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시즌3 2주년, 이 장수예능이 부활한 까닭

 

새로운 메뉴를 개발하고 새로운 손님을 모집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기존의 단골들을 만족시키는 것이다.” <12> 시즌3 2주년을 맞아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유호진 PD가 한 이 이야기는 간단하지만 지금껏 시즌3가 어떻게 이 장수예능을 되살렸는가를 잘 말해준다.

 


'1박2일(사진출처:KBS)'

사실 시즌2만 해도 <12>은 끝났다는 얘기가 많았다. 시즌1이 워낙 큰 성과를 냈던 터라 뚝 떨어진 시청률은 이런 이야기를 증거하는 지표처럼 거론되었다. 그래서일까. 시즌2는 여행보다 게임에 더 몰두하는 모습이었다. 그만큼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강박 같은 것들이 생겼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럴수록 <12>은 본질을 잃어갔다. 의미를 잃어버리자 재미도 반감됐다.

 

이런 상황에서 시즌3를 맡게 되었으니 유호진 PD의 고민이 얼마나 컸을까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게다. 하지만 유호진 PD는 의외로 쉽게 이 모든 위기의 징후들을 뛰어넘어 버렸다. 가장 먼저 한 것은 <12> 특유의 조금은 촌스러워도 어딘지 정감이 가는 그 훈훈한 정서를 만들었다는 점이다. 우리의 구탱이형 김주혁은 그 중심을 잡아주었고, 김준호는 그 위에서 웃음의 포인트를 놓치지 않았다. 정준영 같은 에이스는 막내 같지 않은 막내로 자칫 나이로 서열이 맺어질 것 같은 그 관계를 여지없이 깨는 인물로 자리했다.

 

서울특집에서 부모님들의 사진 속 공간에 그 자식들이 들어가 비슷한 포즈로 사진을 찍는 장면은 <12> 시즌3의 상징 같은 풍경으로 남았다. 꽤 많은 곳을 여행했고 그래서 어떤 경우에는 겹쳐지는 공간도 있지만 그것이 식상한 게 아니라 어느 때 누구와 함께 그 공간에 가느냐에 따라 다른 이야기가 가능하다는 걸 그 장면은 보여주고 있었고, 또 그 곳에 남아있는 과거의 이야기가 오롯이 추억으로 떠오를 수 있다는 것도 담겨 있었다. 여행이란 하나의 추억을 남기는 일이라는 걸 <12> 시즌3는 대단할 것 없지만 꽤 떠들썩하게 한바탕 놀아보는 왁자함으로 보여줬다.

 

출연자들의 관계가 끈끈해지고 그런 관계를 바라보는 시청자들과도 어떤 관계가 맺어지기 시작하자 <12>은 시즌1이 그러했던 것처럼 복불복만 해도 재미있는 프로그램이 되었다. 물론 그러면서도 그 날 갔던 여행지에 대한 특별한 정보들을 놓치지 않는 것이 <12>이 가진 본연의 색깔이라는 걸 유호진 PD는 잘 알고 있었다.

 

결국 유호진 PD<12>을 부활시킬 수 있었던 건 이번 기자간담회에서 말한 것처럼 무언가 새로운 맛을 내려고 해서가 아니라 기존 <12>이 갖고 있는 그 맛을 지켜내려 했기 때문이다. 그건 너무 쉬운 일이 아니냐고? 절대 그렇지 않다. 대부분의 시즌2나 속편이 어긋나는 건 새로운 걸 시도하려 하기 때문이다. 특히 새로운 PD가 프로그램을 맡게 되면 이전과는 다른 무언가를 하려는 경향이 있다. 그것이 이전의 실적과는 다른 자신의 실적을 만들어낼 수 있는 일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유호진 PD는 그 성격 그대로 선배들이 잘 차려놨던 그 밥상을 잘 지켜내는 겸손함으로 시즌3를 만들어왔다. 물론 조금씩 자기만의 색깔을 특집에 넣어 변화를 시도하기도 했지만 결코 <12>이라는 궤도 바깥으로 나가는 일은 없었다. 그래서 <12>의 단골들은 그 변함없는 맛에 늘 찾아와도 만족하게 됐던 것이다



<응팔>의 가장 강력한 판타지, 쌍문동 골목

 

우리에게 골목이란 어떤 공간인가. 골목이 존재하려면 일단 전제조건이 필요하다. 집과 집들이 이어져 다닥다닥 붙어있어야 하고, 그렇게 이어진 집들이 두 줄 이상 있어서 그 사이에 공유공간을 두고 있어야 한다. 바로 그 공유공간이 다름 아닌 골목이다. 골목은 그래서 집과 집 사이를 수평적으로 연결해주는 기능을 한다.

