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에서 찾은 안창호, 역시 <무도> 역사 특집은 옳다

 

LA에 있는 도산 안창호 선생의 독립운동 행적들. 아마도 많은 이들이 몰랐을 게다. LA라고 하면 할리우드를 먼저 떠올리고 산타모니카 해변을 떠올리는 게 다반사가 아닌가. MBC <무한도전>1일 관광이라며 코리아타운 투어를 할 때 이게 뭐냐며 투덜대던 멤버들은 도산 안창호라는 이름이 갑자기 나오자 숙연해졌고 부끄러워졌다.

 

'무한도전(사진출처:MBC)'

할리우드의 한인 배우로서 안필립을 찾고, 그가 도산 안창호의 장남이라는 사실을 듣고 난 유재석은 부끄러움과 죄송함에 어쩔 줄을 몰라 했다. 그들이 무심코 지나쳤던 코리아타운 인터체인지, 남가주대학교, 한인회관, 우체국, 할리우드 명예의 거리 곳곳에 사실은 도산 안창호 선생을 기리는 흔적들이 남아 있었던 것. 유재석은 거듭 저희가 너무 무지하다며 부끄럽고 죄송한 마음을 전했다.

 

멤버들이 찾아간 대한인국민회에서 만난 도산 안창호 선생의 막내아들 안필영씨는 우리가 잘 몰랐던 도산 선생의 미국에서의 행적들을 들려주었다. 사실상 미국 내 한인사회의 기틀을 마련한 것이나 다름없는 일들을 했다는 것. 오렌지를 따고 사탕수수밭에서 일을 해 번 돈의 반을 떼어 독립운동 자금으로 냈던 당시 미국의 작은 한인회가 조국과 동포를 위해 싸웠던 사실을 기억해달라고 그는 말했다.

 

안창호의 장녀 안수산의 아들이자 안창호의 외손자인 필립 안 커디의 초청을 받아 그 집을 방문한 <무한도전> 멤버들은 마치 하나의 역사박물관에 들어온 듯 소중히 간직된 도산 안창호 선생과 이름 없는 여성 독립운동가로 불렸던 안수산 여사의 이야기를 들었다. 도산 선생의 아내인 이혜련 여사가 직접 재봉틀을 돌려 만들었다는 흥사단기와 커다란 태극기는 보는 이들을 숙연하게 만들었다. 또 독립을 위해 전 세계 120여 개 도시를 찾아다닐 때 도산 선생이 갖고다녔던 낡은 가방은 마치 고행 같은 그의 삶의 흔적처럼 남아 있었다.

 

그는 양반이 아니었다. 가난한 농부였고 아버지도 없었다. 조국을 사랑하는 마음이 그를 훌륭한 사람으로 만들었다.” 양반에 호의호식하던 친일파들이 나라를 버리고, 나아가 조선은 미래가 없다는 식의 이야기를 흘릴 때조차 양반도 아니고 가난한 농부였던 그가 깨치고 나와 독립을 외쳤다는 사실에 <무한도전> 멤버들은 새삼 숙연해지는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어째서 이런 중대한 역사적 사실들은 잘 알려져 있지 않은 걸까. LA에 그런 도산 선생의 흔적들이 남아 있다는 것도 새롭지만, 하다못해 도산공원 안에 도산 선생의 박물관이 있다는 것도 새롭게 느끼는 우리들이 아닌가. 우리네 역사 교육이 잘못돼도 한참 잘못됐다는 걸 이번 <무한도전>의 역사 특집을 통해 다시금 확인할 수 있었다.

 

아이돌들의 역사에 대한 무지와 역사의식 부재가 자주 논란이 되고 있지만 그것이 어디 그들만의 일일까. 유재석이 너무 무지했다며 고개 숙여 사죄하는 모습은 우리 자신들 역시 되돌아보게 만든다. 지난 배달의 무도특집에서 재조명된 우토로 마을과 하시마섬의 이야기가 우리를 고개 숙이게 만들었던 것처럼, 이번 LA에서의 도산 선생의 이야기는 너무나 새롭게 다가와 우리를 부끄럽게 만들었다

<청춘시대>가 건네는 위로, “살아라

 

내가 아저씨 딸을 죽였어... 그래서 나도 죽일 거야?” 강이나(류화영)는 오종규(최덕문) 아저씨를 찾아가 그렇게 말한다. 사고로 강물에 빠진 강이나가 오종규의 딸과 서로 가방을 붙잡으려 사투를 벌이다 결국 강이나가 살아남게 된 것. 그 깊은 강물 속에 드리워진 죽음의 기억은 강이나의 청춘에 아픈 생채기를 남긴다. 미래에 대한 계획 따위는 세우지 않고 마치 내일 죽을 것처럼 막 사는 것. 그건 사고의 트라우마로 인한 죄책감이 기저에 깔려 있었다.

