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그널>, 왜 그들에겐 평범한 행복조차 허락되지 않나

 

저는 형사님이 행복하셨으면 좋겠어요. 형사님 곁에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하는 게 사건을 해결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일 수도 있어요.” tvN 금토드라마 <시그널>에서 박해영(이제훈) 경위는 과거로 연결된 무전을 통해 이재한(조진웅) 형사에게 인주시 집단 성폭행 사건의 수사를 그만 두라고 말한다. 미래에 있는 그는 이 미제사건을 재수사하다 결국 이재한의 유골을 발견하게 되기 때문이다.

 


'시그널(사진출처:tvN)'

박해영은 이재한의 유골을 그토록 오랜 세월동안 찾아온 이가 바로 차수현(김혜수)이라는 걸 알게 됐고, 인주시 집단 성폭행 사건으로 억울하게 소년원에 갔다 온 자신의 형이 자살하고 혼자 남게 됐을 때 사실은 어린 그를 뒤에서 돌보고 있던 인물이 다름 아닌 이재한이라는 걸 알게 됐다. 박해영으로서는 자신의 형이 쓴 억울한 누명을 벗겨내는 일이 삶의 가장 중요한 목적이었지만 이제는 이재한 형사가 살고 그가 사랑하고 그를 사랑하는 차수현과 함께 행복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이 더 커지게 되었다.

 

저도 경위님이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가난하더라도 가족들과 함께 한 지붕 아래서 따뜻한 밥상에 함께 모여 같이 먹고 자고 외롭지 않게 남들처럼 평범하게 그렇게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하지만 박해영의 권고에도 이재한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박해영의 행복을 빈다. 자신이 죽을 수 있다고 해도 인주시 집단 성폭행 사건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가려는 것.

 

아마도 이 장면은 <시그널>에서 가장 슬픈 장면이 아닐까 싶다. 이들이 이토록 미제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뛰는 그 이유가 고작 가난하더라도 가족들과 함께 한 지붕 아래서 따뜻한 밥상에 함께 모여 같이 먹고 자고 외롭지 않게 남들처럼 평범하게살기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가족들과 함께 하는 외식이 꿈이었던 어린 박해영이 혼자 껍데기집을 찾아 오무라이스를 시켜먹는 그 마음이 슬프고, 그를 따라온 이재한이 그가 올 때면 언제나 밥을 챙겨주라며 주인아주머니에게 돈을 주는 그 마음이 슬프며, 서민의 마음은 서민이 안다고 묵묵히 그 아이가 클 때까지 밥을 챙겨주다 나중에는 마치 친엄마처럼 잔소리를 하는 주인아주머니의 마음마저 저릿하다.

 

<시그널>은 이 없는 자, 아니 없어서 당하는 이들을 위한 진혼곡이다. 비리에 휘둘리지 않고 끝까지 사건을 포기하지 않았던 대가로 살해당한 이재한, “돈 없고 빽 없고 힘 없어서누명으로 형이 자살하고 평범한 삶을 살 수 없었던 박해영, 그리고 그 이재한을 마음 깊숙이 두고 있었지만 끝내 사랑한다말 한 마디 전하지 못하고 싸늘한 유골로 돌아온 그의 마음을 뒤늦게 알고는 오열하는 차수현.

 

<시그널>이 우리의 마음을 그토록 잡아끄는 이유는 바로 이 평범한 삶을 살아갈 수 없었던 이들의 이야기가 우리네 서민들의 삶을 극화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미제사건이란 결국 그 무고한 희생자들을 남기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것이 시간이 흐르면서 잊혀져 간다. 굳이 사건이 아니라도 해도 일상에서 우리도 모르게 평범하게 살아가는 것조차 어려워지는 서민들의 삶은 그래서 억울한 희생자를 남기는 미제사건을 닮았다. 그들을 위해 누가 울어주고 또 진실을 밝히기 위해 노력할 것인가.

