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쌈마이웨이’ 박서준·김지원, 신데렐라 아닌 흙수저들의 연대

도대체 이 청춘들은 왜 이렇게 처연하면서도 예뻐 보일까. KBS 월화드라마 <쌈마이웨이>가 청춘멜로라는 장르로 이 만큼의 성과를 내고 있는 데는 아마도 이처럼 마음 속 깊이 응원해주고픈 예쁜 청춘들의 면면 때문일 게다. 3회 만에 10% 시청률(닐슨 코리아)을 넘겨버린 이 청춘멜로에는 무언가 특별한 것이 있다. 웃음이 나오다가도 짠해지고, 그 짠한 마음이 이들에 대한 지지로 이어지며, 나아가 이 흙수저들의 연대에 기꺼이 동참하게 만드는 특별한 힘. 

'쌈마이웨이(사진출처:KBS)'

<쌈마이웨이>가 가진 특별한 힘은 이들이 처한 흙수저들의 현실에서부터 비롯된다. 가난한 집안, 동생의 수술비를 구하기 위해 승부조작을 하게 된 동만(박서준)은 그 일 때문에 태권도를 더 이상 못하고 진드기 박멸하는 일을 하며 산다. 백지연 같은 아나운서가 꿈인 애라(김지원)는 스펙도 배경도 없어 백화점 안내데스크에서 “안녕하십니까 고객님”을 입에 달고 살아간다. 하지만 그건 그들이 원하는 삶이 아니다. 

옛 코치였던 황장호(김성오)로부터 격투기를 할 의향이 없냐는 제안을 받고 동만은 새삼 가슴이 뛰고, 애라는 사내방송팀에서 안내방송을 잠깐 하는 것만으로도 가슴 설레어했으나 그 자리조차 연줄이 없으면 잡을 수 없는 현실 앞에 절망한다. 결국 동만은 진드기 대신 격투기를 선택하고, 좌절된 방송의 꿈 앞에 무너져 내린 애라는 동만에 기대 눈물을 흘린다. 

<쌈마이웨이>의 이 흙수저 청춘들은 그러나 어린 시절부터 같이 자라난 친구들이라는 든든한 빽으로 이 힘겨운 현실을 버텨낸다. 동만과 애라 그리고 주만(안재홍)과 설희(송하윤)는 옥상에 마련된 자신들만의 아지트에서 술을 마시며 마치 아잇적 시절로 돌아간 듯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그것이 그들에게는 다시금 살아갈 수 있게 해주는 힘이 된다. 

흥미로운 건 이러한 흙수저의 현실 앞에서 서로를 의지하며 살아가는 이 청춘들의 관계는 친구 관계를 슬금슬금 넘어 이성으로 다가온다는 점이다. 그것을 새삼 알아차리게 되는 건 그들 앞에 금수저들이 다가와 호감을 드러내면서다. 동기의 결혼식에서 한 때의 시비 때문에 인연을 맺게 된 의사 박무빈(최우식)이 애라에게 대놓고 애정을 드러내기 시작하자 동만은 자꾸만 그게 마음에 쓰인다. 동만에게 옛 애인이었던 혜란(이엘리야)이 또 나타나자 애라는 그녀를 막아선다. 

<쌈마이웨이>는 그래서 청춘 멜로에 가끔 등장하던 신데렐라 이야기 따위는 지워버린다. 신발을 선물하는 박무빈 앞에서 애라는 아무런 설렘의 감정을 느끼지 못한다. 대신 자꾸만 자신을 터치하는 동만에게 자꾸 그러면 자신이 착각하게 된다고 선을 긋는다. 그건 애라가 그를 남자로서 점점 마음에 담고 있다는 뜻이다. 설희가 홈쇼핑 방송을 녹화 중에 체리가 목에 걸려 쓰러지자 주만은 마치 왕자님처럼 달려가 그녀를 구하고 테이블 위에 눕힌 채 인공호흡을 한다. 그 장면이 설희에게는 마치 백설공주의 한 장면처럼 오버랩된다. 물론 그것 역시 왕자님에게 천거되는 백설공주 이야기와는 완전히 다르다. 

