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만 잘 하면 이제 대중들도 연기돌을 받아들이는데

 

이제 아이돌이 연기를 하는 이른바 ‘연기돌’에 대한 막연한 편견과 선입견은 사라지고 있다. 이렇게 된 건 연기돌로 등장한 이들이 과거와 달리 상당한 준비를 하고 연기에 임하는 경우가 많아졌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최근 군 복무를 마치고 복귀한 임시완의 경우가 그렇다. 아이돌 그룹 제국의 아이들의 멤버였지만 임시완은 tvN 드라마 <미생>이나 영화 <변호인>, <불한당> 등을 통해 확고한 연기력을 인정받았다. 현재 방영되고 있는 OCN 드라마틱 시네마 <타인은 지옥이다>에서도 살인마들이 드글거리는 고시원에서 불편함과 함께 알 수 없는 분노의 감정을 간간히 드러내는 쉽지 않은 역할을 소화해내고 있다.

 

아이유도 연기력으로 인정받은 대표적인 사례다. tvN <나의 아저씨>에서 놀라운 몰입감을 선사한 아이유는 최근 종영한 <호텔 델루나>에서도 괜찮은 연기를 보여주며 가수만이 아닌 연기자로서의 입지를 확고히 했다. 물론 연기가 대단하다 말하긴 어려워도 어느 정도의 자기 역할을 제대로 함으로써 호평을 받는 연기돌들도 있다. JTBC <내 아이디는 강남미인>에 이어 MBC <신입사관 구해령>으로 ‘얼굴 천재’로 불리는 차은우가 그렇고, 최근 방영됐던 <열여덟의 순간>에서 첫 연기라는 게 믿기지 않는 몰입을 보여준 옹성우가 그렇다.

 

반면 한 때 인정받기도 했지만 또다시 연기력 논란의 도마에 오르는 연기돌들도 있다. 최근 방영되고 있는 SBS <배가본드>의 배수지와 tvN <청일전자 미쓰리>의 이혜리가 그렇다. 배수지의 경우 영화 <건축학 개론>으로 국민첫사랑의 반열에 올랐고, <도리화가>에서도 꽤 인상적인 연기를 선보였지만, 드라마에서는 생각만큼 좋은 성과를 거두지는 못했다. 최근작이었던 <함부로 애틋하게>가 그렇고 지금 방영되고 있는 <배가본드>에서도 그다지 좋은 평가를 받고 있지는 못하고 있다.

 

이혜리의 경우, <응답하라1988>에서 덕선 역할로 호평을 받았지만 그 후에는 이렇다할 반응들이 별로 없었다. 최근 방영되고 있는 <청일전자 미쓰리>의 경우, 연기가 나쁘다고 보긴 어렵지만 과거 <응답하라1988> 덕선의 모습이 오버랩되면서 연기력에 대한 비판적 시선들이 나오고 있다.

 

즉 배수지나 이혜리는 이들이 연기돌이기 때문에 더 엄정한 비판의 시각을 갖게 된다기보다는 이미 한 번 연기로 주목받았던 이들이기 때문에 더 높은 잣대로 받는 비판이 더 크다. 워낙 처음 주목을 받았던 작품에서의 캐릭터가 두드러졌기 때문에 그 잔상이 강하게 드리워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새 작품의 캐릭터와 과거의 이미지가 겹쳐지며 몰입에 방해를 줄 수 있다. 시청자들로서는 비판적 시각이 나올 수밖에 없다.

 

생각해볼 건 배수지나 이혜리가 이번에 각각의 작품에서 연기하는 역할이 과연 과거 그들이 했던 인물들과 결이 같은가 하는 점이다. 만일 그 역할이나 인물의 성격이 비슷하다면야 그런 겹치는 이미지의 작품을 선택한 것이 문제가 되지만, 이들이 현재 선택한 작품들은 과거 그들이 보여준 역할의 인물들과는 사뭇 다른 게 사실이다.

 

<배가본드>에서 배수지는 국정원 요원을 연기하고, <청일전자 미쓰리>에서 이혜리는 말단 경리직원을 연기한다. 사뭇 다른 인물이고 직업군이라면 거기에 맞는 연기 고민이 따로 있었어야 하지 않을까. 배수지와 이혜리에게 나오고 있는 연기력 논란은 단지 연기돌이라는 선입견 때문이 아니다. 각자 맡은 작품의 새로운 역할에 대한 전략적인 연구가 충분히 되지 않은 데서 나온 결과다.(사진:SBS)

‘멜로가 체질’, 이병헌 감독의 드라마 도전 결코 실패 아닌 건

 

JTBC 금토드라마 <멜로가 체질>은 한 마디로 미스터리다. 보면 볼수록 매력적인 캐릭터들과 클리셰를 훌쩍 뛰어넘는 재기발랄하고 의미심장한 대사들의 향연이 펼쳐지지만 어찌 된 일인지 시청률은 급상승한 마지막회조차 1%대에 머물렀다. 심지어 1.0%로 자칫 1% 밑으로 떨어질 뻔한 회도 두 차례나 있다. 올해 영화 <극한직업>으로 1천만 관객을 훌쩍 넘긴 이병헌 감독의 드라마 도전. 어째서 시청률은 화답하지 않은 걸까.