 


'응답하라1988(사진출처:tvN)'

아마도 80년대를 살았던 이들이라면 방과 후 집에다 가방을 던져놓고 그 골목으로 뛰쳐나온 동네 아이들이 함께 다방구 같은 놀이를 했던 걸 기억할 게다. 그렇게 어린 시절부터 골목에서 함께 놀던 아이들은 나이 들어 학교가 달라져도 여전히 그 골목을 매개로 친구이자 이웃처럼 지내기도 했다.

 

어디 아이들뿐인가. 저녁 준비 하다 양념이 미처 떨어진 걸 깜박했다 치면 아이들 시켜 이웃집에서 빌려오는 건 일쑤고, 때때로 아이에게 어떤 문제가 생기면 마치 제 자식 문제나 되는 듯 이웃들이 함께 걱정해주기도 했다. 공간은 사람이 점유하기 마련이지만 그 공간은 거기 점유한 사람들의 일상을 규정하기도 한다.

 

알다시피 80년대 이후 아파트들이 도처에 들어서고 부동산 과열로 인해 그것이 살아가는 공간이 아니라 사야하는 공간으로 바뀌어나가면서 골목이라는 공간은 점점 사라져갔다. 수평적 공간을 이어주던 골목 대신, 어느 곳에 있는 어느 아파트 몇 평이 그 사람의 지위를 표징하는 수직적 지표가 되는 사회의 도래.

 

<응답하라1988>이라는 드라마에서 가장 큰 판타지는 이렇게 사라져가는 골목이 아닐까. 이 드라마가 특이한 건 대단히 큰 사건을 다루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크리스마스가 다가오자 산타클로스를 믿는 한 아이의 동심을 지켜주기 위해 온 이웃들이 반상회를 거듭하고 함께 얼음으로 된 눈사람을 만드는 그런 것이 사건이라면 사건이다.

 

물론 인물들의 끈끈함이 있지만 친구들이 함께 모여 마니또를 하고 어른들은 비오는 날 소주 한 잔을 기울이는 그런 장면들이 대단한 사건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대신 이 드라마는 그들의 아주 일상적이고 소소한 일들을 툭툭 던져 놓는다. 이를테면 선우(고경표)가 팔목이 안 좋다는 엄마 대신 병뚜껑을 따주는 장면을 옆에서 흐뭇한 눈으로 바라보는 라미란의 시선 같은 것이나, 엄마 없이 자라온 택이(박보검)에게 한없는 미안함을 소주 한 잔으로 토로하는 택이 아빠(최무성)의 이야기를 앞에 들어주며 세상에 택이 아빠 같은 사람이 어딨냐고 얘기해주는 선우 엄마(김선영)의 뭉클한 시선 같은 것이다.

 

이렇게 선하고 착하며 타인을 배려하고 이야기를 들어주고 때로는 함께 모여 한 아이의 동심을 지켜주기 위해 노력하는 이웃들이 있는 곳. <응답하라1988>의 골목은 그래서 한참을 보다보면 그런 곳에서 살고픈 마음이 새록새록 들게 만드는 힘을 발휘한다. 저런 이웃이 있고 저런 친구들이 있고 저런 언니와 누나와 동생과 형들이 있는 곳이라면 얼마나 사는 맛이 날 것인가.

 

이 판타지를 <응답하라1988>은 쌍문동 골목이라는 공간 안에 채워 넣는다. 물론 그것은 너무나 이상적이라 현실적인 공간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을 정도다. 하지만 복고라는 것은 결국 기억의 왜곡을 통해 만들어지는 아름다움이 아닌가. 그러니 이미 싹 다 밀어져 빌딩과 아파트가 세워진 곳에 이제는 찾아볼 수 없는 골목의 풍경에 마음을 빼앗길 수밖에 없는 것일 게다. 우리 눈앞에서는 사라졌지만 마음 속에는 여전히 남아있는 골목에 대한 아련한 그리움. 그것이 <응답하라1988>의 가장 강력한 판타지가 아닐까.



