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추얼 아티스트가 열고 있는 새로운 세계

최근 SM엔터테인먼트의 첫 버추얼 아티스트 나이비스가 싱글 ‘Done’을 발표하며 본격행보에 나섰다. 버추얼 휴먼이 붐처럼 등장하고 있는 시대, 버추얼 아티스트의 심상찮은 행보는 음악산업에 어떤 변화를 예고하는 걸까. 

나이비스

에스파의 세계관에서 빠져나온 나이비스

에스파는 그 세계관 자체가 버추얼 세계와 맞닿아 있는 걸그룹이다. SM엔테터인먼트는 에스파에 일종의 아바타 개념인 ‘아이(ae)’ 캐릭터를 덧붙였다. 그래서 에스파의 멤버는 카리나, 윈터, 지젤, 닝닝과 더불어 이들과 연결되어 버추얼 월드에 존재하는 ae들을 합쳐 총 8명이다. 리얼 월드와 버추얼 월드. 에스파가 가져온 이 세계관은 이제 이들의 활동 역시 두 세계를 넘나드는 것이라는 걸 예고했다. 이건 에스파(aespa)라는 그룹명에도 담겨있다. ‘아바타 X 익스피리언스(Avatar X Experience)’의 첫글자를 딴 ‘ae’에 영단어 aspect(양면)가 합쳐진 이 이름은, 아바타를 통한 두 세계(리얼 월드와 버추얼 월드)를 경험하라는 의미가 들어있다. 

 

에스파의 등장과 함께 SM엔터테인먼트는 이례적으로 이러한 세계관을 담은 세 편의 에피소드를 내놨는데, 그건 실사와 버추얼 이미지, 툰 스타일 이미지들이 결합된 것이었다. 버추얼 월드에 존재하는 각각의 ae들과 소통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던 에스파는 블랙맘바의 등장과 함께 그 연결이 끊겨버리자 버추얼 세계로의 모험을 떠나 블랙맘바와 대결한다. 여기서 리얼 월드로부터 버추얼 월드로 인도하는 존재가 등장하는데, 그가 바로 나이비스다. 

 

에스파가 리얼 월드에서 버추얼 월드로 들어가 그 세계를 경험하게 해주는 서사를 보여준다면, 나이비스는 이제 정반대로 버추얼 월드에서 리얼 월드로 빠져나오는 이야기의 주인공이다. 본래 그 곳을 벗어나면 안되는 존재지만, 에스파를 돕기 위해 그 곳을 벗어나게 된 나이비스는 이제 가상과 현실을 넘나드는 활동을 시작한다. 나이비스라는 이름은 ‘사이버 항해사(cyber+Navigator)’라는 뜻이다. 최근 발표한 싱글 앨범 ‘Done’은 그래서 나이비스의 본격 독자 활동의 출사표다. 

 

나이비스가 이렇게 리얼 월드로 나오는 과정을 보면 그간 SM엔터테인먼트가 이 버추얼 아티스트에 얼마나 심혈을 기울였는가가 느껴진다. 에스파의 세계관으로부터 빠져나오는 과정은 사실상 앞으로 인공지능 기술에 의해 버추얼 휴먼이 어떻게 탄생할 것인가를 예고하는 대목 그대로다. 리얼 월드에 사는 이들이 각각 버추얼 월드에 연결되어 갖게 될 ae란 사실상 개인 데이터에 기반해 만들어질 아바타 개념이고, 데이터들이 점점 축적되고 스스로 학습을 하기 시작하면 어느 특이점에서 독자적으로 대화하고 움직이는 버추얼 휴먼이 가능할 거라는 상상이다. 그 세계를 빠져나오면 안되는 룰을 어기고 리얼 월드로 나오는 나이비스는 그래서 일종의 ‘자유의지’를 획득한 버추얼 휴먼의 스토리를 담고 있다. 하나의 세계관이지만, 버추얼 세계에 대한 비전과 철학이 들어 있는 것이다. 