 

우선 전제해야할 건 시청률과 완성도는 반드시 일치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주말드라마가 30% 시청률을 낸다고 해도 모두 완성도 높다는 평가를 받지 않듯이 시청률 1%짜리 드라마라고 해도 완성도가 낮다는 뜻은 아니라는 점이다. 시청률은 대중성의 잣대일 뿐 완성도와는 그리 상관이 없을 수 있다.

 

<멜로가 체질>은 완성도 높은 작품이다. 스스로가 ‘본격 수다 블록버스터’라고 기치를 내걸었듯이 속사포로 이어지는 대사들이 독특한 맛을 낸다. 인터넷에서 이미 회자되고 있는 <멜로가 체질>의 명대사를 검색해보면 그 말맛의 공력이 얼마나 깊은가를 새삼 확인할 수 있다. “그 마음이 하루 갈지, 천년 갈지, 그것도 생각하지 마. 마음이 천년 갈 준비가 돼있어도 몸이 못 따라주는 게 인간이야. 시간 아깝다.” 같은 대사나 “사는 게 그런 건가. 좋았던 기억 약간을 가지고 힘들 수밖에 없는 대부분의 시간을 버티는 것.” 같은 대사를 보면 우리가 보통의 드라마에서 접하는 틀에 박힌 대사와는 확연히 다르다는 걸 알 수 있다.

 

어찌 보면 남녀가 만나 사랑을 하고 헤어지고 아픔을 견디고 다시 재회하며 사랑을 이어가는 그 일상을 담아낸 이 드라마는 그 이야기 소재만을 두고 보면 상투적일 수 있다. 특별히 새로울 게 없어 보인다는 것이다. 그런데 막상 드라마를 보게 되면 그 상투적인 상황이 전혀 상투적이지 않다는 걸 깨닫게 된다. 결국 상투성을 깨는 건 한 걸음 더 깊게 들어가는 구체성과 디테일이라고 했던가. <멜로가 체질>은 특정 상투적 상황을 겉치레로 훑고 지나가지 않고 그 안에서 느끼는 인물들의 복합적인 감정들을 파고 들어간다. 그리고 그것이 오묘한 대사들로 드러난다.

 

상투성을 깬다는 건 실로 어려운 일이고 작품에 있어서 새로움을 더하는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일이지만 그것이 반드시 대중적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대중성은 어쩌면 적당한 상투성에 일정 부분의 반전이 더해질 때 더 효과를 보기 마련이다. 특히 영화처럼 완전한 몰입 상태로 보는 콘텐츠와는 조금 다른(물론 최근에는 드라마도 영화적 몰입을 요구하기 시작했지만) 드라마의 경우는 익숙한 상황 속에서도 기묘한 대사들로 그 상투성을 시종일관 뒤트는 것이 대중들을 유입시키는 데는 오히려 장애요소가 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른바 너무 꽉 짜인 완성도가 작품으로서는 좋지만 대중성에서는 좋지 않은 아이러니가 만들어지기도 한다는 것이다. 아마도 드라마 도전이 처음인 이병헌 감독에게 <멜로가 체질>의 낮은 시청률은 그래서 더더욱 미스터리로 다가왔을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너무나 틀에 박힌 상투성으로 심지어 30% 이상의 시청률을 내는 드라마들을 너무나 많이 봐온 필자에게 <멜로가 체질>은 구원 같은 작품으로 다가온다.

 

시청률 좀 낮으면 어떤가. 이렇게 하나의 세계를 완성도 높게 밀고 나가는 드라마는 분명 가치 있고 귀한 것이니 말이다. 모쪼록 이병헌 감독의 드라마 도전이 이번 한 번으로 끝나지 않기를 바란다. 시청률은 1%대였지만 공감은 100%였으니.(사진:JTBC)

‘천리마마트’, 의외로 잘되는 장난 같은 역발상의 카타르시스

 

도대체 정복동(김병철)의 속내는 뭘까. 그는 진짜로 천리마마트를 망하게 하기 위해 온 것일까. 아니면 그보다 큰 그림이 있는 걸까. tvN 드라마 <쌉니다 천리마마트(이하 천리마마트)>의 정복동이 천리마마트로 좌천되어 와 하는 일련의 행보들은 황당하기 그지없다. 만성적자에 허덕이는 마트에 직원들을 대거 신규채용한다. 그것도 정직원으로.

