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암허준>, 허준과 예진, 예수와 마리아처럼 보이는 이유

 

<구암허준>에서 허준(김주혁)과 예진(박진희)의 관계는 여타의 드라마들이 그리는 남녀 관계와는 사뭇 다르다. 허준은 이미 다희(박은빈)와 혼례를 치른 기혼자. 허준과 다희의 부부관계는 그 누구보다 애틋하다. 드라마는 사실상 허준이라는 명의를 만든 것이 다희의 내조였다는 것을 강조한다. 그토록 구박하는 오씨(김미숙) 밑에서 허드렛일을 하며 모은 돈을 내의원 시험 보러가는 허준에게 건네는 다희의 모습은 전형적인 조강지처 그대로다.

 

'구암허준'(사진출처:MBC)

그렇다면 이 사극에서 사실상의 여주인공인 예진이 있는데 왜 허준은 다희와 이미 혼례를 치른 인물로 설정되어 있는 걸까. 전형적인 드라마라면 남주인공과 여주인공의 멜로는 어찌 보면 당연할 것이다. 하지만 <구암허준>은 애초부터 남녀 간의 멜로를 포기했다. 예진이 허준을 마음에 두고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그것은 사랑이라기보다는 존경에 가깝다. ‘부디 심의가 되셔서 천형을 지고 사는 병자들의 고통을 벗겨주십시오.’ 과거를 보러가는 허준에게 보낸 예진의 편지에는 그 마음이 가득 담겨있다.

 

허준과 예진의 관계는 <구암허준>이 그리고 있는 것이 무엇인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구암허준>은 서자로 태어난 것을 한탄하며 저잣거리에서 행패나 부리던 허준이 의술을 배워가면서 차츰 심의(心醫)가 되어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그것은 인간의 길이 아니라 성인의 길이다. 대풍창(나병) 환자들을 돌보는 삼적대사(이재용)가 약재를 실험하기 위해 스스로 독한 약을 먹는 모습이나, 그의 밑에서 환자들을 지극정성으로 돌보는 허준, 예진은 그래서 인간이라기보다는 성자에 가깝게 그려진다. 허준과 예진은 마치 성경에서 나병환자를 구하는 예수와 마리아를 닮았다.

 

과거시험을 보러 가다가 가난 때문에 약 한 번 제대로 써보지 못하고 시름시름 앓는 병자들을 구하는 허준은 이미 인간의 한계를 넘어선 의성(醫聖)의 모습을 보여준다. 유도지(남궁민)와 그 일행들이 과거시험 때문에 눈앞의 병자를 내치는 것과는 정반대의 길. 그 많은 병자들을 돌봐주고 떠나는 길에 마을주민들이 “이 은혜를 어떻게 갚냐”고 하자 허준은 오히려 이런 말을 한다. “병자들을 다 보지 못하고 떠나 죄송한 마음일 따름입니다.”

 

자신의 어머니를 구하기 위해 허준에게 거짓말을 해 자신의 집으로 데려간 돌쇠(이계인)의 에피소드 역시 의성 허준의 면모를 발견할 수 있는 대목이다. 과거시험을 보러 가겠다며 뿌리치던 허준은 결국 쓰러진 병자를 외면하지 못한다. 자신의 노잣돈을 털어 약을 사오게 하고 갑자기 쓰러진 병자를 살리기 위해 심지어 자신의 손가락을 깨물어 병자의 입에 넣어준다. 과거시험을 보러가는 길을 막은 돌쇠에게 화가 날 법도 하지만, 허준은 그 돌쇠의 절실함을 이해한다.

 

<구암허준>은 그저 의술의 길을 통해 어의에까지 오르는 허준의 그 출세와 성장담을 그리는 드라마가 아니다. 그것은 대신 인간의 길과는 전혀 다른 성인의 길을 택한 한 의원의 이야기다. <구암허준>이 우리에게 진한 감동을 선사하는 것은 작금의 출세와 성공에 목매는 세태와는 정반대의 길을 걸어간 한 성자의 모습이 거기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구암허준>이 때로는 종교적인 느낌마저 들게 해주는 이유이기도 하다.