 

'청춘시대(사진출처:JTBC)'

오종규를 찾아가 그 트라우마와 마주 선 강이나는 그제서야 자신의 죽을 것처럼 살아가는 삶이 어딘가 잘못됐다는 걸 깨닫는다. 아무렇지도 않게 잘 살고 있다고 생각했던 그녀의 삶은 사실 여전히 그 강물 속에 멈춰져 있었다. 과거의 자신이 현재의 자신을 붙잡고 있었다. 강이나를 찾아온 오종규에게 그녀는 묻고 싶어진다. 자신이 아니라 그의 딸이 살아남았다면 어떤 이야기를 해주고 싶은지. 오종규는 살으라고말하고 싶다고 한다. “죄책감 같은 거 갖지 말고, 살아남은 것에 부끄러워하지도 말고, 그냥 살라고. 살아가라고.”

 

사실 <청춘시대>에서 강이나라는 캐릭터나 그녀가 겪은 강에서의 사고는 어딘지 잘 어울리지 않아 보였다. 벨 에포크라는 셰어하우스에 살아가는 다섯 명의 청춘들이지만, 강이나만 대학생이 아니다. 게다가 그녀는 스스로 남자들의 스폰서를 받는 쉬운(?) 삶을 선택했다고 말하는 인물이다. 일과 사랑 사이에서 처절한 삶을 살아가는 다른 청춘들과는 사뭇 다르다. 그래서 그 바깥에 나와 있는 그녀가 나머지 네 명의 청춘들이 겪는 일과 사랑의 고충을 속 시원히 해결해주는 사이다 같은 역할을 하기는 하지만.

 

그런데 강이나와 오종규의 이야기는 그녀가 왜 <청춘시대>의 한 편을 차지하고 있는가를 명확히 드러내준다. 살아남을 것을 죄로 느끼며 살아가는 강이나에게 그건 죄가 아니라고 말해주는 대목은 사실 지금의 청춘들에게 깊은 울림을 주기에 충분하기 때문이다. 한 개의 가방에 매달려 살아남기 위해 누군가를 떨쳐내야 하는 상황. 이 강이나가 겪은 트라우마는 지금의 청춘들이 처한 상황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누군가 살기 위해서는 누군가를 죽여야 하는 잔혹한 현실이 거기에는 어른거린다.

 

이런 관점으로 보면 이 드라마에서 가장 잔혹한 현실을 살고 있는 윤진명(한예리)과 강이나라는 청춘의 공유점이 엿보인다. 윤진명 역시 살아남은 청춘이다. 동생은 식물인간으로 죽지 못해 살아있고, 빚더미에 기울어버린 가세는 그녀가 알바에서 알바로 뛰어다니며 연애 따위는 사치로 여길 만큼 자신에게 혹독하게 만들었다. 심지어 다가오는 사람을 밀어내고 나 좋아하지 마요라고 말하는 그녀는 마치 죄인 같다.

 

생존, 견딤, 죄책감 같은 단어들이 <청춘시대>의 청춘들에게는 어른거린다. 물론 청춘의 풋풋함을 살아가는 은재(박혜수) 같은 인물도 있지만 그녀 역시 어딘가 집안 문제에 비밀스런 아픔 같은 것이 숨겨져 있다. 예은(한승연)은 도저히 헤어질 수 없을 것만 같던 남자친구와 헤어진 후 아무렇지도 않은 듯 더 밝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이지만 사실은 그 아픔을 온몸으로 버텨내는 중이다.

 

이들은 모두가 아프다. 하지만 그 아픔은 그들이 자초한 일들이 아니다. 어쩔 수 없는 냉혹한 현실이 만들어낸 것이고, 그래서 어떻게든 살아내기 위해 버텨내고는 있지만 그게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극단적으로는 마치 죄라도 지은 것처럼 스스로를 몰아세우며 살아가지만, 그건 알고 보면 그들의 죄가 아니다. 살아남은 게, 아니 그저 살아가는 게 어떻게 죄가 된단 말인가.

