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떴2'가 가진 공감 없는 스토리의 문제

새로운 구성원으로 시작한 '패밀리가 떴다(이하 패떴)'. 그 추락이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한때는 주말 예능의 지존의 자리까지 있었던 '패떴'은 차츰 하향세의 길을 걸어오다 결국 구성원 전원을 교체하고 '패떴2'로 변화를 꾀했다. '패떴2'의 첫 방은 16% 남짓의 시청률을 기록하며 기대감을 높였으나 현재는 반 토막에도 못 미치는 7.5%에 머물고 있다. 도대체 무엇이 이런 결과를 가져온 걸까.

먼저 지목되는 것은 유재석, 이효리 같은 '패떴' 1기 멤버들의 공백이 너무 크다는 것이다. 사실이다. 지금 '패떴2'에는 전체 분위기를 자연스럽게 굴러가게 할 수 있는 이들 같은 존재가 없다. 김원희가 나서서 상황을 이끌려는 노력이 보이나, 그것은 유재석이 하는 것처럼 자연스럽지가 않아 마치 리얼 예능에서 토크쇼를 진행하는 듯한 어색함이 있다. 지상렬은 거의 목숨을 걸고(?) 궂은일을 도맡아하는 열성을 보이지만 그걸 효과적으로 받아주는 멤버가 별로 보이지 않는다. 그저 열심히 한다는 느낌만을 전할 뿐이다.

애초에 기대했던 조권, 윤아, 택연은 이미 프로그램밖에 있던 캐릭터를 프로그램 속으로 가져와 반복해서 보여줌으로써 그 이미지 소모가 너무 빨라지고 있다. 조권은 여기서도 여전히 깝춤을 추고, 윤아는 '분장실의 강선생님' 흉내를 내며, 택연은 초콜릿 복근을 과시한다. 매화아가씨-매실총각을 뽑는 장면에서 이들이 남장여자, 여장남자를 했다고 해도 결과는 마찬가지. 조권의 여장은 결국 깝춤으로 이어졌고, 윤아의 남장은 의외의 보이쉬함을 통한 털털함을 재확인해줬으며, 택연은 결국 근육 과시로 마무리되었다.

거의 전 멤버가 프로그램 속에서 캐릭터를 세우지 못하고, 대신 이미 갖고 있던 캐릭터를 반복하는 것은 '패떴2'의 정체성을 모호하게 만든다. '패떴'은 이미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연예인들이 유사가족으로 뭉쳐졌을 때, 그 새로운 관계 속에서 의외의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재미를 주는 예능 프로그램이다. 외부의 캐릭터를 그저 내부로 가져올 때, 그것은 '패떴'의 정체성을 공고히 해주는 게 아니고, 그 캐릭터를 반복하는 출연자의 정체성만 소비하게 된다. 즉 '패떴2'에서 고유의 특징을 만들어내기 어려워지게 되는 셈이다. 유일하게 새로운 이미지를 보여주는 인물은 윤상현이지만 예능 초보로서 그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이런 문제를 더욱 가중시키는 것은 연출의 문제다. 지금 '패떴2'에는 자연스러운 스토리가 부재하다. 어느 마을에 가는 것에 대한 설명도 없고, 그 곳에서 게임을 반복하는 것에도 어떤 이유를 찾기가 어렵다. 이것은 단지 프로그램의 의미만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다. 게임 하나를 하더라도 그 과정을 통해 시청자가 그 게임에 빠져들 수 있게 해줘야 하는데, 맥락 없는 게임은 시청자들의 맥빠지게 만든다. 아침에 기상시켜 갑자기 차에 타라고 한 후, 강변에서 씨름을 시키는 것은, 출연진을 고생시키는 것 이외의 공감을 찾기 어렵게 한다. 씨름부 아이들과의 아침 대결이 준비되었다면(어차피 이건 인위적인 것이다), 사전에 왜 그들이 대결해야 하는가에 대한 이유 정도는 암시되었어야 한다.

