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연예의 중심에 서다

실로 ‘골드 러쉬’에 비견해 ‘드라마 러쉬’라 할만하다. 5분 짜리 뮤직비디오면 충분했을 내용을 가지고 굳이 두 시간 짜리 뮤직드라마를 만든 이효리부터, 연기면 연기 노래면 노래 어느 쪽에서도 호평을 얻고 있는 비, 정지훈, 게다가 최근 연기자로서의 확고한 위치를 만들어버린 윤계상까지 가수들의 드라마 러쉬는 일반적인 현상이 되었다. 여기에 최근 들어 본격화된 영화배우들의 드라마 U턴이 본격화되면서 그 어느 때보다도 드라마에 거는 우리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무엇이 이들을 드라마 앞에 줄서게 했을까.

드라마 앞에 줄서는 가수들
가수들의 드라마 출연은 어제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명랑소녀성공기’로 스타덤에 올라 중국에서 한류스타로 활동하고 있는 장나라, ‘어느 멋진 날’, ‘눈의 여왕’에 출연한 성유리, 드라마 ‘궁’으로 화제를 만든 ‘윤은혜’, ‘풀하우스’로 드라마에서부터 최근에는 박찬욱 감독의 ‘사이보그지만 괜찮아’로 연기로도 인기몰이를 하고 있는 비, 때론 터프하게 때론 코믹하게 연기변신을 보여주는 에릭, ‘내 이름은 김삼순’에서 주목받기 시작해,‘너는 어느 별에서 왔니’에서 확실한 연기를 보여준 정려원, ‘사랑에 미치다’로 가수 연기자들의 문제가 되곤 하던 연기력 논란을 잠재우고 있는 윤계상 등등.

이들의 드라마 진출은 음반 시장의 위축과 함께 예고되었던 일이다. 드라마가 가수들에게 매력적인 요인은 고정적인 TV 노출을 통해 자연스러운 홍보 효과와 이미지 제고를 할 수 있는 데다, 드라마 자체의 성공을 통한 수익 창출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가수 영입을 적극적으로 검토하게 되는 드라마 PD들의 상황도 한 몫을 차지한다. 드라마로 시작했지만 영화판으로 넘어가 돌아오지 않는 연기자들이 많아지자 마땅한 탤런트를 찾기가 어려웠던 것이 사실. 또한 참신한 인물을 쓰는데 있어서도 이미 고정 팬을 확보하고 있는 가수가 더 효과적이라는 것이다.

물론 이들 가수들의 드라마 진출이 모두 성공적인 것은 아니다. 가장 큰 복병으로 자리하는 것이 연기력 논란. 일단 이 논란에 휘말리게 되면 자칫 그 가수 연기자 한 명 때문에 작품 전체가 매도당하는 상황까지 벌어진다. 하지만 이런 위험성에도 불구하고 그 가수 연기자의 성공적 데뷔는 드라마 성공에도 시너지 효과를 주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이들 가수들의 성공한 드라마를 분석해보면 정극보다는 가벼운 로맨틱 코메디류가 많다는 사실을 알게된다. 이것은 만화 같은 과장된 캐릭터의 연기가 상대적으로 부족한 연기력에 대한 안전장치 역할을 해주기 때문이다. 소위 리얼한 연기보다는 캐릭터가 재미있기 때문에 드라마는 성공하고 가수는 안전하게 드라마라는 새로운 처녀지에 발을 디딜 수 있게 된다.

영화판에서 드라마로 U턴하는 영화배우들
하지만 앞으로 연기자 기근 같은 드라마 PD들의 고민은 상당수 줄어들 전망이다. 최근 충무로의 불황이 도래하면서 잇따라 영화판을 고집하던 연기자들이 속속 드라마로 귀환하고 있기 때문이다. KBS 2TV 월화드라마 ‘꽃 찾으러 왔단다’로 9년 만에 드라마로 돌아오는 강혜정은 ‘올드보이’, ‘웰컴 투 동막골’ 등으로 영화배우로서의 입지를 넓혀왔으나, 최근 ‘도마뱀’, ‘허브’ 등의 잇따른 부진으로 드라마 복귀가 예상되었던 연기자이다.