 

그런데 그 정직원의 면면이 황당하다. 정리해고당해 대리운전을 하며 살아가는 가장, 만년 가수지망생, 전직 조폭 심지어 어디서 왔는지도 모를 빠야족들까지. 게다가 이렇게 뽑은 오합지졸들을 쓰는 정복동의 용병술은 더더욱 황당하다. 전직 조폭에게 곤룡포를 입혀 고객만족센터에 앉혀놓고 부족한 카트 대신 빠야족들을 손님들에게 일대일로 붙인다.

 

하지만 정복동의 황당한 마트 경영은 이게 끝이 아니다. 사장이 대뜸 직원들을 모아놓고 노조위원장을 뽑으라며 그 특전으로 마치 프로레슬러들이 할 것 같은 벨트와 망토처럼 쓰는 깃발을 준단다. 이 자리를 놓고 벌인 전직 조폭 오인배(강홍석)와 빠야족장 피엘레꾸(최광제)의 대결을 벌인다. 결국 피엘레꾸가 오인배의 급소를 때려 이긴 후 노조위원장이 된다.

 

그런데 이렇게 황당해 보이는 정복동의 조치에도 불구하고 천리마마트의 매출은 급증한다. 놀랍게도 빠야족들이 의외의 능력을 발휘하며 손님들을 끌어 모아서다. 그들은 광어 해체쇼를 보여주기도 하고 인삼매장에서 손님들로 하여금 줄을 서서 사게 만들 정도의 수완을 발휘한다.

문석구 점장(이동휘)이 마트 활성화를 위한 문화행사를 추진하려 하자 정복동은 가수지망생 조민달(김호영)을 무대에 세우라는 파격적인 제안을 한다. 절대 안된다는 문석구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강행한 무대는 그러나 데스메탈을 하는 조민달의 그룹 무당스의 공연으로 찾아온 마을 사람들을 경악하게 만들었다. 그런데 이때 무대로 뛰어든 오인배가 조민달을 제압하자 민달의 아들이 올라와 눈물로 호소하는 장면을 연출하면서 마을사람들의 반응은 반전되었다. 그것이 하나의 뮤지컬 퍼포먼스라 오인하게 된 것. 결국 문화행사를 성공적으로 끝났다.

 

정복동은 심지어 천리마마트의 문이 너무 손님이 들어오기 쉬운 ‘개방적’인 구조라며 이른바 ‘친환경 에너제틱 회전문’으로 교체했다. 일단 들어가며 손으로 회전축을 돌려 충전이 되어야 문이 열리는 구조. 문석구는 그것 또한 말도 안 되는 조치라고 했지만 마침 천리마마트로 파견되어온 조미란(정혜성)은 그 문에 갇혔나 나온 후 의외로 재밌다며 다시 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결국 쉽게 들어가지 못하는 문이 오히려 천리마마트의 화제가 될 것을 예감하게 하는 장면이었다.

 

정복동이라는 미스터리 한 인물이 지시해 만들어내는 황당한 상황들은 우리가 웹툰 등을 통해 익숙한 병맛 가득한 장면들을 떠올리게 한다. 그런데 드라마로서는 공감하기 어려운 이 병맛 가득한 황당한 장면들이 보면 볼수록 피식피식 웃게 만들다가 급기야는 빵빵 터지게 만든다. 어째서 이 황당한 설정들이 묘한 카타르시스를 주는 걸까.

 

세상 일이 어디 쉬운 일이 있을까. 장사는 장난이 아니다. 게다가 죽어라 노력한다고 해도 잘 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그러니 노력하고 노력하고 또 노력하라는 것이 우리네 현실이 우리에게 강요하는 것들이다. 하지만 여기에 대해 <천리마마트>는 마치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대충 대충해도 다 잘 된다고. 아무렇게나 해도 잘 된다고. 그건 물론 현실성이 없는 이야기지만 잠시나마 그렇게 대충해도 잘 되는 천리마마트를 보는 맛은 강력한 판타지를 준다. 황당하지만 빠져드는 이유다.(사진:tvN)

‘청일전자 미쓰리’, 발랄한 코미디인줄 알았는데 짠내 가득

 

tvN 수목드라마 <청일전자 미쓰리>는 예고편만 보면 발랄한 코미디처럼 보인다. 일단 그 이야기 설정 자체가 그렇다. 청소기를 대기업에 납품하는 중소기업 청일전자에서 졸지에 말단 경리직원이 사장이 되어 회사를 살리기 위해 고군분투한다는 내용이 아닌가. 그 말단 경리직원 이선심 역할을 맡은 이혜리가 특유의 멍하기도 하고 맹하기도 한 표정으로 그 황당한 상황 앞에 서 있는 장면 자체가 코미디다.