이것은 매화아가씨-매실총각 콘테스트나 벗굴 채취에서도 마찬가지다. 그것이 이곳의 명물인 매화와 매실 그리고 벗굴을 홍보하기 위한 것은 알겠지만, 그 과정에서 이들이 왜 게임을 통해 이런 생고생을 해야 하는지는 잘 이해하기가 어렵다. 지금 '패떴2'는 이처럼 공감이 형성되기 이전에 인물들을 이리저리 끌고 다님으로써 고생은 고생대로 하면서도 효과는 나오지 않는 상황을 만들고 있다. '패떴1'에서는 저녁 먹는 것 하나만으로도 충분한 재미를 주었는데, 지금은 눈밭과 진창에 뒹굴고, 벗굴 채취를 위해 차가운 물 속에 들어가도 그다지 재미를 주지 못한다.

이것은 '패떴1'이 가졌었던 공감대를 '패떴2'가 가져오지 못한 결과다. '패떴1'은 그 따뜻한 가족적인 분위기가 가장 큰 공감대였다. 그 분위기 위에서 서로 툭탁대지만 그것이 장난 같은 즐거운 놀이처럼 아기자기한 맛을 주었던 것. 하지만 '패떴2'는 너무 비장하다. 윤아나 조권, 택연, 윤상현 같은 좋은 멤버들을 갖췄음에도 불구하고, 시청자들의 마음에 저들과 함께 여행을 가면 얼마나 재미있을까, 하는 공감대를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다.

이 즈음에서 떠올려야할 프로그램이 있다. 바로 '야심만만'이다. '야심만만'은 설문이라는 형식을 통해 초대 손님들의 숨겨진 이야기를 끄집어내는 재미를 선사했다. 어찌 보면 폭로의 우회형 방식이라고도 볼 수 있지만, 여기에는 기본적으로 설문을 통해 바탕에 깔린 공감대가 있었다. '아 나도 저랬었지'하는 공감을 통해 출연자의 이야기에 시청자가 고개를 끄떡일 수 있었던 것. 하지만 '야심만만2'로 오면서 그 공감이 사라지고, 대신 자극적인 설정만 남게 되었을 때, 그 결과가 어떻게 되었는가를 상기해봐야 할 것이다. '패떴2'는 왜 안타깝게도 '야심만만2'의 전철을 밟고 있는 것일까.

알래스카 간 ‘무한도전’, 남극 도전하는 ‘1박2일’

‘무한도전’이 알래스카로 날아갔다. ‘1박2일’의 남극행을 염두에 두었던 행보 아니냐는 추측이 나왔지만, 미션 자체는 지극히 ‘무한도전’다웠다. ‘알래스카에서 김상덕씨 찾기’라는 지극히 사소한 선택. 반면 ‘1박2일’이 남극에 가는 데는 그 프로그램 성격상 명분이라는 게 필요했다. ‘1박2일’의 취지 자체가 국내의 잘 알려지지 않은 명소들을 구석구석 찾아가 소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1박2일’이 남극에 가는 것은 물론 여행에 있어서 극점이라는 의미로서 어떤 로망이 거기에 있기 때문이지만, 또 한 편으로는 남극에 우리의 세종기지가 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확장해서 바라보면 남극의 세종기지는 국내의 오지 섬과 그다지 달라 보이지 않는다.

반면 ‘무한도전’의 알래스카행은 ‘무한도전’답게 의미가 아닌 재미를 위한 것이었다. 일단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는 김상덕씨를 찾아 알래스카까지 간다는 것 자체가 우스운 설정이었다. 거기서 김상덕씨를 찾느냐 못 찾느냐는 애초부터 그다지 중요한 일이 아니다. ‘말이 씨가 되는 상황’. 그것을 찬찬히 목도하면서 그 속에서 생고생을 하는 그들의 모습 자체가 ‘무한도전’이 알래스카편에서 겨냥한 웃음과 재미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건 로망이 있기 때문에 남극을 선택한 ‘1박2일’과는 다른 이야기다. 그들은 벌칙 수행을 하기 위해 알래스카에 갔다.

목적 없이 떠난 벌칙 여행에서 유재석, 노홍철, 정형돈이 겪을 일은 대체로 예상 가능하다. 어찌할 바를 몰라 좌충우돌하는 상황. 의미가 아닌 재미를 위한 선택이었기에 가중되는 웃음에 대한 강박. 하지만 그게 잘 안 되는 상황. 유재석은 가평 번지점프대 위에서 역시 벌칙을 수행하며 하룻밤을 지내는 박명수, 정준하, 길에게 전화를 해서 “거기는 어떠냐?”고 묻는다. 그러자 길이 “완전 망했어요”라고 말하는 그 상황. 웃음을 주려고 극한 상황에 자신을 몰아넣었지만 웃음을 못주는 상황이 오히려 이번 미션의 재미 포인트가 된다.