 

나이비스라는 존재가 뛰어넘는 본질

“존재는 본질에 앞선다.” 에스파의 세계관에서 반복되어 등장하는 장 폴 사르트르의 이 문구는 나이비스가 앞으로 해나갈 행보와 이로 인해 변화할 음악산업(나아가 엔터 산업)을 예감하게 만든다. 가상이지만 그 존재가 실제 세상을 움직인다면 그것은 실존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는 걸 말해주는 이 문구는, 이미 우리네 현실이 되어가고 있다. 최근 봇물 터지듯 등장한 무수한 버추얼 휴먼들을 생각해보라. 이들은 갖가지 산업에 들어와 모델, 가수, 아나운서, 인플루언서 등등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무엇보다 놀라운 건 이들을 대하는 팬들의 자세다. 플레이브 같은 버추얼 아이돌을 떠올려보라. 물론 2D 캐릭터의 이면에 실제 아티스트들이 존재하는 그룹이지만 버추얼 캐릭터로만 하는 활동에도 팬들은 진짜 ‘존재’로서 이들을 받아들이고 열광한다. 라이브 방송을 통해 실시간으로 소통하기도 하고, 심지어 콘서트도 일반 아티스트들과 똑같이 한다. 물론 스크린을 통해 이뤄지는 것이지만, 관객들과 호흡을 맞춰가며 보여주는 무대는 여느 콘서트의 풍경과 다르지 않다. 그러니 가상이라는 본질은 적어도 팬과 호흡하는 이 과정에서는 무화된다. 실제 존재하는 아이돌 그룹으로서 세상을 움직이고 있으니 말이다. 

 

나이비스가 싱글로 내놓은 ‘Done’의 뮤직비디오를 보면 가상과 현실을 과감하게 넘나드는 이 존재의 야심이 엿보인다. 3D 실사 캐릭터와 더불어 애니메이션 주인공 같은 2D 캐릭터 등 다양한 형태로 변신하는 이른바 ‘플랙서블 캐릭터’를 선보인 것이다. 이러한 다양한 캐릭터들은 앞으로 나이비스의 활동이 다양한 매체에 맞게 가상과 현실을 자유자재로 오갈 것이라는 걸 예고한다. 예를 들어 가수로서 음악프로그램에 등장할 것이지만 향후 게임 속 캐릭터가 될 수도 있고, 웹툰의 주인공이 될 수도 있다. 실제 사람으로서는 할 수 없는 활동들(이를테면 가상 캐릭터로서의 활동 같은)을 나이비스는 할 수 있게 되리라는 것이다. 

 

버추얼 아티스트가 넘어가는 불편한 골짜기

과거 사이버 가수 아담이 처음 버추얼 아티스트의 탄생을 예고하며 등장했을 때 신기해하면서도 넘지 못한 벽은 이른바 ‘불편한 골짜기(uncanny valley)’였다. 실제와 너무 멀면 조악해서 또 너무 가까우면 마치 완벽한 마네킹이 사람 흉내내는 것 같아서 느껴지는 불편함이 그것이다. 이것은 결국 이러한 버추얼 이미지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과 감각의 문제인데, 최근 들어 가파르게 빠져들던 이 골짜기는 점점 완만해지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가상에 대한 낯설음이 과거에 비해 점점 흐려지고 있어서다. 

 

플레이브나 이세계아이돌 같은 2D 기반의 버추얼 아이돌에 열광하는 팬덤이 형성되고 있는 건, 이제 만화나 애니메이션 같은 캐릭터 산업을 통해 대중들이 이를 마치 실제처럼 과몰입하는 일이 그만큼 익숙해졌다는 걸 의미한다. 이들 툰스타일의 캐릭터들이 오히려 실사 3D 캐릭터보다 더 친숙하게 느껴지는 건 이들 캐릭터들이 실제 인간과 비교되기보다는 캐릭터로서 다가오기 때문이다. 

 

반면 최근 실사 캐릭터로 등장해 모델에서 가수까지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는 버추얼 휴먼들이 불편한 골짜기를 넘는 방법은 이미지 재현 기술을 통해서다. 말그대로 진짜 사람처럼 구현해내는 것. 그런데 여기서 ‘진짜 사람처럼’이라는 표현에는 인간다운 면 또한 포함하는 걸 말한다. 그래서 일부러 완벽한 피부보다는 주근깨가 있는 피부를 구현하기도 하는데, 이것은 버추얼 휴먼에 대한 거리감을 줄이려는 노력이다. 

