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분들 덕분에..'놀면'이 김치원정대에 담은 메시지

 

MBC 예능 <놀면 뭐하니?>에서 뜬금없이 다시 모인 신박기획의 세 사람 유재석, 정재형, 김종민은 어리둥절해 했다. 환불원정대 프로젝트가 끝이 났고, 그래서 이들의 신박기획도 잠시 문을 닫은 상태였다. 그래서 지난주만 해도 유재석이 끓여주는 라면을 먹으며 김종민은 그 마지막을 아쉬워하는 모습을 보인 바 있다. 하지만 단 일주일만에 다시 유재석을 만난 김종민은 황당해하며 특유의 어색한 웃음을 지어보였다.

 

잠시 후 나타난 정재형도 어색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신박기획의 부캐 정봉원에 빠져나오지 못한 정재형은 여전히 유재석에게 존칭을 버릇처럼 썼고, 자신이 작곡한 곡에 대한 미련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모습을 보였다. 본캐로 돌아와 깍듯하게 존댓말을 하는 유재석을 오히려 낯설어하는 모습이라니.

 

이렇게 다시 모인 그들에게 주어진 미션은 김장을 담가 그간 고마웠던 분들에게 나눠주는 일이었다. 김장 재료들만 잔뜩 놓인 방에 들어간 그들은 한 번도 담가보지 못한 김장을 제작진 눈치를 봐가며 담았다. 도움을 주기 위해 찾아온 데프콘은 심지어 김치를 먹지 못한다고 해 과연 이들이 김장을 제대로 담글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을 만들었다

 

사실 김장 담그는 일이 주어졌지만 그것만큼 프로그램에 재미를 준 건 이들의 빵빵 터지는 토크였다. 어디든 유재석과 함께하는 프로그램에 대한 욕심을 꺼내놓는 데프콘은 과거 <1박2일>을 같이 했던 김종민에게도 같은 욕심을 꺼냄으로써 웃음을 줬다. 시종일관 입에 뭘 자꾸 집어넣는 김종민과 양념에 들어가는 재료를 믹서로 가는 것도 잘 못하던 유재석. 이렇게 모든 게 낯선 김장이지만 그래도 시간이 가며 김치 모양이 되어가는 과정이 워낙 케미가 잘 맞는 이들의 수다와 잘도 버무려졌다.

 

김종민이 끓여낸 라면과 방금 만든 김치를 곁들여 한껏 먹방을 보인 이들은, 그간 <놀면 뭐하니?>의 여러 미션들에 참여했던 분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적어 붙인 통에 김치를 일일이 담았다. 그렇게 한 통 한 통 채워진 김치들은 고마운 분들에게 전해졌다. '환불원정대' 만옥(엄정화), 천옥(이효리)과 이상순, 은비(제시), 실비(화사), '싹쓰리' 비룡(비)은 물론이고 많은 이들에게 전해졌다.

 

그 김치가 전해지는 과정은 그간 <놀면 뭐하니?>가 걸어왔던 길을 반추하게 만들었다. '유플래쉬'의 유희열, 이적, '뽕포유'에서 유산슬이 만났던 펭수, '닥터유'의 박명수와 '인생라면'에서의 정준하, 하하 그리고 '맛있는 녀석들', 하프에 도전했을 때 만났던 정혜순 하피스트, '방구석 콘서트'에 참여했던 김광민 등등. 그간 있었던 일들이 결코 적지 않았다는 걸 '김치원정대'는 보여줬다.

 

사실 <놀면 뭐하니?>는 유재석이 시작한 부캐 놀이가 점점 확장하면서 지금의 성과를 만들었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인지 유재석 1인에게 집중되는 면이 있다. 하지만 이번 김치원정대를 통해 <놀면 뭐하니?>는 그 성과에 유재석 주변에 많은 이들의 보이지 않는 도움이 있었다는 걸 전하고 있었다. 그들이 있어 지금껏 그리고 앞으로도 더 의미 있고 재미있는 시도들이 이어질 거라는 기대를 남기며.(사진:MBC)

'일의 기쁨과 슬픔', 단편만이 담을 수 있는 이야기가 있다는 건

 

장편 드라마들은 긴 호흡의 스토리들을 다룬다. 그래서 이야기는 다소 거창해지고, 극적으로 전개된다. 하지만 세상의 모든 이야기들이 다 그렇게 거창하고 극적인 건 아니다. 그건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다. 지나고 난 후에 기억으로 각색된 이야기들은 거창하고 극적인 사건들의 연속처럼 보이지만, 실상 우리에게 벌어진 일들이란 매일 매일 조금씩 부딪치며 하루하루를 살아냈던 것들이 먼지처럼 차곡차곡 쌓여 만들어낸 것들이기 때문이다.