이런 상황은 SBS 드라마 ‘푸른 물고기’로 역시 9년 만에 복귀 예정인 고소영도 마찬가지. 최근 개봉했던 ‘아파트’, ‘언니가 간다’가 흥행 참패를 하면서 고배를 마셨다. 또한 이정재가 MBC 특별기획 드라마 ‘에어시티’로 9년 만에 드라마 복귀를 준비하고 있고, ‘그 해 여름’으로 확실한 연기자로서의 이미지를 만든 수애 역시 2년 만에 ‘9회말 2아웃’을 통해 TV로 돌아올 예정이다. ‘청연’으로 역시 아픈 부진의 기억을 갖고 있는 장진영 역시 블록버스터 드라마 ‘엔젤’로 6년만의 드라마 복귀를 준비하고 있다. 

이런 현상은 물론 충무로의 불황이 가져온 여파가 크다. 투자 분위기가 위축되면서 제작편수도 눈에 띄게 줄어들고 있어 출연할 작품 찾기가 쉽지 않은 탓이다. 무엇보다 영화배우들에게 더 어려운 상황은, 작년 굵직한 연기자들을 내세워 쉽게 투자 받아 방만하게 만들어진 작품들의 잇따른 흥행실패이다. 그것은 실패를 맛본 영화배우 당사자에게도 치명타가 되지만 영화계 전체의 영화배우를 보는 시각을 돌려놓았을 거라는 예측이다.

드라마, 침체된 문화 살릴까
이처럼 가수와 영화배우들이 드라마 앞으로 정렬하는 것은 자체적인 불황을 넘어서기 위한 자구책의 성격이 강하다. 하지만 여기서 하나 더 궁금한 것이 있다. 도대체 드라마라는 장르가 무엇이기에 이렇게 모든 불황의 돌파구로서 자리하고 있느냐는 것이다. 그 이유에는 드라마 자체의 특성이 갖는 경쟁력과, 최근 드라마가 겪고 있는 변화의 조짐, 두 측면이 있을 것이다.

드라마는 우리 대중문화에 있어 늘 든든한 허리 역할을 해왔다. 그것은 TV가 영화와 달리 돈을 내지 않고 누구나 손쉽게 틀어 볼 수 있는 대중성을 확보한 매체이기 때문이다. 어떤 것이든 끌어안을 수 있는 포용력이 넓고 가능성을 찾기도 쉬운 매체인 TV에서 그 꽃은 단연 드라마이다. 두 시간 남짓하고 끝나는 영화와 달리, 작게는 서너 달에서부터 길게는 1년에 걸쳐 연속적으로 방영되는 드라마는 중독성에서 영화를 압도한다. 최근에는 인터넷 환경과 만나면서 이 중독성은 점점 더 깊어지고 있다. 그 중독성의 핵심에 있는 것이 바로 주인공 캐릭터. 장기간에 걸쳐 노출된 캐릭터를 통해 연기자는 그 이미지를 구축하는 것이 영화나 음반보다 상대적으로 용이하게 된다.

이러한 드라마 자체가 갖고 있는 매력과 함께 최근 변화되는 우리네 드라마의 양상도 연예인들의 드라마 러쉬를 불러일으키는 요인이 된다. 해외의 드라마들과 비교되면서 좀더 높은 완성도와 스케일에 대한 요구가 높아지고 있다는 것. 우리는 거의 영화와 같은 수준의 드라마를 꿈꾸는 단계에 와 있다. 전문직 드라마들과 블록버스터 드라마들이 기획되어지고 있는 것은 우리가 갖고 있는 영화적인 노하우를 이제는 드라마에서도 써먹어야 할 상황이 도래했다는 걸 말해준다.

드라마 한 편에는 실로 우리가 갖고 있는 모든 문화적 자산들이 들어있다. 거기에는 영상이 있고 스토리가 있으며 연기자들이 있고 노래가 있다. 괜찮은 드라마 한 편의 성공이 갖는 의미는 이제 드라마에 멈추지 않는다. 어쩌면 문화계 전반의 침체된 분위기를 반전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연예의 중심에 선 드라마. 모두 드라마 앞으로 정렬하기 시작한 지금, 무엇보다 필요한 건 이 풍부한 자원들을 제대로 활용해 제대로 된 작품을 만들어내는 일이다.