대종상의 몰아주기, 청룡의 나눠주기

 

아마도 이번 청룡영화상 대종상의 파행으로 인해 오히려 돋보인 시상식이 아니었나 싶다. 단 며칠 사이에 벌어진 두 영화상이지만 대종상 시상식장에 주조연 배우들이 대거 불참했던 것과는 상반되게 청룡영화상에는 상을 받든 못 받든 별들이 모여 들었다. 대종상에서 대리수상 불가를 공표함으로써 결국 대리수상이 남발하게 된 것과 대조적으로, 청룡영화상은 참석한 배우들이 상을 고루 가져가는 축제의 장으로 기억되게 됐다.

 


'청룔영화상(사진출처:SBS)'

청룡영화상이 참 상을 잘 주죠?” 김혜수가 던진 이 말은 물론 청룡영화상의 균형 잡힌 고른 시상에 대한 상찬이었지만 대중들에게는 대종상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이번 대종상은 <국제시장>에 무려 10관왕을 몰아줬다. 이런 일이 이번 한 번이 아니다. 이미 2012년 대종상은 <광해>에 총 22개 부문에 15개의 상을 몰아준 바 있다. 어째서 같은 해에 상영됐던 같은 영화들에 대해 상을 주는 것인데도 이렇게 다를까.

 

이것이 이렇게 다른 것은 그 자체로 상의 성격이나 지향점이 다르다는 걸 말해준다. 대종상이 구태의연한 영화 시상식의 전형처럼 다가오게 된 건 이 같은 몰아주기가 과연 지금의 영화 환경과 관객 취향과 사뭇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에서부터 비롯되는 일인지도 모른다. 우리네 영화는 그만큼 다양해졌고, 관객들의 취향도 다양해졌다.

 

물론 1천만 대작 대박영화가 매해 나오기도 하지만 그보다 작은 중박 영화도 점점 많아지고 있고, 아예 독립영화들도 의외로 다양한 관객들의 취향을 받쳐주는 자양분이 되고 있다. 그러니 몇몇 대작 영화에 상을 몰아준다는 건 자칫 잘못하면 관객들의 다양한 취향들을 배려하지 못하는 일로 비춰질 수 있다. 나아가 이것은 승자가 모든 걸 독식하는, 적어도 문화에서는 바라보고 싶지 않은 일로 그려지기도 한다.

 

그런 점에서 이번 청룡영화상이 블록버스터과 독립영화에 똑같은 상의 지분을 나눠주었다는 것은 의미가 깊다. 올해 작품 중 누구나 <베테랑><암살>, <국제시장>이 상을 가져가는 것에 대해 이견을 갖기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사도> 같은 의미 있는 작품도 있고, 독립영화로서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거인> 같은 작품도 있었다는 걸 청룡영화상은 놓치지 않았다. 결국 최우수작품상은 <암살>이 감독상은 <베테랑>이 가져가고 남녀주연상에 <사도>의 유아인과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의 이정현이 받은 건 균형잡힌 배분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물론 시상식에 몰아주기만큼 비판받는 것이 나눠주기다. 하지만 이것은 방송사들의 연말 시상식에서 과연 그 상이 적절한가 싶을 인물들에게 다음해를 위해 억지로 나눠 상을 시상할 때 나오는 비판이다. 이번 청룡영화상이 보여준 나눠주기는 이것과는 다르다. 그만큼 다양해진 영화들과 관객의 취향을 고루 끌어안는다는 의미에서의 나눠주기라는 점에서 의미가 다르다는 것.

 

시상의 공정성과 균형은 결국 그 영화상이 축제의 장이 되게 만드는 이유다. 이번 청룡영화상이 유독 훈훈한 영화인들의 축제의 장이 될 수 있었던 건 그 균형이 잘 이뤄졌기 때문이다. 상을 받고도 사과하는 상, 한쪽으로 몰아주기를 해서 다른 한쪽은 커다란 그림자와 병풍을 만들어버리는 상, 권위로 오라마라 강요하는 상. 이번 청룡영화상은 이런 시상식과는 너무나 다른 행보를 보여주었다.



