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부작 드라마인데 한 편의 영화 같은 ‘킬러들의 쇼핑몰’

킬러들의 쇼핑몰

무려 8부작 드라마인데 한 편의 영화 같다. 디즈니+ <킬러들의 쇼핑몰>은 정지안(김해준)이 있는 집을 공격하는 일단의 무리들의 장면들로 시작한다. 군부대가 인근에 있어 사격연습을 한다는 고지가 들려오지만 그건 사실 이 무리들이 갖가지 무기로 무장한 채 벌일 공격을 감추기 위한 위장이다. 작은 움직임에도 스나이퍼의 총알이 날아들고, 드론 공격이 이어진다. 그리고 척 봐도 만만찮은 훈련과 실전 경험이 있는 용병들이 집을 공격한다. 

 

그 1회의 이야기는 이 드라마의 8회로 고스란히 이어진다. 즉 이 8부작은 집을 공격해 오는 용병들과 사투를 벌이는 정지안의 하루(아마도 그 정도의 짧은 시간) 정도를 담고 있다. 하지만 매 번 공격과 방어가 이어지는 순간들 속에서 정지안은 먼저 사망한 삼촌 정진만(이동욱)의 목소리를 듣게 된다. “잘들어 정지안.” 습관적으로 그렇게 말한 후 이런 일들이 벌어질 거라는 걸 예견이라도 한 듯 했던 말들이 떠오르고 정지안은 이를 통해 위기를 모면한다. 

 

그러면서 삼촌 정진만의 목소리를 따라 어린 시절 부모를 한꺼번에 잃고 집을 난입한 용병들과 그를 구하러 왔던 정진만의 동료가 끔찍한 대결을 벌이는 장면을 보는 등 충격적인 일들을 겪은 후 말도 기억도 잃었던 시절을 떠올린다. 그리고 정진만과 함께 생활하기 시작하면서 다시 말을 되찾았던 순간과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새총 대신 총 쏘는 법도 배웠던 일들을 하나하나 풀어나간다. 

 

정지안의 집을 무차별 공격하는 용병들과 맞서는 하나의 이야기로 묶여져 있지만, <킬러들의 쇼핑몰>은 그래서 순간 순간 정진만의 목소리를 따라 플래시백되는 다채로운 에피소드들로 채워진다. 그러면서 정진만이 평범한 사람이 아니고 과거 용병이었으며, 바빌론이라는 조직의 일원이었다가 나오게 되어 이 집에 쇼핑몰(총기)을 꾸리고 고객(용병들)을 상대하게 됐던 사연들이 하나하나 풀어져 나온다. 

 

그 서사 하나하나가 밀도 있게 그려져 있어, 한 편의 영화를 8부작으로 늘려 놓은 느낌은 전혀 없다. 대신 8부작짜리 영화를 보는 느낌이다. 그래서 이 작품은 구성만으로도 흥미롭다. OTT라는 새로운 플랫폼이 생겨나면서 서서히 그 경계가 흐려져 간 드라마와 영화가 탄생시킨 작품처럼 보여서다. 

 

그 촘촘한 8부작을 채워놓은 건 물론 다양한 무기들을 활용한 공격들과 이에 맞서는 액션들이다. 특급 킬러 소민혜(금해나)가 불꺼진 창고에서 수십 명의 용병들을 무너뜨리는 신출귀몰한 액션을 펼친다거나, 마치 개의 형상을 한 듯한 로봇의 무차별 공격과 사투를 벌이는 장면들, 그리고 파신(김민) 같은 진짜 태국 사람처럼 보이며 무에타이 액션을 보여주는 그런 장면들이 드라마를 꽉꽉 채워놓는다. 

 

그러면서 정지안이라는 인물의 성장담을 통해 이 무차별 액션이 그저 볼거리의 전시가 아니라 하나의 삶에 대한 은유라는 걸 담아내는 일도 빠지지 않는다. 정진만이라는 보호자가 없는 세상에서 시시각각 물어 뜯으려 달려드는 하이에나 같은 용병들 속에서 정지안이 스스로 행동을 선택하고 저들과 맞서나가며 성장하는 모습은 생존경쟁 속에 내던져진 현재의 청춘들에게 던지는 드라마의 질문 같다. 