 

그런데 들여다보면 볼수록 웃음보다는 짠내가 가득하고, 나아가 대기업의 갑질 횡포에 좌지우지되는 중소기업들의 부당한 하도급 현실에 화가 난다. 게다가 이러한 대기업의 갑질 횡포는 중소기업의 재하청을 받는 더 영세한 회사들로 줄줄이 도미노 쓰나미를 겪게 만든다. 대기업은 더 이상 하청을 주지 않겠다고 한 마디를 하는 것이고 또 하청 줄 회사들은 널려 있지만 그 한 마디에 중소기업들은 회사의 명운이 왔다 갔다 한다.

 

그러니 그 중소기업의 재하청을 받는 더 작은 회사들의 고충은 오죽할까. 청일전자 오만복(김응수) 사장은 갑질하는 TM전자 대기업의 횡포를 참다못해 이에서 벗어나기 위해 독자적인 청소기 생산을 해 중국에 납품하려 한다. 하지만 이 사실을 알고 있는 TM전자는 청일전자의 목줄을 잡아챈다. 중국 측에 손을 써 선적된 청소기들을 청일전자로 되돌려 보내게 한 것. 청일전자는 하루아침에 부도 위기에 처하고 사장은 잠적해버린다.

 

함께 일하던 경리부 언니 구지나(엄현경)에게 속아 2억 가까운 돈을 융통해 사주를 사버린 맹하기 그지없는 이선심은 중역들이 모두 달아나버린 청일전자에서 등 떠밀려 바지사장이 된다. 물론 늘 커피 심부름에 잡일만 하던 삶에서 벗어나 좀 더 주체적으로 살고픈 욕망이 선뜻 그로 하여금 사장직을 맡게 하지만 어디 현실이 생각과 같을까.

 

당장 쌓여진 청소기 재고들을 팔아서 돈을 융통해보려 하지만 망해가는데다 이름도 모를 중소기업의 제품을 사줄 이들이 만무다. 그래서 염치도 없이 그간 청일전자 역시 갑질을 해왔던 하청업체들을 찾아가 사정을 해보지만 욕만 먹는다. 급기야 청일전자 유진욱 부장(김상경)의 압력으로 무리해 기기까지 새로 들여놓았던 하청업체 사장은 비관해 죽음을 맞는다.

 

이 이야기는 그래서 TM전자와 청일전자라는 양자의 선악 혹은 갑을대결만을 다루지 않는다. 청일전자 역시 더 영세한 회사들의 갑이었고 TM전자처럼 갑질을 해왔다는 상황은 이 이야기가 하청에 재하청으로 이어지는 우리네 산업의 갑을관계 시스템 그 자체를 겨냥하고 있다는 걸 말해준다.

 

흥미로운 건 어쩌다 사장이 된 이선심과 어쩔 수 없다고는 해도 그 스스로도 갑질을 해온 유진욱 부장이 서로 손을 잡고 청일전자를 살리기 위한 한 걸음씩을 내딛는다는 사실이다. 당장 돌아올 어음을 막지 않으면 부도가 나게 된 상황에서 그 어음을 연장시키기 위해 유진욱 부장은 이선심의 설득으로 하청업체 사장들 앞에 무릎을 꿇고 사과한다.

 

아마도 이건 <청일전자 미쓰리>라는 드라마가 꿈꾸려 하는 새로운 상생구조의 첫걸음이 아닐까 싶다. 물론 저 거대한 대기업 TM전자는 요지부동 변하려 하지 않고 오히려 이런 상황을 이용하려 하지만, 가장 말단 직원으로 있었던 이선심이라는 순수한 인물은 유진욱 부장 같은 노련한 인물과 함께 지금까지와는 다른 방식으로 이 생존 시스템을 바꿔나가려 할 것이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이 드라마는 말단 경리직원을 사장이라는 자리에 앉혀 놓는 것으로 변화의 계기를 삼게 된 걸까. 그건 아마도 가장 밑바닥에서 일하는 그가 그 누구보다 을의 심정을 이해하기 때문이 아닐까. 그래서 <청일전자 미쓰리>는 코미디보다는 짠내 가득한 현실을 끌고 오면서도, 이들이 보여줄 을의 반격을 기대하게 만든다. 갑들의 방식과는 또 다른 을의 방식으로.(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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