 

KBS 드라마 스페셜 <일의 기쁨과 슬픔>은 바로 그 소소해 보이는 일상을 통해 우리의 삶을 관조하는 드라마다. '한국의 실리콘 밸리'라는 판교에 있는 중고거래 앱을 운영하는 스타트업 우동마켓. 실리콘 밸리 스타일로 영어 이름을 쓰며 수평적 관계를 지향한다 하지만, 회사 분위기는 여지없이 '라떼는'이 오가는 꼰대 스타일의 상사들이 있는 수직적 체계를 갖고 있다.

 

모두가 본명과 다른 영어이름을 쓰고 있지만, 본래 이름이 김안나라 이름 그대로 불리는 안나(고원희)는 이 회사의 앞뒤가 다른 이중성에 답답해한다. 직원들 쫀 적 없다며 일일이 직원 하나하나를 콕 집어내 칼퇴해서, 일처리 느려 터져서, 아이디어 내놓은 거 없어서 뭐라 한적 있냐고 지적하는 대표의 오른팔 앤드류(송진우)의 모습은 그 이중성을 드러낸다. 그는 지적한 적 없다면서 그런 방식으로 지적하고 있어서다.

 

드라마는 이처럼 답답한 회사생활을 하고 있는 안나가 부딪치게 된 두 가지 사건을 다룬다. 기획팀에서 일하는 안나는 고객들의 불만사항을 접수하고 처리해주는 일을 하는데, 기술적인 문제를 해결해줘야 할 개발자 케빈(김영)과 자꾸 트러블이 생긴다. 안나는 문제사항들을 처리해달라고 할 때마다 마치 그 문제를 그가 만들어내는 것처럼 받아들이며 한숨을 내쉬는 케빈 때문에 마음이 무겁다.

 

게다가 데이빗(오민석)은 우동마켓에 많은 물건들을(그것도 새것을) 최저가에서 조금 낮게 올리는 유저 거북이알을 안나보고 접근해 만나보라고 한다. 우동마켓이 마치 거북이알의 개인매장처럼 되어 버리는 게 아니냐며 그를 만나 그 문제를 해결하라는 것.

 

그런데 그렇게 억지로 등 떠밀려 마치 중고물건을 사러 나온 것처럼 만나게 된 거북이알 이지혜(강말금)가 겪은 황당한 이야기는 안나에게 일상의 깨달음을 안겨준다. 이지혜는 안나가 좋아해 휴대폰 배경화면에 담고 있던 알렉세이 스미르노프(알프)의 공연을 성사시킨 인물이었다. 이지혜가 그 공연 성사 미션을 받게 된 건 조운범 회장(류진)의 SNS가 알프 관련 소식으로 엄청난 반응을 일으켰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너무나 열심히 일해 공연을 성사시켰지만 그 소식을 가장 먼저 알리고 싶었던 회장의 SNS가 아니라 홈페이지에 먼저 공지한 게 화근이 되었다. 결국 보복성 인사발령을 받고 심지어 포인트로 월급을 지급받는 황당한 일까지 겪게 됐다.

 

특진이 날아가고 다른 팀으로 발령받았을 때까지도 담담했던 이지혜는 그러나 그 많은 포인트가 월급으로 들어오자 막막해져 눈물을 흘렸다고 했다. 하지만 자신이 힘들어해도 세상은 바뀐 게 없었다. 그는 포인트로 식사를 하고 커피도 마시고 쇼핑도 하며 살았다. 그러다 "돈도 결국 우리가 살아가는 시스템의 포인트"라 생각한 그는 포인트를 돈으로 바꾸기로 결심하고 직원할인으로 물건을 구매한 후 우동마켓에서 중고거래로 현금화했다.

 

이지혜의 일화는 일의 세계가 누군에게나 기쁨과 슬픔의 반복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걸 말해준다. 안나는 선배 제니퍼(김보정)의 조언처럼 "일의 기쁨과 슬픔 사이의 밸런스"를 찾는 것이 직장인들의 삶이라는 걸 깨달았다. 포인트를 월급으로 받았을 때의 슬픔을 이겨내고 그 포인트를 다시 현금화하는 것처럼 슬픔 속에서도 기쁨을 찾아내려 노력하는 것. 안나는 퇴근길에 홀로 늦은 혼밥을 하는 케빈을 떠올리며 그 역시 마찬가지라는 생각에 그가 좋아하는 레고를 선물하며 화해한다.