 

8부작으로 끝을 맺지만, 드라마는 말미에 시즌2에 대한 여지를 다시 활짝 열어 놓았다. 일단의 용병들과의 사투가 끝이 났지만 그것이 단 하루 정도의 시간 동안 벌어진 일이라는 점에서 앞으로 펼쳐질 수 있는 이야기도 무궁무진할 수 있다는 것. 오랜만에 시즌2가 기다려지는 한 편의 영화 같은 8부작 드라마다. (사진:디즈니+)

‘밤에 피는 꽃’을 유쾌, 통쾌, 상쾌하게 만드는 이하늬의 존재감

밤에 피는 꽃

한때 사극 여주인공의 핫트렌드는 ‘남장여자’였다. ‘성균관 스캔들’의 김윤희(박민영), ‘바람의 화원’의 신윤복(문근영), ‘구르미 그린 달빛’의 홍라온(김유정), ‘연모’의 이휘(박은빈)가 그들이었다. 하지만 요즘 사극에는 ‘수절과부’가 새로운 트렌드로 떠올랐다. ‘혼례대첩’의 정순덕(조이현), ‘열녀박씨 계약결혼뎐’의 박연우(이세영) 그리고 ‘밤에 피는 꽃’의 조여화(이하늬)가 그 계보를 잇고 있다. 

 

사극이 남장여자를 여주인공으로 자주 세웠던 건, 조선이라는 사극의 시대적 배경이 여성들에게 부여한 삶의 차별과 제약들을 뛰어넘는 모습을 이 장치를 통해 그려내려 했기 때문이다. 문장에 재주를 가졌지만 글 공부의 꿈을 펼칠 수 없거나(성균관 스캔들), 그림에 천재적인 재능을 가졌지만 화원으로 이름을 떨칠 수 없거나(바람의 화원), 혹은 기막힌 연서 쓰는 재능을 가졌지만 여자라는 이유로 돈벌이를 제대로 하기 어려웠거나(구르미 그린 달빛), 쌍둥이 왕손으로 태어났지만 여자라는 이유로 버려졌던(연모) 사극 속 여성들은 그래서 남장을 한 채 꿈을 펼쳤다. 

 

수절과부도 크게 다르지 않다. 어쩌다 과부가 되어 먼저 간 남편을 따라가지 않은 것 자체가 ‘죽을 죄’처럼 여겨지는 그들은 바깥출입 자체도 금기시되니, 하고픈 일을 하거나 꿈을 펼친다는 건 언감생심이 아닐 수 없다. 드라마는 갈등(장애) 요소가 클수록 드라마틱해지는 법. 그래서 이 수절과부들이 담을 넘어 시부모 몰래 저잣거리에서 ‘중매의 신’이 되는 ‘혼례대첩’의 이야기는 드라마틱해질 수밖에 없다. ‘밤에 피는 꽃’은 여기서 더 나아가 밤이면 복면을 쓴 채 홍길동 같은 의적이 되어 힘겨운 백성들을 돕는 이야기가 펼쳐진다.

 

도박에 빠진 아버지에 의해 기루에 팔려간 아이나, 소장한 그림에 물을 튀겼다는 이유로 주인집 양반에게 두들겨맞은 나이든 노비 같은 가난하고 곤궁한 백성들의 처지는 비극 그 자체다. 그래서 그 아이를 구해내기 위해 수백 냥을 쾌척하거나 노인에게 의원을 보내고 포악한 양반을 혼내주기 위해 그 그림을 훔치는 조여화는 ‘전설의 미담’으로 불린다. 비극은 아마도 조선사회에 실제로 비일비재했을 현실이지만, 이를 비틀어 그린 미담들은 ‘홍길동전’ 같은 서민들의 염원이 담긴 판타지다. 또한 수절과부의 현실을 담은 조여화라는 인물도 그 공고한 시대의 담장을 훌쩍 뛰어넘어 뜻을 펼쳐나가는 판타지적 인물로서 서민영웅으로 그려진다. <밤에 피는 꽃>이라는 현실의 무거움과 판타지의 가벼움이 교차하는 퓨전사극은, 그 비극적 현실과 희극적 판타지를 엮어 무거운 밤에도 경쾌하게 피어나는 꽃으로 은유한 작품이다. 