미드 vs 우리 식의 범죄수사물

MBC의 새 월화 드라마, ‘히트’에 대한 호평과 혹평이 극단적으로 나뉘고 있다. 한편은 ‘기대이상’이라 하고 한편은 ‘수준이하’라고 한다. 시청자게시판을 보면 회를 거듭할수록 점점 더 흥미진진해지고 캐릭터들도 공감이 간다는 의견과 함께, 이제는 더 이상 보기 싫고 심지어는 종영했으면 한다는 극단적인 의견까지 올라온다. 또한 주인공인 차수경 역을 맡은 고현정씨의 연기에 대해서도 의견이 분분하다. 한편에선 털털한 연기 변신이 참신하다고 하지만, 또 한편에서는 실제 경찰과는 너무나 거리가 있다는 의견도 보인다.

물론 그만큼 관심이 많다는 얘기겠지만 똑같은 드라마를 가지고 이렇게 극명하게 의견이 갈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아마도 가장 큰 요인은 ‘히트’가 갖고 있는 과도기적인 특성들 때문일 것이다. 올 들어 우리 드라마에서는 이른바 전문직 드라마가 실험되고 있는 중이다. ‘하얀거탑’과 ‘외과의사 봉달희’를 통해 선보인 전문직 드라마는 새로운 드라마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이 드라마들도 처음에 반드시 넘어서야 했던 산이 있었다. 그것은 전문직 드라마의 수요가 탄생한 미드(미국드라마), 일드(일본드라마)와의 한판 대결이었다.

미드 vs 우리 식의 범죄수사물
‘하얀거탑’이 처음 맞닥뜨린 상대는 저 거탑처럼 높아 보였다. 이미 일본에서만도 여러 번 리메이크 될 정도로 검증된 작품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드라마가 진행되면서 이미 일드로 보았던 시청자들은 원작과 리메이크를 비교하기 시작했다. 다행스러웠던 것은 김명민이라는 명배우가 있어 양쪽으로 갈린 시선을 우리의 ‘하얀거탑’으로 집중시키게 했던 점이다.

반면 ‘외과의사 봉달희’는 더 거센 상대를 만난다. 그것은 처음 ‘멜로가 섞인 전문직 드라마’라는 점에서부터 불거졌다. 으레 이 드라마도 ‘무늬만 전문직 드라마’가 아닐거냐는 추측들이 난무했던 것이다. 그 산을 넘어서자 이제 그 적이 분명하게 눈에 나타난다. 바로 ‘그레이 아나토미’다. 그리고 지금 그 바톤을 이어받은 ‘히트’가 맞닥뜨린 적은 ‘CSI’나 ‘24’같은 미드의 범죄수사물이다.

미드의 시시각각 손에 땀을 쥐게 만드는 설정들과 실제 현장을 방불케 하는 리얼리티에 익숙한 시청자들이라면 ‘히트’가 보여주는 스토리가 어딘지 약하다고 느껴질 것이다. 하지만 미드에 익숙하지 않은 시청자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히트’는 지금까지 보여줬던 여타의 드라마들과는 전혀 다른 참신한 느낌을 주었을 것이다. 호평과 혹평이 나뉘는 갈림길이 다. 이것은 지금 ‘히트’가 처한 상황이며, 동시에 우리나라 전문직 드라마가 처한 상황이기도 하다.

감성적 드라마 vs 아드레날린 드라마
우리네 드라마가 지금껏 만들어왔던 것들은 대부분이 멜로드라마로 대변되는 감성적인 드라마들이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이 감성적인 드라마에 대한 비판이 일기 시작했다. 그것은 한류 바람이 거세지면서 우리 드라마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시점과 거의 비슷하다. 그리고 고개를 든 것이 일드였다. 일드는 똑같은 감성을 다루고 있었지만 그 표현은 달랐다. 눈물을 터뜨리는 우리네 정서와 달리, 일드에는 감추고 침묵하는 일본적 감수성이 있었다. 그것이 더 나은 것은 아니지만 우리 드라마들이 너무 자주 울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일드는 세련되게 보였다.

