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가 키워낸 송중기, 소년 얼굴의 상남자

 

군 제대 후 바로 찍은 드라마라서 그럴까. 아니면 군 생활을 통해 갖게 된 새로운 면모일까. KBS <태양의 후예>의 송중기는 확실히 다른 느낌을 준다. 물론 2011년 찍었던 <뿌리 깊은 나무>에서 이도 역할로 의외의 강단을 보여줬던 그다. 2012<세상 어디에도 없는 착한 남자>에서도 웃는 얼굴 뒤로 쓸쓸함을 느끼게 해줬던 그였다. 하지만 <태양의 후예>의 송중기에게서는 강한 남자가 갖는 여유 같은 것이 느껴진다.

 


'태양의 후예(사진출처:KBS)'

이미 <성균관 스캔들>에서부터 꽃미남이라 불렸던 그 소년의 얼굴은 여전하지만 아마도 군대에서 만들어졌을 그의 몸은 군살 하나 보이지 않는 상남자의 그것이다. 칼 하나를 들고 북한 군과 대치해 싸우는 장면이나, 맨 몸으로 덩치가 두 배는 되어 보이는 미군과 맞붙는 장면에서는 그의 거친 면모가 도드라진다. 웃을 땐 소년 같은 얼굴이지만 자못 진지해지는 대목에서는 남자의 진중함이 묻어난다. 소년 얼굴의 상남자. <태양의 후예>가 송중기를 통해 그리려고 하는 유시진이라는 군인 캐릭터에 딱이다.

 

멜로드라마에서 남자 캐릭터는 절대적이다. 그 캐릭터의 면면은 그래서 당대의 이상적인 남성상을 지향할 수밖에 없다. <태양의 후예>가 유시진이라는 캐릭터를 통해 제시하는 이상적인 남성상은 늘 상처 입고 피를 흘리며 일터(?)에서 전쟁을 치르는 남자지만 여자 앞에서는 그토록 부드러울 수 없는 그런 남자다. 오랜만에 만난 여자가 내 생각 많이 했어요?”라고 묻자, “많이 했죠. 남자답게.”라고 말하는 그런 남자.

 

하지만 군인이라는 직업은 갑자기 걸려온 출동 명령 전화 하나로도 그를 굳게 만들어버린다. 영화를 보러 왔다가 전화 한 통에 먼저 영화관을 나서는 유시진은 그래서 결코 다가서기 쉽지 않은 인물이다. 여기에 강모연(송혜교)이 의사라는 점은 군인 유시진과 직업적으로 부딪치는 면을 만들어낸다. 그녀는 죽어가는 사람을 살리는 일이 직업이다. 하지만 유시진은 무고한 사람들을 지켜내기 위해 누군가를 죽일 수도 있는 직업을 갖고 있다. 의사로서 생명은 누구에게 존엄하고 지켜져야 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강모연이 유시진에게 이별을 통보하는 이유다.

 

그렇지만 유시진과 강모연이 다시 우르크에서 만나게 되면서 이 군인과 의사라는 직업의식은 그들 사이에 벌어질 화학작용으로 흔들릴 수밖에 없게 되었다. 명령에 복종하는 것을 가장 중요한 일로 생각하는 군인으로서의 유시진의 행보는 모든 생명을 중요하게 여기는 의사로서의 강모연과 부딪치겠지만 그러면서 서로가 지켜주고 치료해주는 관계로 발전해갈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다시 중요해지는 것이 유시진이라는 캐릭터다. 사실상 우르크라는 거친 분쟁 지역은 유지진이라는 캐릭터를 공간화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 멜로드라마는 그래서 거친 남자들의 전쟁 같은 삶 속에서 그 반대급부로 피어나는 강렬한 사랑의 감정을 다루고 있다. 유시진이 전쟁과 사랑을 모두 껴안는 이미지를 가져야 하는 이유다.

 

그 거침과 부드러움을 모두 겸비한 존재로서 송중기는 확실히 독보적이다. 과거의 그 꽃미남의 얼굴이 이제는 상처가 나도 잘 어울리는 단단함을 갖게 됐으니 금상첨화다. <태양의 후예>는 이 송중기가 가진 미소년과 상남자의 면면이 가진 힘만으로도 충분히 몰입하게 만드는 드라마가 되고 있다

툭하면 불거져 나오는 일베 논란, 근데 왜 하필 지금일까

 

이것은 유명세일까. tvN <응답하라1988>로 스타덤에 오른 류준열에 갑자기 일베 논란이 벌어졌다. 그가 예전에 SNS에 올린 절벽 사진과 두부운운하는 글귀가 화근이 됐다. 이 사진과 글귀의 조합이 그가 일베라는 증거라는 주장이 나왔고 그것은 인터넷을 타고 일파만파 커져가며 마치 기정사실인 양 유포되었다.

