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한 아내’의 완벽한 추락

초반만 해도 시청률은 낮았지만 호평을 듣던 드라마였다. 하지만 18회가 끝나고 이제 2회를 남기고 있는 현재, KBS <완벽한 아내>에 대한 시청자들의 반응은 혹평으로 바뀌었다. 시청률도 낮은데다 혹평까지, <완벽한 아내>의 완벽한 추락은 어째서 생겨난 걸까.

'완벽한 아내(사진출처:KBS)'

사실 <완벽한 아내>는 그 기획 자체가 시청률을 가져갈만한 소재라고 보기 어렵다. 단란했던 심재복(고소영)의 가족을 그녀의 남편 구정희(윤상현)의 오랜 스토커였던 이은희(조여정)가 재력으로 파괴하는 파격적인 내용이다. 특히 KBS라는 보편적인 가족 이야기에 더 집중하는 시청층을 가진 채널에서 이런 파격은 주목받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이런 이야기가 의미가 없거나 가치가 없다는 뜻은 아니다. <완벽한 아내>가 보여주려는 건 결국 우리네 평범해 보이는 가정이 광기어린 자본 앞에서 얼마나 무력하게 무너져 내릴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이은희가 스토커였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것을 용인하는 구정희라는 캐릭터는 그래서 시청자들의 공분을 사는 인물이지만, 자본 앞에 때론 무력해지는 우리네 현대인들의 쓸쓸한 자화상을 담고 있는 인물이기도 하다. 

그러니 애초에 시청률은 포기하고 대신 드라마가 가진 실험성의 가치를 끝까지 유지하는 편이 낫지 않았을까. 하지만 <완벽한 아내>는 중반 이후부터 그 낮은 시청률이 부담이 되었던지 막장드라마에서 익숙하게 깔려있던 그 특유의 배경음악을 깔아놓고는 폭주하기 시작한다. 그 폭주의 장본인은 이 드라마의 독특한 긴장감을 초반부터 계속 이어온 이은희라는 사이코다. 

결국 이은희가 정나미(임세미)를 다툼 끝에 죽게 만들면서 이야기는 갑자기 튀기 시작했다. 대신 심재복을 살인범으로 오인하게 만들고, 이은희가 범인이라는 증거가 나오자 그 엄마가 갑자기 자신이 저지른 일이라고 대신 죄를 뒤집어쓴다. 그리고 이은희는 심재복을 납치해 자기 대신 정신병원에 집어넣고 가까스로 탈출한 심재복은 강봉구(성준) 변호사와 함께 함정을 파 이은희를 정신병원에 넣는다. 

살인, 누명, 납치, 감금, 정신병원 같은 자극적인 소재들의 나열 속에서 이야기의 개연성은 휘발되어버린다. 특히 별다른 역할이 보이지 않는 경찰들의 면면은 이런 자극적인 이야기를 위한 상투적 설정으로 다뤄져 전혀 그럴 듯해 보이지 않는다. 또한 정신병원에 감금되고 탈출하는 과정 역시 마찬가지다. 이야기가 너무 이상한 방향으로까지 튀어버리는 바람에 시청자들의 머릿속에는 조심스럽게 막장에 대한 의심이 떠오르게 된다. 

이처럼 이야기가 과하게 흐르자 이전까지만 해도 어느 정도는 이해의 관점으로 바라볼 수 있었던 구정희라는 캐릭터도 흔들리게 된다. 흑화된 인물이지만 그래도 아이의 아빠다. 제 아무리 재력 앞에 눈이 멀었다고 해도 살인을 방조하고 그 살인자의 집안에 아이들을 데려온다는 건 상식적이지가 않다. 특히 이 인물은 아이들을 위해 뭐든 다 하겠다고 선언한 캐릭터가 아닌가. 

물론 <완벽한 아내>가 이러한 전개를 통해 하려는 이야기는 명백하다. 도대체 누가 완벽한 아내인가. 진짜 정신병자는 사람을 죽이고도 버젓이 재력의 호위를 받으며 살아가지만 평범하고 무고한 서민들은 재력에 의해 정신병자로 오인 받아 병원에 갇히는 현실. 그 속에서 누가 바람직한 인물인가는 굳이 얘기하지 않아도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일일 게다. 