나이비스가 툰스타일 2D와 캐주얼 3D, 실사 3D를 오가는 플랙서블 캐릭터를 내세운 것 역시 다양한 활동을 전제한 것이면서 동시에 그 캐릭터성을 전면에 끄집어냄으로써 불편한 골짜기를 넘으려는 전략 또한 담겨져 있는 선택으로 보인다. 이렇게 하면 실제 인간과의 비교를 슬쩍 벗어나 캐릭터로서 받아들여질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지금은 물론 버추얼 아티스트는 이를 디자인하고 애니메이션 작업을 통해 탄생하고 대중들과의 소통에 있어서도 아직 자율적으로 할 수 있는 단계에 이르지는 못했다. 하지만 데이터가 점점 축적되고 이를 바탕으로 하는 인공지능 기술이 진화하게 되면 자율성을 어느 정도 갖게 된 존재로 진화할 가능성이 높다. 에스파의 세계관을 빠져나온 나이비스가 이 새로운 특이점을 향해 가는 버추얼 아티스트의 세계로 우리를 어떻게 인도할지 기대되는 대목이다. (글:시사저널, 사진:SM엔터테인먼트)

이제 연예인급 영향력, 인기 유튜버에게 요구되는 책임감

유퀴즈 온 더 블럭

“이번 일로 저의 부족함에 대해 많이 느끼고 반성했습니다. 앞으로는 누군가에게 상처가 될 수 있는 말이나 행동을 하지 않도록 더 큰 책임감을 가지고 매사에 신중함을 가지겠습니다.” 인기 여행 유튜버 곽튜브는 자신의 채널에 장문의 사과문을 내놨다. 두 번째 사과문이었다. 최근 학교폭력과 같은 팀 멤버 왕따 가해 의혹으로 논란을 빚은 에이프릴 이나은과 함께한 이탈리아 로마 여행기에서 그가 했던 두둔 발언이 문제가 됐다. 

 

“학폭 이야기만 나오면 예민했다. 가해자라고 해서 널 차단했는데 아니라는 기사를 보고 풀었다. 오해받는 사람한테 피해주는 것 같았다.” 곽튜브는 해당 영상에서 그렇게 말했고, 여기에 이나은은 “진짜 나를 오해하고 차단했다는 게 그런 사람이 너무 많다는 게 속상했고 슬펐다”고 억울함을 토로했다. 물론 이나은의 학교폭력 논란은 최초 유포자의 명예훼손 혐의가 임전돼 누명을 벗었지만, 같은 팀 멤버에 대한 왕따 가해 의혹은 아직 풀리지 않은 상태다. 

 

이 상황에서 올린 곽튜브의 영상은 일파만파의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마치 가해자를 두둔하는 내용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사실 유무를 떠나서 이런 과감하고 어찌 보면 무모한(?) 영상을 올린 것 자체가 곽튜브에게는 치명적인 일이었다. 가해자를 두둔하는 듯한 내용은 2차 피해를 불러 일으킬 수 있는 사안이다. 또 비슷한 상황에 처한 피해자들에게는 상처에 소금을 뿌리는 일이 될 수 있다. 그래서 서둘러 사과하고 영상을 내렸지만 비난이 쏟아졌고 2차 사과까지 하게 된 것이다. 

 

특히 곽튜브는 자신이 겪은 학교폭력 피해 사실을 이야기함으로써 이 문제에 대한 경각심을 높였던 인물이기도 하다. ‘유퀴즈 온 더 블럭’에 출연해 그 사실을 고백한 후 곽튜브에 대한 대중적 인기도 급상승했다. 교육부가 내놓은 학교폭력 캠페인 공익광고에 곽튜브가 출연하게 된 것도 그런 이유였다. 하지만 이번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지자 교육부도 이 공익광고를 비공개 처리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이번 사태에서 주목해서 봐야 하는 건, 이제 유튜버라고 하더라도 그만한 영향력을 갖게 되었다면 책임 또한 커지게 됐다는 사실이다. 유튜브는 상대적으로 소재나 표현에 있어서 자유로운 채널이라고 여겨져온 바 있다. 지상파와 케이블, 종편 같은 리니어 미디어들은 ‘공영성’이라는 개념의 영향력으로 인해 제재와 규제의 대상이 되어왔고, 방송 수위나 표현도 제한되어 왔다. 하지만 최근 들어 유튜브 채널에서 벌어지는 연이은 논란들은 이제 이러한 책임이 유튜브에서도 요구되기 시작했다는 걸 말해준다. 

