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성우, 자신이 아닌 배역으로 더 기억되는 배우

 

개천에서 용 났다? 아니 그는 처음부터 용이었다. 배성우는 드라마보다는 영화를 통해 더 많은 연기를 해온 배우다. 여러 단역을 거쳐 영화 <오피스>에서 김병국 과장 역할로 섬뜩한 카리스마로 드디어 존재감을 드러냈을 때 어디서 이런 배우가 나왔지 했을 정도였다. 그 후 <더킹>에서 권력 앞에 순종하는 검사 양동철로 주목받았고 <안시성>,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 같은 작품에서 제 역할을 해냈다. 그만큼 배성우는 자신보다는 배역으로 더 기억되는 배우였다.

 

워낙 배역에 충실한 배우인데다 주인공보다는 주변 인물 역할로 작품을 더욱 빛나게 해줬던지라, 노희경 작가의 드라마 <라이브>에 오양촌 경위로 등장했을 때 그가 준 인상은 강렬했다. 드라마의 특성상 인물이 더 잘 보이고, 그 역할을 연기하는 배우 역시 그 결이 더 잘 드러나는 법이다. 배성우는 오양촌 경위의 불같은 성격과 그러면서도 동료를 위해 기꺼이 목숨을 던질 정도로 뜨거운 형사의 면면을 특유의 에너지 넘치는 연기로 표현해냈다.

 

그랬던 그가 SBS 드라마 <날아라 개천용>으로 돌아왔다. 박삼수라는 기자 역할이다.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고 박삼수 기자의 실제 인물인 박상규 기자가 대본을 쓴 작품이라 훨씬 더 리얼리티에 바탕을 둘 것이라 여겨졌지만 이 작품은 그런 예상을 보기 좋게 깨버렸다. SBS 금토드라마가 갖는 색깔인 다소 경쾌한 분위기에 맞게 <날아라 개천용>은 조금은 과장되고 극화된 작품으로 그려졌다.

 

박삼수 기자라는 인물은 그래서 치열한 현실의 냄새를 풀풀 풍기면서도 거기서 매몰되지 않고 낙천적으로 진실을 향해 나간다. 기자지만 펜을 굴리기보다는 발을 더 재게 놀리는 인물이고, 약자들의 어려움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인물이다. 가진 건 없지만 기자라는 자존심만큼은 확실해 어떤 유혹에도 넘어가지 않지만, 동시에 당장의 생활비에 쪼들리며 현실적으로 잘 살기 위해 강철우(김응수) 시장의 수발을 들기도 하는 짠한 직장인의 인간적인 면모까지 갖고 있다.

 

한 마디로 배성우가 연기로 채워낸 박삼수 기자는 인물이 입체적이다. 자신을 천거해준 회사 대표에게 고마운 마음을 갖고 있지만 동시에 그가 강철우 시장과 결탁해 돈을 벌려고 진실을 가리는 행위에는 대놓고 반발한다. 박태용 변호사(권상우)를 슬쩍 끌어들여 돈 안 되는 변호를 시키지만, 그 과정을 보며 오히려 자신이 더 박 변호사에게 빠져드는 걸 인정한다. 동거하는 이진실(김혜화) 앞에서 사랑꾼의 모습이면서도 얹혀사는 삶의 찌질함도 가감 없이 보여준다.

 

무엇보다 배성우라는 배우가 주목되는 건 역할에 200% 몰입한 모습을 늘 보여준다는 점이다. 등장부터 땀에 절은 후줄근한 티셔츠 차림으로 박태용 변호사 사무실에 들어와 털썩 소파에 앉을 때 그는 영락없는 현장 체질 기자의 모습이다. 인터넷 등에서 이 캐릭터의 실제 인물인 박상규 기자의 모습을 본 적이 있다면 어딘지 극중 인물과 어울리는 면이 있다는 걸 느낄게다.