따라서 알래스카까지 가서 얼음낚시를 하겠다고 몇 시간 동안 빙판에 구멍을 뚫기 위해 낑낑대는 모습이나, 난데없는 동계올림픽을 흉내 내다가 피까지 보는 상황은 분명 이 의도된 재미에 부합하는 것이었다. 게다가 이것은 개그맨으로서의 이들에게 새롭게 부여된 도전 상황으로서 ‘무한도전’의 취지와도 잘 어울린다. 웃음을 주기 어려운 상황에서 웃음을 주는 것. 늘 그렇듯이 ‘무한도전’은 미션을 성공적으로 수행해서 재미를 주지는 않는다. 그저 그렇게 무모한 듯 도전 상황에 내던져졌다는 것 자체로 재미를 준다. 즉 아이러니한 얘기지만 이번 상황은 웃음을 주었던 주지 못했던 그 도전 자체가 재미가 있었다는 이야기다.

이런 상황을 우리는 흔히 ‘1박2일’에서 발견한다. 즉 예능 프로그램이라는 전제 하에 어떤 미션 속에서 웃음을 주지 못하고 지나치게 진지하게 되었을 때, ‘1박2일’에서는 누군가 이런 얘길 한다. “이게 다큐지, 예능 맞아?” 예능이 다큐를 할 때 오히려 웃음을 줄 수 있다는 것을 ‘1박2일’은 일찌감치 알아차렸다. 그것은 지나친 진지함, 어찌 보면 사소할 수 있는 일에 대한 집착이 오히려 웃음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즉 ‘1박2일’은 늘 스스로가 다큐라고 주장하기 때문에, 그것은 쉽게 웃음으로 전화된다. 반면 ‘무한도전’은 재미를 모토로 하기 때문에 새롭게 시도된 다큐적 재미는 낯설게 보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거 다큐 아냐?”하고 늘 스스로에게 질문하는 ‘1박2일’은 바로 그 점 때문에 어떤 한계가 지워진다. 그것은 ‘의미에 대한 강박’이다. 무엇을 하건 의미가 무엇인가에 합당하지 않으면 비판받기가 쉬워진다. 재미를 위해 알래스카로 훌쩍 떠나는 것이 가능한 ‘무한도전’과는 달리 ‘1박2일’은 그 남극행을 선택하는데 있어서 꽤 많은 의미부여가 필요해진다. ‘무한도전’이 주창하는 ‘재미를 위한 재미’는 ‘1박2일’에서는 부러운 선택이 아닐 수 없다.

‘무한도전’이 거의 매번 새로운 형식을 실험하고, 그 속에서 새로운 재미를 찾아낼 수 있는 것은, 스스로 과도한 의미부여를 피하고 재미에 집중하기 때문이다. 의미부여는 따라서 스스로가 아니라, 시청자들에 의해 부여되곤 한다. 하지만 ‘1박2일’은 의미를 떼어낼 수가 없다. 만약 ‘1박2일’에서 ‘무한도전’이 벌칙으로 수행한 알래스카 같은 오지로의 목적 없는 여행을 했다면, 거기서도 ‘1박2일’은 어떤 의미를 끄집어내려 했을 것이다. 예를 들면, ‘목적 없는 여행’ 그 자체가 주는 의미 같은 것 말이다.

‘1박2일’은 그 프로그램 형식상 그 의미를 벗어날 수 없다. 여행이라는 사뭇 다큐적인 상황을 예능으로 끌어안았기 때문이다. 그러니 ‘1박2일’은 어쩌면 지금껏 이 의미로만 점철된 여행의 공간을 재미로 바꿔나가는 도전을 해온 셈이다. 교과서에서나 봐왔던 오지 속으로 들어가 게임을 하고 미션을 수행하면서 의미는 재미로 자연스럽게 전화된다. 그렇다고 의미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도리어 의미만 있던 공간에 재미가 부가되는 것이다. 이것은 여행이 과거 가이드가 붙는 관광여행에서 이제는 스스로 떠나는 체험여행으로 바뀌는 시대적 추세와도 잘 맞아 떨어진다.