 

이런 징후가 본격적으로 드러난 건 지난 5월 피식대학이 겪은 지역 비하 논란에서다. 영양군에서 찍은 영상이 지역 비하 논란에 휘말리면서 피식대학은 구독자들이 대거 이탈하는 사태를 겪었다. 작년 백상예술대상에서 상을 받을 정도로 피식대학은 대중적 영향력이 있는 채널로 인정받은 바 있다. 그러니 그만한 책임도 따른다는 걸 이 사태는 보여줬다. 물론 방심위의 제재 바깥에 있지만 구독자 이탈로 나타나는 결과들이 이 영향력과 책임의 상관관계를 말해준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예능 ‘더 인플루언서’도 치열한 인플루언서들의 서바이벌 대결 끝에 오킹이 우승하게 되면서 프로그램도 악영향을 받았다. 오킹이 코인 사기 연루 의혹에 휩싸였기 때문이다. 프로그램은 내놓고 홍보할 수 있는 상황이 될 수 없었고, 프로그램 공개 전 비밀 유지를 어긴 스포일러 논란이 터지면서 오킹은 계약 위반으로 상금을 받지 못하는 일도 벌어졌다. 

 

인기 유튜버들에게서 터져나오는 일련의 논란들은 이제 이들의 위상이나 영향력이 연예인급으로 높아진 현실을 보여준다. 실제로 곽튜브의 경우 유튜브만이 아니라 지상파, 케이블, 종편을 오가며 존재감을 드러내는 방송인으로 그 존재감을 드러내는 인물이다. 유튜브라고 해서 면죄부를 받거나 혹은 하고 싶은대로 방송을 하는 시대는 조금씩 저물어가고 있다. 그것이 구독자 이탈 같은 실질적인 논란의 제재로까지 이어지고 있으니 말이다. (사진:tvN)

나이비스

텅 빈 밤거리를 한 소녀가 걸어간다. 음악이 흐르고 그 소녀의 모습은 실사에서 툰스타일의 2D로 또 캐주얼 3D로 변신한다. 변신할 때마다 전자음이 들리고 픽셀이 흩어지고 뭉쳐지는 이미지를 통해 이 존재의 특이성이 설명된다. 이 ‘Done’이라는 첫 번째 싱글 앨범 뮤직비디오에 등장하는 이 소녀의 이름은 나이비스(naevis)다. SM엔터테인먼트의 에스파의 세계관에서 탄생한 버추얼 아티스트다. 사람은 아니지만 인공지능과 VFX 기술이 결합되어 만들어낸 버추얼 아티스트. 그가 공식적으로 첫 번째 싱글을 내고 본격 활동을 시작한 것이다. 

 

최근 몇 년 간 인공지능을 활용한 보이스 기술과 다양한 모델링 기술의 비약적인 발전으로 버추얼 휴먼이 점점 늘어났다. 그들은 모델로 활동하기도 하고, 인플루언서, 유튜버로 활동하기도 하며 음원을 내고 가수로 활동하는 아티스트들도 생겨났다. 사실 1998년 국내1호 사이버가수로 아담이 등장했을 때만 해도 약 20여년만에 이런 놀라운 기술발전에 의한 진화가 생겨날 거라고는 예상하기는 어려웠다. 물론 당시 사이버 가수 아담 시연회를 통해 내놓은 아담소프트측의 선언은 이 분야에 대한 창대한 꿈이 담겨 있었던 건 사실이다. 당시 아담소프트 대표는 이렇게 말했다. “기술적인 디지털 혁명의 시대는 이제 문화혁명으로 진행하고 있다. 갓 탄생한 아담은 외형이 완성된 수준에 불과하지만 앞으로 인공지능, 목소리합성 등의 기능을 부여해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명실상부한 문화의 전사로서 발전시킬 것이다.” 