 

<밤에 피는 꽃>은 그래서 이하늬라는 배우가 가진 이미지에 상당 부분 기대고 있는 작품이다. 애초 국악과 전통무용을 전공한 전력이 있어서인지 한복이 유독 잘 어울리는 이 배우는 이미 ‘홍길동전’을 새로이 해석한 드라마 ‘역적:백성을 훔친 도적’에서 숙용 장씨로 등장해 그 고운 자태를 드러낸 바 있지만, 동시에 밤이면 복면 쓰고 담장을 훌쩍 뛰어넘으며 악당들 때려잡는 액션에도 능한 배우이기도 하다. 하지만 무엇보다 이하늬만이 가진 매력은 특유의 털털하고 시원시원한 모습을 통해 보여주는 코미디 연기에서 나온다. 영화 <극한직업>에서 마약반 홍일점으로 껄렁껄렁한데다 화끈하고 걸걸한 모습으로 대중들의 눈도장을 확실하게 찍어버린 이하늬는 그 후 ‘열혈사제’, ‘원 더 우먼’으로 그녀만의 확실한 이미지를 만들었다. 

 

당혹스런 순간에 껄껄 웃으며 눙치기도 하는 그 털털한 매력은, 노력해도 좀체 나아지지 않는 현실에 허덕이는 서민들에게 잠시나마 웃음꽃을 터트리게 하는 시원 통쾌한 경험들을 가능하게 했다. 서민들이 갖는 곤궁함에 대한 공감(극한직업)과 억울함에 대한 카타르시스(열혈사제)를 풀어주는 아이콘으로 떠오른 것. 게다가 일에 있어서도 또 사랑에 있어서도 좀 더 능동적으로 삶을 개척해 나가려는 현대 여성들의 판타지 또한 담아냈다. 

 

그래서일까. ‘밤에 피는 꽃’은 바로 이 이하늬의 이미지를 사극 버전으로 가져와 극대화한 작품처럼 보인다. 조선사회의 백성들이 마주하고 있는 건 다름 아닌 곤궁함과 억울함이 아닌가. 마땅히 국법이 해결해야 하는 사안들이고 그래서 금위영 종사관 박수호(이종원) 같은 공권력을 올바르게 쓰려는 자가 등장하지만, 그 역시 이 사안들을 해결하지 못한다. 아니 그 역시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국법에 의해 억울하게 희생당한 피해자다. 그리고 그건 조여화 역시 마찬가지다. 그래서 함께 공조해 백성들의 억울함을 풀어주는 일을 하던 그들은 그 과정에서 그들 역시 피해자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그 사건의 진실을 향해 다가간다. 타인을 돕는 일이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는 일로 연결된다는 건, 정의가 어떤 식으로 작동하는가를 잘 보여준다. 정의로운 사회를 구현하는 일은 그렇게 모두가 행복한 삶을 위한 일이 된다.

 

이하늬라는 밝은 페르소나에 대중들이 빠져드는 건, 그만큼 어두운 현실 속에서도 그 속에 침잠하기보다는 웃으며 그걸 이겨내려는 욕망에서 비롯된다. 그녀의 쾌활한 웃음소리 속에 종이 한 장 차이에 불과한 비극과 희극이 교차한다. 찰리 채플린도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고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그래서 진정한 페이소스가 있는 코미디는 웃음 끝에 남는 비극적 여운의 맛이 있기 마련이다. 이하늬가 주는 털털한 웃음 끝에도 그런 맛이 느껴지는데 그것은 비극을 애써 희극으로 승화해내려는 몸부림 같은 것이 그 코미디 연기 속에 담겨 있어서다. 우리도 다르지 않다. 긴긴 밤을 마주하면서 반드시 오고야말 새벽을 기다리고, 춥디 추운 겨울을 통과하며 그 동토의 얼음을 뚫고 피어날 꽃을 기다리듯이 우리 모두는 매일 매일의 수고로움을 마다하지 않지 않은가. 그러니 웃을 일이다. 때때로 무거운 어둠이 어깨를 짓누른다 해도 그 뒤에는 종이 한 장 차이로 다가올 빛이 기다리고 있다는 걸 굳게 믿으며.(글:국방일보, 사진:MBC)