 

<청춘시대>는 그래서 아프니까 청춘같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아픈 건 청춘의 본질이 아니라 누군가 그들을 그런 상황으로 몰아넣었기 때문에 아픈 것이다. 강이나에게 살라고말해주는 오종규의 한 마디는 그래서 깊은 감동을 준다. 그는 강이나와 사투를 벌여 죽은 딸로 인해 고통을 겪었지만 어느새 강이나를 딸처럼 이해하고 다독이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혹독한 현실을 만들어낸 이들은 저 편에 숨겨져 있고 대신 피해자들이 서로를 끌어안는 모습은 안타깝기 그지없지만.

<삼시세끼>, 심심해보여도 편안함을 얻는 방법

 

이번 tvN <삼시세끼> 고창편에는 왜 게스트가 없을까. 마지막회까지 촬영을 마친 나영석 PD는 끝까지 게스트는 없다고 아예 못을 박았다. 그는 이번 편에 출연한 차승원, 유해진, 손호준, 남주혁의 인물 구성이 게스트를 요구하지 않는다고까지 말했다. 게스트를 집어넣으려 해도 빈 구석이 있어야 그 효과가 나기 마련인데, 그런 여지가 없이 케미가 잘 맞는다는 것.

 

'삼시세끼(사진출처:tvN)'

나영석 PD의 말대로다. 차승원과 유해진은 만재도편에서 지금껏 이어오며 이제는 좀 오래되어 서로가 익숙한 부부 같은 느낌마저 준다. 유해진이 있어야 차승원의 아재 개그가 툭툭 터져 나오고, 차승원이 뭔가를 하려고 하면 이제 그거 하려고?”하고 묻는 유해진의 이심전심이 그렇다. 유해진이 뭔가 먹고 싶다고 툭 던진 이야기는 차승원의 손에 의해 요리가 되고, 부족하다 싶은 건 유해진의 맥가이버 같은 손이 척척 만들어낸다.

 

손호준은 이제 차승원과 유해진이 뭐라 하지 않아도 뭘 필요로 하는 지 알 정도로 <삼시세끼>라는 상황과 관계에 익숙한 존재가 됐다. 거꾸로 차승원이 손호준이 없으면 난 안돼 라고 말할 정도다. 새로 들어온 남주혁은 손호준의 동생으로, 유해진의 아재개그 제자로, 차승원에 의해 초딩 입맛조차 바뀌어지는 존재로 거듭나면서 이 가족 같은 구성원의 마침표를 찍었다. 이러니 빈틈이 있을 리가.

 

하지만 이렇게 익숙해진 관계는 또한 심심해지기마련이다. 긴장감이 없고 뭐든 척척 케미가 맞아 돌아가니 새로운 이야기가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삼시세끼> 고창편에서 새롭게 느껴지는 건 그래서 손오리나 유해진의 반려견인 겨울이가 만들어내는 이야기들이다. 오리들의 성장담과 오리들과 가깝게 지내고픈 겨울이와 그 겨울이를 피해 도망 다니는 오리들의 이야기들 같은 것이 새삼 새롭게 느껴진다.

 

관계의 재미는 요리부와 설비부로 나뉘어진 차승원-손호준과 유해진-남주혁의 밀고 당기는 약간의 대결구도 정도에서 나온다. 두 팀이 새롭게 푹 빠져버린 내기 탁구대결이나, 요리부끼리 또 설비부끼리 상대방을 비하하며 자신들이 훨씬 낫다고 주장하는 이야기들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이러한 관계의 재미도 반복적인 재미를 줄 수는 없다. 그래서 이들의 탁구대결은 그 디테일한 재미 속으로 빠뜨리지 못하고 그저 편집되어 결과만 알려주고 지나간다.

 

요컨대 <삼시세끼> 고창편은 이제 출연자들도 익숙해졌고 그걸 바라보는 시청자들도 익숙해졌다는 것이다. 그래서 심심하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건 당연하다. 실제로 수치적으로 봐도 11%대까지 올랐던 시청률이 계속 떨어져 8%대까지 내려온 건 여전히 매력적이지만 보편적으로는 시청자들의 유인을 만들지 못하고 있다는 반증이다.