 

<시그널>은 이런 서민들의 열망을 시간을 뛰어넘어 미제사건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수사하는 이들의 이야기로 풀어내고 있다. 오죽 그 열망이 크면 타임리프라는 판타지적 설정마저 선선히 허용하겠는가. “포기하지 않을 겁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끝까지 갑니다.” 이재한의 그 불굴의 의지가 뭉클해지건 그 포기하지 않는 마음이 서민들의 안타까운 삶에 닿아 있기 때문이다

만일 <태양의 후예>30% 시청률을 넘긴다면

 

KBS <태양의 후예>가 결국 일을 냈다. 이제 겨우 4회를 했을 뿐인데 시청률이 24.1%(닐슨 코리아). 이 기록은 KBS 주중드라마가 2012<각시탈>을 통해 22.9%의 최고 시청률을 낸 이래 처음이자 최고의 기록이다. 그간 SBSMBC에 비교해 늘 바닥을 쳤던 KBS 드라마는 실로 오랜만에 활짝 웃을 수 있게 됐다.

 


'태양의 후예(사진출처:KBS)'

<태양의 후예>의 대성공이 의미하는 바는 실로 크다. 시청률 20% 넘기기가 점점 어려워지는 현재(심지어 한때 시청률 보증수표였던 사극도 마찬가지다), 지상파 드라마들은 점점 치고 올라오는 tvN 드라마에 위기감을 느끼고 있는 상황이었다. <미생>8.2%, <오 나의 귀신님>7.3%, <두번째 스무살>7.2%, 그리고 <응답하라1988>이 무려 18.8%의 성적을 냈고 이 힘은 현재 방영되고 있는 <시그널>10.4% 시청률로 이어지고 있다. 이 흐름대로라면 지상파와 케이블의 드라마 시청률에 점점 편차가 사라진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상황에서 <태양의 후예>가 낸 24.1%의 시청률은 KBS는 물론이고 나아가 지상파 드라마들로서는 한 줄기 희망처럼 느껴질 수밖에 없다. 드라마를 본방사수하는 시청 연령대가 높기 때문에 완성도 높은 장르물은 오히려 너무 어렵게 느껴져 시청률은 낮았던 것이 지금까지의 지상파 드라마들이 갖고 있던 딜레마였기 때문이다. <태양의 후예>는 사전 제작되어 완성도도 높고, 멜로를 기반으로 하고 있지만 전쟁드라마와 의학드라마의 장르물적 성격을 전면에 드러내고 있다. 그런데도 이런 시청률을 내고 있다는 건 지상파 드라마 역시 좋은 작품을 통해 좋은 성적도 낼 수 있다는 걸 증명하는 일이다.

 

현실적으로 지상파에서 시청률이 30%를 넘기는 사례는 KBS 주말드라마나 일일드라마 같은 고정 시청층이 있는 편성시간대를 제외하고 나면 막장드라마들뿐이었다. MBC가 일일드라마 시간대에 임성한 작가를 투입하고 주말드라마 시간대에 김순옥 작가를 투입해 시청률을 가져간 건 그래서다. 지금까지 지상파의 막장드라마 경향은 그것이 어쩔 수 없는 선택처럼 여겨졌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태양의 후예>의 성공은 이런 변명이 더 이상 통하지 않게 만들어버렸다.

 

그런데 도대체 그동안 안보이던 이런 완성도 높은 드라마를 본방하는 지상파 시청자들이 어디서 갑자기 나타난 걸까. 어떤 면으로 보면 tvN이 지속적으로 추구해온 무비드라마 같은 완성도 높은 드라마의 선전으로 인해 시청자들의 눈높이가 전체적으로 높아졌다고 보는 편이 맞을 것이다. 솔직히 <시그널> 같은 작품을 보고 나면 늘 틀에 박힌 이야기와 소재를 반복하는 지상파 드라마가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 이것은 심지어 막장드라마도 마찬가지다.

 

<태양의 후예><시그널>처럼 드라마라기보다는 영화적인 완성도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지금의 지상파 드라마들과는 사뭇 다르다. 사전 제작된 드라마이면서, 블록버스터지만 단지 볼거리가 아니라(그렇다고 볼거리가 없다는 건 아니다) 극의 중심인 인물들의 감정 선을 놓치지 않고, 기존 장르적 틀에 묶이기보다는 멜로와 액션과 의학드라마 같은 다양한 장르의 경계를 넘나든다. 이런 시도는 지금껏 tvN이 해왔던 것들이다. 그것을 지상파가 그것도 KBS라는 채널에서 보여줘도 충분히 시청자들이 찾아본다는 것을 <태양의 후예>는 말해주고 있다.