 

가진 건 아무 것도 없지만 박태용 변호사와 술 한 잔에 의기투합하고 "다 죽었어!"라고 외치는 자신만만한 박삼수 기자의 모습은 서민들의 답답한 가슴을 뻥 뚫어준다. 그런데 이런 가진 건 없어도 직업정신으로 자신만만한 모습은 배성우라는 배우와도 잘 어우러진다. 그에게서도 자신을 지워내고 배역을 대신 끄집어내는 배우라는 직업의 자신감 같은 게 묻어나기 때문이다. 개천용? 그는 본래 용이었다. 다만 개천에 가려져 있었을 뿐. 보이지 않지만 자기 위치에서 제 역할을 제대로 해내는 많은 직업인들이 그러하듯이.(사진:SBS)

'카이로스', 위험사회에서 가장 큰 위험요인은 인재라는 건

 

밤 10시 33분. 단 1분 간 현재를 살아가는 김서진(신성록)과 한 달 전을 살아가는 한애리(이세영)가 서로 통화할 수 있는 기회가 열린다. MBC 월화드라마 <카이로스>는 바로 이 하나의 판타지 설정을 세계관으로 갖고 있는 드라마다. 단 1분간의 통화지만, 두 사람이 겪고 있는 사건들은 이 1분에 대한 깊은 몰입감을 만들어낸다.

 

김서진은 딸이 유괴 살해당했고 그 소식을 들은 아내마저 극단적 선택을 함으로써 이 1분이 이 사건을 막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 된다. 한애리는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진 엄마를 찾아야 하는데 한 달 후를 살아가는 김서진은 그의 엄마가 외딴 곳에서 사망한 사실을 알게 된다. 결국 김서진은 이 사실을 한애리에게 알려 이런 비극이 벌어지지 않게 하려 할 것이고, 한애리는 이를 막기 위해 김서진과의 하루 1분 공조에 기댈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 사건에 김서진의 회사 오른팔인 서도균(안보현)과 그의 수행비서 이택규(조동인)가 관련되어 있고, 김서진의 아내 강현채(남규리)와 서도균이 과거부터 알고 지내던 사이로 현재까지 불륜관계를 이어오고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또 한애리의 엄마 곽송자(황정민)가 사라지기 직전 마지막으로 만난 사람이 유중건설이 불량자재를 써서 난 화재 때문에 아이를 잃게 된 김진호(고규필)라는 사실 또한 드러난다.

 

이야기는 점점 유중건설이 과거 참여했던 태정타운 붕괴사고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알고 보니 한애리의 아버지가 바로 그 태정타운 붕괴사건의 피해자였고 김진호 역시 그 사건과 관련이 있었다. 그리고 김서진 또한 아버지와 함께 그 붕괴현장에 있었다. 즉 아직까지 전말이 밝혀지진 않았지만 김서진의 딸 유괴사건이나 한애리의 어머니 실종사건 모두 과거 이 유중건설의 건물 붕괴사건과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어떤 방향으로 이야기가 흘러갈지 현재 예측하긴 어렵다. 하지만 건물 붕괴 사건이 보여주고 있는 건 이 드라마가 현재 우리가 무수히 맞닥뜨리고 있는 위험에 대한 이야기를 바탕에 깔고 있다는 걸 말해준다. 이른바 '위험사회'라 불리는 세상의 살풍경한 모습이 그것이다. 김서진은 그런 위험이 자신과는 멀리 있다고 여겼지만 아이가 유괴되는 사건을 겪으며 그 위험이 너무나 가까이 있다는 걸 알게 된다.

 

또 그 사건과 연관된 일들이 건설현장에서 벌어진 붕괴사고와 불량자재로 인한 화재사고와 연루되어 있다는 사실은 그 위험의 실체를 드러낸다. 그건 사고가 아니라 사건이었다는 것. 위험사회의 가장 큰 위험요인은 결국 인재라는 사실이다.