‘더 커뮤니티’, 첨예한 이념의 차이를 이들은 넘어설 수 있을까

더 커뮤니티

‘모든 남성은 잠재적 가해자다.’ 함께 저녁식사를 하며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대화를 하던 그들은 커뮤니티 센터 안내방송이 나오자 일순 얼어붙었다. 이 커뮤니티에 들어온 그들에게 사전에 그런 다소 도발적인 질문을 던졌는데, 놀랍게도 12명 중 두 사람이 ‘그렇다’고 답했다는 것. 화기애애하던 분위기는 침묵으로 바뀌었다. 성향을 숨긴 채 화기애애한 대화를 하던 사람들 중에 그런 답변을 한 이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생겨난 변화다. 

 

이 장면은 웨이브 오리지널 예능 <사상검증구역 : 더 커뮤니티(이하 더 커뮤니티)>라는 서바이벌 프로그램이 앞으로 무얼 보여주려 하는가를 압축해 보여준다. 이 서바이벌 예능은 ‘정치’를 소재로 했다. 저마다 다른 성향과 생각을 가진 12명을 한 자리에 모아 놓았고, 합숙을 하며 주어진 미션들 속에서 끝까지 살아남으며 더 많은 돈을 분배받는 게 목표다. 매일 리더를 뽑고 당연히 리더는 그만한 메리트와 더불어 더 많은 돈을 자신이 가져갈 수 있는 기회를 얻는다. 권력을 쥐기 위한 치열한 정치 대결이 펼쳐지게 되는 이유다. 

 

프로그램은 이들을 정치, 젠더, 계급, 개방성이라는 네 개의 키워드로 각각 좌파와 우파, 페미니즘과 이퀄리즘, 서민과 부유 그리고 개방과 전통으로 어느 쪽에 어느 만큼의 성향을 갖고 있는가로 나눠 놓았다. 하지만 함께 모인 자리에서 이들은 자신들의 성향을 드러내지 않으려 애쓰고 중도적 입장의 가면을 쓰지만, 밤에 각자 방에서 채팅창으로 펼쳐지는 익명의 토론에서는 저마다의 다른 성향들을 드러낸다. ‘모든 남성은 잠재적 가해자다’ 같은 젠더 주제에 대한 다소 과격한 질문에 ‘그렇다’고 답한 이가 2명이나 존재한다는 사실에 이들이 놀라고 침묵하게 되는 이유다. 겉보기와는 다른 생각의 차이가 드러나는 어떤 순간에 야기되는 갈등들이 예고되는 장면이다. 

 

흥미로운 건 이 프로그램이 마치 서로 다른 성향을 가진 이들이 대화와 타협을 통해 하나의 작은 사회를 만들어가는 과정처럼 그려진다는 점이다. 첫 날의 리더를 뽑고 돈을 나누며 그 날 저녁 식사 비용으로 각자 받은 돈에서 몇 프로씩 나누어 낼 것인가를 결정하는 과정은 그래서 마치 하나의 정부가 만들어지고 세금을 몇 프로로 거둘 것인가를 결정하는 과정처럼 보였다. 또 이튿날 미션으로 야외 노동을 하러 가기 위해 인원을 선발하는 과정 역시 노동을 분배하는 과정처럼 보인다. <더 커뮤니티>는 이처럼 서로 다른 성향과 이념을 가진 이들이 함께 사회를 만들어 살아갈 수 있는가를 테스트하는 ‘사회 실험’ 같은 흥미로움을 담고 있다. 