 

당시 아담은 그 차별성 때문에 괜찮은 성과를 냈다. 1집 앨범을 20만장 판매했고, 광고 모델도 했으며 갖가지 캐릭터 상품도 만들어졌다. 하지만 창대했던 포부와 달리 지속 가능하기는 어려웠다. 그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아직까지 이러한 꿈을 실현하기에는 기술력이 따라주지 않았기 때문이고, 또 하나는 이러한 버추얼에 대한 대중적 인식이 아직까지는 낯설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로부터 26년이 훌쩍 지난 현재는 어떨까. 나이비스를 보면 저 아담의 탄생과 함께 꾸었던 꿈이 이제 막 열리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진화한 VFX 기술과 인공지능 기술이 어우러져 거의 실제와 가까운 3D 캐릭터 애니메이션이 구현되고 있고, 목소리 또한 인공지능 보이스로 만들어져 인간과 기계 사이의 어느 지점을 들려주는 듯한 몽환적인 느낌을 구사하고 있다. 나이비스의 싱글 ‘Done’ 뮤직비디오는 바로 그걸 시연해 보여주는 것으로 드디어 이 세계가 본격적으로 열렸다는 걸 말해준다. 

 

앞서 아담이 처했던 두 가지 장벽으로서 기술력과 가상에 대한 대중적 인식이 완벽하게 해결됐다고 보긴 어렵다. 두 가지 장벽이 야기하는 건 바로 ‘불편한 골짜기(uncanny valley)’다. 아이러니하게도 버추얼 아티스트는 실제와 너무 멀어져도 또 실제와 너무 가까워져도 불편함이 느껴진다. 너무 먼 건 조악해서 너무 가까운 건 마치 완벽한 마네킹이 사람을 흉내내는 것처럼 보여서 오싹한 기분을 준다. 이것은 결국 인간이 아닌 버추얼 형상에 대해 우리가 갖게 되는 인식과 감각의 문제인데, 이를 넘어서기 위한 방법들은 꽤 오래 전부터 고민되어 왔다. 그 하나는 차라리 인간과는 다른 존재라는 걸 드러내는 방식이다. 키시로 유키토가 그린 만화 ‘총몽’을 원작으로 한 로버트 로드리게즈의 실사영화 ‘알리타’는 인간의 두뇌를 가진 기계 소녀 알리타의 눈을 비정상적으로 큰 캐릭터로 구현했는데 이건 원작이 그렇기도 하지만 다분히 불편한 골짜기를 넘기 위한 의도가 들어있었다. 인간과 다른 존재라는 걸 아예 캐릭터 이미지로 드러냈기 때문에 보는데 별 불편함을 주지 않았던 것이다. 나이비스의 뮤직비디오에서 굳이 툰 스타일 2D와 캐주얼 3D를 혼용하는 건 비즈니스적 포석의 의미도 있지만 바로 이런 불편한 골짜기를 넘어서려는 의도도 깔려 있다. 국내에서 아직까지 가장 성공한 버추얼 아티스트로 꼽히는 플레이브가 가진 강점도 바로 여기서 나온다. 실사 3D가 아닌 툰 스타일의 2D캐릭터를 전면에 내세우고 실제 아티스트들이 뒤에서 본체로서 활동하는 방식이 그것이다. 개념 자체는 사이버 가수 아담과 똑같지만 달라진 기술력이 완벽한 차이를 만들었다. 리얼 타임 기술을 통해 실시간 소통과 콘서트도 가능한 플레이브는 오히려 인간적인 면을 내세움으로써 이 가상 개념에 팬들을 과몰입하게 만들었다. 

