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로트가 이렇게 신났었나? ‘놀면 뭐하니?’ 유산슬의 나비효과

 

트로트가 이렇게 신나는 장르였던가. MBC 예능 <놀면 뭐하니?> ‘뽕포유’가 끄집어낸 트로트의 매력에 점점 빠져든다. 사실 트로트라고 하면 어딘가 ‘흘러간 옛 노래’ 정도로 치부된 면이 있다. 하지만 뽕포유의 유산슬(유재석)의 데뷔과정을 통해 트로트가 현재의 트렌드를 담는 장르이고, 또 기성세대는 물론이고 젊은 세대들 또한 충분히 즐길 수 있는 장르라는 게 드러나고 있다.

 

김이나가 작사하고 조영수가 곡을 붙인 ‘사랑의 재개발’은 재기발랄하면서도 트로트 특유의 직설적인 가사가 한 번 들으면 잊혀지지 않는 곡이다. “싹 다 갈아엎어주세요- 머리부터 발끝까지”라는 가사에 드러나듯이 거기에는 특유의 해학적이면서도 돌려 말하지 않고 복잡하지 않으면서도 시원하게 직접 표현해내는 트로트의 맛이 느껴진다. 물론 그건 정통 트로트라고 보기는 어렵지만, 그게 무슨 상관이랴. 장르도 시대에 따라 새롭게 해석되고 진화하는 법이다.

 

사랑을 재개발에 비유해 김이나가 쓴 가사는 폼 잡지 않고 솔직하게 감정을 꺼내놓아 듣는 이의 허를 찌르는 면이 있다. ‘나비 하나 날지 않던 나의 가슴을 그대라는 이름으로 덮어버려요.’ 재개발이 가진 이미지를 이렇게 사랑의 감정으로 폭발력 있게 전한다는 건 트로트가 아니면 담기 어려운 일이 아닐까.

 

역시나 노래교실에서 처음 유산슬이 선보인 ‘사랑의 재개발’은 단박에 아주머니들이 따라 부르는 진풍경을 연출했다. 특히 “싹 다-”로 시작되는 가사에서의 떼창은 작사가와 작곡가가 예측한대로 모두의 기억에 강렬하게 남았다. 아직 신곡이 발표되지도 않은 상황이지만, 인터넷 반응이 이미 뜨거워진 이유다.

 

또 다른 곡인 ‘합정역 5번 출구’는 박토벤 박현우와 정차르트 정경천의 티격태격 콩트에 가까운 만담(?)에 그 사이에서 어쩔 줄 몰라 하는 작사가 이건우의 합작으로 합정역이 트로트의 성지가 될 것 같은 예감이다. 나이 지긋한 트로트의 대가들이 툭툭 던져 넣는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유재석도 웃음을 참지 못하는 이 놀라운 상황을 연출하면서도, 그 제작 과정의 연주자나 안무가 심지어 의상제작자 등의 참여자들을 통해 트로트 특유의 구수한 맛이 전해진다.

 

특히 갑자기 혜성처럼 등장해 유산슬이 부른 ‘합정역 5번 출구’에 생명력을 불어넣은 코러스 김효수는 시청자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처음 악보를 받아들고 알아서 코러스를 덧붙이는 김효수는 프로다운 면모를 보여줬고, 유재석은 물론이고 그 곳에 함께 한 대가들 또한 “죽인다”며 감탄하게 만들었다. 어찌 보면 가수들 뒤편에 존재해 전면에 드러나지 않는 코러스였지만 그들이 있어 음악이 비로소 완성되고 있다는 걸 <놀면 뭐하니?>는 제대로 보여줬다.

 

‘사랑의 재개발’이 신나는 떼창 유발 트로트라면, ‘합정역 5번 출구’는 구수함과 애절함이 잘 어우러진 트로트다. 이 곡을 갖고 인천 차이나타운 앞에서 버스킹으로 쇼케이스를 시작하는 유산슬이 만들어낼 트로트 열풍이 벌써부터 기대된다. 유산슬의 성패도 성패지만 무엇보다 트로트가 이렇게 재미있고 신나는 장르라는 걸 확인시켜준 것이 이번 프로젝트가 가진 중요한 가치가 아닌가 싶다.(사진:MBC)

'나의 나라'의 동력 절반은 안내상의 지분

 

안내상의 연기 스펙트럼이 이렇게 넓었던가. 실로 JTBC 금토드라마 <나의 나라>가 가진 강력한 동력에 있어 그 절반은 안내상의 지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남전(안내상)이라는 가상의 캐릭터지만, 이 인물은 이성계(김영철)와 함께 조선 건국을 하는 공신으로 등장해 왕자의 난을 일으키는 이방원(장혁)과 팽팽한 대결을 만들어낸 캐릭터다. 결국 주인공인 서휘(양세종)의 칼에 죽음을 맞이하지만, 사실상 이 드라마가 지금껏 흘러온 동력의 중심에 서 있던 인물.