 

하지만 동시에 이 프로그램은 ‘서바이벌’과 ‘리얼리티쇼’라는 예능적 성격도 놓지 않고 있다. 누군가의 정치, 젠더, 계급, 개방성의 성향을 정확히 맞추면 그 사람을 탈락시키고 돈을 벌 수 있는 룰이 주어졌고, 협동을 방해하기 위한 ‘불순분자’로 불리는 스파이도 심어 놓았다. 또 앞서 젠더 문제 같은 민감한 사안들에 대한 자신들의 성향을 드러내는 토론 시간(익명으로 펼쳐지지만 시청자들은 알 수 있다)이나, 그들이 그 안에서 연합을 하거나 배신을 하는 모습이 가감없이 잡히는 리얼리티쇼의 자극점들도 빠지지 않는다. 

 

그간 서바이벌이나 리얼리티쇼라고 하면 소재적으로 음악오디션이나 연애 리얼리티, 게임, 피지컬 같은 영역에 머물러 있었던 게 사실이다. 그런 점에서 <더 커뮤니티>는 서바이벌 장르에 ‘정치’ 같은 지금껏 시도되지 않았던 영역을 넓혀 놓았다는 데 의미와 가치가 있다. 특히 이념이나 사상처럼 한국사회에서 너무나 예민해 친구들끼리도 만나 속으로만 생각할 뿐 밖으로 내놓지 않았던 그 성향을 가감없이 꺼내놓고 부딪쳐 본다는 점은 의미있는 시도라 여겨진다. 

 

다만 우려스럽게 여겨지는 점은 정치, 젠더, 계급, 개방성으로 나눠 놓은 성향에 있어서 다른 것들은 어느 정도 가려질 수 있지만, 눈에 먼저 띠게 되는 남녀라는 성별이 혹여나 성대결 구도로 첨예화되지는 않을까 싶은 점이다. 물론 성별에 따른 성향이 모두 같다고 볼 순 없지만 이를 하나의 구별점으로 삼아 연합을 하거나 대결갈등을 만들려는 흐름들이 보이기도 해서다. 또 아무래도 이슈를 끌기 위해 가장 먼저 젠더 관련 질문들로 그 성향을 끄집어내 자극적인 화제성을 만들려는 것도 다소 우려되는 지점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궁금해지는 건, <더 커뮤니티>가 우리 사회의 축소판처럼 가져온 이 서바이벌 실험이 과연 어떤 결론으로 끝을 맺을까 하는 점이다. 프로그램은 최종 미션으로 출연자들이 서로의 신뢰를 확인하는 ‘신뢰게임’을 한다고 정해놨다. 그것이 말해주는 건 이 과정을 통해 성향이 다른 이들이 서로 다르긴 해도 신뢰할 수 있는가 하는 질문에 대한 답이면서, 실제 이념과 생각으로 첨예한 대립을 보이고 있는 우리 사회에도 어떤 가능성이나 희망이 존재하는가를 들여다보는 일이 아닐까. 과연 어떤 결과가 나타날지 몹시 궁금해지는 이유다. (사진:웨이브)

‘밤에 피는 꽃’, 드라마가 꽃 필수록 배우들의 매력도 꽃이 핀다

밤에 피는 꽃

낮에는 과부 밤에는 서민영웅. MBC 금토드라마 <밤에 피는 꽃>은 홍길동의 과부 버전 같은 느낌으로, 조여화(이하늬)를 지칭하는 제목으로 시작했다. 이 의미는 포스터에도 그대로 담겼다. 밝은 낮 조여화가 수절 과부로서 집안에 갇힌 거나 마찬가지로 앉아 있지만, 지붕 위에는 복면을 한 조여화가 달을 배경으로 서 있는 모습이 그것이다. 그건 밤이 되어야 비로소 진면목을 드러내는 조여화의 모습, 그건 제목 그대로 밤에 피어나는 꽃이다. 

 

열녀의 길을 요구받는 수절과부와 담장을 넘어 영웅적인 일들을 해내는 조여화의 대비효과가 만들어내는 극적 재미. 그것이 <밤에 피는 꽃>이 가진 서사의 핵심이지만, 이 드라마는 여기서 머물지 않고 조여화와 금위영 종사관 박수호(이종원)의 15년 전 가족들에게 벌어진 사건과 연결되며 그 진실을 파헤쳐가는 이야기로 펼쳐진다. 깜깜한 밤처럼 베일에 가려져 있던 진실이 꽃처럼 피어난다는 의미로 제목이 다시 읽히게 된 이유다. 