 

나이비스는 이 불편한 골짜기를 넘기 위해 꽤 공을 들여 탄생했다. 일단 바로 등장한 게 아니라 에스파(aespa)의 등장과 함께 그 세계관을 통해 먼저 모습을 드러냈다는 점이 그렇다. 에스파는 사실상 태생적으로 바로 이 버추얼 아티스트의 세계를 열겠다는 SM엔터테인먼트의 의지가 담긴 걸그룹으로 세계관 자체가 리얼 월드와 버추얼 월드가 연결되고 결합되는 형태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에스파라는 그룹명 자체가 그렇다. 에스파(aespa)는 ‘아바타 X 익스피리언스(Avatar X Experience)’를 표현한 ‘ae’에 영단어 aspect(양면)이 합쳐진 이름이다. 이를 풀어서 해석하면 아바타를 통한 두 세계(리얼 월드와 버추얼 월드)를 경험하라는 뜻일 게다. SM엔터테인먼트는 에스파의 등장과 더불어 그 세계관을 담은 세 개의 에피소드를 내놨는데 거기에는 리얼 월드에 사는 이들과 짝을 이루어 버추얼 세계에 생겨난 ‘아이(ae)’라는 일종의 아바타 같은 존재들이 등장한다. 그래서 애초 에스파의 멤버는 카리나, 윈터, 지젤, 닝닝만이 아니라 이들과 각각 연결된 ae들을 합쳐 8명이다. 아바타 개념의 버추얼 아티스트들을 포함하고 있다는 것이다. 나이비스는 이 세계관 속에서 리얼 월드의 에스파를 버추얼 월드로 인도하고 그 곳을 경험하게 해주는 중간 매개자로 등장한다. 본래 그 곳을 벗어나면 안되는 존재지만, 에스파를 돕기 위해 그 곳을 벗어나는데 이것은 버추얼 캐릭터가 일종의 ‘자유의지’를 갖는 과정처럼 그려진다. 나이비스는 이 에스파의 세계관을 통과해 리얼 월드로 나오는 것이고, 그래서 ‘Done’이라는 싱글은 이 버추얼 아티스트의 출사표가 되는 셈이다. 

 

“존재는 본질에 앞선다.” 에스파의 세계관에는 반복되어 나오는 장 폴 사르트르의 이 문구는 이 버추얼 아티스트의 세계에 대해 가상과 실재 사이의 경계가 사라질 거라는 걸 예고하고 있다. 본질이 버추얼이라도 그것이 세상을 움직인다면 실존이라고 할 수 있는 그 세계가 우리 눈앞에 성큼 다가와 있다. (글:이데일리, 사진:SM엔터테인먼트)

K푸드는 어떻게 예능과 함께 진화해왔나

이제 김치는 더 이상 외국인들에게 낯선 한식이 아니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예능 프로그램에서는 김치에 열광하는 외국인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게 됐다. 방송과 K푸드가 그간 해온 공생은 어떤 시너지를 만들었을까. 

서진이네2

‘서진이네2’가 보여준 비비고 컵떡볶이 PPL

“아 떡볶이 먹고 싶다-” tvN 예능 ‘서진이네2’에서 점심 한 타임을 보내고 숨을 돌리는 시간, 직원들이 모여 앉아 간식을 먹을 준비를 한다. 그런데 간식은 이들이 직접 해먹는 게 아니라 간편식으로 나온 컵떡볶이다. PPL로 들어간 이 장면에서 박서준은 친절하게 물을 붓고 전자렌지에 3분만 돌리면 완성되는 컵떡볶이를 시연해 보여주며 그 간편함을 설득한다. 컵떡볶이를 받아든 직원들 모두가 그 간편함과 맛에 감탄사를 연발한다. “진짜 신기하다. 그냥 소스넣고 물넣고 렌즈 돌리면 이렇게 음식이 완성되는거야?” PPL이지만 최우식의 이 한 마디에는 이 음식이 갖고 있는 장점이 다 들어있다. 한국인들도 한번쯤 편의점 같은 곳에서 사서 즉석으로 만들어 먹어보고픈 욕구가 생기는데, 외국인들은 어떨까. 한식이 전 세계에서 핫한 음식으로 떠오르고 있지만 만들어 먹기에는 어딘가 낯설었다면 이 간편함에 매료되지 않을까. 외국인들도 쉽게 알아볼 수 있을 커다란 문구로 비비고가 새겨져 있고 ‘Tteokbokki’라고 영문으로도 적혀져 있는 건 이제 이 상품이 겨냥하는 건 국내만이 아니라는 걸 말해준다. 