<내연애>가 그저 그런 멜로라고? 실험작이다

 

신하균이 이처럼 달달했던 적이 있었나. 과거 신하균이 했던 작품들 속 인물들을 보면 어딘지 신경쇠약 일보직전의 캐릭터들이 대부분이었다. 대중들의 뇌리에 깊게 박힌 이미지는 그래서 아마도 하균신이라는 닉네임이 붙을 정도로 강렬했던 <브레인>의 이강훈이라는 캐릭터일 게다. 그런 신하균이 눈웃음을 살살 치고 심지어 애교를 떤다. <내 연애의 모든 것>의 김수영 의원을 연기하는 신하균의 모습은 확실히 낯설면서도 신선하다. 물론 초반에는 예전 신하균의 이미지 그대로 까칠하기 이를 데 없는 정치인의 모습을 보여주지만, 사랑에 빠지게 되면서 그는 차츰 변화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내 연애의 모든 것'(사진출처:SBS)

반면 이민정은 신하균과는 정반대의 이미지 변신이다. 늘 풋풋한 사랑의 아이콘이었던 이민정은 이 드라마 속 노민영 의원이라는 캐릭터를 통해 정치인들에게 거침없이 쓴 소리를 쏟아 붓는 정의로운 모습을 보여준다. 대한국당, 민우당, 녹색진보당이 룸싸롱에서 술판을 벌이고 밀실회의를 하는 광경을 보고는 치밀어 오르는 혐오감에 그녀는 컵을 집어던지며 이렇게 일갈한다. “애국이 국어사전에서 썩어 빠지겠다 이 개자식들아! 이러니까 국민들이 정치가 정치인들이 국민 뜯어먹고 산다고 생각하는 거거든요!”

 

사실 이 드라마에서 연기변신을 하고 있는 건 신하균과 이민정만이 아니다. 김수영 의원의 수석보좌관 맹주호 역할을 연기하는 장광이나 김의원의 비서 김상수 역할을 연기하는 진태현도 지금껏 보지 못했던 모습을 보여준다. 둘 다 강렬한 악역을 주로 해왔지만 이 드라마에서는 이보다 더 웃길 수 없고 이보다 더 귀여울 수 없는 그런 캐릭터를 연기해내고 있다. 신하균과 진태현 또 신하균과 장광의 연기 합은 그래서 이 드라마가 그리고 있는 멜로만큼 충분한 재미를 선사한다.

 

그러고 보면 <내 연애의 모든 것>은 그간 우리가 생각해왔던 정치라는 소재가 가진 상투적인 이미지를 뒤집는 작품이기도 하다. 정치만큼 대중들에게 첨예하고 무겁고 심지어 역겹게 느껴지는 것은 없지만, 실상 그 정치를 하는 정치인들도 결국 개인으로 돌아오면 우리와 똑같이 사랑에 빠지고 고민하는 사람일 뿐이다. 어떤 국가나 정당을 위한 선택과 소신 같은 공적인 결정은 그래서 누구나 다 똑같을 수밖에 없는 사적인 연애가 생겼을 때 그 갈등을 일으키기도 한다. 김수영 의원과 노민영 의원의 연애가 쉽지 않은 건 그 때문이다.

 

정치와 로맨틱 코미디의 결합은 그래서 대단히 신선한 화학적 실험이다. 정치가 가진 무거움과 로맨틱 코미디가 가진 가벼움은 과연 공존할 수 있을까. 정치인으로서의 공적 존재가 연애하는 사적 존재와 공존할 수 있을까.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내 연애의 모든 것>이 꽤 괜찮은 완성도를 갖추고 있으면서도 시청률이 낮은 건 그래서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정치 이야기를 원하는 시청층과 로맨틱 코미디를 원하는 시청층은 다를 수밖에 없다.