 

<카이로스>가 김서진과 한애리 사이에서 한 달의 시간차를 두고 서로를 연결시키는 판타지를 설정한 건, 때로 우리 앞에 벌어지는 거대한 비극을 시간을 돌릴 수 있다면 인간의 노력으로 바꿀 수도 있다는 뜻이 담겨 있다. 그건 인간이 어찌할 수 없는 사고나 천재지변이 아니라는 것. 그래서 결국 우리가 처한 많은 위험요소들의 대부분은 막을 수도 있었던 인재였다는 걸 <카이로스>는 이 긴박한 1분의 스릴러로 말해주고 있다.(사진:MBC)

'펜트하우스', 사람은 없고 작가가 만든 사이코패스들만 넘쳐난다

 

죽고 또 죽고... 벌써 몇 명이 죽은 걸까. SBS 월화드라마 <펜트하우스>는 매회 인물이 죽어나간다. 드라마 시작부터 헤라팰리스 고층 건물에서 누군가에 의해 추락 사망하는 민설아(조수민)로 문을 열었다. 민설아가 떨어질 때 전망엘리베이터를 탄 심수련(이지아)은 그와 눈을 마주친다. 그리고 민설아는 이 주상복합의 상징처럼 세워진 헤라 조각상 위로 떨어져 피투성이가 된 채 사망한다.

 

아마도 이런 시작은 <펜트하우스>가 거대한 욕망의 표상처럼 보이는 헤라팰리스가 민설아 같은 이들의 피 위에 세워졌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드라마는 그 장면에 그런 의미를 담기보다는 이곳에 살아가는 인간 같지 않은 이들이 벌이는 폭력들을 병치함으로써 시청자들의 뒷목을 잡게 만든다.

 

그 폭력들은 지독할 정도로 상투적이다. 돈과 권력을 가진 이들이 그걸 이용해 더 큰 돈을 벌고(물론 여기에도 서민들의 피가 깔려 있다), 불륜과 향락에 빠져 살아간다. 그들만의 네트워크 속에서 아이들도 실력이 아닌 핏줄과 연줄에 의해 성패가 갈라지고 가진 것 없는 이들의 기회는 박탈된다. 심지어 능력으로 그 곳에 들어오려는 민설아 같은 인물은 감히 그 세계를 넘봤다는 이유로 집단 폭행을 당한다.

 

거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제시되지 않는다. 이유라고 하면 저들이 특권의식을 갖고 있다는 것 정도다. 그래서 특별한 이유 없이 저지르는 폭력의 연속은 그들의 악행을 태생적인 것으로 만든다. 그들은 사람이 아니다. 사이코패스다. 없는 이들은 짓밟아도 된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밟히는 이들을 죽음에까지 이르게 할 수 있지만.

 

오윤희(유진)의 트로피를 빼앗고 그가 더 이상 성악을 할 수 없게 만들어버린 천서진(김소연)은 심수련의 남편 주단태(엄기준)와도 불륜에 빠지는 '도둑년'이다. 하지만 주단태는 더한 인물이다. 심수련의 친딸인 민설아를 다른 아기와 바꿔치기 하고, 그 산소호흡기에 의지해 살아가는 아기를 심수련에게 친딸로 생각하게 만든다. 그리고 이제 더 이상 필요 없어지자 그 산소호흡기를 자신이 떼어버린다.

 

죽은 민설아의 사체를 그가 사는 동네로 옮겨 유기하고 그 집에 불까지 내 자살로 위장한 주단태는 그 지역에 재개발이 이뤄질 거라는 정보를 얻고는 그 사건으로 가격이 폭락한 그 집을 되 사려고 하는 인물이다. 그는 누군가를 제 손으로 살해하는 일이나, 사체를 유기하는 일, 나아가 자신이 하는 재개발 사업으로 수많은 이들을 죽음으로 내모는 일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행한다.

 

<펜트하우스>에는 사람이 잘 보이지 않는다. 대신 사이코패스들만 넘쳐난다. 그들에 의해 불쌍한 약자들은 억울하게 죽어나간다. 그걸 보며 분노하는 시청자들은 심수련이나 오윤희 같은 인물들이 그들에게 처절하게 응징하고 복수하는 걸 보고 싶어진다. 김순옥 작가가 지금껏 해왔던 '가족 복수극'의 클리셰들이 여기서도 여지없이 등장한다.