우는 드라마들(멜로드라마)이 퇴진하면서 TV에 겨우 남게된 드라마는 논란만 잔뜩 있는 가족드라마(‘하늘이시여’나 ‘소문난 칠공주’ 같은)와 울지 않는 로맨틱 코미디(‘발칙한 여자들’이나 ‘환상의 커플’같은) 그리고 사극이었다. 그 어느 것도 눈물과는 그다지 거리가 멀었다(물론 억지로 짜낸 가족드라마의 가짜 눈물은 있었지만). 여기서 주목해야 될 것은 사극의 성장을 통해 예견된 ‘아드레날린 드라마’의 가능성이다. 사극은 기본적으로 감성적인 드라마라기보다는 머리를 뜨겁게 만드는 ‘아드레날린 드라마’에 가깝다. 주인공의 성장이나 미션의 완수, 복잡한 문제의 해결 등이 보는 이들을 흥분시키는 드라마다.

여기에 전문직 드라마로서의 ‘하얀거탑’은 본격 ‘아드레날린 드라마’의 새장을 열었다. ‘히트’는 그 연장선에서 봐야 한다. 그런데 여기에 뭔가 다른 것이 끼여든다. 우리만의 독특한 정서 때문인지, 지금까지 해오던 버릇이 있어서 그런 건지, 혹은 전문직 드라마라는 새로운 장르에 맞는 작가군이 없어서 그런 건지, 멜로 같은 감성적 코드들이 뒤섞이는 것이다. 어쩌면 그것은 아직까지는 보편화되지 않은 장르의 대중성을 확보하기 위해서 그런 것일 수도 있다. 너무 전문적으로 가다보면 매니아들에게는 엄청난 호평을 받겠지만 일반인들에게는 너무 피곤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과학수사 vs 탐문수사
호평과 혹평 사이에는 비교가 있다. 우리네 전문직 드라마와 미드를 비교하면 당연히 답은 나온다. 볼 것도 없이 미드의 승리다. 그것은 이미 미드가 거의 완벽에 가까운 시즌제 시스템을 갖추고 있고, 제작에 있어서 노하우가 산적한 상태이며, 투자규모에 있어서도 비교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우리의 전문직 드라마가 월등히 떨어진다는 얘기는 아니다. 다만 이제 첫걸음을 떼고 있으며 그 첫걸음이 있어 더 나은 드라마들이 나올 수도 있다는 걸 간과하지 않아야 한다는 말이다.

또 ‘히트’를 ‘하얀거탑’과 같은 이미 종영한 전문직 드라마와 비교하는 것 또한 그다지 의미 있는 일이 아니다. 요컨대 이 드라마들은 둘다 전문직 드라마이긴 하지만 그 ‘전문분야’가 다르다. ‘히트’가 좀더 어려운 것은 ‘의학’이라는 전문분야보다 스케일이 더 클 수밖에 없고 더 많은 투자가 소요된다는 점이다. 여기에는 이미 영화 등을 통해 헐리우드 액션에 더 익숙한 우리들에게 상대적으로 ‘히트’가 불리하다는 점도 포함된다.

또 한가지 드는 의문은 우리네 전문직 드라마를 만드는데 있어서 꼭 미드를 따라갈 필요가 있겠는가 하는 점이다. 한류로 그 재주를 인정받은 멜로의 기법들을 제대로만 접목시킨다면 그것은 오히려 경쟁력이 될 수도 있다. 그런 면에서 ‘히트’는 미드보다는 일본의 ‘춤추는 대수사선’을 더 따라가고 있다고 보여진다. 이것이 일부 어설픈 장면들과 매끄럽지 못한 이야기 전개가 거슬리면서도, 미드에서 보았던 과학수사와 함께, 우리 식의 탐문수사가 공존하는 ‘히트’에 기대를 걸게 되는 이유다.

유사가족, 팀(team)이 보여주는 ‘히트’

“대외홍보용인가요?” 히트(H.I.T. : 강력특별수사팀)의 팀장이 된 차수경 경위(고현정)의 질문에 경찰청장(조경환)의 답변은 정치적이다. “자네가 성과를 낸다면 그건 우리 경찰의 승리고 자네가 실패를 한다면 그건 여성의 실패가 될 테지.” 그리고 이어지는 차경위의 요청. “팀원들 바꿔주세요.” 하지만 완고한 경찰청장의 발언. “그 사람들을 데리고 임무를 완수해!” 이 짤막한 대사들 속에는 이 드라마가 앞으로 보여줄 이야기의 전조들이 모두 숨겨져 있다.