‘1박2일’이 남극 도전을 포기하지 않는 것은, 그것이 마치 의미로만 점철된 그래서 딱딱하게 다큐적 의미만으로 고형화된 공간의 표상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남극하면 떠오르는 것은 다름 아닌 ‘다큐멘터리’다. 그 다큐멘터리의 영역 속으로 들어가 의미와 함께 그것을 뛰어 넘는 재미를 찾아내려는 무한도전, 그것이 ‘1박2일’의 남극 도전 속에 숨겨진 것들이다.

‘무한도전’의 알래스카행과 ‘1박2일’의 남극도전이 모두 똑같이 말해주는 메시지가 있다. 그것은 아직까지는 판타지라고 말할 수 있지만 앞으로는 현실이 될 ‘즐거운 삶에 대한 자유’에 대한 것이다. 알래스카와 남극은 더 이상 우리가 상상하는 그런 공간, 즉 특정인들만이 특정한 목적을 가지고 있어야 여행을 꿈꾸는 그런 공간이 아니라는 것이다. ‘무한도전’의 알래스카행을 보면서 어떤 로망을 느꼈다면 그것은 생각만 하면 알래스카라도 쉬 달려갈 수 있다는 그 상상의 자유로움 때문일 것이다. 목적도 없이 생각하는 대로. 이것은 ‘1박2일’이 꿈꾸는 남극행에서도 마찬가지다. 예능이 다큐의 영역을 넘어가는 시대, 즉 어떤 기능적인 목적이 아니라 즐거움 자체가 목적이 될 수 있는 시대를 이 두 프로그램은 지금도 매주 우리 눈앞에 펼쳐놓고 있다.

'개콘'의 풍자개그, 그 현실공감의 세계

"대학등록금이 무슨 우리 아빠 혈압이야?" 이 한 마디면 충분했다. 마치 마당놀이에서 광대들이 세상사를 그 도마 위에 올려놓고 이리저리 요리를 할 때 십년 묵은 체증이 쑥 내려가는 그 경험. 장동혁은 그렇게 '동혁이형'으로 우리에게 다가왔다. 지자체의 호화청사에 대해 "거기가 무슨 베르사이유 궁전이야?"라고 비판하고, 고층 시청사에 대해 "수익을 낼 거라는데 시청이 무슨 복덕방이야?"하고 꼬집었을 때는 국민의 세금 받아 정작 국민을 위한 일은 좀체 하지 않는 그 답답한 행태에 대한 신랄함에 속이 다 후련해졌다.

물론 이것은 개그다. 우리는 '동혁이형'의 샤우팅을 보면서 억울함에 부들부들 떨거나, 그 말에 선동 당하지는 않는다. 대신 우리는 말 그대로 빵 터진다. 그것은 이 개그가 웃음의 장치를 충분히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 기본은 촌철살인의 적절한 비유에서 나온다. '대학등록금'이 '아빠 혈압'과 만날 때, '호화청사'가 '베르사이유 궁전'이 될 때, '고층 시청사'가 '복덕방'이 될 때, 명절 고속도로 정체 속에서 하루 종일 운전해야 하는 귀향객이 "하루 종일 운전하는 이수근"이 될 때, 웃음은 빵 터진다.

게다가 이렇게 세상에 쓴 소리를 던지는 존재가 깔깔이에 교련복을 차려 입은 후줄근한 모습의 낮은 인생이기 때문에, 웃음이 터진다. 즉 정치인들이나 경제인들 같은 엘리트들이 하지 않는 이야기를 전혀 그런 얘기하고는 상관없을 것만 같은 불만투성이 청년이 '저 나름대로' 논리를 갖고 마구 쏟아내기 때문에 웃음이 나온다. 게다가 이 쓴 소리는 '동혁이형'이 스스로 말하듯, "애정이 있어서 하는 말"이다. 반대를 위한 반대, 그저 분노를 폭발시키기 위한 헐뜯기가 아니라는 것이다. 억눌렸던 감정이 터지며 그 분노가 웃음으로 전화된다는 점에서 '동혁이형'은 그 말을 입증하는 셈이다.