<쌈마이웨이>는 그래서 많은 드라마들이 빈부 격차의 남녀를 세워 신데렐라와 백설공주 이야기를 전가의 보도처럼 꺼내놓던 것을 간단히 뒤집어버린다. 그들은 자신들을 구원해줄 누군가의 손길을 기다리지 않는다. 대신 흙수저들끼리 서로 지지해가며 스스로 자신이 하고픈 일을 해나가려 한다. 그것은 꿈에 대한 것이나 사랑에 대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시쳇말로 ‘쌈마이’ 같은 청춘이지만, 그래도 ‘마이웨이’를 간다는 의미가 담긴 <쌈마이웨이>는 그래서 우리네 청춘의 현실이 주는 무게감 속에서도 서로 사랑해가며 무너지지 않고 자신들이 하고픈 일을 찾아가는 그 과정을 그린다. 힘겨워도 웃으며 서로 어깨를 내어주는 그 모습들은 그래서 짠하면서도 보듬어주고 싶을 정도로 예쁘게 다가온다. 

아마도 <쌈마이웨이>는 청춘들에게는 공감 가는 자신들의 이야기일 것이다. 하지만 중년들에게도 이 드라마가 마음을 잡아끄는 건 거기 담겨진 어떤 부채감 때문이다. 저들이 겪고 있는 저 어려운 현실들이 어찌 보면 이전 세대들이 만들어놓은 잘못된 결과라는 부채감. 그래서 그들에 대한 지지의 마음은 더욱 커진다. 이것이 평범해 보이는 청춘 멜로 <쌈마이웨이>가 가진 특별한 힘의 원천이 아닐까.

‘엽기적인 그녀’, 주원은 이 난관마저 이겨낼 수 있을까

아마도 사극이어서 “이게 뭐지” 했을 시청자분들도 많지 않았을까. SBS 월화드라마 <엽기적인 그녀>는 우리에게는 레전드가 되어버린 영화 <엽기적인 그녀>를 원작으로 가져왔다. 하지만 영화가 현대극으로서 대학생들의 청춘 로맨스였다면, 드라마는 아예 사극으로 시대적 배경 자체를 바꿔놓았다. 

'엽기적인 그녀(사진출처:SBS)'

이런 선택을 했다는 것은 얼마나 드라마 <엽기적인 그녀>가 원작의 무게감을 덜어내려 안간힘을 썼는가를 잘 보여준다. 레전드가 된 작품과 비교되기 시작하면 리메이크된 작품의 운명이란 그 결과가 뻔해질 수밖에 없다. 원작에 대한 향수가 있는 시청자들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그러니 드라마는 아예 사극이라는 틀을 가져와 새로운 작품으로서의 <엽기적인 그녀>를 구상하게 됐을 게다. 

물론 사극이라고 해도 그 안의 이야기 설정은 원작 영화가 가진 것에서 많이 따왔다는 것을 첫 회를 통해서 확인할 수 있었다. 예를 들어 견우(주원)가 혜명공주(오연서)를 처음 만나 인연을 만드는 그 장면에서 술에 취한 그녀가 견우에게 토를 하는 대목이 그렇다. 영화에서는 지하철에서 그녀(전지현)가 견우(차태현)에게 토를 하는 장면이 나오고, 어쩔 수 없이 모텔에 그녀를 데려간 견우가 토 냄새를 지우기 위해 샤워를 하다 오해를 받는 장면이 이어진다. 이 이야기 모티브는 사극으로 리메이크된 드라마 속에서도 그대로 사용된다. 

사극으로 재해석되었다고 해도 이처럼 <엽기적인 그녀>는 원작의 그림자를 벗어나기가 쉽지 않다. 특히 원작을 통해 스타덤에 올랐던 전지현과 차태현의 그림자는 너무 짙다. 이런 한계를 갖고 있는 작품이지만 이렇게 드라마화되는데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건 중국이라는 시장을 빼놓을 수 없다. 중국에서 <엽기적인 그녀>에 대한 팬덤은 여전히 뜨거운데, 최근 전지현이 <별에서 온 그대>로 화제가 된 후 다시 이 작품까지 주목받았다. 그러니 이런 분위기에서 <엽기적인 그녀>의 리메이크는 꽤 괜찮은 기획으로 다가왔을 게다. 

물론 사드 배치로 인해 생겨난 한한령으로 <엽기적인 그녀>는 그 애초의 목표에 도달하지 못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이끄는 새 정부가 들어서면서 중국의 한한령은 조금 수그러드는 양상이지만 그 여파는 여전하다. 그렇다고 이미 만들어놓은 작품을 방치할 수도 없는 일, <엽기적인 그녀>는 그런 우여곡절 끝에 방영되게 됐다. 