그것은 경찰사회라는 완고한 남성중심적인 사회 속에서 그것도 마이너리티로 치부되는 인물들을 데리고 임무를 완수해야 하는 여성 강력반 팀장의 이야기다. 드라마는 연달아 벌어지는 연쇄살인사건과 그것을 풀어가는 퍼즐 같은 재미를 줄 것이 분명하지만 그보다 더 기대감이 커지는 것은 바로 캐릭터다. 마치 이현세의 ‘공포의 외인구단’처럼 진한 사연 한 가지씩 가졌을만한 인물들. 그래서 경찰 외부에 따로 지어진 히트 사무실에서 지내는 것이 특권이라기보다는 소외로 느껴지는 인물들. 게다가 총칼이 난무하는 살벌한 현실 속에서 심지어는 유사가족의 형태를 띄게 될 팀의 캐릭터들이니 기대감이 커질 밖에.

차수경, 그녀 속에 남자 있다
무엇이 가녀린 그녀를 연쇄살인범에 집착하게 했을까. 그것은 바로 그녀의 애인이었던 한상민(정호빈)이 연쇄살인범에게 살해당했기 때문이다. 그 후 죽은 한상민은 한 여자이기만 했던 차수경 속으로 들어와 자리한다. 한상민과 접신한 그녀는 그래서 사는 게 사는 게 아니다. 한상민과 차수경이 만나는 지점, 즉 오로지 연쇄살인범을 쫓는 상황에서야 이 분열된 자아는 비로소 하나가 된다.

여성으로서의 형사는 이 드라마에서처럼 ‘대외홍보용’이 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여성 특유의 섬세함’이란 장점이 되기도 한다. 이것은 이 드라마가 남성을 내세운 여타의 형사물들과 차별점을 이루는 부분이다. 따라서 이 드라마는 현장에서 강인하고 털털해 보이는 그녀가 집으로 돌아온 시간에서야 제대로 차별된 이야기를 하기 시작한다. 여성으로서의 차수경이 보이는 것. 그러나 그 시간에 그녀를 기다리는 건 아픈 기억뿐이다. 한 남자의 여자로서 사랑 받으며 살고 싶었던 기억. 하지만 부서진 기억.

김재윤, 그녀가 자꾸 눈에 밟힌다
그 기억 속으로 들어오는 남자, 김재윤(하정우)이다. 우연히 가게된 그녀의 집에서 그가 발견하는 것은 곰 인형과 하이힐로 대변되는 그녀의 본모습(여성성)이다. 무엇하나 부족할 것 없고 복잡하게 사는 걸 싫어하는 김재윤에게 그녀의 이중적인 모습은 호기심 이상의 그 무엇으로 다가간다. 안전한 삶을 희구하던 김재윤에게 부서질 것 같은 차수경의 모습은 자꾸만 변화를 요구한다. 그녀 밖의 남자였던 김재윤은 차수경 속에 있는 남자(한상민)를 밀어내고픈 욕구를 갖게될 것이 분명하다.

남 일 상관하기 싫어하는 귀차니스트 김재윤이 검사라는 직업을 갖고 있다는 점은 아이러니다. 민초들의 억울함을 풀어줘야 할 그가 그럭저럭 버티다 나중에는 편안하게 변호사나 하겠다는 마음을 먹고 있다는 건 이 드라마에서 김재윤과 차수경의 갈등과 사랑이 어떻게 연결될 것인가를 예감하게 한다. 차츰 차수경의 안간힘에 눈이 밟히는 김재윤은 지금까지 ‘남 일’이었던 사건들이 차츰 ‘내 일’이 되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장용하-김일주, 전형적 형사물의 구도
형사물을 보면 전형적으로 등장하는 형사. 베테랑에 경험도 많지만 현실적으로는 아무 것도 갖지 못한 폐인에 가까운 형사가 장용하(최일화)다. 승진보다는 범인 잡는 데 삶을 바친 이 같은 전형적 형사 캐릭터의 존재이유는 형사사회의 변화와 밀접한 관련을 갖는다. 잠복수사같은 현장중심의 수사방식에서 과학수사로 넘어오면서 차츰 공룡이 되어버린 존재들이다. 하지만 어디 수사가 과학만으로 되나. 무엇보다 중요한 건 실전 경험이다.