'동혁이형'이 부조리한 세상을 직설어법으로 풍자해낸다면, '남성인권보장위원회(이하 남보원)'와 '나를 술푸게 하는 세상'은 그 형식이 갖는 간접어법을 사용한다. '남보원'은 남성들이 자신들의 인권을 주장하는 내용을 갖지만 이것만으로 이 개그는 웃음을 주지 못한다. 여기에 시위처럼 붙여진 과장된 형식이 붙으면서 웃음을 만들어낸다. 문제제기-구호-사연설명-상황반전. 이것이 '남보원'의 간단한 형식이지만 이 형식은 많은 현실의 부분들을 공감으로 끌어안는다. 즉 남성들의 공감대는 물론이고 시위조차 하나의 통상적인 것이 되어버린 정치권에 대한 풍자까지 고개를 끄덕이게 만든다. 한편 "일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으로 잘 알려진 '나를 술푸게 하는 세상'은 취객의 목소리라는 희극의 단골소재를 통해 알 수 없는 그 더러운 세상을 풍자해낸다.

방송개혁시민연대(방개혁)는 '동혁이형'이나 '남보원' 같은 풍자개그가 선동을 함으로써 '개그를 개그로 볼 수 없게 만든다'고 하지만, 바로 그 풍자 속에 담겨진 현실 공감이 있기 때문에 이 풍자개그는 개그가 된다. 이러한 현실에 대한 공감을 이끌어내는 풍자개그는 '개그콘서트'의 오랜 전통이기도 하다. 특유의 어눌한 말투로 세상에 대한 하소연을 담아낸 안상태 기자가 그렇고, 잘못된 상흔에 대해 꼬집는 황현희 PD가 그렇다. 또 '분장실의 강 선생님' 같은 코너에서 늘 당하면서도 "행복한 줄 알아야 하는" 신참들은 88만원 세대들의 고충을 고스란히 담아냈다. 이 현실공감은 '개그콘서트'가 꾸준히 대중들과 호흡할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방개혁은 심지어 이 개그를 보고 있으면 "국민이 천민(賤民) 혹은 폭민(暴民)화"된다고까지 주장한다. 하지만 이것은 풍자개그를 개그로 보지 못하고 선동으로 보는 그 과잉된 시선 때문이다. 개그가 선동으로 매도되는 세상. 아마도 '동혁이형'이 불만을 개그에 담아 풍자한 것은 우리를 슬프게 하는 바로 이런 세상 때문일 것이다.

'승승장구', 아주 특별한 시청자 참여 토크쇼

'승승장구'의 시작과 끝은 MC가 아니라 방청객이 열고 닫는다. 이것은 어찌 보면 그저 간단한 오프닝과 클로징의 변형처럼 보이지만, 그것이 주는 의미는 남다르다. 토크쇼의 주인이 호스트나 게스트가 아니라 바로 시청자라는 것을 알려주기 때문이다. 지금껏 토크쇼들은 게스트의 숨겨진 이야기를 끄집어내려 독한 질문도 불사하는 호스트와, 그 질문을 피해가며 자신에게 유리한 이야기를 얘기하려 하는 게스트의 전쟁터와 같았다. 문제는 이 양자가 모두 만족스럽지 못한 결과로 이어졌다는 점이다.

호스트의 리드가 강하면 자칫 독설과 막말로 이어지는 부작용을 낳았고, 게스트에 대한 배려가 강하면 자칫 홍보쇼로 전락하곤 했다. 결과는 시청자의 소외로 이어진다. 보고 싶지 않은 폭로성 이야기나 홍보성 이야기들을 억지로 듣고 있어야 하는 상황을 맞이하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 '승승장구'가 들고 온 시청자 참여 프로그램은 호스트와 게스트 사이에 어떤 균형점을 마련해 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우리 빨리 물어' 같은 코너는 먼저 출연자에 대해 알고 싶은 질문을 직접 시청자들에게 받아 정해진 시간 내에 질문을 대신 빨리 읽어주는 형식을 갖고 있다. 이른바 '승승돌'로 불리는 태연과 우영이 김소연이 출연했을 때, "아이리스 촬영 시 이병헌의 사탕키스를 본인도 해보고 싶은 적 있냐"는 질문이나 "솔직히 김태희보다 이쁘다고 생각해본 적 있냐" 같은 질문을 빠른 속도로 읽는 것. 물론 질문에 대해 하나하나 대답을 해주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시청자가 출연자에 대해 어떤 점을 궁금해 하는 지를 알게 해주는 형식이다.

