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제가 만든 갈망, <진짜사나이>의 동력

 

뭐든 <진짜사나이>가 하면 다르다? 그토록 걸그룹들이 너도 나도 가요 프로그램에 나와 섹시경쟁을 벌여도 이만한 화제가 되긴 어려울 것이다. 게다가 이 화제는 자극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훈훈한 느낌마저 부여한다. <진짜사나이>에 잠깐 등장했던 걸스데이가 군통령의 위엄을 보여주며 샘 해밍턴의 가지 말라는 절규를 이끌어냈다면, 레인보우는 팬더 분장을 한 박형식으로 하여금 감격의 검은 눈물(?)을 쏟아내게 했다.

 

'진짜사나이(사진출처:MBC)'

걸그룹 앞에서 하나 되는 군 장병들의 모습은 우스꽝스러우면서도 동시에 공감대를 불러일으킨다. 흔히들 걸그룹의 노출에 대해 그토록 비판적인 이들도 군 부대에서의 공연이라면 적당한 노출을 해주는 것이 심지어 예의라고까지 말하기도 한다. 사회와 격리되어 국방의 의무를 다하는 혈기왕성한 젊은이들이 잠시 접어두었던 욕망을 살짝 허용하는 그 시간에 대해 대중들이 그만큼 관대해지기 때문이다.

 

체육대회를 앞두고 폭염 아래서도 해야 하는 씨름장 정비 작업은 또 얼마나 힘겨운 일인가. 그 와중에 갑자기 벌어진 이른바 ‘삽콩콩’ 게임은 고된 시간에 한 때의 즐거움을 선사한다. 삽 한 자루만 있어도 충분히 재밌어지는 <진짜사나이>가 보여주는 군대 놀이의 묘미는 어떻게 가능해지는 걸까.

 

응원전, 줄다리기, 장기자랑, 씨름, 이어달리기. 뭐 특별할 것도 없는 어린 시절부터 해왔음직한 ‘운동회’의 군대 버전이지만 <진짜사나이>가 보여준 체육대회는 마치 전쟁을 치르듯 치열하고 흥미진진해졌다. 응원전의 신경전은 대결구도를 더 강하게 만들었고, 어떻게든 이기려고 안간힘을 쓰는 줄다리기는 보는 이의 손에 땀을 쥐게 했다.

 

그다지 우습다고 할 수 없는 분장 개그가 난무하는 장기자랑은 또 어떤가. 특별할 것도 없지만 군대에서 하니 그 묘미는 몇 배가 되었다. 천하장사들이 나와서 벌여도 잘 보지 않던 씨름도 군대에서는 다르게 느껴진다. 열혈병사 장혁이 단 번에 메다 꽂히는 수모를 겪는 장면을 어디서 또 볼 수 있겠는가. 물론 군장달리기에서 그 열혈병사의 면모를 과시하며 1등을 선사한 장혁이지만.

 

그러고 보면 <진짜사나이>에서 벌어지는 군대의 일상은 그 하나하나가 사회에서 우리가 느꼈던 것의 몇 배의 체감으로 다가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햄버거 빵에다 패티와 잼을 함께 발라 먹는 군대리아가 화제가 되는 것은 그것이 군대이기 때문이다. 화채나 군용 비빔밥을 맛있게 먹는 이른바 <진짜사나이>의 먹방이 몇 배의 재미를 주는 것은 군대라는 공간이 주는 허기와 갈증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군 생활을 해본 이들이라면 알 것이다. 모두가 땡볕에서 훈련을 받을 때 잠시 그늘에서 열외를 하는 시간은 그저 가만히 앉아 있는 것이지만 그 무엇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달콤하다는 것을. <진짜사나이>는 군대라는 통제의 공간 속으로 들어가 우리가 일상에서 느끼던 작은 것들마저 소중하게 받아들이게 만든다. 그래서 박형식 같은 젊은 아이돌이 무대 위에서의 신비감을 한껏 벗겨내고 일반사병들과 어우러져 “맛있습니다!”, “최고입니다!”를 연발할 때 우리는 어떤 공감의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된다.

 

이것은 <진짜사나이>가 일요일 밤을 평정한 새로운 예능의 포인트이다. 일상의 재발견은 리얼 예능이 트렌드가 될 수 있었던 가장 큰 요인이다. 지금은 힘이 빠져버렸지만 <1박2일>이 보여주었던 1박2일 간의 여행은 바로 그 일상의 소중함을 다시 알게 해주는 야외취침과 저녁 복불복의 연속이 아니었던가. <진짜사나이>는 이제 그 일상을 다시 찾기 위해 군대라는 통제의 공간으로 들어간 셈이다. 통제가 만들어내는 권태를 넘어서는 갈망은 그래서 이 프로그램의 진짜 동력이다.