 

그런데 이제 시청자들은 <밤에 피는 꽃>의 의미를 조여화와 박수호 역할을 연기하는 이하늬와 이종원의 케미가 꽃 핀다는 의미로도 읽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사실 이 작품의 핵심적인 재미는 조여화라는 캐릭터의 매력에 기대고 있다. 겉으로 보기엔 평화로워 보이지만 이 작품 속 인물들이 겪은 일들은 집안이 풍비박산나는 참변에 가깝다. 조여화는 오빠가 실종됐고, 원치않는 좌상 집 며느리가 되지만 남편이 사망함으로써 첫날밤도 치르지 못하고 수절과부가 된다. 박수호의 집안은 누군가에 의해 도륙당한다. 모두가 죽고 박수호만 박윤학에 의해 가까스로 살아남는다. 

 

이런 비극을 밑그림으로 두고 있지만, <밤에 피는 꽃>은 무겁지 않고 지나치게 진지하기보다는 발랄하고 경쾌하게 그려진다. 거기에는 이하늬라는 배우가 가진 밝은 에너지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 밤 같은 비극의 주인공이지만, 그 안에서도 밝은 모습을 잃지 않는 캐릭터가 조여화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캐릭터가 이토록 씩씩하고 유쾌하게 그려져 비극을 희극처럼 그려낼 수 있게 된 데는 이하늬의 공이 적지 않다. 밤의 비극을 웃음 꽃 피는 희극으로 그려낸이하늬의 존재감을 제목을 통해 읽어낼 수 있게 되는 이유다. 

 

동시에 상대 역할인 박수호는 초반에는 다소 자신의 임무에만 충실한 종사관으로서 그 내적 감정들이나 인간적 면모가 숨겨졌지만, 조여화와 함께 사건을 수사하고 공조하면서 점점 사적 감정까지 느끼게 되는 모습을 통해 그 매력을 발산하기 시작했다. 무표정해 보였던 얼굴이 조여화와 우연히 갖게 되는 스킨십 같은 상황들을 통해 감정이 드러나기 시작한 것. 비극의 주인공으로서 밤 같은 무거움에 짓눌려 왔던 감정들이 조여화를 통해 꽃피고 있다고나 할까. 

 

초반에는 진중했지만 차츰 말랑말랑해지기도 하는 면면들을 드러내기 시작하면서 박수호를 연기하는 이종원에 대한 시청자들의 반응도 커지고 있다. 이것은 이하늬가 보여주는 연기와 정반대의 흐름으로 두 사람이 케미를 맞춰가는 과정을 담고 있다. 즉 이하늬가 연기하는 조여화가 초반에는 밝고 가벼운 모습에서 점점 과거사를 알아가며 무겁고 진중한 모습으로 변해간다면, 이종원이 연기하는 박수호는 초반에는 무겁게 등장하지만 차츰 조여화와의 케미를 통해 말랑말랑한 사적 감정들을 드러내기도 하는 모습으로 변해가기 때문이다. 

 

결국 연기도 작품도 앙상블에서 완성된다고 하던가. 조여화와 박수호가 함께 수사를 공조하면서 서로에 대한 감정을 쌓아나가는 그 케미는 다름 아닌 이하늬와 이종원의 연기 앙상블로 완성되어가고 있고, 그것은 결국 이들이 끝내 어두운 밤처럼 가슴 한 켠에 두고 있던 미혹들을 밀어내고 진실도 사랑도 꽃피우는 이야기의 앙상블로 이어지고 있다. 제 아무리 어두운 밤이라고 해도 피어나는 꽃처럼, 무거운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어떤 꽃의 희망과 위로를 전해주는 드라마 <밤에 피는 꽃>의 이야기가 깊어질수록 배우들의 연기 꽃도 활짝 피어나고 있다. (사진: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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