렇다. 끊임없이 새로운 게스트들이 등장하고 그들과의 이야기를 담다보니 득량도라는 섬이 가진 소소한 이야기나, 그 속에서 생활하며 갖게 되는 출연진들의 색다른 경험 같은 건 많이 희석된 느낌이다. 게스트를 초대했으니 그들을 조명하는 건 당연한 예의일 것이다. 하지만 그 예의가 만든 그 게스트들에 대한 조명은 정작 그 곳의 호스트들을 새로운 요리를 하는 사람들 정도로 비춰지게 했다.

자막에 슬쩍 등장했던 것처럼, <삼시세끼>는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을 보여줌으로써 시청자들의 마음을 빼앗아버렸던 프로그램이다. 그래서 그것은 채워지기보다는 비워질 때 더 그 한가로움으로 시청자들을 매료시킨다. 하지만 이번 시즌은 어딘지 너무 꽉 채워져 빈 구석이 주는 즐거움이 많이 사라진 느낌이다.

너무 화려한 음식은 <삼시세끼> 특유의 소박한 맛을 지워버렸고, 불 하나 피우기 위해 입으로 불고 손으로 부채질을 하던 풍경이 손선풍기를 척척 들이댐으로써 편리함을 얻은 대신 불편함이 주는 노동의 질감을 사라지게 했다. 물고기가 안잡혀 애써 잡은 물고기를 다음 날 보여주기 위해 유해진이 만들어낸 이른바 ‘피시뱅크’ 같은 서민적인 따뜻함과 헛헛함 같은 것들이 이번 시즌에서는 잘 보이지 않는다. 

실로 음식부터 게스트까지 화려했다. 그리고 그 일상의 풍경들도 빈 구석 없이 완벽하게 굴러갔다. 하지만 그래서 더더욱 아쉬움이 가득했던 <삼시세끼>였다. 그나마 이번 시즌에서 프로그램에 정감을 만든 건 정자에 앉아 마치 자식들을 보듯 걱정하고 좋아하고 덕담을 해주셨던 득량도의 어르신들이다. 그 어르신들이 주었던 조금 부족해보여도 충분했던 소박함과 따뜻함이 본래 <삼시세끼>의 맛이었는데...

‘어서와’, 독일 친구들과는 달랐던 젊은 러시아 여성들

MBC 에브리원 <어서와 한국은 처음이지?> 러시아 친구들의 여행기는 짧게 마무리됐다. 5회에 걸쳐 방영됐던 독일친구들편에 비교하면 3회 만에 마무리된 러시아 친구들의 여행은 너무 짧아 이제 시작하려다 바로 끝나버린 느낌이다. 물론 독일친구들 이전의 멕시코친구들 역시 3회 분량으로 방영됐던 걸 생각해보면 이들의 여행기가 짧았던 게 아니라 독일친구들의 여행기가 남달리 길었다고 볼 수 있다. 그만큼 특별했으니 길었을 수밖에.

'어서와 한국은 처음이지(사진출처:MBC에브리원)'

하지만 러시아 친구들의 여행은 그들 나름대로 특별한 면면들을 담고 있었다. 동물을 좋아해서 수족관을 가서 물고기를 보며 “귀엽다”를 연발하고는, 노량진 수산시장에서 물고기를 먹는 이색적인 하루를 보여주거나, 한류 팬으로서 그 캐릭터 상품들을 살 수 있는 곳에서 쇼핑을 하고, 젊은 여성으로 미용실에서 머리를 하고 또 당연히 관심이 있는 한국 화장품을 폭풍 쇼핑하는 모습 등은 독일친구들에게서는 볼 수 없는 러시아친구들의 색다른 여행의 모습이었다.