하지만 이런 이야기를 하겠다고 마음먹었다면 좀 더 개연성과 인물의 감정 변화에 신경 썼어야 한다. 그런 것들이 전제되지 않은 파격은 시청자들에게는 막장의 자극으로만 여겨질 수 있으니 말이다. 결과적으로 <완벽한 아내>는 시청률에서도 평가에서도 완벽하게 추락한 드라마로 남았다. 적어도 그 실험성의 가치만이라도 끝까지 인정받을 수 있는 그런 길을 뚝심 있게 걸어갈 순 없었던 걸까. 안타까운 일이다.

‘귓속말’이 끄집어낸 숨은 공력의 연기자들

저 배우가 <낭만닥터 김사부>의 그 사람 좋은 미소를 보이던 그 돌담병원 원장이 맞아? 연기자 김홍파의 SBS 월화드라마 <귓속말>에서의 변신은 놀라웠다. 돌담병원 원장의 이미지가 기억이 안날 정도로 <귓속말>에서 그가 연기한 보국산업 강유택 회장의 그 강렬함은 시청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기에 충분했다. 실제 우리가 기억하는 대기업 총수 중 누군가를 떠올리게 할 정도였으니. 

'귓속말(사진출처:SBS)'

건들건들 대며 걷는 모습이나 로펌 태백의 최일환(김갑수) 대표와 각을 세울 때 빙글빙글 비웃음을 치며 눈에는 살기가 가득한 모습은 팽팽한 긴장감을 만들어냈다. <귓속말>의 치고 박는 복마전을 흥미롭게 만든 건 다름 아닌 이 강유택 회장과 최일환 대표라는 결코 밀리지 않을 것 같은 대립구도에서 비롯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연기 베테랑으로 정평이 나있는 김갑수와 마주 서도 전혀 밀리지 않는 존재감이라니.

<귓속말>이 끝없이 상황이 바뀌고 어제의 적이 오늘의 동지가 되는 이전투구의 상황들을 그려내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드라마가 안정감을 갖는 이유는 바로 김홍파 같은 연기자가 다수 포진해 있기 때문이다. 권율 역시 그런 연기자들 중 한 명이다. 물론 <싸우자 귀신아>에서도 의외로 섬뜩한 캐릭터 연기를 잘 소화해낸 그였지만 <귓속말>에서는 강유택의 아들 강정일 변호사 역할로 과거의 부드러운 이미지가 떠오르지 않을 정도의 연기를 보여주고 있다.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것 같은 차가운 얼굴은, 창백한 낯빛과 무표정으로 ‘악마의 형상’ 같은 캐릭터 이미지를 만들어냈다. 최일환과 강유택의 대립구도가 위에서 조종하는 권력다툼이라면 이동준(이상윤)과 강정일의 대립구도는 그 밑에서 직접 실행을 통해 부딪치는 존재들이다. 여기서 악역으로서의 권율이 만들어내는 긴장감은 드라마에 중요한 힘으로 작용한다. 

김홍파와 권율이 그래도 과거 작품들을 통해 어느 정도 연기 공력을 감지할 수 있었던 배우라면 <귓속말>에서 스폰서 검사로 낙인찍혀 검사복을 벗어 최일환의 비서가 되었지만 그 사건이 결국 최일환의 사주에 의해 벌어진 일이라는 걸 알고는 분노하는 송태곤 역할의 김형묵이라는 배우는 갑자기 시청자들 앞에 나타난 ‘미친 존재감’이다. 물론 목소리를 들으면 수긍할 수 있을 정도로 뮤지컬배우로서 김형묵은 잘 알려져 있지만 배우로서는 그리 알려지지 않았던 게 사실. 최일환과 강유택 회장 사이에서 갈등하는 송태곤이라는 캐릭터를 통해 그는 시청자들의 눈도장을 확실히 찍었다. 

드라마의 힘은 악역이 만들어낸다고 했던가. 그런 점에서 보면 <귓속말>이 발견해낸 김홍파, 권율, 김형묵은 이 드라마가 끝없이 요동치게 하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 어찌 보면 주인공들보다 더 강렬한 존재감이 이들에게서 느껴지는 건 그 캐릭터가 가진 매력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들의 만만찮은 연기 공력도 한 몫을 하고 있다고 여겨진다. 향후 이들이 보일 연기의 행보가 벌써부터 기대될 만큼.