 


'응답하라1988(사진출처:tvN)'

류준열의 소속사인 씨제스 엔터테인먼트측은 공식 보도 자료를 통해 이 주장이 사실 무근이며 나아가 억측에 달라붙는 추측성 댓글과 게시물에 대해서도 단호히 대처할 것이라고 밝혔다. 류준열 본인도 직접 나서 저는 일베가 아닙니다라고 얘기했고 자신이 올렸던 사진과 글귀에 대해서도 적극적으로 해명했다.

 

물론 이러한 해명이 모든 걸 말끔하게 지워버릴 수는 없다. 우리는 이미 인터넷을 통해 벌어지는 무수한 논란들과 그에 대한 해명이 그 자체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는 걸 경험적으로 알고 있다. 류준열 당사자의 해명은 당연하게 나올 수밖에 없는 일이지만 거기에 대한 대중들의 반응이 모두 그를 지지하는 쪽으로 바뀔 수는 없는 일이다.

 

사실 이런 일은 애초에 이런 문제의 소지를 만들지 않는 것이 상책이다. 하지만 어쨌든 안타깝게도 류준열은 최고로 뜨거운 위치에 서게 된 상황에서(아마도 그렇기 때문에) 그 의미 없이 올린 사진과 글귀가 뜨거운 논란으로 변하는 소셜포비아에 직면하게 됐다.

 

연예인들의 일베 논란은 의외로 뜨겁다. 일베에 대한 대중들의 혐오감이 워낙 크기 때문이다. 그러니 대중들의 지지를 기반으로 살아가는 연예인들에게 일베라는 단어가 겹쳐지는 건 엄청난 파장을 만들어낸다. 물론 연예인의 일베 논란이 충격적으로 다가오기는 하지만 그 진위도 알 수 없고 증거로 내세운 것도 너무 조악한 이 상황에 이토록 대중들의 시선이 집중되어 있다는 건 어딘지 소모적인 느낌을 주는 것도 사실이다.

 

왜 하필 지금 류준열의 일베 논란인가. 이렇게 질문을 던져보면 이 논란으로 가려진 다른 더 중요한 사안들이 우리들 앞에 놓여져 있다는 걸 발견하게 된다. 사실 그토록 많은 연예 가십을 이용한 사안 덮기의 음모론 역시 그 진위를 알기는 어렵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보면 실제로 공교롭게도 그 시기에 갑자기 터져 나온 연예계 논란이 당대의 중대 사안들을 덮어버린 사례를 우리는 심심찮게 발견할 수 있다.

 

작년 벌어진 성완종 리스트 파문이나, 이로 인해 지목된 이완구 국무총리의 끝없는 말 바꾸기 논란, 때마침 겹쳐진 세월호 1주기가 쏟아내는 정치권 이슈들 같은 중차대한 정치권 사안들이 나왔을 때, 마침 기다렸다는 듯이 장동민이 과거 인터넷 방송에서 했던 여성비하 발언이 인성 검증 논란으로 이어지고, 여기에 이태임과 예원의 반말 욕설 논란이 벌어지면서 시선이 흩어졌던 것을 떠올려 보라.

 

물론 오비이락일 수 있다. 하지만 어쨌든 결과적으로 연예인 논란이(그것도 확실치도 않은 문제제기로 벌어지는) 당대의 중대 사안들을 덮어버리는 건 안타까운 일이다. 류준열 일베 논란이 시끄러운 가운데 지금 국회 본회의장에서는 테러방지법 본회의 의결을 막기 위한 야당 의원들의 무제한 토론이 이어지고 있다. 갑자기 나온 류준열 일베 논란이 그저 유명세라고? 이런 중대 사안이 연예인 논란으로 가려져 이득을 보는 이들은 과연 누구일까. 생각해볼 문제다.