 

만일 <태양의 후예>30%의 시청률을 넘긴다면 그건 지상파 드라마에도 어떤 변화의 계기가 될 수 있다. 그것은 지상파에도 이런 완성도 높은 드라마를 소비하는 시청층이 충분히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너무 완성도가 높으면 그걸 소화해내지 못한다며 얼개를 오히려 허술하게 만들고 자극만을 높인 막장드라마들은 이 상황이 되면 설 자리를 잃게 될 지도 모른다. 이것이 지상파의 타 방송국들조차 이 드라마의 행보에 주목하고 있는 이유다. <태양의 후예>의 어깨가 무겁다

<돌아저씨>, 오연서 드디어 최고의 캐릭터 만나다

 

오연서는 2003KBS <반올림>에서 똑 부러지는 모범생 역할을 선보인지 이미 13년의 세월이 지났다. 그녀는 가족드라마부터 트렌디 드라마, 장르드라마 등 다양한 드라마에서 연기했다. 하지만 꽤 많은 작품들을 해온 것 치고는 그다지 주목을 받지 못했다. KBS <넝쿨째 굴러온 당신>에서 말숙이 역할로 살짝 주목을 받았지만 그 후로도 여전히 오연서는 확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지는 못했다. 심지어 MBC <왔다 장보리>에서는 주인공인 장보리 역할을 연기했지만 악역인 연민정(이유리)의 표독스러움에 가려지기도 했다.

 


'돌아와요 아저씨(사진출처:SBS)'

하지만 SBS <돌아와요 아저씨>에서만은 확실히 다르다. 홍난(오연서)이라는 캐릭터가 남다르기 때문이다. 홍난은 죽은 한기탁(김수로)이 역송(다시 현세로 돌려보내진)된 인물이다. 쭉쭉빵빵 잘 빠진 몸매에 절세 미녀의 얼굴을 가진 인물이지만 그 행동거지는 조폭 두목이었던 상남자 한기탁의 면면을 보여준다.

 

지하철에 치마를 입고도 쩍벌로 앉아 있는 것은 기본이고, 눈을 힐끔거리는 사내들의 사타구니를 발로 차버리는 모습은 자신도 자신의 몸이 적응 안 되는 홍난의 웃음이 절로 터지는 캐릭터를 잘 보여준다. 이걸 신으라고 줬냐며 뒤뚱뒤뚱 하이힐을 신고 걷는 모습도 우습지만, 그 걸음걸이가 영락없는 팔자걸음이라는 사실은 더욱 웃음을 자아낸다.

 

아마도 연기를 할 때 김수로라는 배우가 하던 행동들을 그대로 연상시키는 동작들이 나오는 걸로 봐서 오연서는 이 연기를 위해 그의 동작을 상당히 연구(?)했을 것으로 보인다. 상남자의 불같은 성격에 야리야리한 여성의 몸을 갖게 되었으니 그 답답함과 불편함이 만들어내는 불균형은 이 캐릭터가 가진 독특한 매력을 만들어낸다.

 

<왔다 장보리>에서 장보리보다 연민정이 더 주목됐던 건 그 악독함이 자극적이기도 했지만 그런 모습이 여성들에게는 어떤 금기를 넘어서는 카타르시스를 제공하기도 했기 때문이다. 여성으로서 하지 못하는 행동들을 자신의 욕망(물론 비뚤어진 것이지만)을 추구하기 위해 해나가는 여성. 어딘지 여성스러움을 드러내는 캐릭터였던 장보리와는 상반된 느낌을 연민정이 주었떤 것이 사실이다. 여성들에게는 이런 캐릭터가 훨씬 더 몰입을 주기 마련이다.

 

이번 <돌아와요 아저씨>에서는 오연서가 그 역할을 맡았다. 홍난은 결코 여성스러움과는 벽을 쌓아 놓는 캐릭터다. 물론 한기탁이 빙의된 캐릭터라는 설정 때문이지만 조폭들 앞에서도 주눅 들지 않고 동생들(?)의 어깨를 툭툭 치는 허세와 의리가 기본이다. 그것을 다름 아닌 오연서가 연기하고 있기 때문에 지금껏 여성적인 면들이 강조되던 그녀가 해온 캐릭터들과는 사뭇 다른 느낌을 준다.