 

남전이란 인물은, 서휘의 누이동생인 서연(조이현)을 볼모로 잡아 서휘는 물론이고 서자 아들인 남선호(우도환)까지 쥐고 흔들었고, ‘신하의 나라’를 주창하며 이성계마저 밀어내고 어린 왕세자를 세운 후 자신이 실질적인 ‘갓 쓴 왕’이 되려던 자다. 그러니 이 드라마가 움직여온 서휘와 남선호의 동력이 바로 이 인물에 대한 감정으로부터 나온다.

 

안내상은 누구 앞에서도 좀체 무너지지 않을 것 같은 단단한 카리스마를 연기했다. 자신의 욕망을 위해서라면 아들 남선호까지 사지로 몰아넣는 비정함을 연기했고, 이성계를 시해하려다 동료들을 배신하고 그의 충신처럼 행세하는 치밀함을 연기했다. 그러다 욕망이 비등점을 넘어서며 왕자의 난이 벌어졌을 때는 왕의 부재를 틈타 짧게나마 왕명을 참칭하기도 했다. 드라마의 힘이 사실상 악역으로부터 나온다고 봤을 때 남전을 연기한 안내상은 200% 그 역할을 제대로 수행했다고 보인다.

 

사실 안내상이라는 배우의 이미지가 어딘가 가볍고 찌질하거나 코믹한 느낌을 주는 건 그의 초창기 존재감을 만들었던 문영남 작가의 작품에 자주 등장하면서 만들어진 것이다. <소문난 칠공주>, <조강지처 클럽>, <수상한 삼형제> 같은 작품에서 그는 찌질한 역할을 잘 소화해낸 바 있다. 하지만 그것이 안내상의 전부는 아니었다. 그는 그 후로도 다양한 작품들을 통해 연기 스펙트럼이 훨씬 폭넓다는 걸 증명해왔다.

 

<성균관 스캔들>에서의 정약용이나, <하녀들>에서의 이방원 또 <화정>에서의 허균 같은 사극에서 진지한 역할은 물론이고 <송곳> 같은 작품에서 노동상담소 소장으로 독특한 리더십을 보여주는 인물도 연기했었다. 그렇게 다양한 작품에 출연하며 스펙트럼을 넓혀 온 안내상이 최근 몇 년 동안 보여준 연기의 성취는 놀라운 것이었다. 대표적인 게 JTBC <눈이 부시게>에서 치매를 앓는 혜자(김혜자)의 아들 역할을 연기한 부분이다. 아들이지만 혜자가 아빠로 알고 있는 그 역할을 안내상은 안타까운 눈으로 바라보는 그런 인물을 연기한 바 있다.

 

그런 진지하고 절절한 역할에서부터 <60일, 지정생존자> 같은 작품에서 닳고 닳은 정치인 강상구 같은 조금은 허허실실한 역할까지 소화해내고, 또 <나의 나라>에서는 카리스마 넘치는 악역으로 변신하는 그 연기의 과정들을 들여다보면 안내상이라는 배우의 잠재력을 실감하게 한다. 아주 조금씩 다양한 작품들을 통해 자기만의 색깔을 입혀왔고 이제는 어떤 역할에서도 거기에 맞는 얼굴을 드러낼 수 있는 연기자로 선 느낌이다. 특히 <나의 나라>는 그의 이렇게 쌓아올린 만만찮은 내공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작품이 아닐 수 없다.(사진:JTBC)

어쩌다 ‘놀면 뭐하니?’가 음악 다양성을 이끄는 프로그램이 됐나

 

최근 벌어진 Mnet <프로듀스X101> 투표조작 사건의 이면을 보면 아이돌에게만 집중된 기형적인 우리네 가요계가 만들어낸 과잉 경쟁이 어른거린다. 그토록 국내 가요계에 음악 다양성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쏟아져 나왔지만, 그다지 변화한 것처럼 보이지 않는 게 현실이었다. 그러니 음악 다양성이 보장되지 않아 아이돌만 양산하려 하는 기획사의 난립은 그 경쟁에서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한 욕망을 만들어내고, 그건 방송사의 엇나간 욕망과 만나 이런 사건으로 이어졌다고도 볼 수 있다.