원작이 드리우는 그림자의 부담감과 중국과의 관계변화에 의해 영향을 받은 콘텐츠라는 한계가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엽기적인 그녀>에 가능성이 없는 건 아니다. 그 가능성은 다름 아닌 주원이라는 배우에게서 나온다. <제빵왕 김탁구>부터 시작해, <각시탈>로 우뚝 서고, 쉽지 않을 거라는 <7급공무원>, <굿닥터> 그리고 모두가 실패를 예견하기도 했던 일드 리메이크작 <내일도 칸타빌레>까지 주원은 드라마 불패를 써온 배우다. 그러니 <엽기적인 그녀> 역시 이 난관들을 이겨낼 수 있지 않을까. 

이것이 그저 운이라는 뜻은 아니다. 주원은 캐릭터를 200% 살려내는 남다른 연기력을 통해 드라마의 성공까지 거뒀던 배우다. 이번 <엽기적인 그녀>에서도 상대 역할을 연기하는 오연서의 액션을 코믹하게 받아내는 주원의 리액션이 코미디의 상황을 더 빵빵 터트리게 만들어주고 있다. 물론 액면은 난관과 한계가 다분하지만 ‘그래도 주원이라면...’ 하는 생각이 드는 건 그래서다.

‘아버지가 이상해’, 이 시대에 가족드라마는 여전히 유효한가

과연 이 시대에도 가족드라마는 여전히 유효한가. 한 때는 가족드라마가 우리네 드라마의 근간이었던 시절이 있었다는 걸 떠올려보면 이 같은 질문은 우리 시대가 얼마나 많이 달라졌는가를 말해준다. 이른바 ‘가족 해체 시대’가 아닌가. 물론 뿌리 깊은 가족주의의 틀은 여전하지만, 우리가 사는 삶의 양태는 1인 가구로 대변되는 ‘개인주의’ 시대로 접어든 지 오래다. 홀로 살아가는 것이 하나도 이상하지 않은 시대에 가족의 가치를 내세우는 가족드라마의 풍경들은 그래서 낯설거나 혹은 향수어린 추억처럼 다가오는 면이 있다. 

'아버지가 이상해(사진출처:KBS)'

KBS 주말드라마는 그래도 이 가족드라마라는 틀이 여전히 유효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최후의 보루다. 그래서 세상은 바뀌어도 여기 포진되는 가족드라마들은 기본이 시청률 30%라고 얘기될 정도로 충성도 높은 시청층을 확보하고 있다. 현재 방영되고 있는 <아버지가 이상해> 역시 가뿐히 30% 시청률을 뛰어넘었다. 하지만 이러한 고정적인(?) 시청률이 그 드라마가 가진 가치의 바로미터가 되던 시절은 지나갔다. 더 중요해진 건 반응이다. 

그렇다면 <아버지가 이상해>는 어떤가. 괜찮은 시청률만큼 반응도 괜찮다. 이렇게 좋은 성적을 내고 있는 데는 이 가족드라마가 가족의 틀을 유지하면서도 해체되어가고 있는 현 가족의 양태들을 다양하게 담아내려 노력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변혜영(이유리)과 차정환(류수영)의 혼전동거와 ‘결혼인턴제(?)’ 같은 것일 게다. 사실 변혜영과 차정환의 사랑이야기는 양가가 반대하는 전형적인 ‘혼사장애’의 클리셰를 가져왔지만, 그 안에서 이들이 대처하는 방식은 실로 도발적이다. 

과거의 가족드라마였다면 아마도 혼전동거를 하다 들킨 자식들은 부모 앞에서 마치 죄인처럼 아무 말도 하지 못했을 게다. 하지만 변혜영은 부모를 힘겹게 한 부분에 대해서는 잘못했다 말하지만, 자신이 혼전에 동거를 하는 것이 무슨 잘못이냐고 똑 부러지게 자기 생각을 드러낸다. 사실상 동거는 가족주의의 틀을 깨는 삶의 방식이라고 볼 수 있다. 그래서 과거 가족주의 시대에 동거는 금기시되던 면이 있었다. 