'승승장구'의 MC진들이 다양한 세대와 성별, 출신으로 나뉘어져 있다는 점은 이러한 다양한 질문들을 소화해낼 수 있는 장점을 가진다. 윤현준 PD는 "한두 명으로 국한된 MC가 다양한 수위의 질문을 하는 것은 부담을 준다"고 말한다. '승승장구'에는 질문에도 그 성격에 따라 각각 MC들이 역할분담을 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최화정은 연륜에 맞게 조금 수위가 높은 질문을 던지기도 하고, 때론 깊은 공감을 표해 출연자의 마음을 편안하게도 해준다. 김신영은 개그맨으로서 상황을 복기하거나 증폭시켜 웃음을 만들어내고, 우영과 태연은 소년 소녀 같은 풋풋함을 유지하며 그 세대의 궁금증을 대변해준다.

김승우는 메인 MC로서 전체적인 분위기를 유지하면서, 자신을 한껏 낮추는 분위기를 연출한다. 특히 우영과 툭탁대면서 만들어진 '꽁승우'라는 별명은 토크쇼를 부드럽게 해주면서 세대를 넘어서는 토크 콤비의 탄생마저 예감케 한다. 이처럼 다양한 세대와 성별, 출신으로 진용을 갖춘 이유는 결국 시청자들이 원하는 다양한 수위의 질문을 대변해주기 위함이다. 무엇보다 MC들이 라디오 같은 매체를 통해서 편안하면서도 할 말은 다하는 '토크의 구력'을 갈고 닦아왔다는 점은 '승승장구'라는 토크쇼 특유의 편안함을 만들어낸다.

'승승장구'의 토크 중간에 갑자기 게스트의 지인을 출연시키는 '몰래온 손님'이란 코너 역시 게스트에 대한 시청자의 궁금증을 풀어주기 위한 또 다른 장치다. 호스트와 게스트만의 주고받는 대화가 갖는 차원에서 한 걸음 옆으로 나가, 지인을 통해 게스트의 이야기를 듣는다. 김소연의 '몰래온 손님'으로 바다가 출연해 김소연이 갖고 있는 숨겨진 엉뚱한 매력을 경험담으로 말하는 식이다. 이 '몰래온 손님'의 장점은 굳이 연예인이 아닌 코디나 매니저 같은 주변인물들도 출연해 식상함을 탈피했다는 점이다.

마지막으로 '승승장구'의 특별한 코너인 '아주 특별한 약속-우리 지금 만나' 역시 시청자와 직접적으로 소통하고 함께 프로그램을 만들어가려는 제작진의 노력이 돋보이는 코너다. '스타가 ○○하면 나는 △△한다'는 이 형식은 스타의 미션을 제안하고 거기서 채택된 미션에 시청자도 참여미션을 제시해 특정 장소에서 만나 그 미션을 수행하는 코너다. 광화문 한 복판에서 김소연이 태권도를 하고, 그 옆에서 시청자 중 채택된 몇 명이 까나리 액젓에 시리얼을 말아 먹거나, '아이리스'의 한 장면을 연출하는 식이다. 현장에서 벌어지는 의외의 해프닝은 그 자체로도 재미있지만, 무엇보다 그것을 모두 시청자와 함께 한다는 점이 의미가 있다.

'승승장구'가 특별한 이유는 이처럼 시청자와의 참여를 위해 다양한 장치들을 마련하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물론 그것이 완전히 새로운 장치들은 아니다. 이미 '상상플러스'가 초기 버전에서는 이른바 댓글을 통해 시청자의 참여를 유도한 적이 있었고, '반갑다 친구야'가 의외의 지인을 토크쇼에 초대하는 형식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승승장구'는 이런 기존 장치들을 가져와 자기들만의 색깔로 녹여내고 있다. 이것은 '승승장구'라는 밥상이 가진 특징이다. 어떤 토크쇼는 원하지 않는 밥숟갈을 억지로 시청자의 입에 들이밀기도 하고, 어떤 토크쇼는 강하기만 한 맛으로 시청자를 중독시키려 한다. 반면 '승승장구'는 시청자들의 입맛을 향해 다양한 상차림을 내는 것으로 오래 먹어도 물리지 않는 밥상을 제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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