 

이럴 경우 응당 나오는 것이 게스트 출연이지만 나영석 PD는 이를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그건 아마도 게스트가 들어왔을 때 지금의 <삼시세끼> 고창편이 주는 그 편안함이나 따뜻함 같은 것들이 조금은 흐트러질 수 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게스트는 일종의 자극제 역할을 하고 그래서 출연자들이 무언가를 자꾸 하게 만들지만, 이번 <삼시세끼> 고창편은 아예 편안하고 자연스러운 쪽을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사상 유례가 없는 무더위 탓인지 우리는 누군가를 새로이 만나는 일조차 이제는 버거워하는 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오히려 새로운 관계들을 굳이 만들어내는 게스트의 필요성보다, 조금 심심해도 편안해지고픈 욕망을 더 느끼는 지도. 정말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아무도 만나지 않고 <삼시세끼>나 하며 지내고픈 그런 여름이 아닌가.

시청률 따위론 평가할 수 없는 <원티드>의 가치

 

드라마는 적당한 멜로에 코미디를 섞고 때로는 자극적인 설정을 반복해 시청률을 가져가면 그만이다? 아마도 이렇게 대놓고 이야기하는 제작자는 없을 게다. 하지만 막상 방영되고 있는 드라마들을 보다보면 실제로 시청률만을 목적으로 하고 있는 드라마가 의외로 많고 그래서 주제의식 따위는 잘 보이지도 않고 또 추구하지도 않는 드라마들이 마치 공해처럼 방영되고 있는 현실을 발견하기도 한다.

 

'원티드(사진출처:SBS)'

그런 점에서 종영한 SBS <원티드> 같은 드라마는 대단히 참신하고 의미 있는 시도였다고 평가할 수 있다. 그저 아이를 유괴당한 엄마가 어떻게든 리얼리티쇼를 통해 범인이 요구하는 미션을 수행함으로써 아이를 찾는 그런 이야기인 줄 알았지만, 사실은 방송과 미디어의 선정적인 태도를 비판하고 있었고, 나아가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실적인 문제들, 이를 테면 아동학대나 불법적인 임상 실험, 모방범죄 나아가 우리 사회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가습기 살균제 같은 사안을 이 드라마는 정면으로 끌어들여 날카로운 문제의식을 드러냈다.

 

특히 가습기 살균제로 인한 피해자들의 절규는 우리가 이미 <그것이 알고 싶다> 같은 프로그램을 통해 그 사안의 충격적인 심각성을 절감한 바 있다. 하지만 그 결과가 어떻게 되었던가. 가해자는 분명히 눈앞에 있는데 피해자들만 눈물 흘리고 있는 현실이 아니었던가. <원티드>가 주목되는 건 이러한 현실 문제를 피하지 않고 드라마로 풀어내 시청자들에게 경각심을 만들었다는 점이다.

 

결국 리얼리티쇼는 선정성으로 시작했지만 진정성 있는 정혜인(김아중)의 각성으로 끝을 맺었다. 사안을 알고 있으면서도 무관심했고, 자신의 일에 매몰되어 타인의 아픔을 쳐다보지 않았던 그녀의 진심어린 사과는 어찌 보면 현실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안들이 내 일이 아니라는 이유로 잊고 사는 우리들의 마음을 그대로 담아낸 것이기도 했다.

 

게다가 <원티드>는 문제의식을 단순한 판타지 결말로 마무리하지 않았다. 그것이 현실을 호도하는 일이 될 수 있기 때문이었을 게다. 가해자들은 여전히 법적인 무죄를 주장하고 아무런 사과도 없는 현실이 아닌가. 그러니 드라마가 나서 섣부르게 그들을 단죄하는 모습을 담아낸다는 건 실제 피해자들에게는 더 큰 아픔이 될 수도 있는 일이다.

 

드라마는 과연 현실에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적당한 판타지에 빠뜨려 잠시 현실을 지워버리는 마취적이고 도취적인 어떤 것만이 과연 드라마의 역할일까. 때로는 현실 문제에 과감히 뛰어들어 그 문제를 각성시키는 것도 드라마의 또 다른 기능이 아닐까. 그저 시청률 따위만 추구하는 드라마들과는 비교할 수 없는 가치. <원티드>는 그 가치를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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