<무도>, 또다시 위기인가

 

최근 들어 <무한도전>의 재미가 반감됐다는 이야기들이 많다. 빵빵 터지는 큰 웃음의 빈도도 많이 줄어들었고 보는 것만으로도 땀 냄새가 느껴지는 노력의 흔적도 과거에 비하면 잘 보이지 않는다. 특히 봅슬레이나 댄스 스포츠, 프로레슬링 같은 실제로 다가오는 리얼 미션은 올해 들어서는 단 한 번도 시도하지 않았다.

 

'무한도전(사진출처:MBC)'

최근 <무한도전>은 캐릭터 쇼를 바탕에 두고 즉석 상황극을 하거나 게임을 벌이는 것을 반복하는 중이다. 물론 그 아이템들 중에는 기발한 아이디어들도 있었다. 1년 전의 나와 내가 대결을 벌이는 ‘나와 나의 대결’이나 택시 체험을 했던 ‘멋진 하루’, 아이돌을 대상으로 했던 ‘역사 특강’ 같은 아이템들은 재미와 의미를 모두 충족시켰던 도전들이었다.

 

하지만 어떤 아이템들은 이제 새롭다기보다는 과거에 했던 아이템의 반복 정도로 여겨지는 면들이 생겨나고 있다. ‘맞짱 대결’은 과거 빅뱅과 했던 대결 아이템을 이어붙였고, ‘명수는 열두 살’이나 ‘무한상사’ 같은 상황극은 이제는 너무 익숙한 아이템이 되었으며, ‘웃겨야 산다’ 같은 아이템은 이미 여러 번 위기설이 나올 때마다 반복했던 아이템이다.

 

이번 ‘소문난 7공주’ 특집은 현재 <무한도전>이 처한 위기 상황을 극명하게 보여주었다. 캐릭터 코스프레는 무리수에 가까울 정도로 과도해졌고(심지어 쳐다보기 힘들 정도다) 스토리도 자연스럽다기보다는 인위적인 게임에 의존하면서 툭툭 끊어지는 느낌이 강했다. 웃기겠다는 출연자들의 의지는 그 어느 때보다 강하지만 맥락이 없다고나 할까.

 

한참을 보다보면 왜 공주 코스프레를 한 일곱 명의 멤버들이 저런 캐릭터쇼를 하고 있는가가 궁금해진다. 보이는 목적은 단 하나다. 무조건 웃기기. 하지만 바로 이 강박이 만들어내는 막 개그는 <무한도전> 특유의 색깔을 상당부분 무너뜨리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B급 정서가 깔려 있지만 그 정서 속에 존재하는 어떤 페이소스 같은 것이 잘 보이지 않는다는 것.

 

물론 웃음을 주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는 것 그 자체가 하나의 진정성일 수 있다. 하지만 새로운 아이디어가 잘 보이지 않는 아이템 속에서 어떻게든 웃기려고 안간힘을 쓰는 멤버들의 면면을 보는 것은 그다지 즐거운 일이 아니다. 몸에 과도한 분장을 하고 어울리지 않는 의상을 입고 밑도 끝도 없는 몸 개그를 던지는 것은 한두 번은 괜찮지만 반복되면 식상해지기 마련이다.

 

지난 주 ‘완전 남자다잉’ 특집에서 했던 과도한 상남자 캐릭터 코스프레나 이번 주 공주 코스프레가 주는 웃음은 그래서 자연스럽다기보다는 억지로 뽑아내는 웃음에 가깝다. 망가진 공주 모습을 한 정준하가 프로그램 말미에 “다음 주에 다시 만나요-”하고 특유의 콧소리를 넣어 던지는 마지막 대사는 그래서 그다지 큰 감흥을 주지 못한다.

 

물론 다음 주 예고편으로 등장한 ‘예능캠프’는 그간 게스트 초대 아이템들과 유사하지만 그래도 충분한 기대감을 만들어준다. 하지만 그 기대감 역시 멤버들에 대한 것이라기보다는 새로 나올 게스트들에서 비롯된다는 점에서도 <무한도전>이 현재 처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그다지 도움이 될 것이라 여겨지지는 않는다.