 

그렇다면 방송사들이 여전히 아이돌 중심의 음악 프로그램들을 전면에 세우고, 어떻게든 그 무대에 들어가기 위해 월요일만 되면 매니저들을 방송사 앞으로 출근하게 만들었던 건 과연 대중들의 요구에 부응한 일이었을까. 그렇지 않다. 대중들이 이미 좀 더 다양한 음악적 장르를 보고 싶은 욕망을 갖고 있다는 걸 드러내는 징후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건 최근 방영되어 화제를 모으고 있는 MBC 예능 <놀면 뭐하니?>다. 릴레이 카메라로 형식 실험을 하던 이 프로그램은 유재석의 드럼 비트에 다양한 아티스트들이 참여해 음악을 만들어가는 과정을 담은 ‘유플래쉬’로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단순한 드럼 비트가 릴레이 형식으로 여러 아티스트에게 넘어가면서 그 성향과 장르에 따라 음악의 다채로운 결을 들여다보게 해줬기 때문이다.

 

그 비트는 그래서 힙합이 되기도 했고, 재즈가 되기도 했으며, 달달하고 감성적인 듀엣 발라드가 되기도 했고, 웅장한 록 오페라를 연상케 하는 곡이 되기도 했다. 마지막 드럼 독주회는 그래서 음악적 다양성이 폭발하는 무대가 됐다. 심지어 故 신해철의 추모곡으로 이승환과 하현우가 참여해 만들어낸 ‘STARMAN’은 내레이션에 덧붙인 음악으로 대중들에게 깊은 여운이 남는 감동을 선사하기도 했다.

 

‘유플래쉬’가 드럼 독주회로 마무리된 후 이어진 ‘뽕포유’는 유산슬이라는 예명을 갖게 된 유재석이 트로트 가수가 되는 과정을 담아내며 트로트라는 장르의 묘미를 새롭게 끄집어내고 있다. 물론 TV조선 <미스트롯>이 배출한 송가인 신드롬이 이미 트로트 열풍을 예고했지만, ‘뽕포유’는 가수만이 아닌 작곡자, 작사가, 편곡자, 연주자들까지 트로트의 전 과정에 참여하는 이들을 재조명함으로서 이 장르를 좀더 깊게 들여다본 면이 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놀면 뭐하니?>는 음악 프로그램이 아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음악 프로그램이 해야 할 음악 다양성을 오히려 이 프로그램이 추구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것은 과거 <무한도전> 시절부터 김태호 PD가 갖가지 가요제를 통해 보였던 일관된 흐름의 연장선에 있다. 음악 프로그램들이 외면해온 획일화된 가요계의 기울어진 운동장을 <놀면 뭐하니?> 같은 예능 프로그램이 오히려 관심을 두고 있다는 사실은 아이러니한 일이 아닌가.

 

KBS <뮤직뱅크>나 SBS <인기가요> MBC <쇼 음악중심> 같은 프로그램들은 물론 아이돌 음악에 맞춰진 음악 프로그램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니 그 프로그램들이 그리 잘못됐다 말하긴 어렵다. 하지만 이런 프로그램 말고 좀 더 다양한 음악의 스펙트럼을 담을 수 있는 레귤러 음악프로그램들은 여전히 부족하거나 프라임 타임대는커녕 밤 시간대로 편성되어 잘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 현실이다.

 

그나마 공영방송인 KBS는 <불후의 명곡>이나 <유희열의 스케치북> 같은 좀 더 다양한 아티스트들이 설 자리를 마련하고 있지만 타방송사들은 과연 이런 고려들을 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하지만 방송사들이 고려하지 않는 음악적 다양성의 문제는 최근 벌어진 조작사태를 통해 알 수 있듯이 그 결과가 큰 파장으로 돌아온다는 걸 생각해봐야 할 때가 아닐까.(사진:MBC)

tvN 예능이 과감하게 복고 카드를 꺼내든 이유

 

금방이라도 “1박!”하면 “2일!”할 것 같다. 그런데 이 프로그램은 KBS <1박2일>이 아니다. 물론 그 원조를 만들었던 나영석 PD가 진두지휘하고 있는 프로그램이지만. tvN <신서유기7>은 <1박2일>의 귀환을 보는 것만 같다.