하지만 결혼 자체를 선택으로 보는 현 가족 해체의 시대에 동거는 정반대로 결혼으로 가는 과정이 될 수 있다는 걸 이 드라마는 변혜영이라는 인물을 통해 보여준다. 변혜영은 그래서 결혼을 하더라도 혼인신고를 늦추고 1년 정도의 인턴 기간을 갖자는 도발적인 제안을 한다. 이것은 <아버지가 이상해>가 갖고 있는 가족주의와 가족 해체의 현실 사이의 어떤 타협점으로 보인다. 

이런 지점은 이 드라마 도처에서 발견된다. 안중희(이준)와 변한수(김영철)의 관계가 그렇다. 어느 날 변한수가 자신의 아버지라고 생각하고 찾아온(사실은 변한수의 친구 아들인) 안중희를 변한수는 자식으로 받아들인다. 그리고 어린 시절 안중희가 홀로 버려져 아버지와 하지 못했던 것들을 변한수는 기꺼이 그와 늦게나마 해주려고 한다. 엄밀히 말해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타인이지만 가족으로 받아들여지는 이 풍경은 가족 해체 시대에 대안적 가족의 모습을 보여준다. 점점 핏줄로부터 분리되고 있는 가족은 이제 타인을 끌어안는 방식으로 재구성되어가고 있다. 

가족이 만들어내는 때론 지지고 볶고 때론 따뜻한 위로가 되는 그 끈끈함은 여전하지만, 그들 각각이 처한 현실들이 어떤 면에서는 더 중요해진다. 이를테면 장남인 변준영(민진웅)이 처한 청년들의 취업문제가 그렇고, 나영실(김해숙)과 오복녀(송옥숙) 사이에 벌어지는 혼사갈등보다 더 크게 다가온 건 건물주와 세입자 사이의 갑을갈등이다. 가까스로 취업의 문을 넘은 변미영(정소민)은 가족이라는 틀로 갑자기 묶여진 과거 자신을 왕따시킨 김유주(이미도) 때문에 갈등을 겪는다. 그녀에게 가족이라는 틀은 오히려 원치 않는 관계의 시작으로 다가온다. 

<아버지가 이상해>의 이야기는 그래서 가족을 그리곤 있지만 달라진 현실들이 드리워져 있다. 똑같은 상황이라고 해도 과거의 가족드라마가 그리던 풍경과 <아버지가 이상해>가 보여주는 풍경이 다르다는 점은 이 드라마가 흥미로워지는 지점이다. 거기에는 과거의 가족주의적 가치와 현재의 개인주의적 가치 사이의 부딪침이 보인다. 과거의 가족드라마는 세대가 갈등을 해도 가부장적 가치로 회귀하며 끝을 맺었다. 자식들이 결혼을 하고 가족으로 다시 모여 잘 살게 되었다는 보수적인 가치관이 그것. 그렇다면 <아버지가 이상해>는 어떤 결말을 보여줄까. 여전히 가족주의의 가치로 회귀할 것인가, 아니면 현 시대의 새로운 가치들을 보여줄 것인가.

‘시카고 타자기’ 유아인이 그려낸 또 다른 청춘의 초상

일제강점기, 거사를 앞두고 청년들은 저마다 해방된 조국에서 꿈꾸는 행복에 대해 말한다. 일제에 빼앗긴 논마지기를 찾아 시골에 계신 노모를 모시고 살아가는 게 행복이라고 말하고, 순사가 꿈인 아들이 일본의 순사가 아니라 조선의 경찰이 되는 게 소원이라 말한다. 누군가는 어릴 적 첫사랑을 만나 신나게 연애하는 것이 행복이라고 말하고, 이제 막 딸아이의 아빠가 된 청춘은 그렇기 때문에 하루빨리 해방된 조국이 되어야 하기에 거사를 위해 달려왔다고 말한다. 