여러모로 독일친구들의 여행과의 비교 때문에 소소하게 보였지만 지나고 보니 러시아친구들은 또 다른 색깔의 여행을 보여줬다고 느껴진다. 일단 세대가 독일친구들보다 훨씬 젊다. 따라서 독일친구들이 여행에 있어서 서로를 배려하거나 좀 더 학구적인 자세를 갖는 등 성숙한 면들을 보여줬던 것과 달리, 러시아친구들은 젊은 또래들이 보여줄 만한 여행에서의 좌충우돌을 고스란히 보여줬다.

그걸 단적으로 드러낸 게 대학가를 여행하는 도중 아나스타샤가 갑자기 “더 이상 못하겠다”며 힘겨움을 토로하며 생긴 갈등이었다. 아침부터 컨디션이 좋지 않았던 차에 비가 추적추적 내려 유독 습도가 높은 날씨로 불쾌지수가 높아지는 상황, 오해로 인해 어딘지 소외되고 있다고 느낀 아나스타샤의 감정이 터져버린 것. 

결국 여행 일정을 모두 접고 숙소로 돌아와 버렸지만, 사실 이런 사소한 다툼들이나 갈등들은 여행 도중 종종 발생하는 일이다. 특히 젊은 친구들은 자주 싸우지만 또 금세 친해지는 게 그 세대의 특징이기도 하다. 지나고 생각해보면 아무 일도 아니어서 피식 웃음이 나올 수도 있는 그런 일들이지만 현장에서는 자못 심각했던 그런 일들을 러시아 친구들이 보여준 건 그래서 독일친구들의 늘 좋았던 여행과는 사뭇 다른 여행의 면면을 드러내줬다. 

그런 갈등이 지나고 나서 서로 말 한 마디로 화해를 하고 금세 다시 친해져 찜질방으로 향하는 러시아친구들의 이야기는 그래서 더 흥미진진해질 수 있었다. 불가마의 뜨거움과 얼음방의 차가움을 오가며 냉탕온탕의 단짠 체험을 즐기거나, 처음 해보는 안마의자에서 까르르 웃음을 터트리며 좋아하는 모습은 그 날 낮에 있었던 갈등들을 한방에 날려버리는 행복한 순간들로 남게 됐다. 그리고 이어진 러시아 음식점에서의 편안한 식사와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의 술 한 잔은 이 젊은 친구들의 여행에 괜찮은 마침표를 찍어주었다. 

저마다 살아온 환경이 다르고 그 나이 대에 각기 가진 취향들이 다르니 그 여행의 양상도 달라진다. 이것은 <어서와 한국은 처음이지?>라는 프로그램이 가진 중요한 관전 포인트다. 사실 외국인이 국내에 들어와 겪는 문화적 충돌이라고 하면 어찌 보면 비슷한 것들의 반복처럼 보인다. 언어적 차이, 문화적 차이, 음식이나 숙소의 차이 같은 게 그것이다. 그래서 여러 번 반복하면 새로운 이야기가 나올까 싶지만 그런 우려를 날려주는 건 그 여행자들의 다른 취향들이다. 이 취향들이 있어 또 다른 여행기가 나온다. <어서와 한국은 처음이지?>는 그래서 그들의 한국 체험기이지만 동시에 우리가 그들의 눈으로 여행으로 하는 ‘그들의 취향 체험’이기도 하다.

시청률 껑충 ‘부암동 복수자들’, 긴장하는 지상파

기어이 tvN <부암동 복수자들>이 일을 낼 모양이다. 2회 만에 시청률이 4.6%(닐슨 코리아)를 기록했다. 첫 회 시청률 2.9%에서 이처럼 훌쩍 뛰어오른 시청률이 더 놀라운 건 이 드라마의 편성 시간대가 tvN이 올 가을 들어 공격적으로 내놓은 9시30분대였다는 점이다. tvN은 월화수목 9시30분을 드라마 타임으로 편성함으로써 10시에 시작하는 지상파 드라마들과의 한 판 승부를 예고한 바 있다. 