 

이것은 아마도 오연서에게는 최고의 캐릭터가 아닐까 싶다. 그만큼 오래 여러 캐릭터들을 연기했지만 역시 연기자가 빛을 발하는 건 자신의 또 다른 매력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캐릭터를 만났을 때다. 홍난이란 캐릭터는 그래서 여성들도 좋아할 수 있는 캐릭터로서 오연서라는 배우가 가진 연기 스펙트럼을 한껏 넓혀줄 것으로 보인다. <돌아와요 아저씨>를 통해 오연서의 그간 숨겨졌던 진가 역시 돌아오게 될까. 이 드라마를 보는 또 하나의 관전 포인트다.

<태양의 후예>, 가상공간에 세운 본능적인 이야기

 

KBS 수목드라마 <태양의 후예>는 한 편의 영화 같다. 기존 지상파 드라마들과는 여러 모로 다르다. 물론 이런 해외 로케이션을 한 블록버스터 드라마가 없었던 건 아니다. 하지만 이렇게 놀라운 풍광을 가진 이국적인 로케이션에도 불구하고 그 이야기가 그 공간에 매몰되지 않고 거기 있는 사람들의 보다 극적인 이야기로 풀어지고 있는 드라마는 보기 드물다.

 


'태양의 후예(사진출처:KBS)'

여기서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는 것이 왜 <태양의 후예>가 굳이 우르크라는 가상의 국가를 배경으로 내세웠는가 하는 점이다. 실제 촬영은 그리스에서 이뤄졌지만 어딘가 아랍권과 경계를 둔 분쟁지구 같은 느낌을 주는 공간이다. 그 곳의 한국군 주둔부대에서 유시진(송중기)과 강모연(송혜교)은 각각 군인과 의사로서 재회한다.

 

유시진이 강모연과 오랜만의 만남에 대해 반가움을 표하며 이야기를 나누다 짐짓 그녀가 지뢰를 밟은 것 같다며 장난을 치는 장면은 우르크라는 공간이 아니면 나올 수 없는 에피소드다. 그 장난 같지만 분쟁지구에서나 일어날 법한 극적인 이야기들을 우르크라는 가상공간 설정이 가능하게 해준다.

 

아랍의 무바라크 의장을 수술해야 하지만 타국의 의사가 몸에 손을 댈 수 없게 하는 수행원들과 서로 총을 겨누고 대치하는 상황도 그렇다. 우르크라는 우리가 막연히 생각하는 어떤 공간을 상정하지 않으면 이런 상황은 우스운 이야기가 될 것이다. 하지만 분쟁지구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결국 군인으로서 유시진이 강모연을 보호하고 의사로서 강모연이 사람의 생명을 살리려 노력하지만 그 두 사람이 모두 그것 때문에 위기에 처하게 되는 이 상황은 이 드라마만이 가진 이야기의 재미를 확실히 드러내준다.

 

아마도 우르크라는 가상공간이 아니라 우리가 잘 아는 지명이었다면 어땠을까. 그것은 여러모로 이야기의 한계를 만들었을 것이다. 실제 현실과 끊임없이 비교될 수도 있고 그래서 더 자유로운 이야기 전개의 발목을 잡을 수 있었다는 것. 우르크는 그런 점에서 보면 <태양의 후예>의 이야기에 날개를 달아주는 힘을 부여했다고 볼 수 있다.

 

그 안에서 벌어지는 유시진과 강모연이 만들어가는 이야기는 꽤 남자와 여자의 본능을 자극한다. 그것은 어찌 보면 어린 시절 누구나 소꿉장난 같은 것을 통해 했던 이야기들이다. 골목 한 켠에 가상의 공간을 설정해 놓고 하는 남자들의 군대 놀이와 여자들의 병원 놀이 같은. 그렇게 보면 <태양의 후예>의 무엇이 우리의 마음을 그토록 사로잡는가를 이해할 수 있다. 그것은 우리가 의식하지 않아도 본능적으로 매료되는 이야기의 소재와 구조를 담고 있다.

 

우르크라는 가상의 공간과 그 위에서 펼쳐지는 군인과 의사의 전쟁 같은 사랑. 이만큼 드라마틱하면서도 우리의 본능을 건드리는 이야기가 있을까. 이것이 한 번 들여다보면 눈을 뗄 수 없고, 우르크라는 공간에 매료되다가도 그 안에서 서로 부딪치는 남녀의 사랑에 마음을 빼앗기게 되는 <태양의 후예>가 가진 근원적인 힘이 아닐까. 가상이지만, 아니 가상이기 때문에 더더욱 빠져들 수밖에 없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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