 

그러니 등장인물들은 이 가족복수극의 계획된 '공분의 스토리텔링 틀 속'에서 다소 허망하게 죽어버린다. 조상헌(변우민)은 허무하게 자기 집 2층에서 추락사하고, 그와 몸싸움을 벌인 윤태주(이철민) 역시 육교 위에서 뛰어내려 자살한 것 같은 장면이 연출되었다. 왜 그렇게까지 하는지는 알 수 없다.

 

이렇게 매회 죽음이 아무렇지도 않게 등장(살인, 사체유기 등)하다 보니 시청자들로서는 이 드라마의 이런 자극적 설정들이 하나의 게임처럼 둔감해진다. 처음에는 놀랍지만 차츰 누가 죽어도 그리 놀랍지 않은 느낌이 되어버린다. 드라마가 힘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그래서 더 많은 죽음들이 필요하다. 앞으로도 이 죽음의 행진은 계속될 것이다.

 

<펜트하우스>에서 인물들은 그래서 작가가 고안해 놓은 자극의 틀을 위해 소비되는 소모품 같은 느낌을 준다. 개연성은 자극에 가려지고 갈수록 현실감을 잃어간다. 사실 이렇게 계속 어이없는 죽음들이 이어진다는 것 자체가 개연성과 현실감이 사라지고 있다는 증거들이다. 그래서 개연성도 없고 인물들도 소모될 뿐, 인간의 모습으로 그려지지 않는 <펜트하우스>는 위태롭기 그지없다. 거기에는 가난에 대한 지독함 혐오와 죽음에 대한 경시 같은 그림자들이 부지불식간에 들어 앉아 있다.

 

물론 작가가 의도하는 건 자극적인 스토리와 이를 통해 얻어지는 시청률일 것이다. 하지만 그 자극과 시청률이 교환되는 과정에서 인간이나 생명에 대한 가치들은 한없이 가벼워진다. 그저 스토리이고 드라마일 뿐이라고? 아니다. 스토리는 가상이지만 우리가 어떻게 세상을 바라보고 살아갈 것인가를 에둘러 알려주는 공공의 장이기도 하다. 그러니 그게 별거 아니라고 치부할 수는 없다.

 

시청률의 뒤편에서 어른거리는 건 돈 냄새다. 돈이 되면 뭐든 용서된다는 것. 그건 <펜트하우스> 속 헤라팰리스에 사는 사람들이 하는 생각이다. 드라마는 그게 잘못됐다는 걸 복수극의 형태로 그려내려 하고 있지만, 그 이야기 전개 과정은 마치 헤라팰리스 사람들의 생각처럼 돈이 되면(시청률이 되면) 다 용서된다는 식으로 흘러가고 있다.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사진:SBS)

'산후조리원'이 꼬집은 육아시장의 엄마 강요

 

"근데 이 언니가 모유를 주던 분유를 주던 무슨 상관인데 이렇게들 난리인거에요? 그건 이 언니가 선택할 문제잖아요." tvN 월화드라마 <산후조리원>에 모유냐 분유냐를 두고 논쟁이 벌어졌다. 모유만이 엄마가 아기에게 해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며 엄마 자신에게도 행복이라 주장하는 조은정(박하선). 하지만 새로 산후조리원에 들어온 이루다(최리)는 처음부터 모유 대신 분유를 선택하며 "분유가 독약도 아닌데 사정이 있으면 줄 수도 있는 것 아니냐"며 반박했다.

 

조은정은 모유가 좋은 이유에 대해 면역력, 두뇌발달, 애착형성 등을 거론하자, 이루다는 모르겠다며 이렇게 말한다. "요즘에 소들도 방목해서 기르잖아요. 스트레스 안 받아 행복한 젖 짜려고요. 근데 여기 있는 엄마들 봐 봐요. 밤새 한숨도 못자고 쉬지도 못하고 있잖아요. 잠도 못자고 여기 갇혀서 스트레스 받으면서 짠 엄마 젖이 자유롭게 뛰놀며 행복하게 산 소젖보다 진짜 좋을까요?"