 

외국에서 진행됐던 지난 시즌들과 달리 국내에서 촬영하며 ‘홈커밍’이라는 부제를 붙여서 그런 느낌이 드는 줄 알았지만, 이번 주에 이어진 ‘레트로 특집’을 보니 <신서유기7>이 노린 건 복고 콘셉트였다. 국내 촬영은 이를 위한 밑그림이었다고 생각된다.

 

그래서 <신서유기7>의 2회까지가 도사들의 용볼찾기라는 타이틀을 붙여 계룡산 자락까지 가서 갖가지 복불복 게임을 하는 한 편이었다면, 다시 만나 ‘레트로 특집’으로 이어진 3회부터의 이야기는 또 다른 콘셉트의 이야기로 이어진다. 이런 구성 방식은 <1박2일>의 방식 그대로다. 1박2일 간의 여행 분량으로 2회 방송을 내고 또 다른 여행을 통해 다음 특집으로 이어가는 방식.

 

그래서 아예 대놓고 레트로 특집이라 붙인 건 의도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1박2일>의 향수를 가져오겠다는 것. <겨울연가>의 배용준 분장을 한 규현과, ‘날 떠나지 마’를 부르던 박진영의 그 유명했던 비닐 바지를 입은 강호동, 게다가 최근 ‘온라인 탑골공원’에서도 단연 화제가 된 테크노 전사 이정현으로 분한 이수근 등등. <신서유기7>에서는 분장만으로도 옛 추억이 몽글몽글 피어난다. 여기에 3,6,9 같은 게임에 그랜저와 프라이드 같은 자동차까지 더해지니 더더욱.

 

무엇보다 <신서유기7>의 강호동과 이수근, 은지원은 원조 <1박2일>의 전성기를 이끌던 인물들이다. 여기에 나영석 PD가 능수능란에게 이끌어가는 복불복 게임의 묘미까지 더해지니 <신서유기7>을 보는 시청자들은 이것이 <신서유기>인지 아니면 <1박2일>인지 헷갈릴 정도다. 어째서 이런 복고 카드를 꺼내들은 걸까.

 

일단 최근 새롭게 고개를 든 뉴트로 열풍과 무관해 보이지 않는다. 옛 감성과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콘텐츠들을 재연하는 것에 그 때를 경험했던 이들은 향수를 느끼지만, 그 때의 경험이 없는 젊은 세대들도 신기해하며 재밌게 소비하는 새로운 경향이 뉴트로다. 그러니 <신서유기7>이 웃음의 코드로 뉴트로를 가져온 건 이런 새로운 대중들의 욕망을 염두에 둔 포석일 수 있다.

 

하지만 최근 들어 관찰카메라가 예능의 새로운 트렌드로 등장하면서 ‘의미 과잉’이 되는 경향의 반작용으로 떠오르는 웃음에 집중하는 예능을 보다 적극적으로 시연하기 위한 것일 수 있다. 물론 <신서유기>는 본래부터 웃음과 게임에 집중하는 예능이었지만, 복고 콘셉트는 여기 출연하는 이들이 그 원조였다는 걸 자연스럽게 보여준다.

 

웃음에 대한 갈증이 점점 커지고 있어서일까. 아니면 관찰카메라의 틀 역시 이제 시청자들에게 익숙해져 그 반작용으로서 복고적 틀에 대한 향수를 느끼게 하기 때문일까. tvN의 최근 예능들은 복고의 경향을 보여주고 있다. <신서유기7>만이 아니라 새로 시작한 <돈키호테>가 그렇다. 시작부터 MBC <무한도전>의 틀과 유사하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돈키호테>는 맨 몸으로 부딪쳐 도전하는 인물들을 통해 몸 개그의 웃음을 전면에 꺼내놓고 있다.

 

<1박2일>을 그대로 닮은 <신서유기7>과 <무한도전>을 떠올리게 하는 <돈키호테>. 이건 우연일까 아닌 의도일까. 또 과거의 예능을 떠올리게 하는 복고일까 아니면 또 다른 새로움을 찾지 못해 뒷걸음질 치는 퇴행일까. 어쨌든 한두 번의 이벤트적인 복고 콘셉트가 확실한 웃음을 주는 것만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런 복고가 지속적으로 선택됐을 때도 과연 그럴 수 있을 지는 의문이다.(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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