 

사실 일주일을 <무한도전>을 기다리며 버텨내는 이들도 많을 것이다. 그래서 설혹 좀 덜 재미있었어도 <무한도전>이니까 용서되는 면은 분명히 존재한다. 하지만 이처럼 어떤 패턴에 갇히는 일이 반복된다면, 또 무언가 진짜 도전이 점점 사라지고 캐릭터 쇼로 자꾸만 흘러가면서 웃음이 인위적으로 만들어지기 시작한다면 그 때는 이미 늦을 수 있다. 물론 계속해서 새로운 아이디어를 뽑아낸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좀 더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무한히 도전하는 것. <무한도전>의 이 정체성을 되살려야 한다.

<정글>, 시청자를 바운스시키는 김병만이라는 심장

 

김병만. 이 친구 진심이다. 진심이 아니라면 미친 거다. 방송을 위해서 하늘에서 뛰어내리고 기꺼이 바다 속으로 뛰어든다는 것은 제 정신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스카이다이빙을 하기 위해 비행기에 타고 있는 김병만의 얼굴에는 달인답지 않은 긴장감이 어려 있었다. 왜 그렇지 않겠는가. 다른 일도 아니고 비행기에서 뛰어내리는 일이다.

 

'정글의 법칙(사진출처:SBS)'

보통 사람이라면 한 번 뛰어내리기도 힘든 그것을 그는 외국에서 스카이다이빙을 하기 위해 25회 이상을 뛰어내렸고(그래야 에이 라이센스를 받는다), 그것도 모자라 바다 위로 뛰어내리기 위해 3일 동안 25회를 더 뛰어 50회 경험을 채웠다고 한다. 그가 하늘에서 뛰어내리는 장면을 찍은 사진 속에서 김병만은 밝게 웃고 있었다.

 

<맨발의 친구들>이 단점 극복 프로젝트로 진행했던 다이빙에 참가한 김병만은 다이빙 관련 자격증만 무려 세 개라고 말했다. 물론 그 자격증은 <맨발의 친구들>이 도전한 다이빙과는 상관없는 것이었다. 스킨스쿠버 오픈워터와 스킨스쿠버 어드밴스드 오픈워터 그리고 프리 다이빙이 그것이다. 이것은 물론 <정글의 법칙>을 위한 것이다. 그간 바다로 뛰어들면서 좀 더 깊은 바다로 들어가기 위해, 좋은 장면을 잡아내기 위해, 또 식량 확보를 위해서도 다이빙 자격증은 반드시 필요했을 게다.

 

이렇게 준비된 김병만이 9번째 도전지로 간 곳, 카리브해는 그래서 어쩌면 그의 놀이터(?)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정글이라는 공간이 언제 병만족을 위험과 고통 속에 몰아 넣을 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그래도 김병만이 준비한 스카이 다이빙과 스쿠버 다이빙은 분명 이번 <정글> 여정에 대한 기대감을 높여주기에 충분하다.

 

처음 <정글의 법칙>이 아프리카 나미비아에 갔을 때만 해도 어쩌면 나무를 손쉽게 타고 오르고 아무 것도 없는 곳에서 나무로 집을 짓고 먹이를 구해 끼니를 해결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시청자들의 눈길을 잡아끌 수 있었다. 하지만 거듭되는 다양한 도전지 속에서 김병만에 대한 기대치도 높아진 게 사실이다. 그리고 이것은 또한 김병만이 늘 준비해오던 것이기도 하다. ‘달인’을 하며 그 무수한 도전을 할 수 있었던 건 그것을 즐기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 도전이 시청자들에게 자신의 진심을 보여줄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번 ‘극기’라는 주제에 김병만은 스스로 ‘어떠한 어려움이 있어도 웃음을 잃지 않겠다’는 공약을 내걸었다. 그러자 병만족들 역시 여기에 모두 동참하겠다는 뜻을 전했다. 이것은 아마도 그간 <정글의 법칙>에 웃음이 사라지고 있다는 우려에 대한 김병만과 병만족의 의지일 것이다. 하지만 정글에 들어가 웃음을 잃지 않는 일이 어디 쉬운 일일까. 정글에서 웃음을 잃지 않으려면 그 정글을 이겨낼 수 있는 준비된 자세가 필요하기 마련이다. 김병만이 하늘과 물에 대한 공포를 이겨내듯이.

 

김병만은 아마도 이미 이 험난한 길에 뛰어 들었을 것이다. 준비된 자가 되기 위해 진짜 탐험가, 생존전문가로서 필요한 것들을 하나씩 배워가는 것. 처음부터 진짜 ‘달인’은 아니었지만 어느 순간 김병만이 진짜 달인으로 우리 앞에 서게 되었듯이, 그는 언젠가는 진짜 탐험가로서 우리 앞에 설 지도 모르겠다. 모든 것을 부정적으로 바라본다고 해도 시청자를 바운스시키는 김병만이라는 심장, 적어도 이 진심만은 외면하기 어려울 것 같다.