<위대한 유산>이 서민들의 눈높이로 다가온 까닭

 

MBC <위대한 유산>이라는 프로그램의 제목이 우리에게 먼저 상기시키는 건 안타깝게도 찰스 디킨스의 소설 같은 것이 아니다. 사회가 워낙 금수저 흙수저 같은 암담한 이야기들로 가득하다 보니 이 위대한 유산이라는 제목도 꼭 그런 이야기마냥 들린다. 하지만 적어도 <위대한 유산>에 있어서 금수저 따위의 우려는 접어도 좋을 듯하다. 이 예능이 비추고 있는 세계는 우리네 서민들이 살아가는 공간에서 크게 벗어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위대한 유산(사진출처:MBC)'

부산 영도의 강지섭의 부모님이 무려 43년 간이나 운영하고 있다는 중국집은 우리가 흔히 지나치곤 하는 그런 중국집과 별 다를 바 없다. 아니 어찌 보면 도시에서 점점 기업화되고 있는 중국 레스토랑과는 전혀 다른 변두리의 소박하고도 정감 가는 동네 중국집이다. 어느 대기업 2세가 어울릴 법한 강지섭이라는 배우와는 어딘지 어울리지 않아 보이지만 그가 그 중국집 문을 열고 들어가 어색한 아버지와 마주 앉는 순간, 순박하기 이를 데 없는 부산 사투리가 튀어나온다.

 

오래도록 사용해서 바닥이 검게 그을려버린 전기장판에 앉아 서울에서 찾아온 아들을 보는 부모의 얼굴은 무심한 듯 반가움이 역력하다. 하지만 강지섭이 이 곳에 온 이유는 아버지의 유산(?)을 물려받기 위함이다. 그 유산이란 다름 아닌 중국집에서 한 평생 요리를 해 오신 아버지의 그 요리 노하우다. 철가방 들고 동네 배달을 나가 아주머니들과 한바탕 어우러지고, 늦게 돌아온 아들에게 지청구를 날리며 중국집의 노하우를 알려주는 아버지의 모습. 아마도 이 이야기 속에서 강지섭은 요리 기술을 넘어선 삶의 노하우가 아닐까.

 

걸 그룹 AOA의 찬미 하면 먼저 떠올리는 것이 화려한 무대지만, 그녀가 찾아간 곳은 다름 아닌 엄마의 작은 미용실. 그 작은 미용실에서 엄마는 찬미를 언니와 동생과 함께 홀로 오롯이 키워냈다. 그 미용기술을 배우러 온 찬미에게 엄마는 대뜸 단골손님의 머리를 맡기고는 가위질을 해보라고 시킨다. 어렵게 기술을 배웠던 자신과는 달리 좀 더 빨리 그 노하우를 전수해주고픈 엄마의 마음과, 서툴러도 열심히 해보려는 딸의 마음 게다가 불안해하면서도 정이 넘치는 단골손님의 마음까지 그 안에는 우리가 도시에서 잘 느끼지 못하는 따뜻함이 묻어난다.

 

강지섭이 중국집 노하우를 배우기 위함이 아버지를 이해하고 그 진정한 유산이 무엇인가를 직접 체험을 통해 알아보려 하는 것인 것처럼, 찬미 역시 그 미용기술 전수를 통해 알려하는 건 그 어려운 현실 속에서도 자신은 돌보지 않고 쉬지 않고 가위질을 하면서 세 딸을 잘 키워낸 엄마가 전하는 진짜 유산일 것이다. 하루 일과가 끝나고 술 한 잔을 기울이며 이제 잘 큰 딸이 엄마를 이해하는 그 마음을 내비칠 때 그토록 단단해 보이던 엄마가 눈물을 흘리는 장면은 이 프로그램이 전하려는 유산이 돈으로는 환산할 수 없는 삶의 가치라는 걸 드러낸다.

 

동명의 찰스 디킨스의 소설이 본래 전하려는 유산이란 바로 그런 것이었을 게다. 하지만 너무나 물질화된 세상에 살다보니 유산이란 분쟁의 주역으로 떠오르는 재산이거나 금수저 논란의 진원지가 되고 있는 부모의 후광 같은 의미로 변질되어 버렸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위대한 유산>이 포착하고 있는 강지섭네 중국집과 찬미네 미용실 이야기는 우리네 서민들의 삶을 통해 오히려 진정한 유산의 의미를 되새겨주는 것이 아닐 수 없다. 서민들의 눈높이를 찾는 것만으로도 <위대한 유산>은 꽤 괜찮은 예능의 지점을 찾아냈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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