 

<대물> 같은 드라마의 성공을 빗대 대중들이 정치 이야기를 좋아한다고 말 할 수는 없을 게다. 왜냐하면 그것은 본격 정치 이야기라기보다는 아줌마의 정치인 성장담에 더 초점이 맞춰지는 것이고, 정치 역학보다는 대중정서에 더 어필하는 드라마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수사반장>이 수사물이 아닌 것과 마찬가지다. 80% 범죄자가 된 사연을 소개하고는 나머지 20% 그 범죄자의 등을 최불암이 두드려주는 <수사반장>은 인간극장이자 휴먼드라마일뿐이다. 즉 우리네 드라마의 특성상 본격적으로 정치 역학을 소재로 활용해 성공한 드라마는 많지 않다.

 

따라서 본격적인 정치의 이야기를 소재로 삼으면서도 그 위에 멜로라는 사적인 문제를 얹어 놓은 <내 연애의 모든 것>은 그저 그런 멜로가 아니다. 신하균과 이민정의 달달한 로맨스를 전면에 보여주려 하는 것은 그것이 좀 더 대중적이기 때문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전부라는 얘기는 아니다. <내 연애의 모든 것>은 꽤 많은 것들을 뒤집는 실험작이자 문제작이다. 신하균과 이민정의 연기 변신을 통해 그 화학작용이 만들어내는 과정을 따라가다 보면 적어도 정치에 대한 새로운 시선을 갖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시청률이 좀 낮다 해서 이 작품을 폄하할 수 없는 이유다.

상승세 탄 <구암 허준>을 둘러싼 잡음들, 그 씁쓸함

 

<구암 허준>은 마치 김재철 전 MBC 사장을 상징하는 프로그램처럼 인식되는 경향이 있다. <허준>의 리메이크를 하자고 제안한 사람도 그이고 9시 <뉴스데스크>를 8시대로 바꾸고 그 9시에 <구암 허준>을 편성한 것도 그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구암 허준>이 초반 5,6%의 저조한 시청률에 머물러 있을 때 그것은 김재철 전 사장의 경영적인 실패로 인식되었다. 결과적으로 보면 당시 <뉴스데스크>의 시청률도 <SBS 8시 뉴스>에 밀렸었기 때문에 8시부터 10시까지의 편성 전략은 총체적인 실패라고 말할 수 있었다.

 

'구암 허준'(사진출처:MBC)

그런데 최근 <구암 허준>의 시청률이 조금 오르면서 그 이유에 대해 상반된 의견들이 나오고 있다. 김재철 전 사장의 퇴진과 맞춰져 오른 시청률에서 이것이 파업참여 노조의 복귀가 그 원인이라고 말하는 이들이 있는 반면, 그것은 말도 안 된다며 오히려 김재철 전 사장이 뿌린 씨앗이 이제야 그 열매를 거둔 것이라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과연 <구암 허준>의 상승세는 어떻게 평가 내려야 할까.

 

먼저 미안한 얘기지만 <구암 허준>의 상승세는 이 양자가 주장하는 그 어느 것에도 그 이유가 있지 않다는 점이다. <구암 허준>의 시청률이 조금씩 오르고 있는 것은 그 어떤 외부적인 요인 때문이 아니라 이 드라마가 갖고 있는 힘이 조금씩 생겨나고 있기 때문이다. 초반부에 허준(김주혁)이 서자로 태어난 자신을 비관해 방황하는 모습을 보였던 부분에서는 이 허준이라는 소재가 그다지 힘을 발하지 못했지만, 그가 유의태(백윤식)의 문하로 들어가 의술을 배우며 병자를 돌보고 성장해가는 모습이 등장하면서 허준 특유의 힘이 생기고 있는 것.