 

그런데 이 컵떡볶이 PPL은 의외의 효과 또한 제공한다. 그것은 이 ‘서진이네’라는 프로그램이 어찌 보면 하나의 거대한 한식 홍보 프로그램일 수 있다는 걸 가리는 효과다. 장 보드리야르가 디즈니랜드는 실제 미국 전체가 디즈니랜드라는 사실을 감추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라고 했듯이, 이 껍떡볶이 PPL은 이 프로그램 전체가 한식을 홍보하는 프로그램일 수 있다는 사실을 가리는 효과를 낸다. 물론 그렇다고 ‘서진이네’가 한식 홍보 이상의 예능적 재미요소를 갖추지 못했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서진이네’는 이서진의 성장사가 주는 묘미와 그가 동료 연예인들인 직원들(?)과 함께 낯선 타국에서 한식으로 장사를 하는 과정을 리얼리티로 보여주는 재미를 가진 예능 프로그램이다. 그렇지만 그 진화의 과정을 거치면서 자연스럽게 전혀 홍보라는 생각이 들지 않게 한식 홍보를 효과적으로 해내는 성과들을 내고 있다는 건 엄연한 사실이다. 

 

이것은 지난 ‘서진이네’ 첫 번째 시즌에서 멕시코 바칼라르로 갔을 때 시도했던 메뉴들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있다. 당시 ‘서진이네’ 음식점의 콘셉트는 분식이었고 그래서 등장한 음식들은 김밥, 떡볶이, 핫도그, 라면(일반 라면, 붉닭볶음면), 치킨이었다. 이 메뉴들은 어찌 보면 이미 전 세계의 K푸드 붐을 이끄는 음식들이라서 프로그램이 이를 수용한 면이 있지만, 다른 측면에서 보면 비비고가 컵떡볶이를 출시하듯이 간편식으로 상품화가 용이한 메뉴들이기도 하다. ‘서진이네’를 봐온 외국인 팬들이라면 첫 시즌에서 메뉴로 나왔던 떡볶이가 ‘컵떡볶이’로 나왔다는 사실에 호기심이 생길 수밖에 없다. 이만큼 자연스러운 한식 홍보가 있을까. 

 

K예능과 함께 하는 K푸드

‘서진이네’ 첫 시즌이 분식이라는 훨씬 진입장벽이 낮은 한식을 메뉴로 내세웠다면, 아이슬란드에서 펼쳐진 ‘서진이네2’는 이보다는 진입장벽이 좀 있는 한식들을 가져왔다. 추운 나라에서 뜨끈한 음식을 선보이겠다는 취지로 ‘서진뚝배기’라는 음식점을 열고, 꼬리곰탕, 뚝배기불고기, 소갈비찜, 돌솥비빔밥, 닭갈비, 순두부찌개, 육전비빔국수 등을 메뉴로 내놨다. 시즌1에 비해 보다 한식에 가깝게 접근한 것이고, 그래서 이 음식들을 주문에 맞춰 만들어야 하는 출연자들의 미션도 난이도가 높아졌다. 그런데 이렇게 보다 외국인들에게는 낯설 수 있는 한식을 꺼내온 건 두 가지 요인 때문이다. 그 하나는 이제 그만큼 외국인들에게 알려지게 된 한식에 대한 자신감이 생겼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방송적으로도 익숙한 맛이 아닌 새로운 맛에 반응하는 외국인들의 모습을 담겠다는 것이다. 

 

이 자신감은 ‘서진이네2’에서는 확실한 성과로 돌아왔다. 즉 보통은 입소문이 나지 않아 한산했던 첫날부터 오픈런이 이어졌고, 음식들에 대한 만족도는 거의 모두가 최상급이었다. 그래서 ‘서진이네2’의 관전 포인트는 장사가 잘 될까 안될까 하는 불안감을 극복해가는 과정이 아니라, 문만 열면 오픈런하는 손님들의 주문들을 과연 잘 소화해낼 수 있을까 하는 것에 맞춰졌다. 일 잘하는 고민시가 단번에 시청자들의 시선을 잡아끌었고, 이제 주방일에 익숙해진 출연자들의 부지런함에 사장인 이서진이 “쉬면서 해”라고 얘기하는 반전의 스토리텔링이 생겨났다. 즉 한식에 대한 좋은 반응은 거의 기정사실이 됐다는 것. 대신 이 인기를 감당할 수 있는가가 새로운 한식의 스토리로 떠올랐다. 