그런 그에게 도전하는 인물. 과학수사를 내세우는 원칙주의자 김일주(정동진)다. 장용하가 임의동행을 하려는 것을 피의자가 거부할 수 있다는 점을 들어 막는 김일주는 과거식의 수사방식을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 그러니 그 대표격인 장용하와 부딪칠 수밖에. 실력으로만 인정받고픈 그에게 무능함의 대명사로 보이는 장용하는 그가 좋아할 수 없는 인물이다. 그러나 그에게 부족한 점은 역시 경험과 열정. 그러니 이 둘의 만남은 묘한 균형감각을 갖게 된다. 이것이 현실적인 판단이 부족한 장용하와 경험이 부족한 김일주가 파트너가 된 이유다.

남성식-심종금, 투캅스의 부활
영화 ‘투캅스’의 재미는 서로 다른 캐릭터의 부조화에 있다. 닳고닳은 타락한 고참형사와 세상물정 모르고 정의만 부르짖는 신참형사의 만남. 그러나 차츰 닮아가고 나중에는 심지어 청출어람(?)을 보이는 신참의 모습에 오히려 고참이 훈계(?)하는 형국으로의 전환은 묘한 카타르시스를 준다. 드라마 ‘히트’의 남성식(마동석)과 심종금(김정태)은 바로 그런 인물들이다.

생각은 좀 모자란 듯 하지만 완력과 정의감으로 똘똘 뭉친 남성식은 이름에서도 느껴지지만 여성 강력팀장인 차수경의 빈 구석을 꽉 채워주는 인물이다. 그녀의 완벽한 수족이 될 그는 그러나 여성적인 내면(?)까지도 갖추고 있다. 머리가 나쁘다는 콤플렉스와 외모가 조폭인 그의 섬세한 면모들은 한편으로 그럴듯한 외모에 머리만 굴리며 살아가는 세태를 꼬집는 묘미가 있다. 그와의 대척점에서 심종금의 면모가 교활하게만 느껴지는 것은 그 때문이다. 하지만 ‘투캅스’에서 안성기가 타락한 형사가 된 것은 사실 사회의 부조리함을 뒤집어 말하기 위함이다. 그러니 심종금이 그렇게 살아가는 이유가 밝혀질 즈음, 보여질 그의 진면목에서 우리는 동정심과 애정을 예감하게 된다.

전문직, 멜로, 가족드라마의 경계에 서다
이 밖에도 이 드라마에는 전직형사이자 선술집 주인인 김영두(김정민), 수사본부의 부지휘자로 윗사람과 아랫사람 사이에서 그 넉넉한 허리가 되어주는 조규원(손현주), 과학수사의 진면목을 보여줄 정인희(윤지민) 같은 매력적인 캐릭터들이 꿈틀거린다. 이들 캐릭터들은 처음에는 외인부대처럼 버려지거나 외면될 위기에 처한 상태로 서로를 만나게 된다. 그리고 결국 보여주려는 것은 그들이 살인사건을 해결해가며 팀이 되어 가는 과정이다.

여러모로 미국 드라마 ‘CSI’를 연상케 하는 전문직 드라마지만 ‘히트’의 전개양상은 이러한 캐릭터 설정으로 인해 저네들의 드라마와는 다른 방향으로 흘러갈 것이 분명하다. 스타일은 따왔으되 하려는 이야기는 저네들의 쿨한 관계보다는 좀더 끈끈한 팀 간의 이야기를 기대하게 만든다. 정두홍이라는 걸출한 무술감독으로 인해 깨지고 부서지는 우리 식의 액션이 선보여지고 있는 것처럼, ‘히트’가 서는 지점은 형사물로 대변되는 전문직드라마와 전형적인 멜로드라마, 그리고 팀으로 대변되는 가족드라마의 경계에 서게 되지 않을까. 따라서 이 드라마의 성패는 바로 그 적절한 배합과 균형에 있을 것이다.

멜로와 전문직 드라마의 성공적 봉합, ‘외과의사 봉달희’

멜로가 있는 전문직 드라마의 가능성을 보여준 ‘외과의사 봉달희’. 시작부터 예고된 것이었지만 봉달희(이요원)는 그토록 꿈꾸던 의사가 됐다. 그런데 그 의사가 되는 길은 참으로 어려운 여정이었다. 처음 그녀의 앞길을 막은 것은 선천성 심장병으로 조금만 무리하면 재차 감염될 수 있는 병. 게다가 병원이란 환경은 늘 감염의 위험을 갖게 마련이었다.