왜 사유리의 도발은 허용될까

 

<라디오스타>가 마련한 입방정 특집은 사유리와 클라라의 몸매 대결로 후끈 달아올랐다. <결혼의 여신>이 40% 시청률을 내면 누드화보를 찍겠다는 클라라의 도발적인 공약에 대해 이야기하던 중 사유리는 갑자기 “가슴이 있어?”하고 클라라에게 물었고 클라라는 의상이 몸매가 드러나지 않는 옷이라 그렇다며 “사유리보다는 큰 것 같아요”라고 받아쳤다.

 

'라디오스타(사진출처:MBC)'

그러자 사유리는 “클라라가 가슴이 크다는 얘기를 들어서 비교될까 봐 걱정했는데 뭐 이 정도 밖에 안 되네요”라며 가슴에 넣어놓은 휴지를 빼는 돌발행동을 해 MC들을 당황하게 만들었다. MC들이 민망해할 정도니 그걸 보는 시청자들은 오죽했을까. 실로 우리네 지상파 토크쇼에서 다뤄지기엔 민망한 대결이 아닐 수 없었다.

 

만일 남자들의 입을 통해 이런 이야기가 나왔다면 그 자체로 성희롱이 될 법한 수위였다. 여성 시청자들이라면 토크쇼에서 ‘가슴 운운’ 하는 이야기가 불쾌한 느낌을 주었을 수도 있다. 지나치게 여성을 성적 대상으로 그려내는 뉘앙스가 깔려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상황은 ‘입방정(몸방정 포함)’ 특집이라고 붙이고 사유리, 김흥국, 이준, 클라라를 게스트로 앉힐 때부터 이미 예고된 것이나 다름없다.

 

클라라가 “노출로 뜨려고 한 적이 없지만” 잘못 입으면 아줌마처럼 보여서 “몸에 붙는 의상을 자주 입다 보니” 노출로 이슈가 됐다며 고민을 털어놓을 때 이준이 자신도 “노출로 떴다”고 말하면서 남자가 벗으면 멋있다고 하면서 여자가 벗으면 노출로만 몰고 가는 이중 잣대를 거론하는 방식의 이야기 흐름은 <라디오스타>다운 솔직 과감한 매력을 보여주기도 했다. 하지만 지상파 토크쇼에서 난데없이 벌어진 가슴대결은 그 수위가 높았던 것이 사실이다.

 

흥미로운 건 이것이 가능했던 이유가 사유리라는 어디로 튈지 알 수 없는 사차원 매력의 소유자가 있었기 때문이라는 점이다. 심지어 순진무구하게까지 보이는 사유리가 던진 도발에는 마치 아이 같은 솔직함이 묻어났다. 그것은 아마도 대중들에게 각인된 사유리의 평소 모습과 그로 인해 자연스럽게 갖게 된 엉뚱 캐릭터 덕분이었을 게다. 사유리의 돌발행동이 대중들에게 허용되는 것은 그것이 가식이 아니란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이것은 클라라와는 사뭇 다른 반응이다. 사유리의 돌발 행동이 허용되는 반면, 클라라의 노출과 그 노출에 대한 자신의 이야기는 왜 대중들에게 받아들여지지 않을까. 그것은 클라라의 말과 행동에 일관성이 느껴지지 않기 때문이다. “노출로 뜨려한 적 없다”고 말했지만 다른 프로그램에서는 “다음 시구의상이 고민된다”며 ‘코르셋’을 거론하기도 했던 그녀가 아닌가.

 

결국 방송 이미지는 일관된 모습을 통해 생겨나기 마련이다. 박명수에게 호통이 허용되는 것은 그가 일관되게 그 모습을 대중들에게 보여줬기 때문이다. 이준이 아이돌 세계를 ‘동물의 왕국’으로 표현하고서도 욕을 먹지 않은 건 그가 가진 일관된 솔직함 때문이다. 사유리도 마찬가지다. 그녀의 엉뚱 도발에는 그녀의 진심이 묻어난다.

 

이것은 클라라가 배워야할 점이다. 그녀는 훌륭한 연기자가 목표라고 했지만 그 연기자가 되기 위해서는 자신의 현재 정체성을 인정해야 한다. 노출로 대중들에게 각인된 자신의 이미지를 받아들이고 거기서부터 노력을 시작하는 것. 이것이 그녀의 진짜 목표에 다가가는 지름길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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