'시카고 타자기(사진출처:tvN)'

tvN 금토드라마 <시카고 타자기>의 전생으로 그려지고 있는 일제강점기의 청춘들이 말하는 해방된 조국에서 꾸는 꿈은 실로 너무나 소소하고 조촐하다. 목숨을 거는 그들이지만 꿈이란 것들은 대부분 그저 평범한 일상을 자유롭게 누리고 싶은 것일 뿐이기 때문이다. 그런 그들을 보는 이 청년조직의 수장 휘영(유아인)은 거사를 앞두고 마음이 착잡해진다. 그들을 사지로 내보내야 하고 그들 중 대부분은 돌아올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문득 휘영의 동지인 신율(고경표)이 그에게 묻는다. 해방된 조국에서 아니 다시 환생해 태어난다면 무엇이 하고 싶냐고. 휘영은 말한다. “낚시나 함께 갈까?” 물론 그건 그의 진짜 소원이 아니다. 그는 수연(임수정) 앞에서도 속내를 숨긴다. 그녀를 마음에 두고 있지만 무수한 동지들의 수장으로서 그는 그런 사적인 감정이 사치라 생각한다. 그런 그의 냉랭함 앞에서 수연 역시 마음을 접었다고 말한다. 조국을 상대로 투기를 할 수는 없는 일이 아니냐고. 

대신 그녀는 다음 생을 이야기한다. 해방된 조국에 다시 태어나면 그때는 자신을 여자로 봐달라고. “괜히 망설이지 말고. 철벽치지도 말고. 거짓말 하지도 말고 혼자 아프지도 말고 나한테 솔직하게 다 말해 달라고요. 이번 생에 못해준 거 다 해준다고 약속해.” 자꾸만 다음 생을 이야기하는 그녀의 말에 휘영은 마음이 아프다. 그래서 자신이 할 수 있는 마음의 표현을 수장의 목소리로 말한다. “꼭 살아 돌아와. 수장의 명령이야.”

거사를 앞둔 이 청춘들이 현생에서의 꿈과 소원이 아니라 다음 생에서의 그것을 얘기하는 부분은 아마도 <시카고 타자기>가 전생과 현생을 넘나드는 판타지로 그려지게 된 모티브가 아니었을까. 그들은 당장 죽음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고 그 생에서의 찬란한 청춘의 행복을 유예하고 있었다. 그저 옆에 있는 사람과 마음껏 사랑하고 싶은 마음마저 철벽을 치며 살아가야 했고 그렇게 산화해야 했던 청춘들. 그들은 그래서 다음 생 해방된 조국에서 행복을 맞이했을까. <시카고 타자기>는 이 전생과 현생으로 이어지는 두 부류의 청춘들의 현실을 더듬는다. 

<시카고 타자기>라는 낯선 제목은 그래서 일제강점기의 휘영 같은 청춘들을 설명하는 자화상처럼 느껴진다. 마치 타자치는 소리 같다고 해서 붙었다는 톰프슨 기관총의 별칭으로 불린 ‘시카고 타자기’. 글을 쓰는 지식인이지만 그 글은 또한 톰프슨 기관총 같은 무장투쟁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니 말이다. 글과 총을 동시에 들었어야 했던 당대 청춘들의 초상이 그래서 ‘시카고 타자기’가 아닐까. 

그리고 이 일제강점기 청춘들이 해방된 조국의 다음 생에서 했으면 했던 소망과 꿈들은 고스란히 현생의 청춘들의 삶을 되묻게 한다. 과연 지금의 청춘들은 그들이 유예했던 그 소망과 꿈들을 이루며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는가. 어쩌면 조국은 해방되었어도 여전히 그 현실의 많은 무게들을 청춘들에게 부담지운 채, 그 현재의 행복들을 유예시키고 있는 건 아닌가. ‘카르페 디엠’이라는 당대의 카페 이름에 담긴 ‘지금 이 순간을 즐겨라’라는 의미는 그래서 그 때나 지금이나 슬픈 정조를 담고 있다. 미래를 꿈꿀 수 없기에 지금 현 순간이라도 행복하기를 바라는.

전생의 독립운동을 하던 청춘인 휘영과 현생의 베스트셀러 소설가인 한세주라는 두 청춘을 연기하는 배우가 유아인이라는 사실이 새삼스럽다. 유아인은 유독 다양한 작품들을 통해 다양한 청춘의 자화상을 그려냈던 배우다. <밀회>에서의 이선재라는 청춘이 그랬고, 영화 <사도>에서의 사도세자라는 청춘이 그랬으며, <육룡이 나르샤>에서의 이방원이란 청춘도 그랬다. 그래서 <시카고 타자기>에서 유아인이 그려내는 전생과 현생의 두 청춘이 새삼스럽게 다가온다. 현재를 유예하지 않고 미래를 마음껏 꿈꿀 수 있는 그런 청춘들의 시대는 언제나 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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