하지만 그녀를 다시 병원으로 이끈 것은 바로 그 병 때문이었다. 이로서 그녀는 환자의 입장에 선다는 것에서부터 의사로의 길은 출발했다고 할 수 있다. 뜻은 좋았다. 하지만 환자의 입장에 선다는 것은 때론 의사에게는 치명적인 상처가 된다는 것을 그녀는 알게된다.

심근경색 환자를 소화제 처방해 결국 사망하게 하고 식도가 약해진 환자 동건에게 딱딱한 고구마를 먹게 해 중태에 빠뜨린 그녀는 환자들의 생과 사가 자신의 순간적인 선택에 달려 있다는 중대한 사실에 맞닥뜨리게 된다. 그것이 그녀가 의사가 되기 위해 처음 넘어야할 아픔이었다. 하지만 제대로 된 판단으로 괴사성 근막염으로 사망할 위기에 처한 환자를 살려냈을 때 슬픔과 함께 기쁨도 있다는 것을 그녀는 알게 된다.

의사로서의 기쁨과 슬픔을 알게 될 즈음, 그녀는 또 한번 중대한 시험에 빠진다. 그것은 아이러니하게도 희망이다. 환자를 살리고 싶은 욕구로 인해 그녀는 동건에게 희망을 불어넣고 무리한 선택(항암제 투여)을 하게 한다. 결국 동건이 사망하자 그녀는 심각한 정신적 충격에 사로잡힌다. 그녀의 욕구가 동건의 생명을 오히려 단축시키고 말았던 것. 자포자기에 빠져있을 때 그녀에게 다가오는 인물, 바로 안중근(이범수)이다.

안중근은 어린 시절의 상처로 인해 철저히 마음의 문을 닫고 의사로서의 삶만을 살아왔다. 천재의사라는 소리를 듣지만 버럭 소리지를 줄만 알았지 연애에는 젬병이다. 그렇게 굳게 닫힌 그의 마음에 봉달희가 들어올 수 있었던 것은 어린 시절 갖고 있던 동병상련의 아픔 때문이다. 입양됐다 파양되는 상처를 입은 안중근은, 선천성 심장병을 갖고 살아온 봉달희에게서 자신과 비슷한 모습을 발견한다. 그것은 상처를 넘어서고자 의사가 되려는 안간힘이다.

냉정한 안중근의 마음 속에 봉달희가 자리할 즈음, 병원에서 살인용의자가 봉달희를 칼로 찌르고 도망치는 사건이 발생한다. 그런데 그 살인용의자는 안중근이 한 아이의 생명을 담보로 살려놓은 인물. “생명에 우선순위는 없다”며 의사로서의 판단만을 말하던 안중근의 마음도 흔들리기 시작한다. 의사로서의 안중근은 차츰 남자로 깨어나기 시작한다. 순간적으로 ‘버럭 고백’을 해버리고 내친 김에 ‘버럭 데이트 신청’도 해버린다.

이 즈음 의사가 되기 위해 매일을 환자와 씨름하던 봉달희는 최대의 고비를 맞게된다. 그것은 예고된 대로 자기와의 싸움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이 싸움에 안중근도 참요하게 된다. 의사가 되려는 봉달희는 기계판막을 이식하지 말아달라고 하나, 안중근은 의사 안중근이 아닌 남자 안중근으로서 판단해 기계판막을 이식한다. 환자에서 의사가 되려는 봉달희를 의사에서 남자가 된 안중근이 막아서게 된 것. 하지만 결론은 의사가 된 봉달희가 남자가 된 안중근과 엮는 해피엔딩으로 끝난다.

결과를 보면 조금은 도식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외과의사 봉달희’는 그러나 쉽지 않은 일을 해냈다. 그것은 앞서도 말했듯이 멜로와 전문직 드라마를 잘 봉합하는데 성공했다는 점이다. 거기에는 봉달희와 안중근이라는 두 캐릭터의 만남이 주효했다. 의사가 되려는 봉달희에게서 생명을 다루는 의사라는 전문직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고, 천재지만 사랑에 익숙지 못한 안중근을 통해 한 의사이자 인간으로서의 사랑방식을 엿볼 수 있었다. 이 두 캐릭터만으로도 이 드라마는 훌륭한 성과를 거두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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