흑인비하 논란이 촉발한 웃음의 타자 민감성 

그 때는 그냥 넘어갔던 문제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은 그럴 수 없다. 최근 <웃찾사>의 홍현희가 한 흑인 분장 개그에 대한 설전과 논란은 웃음에 대한 대중들의 달라진 인식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웃찾사(사진출처:SBS)'

인종을 놀리는 일이 전혀 웃기는 일이 아니며 한심한 일이라고 공개적으로 지적한 샘 해밍턴의 문제제기는 즉각적인 대중들의 반응을 일으켰다. 사실 그 개그를 보며 어딘가 마음 한 구석에 불편한 느낌을 가졌던 시청자들이 의외로 많았다는 것. 그럼에도 누군가 문제제기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냥 지나쳤던 것을 끄집어냄으로써, 그것이 사실은 과거에도 그리고 버젓이 아무렇지도 않게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는 것이 잘못된 것이라는 걸 환기시켰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웃찾사> 측은 즉시 사과하고 해당 영상 삭제조치까지 했다. 즉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했다는 뜻이다. 하지만 이 문제는 이것이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는 걸 암시한다. 샘 해밍턴의 공개적인 비판에 황현희가 나서 그 지적에 대한 불편함을 드러낸 건 이 문제가 향후 개그 전체에 미칠 파급효과를 예고하는 일이었다.

황현희의 인식은 여전히 과거 같은 사안도 문제가 되지 않았던 시절에 머물러 있다. 그는 샘 해밍턴의 비판이 “단순히 분장한 모습을 흑인비하로 몰아가는” 것으로 생각했고, 그것이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라고 했다. 그리고 이런 관점으로 보면 우리가 지금껏 즐겨왔던 영구, 맹구 같은 캐릭터들 역시 “자폐아들에 대한 비하”로 해석될 수 있다는 걸 스스로 밝혔다. 

“시커먼스라는 오랫동안 사랑받았던 개그”가 있었으며 그것 역시 “흑인비하”인 것인가 하고 되물었고 나아가 샘 해밍턴이 출연하고 있는 <슈퍼맨이 돌아왔다> 역시 여유롭지 못하는 부모들에게 “상대적 박탈감을 주는 프로그램”으로 해석될 수 있다고까지 말했다. 물론 황현희가 이렇게까지 이야기한 건 그것이 문제가 되지 않는 것이라는 걸 강변하기 위함이다. 

하지만 이 이야기 속에는 황현희 역시 이렇게 개그나 예능 프로그램에서 과거에는 문제가 되지 않은 것처럼 치부되었지만(물론 시커먼스는 과거에도 문제로 지적되었지만) 지금은 문제의 소지가 있을 수 있다는 걸 스스로도 어느 정도는 느끼고 있다는 뉘앙스가 담겨있다. 

실제로 황현희의 말대로 과거 개그프로그램들에서는 당연한 것처럼 외모 비하 개그나 가학성이 짙은 개그 때로는 집단 괴롭힘이 깔려있는 개그 같은 것들이 “웃음을 준다”는 대전제 아래 용인되곤 했다. 물론 그럴 때마다 비판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그래도 넘어가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이번 논란이 드러낸 건 웃음에 있어서도 타인을 비하하거나 그 고통을 희화화하는 방식은 더 이상 웃음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이다. 비록 그 희화화의 대상이 소수이고 그걸 보고 웃는 사람들이 다수라고 해도 그 소수의 고통에 대한 공감의식이 다수에게도 똑같이 느껴질 때 그것은 더 이상 웃음이 될 수 없다.

과거에는 아무 문제가 안됐는데 왜 지금은 문제가 되느냐고 묻는다면 이렇게 답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과거에도 또 지금도 문제라는 것. 다만 과거에는 그것을 문제로 공감하지 못했다면 지금은 많은 이들이 문제로 받아들이는 것이 달라졌을 뿐이다. 

<전국노래자랑>에서 진행도중 불거진 송해의 아동 성추행 논란 역시 이 연장선이다. 과거에는 동네 할아버지들이 아이들의 고추를 만지는 일이 실제로 그저 장난처럼 치부되었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그런 행위에 대한 우리들의 인식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이제 이 사안은 지금까지 해오던 많은 개그들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타자에 대한 훨씬 민감한 시선을 개그, 나아가 예능 프로그램에도 요구하게 될 것이라는 것. 과거에는 웃음을 준다는 대전제 하에 용인됐던 많은 문젯거리들이 이제는 그 문제들 때문에 더 이상 웃을 수 없다는 대중들의 의식 있는 반발에 직면하게 됐다.