 

그런데 알다시피 이 복잡해 보이는 음식들도 대부분 간편식으로 상품화되는 추세다. 곰탕도 불고기도 비빔밥도 또 찌개도 이제는 저 ‘컵떡볶이’치럼 상품화가 가능해진 시대가 된 것이다. 그러니 K예능이 담아내는 음식 관련 콘텐츠들은 K푸드와 동반성장하는 시너지를 더욱 낼 수 있게 됐다. 그 간편식으로 한식에 익숙해진다면 그 다음은 직접 해먹는 단계로 넘어갈 수 있지 않겠는가. 

 

뉴욕에 뜬 한국식 기사식당의 위용

K푸드 열풍은 물론 드라마, 영화, K팝 같은 K콘텐츠가 촉발시켰다. 드라마, 영화 속에 등장하는 라면이나 김밥은 외국인들이 먹고 싶어하는 한식이 됐고, 좋아하는 K팝 아이돌이 먹은 음식들 역시 큰 화제를 불러 일으키며 외국인들을 입맛 다시게 했다. 여기에 음식을 소재로 하는 예능 프로그램들의 지분 역시 적지 않다. 특히 나영석 사단이 ‘삼시세끼’에 이어 ‘윤식당’ 그리고 ‘서진이네’로까지 이어온 일련의 음식 관련 여행 예능프로그램은 국내는 물론이고 해외에서도 좋은 반응을 얻었다. 특히 ‘서진이네’ 시즌1은 아마존 프라임에 소개되면서 화제가 됐는데 여기에 방탄소년단 뷔는 물론이고 ‘기생충’의 최우식 그리고 ‘이태원클라쓰’의 박서준 같은 글로벌 스타들이 포진한 건 우연이 아니었다. 또 백종원을 중심으로 내세운 ‘장사천재 백사장’ 같은 프로그램도 외국 현지에서 한식을 선보임으로써 보다 친숙하게 외국인들에게 다가간 면이 있다. 이 일련의 흐름을 CJ가 전면에서 끌어간 건 콘텐츠는 물론이고 푸드 산업 또한 유기적으로 연결된 그 시스템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K콘텐츠를 통해 낮춰진 한식 열풍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건 뉴욕 맨해튼에 지난 봄 등장한 한국식 기사식당이다. 어찌 보면 국내의 기사식당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 돼지불백이나 계란찜 같은 한국식 백반을 메뉴로 하는 이 기사식당은 개점부터 길게 늘어선 대기줄이 화제가 됐다. 그저 김밥이나 떡볶이 같은 이제는 일상화된 한식이 아니라 좀더 깊게 경험해보고 싶은 한식에 대한 외국인들의 욕구가 드러나는 대목이다. 뉴욕에는 뉴욕타임즈가 선정한 2024년 뉴욕 최고의 레스토랑 100곳에 한식당만 7곳이 들어 있다고 한다. 

 

‘서진이네2’에서 한식에 대한 외국인들이 갖는 호감을 가장 잘 드러내는 장면은 김치에 열광하는 모습이다. 한 때는 냄새 난다며 외국인들이 인상을 찌푸리기도 했던 음식이 아닌가. 그만큼 한식에 친숙해진 이들은 김치 맛에 깊게 빠져들고 있는데 김치 맛을 안다는 건 한식을 그만큼 이들 역시 이해하게 됐다는 걸 의미한다. 직접 집에서 김치를 담근다는 외국인들의 이야기나, 한식을 맛보기 위해 한국에 너무 가고 싶다는 이들의 이야기까지 K푸드는 어느새 세계인들의 음식으로 자리하게 됐다. 물론 여기에는 ‘서진이네’ 같은 전혀 한식 홍보 같지 않지만 그 효과는 200%인 방송과의 시너지도 빼놓을 수 없다. (글:시사저널, 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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