 

실제로 허준이 우상대감댁 심씨의 중풍을 고치는 에피소드는 시청자들의 눈을 사로잡으며 시청률을 8%대까지 끌어올렸다. 허준을 믿지 못하는 우상대감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병자를 돌보기를 간청하는 허준은 부와 명성을 얻기에만 급급한 유도지(남궁민)와 비교되면서 진정한 의원이 무엇인가 하는 질문을 던지게 했다. 최근 허준은 유의태에 의해 내쳐지면서 다시 위기에 처했지만 다시 삼적대사(이재용)를 따라 나병환자를 도우며 더 큰 성장을 예고하고 있다. 아마도 삶이 팍팍한 현재의 서민들에게는 허준의 이런 모습은 그저 명의가 아니라 성자 같은 인상을 주었을 것이 분명하다.

 

최근 시청률이 8,9%에 이르게 된 것은 <구암 허준>으로서는 오히려 아쉬운 일이다. 초반에 5% 남짓한 시청률에 머물렀다고 해서 지금 현재의 시청률에 만족하기는 어렵다는 얘기다. 만일 <구암 허준>처럼 완성도와 메시지를 갖춘 드라마를 9시대 30분이 아니라 10대 1시간으로 편성했다면 아마도 그 시청률은 이미 20%를 훌쩍 넘겼을 공산이 크다. 결과적으로 보면 <구암 허준>은 상승세를 타고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그것이 편성의 성공으로 치부할 수는 없다는 얘기다. 깊은 상처가 조금 아물었다고 해서 그것을 완치로 보긴 어려운 일 아닌가.

 

물론 김재철 전 사장의 퇴임이 주는 효과는 분명히 있다. 그것은 적어도 이제 프로그램의 성패에 대해서 경영적인 문제를 거론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즉 프로그램 하나의 성패가 MBC의 성패로 가늠될 때 그 프로그램이 갖는 부담감은 엄청날 수밖에 없다. 또 김재철 전 사장 시절에 경영진들 때문에 프로그램 안 본다는 얘기도 이제는 조금 줄어들 것이다. 프로그램 제작자 입장에서 이런 이야기는 답답하고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구암 허준>이 조금 상승세를 타자 그것이 서로 자신들의 성과라며 나오는 이야기는 이 드라마 제작진이나 팬으로서는 씁쓸할 수밖에 없는 일이다. 병자를 고쳐 그 상으로 집 한 채를 지어주겠다는 것도 마다하며 오히려 그 병자가 기력을 되찾은 것이 자신에겐 큰 상이라 말하는 허준의 모습을 되새겨볼 때다. 작은 공도 크게 부풀리기 전에 그 불편한 마음에도 끝까지 방송을 봐준 시청자들에게 고마움을 돌려야할 때가 아닌가.

반인반수 영웅으로 재탄생된 이승기의 구미호

 

왜 <구가의 서>가 다루는 우리네 민초들의 영웅은 반인반수로 태어났을까. 이승기에 의해 재탄생된 구미호는 우리가 <전설의 고향>에서 보던 “서방님 하루만 더 참았어도...”하며 원망의 눈길을 보내던 그 구미호가 아니다. 우리네 전설에서 구미호라는 존재가 한이 내면화된 민초들의 억압에서 탄생한 존재라면, <구가의 서>의 반인반수 최강치(이승기)는 안으로 꼭꼭 숨겨두는 한보다는 겉으로 터져 나오는 분노에서 탄생한 존재다.

 

'구가의 서'(사진출처:MBC)

확실히 지금은 조선시대의 수동적인 구미호의 신파가 감흥을 잃은 시대다. 아마도 70년대 가부장적인 가족체계 내에서라면 이른바 고부갈등과 시집살이에 꾹꾹 눌려진 억압이 구미호의 신파적인 변신만으로도 눈물로 풀어져버렸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달라진 시대는 달라진 구미호를 요구한다. 최강치가 그려내는 구미호 이야기는 그래서 신파가 아니라 활극에 가깝고, 내면화된 욕망을 풀어내는 공포가 아니라 좀 더 겉으로 드러내는 판타지에 가깝다.