'부암동 복수자들(사진출처:tvN)'

만일 <부암동 복수자들>이 이 추세대로 시청률 상승을 기록한다면 지상파 드라마들은 고스란히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게 된다. 실제로 <부암동 복수자들>이 2회에 4.6%의 시청률을 내며 순항을 시작하는 순간, 지상파 드라마들은 주춤하는 모양새다. MBC <병원선>이 10%, SBS <당신이 잠든 사이에>가 9.7%를 기록했다. 

<부암동 복수자들>이 예사롭지 않게 여겨지는 건 이 드라마가 가진 이야기의 참신함 때문이다. 바람을 피워 생긴 다 큰 아들을 집으로 들이는 남편 때문에 복수를 결심하는 재벌가 사모님 정혜(이요원), 겉보기엔 성공한 교직자이지만 술만 마시면 폭력을 행사하는 남편으로 인해 고통스런 삶을 살아가는 미숙(명세빈), 그리고 소중한 아들을 위해 무릎 따위는 천 번이고 꿇을 수 있다는 생선가게를 하며 살아가는 도희(라미란). 이들이 모여 꿈꾸는 세상에 대한 복수라니. 

바람, 폭행, 갑질이라는 복수하고픈 마음을 불러일으키는 공분의 요소들을 저마다 가진 캐릭터들이 ‘복수’라는 하나의 키워드로 연대하는 이야기에서 주목되는 건 복수의 통쾌함만이 아니다. 서로 복수를 해주기 위해 서로를 잘 알아야 한다는 대전제는 사는 환경도 다르고, 빈부의 격차도 큰 이 여성들을 끈끈한 자매애로 묶어놓는다. 

생선가게를 하는 엄마를 뒀다는 이유만으로 “비린내 난다”며 왕따를 당하는 도희의 아들 희수(최규진)가 폭행사건에 연루되어 억울하게 가해자가 되어 터무니없는 합의금을 줘야할 처지에 몰린 도희. 그녀가 정혜와 미숙의 도움으로 문제를 해결하고 벌이는 파티는 금세 이들 사이에 놓은 삶의 환경과 빈부 차이 같은 장벽을 허물어뜨린다. 도희의 집에서 소맥을 마시며 “언니”라고 그녀를 언니라고 부르며 귀여운 주정을 부리는 정혜와 그녀가 “진짜 언니 같다”고 말하는 미숙이 보여주는 자매애는 그 관계만으로도 보는 이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면이 있다. 

흥미로운 건 이 이른바 ‘부암동 복수자 소셜 클럽’의 여성들이 처한 문제들이 자식들과도 그대로 연결되어 있다는 점이다. 물론 정혜의 집으로 갑자기 들어온 남편의 숨겨둔 아들인 이수겸(준)은 정혜의 자식은 아니지만 그녀가 처한 남편과의 문제로 얽혀있고, 미숙은 아버지에게 폭력을 당하는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딸이 마음에 걸린다. 그리고 정혜의 아들과 미숙의 딸은 도희의 아들과 같은 학교에서 서로를 알아간다. 부모들의 ‘복수’와 ‘연대’만큼 그 2세들의 관계 또한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과연 <부암동 복수자들>은 지금의 흐름대로 일을 내고야 말까. 지상파 드라마들과 주중전쟁이 본격화된 현재, 이 드라마의 향배는 그만큼 중요할 수밖에 없다. 새롭게 tvN이 만들어낸 주중 9시 반 드라마 시간대라는 새로운 시간이 형성되게 되면 지상파는 긴장할 수밖에 없어서다. 지금으로서는 이 드라마의 파괴력이 만만찮게 보인다.

‘매드독’, 유지태를 기대했는데 우도환이란 괴물 신인이라니

KBS 드라마 맞아? 새로 시작한 KBS 수목드라마 <매드독>을 본 시청자들은 이런 생각을 했을 지도 모르겠다. 보험 범죄를 조사하는 사설 팀 ‘매드독’이라는 지금까지 드라마에서 잘 다뤄지지 않던 독특한 소재인데다 본격 장르물을 기대하게 하는 군더더기 없는 빠른 전개가 시청자들의 눈도장을 찍기에 충분했기 때문이다. 