 

그 말에 다른 산모들은 모두 움찔한다. 딱풀이 엄마 오현진(엄지원)은 그 중간에 끼어 갈팡질팡한다. 아기를 위해 모유를 챙겨야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리면서도 이루다의 말처럼 그것이 강요될 일인가 갈등하는 것. 그러자 조은정은 이제 '엄마의 죄책감'을 공략한다. 모유를 주지 않으면 평생 아이한테 무슨 일이 생길 때마다 죄책감을 느낄 거라는 것. 그런데 과연 모유를 주지 않는다고 이런 죄책감을 들게 만들면서 모유수유를 강요하는 건 상식적인 일일까.

 

<산후조리원>이 흥미로운 건 아이를 갖게 된 여성들에게 모성을 강요하는 사회와 그것이 산업적으로 어떻게 시스템화 되어 있는가를 유쾌하고 발랄하게 꼬집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여기 등장하는 세레니티 산후조리원이나 모든 엄마의 표상처럼 등장하는 조은정 그리고 그와 정반대의 위치에 서 있는 이루다 같은 인물들은 모두 과장된 코미디로 그려져 있다. 그래서 빵빵 터지는 상황들의 웃음이 존재하지만, 그 웃음 이면에는 이런 모성 강요 사회의 시스템에 대한 신랄한 비판의식이 숨겨져 있다.

 

아이에 대한 죄책감은 모성 강요(여기에는 부성도 포함된다)의 중요한 불쏘시개로 작용한다. 오현진의 남편 김도윤(윤박)이 유모차 매장에 갔다가 30만 원짜리에서 시작해 수백만 원에 달하는 엄청난 고가의 명품 유모차를 영업당하는 과정은 부모의 죄책감을 이 산업이 어떻게 건드리고 있는가를 우스꽝스럽게 그려낸다. 진짜 좋은 제품이지만 '안정성', '아기의 정서적인 면', '아이의 개성'이 아쉽다는 식으로 부모의 죄책감을 건드려 고가의 상품을 판매하는 방식이 그것이다.

 

또 산후조리원에서 아기를 산모에게 데려다 주는 안희남(최수민) 간호사 역시 이런 시스템의 작동방식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잠깐 남편과 외출을 하고 돌아온 오현진에게 안희남은 아기 목소리를 빙의해 이렇게 말한다. "엄마 날 잊은 거야? 엄마는 내가 없던 때로 돌아가고 싶었던 거야? 엄마 미안해. 내가 나오지 말았어야 하는데. 차라리 엄마 뱃속이 좋았어. 그 때 우린 늘 함께였잖아. 가까이 오지 마요. 지금은 엄마를 보고 싶지 않아요."

 

웃기는 장면이지만 과연 이건 그저 웃고 넘어갈 수 있는 그런 장면일까. 아이를 갖게 된 부모들의 죄책감을 건드려 모성을 강요하고 그래서 아기를 갖고 나면 엄마와 자기 자신 사이에서 정체성의 혼동을 느끼게 만드는 사회. 그런 사회 속에서 오현진은 '반인반모, 엄마와 사람 그 중간 어디쯤'에 자신이 있다고 말한다.

 

모유냐 분유냐에 대한 논쟁을 전면에서 보여주고 있지만, 드라마는 아이를 갖게 된 엄마가 자신을 잃어버리는(그것도 기꺼이 희생하는 게 미덕으로 여기지며) 사회의 부조리를 꼬집고 있다. 산모보다는 한 회사의 상무로서 입지를 다져온 오현진이지만 그는 산후조리원에 들어와 "엄마 같지도 않고 그렇다고 옛날의 나도 아닌" 존재가 되어버린다.

 

이루다는 그런 오현진에게 "안 맞는 속옷 입고 쩔쩔 매지 말라"는 말로 에둘러 엄마 역할에 대한 강박관념으로 자신을 괴롭히지 말라고 한다. 그러면서 "자식도 엄마 웃은 거 보면 제일로 좋아한다"며 엄마가 행복해야 아기도 행복할 수 있다는 걸 강변한다. 분유를 주던 모유를 주던 그건 강요될 게 아니라 선택의 문제일 뿐이라며.(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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