<태양의 후예>, 바쁜 의사와 빡센 군인의 로맨스로 펄펄

 

의사면 남친 없겠네요. 바빠서.” “군인이면 여친 없겠네요. 빡세서.” KBS 새 수목드라마 <태양의 후예> 첫 방송은 김은숙 작가의 작품답게 거침이 없었다. 첫 회에 유시진(송중기)과 강모연(송혜교)이 만나고 가까워지는 과정이 물 흐르듯 빠르게 전개되었고 또한 서대영(진구)과 윤명주(김지원)의 계급이 다른 군인들 간의 관계는 향후 전개될 두 사람의 이야기에 궁금증을 자아내게 하기에 충분했다.

 


'태양의 후예(사진출처:KBS)'

바쁜 의사와 빡센 군인의 로맨스. 사실 멜로드라마의 가장 큰 약점으로 지목됐던 것이 극성이 약하다는 점이라면 왜 <태양의 후예>가 이 같은 의사와 군인의 로맨스를 다뤘는가가 이해될 법도 한 부분이다. 사극을 빼놓고 보면 현대극에서 가장 극성이 강한 장르가 의학드라마와 전쟁드라마가 아닌가. 물론 최근에는 연쇄살인범이 등장하는 스릴러 장르가 힘을 발휘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멜로드라마가 스릴러를 덧붙이기는 쉽지 않은 일일 것이다. 관계와 갈등이 상처를 넘어서 죽고 사는 문제와 연결되는 직업군으로 의사와 군인만큼 센 극성을 만드는 인물군도 없을 것이다.

 

그러니 이미 첫 회가 충분히 입증한대로 총알이 날아다니고 칼부림이 다반사인 전쟁터가 일터가 된 유시진과 역시 생사가 오가는 응급실이 일터인 강모연의 만남은 강렬할 수밖에 없다. 그저 평범하게 만나서 감정을 나누는 식의 일상적인 멜로드라마가 아니라 전쟁터를 오가는 이들의 멜로드라마다. 갑작스런 긴급 상황에 데이트 약속을 미루고 떠나는 유시진이 강모연에게 병원 건물 옥상에서 헬기를 타고 떠나기 전 다음 데이트 약속을 하는 장면은 이 멜로드라마가 가진 특별한 스케일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마치 슈퍼히어로물에서 지구를 구하러 떠나는 듯한 남자 주인공과 그를 보내는 여자 주인공의 모습을 보여주는 듯한.

 

향후 이 드라마는 우르크라는 총알이 날아다니는 가상의 낯선 땅에서 벌어지는 군인과 의사들의 사랑 이야기를 담을 것이라고 한다. 첫 회 마지막 장면에서 아프가니스탄의 분쟁지구로 날아가는 비행기가 보여주는 것처럼 이 드라마는 그 성격상 스펙터클을 자연스럽게 보여줄 수밖에 없다. 하지만 많은 블록버스터 드라마들이 스펙터클에 치중하다 엄청난 투자비에도 불구하고 실패했던 그 전철을 적어도 이 드라마만큼은 피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것은 전쟁과 사랑이라는 거대한 스케일의 스펙터클 속에서도 김은숙 작가의 확고한 지향점은 결국 사랑과 휴머니즘 같은 사람에 집중하고 있다는 것이 분명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드라마의 블록버스터란 볼거리가 아니라 그 인물과 스토리의 촘촘함에서 나오는 것이란 걸 이 멜로의 대가는 잘 알고 있다. 군인이라는 여성들에게는 조금은 낯선 남성적인 등장인물을 세우면서도 첫 회부터 달달한 로맨스의 설렘을 만들어내는 건 이 작가가 가진 공력을 실감하게 한다.

 

여기에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송중기, 송혜교, 진구, 김지원의 대본을 맛깔스럽게 살려내는 연기다. 군 제대 후 더 남성적인 매력을 보여주는 송중기와 귀여우면서도 당찬 매력의 송혜교, 그리고 진지한 남성의 향기가 느껴지는 진구와 톡톡 쏘는 차가움과 뜨거움을 동시에 갖고 있는 듯한 김지원의 괜찮은 조합이 시청자들의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하다고 여겨진다.