'매드독(사진출처:KBS)'

<매드독> 첫 회에 등장한 건물 붕괴 사건을 두고 벌어지는 보험 사기극의 이야기는 그 스펙터클한 사건의 스케일도 스케일이지만, 사고 이면에서 고통 받는 희생자들과 그런 건 아랑곳없이 보험금만 챙기려는 부도덕한 건물주를 통해 공감과 공분을 이끌어냈다. 즉 보험 사기를 조사하는 과정을 담고 있지만, 그 안에는 우리 사회의 가진 자들이 휘두르는 횡포 같은 부조리한 현실이 어른거린다. 이것은 <매드독>이 장르물의 묘미를 살리면서도, 동시에 현실적인 문제들을 건드리고 있다는 걸 말해준다. 

마치 <미션 임파서블>의 팀플레이를 보는 듯, 매드독 팀의 리더인 최강우(유지태)의 지휘 아래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박순정(조재윤), 장하리(류화영) 그리고 온누리(김혜성)의 캐릭터도 저마다의 개성이 뚜렷하다. 박순정이라는 캐릭터는 조폭 출신의 간호사라는 독특한 이력을 갖고 있어 이 팀의 행동대장 같은 면면을 보여주고, 장하리는 전직 체조선수 출신 보험 조사원으로 시원시원한 액션과 걸크러시를 보여주는 캐릭터이며, 온누리는 이 팀의 본부에서 컴퓨터로 세상을 내다보고 정보를 수급해 활용하는 인물이다.

팀장인 미친 개 최강우는 사고로 세상을 떠난 아내와 아이에 대한 아픈 기억을 가진 인물로 전체 판세를 읽어내는 능력을 가진 캐릭터. 향후 그 사고에 대한 이유나 그로 인해 이런 일을 하게 된 사연 등이 궁금해지는 인물이다. 무엇보다 이 역할을 연기하는 유지태는 오랜만의 지상파드라마 출연이라는 점에서 시작 전부터 기대감을 갖게 한 배우다.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단단한 연기를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첫 회에 유지태만큼 강렬한 인상을 남긴 건 괴물 신인 우도환이다. 그가 연기한 김민준이라는 인물은 종잡을 수 없는 반전을 보여줬다. 처음에는 부도덕한 건물주를 비호하는 일을 하는 평범한 엘리트 정도라 여겨졌지만 최강우와 건물 붕괴 원인을 놓고 대립각을 세우며 만만찮은 인물이라는 걸 드러낸다. 그래서 결국 보험금을 타내지만 그는 그 보험금 전액을 피해자들에게 나눠주는 한편 건물주를 고발해 검거시키는 현대판 로빈 훗의 반전을 보여준다. 

이 인물에 대한 궁금증이 이만큼 높아진 건 그 캐릭터의 독특함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를 연기한 우도환의 유지태와 맞서서도 밀리지 않는 팽팽함 덕분이기도 하다. 실로 신인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연기가 아닐 수 없다. 향후에도 이 드라마를 보는 재미에 유지태와 함께 우도환은 중요한 중심 축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매드독>이 첫 방만에 시청자들에게 기대감을 갖게 만든 건 KBS 드라마에서 많이 보기 힘들었던 본격 장르물을 선보였다는 점과, 보험 조사라는 독특한 소재의 이야기를 현실적인 문제와 잘 엮어낸다는 점 그리고 무엇보다 이를 개성적인 다양한 인물군을 통한 탄탄한 연기로 보여줬다는 점 때문이다. 특히 우도환이라는 괴물 신인의 탄생은 유지태라는 1년 여 만에 드라마에 복귀한 배우만큼 이 작품을 기대하게 만드는 요인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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