 

사실 <일의 기쁨과 슬픔>이 담고 있는 일화는 너무나 일상에 맞닿아 있어 사건처럼 보이지 않는 일들이다. 하지만 그 소소한 일상을 디테일하게 들여다보고 그 사람들이 겪는 감정들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그것이 의외로 우리가 사는 진짜 모습이라는 걸 깨닫게 된다. 거대 서사나 거창한 사건들을 다루는 장편드라마들로서는 담아내기 어려운 이야기. 단편드라마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가 있다는 걸 <일의 기쁨과 슬픔>은 잘 보여주고 있다.(사진:KBS)

'개천용', 돈만 있으면 기사도 맘대로? 그 정반대인 이유

 

"야 다 니들 때문에 그러는 거야. 보란 듯이 사옥 올려서 니들 월급 주고 취재에만 전념하라고." 뉴스앤뉴 문주형(차순배) 사장은 강철우(김응수) 서울시장의 뒤를 봐주는 것이 결국 기자들을 위해서라고 말한다. 그는 강철우 시장이 지을 테크노 타운 분양권을 받아 입주하려 한다. 그것이 수백억의 이익을 회사에 가져다 줄 것이고 그 이익은 결국 기자들의 처우를 좋게 해줘 쓰고 싶은 기사를 마음껏 쓸 수 있게 해줄 거라는 게 그의 논리다.

 

하지만 문주형 사장의 그 말에 이유경(김주현) 기자는 너무나 따끔한 비판을 내놓는다. "저 앞 광화문만 나가도 언론사 빌딩 많아요. 그 언론사 보란 듯이 진실을 쫓고 있나요? 누가 보는데도 자기 주머니만 채우고 있나요?" 언론사들이 도시 한복판에 빌딩을 차지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그들이 진실만을 기사로 담고 있는가에 대한 질문이다. 과연 그런가. 이유경 기자에게 "우린 달라. 우린 그렇게 안살거야."라고 문주형 사장이 말하지만 과연 진짜 빌딩을 세우고 나면 저들과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을까.

 

SBS 금토드라마 <날아라 개천용>은 물론 드라마다. 하지만 이 드라마가 여타의 다른 드라마들과 조금 다른 건 실제 있었던 재심 사건들을 다루고 있고, 여기 등장하는 박태용(권상우) 변호사나 박삼수(배성우) 기자가 모두 실제 인물들인 박준영 변호사와 박상규 기자를 모델로 하고 있다는 점이다. 게다가 이 작품은 박상규 기자가 직접 대본작업을 했다. 그러니 드라마 속 이유경 기자가 따끔하게 던지는 일침이 예사롭지 않은 현실감으로 다가온다.

 

실제로 이 드라마는 보통 드라마 속 내용들이 '실제와는 무관하다'는 식으로 보여지곤 하는 고지와는 사뭇 다른 사전고지를 담고 있다. '이 드라마는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했으나 일부 상황, 인물, 이름, 사업체, 사건, 지역에는 극적효과를 위해 허구를 가미했습니다.' 즉 실제를 바탕으로 했고 다만 허구를 가미했다는 것.

 

<날아라 개천용>이 뉴스앤뉴라는 언론사를 통해 그려내고 있는 건 어떻게 언론과 권력이 유착되어 진실과 정의보다는 돈과 권력을 서로 추구하게 되는가하는 점이다. 고지처럼 다소 허구를 가미했지만 문주형 사장이 권력형 비리들을 취재해 가져오는 이유경 기자에게 "덮으라"고 강요하는 이야기는 그래서 그저 가상의 이야기로만 들리지는 않는다. "차기 대법원장이면 의전서열 대한민국 넘버3야!"라며 그는 조기수 대법관의 비리를 기사화하려는 이유경 기자를 막아 세운다. 그는 말한다. "조기수 곧 대법원장 되고 내년에 총선이야. 후년에는 대선이고. 집권여당 빌빌 거리는 거 안보여? 새로운 집권세력이 쓰나미처럼 밀려오는 게 안 보이냐고. 토 달지 말고 무조건 막아!"

 

강압적이고 폭력적인 수사로 가짜 자술서를 쓰게 만드는 비리 형사들과 진짜 범인을 잡고도 자신들의 실수가 피해로 돌아올까 봐 그들을 놔주고 대신 무고한 이들을 범인으로 옥살이하게 만드는 비리 검사 그리고 이 사실을 다 알면서도 자신의 자리 욕심 때문에 엉터리 판결문을 내는 판사는, 재심으로 그들의 잘못이 드러났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는다. 그들은 그래서 여전히 공고한 권력의 힘을 이용해 언론을 움직이고 유착된 언론은 그들에게 유리한 기사들을 써줌으로써 자신들의 이익을 키워간다.

 

허구를 가미한 드라마라지만 이유경 기자의 따끔한 일침이 더욱 큰 울림을 주는 건 우리네 현실이 그리 다르지 않기 때문일 게다. "우린 다르다"고 말하지만, 그렇게 권력의 힘에 의해 세워진 언론사는 결국 갈수록 진실보다는 자기 주머니를 더 들여다볼 테니 말이다. 어찌 보면 약자들이 가장 마지막까지 기대고 싶은 이들이 형사, 검사, 판사 그리고 기자가 아닐까. "주먹보다 아픈 게 믿음이 배신으로 돌아올 때라는 거 선배님들 정말 실망입니다." 이유경 기자의 툭 던지는 말 한 마디의 여운이 의외로 길게 남는다.(사진: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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