 

케이블 드라마의 성장으로 최근 지상파 드라마들은 그 위기의식이 확실히 높아졌다. 하지만 적어도 <태양의 후예>만큼은 지상파 드라마의 자존심을 제대로 보여줄 것으로 기대된다. 더욱 커진 스케일과 멜로와 액션이 넘나드는 스토리. 그리고 지상파 드라마 시청자들이 좋아하는 요소들을 가져오되 그것을 세련되게 구사하는 대본. 어쩌면 이 드라마는 위기에 빠진 지상파 드라마의 대안을 보여줄 지도 모르겠다.

<귀향> 어째서 모두가 봐야하는 영화일까

 

단 한 장면만으로도 가슴이 먹먹하다. 구덩이에 아무렇지도 않게 버려진 소녀들. 흙투성이의 맨발과 아직 채 마르지도 않은 것만 같은 눈물 자욱. 다른 곳에서 봤다면 그 색색의 한복이 그토록 고울 수 있었을 그녀들이 거기 그렇게 방치되어 있다. 그녀들의 몸은 차갑게 식어버렸지만 직전에 남긴 그녀들의 마지막 목소리들이 귀에 쟁쟁 울리는 듯하다. 그 구덩이는 <귀향>이라는 영화가 애써 재현해내 보여주지 않았더라면 아예 없었던 것이 될 뻔했을 게다. 그것이 또 끔찍하고 먹먹하다.

 


사진출처:영화<귀향>

어찌 보면 그리 대단히 돈이 많이 들 것 같지도 않은 이 영화가 빛을 보기까지 무려 14년이 흘렀다는 사실은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그 앳된 나이에 그 먼 곳까지 끌려가 지옥을 살다 겨우겨우 살아 돌아온 분들은 아마 더 오랜 세월을 기다렸을 것이다. 영화 속에서 그렇게 살아 돌아온 영희(손숙)가 몸은 돌아왔어도 마음은 진정으로 귀향하지 못했다고 하는 그 말 속에 그녀의 고통스런 한 평생이 느껴진다. 그 곳에서 여전히 고향으로 가지 못하고 있는 소녀들을 어이할까. 그것은 영희가 가진 부채감이고 또한 그녀가 우리에게도 전하는 부채감이기도 하다.

 

사실 상업적인 선택이 일반화되어버린 요즘 같은 시대에 꼭 봐야 하는 영화라는 문구는 낯설게 다가온다. 하지만 <귀향>은 꼭 봐야 하는 영화다. 그것은 우리가 봄으로써 기억에 담아질 수 있고, 그 하나하나의 기억들을 통해 사실이 왜곡되거나 묻혀지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영화는 대중오락의 성격을 띤지 오래지만 사실 그 이전에는 기록물로서의 가치가 분명했다. <귀향>은 결코 지워져서는 안될 기록이다. 우리의 기억과 가슴에 새겨둬야 할 기록.

 

물론 그렇다고 <귀향>이 다큐적인 기록에 머무는 영화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귀향>은 극영화로서의 완성도를 갖추고 있는 영화다. 씻김굿의 형태를 띠고 있는 이 영화는 무녀를 등장시켜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고 그 돌아오지 못한 소녀들을 위한 위령제를 올리고 있다. 실상은 훨씬 더 끔찍한 지옥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영화는 그렇게 끌려갔던 소녀들을 극도로 배려하려는 자세를 보인다. 영화는 그래서 상징적인 장면들이 많다. 하지만 그 상징은 위안부의 실상을 이미 알고 있는 우리에게는 그 눈빛과 더럽혀진 발 얼굴에 가득한 멍 자국만으로도 커다란 아픔으로 다가온다.

 

이처럼 과거의 소녀와 현재의 소녀가 무녀를 통해 만나는 과정은 어쩌면 없는 일인 양 단절되어 버린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려는 안간힘처럼 보인다. 처음 위안부문제가 제기되고(당대에는 정신대라고 불렀지만) 그걸 피해자들이 신고하는 일조차 미친 짓으로 치부되던 시기가 있지 않았던가. 하지만 이런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려는 피해자 할머니들의 노력은 그것이 결코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 누구나 다 알아야할 실상이라는 걸 알게 해주었다.

 

이 영화를 불편해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 오히려 부끄러운 일이다. 이 영화는 더 많은 사람들이 봐야 한다. 그리고 그 아픔 역사를 기억에 새기고 잊지 말아야 한다. 그래야 그 분들이 돌아올 수 있다. 그 구덩이에서 아직까지도 돌아오지 못한 소녀들이. 그리고 몸은 돌아왔어도 여전히 돌아오지 못하고 있는 할머니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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