출생의 비밀 시대는 갔어도, 관계의 비밀은 계속

도대체 저 관계는 본래 무엇이었을까. OCN 주말드라마 <터널>에서 스릴러만큼 관심을 집중시키는 건 박광호(최진혁)와 그를 둘러싼 인물들 간의 관계다. 30년 시간의 터널을 통과해 현재로 온 박광호는 제일 먼저 과거 화양경찰서의 막내였던 전성식(조희봉)을 만난다. 현재 팀장인 전성식이 새로 온 막내 박광호가 과거 자신이 존경해왔던 선임이었다는 걸 알게 되는 과정은 흥미로우면서 동시에 따뜻한 웃음을 짓게 만든 이야기였다. 

'터널(사진출처:OCN)'

하지만 관계의 비밀은 거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박광호와 파트너가 된 김선재(윤현민)가 과거 자신이 뒤쫓던 연쇄살인범에 의해 무참히 살해된 여인의 아들이라는 사실이 밝혀지고, 또 범죄심리학자인 신재이(이유영)가 바로 박광호의 아내가 남긴 딸이라는 사실이 밝혀진다. 연쇄살인범 정호영(허성태)에 의해 살해될 위기에 처했을 때 신재이가 분 호각으로 박광호는 그녀가 자신의 딸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 장면은 아마 부녀지간이라는 설정이 아니었다면 이만큼 극적인 상황으로 연출되긴 어려웠을 게다. 

과거 이른바 막장드라마의 공식으로 ‘출생의 비밀’ 코드가 전가의 보도처럼 사용되었던 건 핏줄이라는 관계로 얽혀져 다시 만나는 당사자들의 상황이 그만큼 극적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타임리프나 전생, 판타지가 접목된 장르물들은 이 ‘출생의 비밀’ 코드는 세련되게 변주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바로 ‘관계의 비밀’이다. 

종영한 드라마 tvN <쓸쓸하고 찬란하신 도깨비>는 현재의 도깨비 김신(공유)과 저승사자(이동욱)의 브로맨스 관계가 과거에는 연원관계였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극적 갈등을 만들었다. 저승사자가 현재 사랑에 빠진 써니(유인나)가 과거 그가 죽게 한 왕비였고 바로 김신의 여동생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지며 갈등이 전개됐던 것. 전생과 후생 사이에 놓여진 차단막을 활용함으로써 이 드라마는 그 관계의 비밀을 통한 극적 전개를 추구했다.

현재 방영되고 있는 tvN <시카고 타자기> 역시 이 관계의 비밀 코드를 활용한다. 베스트셀러 작가 한세주(유아인)와 그에게 나타난 유령작가 유진오(고경표) 그리고 뮤즈 전설(임수정)의 관계는 일제강점기 경성을 배경으로 한 그들의 관계들이 병치되면서 도대체 그 정체가 무엇인가에 대한 궁금증을 만든다. 어떤 이유에 의해 유진오가 환생하지 못하고 타자기의 유령으로 빙의되어 살아가게 된 사실은 일제강점기 이들의 관계에 대한 호기심으로 이어지는 것. 

타임리프, 전생, 판타지를 동원한 이들 작품들은 모두 시간의 장벽을 훌쩍 뛰어넘는 이야기라는 점에서 이러한 ‘관계의 비밀’ 코드가 제대로 작동하게 된다. 물론 그 기저에 있는 건 우리가 현재 만나는 모든 관계들이 그저 우연적인 것이 아니라 전생이든 과거이든 어떤 인연의 고리에 의해 연결되어 있다는 ‘연기설’이다. 

이 ‘관계의 비밀’ 코드는 저 ‘출생의 비밀’처럼 활용될 수 있다는 점에서 장르물에 익숙하지 않은 시청자들까지 끌어들일 수 있는 장치가 되어준다. 또한 ‘출생의 비밀’ 코드처럼 자극을 위한 자극으로만 흘러가지 않고 장르물의 이야기 전개에 일종의 양념 역할을 해준다는 점에서 특별하다. ‘관계의 비밀’은 한때 가족주의 시대에 가족에 집착하며 만들어진 ‘출생의 비밀’ 코드를 가족 바깥으로까지 확장해낸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우리에게 특히 어떤 이유에 의해 ‘헤어졌던 이들이 다시 만나는 이야기’는 강렬하다. 그것은 어쩌면 우리가 ‘이산’의 경험을 뿌리 깊게 간직하고 있기 때문일 수도 있고, 무엇보다 가족주의에 특히 집착하며 살아왔던 탓일 수도 있다. 어쨌든 ‘출생의 비밀’ 시대는 지나갔지만 ‘관계의 비밀’이라는 새로운 코드로 그 힘은 여전히 장르물 속으로까지 파고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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