 

“다 죽여버릴거야!”라고 외치는 분노의 최강치는 그래서 그 최대의 적이 바로 자신이다. 물리적인 힘으로는 도무지 그 누구도 그를 이길 수 없지만, 바로 그런 엄청난 반수의 힘은 어느 쪽으로 사용되느냐에 따라 그 결과가 달라진다. 마치 핵을 가지고도 누가 사용하느냐에 따라 달라지듯이, 최강치는 지금 왜구의 침략에 대비하여 거북선을 만들려는 전라좌수사 이순신(유동근)과 백년객관을 빼앗고 왜구들과도 결탁해 무언가를 꾸미고 있는 희대의 간웅 조관웅(이성재) 사이에서 줄다리기가 되고 있는 존재다.

 

조선시대의 구미호 전설을 재해석하고 있지만 <구가의 서>는 그래서 무수한 현대의 영웅담과 판타지물의 흔적들이 들어있다. 분노하면 반수로 변신해 자신도 모르게 모든 적을 살상하는 그 모습은 헐크를 닮았고, 다른 존재로서의 외로운 영웅의 모습은 스파이더맨이나 슈퍼맨을 닮았으며, 영웅의 인간적인 고뇌는 배트맨을 닮았다. 그래서인지 이 이야기의 배경이 되는 전라도는 배트맨의 고담시처럼 고립된 인상이 짙고, 그걸 장악하는 조관웅은 고담시나 뉴욕을 꿀꺽 삼키기 위해 테러를 일삼는 악당을 닮았다.

 

물론 여기에는 영웅담 이외에 판타지물의 흔적도 담겨 있다. 지리산을 지키는 신수 구월령(최진혁)과 소정법사(김희원)는 <반지의 제왕>의 요정과 마법사를 떠올리게 하고, 담여울(수지)과 최강치의 관계 설정은 일본 만화 <이누야사>를 닮았다. <구가의 서>는 이처럼 그간 <전설의 고향>이 다루던 전통적인 구미호와는 확연히 다른 캐릭터다. 우리만의 특수성을 가진 구미호라는 캐릭터를 전 세계 보편적인 변신 캐릭터들(이를테면 뱀파이어나 늑대인간에서 현대적인 슈퍼히어로에 이르는)로 그리고 있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달라진 구미호 최강치는 민초들에게 어떤 영웅일까. 과거의 구미호 텍스트들은 구미호보다 더한 인간의 모습을 그려내는 것으로 당대의 신분구조가 주는 억압을 해체시켰다. 양반과 상놈의 신분구조는 인간과 구미호로 치환되었고, 구미호는 공포의 존재가 되어 인간을 깨우치는 이야기로 그려진다. 2000년대가 넘어 재탄생된 구미호 이야기들은(이를 테면 <여우누이뎐>같은) 구미호보다 심지어 더 공포스런 인간들을 비판한다. <구가의 서>가 그리는 구미호도 다르지 않다. 여기에는 인간이지만 반인반수보다 못한 조관웅이 등장한다.

 

하지만 최강치라는 새로운 영웅이 하려는 것은 조관웅을 죽이는 사적인 복수에 머물러 있지 않다. 이순신이라는 존재가 굳이 등장한 이유다. 이 반인반수의 영웅은 임진왜란과 무적의 이순신이라는 존재 옆에 생겨난 판타지다. 그런 점에서 <구가의 서>의 구미호는 사회적 억압이 만들어낸 공포의 캐릭터가 아니라, 사회적 분노가 만들어낸 영웅에 가깝다. 권세에 기대 뭐든 갖고 싶은 것을 취하려는 조관웅은 그래서 사회적 분노를 일으키는 공공의 적이 된다.

 

최강치라는 새로운 구미호는 현대인들의 분노가 응축되어 만들어진 캐릭터다. 분노에 의해 만들어진 그의 강력한 힘은 이미 신분체계의 벽을 넘어선다. 하지만 괴물과 싸우면서 가장 조심해야 할 것은 스스로가 괴물이 되지 않는 일이다. 최강치에게 남겨진 문제는 그래서 그 힘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가 된다. 현대인들이 갖고 살아가는 분노가 그러한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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